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법칙 - 혁신을 꿈꾸는 젊은 리더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황창규 지음 / 시공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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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전이야말로 스스로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이는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없고,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지 않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 ‘서문’ 중에서




책은 저자가 2022년 가을학기에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의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정규 과목에서 7주에 걸쳐 ‘혁신’에 포커스를 맞추어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이런 과정에서 얻은 통찰력을 강의했던 내용을 싣고 있다. 이 강의는 저자의 재능 기부 형식이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이미 반도체와 통신 분야(KT 회장으로 재직시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 시킴)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낸 탓에 세계 주요 리더들을 대상으로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행한 특강, 베이징대학교 재학생 대상 강의와 여러 많은 콘퍼런스에서의 주제 발표로 극찬을 받아온 강연자였다.


자원부국이 아닌 대한민국 경제에 영향력과 기여도가 높은 산업은 바로 반도체이다. 현재 국내 굴지의 두 회사가 이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선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이 바로 소위 ‘황의 법칙’을 만들어낸 황창규 박사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


그는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로, 당시 반도체의 기준이라고 하는 ‘무어의 법칙’을 넘어 그의 법칙이 메모리 신성장론으로 인정받았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계 최초 256M D램 개발’ 등 다양한 ‘세계 최초’를 기록했다. 주요 경력으론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초대 국가 R&D 전략기획단 단장(국가 CTO), KT 회장을 지냈다.




총 7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리스크 테이킹, 파괴적 혁신, 미래의 예측, 기술의 선점, 위기의 대응, 융합의 실현, 혁신을 이루는 경영자의 자세 등 일곱 개의 주제로 진행한 저자의 강의 내용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내용을 추려 리뷰에 담아 본다.


리스크 테이킹


저자는 “모든 혁신은 리스크에서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몸소 불 속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위험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인다. 미국 스텐퍼드대학교 박사 학력을 감안, 그에게 임원직을 제한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실무자로 삼성에 입사한 것만 봐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아가 그는 오너인 이건희 회장 앞에서 당시 압도적인 1등 업체였던 일본회사 도시바와의 협업을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근거 또한 그의 ‘리스크 테이킹’ 정신이었다. 이 역사적인 ‘자쿠로 미팅’에서의 그의 입장을 들어본다.


“당시 도시바는 낸드플래시의 마켓셰어 1등 기업이었고 독점적인 기술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로 보자면 완전히 ‘하늘’이었죠. 실제로 도시바의 기술을 쓰기 위해 삼성은 막대한 특허료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인트벤처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 나쁠 리 없었죠. 누구라도 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왜 도시바가 2등인 우리랑 조인트벤처를 하자 했을까요? 미래의 새끼 호랑이를 미리 없애버리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삼성은 이미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을 개발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일본보다도 앞섰죠. 당장은 2등이지만, 삼성이 또 다시 앞선 기술을 내놓는다면 1, 2위가 바뀔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경영진도 그렇게 생각할진 미지수였습니다.”(45쪽)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나 또한 기업체에서 잔뼈가 굵어지고 큰 일들을 많이 수행함으로써 임원을 거쳐 대표이사까지 올랐었다. 만약 나라면 ‘넘사벽’인 회사와의 협업을 거절하고 독자개발을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회사의 오너한테 말이다. 이같은 위험 감수는 대단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행동이다. 아무튼 이를 전격 수용한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 또한 남달라 보였다.




나아가 그는 도전을 운에 맡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리스크 테이킹을 한다고 해서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고 반대로 실패할 수도 분명 있기에 승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그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첫째, 오픈 마인드 자세로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쌓은 인맥을 최대한 활용, 일본 반도체 펠로(기사長)들에게 편지를 통해 기술교류 제안을 하고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예 용인 기흥에 위치했던 반도체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을 대동하고 일본 선진 기업체의 연구원들과 미팅을 통해 개발 상태를 토론하고 직접 목격까지 했다. 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는 자세였음을 보여준다.




