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골 깊은 곳에는 어린 삼형제가 있었다.
겨울이면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어 허연 코를 쥘쥘 흘리며 훌쩍이고,
생전 양치질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조금 재밋는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누런 옥수수 같은 이를 씩 드러내면서 실실 웃는 그런 깡 촌넘들있다.
하루 종일 동네 아이들과 바깥에서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팔려
피부는 햇빛에 검게 그을리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타버린 그런 형제들이었다.
그 중 승원이라는 아이는 막내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한글도 모르고 그저 동네 친구들과 종일 놀다가
해가 뉘엇뉘엇하면 집을 돌아오곤 하는...
그 애는 일년에 딱 두번
큰형에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땡깡을 있는대로 부린다.
큰형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 땡깡은 다름이 아닌 학교에 다니는 큰형의소풍을
제 큰형과 같이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늘 함께 놀아주고
여름이면 함께 헤엄을 치러 데려가고
겨울이면 썰매와 스케이트를,
그리고 연을 직접 만들어 띄워주는 형이고
팽이도 깍아주며
쥐불놀이에도 데려간다.
그런 형이기에 승원이는
학교 소풍에도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큰 형은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철없는 막내와
소풍에 동행하는 것은 다른 애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도 동생들을 하나 데려오지 않는 데
자기 혼자만 동생을 데려가는 것도 뻘쭘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큰형은 동생을 떼어 놓고 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하여 이리 달래도 보고 저리 달래도 본다.
그러나 이 철딱서니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막내에게
먹힐 리가 없다.
막내의 엄마가 나서서 별소리를 다 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인 것이다.
땅 바닦을 떼굴데굴 구르면서 울고불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면서
따라가겠노라고 기를 써댄다.
막내는 그렇게 해서라고 형의 허락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갈 시간을 다 빼앗긴 형은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두 손발을 다 들수 밖에는 없다.
그의 큰형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형이 돌아오면서 과자를 사오마. 그때까지 형을 기다려주련....'
막내는 형이 내민 그 비장한 카드가 마음에 드는지
꼬질 꼬질한 눈물을 훔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협상에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꼭 사와야돼~!' 그렇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는
형을 놓아주는 것이다.
승원이는 형의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는
하루 종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하늘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그렇게 길기만 하던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이제는 집으로 가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곧 형이 돌아오겠지...
승원이는 온 종일 밖에서 있었으니
몹시 시장도 할터인데
밥도 먹지 않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형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고서야 드디어 승원이의 형이 대문을 들어선다.
승원이는 비호처럼 형에게 달려가
협상의 내용물을 요구한다.
형아~ 과자~
그러나 형은 아무런 말이 없다.
형아의 보자가 안에는 달그락 거리는 빈 도시락 뿐
따로이 내어줄 만한 과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형은 멋적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모른다.
동생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형도
면목이 없는 모양이다.
승원이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안뜰을 떼굴떼굴 구르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안뜰을 떼굴떼굴 뒹굴면서 아주 쓸고 다닌다.
승원이의 대성 통곡으로 온 집안은 난리가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안뜰로 나와
승원이를 달래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게 어디 통할 일이던가.
그렇게 제풀이 지쳐 나가 떨어져야만 끝이 날 모양이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땅바닦을 굴러대는 바람에
얼굴이며 온 몸은 흙 투성이에다가
눈물과 뒤범벅이 되버린 얼굴은
아예 위장한 특공대의 얼굴과 다름이 없다.
제 풀어 지쳐 시체처럼 축 늘어진 후에야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서는
세수 시키고 손을 닦아준 다음에서야
방으로 들어가 곤한 잠에 떨어진다.
승원이는
형의 가을 소풍이 되어서는 봄 소풍때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비장의 카드를 받고 나서야 형을 겨우 놔주는 것이다.
가을 소풍때는 형의 귀가 시간이 훨씬 더 늦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형의 보자기 속에는 빈 도시락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뿐....
가을 소풍도 그렇게 승원이의 떼쓰는 소리와
실망한 나머지 온 안뜰을 떼굴거리며 뒹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소풍이 왔다.
이제 승원이는 에전 처럼 떼를 쓸 필요가 없다.
학교에 들어가 제 소풍을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오고 또 다녀오고.....
드디어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일년에 두번 가는 소풍이고
여러번 다녀 왔지만 소풍을 하루 앞 둔 날은 밤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소풍은 평소 와는 약간 달랐다.
승원이의 엄마가 승원이의 손에 처음으로 동전을 쥐어준 것이다.
맛있는 거 사먹으렴...
승원이는 두 눈이 똥그러져서 엄마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손을 펴본다...
십원짜리 동전이 4개나 된다.
그렇게 40원을 주머니에 넣고는 달음박질로 뛰어간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승원이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또 딴짖을 하다가는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대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승원이는 그 의미를 불현듯 깨닫기 시작했다.
큰 형이 그토록 땡깡을 쓰는 막내에서
하는 수 없이 막판에 비장의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카드는 사실상 실효가 없는 카드 일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유효한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서야
소풍 날 쓸 용돈으로 10원짜리 동전 4개를 받은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사실 소풍 날 쓸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자는 사올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승원이는 떼굴거리며
온 집안에 난리 칠 것이 뻔하다.
행여 막내가 잠에 들었을까 밖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는
주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늦은 밤에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한 미안함이
밤까지 그 긴 시간동안 밖에서 서성거리게 만든 것이었다.
승원이는 40원의 용돈을 받은 후에야
형의 그 비장한 카드는 정말로 비장한 카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형아야~ 미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