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고유한 ‘영혼의 결’을 갖습니다. ‘자아’라고도, ‘개성’이라고도, ‘달란트’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입니다

예언자들은 현재의 도덕적 행위와 미래의 운명이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세계 속에 도덕적 질서가 있고, 인간의 현재와 미래 사이에 도덕적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도시 우르는 한때 상업과 무역이 활발하게 행해지던 선진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시와 복잡한 법률 개념 그리고 당시에 이미 정교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던 종교 이념에 정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 종교의 창시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땅에 대한 약속’을 최초로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계약 개념은 매우 독특한 사상으로, 고대 근동에서 그와 비슷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은총에 기인한 순종의 언약’에는 역사상 최초로 윤리적 하나님의 존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운 언약에 입각해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일종의 인자한 입헌군주였습니다.

서양 정신사를 이루는 두 기둥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입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헬레니즘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시작으로 그리스인이 창출해 낸 수많은 고전에 면면히 흐르는 사상을 말합니다. 헤브라이즘은 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중심으로 태동한 사상을 이르지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성서를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히브리 종교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히브리 종교가 역사종교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성서』를 공부할 때 「출애굽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히브리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서아시아로의 지리적·수평적 이동이 아니라, 자연종교에서 역사종교로의 수직적 비약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기나긴 방황을 거치며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확립하고, 나아가 종교 민족으로서의 사명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출애굽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사의 모라토리엄이요, 정체성 위기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먼저 읽고 「출애굽기」를 읽는다면 그것은 책을 거꾸로 읽는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세 이전의 시대는,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탄생시킨 출애굽이라는 중대한 사건에 비추어서 회상되고 또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단군신화가 언제, 왜 재조명되었고 또 어떻게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경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단군에서 시작되었다고 서술한 최초의 역사서는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와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입니다. 왕의 이름이 ‘충’忠으로 시작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충렬왕은 몽골 지배하의 고려왕입니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역사서는 고려 말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족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각과 민족의 시조에 대한 관념이 강해진 결과, 단군신화를 중요 기사로 다루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인 아브라함에게서 그들의 역사적 기원을 찾았고,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한 이야기에서 그들의 선민 된 자격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의 출발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무엇보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는 히브리인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풀려나는 출애굽 사건이 있기까지의 서막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현존하는 사료에서는 그들이 당대가 아닌 ‘과거’에 관심을 가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들이 사후에 얻을 평판에만 지극히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리엔트 지방을 배경으로 ‘과거’에 무척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압도된 한 민족이 등장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 온 여러 증거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기록을 시작한 바로 그때, 이미 그들은 이 역사적 기억에 압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 5경에는 여러 가지 전승, 즉 다양한 사료가 복합되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정설입니다. 이 점에는 프로테스탄트 학자, 가톨릭 학자, 유대교 학자가 모두 의견 일치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승과 사료는 모두 한 가지 역사적 기억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았기에 그들이 지녔던 공동의 역사 인식은 남달리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과거의 사건에 이토록 강하게 감사의 마음을 지닌 채 산 민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땅의 ‘터줏대감’을 버리고 서아시아 ‘모래밭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신’을 떠나 ‘역사의 신’을 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특히 『구약성서』 기자記者들에게 출애굽은 철저히 신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정치적 예속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신이 그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신의 계시와 현존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설화는 우리가 말하는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사입니다. 성서 기자들에게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곧 역사 속에 나타난 신의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란 뜻으로서의 역사입니다

둘째, 탐구의 의미를 갖는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가가 제시하는 사건에서 해석만 떼어 내면 순수한 과거의 사실만 남게 된다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역사가는 취사선택을 해 가며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선택하는데, 이 경우 선택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석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를 대변하는 성서 기자들에게는 출애굽이 완전히 신적인 사건으로 비쳤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적 예속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신이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신의 활동이었으며, 신의 계시와 현존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핵심을 이루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신이 역사 속에 개입해 들어온 사건입니다. 이는 영원의 일부가 인간의 차원으로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출애굽은 영원의 빛이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색깔 속으로 뛰어든 사건이었습니다. 신은 출애굽이라는 정치적인 사건 속에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순간은 영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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