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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7-1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치보다도 그위에 벤치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나무들 말이죠.
그나무가 눈에 자꾸 밟히네요.^^
의자에 앉은 사람들을 굽어보면서 얘기를 나눌 것도 같고,
사람들 얘기소리에 귀 기울일 것도 같고 그렇네요.^^
엿들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세요.ㅡ.ㅡ;;

차트랑 2012-07-14 14:36   좋아요 0 | URL
지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찍은 사진입니다람쥐~
그 다람쥐들이 엿들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겁없는 다람쥐~

그런데 말씀을 듣고보니
소나무들이 엿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님~

cyrus 2012-07-1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한 줄의 글이 없는 이미지만으로도 명상을 불러일으키케끔 만드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2012-07-14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7-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런 배경 넘 좋아요 앉아서 한참 가만히 있고 픈 자리.
지나가는 사람도 보고 바람도 만난고 하늘도 보고
저곳은 그러기 딱 맞는 자리같네요

차트랑 2012-07-17 11:27   좋아요 0 | URL
다람쥐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산책로의 벤치입니다

아참,
좋은 책을 써주셔서 많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기억에 남는 교훈을 줄 것입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신거지요^^

찾아주셔서 도맙습니다~


2012-07-18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은 주말부부이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재구성 해봅니다.

 

==========================================================================

나의 부인은 지금 집나가서 쏘맥을 하고 있습지요.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게 항상 집을 배우고 밖에 있으니 그럴 밖에요.

나의 여자는 자기 남자인 남편을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멀리 있어서 자기 여자를 제 때 챙겨주지를 못합니다.

그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그리도 사랑하건만...

남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대체 매일 독수공방을 시킵니다.

나쁜 남편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자신의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은 한시도 자기 여자의 곁을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남편보다도 자신의 여자를 더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자기 여자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 남자는 세상에서 자신의 여자를 가장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부를 위한 참으로 많은 책들이 검색된다. 그 중에서 바로 그 친구 집에서 읽어본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부부는 상대방에 대한 禮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출발점은 상대방에 대한 예로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예법을 그대로 따르자는 말이 아니다. 예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모든 예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도 일종의 예에 해당된다.    


 

또한

그 마음 만큼은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남자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여자를 훌륭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여자보다 더 훌륭한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자신의 여자가 제일 사랑스럽고

제일 이쁩니다.

어찌나 자신의 여자를 귀하게 여기던지요...

그 마음은 세상의 어떤 남자와의 마음과도 바꿀 수는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여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말 허망한 인생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떴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녀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여자입니다.

이런 여자는 태어나 처음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자신의 여자는

여자의 덕목을 잘 갖추고 있고

인품이 고매하며

그 사람됨이 고명하고 박후하다고 합니다.

너그러움과 인자함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렇다고 매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당하지 못하다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사람 보다 더

분명하게 판단하고 이를 바로 잡습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자신의 여자를 무서워하기도 한다 합니다..

하지만 사람됨이 있다면

자신의 여자를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고 하네요.

왜냐면 내 친구의 여자는 사람됨이 바르다면

한없는 인간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여자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여자입니까.

그러니 어찌 내 친구가 자신의 여자를 그토록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남자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여자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됨을 먼저 알아보고

사람이 되었다 싶으면 믿음과 신뢰를 줍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런 점에서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근본이 닮아 서로를 잘 이해할 줄 압니다.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부부이던가요.


남자는 그런 자신의 여자를 매일 같이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깊이 깊이 사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여자를 그토록 깊이 사모하며

가슴을 에일리가 없지 않겠어요.

자신의 여자가 보고싶어 질 때면

가슴부터 에어 온다고 합니다.

가슴 한 가운데로 바람이 휭 지나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것이 시리다가는 아프기도 하다지요.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알만 합니다.


더욱 좋은 것은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깊이 존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여자 또한 매우 훌륭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인품을 지닌 여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남가 자기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여자라면 사족을 쓰지 못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마음고생은 혼자 하려고하지요.

