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 나만의 취향으로 가꾸는 작은 공간
지은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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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취향’ 뜻을 찾아보면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바로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왜? 자신의 취향을 바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본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바로 대답한다. 그 누군가는 연예인, 가족, 친구 등 모두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는 모순을 안고 있다. 타인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를 추천하고 싶다.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취향’ 덕분에 금방 회복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취향은 본인이 하고 싶은 무언가(또는 좋아하는) 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하다보면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취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하고 잠든다는 게 억울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오기를 부리며 매일 늦게까지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고, 아침이면 피곤해서 오늘은 진짜 진짜 일찍 잘 거라고 울먹이며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점점 흐려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자기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p 026


차오르는 감정을 다 쏟아 내고 싶은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 앱을 연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소리를 뭉뚱그리지 않고 직시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마음을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에 계속 썼다. 하루는 마음이 울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쓰면서 풀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내 머릿속 생각을 씀으로써 나와 떼어 놓을 수 있다는 건 나만의 피난처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p 047


현재 ‘취향껏 살고 있다’는 저자는 처음부터 취향이 확고했을까? 아니다. 저자도 그랬다.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훌훌 털어내지 못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뭘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지 몰랐던거다. 그래서 주저 앉았고, 치열하게 고민해고, 찾아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힘든 상황에서도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이 정도면 괜찮다’와 ‘여기라서 행복하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나의 돌파구가 이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p 112


저자가 찾아낸 자신의 취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 한마디로 살고 있는 집 인테리어다. 마음속 여유가 없을 때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인테리어! 저자는 인테리어를 하며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세이 곳곳에 멋진 사진으로 실려있다. 흡사 ‘오늘의 Home’에서나 볼법한 멋진 인테리어 사진들. 저렇게 멋진 집으로 꾸며낼 수 있었던 건, 저자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취향’을 물어보면 즉답할 정도로,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비교적 빠르게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안으로 눌러담고 있다. 언젠간 이마저도 무뎌질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요하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잠시 할 일로부터 떨어져 말랑해질 시간이 꼭 필요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도, 오지 않는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에 머물렀다. (…) 한때는 그런줄 모르고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수없이 자책했다.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나에게 시간을 쥐여 주려고 노력한다. p 153


아이들은 세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경험하는 것투성이라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워 나간다. 누구에게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 때의 마음을 쉽게 잊곤 한다. 여러 번 해 본일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려 어린 시절에 무엇을 좋아했는 지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나 역시 세상이 놀이터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거 간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바쁘다는 걸 위안 삼아 살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p 170




에세이 『취향껏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견디기 버거워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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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 몰락의 시대 - 진실을 밝혀내는 박종인의 역사 전쟁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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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기자님의 역사책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책 오자마자 바로 읽고 리뷰쓰고 그랬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이다보니 책 읽는 것도 한 나절, 포스팅도 한 나절이다. 일단 1권 다 읽었으므로! 1권만 빠르게 리뷰하자면, 아니 근데 이 책을 빠르게 리뷰하는게 맞나 싶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곱씹어서 읽어야 하는 역사책인데! 대신 교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공무원 시험을 앞둔 수험자들은 당장 이 책을 읽으면 안된다. 왜? 이 책은 기자님 말마따나 불온한 역사서니까.



이 책 제목은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이다. 부제는 ‘이거 보고 공부하면 시험 다 떨어지는’ 근대사 강좌다. 그런데 대학 합격, 공무원 수험 시험에 합격한 다음에는 꼭 읽어라. 그래야 똑바른 대학생이 되고 나라를 생각하는 경찰과 공무원으로 살 수 있다. 그때는 시험에 붙으려고 외웠던 교과서 속 역사는 다 잊어버려도 좋다. 아니 잊어버려라.p 005 서문 中




서문에서 훅 들어온 경고! 당장 대학이나 공무원 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절대 읽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혹자는 역사를 왜곡했나? 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겠으나, 대답은 NO다. 오히려 이 역사책은 왜곡과는 동 떨어진, 진실만은 이야기하는 책이니까. 고로 수험생들이 보는 교과서에 있는 진실도 분명히 이 책 속에 있다. 다만, 교과서에 없는 진실‘도’ 담겨 있다는게 문제다. 교과서에서 삭제된 역사,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 아니? 왜곡도 아니고 분명한 사실인데 왜 교과서에는 없다는 말인가? 아래 내용을 보자.​




1.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있는데 ‘최초의 국한문 혼용 신문을 만든 사람은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라는 말은 없다.

2. ‘문예부흥을 일으킨 위대한 군주 정조’라고 적혀 있는데, 그 정조라는 인물이 ‘성리학 이외 학문은 철저하게 탄압하고 사상 검열을 한 지식 독재자였다’는 사실은 없다.

3. 청일전쟁 때 “철수하겠다”는 일본군을 고종이 소매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는 사실은 적혀있지 않다.