둘째, 열정과 적극적 태도로 우수한 인력의 확보를 위해 학회 활동에 적극 임해 심사위원으로서 각종 논문을 심사하며 기술의 흐름을 파악함과 동시에 ‘기술 표준화’를 주도해 나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특허등록과 함께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셋째, 철저한 준비였다. 이는 고객들의 니즈를 확실히 알고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엑스박스’라는 게임기 출시를 앞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삼성을 찾아와 고사양 그래픽 메모리의 거래 가능을 타진해 온 적이 있었다. 이 제안을 받고 매우 높은 가격을 불렸더니 이들은 마이크론에서 해결키로 했다가 4개월이란 시간만 낭비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사이 삼성은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측에서 긴급 SOS를 요구, 삼성 엔지니어 30명을 시애틀 본사로 파견해 2달 만에 완벽하게 해결해 주었던 사례다.


퍼스트 무버 vs 패스트 팔로어


새로운 분야를 선도적으로 개척하는 자를 ‘퍼스트 무버’,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빠르게 따라가는 자를 ‘패스트 팔로어’라고 부른다. 흔히 경영자들은 앞서가는 회사와 추격하는 기업의 전략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은 후발 기업, 즉 패스트 팔로어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른 견해를 밝힌다.


1등도 그 자리를 지키는데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한 기업의 하급자가 마음대로 리스크 테이킹을 하기엔 쉽지 않다. 흔히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어떤 배역을 맡은 이가 ‘내가 모든 책임을 질테니 아무 걱정 말고 일을 추진’하라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은 모두 안다.


이에 저자는 기본적으로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를 바닥에 깔고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리스크 테이킹은 리더십의 역할이 크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즉각적으로 이를 감수할 수 있는 기업 문화의 조성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즉 조직이 한 몸처럼 리스크 테이킹을 시도하는 문화의 정착을 가리킨다.


리스크 테이킹으로 인해 실패를 했을 경우 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 이런 문화가 없다면 전사적인 혁신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실패도 용인해 주는 문화의 실천이 꼭 필요하기에 심지어 미래개발팀은 무조건 B플러스 고과를 부여했다고 한다.


‘황의 법칙’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1999년 256메가 낸드플래시가 개발된 후 2000년 512메가, 2001년 1기가, 2002년 2기가 등 지속적으로 두 배 용량의 제품이 개발되어 지금까지 이 법칙이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첨단 기술의 진보만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과 기술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경영자의 자세


피터 드러커의 이론에 따르면 “변화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어제의 이론이라고 말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이론이 혁신의 가장 큰 위협이다. 파괴적 혁신을 만들려면 두 개의 수레바퀴가 원동력인 셈이다.


첫 번째 바퀴~ 기술의 발전

두 번째 바퀴~ 조직의 발전


그렇다면 ‘어제의 이론’은 도대체 뭘까? 그렇다. 이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세력)이자 집단적인 거부인 셈이다. 예를 들어, 과학 기술에 있어서 어제의 이론은 바로 지동설을 결코 용인하지 않은 천동설이었다. 그런데, 과학은 이론으로 ‘맞다, 틀리다’를 검증할 수 있으므로 틀린 것을 옳다고 계속 고집을 피울 수 없다.


반면에, 조직 문화는 이와 다르다.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는 비교할 때 절대적인 다수는 유감스럽게도 할 수 없다에 표가 쏠린다. 조직구성원의 변명과 이유는 천만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혁신하려고 강압적으로 변화와 변경을 추진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황 박사는 현장에서 경영을 맡고 있을 때 여섯 가지 주제애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이에 합당한 통찰을 얻었다고 한다. 그 여섯 가지는 바로 소통, 비전, 위임, 협력, 질문, 포용 등이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것은 경영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소통~ 마음을 모아주는 한솥밥의 위력(워크숍)

비전~ 조직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확실한 방법(글로벌 1등)

위임~ 겁 없는 도전을 가능케 함(자쿠로 미팅)

협력~ 위임에 따른 시간적 여유가 소통과 협력으로 이어짐

질문~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고민해서 좋은 질문을

포용~ 혁신가에겐 불이익을 주지 않음




도전의 진정한 가치


책에 담긴 일곱 차례의 강의는 결국 도전이라는 메시지로 관통된다. 현실에 그저 안주하며 만족한 삶을 산다면 결코 자기자신의 한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도전하는 자만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되고 이를 메워나가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성공의 문턱으로 다가가게 되는 셈이다. 경영인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청년이라면 더욱 더.