남자가 알까봐 별로 말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남자가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것이다 짐작하고 있지요.


그래서 남자는 자기 여자를 그토록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여자의 성품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남자는 지금의 자기 여자가 없으면

아마도 세상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 합니다.

왜나면 그런 자신의 여자를 잃는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그의 여자가 전부입니다.

아무것도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녀가 곧 자신의 목숨이라도 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이라구요...


그러니 그녀를 혹 잃는다면 이 세상을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남자에게

오직 단 한사람....

그의 여자 뿐이라고 합니다.


존중하는 마음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이런 남자 또 없습니다.

자신의 여자를 이토록 사모하고 아껴주는 남자는 또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합니다.

비록 지난 반 쏘맥을 마신 자신의 여자에게 술국을 끓여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하는 그런 남자입니다.

============================================================


아련한 친구,

오직 자신의 여자밖에 모르는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이들의 주말부부 생활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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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7-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련하다 라는 말이 이럴때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다 그런 느낌이 드네요.

차트랑 2012-07-09 14:37   좋아요 0 | URL
제가 옆에서 지켜보기가 무척이나 아련한 친구입니다
좋은 날 오겠지요^^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마녀고양이 2012-07-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함께 기원합니다.... 주말 부부 생활이 빨리 끝나시기를! ^^
그리고 무지하게 부럽네요, 문득 얼마 전에 방영한 인간 극장의 <길 위의 부부> 편이 떠오릅니다. 정말 부창부수다, 저런 부인이니 저런 남편 곁에서 있을 수 있는거겠지, 나는 할 수도 없으면서 무조건 부럽다고 샘내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차트랑 2012-07-10 13:18   좋아요 0 | URL
기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참 보기에 좋은 부부입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좋은 날이 오겠지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책읽는나무 2012-07-1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부부였기에 바로 곁에 없는 부인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애틋할지도 모를일이에요.
물론 평소에도 애틋하셨겠지만요.^^
지금 곁에서 바라볼 수 없기에 더 그립고 그립다보니 그사람의 됨됨이까지 되짚어보게 되는 시간들이 아닐까,싶어요.남자들에겐 말입니다.
사실 여자들은 애 키우고 하다보면 주말부부 시간들도 처음엔 더디 흐르다 나중엔 금방 주말이 되거든요.그래서 남편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남편만큼 크게 애틋하지 않은 것같아요.
물론 사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아마도 나이 들수록 남자는 여성화가 되어가고,여자는 남성화가 되어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들구요.ㅎㅎ
주말부부 5,6년정도 해본 제경험으론 그렇더라구요.ㅋ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감성적으로 바뀌어 아내의 빈자리에 애틋해하는 듯한데,정작 부인인 저는 무덤덤~~~ 그래서 주말부부를 이끌어 왔었는지도 모를일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들이 주말부부를 못견뎌 하는 것같아요.
암튼..친구분 얼른 주말부부 청산하시고 사랑하는 부인님과 함께 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주말부부 오래하면 남편들 건강이 너무 나빠지더라구요.ㅠ


차트랑 2012-07-14 14:32   좋아요 0 | URL
딱 맞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올 초부터 주말부부에 들어갔는데 최근 친구는 2주에 한 번 부인을 만나러
내려가더라구요.
이번 주에는 부인께 내려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가만히보니 건강이 많이 나빠보입니다.
제가 병원에 챙겨 데려가고 있답니다^^

이 친구도 5년 정도의 기간을 예상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제가 매번 괴롭습니다^^
괴롭힐 사람이 없으니
그 불똥이 제게로 튀더군요^^

그래서 저도 하루 빨리 벗어나고파~^^
부부의 예를 알고 극진하게 사랑하는 부부인데
안타깝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님~
 

어느 산골 깊은 곳에는 어린 삼형제가 있었다.

겨울이면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어 허연 코를 쥘쥘 흘리며 훌쩍이고,

생전 양치질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조금 재밋는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누런 옥수수 같은 이를 씩 드러내면서 실실 웃는 그런 깡 촌넘들있다.