4. ‘명성왕후를 간악한 일본인이 잔혹하게 죽였다’는 있고 ‘동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민비 암사를 시도했다’는 없다.

5. ‘고종이 헤이그밀사를 파견했다’는 있는데 이보다 10년 전 고종이 민영환을 러시아에 보내서 ‘조선은 러시아 보호국이 되기를 원한다’고 애원한 사실은 없다.

6. ‘을사조약을 고종이 결사반대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을사조약 직전 고종이 일본 공사 하야시로부터 뇌물 수수’라는 사실은 없다.

7. ‘고종이 조약체결을 두고 이토 히로부미와 담판을 벌였다’라고는 적혀 있는데, 정작 조약 체결 뒤 ‘고종이 “절대 돌아가지 말고 나를 위해 일해달라”고 이토 히로부미 소매를 붙들고 늘어진 사실’은 적혀 있지 않다.




위 문장들은 전부 진실이다. 다만 각 문장의 앞 내용은 국사책에서 많이 본 내용이고, 뒷 내용은 초면일 것이다. 왜? 우리는 언제나 모든 문장의 앞 내용만 배웠기 때문이다. 왜? 문장의 앞 내용만 공부하면 한글을 창제하고 문예를 부흥했던 찬란한 조선을 간악무도한 일본이 침략했다라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문장의 뒷 내용까지 같이 공부하면 배움이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무자비하게 쳐들어오며 시작된 전쟁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사실이 있다. 임란이 일어나기 전 명종때 조선에 이미 조총이 들어왔다. 심지어 대마도인은 원하면 조총기술을 전수하겠다고 했다. 거기다 대마도와 류큐에서 일본이 조선으로 쳐들어올것 같다는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백년 평화에 찌든 조선과 위정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전쟁. 하지만 우리는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쳐들어왔다는 것만 배웠을 뿐, 뒷 내용은 배우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임진/정유재란 7년 전쟁은 오로지 간악한 일본인 탓이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뒷 내용까지 배우게 되면 여기에 무능력한 조선 위정자들의 책임도 들어간다. 찬란한 선비의 나라 조선에 오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다. 조선은 사실 세계와 교류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번째 병자호란 이후 청에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들어왔을 때, 두번째 하멜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세 번째 천주교(서학)이 퍼졌을 때, 네번째 제너럴 셔먼호가 강화도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조선은 세계와 교류하고, 자발적인 근대화를 할 수 있는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기회는 매번 조선의 왕과 양반들이 반기지 않았다. 반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라 문을 꽁꽁 걸어 잠궜다. 



만약 이 네 번의 기회 중 한번이라도 조선의 왕이, 양반들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백성들을 생각했다면, 우리 근대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도 없었을 것이며, 당연히 이념논쟁과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슬픈 가정이지만. 



이제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1 - 몰락의 시대』를 살펴보자. 1권은 영정조 시대부터 고종시대까지를 다룬다. 리뷰에선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영조, 정조시대. 정말 ‘르네상스’ 였는지, 그 속살만 살짝 벗겨보고자 한다.




숙종이 망하고 사라진 명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숙종의 아들 영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갔다. 중원 문화가 오랑캐에 의해 파괴되었으니, 중원을 조선이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그 날이 1749년 5월 9일이다. 이때부터 조선은 명나라 계승국, 소위 황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1776년 4월 22일, 영조가 죽자 정조가 즉위했다. 어떻게? 청나라 황제에게 허가 칙령을 받아서.



술을 금하고 사치를 금함으로써 영조시대 50년은 마진을 남길 상품 생산이 금지되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고급 생산기술 개발 작업도 정지돼버렸습니다. 영조는 왕실 비단 생산을 금지시킵니다. 금실로 수놓은 비단 옷감도 금지됐습니다. 왕실에서 비단을 생산하는 기계 문직기를 아예 폐기해버립니다. 무늬비단 제조 기술은 조선이 망할 때 까지 복원되지 못합니다. 여자들은 화려한 가체를 버리고 족두리를 써야했습니다. 가체 금지령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조치였는지 결국 7년 뒤에 해제합니다. (…) 값비싼 청화안료를 쓰는 청화백자를 금지하고 질 낮은 철화백자만 생산하라고 명합니다. 금주령도 강화합니다. 앞으로 제사상에 술대신 예주를 올리라 합니다. 예주는 식혜입니다. (…) 영조는 국정지표 이행 여부를 점검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면 신하들과 차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차 이름은 ‘송절차’ 입니다. 그런데 이 차를 마시면 영조는 늘 취해버렸다고 합니다. 이름만 차 였고 실제로는 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p 028~029



각종 산업을 막고, 경제행위조차 막아버린 결과 조선은 가난해졌다. 얼마나 가난해졌는가? 어사 박문수가 청나라 밀수 어선 단속을 위한 군함을 조성한다고 하니 돈 없다고 짤렸다. 가까웠던 과거에 호란이 있었고,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면 왜란이 있었던 나라에서 말이다. 가난해지기만 했느냐? 아니다. 지성도 없었다. 조선은 서점이 없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했는데, 책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책을 구했는가? ‘책쾌’라는 책장사치를 통해서 구했다. 영조는 책쾌 금지령을 내렸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새로운 지식까지 얻을 수 없게 막아버렸다. 