#황의법칙 #무어의법칙 #경영전략 #경영 #혁신 #도전의가치 #위기대응 #융합 #기술융합 #파괴적혁신 #황창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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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삼성전자 시나리오
김용원 지음 / 세이코리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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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새로 진출한 삼성전자의 2030년 마래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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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삼성전자 시나리오
김용원 지음 / 세이코리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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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모바일, 신사업 등 여러 영역에서 다수의 라이벌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자연히 대응 여력이 한계에 부딪히거나 리스크를 안게 될 가능성도 크다. 지금 같은 구조라면, 냉정히 말해 앞으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미래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넘어야 할 상대는 모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 기업이다. 매출 규모와 자금 여력, 기술력 등이 대부분 삼성전자를 앞선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삼성전자를 물리치거나, 삼성전자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 ‘여는글’ 중에서




‘2030년,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도전 완패로 끝나다’라는 매우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으로 책은 시작한다. 2031년 2월 1일 기자가 된 저자가 칼럼 형식으로 기고한 기사는 삼성이 2020년대에 여러 라이벌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 부족해서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로 반도체 등 기존의 캐시카우 사업이 일제히 부진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는 상상력을 발동한 최악의 가정 시나라오이다.


이 칼럼을 읽는 주식투자자들에겐 많은 감정을 유발하게 한다. 정말?, 아니지? 등등. 사실 현재의 주식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는 아픈 손가락이다. 대한민국 대표주식이니 왠만하면 이 종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동학개미들의 활약으로 ‘10만 전자’ 고지를 앞두기도 했는데, 이후 내리막길을 거듭하며 겨우 ‘7만 전자’에 턱걸이하고 있어도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다. 미래 시나리오인 2031년 초엔 ‘5만 전자’에 복귀했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삼성전자 스텟은 어떤지 살펴보자. 2023년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6,400억 원대로 1년 전 실적 대비 95% 감소했다. 한 마디로 ‘어닝 쇼크’였다. 이런 페이스라면 연간 적자 전환까지도 우려될 정도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손자병법>에 유명한 말이 나온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인데,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마치 충격요법으로 삼성전자를 치유해보겠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저자는 총 6개 장에 걸쳐 현재의 삼성전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TSMC, 애플, 인텔, 중국 반도체 업계, 국내 3사社(LG, SK, 현대자동차) 등과의 비교를 통해 마지막으로 2030 이재용의 삼성을 살펴보고 있다. 본 리뷰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 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대만의 TSMC는 처음부터 삼성전자와 가는 길이 달랐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워낙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앞서 가고 있었기에 국가적 지원을 받는 TSMC는 비메모리반도체를 주문받아 위탁생산을 하는 시스템반도체에 올인했었다. 현재로선 이 방향이 잘 맞아떨어졌기에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린치핀”이라는 평가(2021년, 파이낸셜타임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고성능 시스템반도체의 위탁생산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서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갈수록 소형화되는 고사양을 충족시키려면 미세공정에서 결판이 나는 싸움이 되었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28나노 공정이 가장 앞선 기술이었지만 현재는 3나노 공정까지 발전했다. 이에 TSMC는 2025년부터 2나노 공정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분히 삼성전자의 도전을 의식해서다.


한편,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30일 세계 최초로 3나노 미세공정 기반 반도체 양산을 발표했다. 사실 TSMC보다 반년 정도 앞선 성공이었다. 이제 두 회사는 3나노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고객사들이 어느 회사를 선택하는냐에 달린 문제이다. 안정적인 현금 창출을 위해서도 더욱 그러하다. 고객사가 없는 위탁생산은 최악의 경우 공장만 덩그러니 남는 꼴이 되고 만다.