하루 종일 동네 아이들과 바깥에서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팔려

피부는 햇빛에 검게 그을리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타버린 그런 형제들이었다.

 

그 중 승원이라는 아이는 막내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한글도 모르고 그저 동네 친구들과 종일 놀다가

해가 뉘엇뉘엇하면 집을 돌아오곤 하는...

 

그 애는 일년에 딱 두번

큰형에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땡깡을 있는대로 부린다.

큰형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 땡깡은 다름이 아닌 학교에 다니는 큰형의소풍을

제 큰형과 같이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늘 함께 놀아주고

여름이면 함께 헤엄을 치러 데려가고

겨울이면 썰매와 스케이트를,

그리고 연을 직접 만들어 띄워주는 형이고

팽이도 깍아주며

쥐불놀이에도 데려간다.

 

그런 형이기에 승원이는

학교 소풍에도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큰 형은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철없는 막내와

소풍에 동행하는 것은 다른 애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도 동생들을 하나 데려오지 않는 데

자기 혼자만 동생을 데려가는 것도 뻘쭘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큰형은 동생을 떼어 놓고 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하여 이리 달래도 보고 저리 달래도 본다.

그러나 이 철딱서니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막내에게

먹힐 리가 없다.

막내의 엄마가 나서서 별소리를 다 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인 것이다.

땅 바닦을 떼굴데굴 구르면서 울고불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면서 

따라가겠노라고 기를 써댄다.

막내는 그렇게 해서라고 형의 허락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갈 시간을 다 빼앗긴 형은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두 손발을 다 들수 밖에는 없다.

그의 큰형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형이 돌아오면서 과자를 사오마. 그때까지 형을 기다려주련....'

 

막내는 형이 내민 그 비장한 카드가 마음에 드는지

꼬질 꼬질한 눈물을 훔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협상에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꼭 사와야돼~!' 그렇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는

형을 놓아주는 것이다.

 

승원이는 형의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는

하루 종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하늘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그렇게 길기만 하던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이제는 집으로 가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곧 형이 돌아오겠지...

 

승원이는 온 종일 밖에서 있었으니

몹시 시장도 할터인데

밥도 먹지 않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형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고서야 드디어 승원이의 형이 대문을 들어선다.

 

승원이는 비호처럼 형에게 달려가

협상의 내용물을 요구한다.

형아~ 과자~

 

그러나 형은 아무런 말이 없다.

형아의 보자가 안에는 달그락 거리는 빈 도시락 뿐

따로이 내어줄 만한 과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형은 멋적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모른다.

동생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형도

면목이 없는 모양이다.

 

승원이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안뜰을 떼굴떼굴 구르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안뜰을 떼굴떼굴 뒹굴면서 아주 쓸고 다닌다.

승원이의 대성 통곡으로 온 집안은 난리가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안뜰로 나와

승원이를 달래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게 어디 통할 일이던가.

그렇게 제풀이 지쳐 나가 떨어져야만 끝이 날 모양이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땅바닦을 굴러대는 바람에

얼굴이며 온 몸은 흙 투성이에다가

눈물과 뒤범벅이 되버린 얼굴은

아예 위장한 특공대의 얼굴과 다름이 없다.

 

제 풀어 지쳐 시체처럼 축 늘어진 후에야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서는

세수 시키고 손을 닦아준 다음에서야

방으로 들어가 곤한 잠에 떨어진다.

 

승원이는

형의 가을 소풍이 되어서는 봄 소풍때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비장의 카드를 받고 나서야 형을 겨우 놔주는 것이다.

 

가을 소풍때는 형의 귀가 시간이 훨씬 더 늦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형의 보자기 속에는 빈 도시락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뿐....

 

가을 소풍도 그렇게 승원이의 떼쓰는 소리와

실망한 나머지 온 안뜰을 떼굴거리며 뒹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소풍이 왔다.

이제 승원이는 에전 처럼 떼를 쓸 필요가 없다.