비단 영조만 그랬는가? 아니다. 정조도 그랬다. 아니, 정조는 영조와 조금 달랐다. 새로운 지식을 들여오돼, 정조 본인이 독점했다. 독점한 지식을 꽁꽁 숨겼다가, 필요한 범위에 한해서 신하들에게 찔끔찔끔 알려주었다. 



정조는 4품 이하 당하관에게만 호박 갓끈을 일체 금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이라는 공동체에서 사치 풍조가 만연했다고 하는 계층은 ‘신분이 낮은’ 계층에 한정돼 있습니다. 당상고나 이상에게는 이 ‘사치’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여자들은 사치를 명목으로 한 겹 더 심한 차별과 규제에 얽매입니다. 재질이 뭐가 됐든 남자들은 갓끈을 맬 권리를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가체가 아예 금지되고, 아무런 장식 없이 허연 족두리만으로 미모를 자랑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p 071~072



지도자가 권력과 지식을 독점했다. 백성에게는 사치를 규제하다는 미명하에 모든 경제활동을 막아버렸다.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 영조의 금주령에는 본인은 제외였고, 정조가 말하는 사치 규제는 신분이 낮은 계층과 조선 여자 전원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조선 르네상스의 속살이다. 



이렇게 조선을 빈국이 되어가고 있을 때, 바다건너 영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국에선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하여 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의 원칙을 발견했다. 영국은 과학이 발전하고 있었고, 과학이 발전하자 자연스레 상업도 발전하며 결국엔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냈다. 그 옆나라 프랑스는 어땠는가?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다. 시민 동의 없는 세금 징수는 불가하다며,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조선에서는 생각치도 못할 일이다. 왜? 출판, 인쇄, 독서의 자유가 보장된 유럽과 달리 조선에선 그 모든게 불법이었으니까. 어쩌다 책쾌에게 책을 사서 읽다가 걸리면 바로 사형이었으므로.



8년 전 《북학의》에 부국강병책을 쏟아부었던 검서관 박제가가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습니다. 박제가가 올린 병오소회는 이러합니다.


‘지금 나라의 큰 폐단은 가난이다. 다른 나라는 사치로 인하여 망한다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하여 쇠퇴할 것이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비단 짜는 기계가 없다. 여인들은 일이 끊겼다.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시키지 않은 말을 타고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밥을 먹고 진흙더미 집에서 지내니 온갖 제조업이 끊겼다. ‘세상이 나빠져서 백성이 가난하다’고 하는데, 이는 나라가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p 062 



정조가 아끼던(?) 북학파에선 여러 개혁안을 올렸다. 위 내용은 북학파로 유명한 박제가가 쓴 개혁안 중 일부다. 북학파가 올린 개혁안은 대체로 중국과 통상하고, 서양인에게 기술을 받고, 상업을 장려하자 였다. 하지만 정조는 이런 개혁안들을 모두 거절했다. 외려 북학파와 다른 개혁안들을 채택했다. 중국인과 왕래금지, 이단 서적 수입 금지 같은 폐쇄적인 개혁안을. 그와 함께 당시 들어오던 서학(천주교)를 핍박&학살하고, 성리학 외의 학문은 모조리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이른바 조선판 분서갱유, 문체반정이다.



조선의 르네상스의 속살이다. 슬프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조가 직접 선택한 며느리는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이다. 심지어 정조는 김조순을 순조 옆에 찰싹 붙여놓고 죽었다. 조선 백성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안좋아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더 안좋다 못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김조순을 필두로 한 세도정치 시작이다. 백성들이 죽지 못해 살던 세도정치가 끝났다 싶었더니, 이번엔 여흥 민씨들이 세도정치 때보다 더한 패악질을 시작한다. 서글프게도 이게 바로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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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셀프트래블 - 기타큐슈·벳푸·유후인, 2024-2025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수정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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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 셀프트래블 시리즈 신간이 나왔다. 이번엔 일본 후쿠오카 편!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을 즐겨했던 지라, 신간이 너무 반갑다. 왜? 지금은 육아로 인해 일본여행을 못.......하^_T. 그래도 내년 이맘땐 우리 뿡뿡이와 함께 일본에 있을거니까^^ 그걸 목표로 여행적금도 들어놨고!!


뿡뿡이와 일본 여행을 가게 된다면 후쿠오카 or 오키나와를 생각중이나, 아무래도 가본 곳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후쿠오카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후쿠오카 여행책이 내 손에 딱! 이거슨 필시 후쿠오카 여행을 가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갔던 시기는 2019년 4월이었다. 동행자는 신랑과 친정부모님. 그렇다.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 난 워낙 부모님 모시고 여행을 자주 다녔었고, 부모님 모시고 일본 여행도 처음이 아니었기에 여행은 내내 즐거웠다는 스아실! 무엇보다 난 파워 계획형에, 융통성 오조오억개에다가, 관관통역사(일본어) 면허를 소지한 일본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것!



