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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 -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탄생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평점 :
흑사병이 유행하던 중세 시대, 흑사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교회에 모여 기도하던 이들이 흑사병에 집단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회에서 하는 기도가 흑사병으로 부터 중세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그로부터 천여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도원발, 교회발 집단 감염이 폭발하고 있다. k-방역 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방역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져가던 대한민국이 일부 종교시설에서 일어나는 집단 감염으로 코로나 19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19의 확산에는 특정 종교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신천지발 1차 대유행에 이어서, 종교 시설에서 이뤄지는 지금의 집단 감염을 바라보며, 종교가 무엇이기에 코로나 19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그들은 종교에 집착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서가에서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다. 세계 종교의 역사를 한권으로 집대성한 책을 찾았다. 특정 종교에 관한 서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세계 종교를 아우르면서도 쉽게 풀어쓴 책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차에 홍익희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라는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홍익희 저자의 책을 펼쳐 들었다.
1.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종교인들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때, 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는가? 라는 의문이든다.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라는 일련의 과정을 마치 지켜본듯이 말하는 종교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뢰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시간을 초월해서 특정 종교 홀로 존재하하는 듯한 설교를 할때는 불쾌함마져 들었다.
홍익희 저자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이야기"를 읽으며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크리스트교는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이다.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조상을 아담과 이브에게서 찾기도 한다. 심지어 출에굽기 이후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이 맺은 시나이산 언약을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하느님고 맺은 계약인 것 처럼 말하는 유명인도 있다. 그런데,출애굽기 19장 이하에 기록된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은 시나이산 언약의 형식이 히타이트제국과 약소국 사이에 맺은 '종주권 계약'고 흡사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크리스트교는 홀로 존재한 종교가 아니었다. 수 많은 문명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면서 오늘날 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조로아스터교에 유일신사상, 구세주의 등장, 최우의 심판 등의 사상이 셈계통의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와 인도의 산스크리트 경전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거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서아시아와 인도에서 발생한 두 종교가 유사하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사실 인도와 페르시아는 같은 아리안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지역은 사실은 한뿌리에서 자라난 문명이었다.
심지어,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아소카왕의 포교활동으로 크리스트교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불교의 수많은 설화가 크리스트교에 영향을 미쳐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래서 문명 사학자 토인비는 "20세기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불교와 기독교가 만난 사실"이라 했으며, 라이프치대학 루돌프 자이델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의 내용을 비교해보니, 최소한 50개의 스토리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서로 엄청난 거리를 두고 있는 종교 사이에 끊임 없는 교류와 융화 작용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하늘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절대시하기 보다는 타종교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한다.
2, 개방과 융화가 답이다.
세계 종교가 성립할때부터 종교는 한 문명의 기초위에 토대를 다졌다. 종교가 성장하면서 타종교의 영향을 받아 이를 융화시키면서 종교는 더욱 성장하였다.
셈계통 종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성립에 아리안의 문화와 서아시아 문명이 기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조로아스터교가 성립하자, 조로아스터교는 서아시아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성경에는 고레스왕으로 나온다.)은 관용정책을 펼쳐 제국을 더욱 확장시켰다. 키루스왕의 관용정책의 사상적 기반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사상은 서아시아 각지에 있는 모든 신을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가 관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키루스왕은 아후라 마즈다의 뜻에 따라 선한 영의 전사로서 의로움과 자비로움으로 이 세상에 '정의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앞장섰다. 기원전 538년 유대인의 귀향을 허락한 것도 키루스왕이 아후라 마즈다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키루스왕을 메시아로 추앙했으며, 키루스왕이 믿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를 재정립했다.