학교에 들어가 제 소풍을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오고 또 다녀오고.....

 

드디어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일년에 두번 가는 소풍이고

여러번 다녀 왔지만 소풍을 하루 앞 둔 날은 밤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소풍은 평소 와는 약간 달랐다.

승원이의 엄마가 승원이의 손에 처음으로 동전을 쥐어준 것이다.

맛있는 거 사먹으렴...

승원이는 두 눈이 똥그러져서 엄마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손을 펴본다...

십원짜리 동전이 4개나 된다.

 

그렇게 40원을 주머니에 넣고는 달음박질로 뛰어간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승원이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또 딴짖을 하다가는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대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승원이는 그 의미를 불현듯 깨닫기 시작했다.

 

큰 형이 그토록 땡깡을 쓰는 막내에서

하는 수 없이 막판에 비장의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카드는 사실상 실효가 없는 카드 일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유효한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서야

소풍 날 쓸 용돈으로 10원짜리 동전 4개를 받은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사실 소풍 날 쓸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자는 사올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승원이는 떼굴거리며

온 집안에 난리 칠 것이 뻔하다.

행여 막내가 잠에 들었을까 밖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는

주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늦은 밤에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한 미안함이

밤까지 그 긴 시간동안 밖에서 서성거리게 만든 것이었다.

 

승원이는 40원의 용돈을 받은 후에야

형의 그 비장한 카드는 정말로 비장한 카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형아야~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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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7-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원의 용돈이란 금액의 크기로 보건대 허연 코 아니고 누런 코 일 것 같다는, ㅋ~.
형아야~
부르고 졸졸 따라다닐 그 누구가 있다는 것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도 왕 부러움이라는~^^


차트랑 2012-07-06 12:2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누런코는 좀 더 창피하자너요^^
40원이 가지는 정보력이 대단~

손수건을 핀으로 고정시켜 앞에차고
그때는 그렇게 입학식을 하지 않았겠어요?^^
이유인 즉슨 입학식의 시기는
겨울의 끝인지라 어린이들이 죄다
감기 떨러질 날이 없어가지고 코 쥘쥘모드^^

덕분에 헝가리~를 신버전으로 들으니 좋은걸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하늘바람 2012-07-06 14:22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덕분에 저도 좋은 음악 감상해요

책읽는나무 2012-07-14 07:20   좋아요 0 | URL
저도 덕분에 좋은 음악 놓치지 않고 잘 듣고 갑니다.^^
덕분에 아침이 상쾌하네요.
오늘 비온다고 했는데..^^

하늘바람 2012-07-0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린시절 이야기인가요?
재미나고 짠한데요
그림책으로 만들면 재미날 것같은
멋진 형을 두셨네요

차트랑 2012-07-06 12:22   좋아요 0 | URL
숨겨보려고 했눈뎅, 들켰다는 ㅠ.ㅠ
제 형들이 다들 막내에게 잘해주셔가지고요
사연들이 많은 편입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
추억을 되살리며 적었을 뿐인데
재미나게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7-1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하늘바람님처럼 그림책 혹은 동화를 연상했어요.
좋은 추억이네요. :)

차트랑 2012-07-14 17:27   좋아요 0 | URL
좋은 추억이라 생각해주시어
고맙습니다
마음을데려가는인님^^
더불어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2-07-14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산골아이들 이야기인가? 싶어 읽었는데
아무래도 데굴데굴 구르는 승원이에게 너무나도 강한 감정이입에 눈치챘습니다.
40원에서두요.ㅎㅎ
초등생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멋지게 그려낸다면 정말 감동적인 책이 되겠다 싶어요.