어머! 여긴 꼭 가야 해 !!
 
 
▶ 후쿠오카 대표 명소 베스트 8
1. 하카타역: 유후인, 벳푸, 나가사키 등 규슈 곳곳으로 향하는 다양한 열차가 오가는 역, 하지만 단순한 기차역이라기보단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결합된 복합쇼핑센터다.
2. 커낼시티 하카타: 여행 목적이 쇼핑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필수 코스. 건물 중앙엔 180m의 인공운하가 만들어져 있으며 중앙 무대에선 다양한 문화이벤트가 열린다.
3. 텐진: 후쿠오카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후쿠오카의 최신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텐진역 주변의 상점을 둘러보자.
4. 나카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카스강을 따라 알록달록한 포장마차 ‘야타이’가 하나둘 나타난다.
5. 오호리 공원: 후우오카의 오아시스. 거대한 호수를 중심으로 일본정원과 후쿠오카 성터를 산책할 수 있다.
6. 후쿠오카 타워: 해변가에 자리잡은 일본 타워 중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7.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는 자연친화적 공원이다.
8. 다자이후: 1,300년 전부터 규슈를 관할하던 관청이 있던 곳으로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인 ‘다자이후 텐만구’, 일본 4대 박물관으로 알려진 ‘규슈 국립박물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고묘젠지’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 후쿠오카 근교 명소 베스트 5 
1. 벳푸 지옥온천: 뜨거운 증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무시무시한 지옥을 닮았다고 해서 지옥온천이라 불린다. 에메랄드빛 바다 같기도 하고 새빨간 핏물 같기도 한 일곱 가지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온천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2. 모지코 레트로: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JR 모지코역. 아인슈타인 박사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숙박했다는 모지 미츠이 클럽. 오렌지색 팔각탑이 아름다운 오사카 상선 건물 등 메이지시대부터 쇼와시대까지 번성했던 모지코의 과거 건물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3. 코구라성: 에도시대 초기 건축물로 1608년에 완공되었다. 성 내부에는 고쿠라성과 기타큐슈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최상층인 5층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고쿠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따.
4. 하우스텐보스: 커다란 풍차와 색색의 튤립이 가득한 정원까지. 중세 네덜란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일본의 3대 테마파크 중 한 곳이다.
5. 긴린코: 후쿠오카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이동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을 대표하는 명소다. 호수 바닥에서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온천수가 솟아나고 있다.


셀프트래블 후쿠오카에서 말하는 명소는 어지간해선 한 두 군데는 꼭 가보자. 아니 가볼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특히 대표명소는. 왜? 후쿠오카 도심 관광지는 하카타역과 텐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안갈래야 안갈 수가 없게 되어있는 그런 구조랄까? 보통 숙소(호텔)나 쇼핑몰도 하카타, 텐진 주변에 많다보니 더욱 그렇다. 내가갔던 호텔도 텐진에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하카타역 보단 텐진을 추천!! 나카스강, 텐진중앙공원이 바로 옆에 있어서 낮에 산책하기 딱 좋고, 밤에는 야타이(포장마차)가 우루루 나타나서 구경하고 현지인 체험하기도 최고다.



이번엔 후쿠오카 먹거리 편! 
후쿠오카! 바로 먹방여행의 성지다. 왜? 돼지 뼈를 진하게 우려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맛는 돈코쓰 라멘. 돈코쓰 라멘이 시작된 곳이 바로 후쿠오카다. 그 유명한 이치란 라멘 본점이 바로 이 곳에 있다. 일명 곱창전골(!)인 모츠나베도 후쿠오카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뿐만인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이 후쿠오카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명란젓은, 지금은 일본인 밥도둑 멘타이코가 되었다. 

돈코쓰 라멘, 모츠나베, 멘타이코. 모두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당시 꼭 먹고 말리라! 생각했던 음식들이다. 그리고 전부 먹고왔다♡ 위 세 음식에 더해 호르몬 정식까지! 역시 후쿠오카는 먹방 여행의 성지!!! 



하우스 텐보스
한창 일본 여행을 다니던 n년 동안, 굳이 일본 테마파크를 왜 가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 테마파크도 뒤지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음.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알겠다. 가야돼... 외국 여행을 가면 꼭 그나라 테마파크를 가야해... 고로 우리 뿡뿡이와 후쿠오카를 가게되면 나는 무조건!!! 하우스텐보스는 필수다. 숙소도 하우스텐보스 안에 있는 호텔을 이용할거야!!!!!!


