성도의 공동생활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1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 요약 。。。。。。。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공동체로서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이유로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회퍼는 이런 상황이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예수는 원수들 한 복판에서 사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무엇보다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들이 하나 됨을 이루며 사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복 중 하나라는 점이다.(1)


      성도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우리 자체로 서로를 온전히 품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시편의 다양한 공동체의 기도를 본을 삼으라고 권한다. 물론 여기에 말씀(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공동의 찬송도 빠질 수 없는 요소고.(2)

      흥미로운 것은, 함께이기 위해서 홀로될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다.(3) 하나님 앞에(이 책에서는 주로 그분의 말씀 앞에 서는 것과 동일시된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공동체 속에 뿌리내리는 한 방법으로서의 섬김’(4)과 공동체 안에서의 죄 고백과 이를 받아주는 일의 중요성(5) 등이 담겨 있다.

 

 

2. 감상평 。。。。。。。

     이 책에 앞서 읽었던 옥중서신이 그 유명함에 비해서 생각만큼 내용이 인상적이지 않았었다. 감옥 안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있었던 저자와 책을 읽는 지금 나의 상황 사이에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저자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상황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어떻게든 명랑해지려고 했던 그의 글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어찌되었든, 쉽게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만은 분명.


      그에 비해 저자가 수감생활을 하기 이전, 좀 더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의 교우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 책은 훨씬 더 쉽게 와 닿는다. 저자가 가정하고 있는 상황과 환경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가 탐구하고 있는 인간의 성품에 대한 통찰이 너무 생생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그리 큰 기대감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서 빠져들고 말았다. 쉴 새 없이 인상적인 문구들을 체크하면서.

 

 

      공동생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그냥 같이 모이고 만나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 결속이 이루어지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상황에서는 좀처럼 공동체를 경험한다는 것이 더욱 쉽지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버릴 일은 물론 아니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잃어버리면, 그냥 한낱 집단으로 전락해버리게 되고, 그러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힘은 그대로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한 문장, 한 문장이 참 묵직하다. 날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은 애정이 배어있는 글에서는 깊이가 느껴진다. 교회의 공동체성이 참 많이 약화되어버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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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법

수적으로나 힘에 있어서 다수에 속하는 집단이

소수집단에게 지킬 것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전혀 구속받지 않는 법입니다. 

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당한 법

다수가 소수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도 자발적으로 지키는 법입니다.

법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왜 우리는 기다릴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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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기기를 애용한다고 해서 인생이 스마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정보들로 인해

우리 삶은 스크린처럼 얇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 신현림, 신동환, 아빠에게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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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잠입한 맥스(브래드 피트)는 레지스탕스 공작원인 마리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접선해 부부 행세를 하면서, 모로코 주재 독일 대사를 암살할 계획을 진행한다. 작전이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하게 된 두 사람. 맥스는 마리안에게 자신과 함께 런던으로 가 결혼을 하자고 프로포즈를 한다.

 

     ​독일군의 공습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사랑스러운 딸까지 얻게 된 두 사람, 하지만 1년쯤 지난 후 영국 정보당국에서 맥스를 소환한다. 마리안이 독일과 협력하고 있는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 그녀가 정말로 스파이인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명령받은 맥스. 사랑하는 아내가 정말로 적의 협조자인걸까.

    

 

 

 

 

2. 감상평 。。。。。。。

     생사의 위험을 함께 넘어선 동지 사이에 자연스럽게 싹튼 애정, 그리고 결혼. 영화의 전반부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첩보영화를 축약해 놓은 듯했다. 그리고 영화의 2막이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에서는 또 전혀 다른 심리적 긴장감을 더해주는 스릴러로 변한다. 사실 후반부의 긴장은 이미 전반부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었다. 적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신분을 속일 수 있었던 그녀라면, 자신의 진짜모습 또한 감출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랑했던 여자가 적국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 남자의 심리는 꽤나 복잡할 것이다. 상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자신과 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는 아내의 말을 믿어야 할지..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관객 역시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꽤나 초조함을 느끼면서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심리적 스릴을 주무기로 하는 영화이기에,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가 받혀주지 않았다면 그냥 졸작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 두 사람의 연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호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이게 돈 주고 영화 보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다만 영화의 스케일이 생각만큼 크지 않고, (물론 이건 심리 스릴러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극 중 인물에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영상이나 스토리가 짜임새 있게 만들어지지도 못했다. 마지막 결말을 미리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어차피 드러나게 될 결말인지라, 그 과정에서 좀 더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들이 좀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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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성형외과에서 환자들의 상담을 해 주는 송치(판빙빙). 누가 봐도 뚜렷한 미인형의 얼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기운이 서려 있는 얼굴(판빙빙의 분위기가 좀 그렇다)의 그녀는 같은 병원의 의사인 류동(풍소봉)과 연인관계다. 그러던 어느 날 류동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샤오시(곽사연)과 바람을 피고 있음을 알게 된 송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샤오시를 목 졸라 죽이고 만다.

 

     당연히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송치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끊임없이 쫓기는 마음으로 생활하다, 마침내 자신을 뒤쫓던 경찰을 차로 치어 죽이기까지 한다. 결국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송치. 하지만 얼마 후 나타난 경찰은 송치의 차에서 어떤 사고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더더욱 샤오시를 살해해 묻어두었다는 곳에서도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를 쫓던 경찰도, 그의 연인이라는 류동이라는 인물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았았고.

     어떻게 된 일일까? 송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의 눈앞에서 목 졸라 죽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의 양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는 일까지 겪는다. 이 충격적인 일들이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현재의 경험에 혼선을 주었던 것. 영화의 후반은 잊혀지고 왜곡된 그녀의 기억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2. 감상평 。。。。。。。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송치의 교통사고가 있었던 시점 이전에는 이 영화의 제목인 ‘2차 노출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다. 2차 노출, 다른 말로하면 이중노출, 하나의 감광지(필름) 위에 두 개 이상의 영상이나 사진의 상이 맺혀 있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 속에서 필름은 송치의 기억이고, 그 위에 어린 시절의 사건과 현실이 동시에 새겨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트릭에 있는데, 덕분에 영화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스릴러라고 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감독의 독특한 영상과 주연배우인 판빙빙의 특별한 눈빛 덕분에 영화는 굉장히 서정적으로 진행된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의 신기루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장면. 중국영화 특유의 물량공세 속에서 자주 얼토당토않은 스토리 속 캐릭터를 맡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판빙빙이라는 배우는 작품만 제대로 만나면 늘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다.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분위기는 잘 만들어 냈으면서도, 정작 스토리를 흥미롭게 끌고 가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주인공 송치가 겪는 개인적인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너무 개인적(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라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까지 충분히 공감이 되지는 않는 달까.

   

 

      영화는 기억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결국 기억을 통해 유지되는 건데, 이 기억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면 자연히 현재의 삶 또한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기억이라는 것이 개인을 넘어 좀 더 큰 공동체로 확장되면 역사라고 불리는데, 마찬가지로 역사가 엉망진창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당연히 현재와 미래의 그 공동체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낄 수밖에.

 

     ​이런 차원에서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역사왜곡 시도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물론 역사기술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학문적,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무시한 채 자꾸 과거의 사건에 엉뚱한 기억을 이중노출하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추하기 이를 데 없다.

     과거를 정확히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이다. 영화 속 송치가 모든 것을 정확히 알게 된 후 비로소 현실감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역사를 바르게 알고 배울 필요가 있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역사는 오늘과 내일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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