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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망)한 여행 - 망한 여행도 다시 보면 완전한 여행이 될 수 있지
허휘수.서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7월
평점 :
2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처음 읽는 책은 바로!! 여름휴가를 잊고 싶지않는 마음에 선택한 여행에세이 『완전 (망)한 여행』 이다. 이 여행에세이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말 그대로 ‘망한’ 여행이지만, 표지를 잘 보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완전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본디 여행이란, 여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망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한’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이 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있나 싶기도 하고?
이 책은 대략 작년에 리뷰했던 에세이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없지』를 썼던 저자‘들’이 썼다. 고로 저자는 허휘수, 서솔 2명. 두 사람이 경험했던 여행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앞선 책을 읽었을 때는 허휘수님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했더랬다. 해서 이번 여행에세이도 비슷할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정반대였다.
일상적인 경험과 여행 경험은 확실히 달랐다. 전작과 달리 서솔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하게되었다고 해야하나. 반대로 허휘수님 경험에는 약간 ‘왜?’ 라는 물음표가 상시 떠다녔다. 적어도 난 ‘여행’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었을 때, 허휘수님보다는 서솔님 가치관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하나.
아래 에피소드는 허휘수님의 여행경험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했을 법한 가족여행과 친구과 함께한 여행! 홀로 여행이 아닌이상, 타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불편함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평생 여행메이트가 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볼 사이(또는 절대 여행을 같이 안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휘수님 경험은 후자였다.
▶강릉
나의 기대를 깨버린 건 엄마의 무심한 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부터 엄마의 발언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이 집이 하루에 얼마라고? 돈 아깝다.”, “아니 무슨 돈을 그렇게 받으면서 바비큐값을 또 받냐?” 식당을 나오면서는 “해 먹는 게 더 낫네.”,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네.”
평소 같으면 귀여운 투정 정도로 넘겼을 이야기인데 그날 따라 목에 턱턱 걸렸다.
“엄마, 가족여행 시 금지항목이 10개가 있어. 엄마가 숨 쉬듯이 하는 대사거든? 엄나는 여행가서 되도록 말을 줄이길 바라.” 여행 출발 전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재채기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엄마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 날 밤엔 정말 폭발해버렸다. p 070
강릉 여행에서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무심한 듯 따뜻하고 유머를 잃지 않아 재밌지만, 가끔 짜증 나는. 그게 우리 엄마인데. 아마 나에게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래가 불안정해서 고민이 많았고 안정을 느끼고 싶어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안정적일 수 없는데 모순이 가늑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엄마랑 여행은 안 가냐고? 강릉 여행으로부터 2년 반 뒤인 올해 7월, 우리 가족은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 엄마와의 여행을 다시 결심하는 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제발 내가 잘 참아내기를, 2년간 더 성숙해졌기를 바란다. p 076
▶도쿄
가깝게 지내던 친구 Z와 떠나기 만만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Z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이것저것 정보를 찾는 일에 능숙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 통에 도쿄 근처도 가기 전에 질려버렸다. 다 알아봐주는 것이 머리로는 고마웠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질린 나는 어느새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과정이 힘들 뿐 Z가 싫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잘 마치고 싶었다. p 091
특히 여러 아빠들 얼굴에 드리운 지리멸렬함은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이썽ㅆ다. 디즈니? 유치 뽕짝의 향연이며, 가격은 말도 안되게 비싸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정이라고 뒤늦게 한탄했다. 속으로만. 디즈니랜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퇴장로를 걸었다. 낮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나를 위해 Z의 계획보다 이른 시각에 숙소로 향했다. 도쿄 이틀 차, 몸살이 났다. 아픈 나를 위해 Z는 하루를 간호에 할애했다. 혼자라도 나갔다 오라는 말에 Z는 내 옆을 지켰다. 고마웠지만 불편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Z와 멀어졌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다. p 093
나는 단 한번도 Z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었다. 그런데도 Z의 여행제안을 덥석 받아버린 건 내가 나에게 무지하고 무심했던 탓이다. 취향을 모르는 여행자, 다시 말해 줏대없고 우유부단한 여행자에게 즐겁도 딱 맞는 여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 094
요즘 자녀들은 가족여행시 부모님께 “ㅇㅇ하기 금지”라는 금기사항을 사전에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금기사항은 생각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왜 이런 금기사항이 유행하는지 이해못하는 부모라면 더더욱. 여기서 1차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이를 대처하는 자녀 입장에서 부모를 이해하고 넘어가면 1차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만,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져버리고 만다. 이런 경험은 비단 저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겪어보았고, 가족여행을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겪어봤을테다. 다만 이런 경험이 있은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나도 부모님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부모님은 “ㅇㅇ하기 금지”에 해당되는 금기사항을 내뱉은 적이 없다. 최근에도 없었고, 근 10년간 부모님과 여행을 떠올렸을 때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과 처음 여행을 갔던 어느 날. 분명 나와 부모님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다.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모님과 나는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니까. 다만 나는 성격상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한다. 물론 여행하고 있는 때에는 오로지 즐거운 여행만 생각하고 싶기에 가볍게 넘어갈 뿐이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어쩌고저쩌고블라블라미주알고주알” 쏟아낼뿐.