중세시대 네덜란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형 테마파크로 규모나 시설, 만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의 3대 테마파크로 불리는 곳이다. 파크 사이사이로 로맨틱한 운하가 흐르며 운하를 따라 멋스러운 유럽식 건축물들이 줄을 잇는다. 봄이면 플라워 로드에 튤립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지며 여름엔 파크 곳곳에서 시원한 물 폭탄이 터진다. 가을에는 핼러윈 축제, 겨울엔 크리스마스 축제까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한다. p 054 (시즌별 특별공연, 각종 어트랙션, 어드벤쳐 파크, 크루즈 등)



여기서부턴 내 추억여행이 가미된(?)
후쿠오카 여행 이야기



1. 도심: 하카타, 텐진
후쿠오카 여행 시작은 명실공히 하카타, 텐진 도심여행이다. 내가 다녀온 곳은 (식당 제외)하카타역과 텐진역은 기본으로 찍고 하카타 아사히 맥주공장, 나카스강변(+영빈관), 텐진공원, 스미요시 신사, 라쿠스이엔, 오호리 공원(+후쿠오카 성터) 이다. 그때가 겹벚꽃이 한창이던 시기다보니, 나카스 강변과 텐진공원, 오호리공원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텐진공원에서 자그마한 지역 축제가 열려서, 열씸히 구경하고! 무엇보다. 부모님 동반 여행이었기에 일부러 자연친화적(?)인 곳을 찾아다닌 면도 있다. 

물론 하카타 아사히 맥주공장은 예외ㅋ. 일본을 가면 꼭 그 곳에 있는 맥주공장을 가야하는 그런게(?) 있다보니, 이건 순전히 내 사심이 오백프로 반영되었던 여행지다. 다만 그때는 사전 예약을 해야만 관람가능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고....?


2. 외곽1: 다자이후, 유후인, 벳푸
렌트카를 이용한 여행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후쿠오카는 처음이었던 나. 신랑과 둘이서 일본을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해서 외곽여행도 자주 했는데 후쿠오카 만큼은 조금 어려웠다. 차마 부모님 모시고 저~~ 멀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쿠루쿠루 버스’ 예약이었다. 일종의 당일치기 패키지 상품이랄까? 결과적으로 대 성공이었던!

역사더쿠로서 다자이후는 내가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유후인과 벳푸는 부모님께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었다. 당시 쿠루쿠루버스 노선에 다자이후, 유후인, 벳푸 세 곳을 하루에 갈 수 있는 노선이 있었던건 나에겐 정말 천운이었던 셈. 

물론 패키지다보니 시간적 제약은 있었다. 예컨데 난 다자이후에서 다자이후 텐만궁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미즈키 유적을 꼭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건 답사를 목적으로 신랑과 둘이 왔을때나 가능한 목적지^_T. 패키지 여행에선 다자이후 텐만쿵이 고작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이었으니까. 

쿠루쿠루 버스가 아니었으면 힘들게 대중교통 이용해야했을 유후인과 벳푸도 편하게 왔으니 얼마나 좋던지. 유후인 긴린코 호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벳푸 지옥온천 규모에는 다른 의미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내가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지가 벌써 5년이나 지났다니. 요즘 강산은 5년 마다 한번 씩 변한다던데? 그래서 이 책에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구나!! 새로운걸 보니 더더 후쿠오카 여행을 가고 싶고. 하.... 뿡뿡이 얼른 크자 ㅠㅠㅠ 엄마 손잡고 후쿠오카 가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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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힐링하우스 - 내가 만난 고양이, 나를 만난 고양이
박미아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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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색다른 에세이를 읽었다. 언뜻 보면 일상 에세이? 포토 에세이? 근데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간다. 바로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에 바로 그 ‘고양이’다.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가 없기에, 어쩜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아, 나도 고양이...T_T” 하며 읽게 된 에세이였다.




에세이 『미아 힐링하우스』는 저자 박미아가 전원주택 생활하며 만난 고양이들과 인연을 기록한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와 고양이들과 인연은 8년이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 





우리 집에 왜 왔니

2015년, 단순히 ‘내 땅’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보니 내 땅인 줄로만 알았던 주택 마당에 고양이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마당에 자신의 영역표시를 하고, 서로 서열 싸움도 했다. 고양이들을 마당에서 쫓아내려 많은 시도도 해보았지만, 떠날 마음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2016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엄마 고양이 하나가 어디선가 새끼를 낳아 내 마당으로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와 고양이들과의 영역 싸움은 ‘공생’의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기 고양이들의 이름을 짓고, 밥과 물을 챙겨 주는 집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캣 맘”이라 불렀다. p017



전원주택에 고양이와 공존하는 생활. 고양이에 한참 빠져있던 그 때, 내가 엄청 원했던 삶이다. 물론 한참 뒤, 전혀 다른 식집사생활을 하게 되며(?) 전원주택 생활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저 대리만족하기로 결정했지만. 근데 이제 마냥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게, 우리 뿡뿡이 초등학교 입학 전 쯤에 전원주택 월세살기를 생각하고 있기에! 어쩌면 대리만족하던 이 삶을 내가 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 ..은 TMI 여기까지!