어린시절을 회상한다면 형제,자매가 빠질 수 없는데,
서열에 따라 회상하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전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거든요.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특히 막내동생은 친구들과 놀러가려면 꽤나 누나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고무뛰기할때 막내가 곁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좀 크더니 녀석은 제형아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지만요.
다음생에 태어난다면 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드네요.
형아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신 님이 부러워서 말입니다.^^

차트랑 2012-07-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픈 산속, 산골아이들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는데
어쩐지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떠올라 적어보았답니다

그 분은 정말 훌륭하시다 생각들고요
저도 그분의 수업을 한 번 받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정도로 감동적인 분이랍니다

당시 40원이 어느정도의 액수였을까...생각해보았더니
대략 그 가치를 알수가 있더라구요.
다음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글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워낙 깊은 산골에 살던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물론 돈을 만져 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기도 합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큰형, 혹은 큰 누나는 나머지 분들과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기철학 연구
이현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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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본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태극도(太極圖)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태극도(太極圖)는 중국 송나라의 주돈희라는 인물이 우주의 근본과 만물이 발전하는 이치를 도해(圖解)로 밝힌 것으로, 태극에서 시작한 우주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오행(五行)을 만물의 원리로 삼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성리학의 우주관은 바로 그 태극도에서 출발하게 되었고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인간성 및 수신의 이치를 다룬 인문학으로 발전 전개된다. 성리학자들은 이론(理論)을 기론(氣論)의 상위 개념으로 인식∙확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성리학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논쟁을 거듭해왔지만(전자의 대표 주자는 퇴계 이황이고 후자의 대표 주자는 율곡 이이이다) 이론(理論)이 중심론(中心論)으로 자리를 잡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거의 기론(氣論)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일련의 이기론을 둘러싼 논쟁의 과정은 조선의 붕당체제와도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동인(東人)들은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서인(西人)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율곡 이이의 문하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만물의 본질을 氣로 파악했던 화담 서경덕과 같은 인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성리학의 이기론이라는 쟁점이 정치, 즉 집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문과 사상(철학)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정치적 사안이었던 것이다.


하여 흥미로운 것은 이기론이 흔히 말하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매우 원초적인 싸움과 다를 바가 없는 형태를 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론(理論)은 승자가 되었고 기론(氣論)은 패자가 된 셈이다. 결국 이론(理論)은 밝은 양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반면, 기론(氣論)은 어두운 음지에서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실정이다. 만물의 시작을 理로 파악하고 개념을 정립한 성리학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못지않게 중요한 氣論을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학문에서 멀어지게 한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 ‘기철학 연구’라는 표제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기론이 그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매우 명료하게 정리해둔 출간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철학 연구의 개념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학자들의 이기론에 대한 주장과 상대론, 조선의 학자들의 주장과 그 상대론을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그러므로 이론과 기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학문 혹은 사상과 정치 혹은 권력과의 역학관계


 이 책은 결국 성리학의 본질에서 기론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성리학을 이기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理論 중심의 학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때, 태극도 라고 하는 같은 뿌리를 둔 학문이 서로 분리되고 상∙하위(上∙下位) 개념을 가지게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뿌리를 둔 원류의 사유가 시대가 흐르고 변화하면서 주체와 객체로 분류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나마 氣論을 아예 성리학에서 도려내지 못한 것은 氣가 理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理를 상위 개념으로 사유하기를 바라는 성리학자들의 주장에서 실제로 氣 없는 理는 존재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론을 철저히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자신들이 가진 사상의 우위 선점은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인 토대가 되어준다.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유자는 제거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언론의 통제와도 그 맥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언론은 어떠했을까...



조선의 백성 전용 언론 창구, 신문고와 격쟁


 조선은 왕이 통치하던 국가였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전제 군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정이라는 쿠데타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 조선이기도 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참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어쨌든 불구하고 혹자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백성들과 매우 원활한 소통을 한 것으로 가르친다. 심지어 오늘 날의 언론 제도와 비교 손색이 없을 정도 였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과연 그랬을까...

 백성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신문고와 격쟁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신문고는 중국 송나라의 ‘등문고’를 모방한 것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 위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일반 백성들이 사용한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비록 대궐 밖 문루에 달아 놓았다고는 하나 주관 부서는 다름아닌 의금부였던 것이다. 의금부는 바로 왕의 직속 기관이다. 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의금부의 힘을 넘어 북을 울릴 수 있었겠는가...