이렇게 갈등이 ‘처음’ 발생했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서로 고쳐나가고자 대화를 한다면 이후 가족 여행은 그야말로 ‘해피’하다. 물론 부모님에 따라 이해해주지 않거나,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은 부모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부모님은 갈등을 잘 해결했고, 이후로 가족 여행은 언제나 해피 그자체다. 일단 내가 가족 여행을 계획함에 앞서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게 ‘부모님 취향’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언제든지 Call을 외치며 달려나온다.
친구와의 여행도 그렇다. 가족여행은 그렇다치더라도, 친구와 여행은 독자입장에서 휘수님을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적어도 글 전반적으로 친구 Z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했다. 특히 글 에서 보여지는 저자를 향한 Z의 배려를 보면 볼수록. 분명 이 글은 저자가 썼기에, 저자의 행동이 더 미화되어있을 확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드는걸 보면, Z는 저자를 위해 많은 여행 내 많은 배려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깨닫게 된 여행 취향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변명만으로는, 너무 아쉽다.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취향이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제일 중요하다.
▶캄보디아 씨엠립
그때부터 가이드는 우리 가족을 차별하기 시작헀다. 관광지에서 아빠의 질문만 못 들은척하며 대답하지 않는가 하면, 귀국하자마자 있을 언니의 이사문제로 가족들끼리 급히 상의할 일이 있어 ‘선택 관광’이었던 서커스 쇼를 보지 않겠다고 하자 화를 냈다. 가이드는 우리가족에게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할거면 패키지를 왜 왔냐’며, 선택관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에게 돌아오는 수입이 줄어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p 083
물론 이 일화로 패키지 여행을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조금 특이한 가이들르 만났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직항 비행기표가 없었기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없다. 그게 아니었다면 갈 수도 없었던 여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움보다 억울함이 더 컸던 여행이었지만, 아빠의 오랜 소망을 실혔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그때 찍은 가족사진인 걸 보면, 가이드의 몽니도 아빠에겐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p 084
▶체코 프라하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그를 ‘중국인’이라고 단정짓고 느낀 불편함이 정당한 일이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만 했다. 4시간 동안 나에게 공포심을 밀어 넣은 것은 ‘우한 폐렴’인가, ‘나의 편견’인가?
동양인으로 태어나 서양 국가를 여행할 때마다 인종 차별적인 눈짓만으로도 분노하는 내가, 중국어 한마디에 내면으로부터의 차별과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를 보며 ‘바이러스’를 외치던 유럽인과 중국인을 계속해서 불편해하던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다른 선상에 있는 것일까? p 133
위 에피소드는 서솔님 여행 경험이다. 패키지 여행, 해외 여행시 인종차별. 이 역시 여행할 때, 특히 해외여행 할 때 한번 씩은 겪었을 법한 경험담이다.
패키지 여행 시 ‘선택 상품’에 대한 강제는 문제가 있는 요소로, 몇번 사회적 이슈가 된 적도 있다.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슈로 해외여행까지 급감!그래서 그런가? 여행업체에서는 가이드 강제를 제제하기 위하 여러 자구책을 내놓았고, 실제로 예전에 비하면 선택상품 강제하는 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완전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없지만, 해외 여행 시 1일 버스투어 형식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있다. 1일 버스투어 였지만 그 안에도 ‘선택 상품’이 있었는데, 해당 상품을 이용하지 않아도 가이드는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선택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동안 가서 구경하면 좋을 장소를 여러군데 추천해주었다. 얼마나 친절하던지! 그때 알았다. 패키지 여행은 가이드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인종차별! 해외여행을 하면, 특히 서양권 국가를 여행할 때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문제 중 하나다. 다만 이런건 우리를 ‘피해자’ 입장으로 봤을 때다. 잘 생각해보자. 내가 누군가를 향해 인종차별을 했던 ‘가해자’였던 적은 없었는지를. 제일 가깝게는 코로나가 ‘우한 폐렴’으로 불렸을 당시, 중국인을 향한 인종차별.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다문화 가정을 향한 은근한 차별. 저자 서솔님처럼 ‘나의 편견’으로 알게모르게, 인종차별 가해자가 되었던 적,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인 나를 향해 하는 인종차별과 내 ‘편견’으로 알게 모르게 내가 한 인종차별. 둘 다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에 부당함을 말하기 앞서, 내 행동을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여행은 ‘망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했던 여행도 아니었지만, 각자의 마음에 인상 깊은 풍경은 물론 작은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이 사실들로 미루어 보자면, 이 여행을 ‘완전한 여행’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개고생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여행의 매력이다. p 085
책을 구경하러 간 행사였지만, 나는 또 다른 것을 한 아름 얻어 돌아왔다. 여행이라는 건 언제나 그런 것 같다. 기대했던 것에 실망해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그것을 기억 한편에 잘 저장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좋은 창고를 만들어 오는 것. 프랑크푸르트에서 느낀 찰나의 깨달음 역시 그 창고 안에 잘 수납되어 중요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p 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