이 책에는 저자가 8년간 만난 수많은 고양이들의 족보를 시작으로, 모든 고양이들과 인연이 하나하나 남겨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저자가 직접 고양이를 입양한게 아닌, 고양이들이 저자를 간택했다는 것!! 스스로 저자가 사는 전원주택 마당으로 하나 둘 들어오다가, 아예 터를 잡아버린 것이다.




밤톨이와 점점 더 친해지던 어느 날, 밤톨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임신한 밤톨이에게 약속했다.
“걱정하지마, 너의 아기 고양이들은 내가 돌봐 줄게.”
그 약속으로 나는 ‘캣 맘’이 되었고, 밤톨이의 세 번의 출산으로 태어난 모든 새끼들을 돌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양이에 관해 조금은 무지했기에 할 수 있던 약속이었다. p 033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주며 공존을 선택한 저자는 그렇게 캣 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캣 맘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일부 몰상식한 캣 맘들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도 많았다. 고양이를 위한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보이는 건 좋은데, 꼭!! 부적절한 행동까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사례는 굳이 언급 안하는 걸로). 


근데 저자는 그야말로 존경받을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늬만 캣맘이 아닌, ‘자기 소유’의 공간을 고양이에게 내어준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본인의 공간에서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기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 저저야말로 진정한 캣 맘이었다.



종종 고양이들이 공동육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양이들끼리 서로의 새끼를 함께 돌보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배울 모습들이 많다. p 071

고양이들도 가장 좋아했던 친구가 갑자기 떠나면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는 것 같다. 카페는 자신을 키워 주고 같이 자던 레오 형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떤 짐작을 하는지 모르겠다. 먼저 별이 된 레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 p 121

고양이들도 가끔 우울해하는 시기가 있다. 라떼도 그런 시기들이 있다. 온전하게 혼자 사랑받고 싶은 라떼는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잘 알기 전에는 고양이가 독립적이고, 사랑을 많이 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p 132



저자가 기록한 마당냥이들의 면면을 보자면 그야말로 애교넘치는 냥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냥이는 절대 곁을 안주는 냥이도 있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른 성격을 가진 냥이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놀랍고 신기했다. 그럴수록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에게 마당을 내어준 저자가 존경을 넘어서,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같은 속세에 찌든 사람은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모습. 고양이를 얼만큼 좋아하면,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캣 맘이란 …
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
냥이들을 “애기야~” 라고 부르는 사람
냥이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사람
냥이들의 눈빛만 봐도 아픈 줄 아는 사람
손등과 팔에 늘 상처가 있는 사람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 p 143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쇼리가 3일 내내 비가 오던 마지막날 나를 찾아왔다. 다리에는 뼈만 남아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스스로 알고 찾아온 것일까…. 쇼리는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듯 내 옆에 편안하게 누웠다. 그렇게 마지막이 되어셔야 쇼리를 만져볼 수 있었다. 캣 맘으로 지낸 8년 동안 많은 고양이가 별이 되기 전이면 집으로 찾아와 마지막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내가 고양이들을 돌보며 그들을 살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는 것이다. p 161


온도에 예민한 고양이들이 폭설과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을 스스로 이겨 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나도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던 8년 전만 해도 동물들이 스스로 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물과 사료를 공급해 주어도 겨울이 지나면 많은 고양이가 면역력이 떨어져 별이 되었다. 이후 미아 힐링 하우스 집 안에 들어오기 원하는 냥이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p 195


2022년 11월부터 미아 힐링하우스 고양이 식구들은 집 안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다. 긴 겨울밤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온 냥이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하지 않은 식사와 따듯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모든 고양이가 집 안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집 밖 마당에서 겨울을 견디는 냥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그들의 선택에 맡긴다. 바깥 고양이들이 따듯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통조림을 벽난로에 데운다.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자주 줘야 한다. 나와 반려견 할리, 고양이들은 힘들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밖으로 나갈 봄을 기다린다. p 197


 



 
미아 힐링하우스를 찾아온 고양이들은 저자의 마음을 아는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곁을 주지 않는 길냥이가 스스로 자신을 돌봐달라고, 내 새끼들을 지켜달라고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이런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리고 무늬만 ‘캣맘’을 따라하는 그들까지. 고양이를 진정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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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망)한 여행 - 망한 여행도 다시 보면 완전한 여행이 될 수 있지
허휘수.서솔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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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처음 읽는 책은 바로!! 여름휴가를 잊고 싶지않는 마음에 선택한 여행에세이 『완전 (망)한 여행』 이다. 이 여행에세이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말 그대로 ‘망한’ 여행이지만, 표지를 잘 보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완전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본디 여행이란, 여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망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한’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이 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있나 싶기도 하고?