 

 신문고를 울리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지역 담당 관청을 거쳐 사헌부에 먼저 호소해야 했다. 한마디로 사헌부의 허가를 받고 나서도 다시 의금부 담당 관리의 조사를 받은 후 신문고를 울려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 백성들은 더 어려웠다. 지방 거주지의 원에 가서 억울함의 절차를 밟았다는 확인서를 먼저 받아야한다. 다시 도의 관찰사에게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리고 한양의 사헌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로...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 신문고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글을 못 배운 백성들이 과연 서류하나 제대로 작성 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북을 울린 대부분은 서울의 관리들로 토지나 노비의 소유권 다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고 보면 지방 관리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신문고였다. 하물며 힘없는 백성들임에랴.... 사실상 조선의 신문고는 백성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전시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신문고는 폼이나 다름이 없었던 장신구였던 것이다.


신문고가 폐지되고 격쟁이라는 것이 신설되었다. 격쟁은 왕이 궐 밖으로 외출을 하는 찬스를 이용해 징이나 꽹과리로 큰 소리가 나도록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도였다. 왕이 매일 궐 밖로 나가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정말 이것을 진정한 소통의 창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억울하다고 모두 격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격쟁의 내용에도 제약이 따랐다. 그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에서 신문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위해 시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했던 제도로서 그 실용적인 가치를 찾아보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고등부의 교과서에서 조차도 신문고와 격쟁을 일컬어 ‘일반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고 있을까...




식자들과의 소통 창구, 상소


다른 소통의 창구로 조선은 상소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일반 백성이 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관직에 있는 관료나 혹은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 전용으로서 그 형식이 구별되는 제도이다. 상소는 그 내용이 왕에게 바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하여 그 절차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각 고을의 수령이 상소를 받고, 해당 도(道)의 감사에 이를 올린다. 감사는 접수한 상소를 다시 사헌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에 불리한 내용들은 흔히 걸러지기 일쑤였다. 실질적인 상소들은 권력자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하급 관리나 선비들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알려진 바대로 고급 관리들의 직접적인 상소의 비율은 크게 낮았다. 간혹 ‘도부상소’라 하여 도끼를 메고 상소를 올린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소(訴)가 못마땅하면 그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 달라는 결의에 찬 상소였다. 그러나 실제로 상소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의 여론, 삼사

 

흔히 조선의 여론이라 하면 삼사의 중론을 말한다.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라는 삼사의 의견인 것이다. 삼사는 각각 부정 부패등 부정한 관료들을 탄핵하는 기능과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론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백성을 위한 여론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집권층의 공론일 뿐이었다. 백성들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100 여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해준다. 여론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바로 백성으로부터 나와야 진정한 여론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여론은 사실은 권력의 내부에서 돌고 돌았던 것이다.

 

 

조선 학문의 폐쇠성


이러한 조선의 언론 시스템으로 본다면 조선의 언론은 매우 폐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문과 사상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선비 혹은 관료 출신들의 자제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공직자의 가문이 아니면 관리로 나가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일반 백성이라도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논쟁도 그들만의 것이었다. 권력자들의 학문과 사상이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 놔야 하는 위험천만한 짖 이었다. 