개방적인 사고와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에 융합시키는 탁월함은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개방적인 사고와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에 융합시키는 탁월함을 가지지는 못했다. 일단 세계 정교로 발전하고 나서는 교조화되어 폐쇄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중세시대, 발도파의 활약으로 크리스트교는 민중속으로 스며든다. 성경을 번역하고 쉬운 말로 민중에게 설교한다. 그자 평신도가 사제와 종교 논쟁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크리스트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트교 사제들은 이를 위기로 인식했다. 1229년 그레고리오 9세는 툴루즈공의회를 열어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거나 번역, 소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사재들이 복음이 담겨있는 성경을 읽지도, 번역하지도 심지어 소지하지도 못하게 하는 웃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 지식을 독점하고, 민중을 우민화시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모습은 조선시대 훈민정음을 반대했던 최만리를 비롯한 양반 사대부의 모습과 흡사하다. 결국, 개방성과 유연성을 상실한 크리스트교는 썩을 데로 썩어서 종교개혁을 맞이한다.
무신론자와 종교를 가지지 않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고 고령화의 영향으로 신자들이 늙어가고 있고, 이는 종교인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현대 종교는 과학으로부터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논쟁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다. 크리스찬들이 나에게 선교를 할때, 그들에게 하는 단골 반론도 진화론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종교적 믿음으로 선교한다할지라도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의 과학적 사고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선교의 결과는 미미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타종교의 장점을 자신의 종교에 융합시키라 조언하고 싶다.
유대교의 티쿤올람 사상에 진화론을 융합시킬 수 있는 힌트가 있다. 티쿤(고친다)과 올람(세상)이 합쳐진 말로 '세상을 개선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으나, 그 창조는 완벽한 창조가 아니었다. 세상은 미완성의 상태로 창조했으며, 하느님의 창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하느님의 창조 작업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티쿤 올람 사상은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보다 합리적 창조론을 만들 수 있는 힌트가 유대교의 '티쿤올람'사상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을 지고지순한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종교인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융화'의 과정을 받아들이라 조언하고 싶다.
저자 홍익희는 불교와 힌두교, 브라만 교는 심하게 반목을 하지 않고, 종교의 큰 흐름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반면에, 셈족의 종교인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는 한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름을 없애야할 절대악으로 여기는 지금의 교조주의에 빠져든 종교인들은 신의 이름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같은 하느님을 믿지만, 유대교라는 외투, 크리스트교라는 외투, 이슬람교라는 외퇴를 입었다고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기도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외투는 다르지만, 그 안에 계신 신은 같은 하느님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하늘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기에, 개방적이어야하며 타문명의 장점을 나의 것으로 융화시키는 현명함이 필요함을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이제, 종교인들이 응답할 때이다. 당신이 믿는 신은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없애야할 절대 악이라 말하고 있는가?
ps. 이 책에 오류도 꾀 있다.이를 간단히 언급하겠다.
127쪽: "요즘 관광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건축물의 대부분은 이때 유대인 건설노예에 의해 지어졌다."
=> 영화 '엑소더스'에 이집트 건축물을 유대 노예가 건설한 것처럼 묘사하여 고고학자들에게 지탄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집트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급료를 받은 평민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148쪽 "한손에는 꾸란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이슬람교를 포교했다."
=> 서구가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가득차서 만든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이 강제 개종을 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칼을 들고 이슬람교를 포교'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383쪽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위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고 싸웠다는 설화를 사실인 것처럼 소개한점.
=>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것은 거짓임을 알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를 역사인 것처럼 서술하는 어이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로마 여행시기 가이드조차도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위의 십자가를 보고 싸웠다는 묘사는 거짓임을 지적했는데, 홍익희는 이를 모르고 있다니, 못내 실망스럽다.
494쪽 투루 푸아티에 전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카룰루스 대제때의 일이다."라고 서술한점.
=> 앞부분에서 마르텔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서술하고는 뒷문장에 칼롤루스 대제 때 일이라는 어이없는 서술을 했다. 시간개념이 파악안된 상태에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카롤루스 마르텔 이후의 인물이 칼롤루스 대제이다. 세계사 교과서를 가지고 확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