이 책은 대략 작년에 리뷰했던 에세이 『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없지』를 썼던 저자‘들’이 썼다. 고로 저자는 허휘수, 서솔 2명. 두 사람이 경험했던 여행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앞선 책을 읽었을 때는 허휘수님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했더랬다. 해서 이번 여행에세이도 비슷할거라 생각했는데, 왠걸? 정반대였다.


일상적인 경험과 여행 경험은 확실히 달랐다. 전작과 달리 서솔님 경험에 많은 공감을 하게되었다고 해야하나. 반대로 허휘수님 경험에는 약간 ‘왜?’ 라는 물음표가 상시 떠다녔다. 적어도 난 ‘여행’이라는 주제로 책을 읽었을 때, 허휘수님보다는 서솔님 가치관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하나.



아래 에피소드는 허휘수님의 여행경험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했을 법한 가족여행과 친구과 함께한 여행! 홀로 여행이 아닌이상, 타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불편함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평생 여행메이트가 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볼 사이(또는 절대 여행을 같이 안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휘수님 경험은 후자였다. 



▶강릉

나의 기대를 깨버린 건 엄마의 무심한 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부터 엄마의 발언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이 집이 하루에 얼마라고? 돈 아깝다.”, “아니 무슨 돈을 그렇게 받으면서 바비큐값을 또 받냐?” 식당을 나오면서는 “해 먹는 게 더 낫네.”,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네.”

평소 같으면 귀여운 투정 정도로 넘겼을 이야기인데 그날 따라 목에 턱턱 걸렸다. 

“엄마, 가족여행 시 금지항목이 10개가 있어. 엄마가 숨 쉬듯이 하는 대사거든? 엄나는 여행가서 되도록 말을 줄이길 바라.” 여행 출발 전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재채기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엄마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 날 밤엔 정말 폭발해버렸다. p 070

강릉 여행에서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무심한 듯 따뜻하고 유머를 잃지 않아 재밌지만, 가끔 짜증 나는. 그게 우리 엄마인데. 아마 나에게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미래가 불안정해서 고민이 많았고 안정을 느끼고 싶어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안정적일 수 없는데 모순이 가늑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엄마랑 여행은 안 가냐고? 강릉 여행으로부터 2년 반 뒤인 올해 7월, 우리 가족은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 엄마와의 여행을 다시 결심하는 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제발 내가 잘 참아내기를, 2년간 더 성숙해졌기를 바란다. p 076


▶도쿄

가깝게 지내던 친구 Z와 떠나기 만만한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Z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이것저것 정보를 찾는 일에 능숙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 통에 도쿄 근처도 가기 전에 질려버렸다. 다 알아봐주는 것이 머리로는 고마웠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질린 나는 어느새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과정이 힘들 뿐 Z가 싫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잘 마치고 싶었다. p 091


특히 여러 아빠들 얼굴에 드리운 지리멸렬함은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하고 이썽ㅆ다. 디즈니? 유치 뽕짝의 향연이며, 가격은 말도 안되게 비싸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정이라고 뒤늦게 한탄했다. 속으로만. 디즈니랜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퇴장로를 걸었다. 낮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나를 위해 Z의 계획보다 이른 시각에 숙소로 향했다. 도쿄 이틀 차, 몸살이 났다. 아픈 나를 위해 Z는 하루를 간호에 할애했다. 혼자라도 나갔다 오라는 말에 Z는 내 옆을 지켰다. 고마웠지만 불편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Z와 멀어졌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다. p 093


나는 단 한번도 Z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었다. 그런데도 Z의 여행제안을 덥석 받아버린 건 내가 나에게 무지하고 무심했던 탓이다. 취향을 모르는 여행자, 다시 말해 줏대없고 우유부단한 여행자에게 즐겁도 딱 맞는 여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 094


요즘 자녀들은 가족여행시 부모님께 “ㅇㅇ하기 금지”라는 금기사항을 사전에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금기사항은 생각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왜 이런 금기사항이 유행하는지 이해못하는 부모라면 더더욱. 여기서 1차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이를 대처하는 자녀 입장에서 부모를 이해하고 넘어가면 1차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만,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져버리고 만다. 이런 경험은 비단 저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겪어보았고, 가족여행을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겪어봤을테다. 다만 이런 경험이 있은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나도 부모님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부모님은 “ㅇㅇ하기 금지”에 해당되는 금기사항을 내뱉은 적이 없다. 최근에도 없었고, 근 10년간 부모님과 여행을 떠올렸을 때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과 처음 여행을 갔던 어느 날. 분명 나와 부모님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다.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모님과 나는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니까. 다만 나는 성격상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한다. 물론 여행하고 있는 때에는 오로지 즐거운 여행만 생각하고 싶기에 가볍게 넘어갈 뿐이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어쩌고저쩌고블라블라미주알고주알” 쏟아낼뿐.