이는 성리학의 理論이 그리 쉽게 우위를 선점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결국 理는 氣를 누르고 기득권을 지켜가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氣를 중시했던 학자들은 대부분 실학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실학파이며 경세치용 학파라 부르는 여유당 정약용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화담 서경덕과 율곡 이이를 만날 수 있고 잠곡 김육 그리고 하곡 정제두를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국을 꿈꾸던 실학파들은 백성의 경제활동을 중시했다. 백성의 경제력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실학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조선의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선이 마지막 회생의 찬스를 놓친 것은 바로 정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이 현대 학계에 끼친 영향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어느 정도 인정했던 정조 사후, 조선의 학문과 사상은 유일하게 성리학의 것이 되어버렸다. 공자와 주희는 조선 성리학의 교주나 다름이 없었다. 조선 땅에서 성리학이 교조주의적으로 흐른 탓이다. 마치 이단을 배척하듯이 조선의 유학자들은 여타의 이론(異論)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백성들의 삶에 훨씬 더 접근해있던 양명학은 아예 뿌리조차 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양명학에 대한 현대의 연구가 시원치 못한 상태이다. 신유사옥은 이러한 탄압의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정조는 천주교에 관대한 입장이었으나 정조 사후 노론은 정순왕후를 앞세워 신서파의 숙청을 단행했다. 천주교의 탄압이 곧 신서파를 제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이러한 사상적 환경에서 다양한 학문적 논의는 불가했다. 국지적으로 존재했던 학문적 논쟁은 그마저도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氣論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기득권을 버리며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팔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뀐 현대에도 조선의 폐쇄적인 학문적 환경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과 다른 것들은 무차별 공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계의 환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학계의 환경은 국민의 사유와도 밀접하게 관계한다. 식자들이 출간하는 도서는 곧 국민의 독서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지금껏 理와 분리될 수 없다는 氣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비록 연구가 있다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氣에 대한 올바른 개념도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을까..



사상의 독점이 부르는 비극


氣에 대한 개념의 부재와 인식의 부족은 물리학적 연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氣論은 서양의 물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고 이는 물질과 현상에 대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물리학 연구에서 동양을 압도한 서구는 과학의 힘을 사용해 세계에 커다란 수난을 안겨주었다. 아메리카를 비롯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강력함 힘 앞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다른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상, 즉 생각의 방법론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조선과는 달리 서구는 다양한 학문적 사고를 해왔지만 사상적 배경은 매우 편협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사유를 해왔던 것이다. 결과는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함과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왔다. 비록 학문의 다양성을 확보한 서구였지만 사상이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제각기 사상의 독점적 현상은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도록 했다. 이렇듯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사상은 심각한 문제점과 그 폐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일단 타자를 제압하려는 강제력을 행사하게되고 그 우위를 선점하고 나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주로 부정적인 것이 권력의 법칙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어찌 옳은 것이 하나 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치가 어디 학문과 사상 뿐 이겠는가.. 균형 있는 발전의 중요성은 또한 지역 발전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빈과 부의 차이를 좁혀내는 것도 바람직한 사회상일 것이다. 결국 학문과 사상의 균형 있는 연구와 발전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모든 영역에 깊이 관계하고 있기에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학문과 사상의 올바른 개념을 다수가 공유하고 인식하는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주체인 우리가 인식해야 할 과제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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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오는,

저는 이 두 문장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win-win이라는 개념, 저는 참 좋아요.
게임 중에, 가위바위보를 내서 같이 주먹을 내면 별점 네개, 한 사람만 보를 내면 별점 여덟개, 두사람 모두 보를 내면 별점 0개인 게임있잖아요. 언뜻 생각해서는 둘 다 주먹을 낼거 같은데 잘 그러지 못 하는, 상대에 대한 신뢰 게임이요... 저는 그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신문고나 격쟁의 의도는 좋았으나, 역시나 행하는 제도 상에는 문제가 있었군요.
빛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네요. 음... 요즘 검찰을 보는거 같기도 하구요. ^^

구구절절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7-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의 글에 답을 드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되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요 ㅠ.ㅠ

요즘 독서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다양한 조건들 덕분이지요.
저의 화두는 '독서가 인성에 과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서를 이유있는 깨달음의 수단으로 삼는 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과연 그럴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구요..
단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전히 저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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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을 들으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금주 즐거운 일 가득하셔염!

차트랑 2012-07-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한동안 가물어
촉촉한 여름비로 어려운 처지의 농사에 도움을 주십사하는
마음으로 올린 음악입니다

폭우는 노땡큐~
농산물이 잘 자라도록 그저 필요한 만큼만요...
지난 해는 저의 동네도 수해를 입어
차가 사거리를 둥둥 떠다니고
심지어 가까운 아파트에서는 소중한 인명의 피해도 있었답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