이렇게 갈등이 ‘처음’ 발생했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서로 고쳐나가고자 대화를 한다면 이후 가족 여행은 그야말로 ‘해피’하다. 물론 부모님에 따라 이해해주지 않거나,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은 부모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부모님은 갈등을 잘 해결했고, 이후로 가족 여행은 언제나 해피 그자체다. 일단 내가 가족 여행을 계획함에 앞서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게 ‘부모님 취향’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언제든지 Call을 외치며 달려나온다.


친구와의 여행도 그렇다. 가족여행은 그렇다치더라도, 친구와 여행은 독자입장에서 휘수님을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적어도 글 전반적으로 친구 Z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했다. 특히 글 에서 보여지는 저자를 향한 Z의 배려를 보면 볼수록. 분명 이 글은 저자가 썼기에, 저자의 행동이 더 미화되어있을 확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드는걸 보면, Z는 저자를 위해 많은 여행 내 많은 배려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깨닫게 된 여행 취향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변명만으로는, 너무 아쉽다.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취향이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제일 중요하다. 



▶캄보디아 씨엠립

그때부터 가이드는 우리 가족을 차별하기 시작헀다. 관광지에서 아빠의 질문만 못 들은척하며 대답하지 않는가 하면, 귀국하자마자 있을 언니의 이사문제로 가족들끼리 급히 상의할 일이 있어 ‘선택 관광’이었던 서커스 쇼를 보지 않겠다고 하자 화를 냈다. 가이드는 우리가족에게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할거면 패키지를 왜 왔냐’며, 선택관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에게 돌아오는 수입이 줄어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p 083


물론 이 일화로 패키지 여행을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조금 특이한 가이들르 만났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직항 비행기표가 없었기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없다. 그게 아니었다면 갈 수도 없었던 여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움보다 억울함이 더 컸던 여행이었지만, 아빠의 오랜 소망을 실혔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그때 찍은 가족사진인 걸 보면, 가이드의 몽니도 아빠에겐 별일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p 084


▶체코 프라하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그를 ‘중국인’이라고 단정짓고 느낀 불편함이 정당한 일이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만 했다. 4시간 동안 나에게 공포심을 밀어 넣은 것은 ‘우한 폐렴’인가, ‘나의 편견’인가?


동양인으로 태어나 서양 국가를 여행할 때마다 인종 차별적인 눈짓만으로도 분노하는 내가, 중국어 한마디에 내면으로부터의 차별과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를 보며 ‘바이러스’를 외치던 유럽인과 중국인을 계속해서 불편해하던 나의 마음은 얼마나 다른 선상에 있는 것일까? p 133


위 에피소드는 서솔님 여행 경험이다. 패키지 여행, 해외 여행시 인종차별. 이 역시 여행할 때, 특히 해외여행 할 때 한번 씩은 겪었을 법한 경험담이다. 


패키지 여행 시 ‘선택 상품’에 대한 강제는 문제가 있는 요소로, 몇번 사회적 이슈가 된 적도 있다. 거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슈로 해외여행까지 급감!그래서 그런가? 여행업체에서는 가이드 강제를 제제하기 위하 여러 자구책을 내놓았고, 실제로 예전에 비하면 선택상품 강제하는 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완전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없지만, 해외 여행 시 1일 버스투어 형식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본적은 있다. 1일 버스투어 였지만 그 안에도 ‘선택 상품’이 있었는데, 해당 상품을 이용하지 않아도 가이드는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선택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동안 가서 구경하면 좋을 장소를 여러군데 추천해주었다. 얼마나 친절하던지! 그때 알았다. 패키지 여행은 가이드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인종차별! 해외여행을 하면, 특히 서양권 국가를 여행할 때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문제 중 하나다. 다만 이런건 우리를 ‘피해자’ 입장으로 봤을 때다. 잘 생각해보자. 내가 누군가를 향해 인종차별을 했던 ‘가해자’였던 적은 없었는지를. 제일 가깝게는 코로나가 ‘우한 폐렴’으로 불렸을 당시, 중국인을 향한 인종차별.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다문화 가정을 향한 은근한 차별. 저자 서솔님처럼 ‘나의 편견’으로 알게모르게, 인종차별 가해자가 되었던 적,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인 나를 향해 하는 인종차별과 내 ‘편견’으로 알게 모르게 내가 한 인종차별. 둘 다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에 부당함을 말하기 앞서, 내 행동을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여행은 ‘망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했던 여행도 아니었지만, 각자의 마음에 인상 깊은 풍경은 물론 작은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이 사실들로 미루어 보자면, 이 여행을 ‘완전한 여행’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개고생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여행의 매력이다. p 085



책을 구경하러 간 행사였지만, 나는 또 다른 것을 한 아름 얻어 돌아왔다. 여행이라는 건 언제나 그런 것 같다. 기대했던 것에 실망해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그것을 기억 한편에 잘 저장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좋은 창고를 만들어 오는 것. 프랑크푸르트에서 느낀 찰나의 깨달음 역시 그 창고 안에 잘 수납되어 중요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p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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