애플은 TSMC 전체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객사이다. 2022년 기준으로 약 26%의 매출액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 적용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TSMC가 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제품이 안정적으로 판매되기에 둘과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특허 분쟁까지 있었던 애플이니까 당분간 삼성의 고객사가 되긴 쉽지 않을 듯 싶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부문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을 하는 것과 같다. 고객관계란 통상 오랜 기간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에 이를 깨뜨린다는 것이 미세 공정 기술력의 치명적 결함이 없는 한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너무 늦은 진출은 만시지탄이라 할 수 있다.


또 공급 능력을 갖추려면 거액의 생산 투자를 투입해야 하는데, 확실한 고객사의 확보 없이 공격적으로 선투자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입해서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에서 확실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잡겠다는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삼성전자가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기술력에서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첨단 미세 공정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나선 듯 보인다. 전세계 반도체 고객사들이 지정학적 리스크(중국의 대만침공설) 등으로 TSMC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삼성에게 큰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한때 TSMC의 미국 이전설도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에도 중국 리스크가 있다. 중국에 설립된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생산 공장이 문제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고립시키는 조치를 연달아 취하고 있는데 여기엔 삼성전자의 중국 생산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도 포함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중국에서의 사업이 어려워지므로 삼성전자의 실적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다. 또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미국 정부는 TSMC에게 행했던 것처럼 간섭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밖에도 저자는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사업(AR/VR 기기)과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플랫폼의 성공 여부, 그리고 중국 시진핑 주석의 완전한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등을 언급하면서 향후 삼성전자가 넘어야 할 파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경영 #삼성전자 #2030삼성전자시나리오 #김용원 #세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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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인물지 - 유소 『인물지』 완역 해설
이한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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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지>는 중용中庸을 갖춘 사람을 최고로 평가하고 불벌不伐을 결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공자적인 사고를 수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일부 도가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책의 골격을 흔드는 차원이 아니라 유가적 틀을 일부 보완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주된 주제는 ‘뛰어난 신하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공자의 평생 관심사인 ‘군군신신君君臣臣’,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뛰어난 임금, 뛰어난 신하가 만나야 한다’ 등이다.


공자의 <논어> ‘위정’ 편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하는 행동을 보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살피고, 그가 무엇을 편안해하는지를 꿰뚫어 보라’는 것이다. 즉, ‘보고, 살피고, 꿰똫어 본다’는 3단계의 시관찰視觀察을 언급한 것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인물을 알아보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요堯임금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신분은 미천할지라도 뛰어난 인물이라는 우순을 천거받아 두 딸을 한꺼번에 시집보내어 됨됨이를 직접 시험해 보았다. 즉 평민인 순舜이 과연 두 딸을 자신의 부인으로 대하는지와 두 딸을 아내로 삼아 무탈하게 잘 지내는지를 살펴보았던 것이다. 이같은 시험을 통과한 순은 나중에 임금이 된다.


<인물지>의 의미


이 고전은 위나라의 명신名臣 유소劉邵가 저술한 인사 교과서이다. 중국의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위, 촉, 오)에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위한 인사 교과서로 만들어진 책이다. 유소는 이 책에서 사람은 타고난 성정과 재질이 다르고 배움 또한 제각각이므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참고로, 삼국시대의 천재 전략가 제갈량(181~234년)도 <지인성知人性>이라는 글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일곱 가지 도리를 제시했다. 이는 아래의 내용인데 대부분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한 것들이라고 보여진다.


어떤 일을 물어 대답의 옳고 그름을 통해 속마음을 살핀다.

말로 궁지에 몰아 대처하는 임기응변을 살핀다.

계책을 말하게 한 후 식견의 깊이를 살핀다.

재난이 났다고 말해 그 용기를 살핀다.

술에 취하게 만들어 밑바닥 성품을 살핀다.

재물로 유혹해서 청렴함을 살핀다.

어떤 일을 하기로 약속해 신뢰성을 살핀다.


아홉 가지 징후


우리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나름대로 이 사람을 평가하면서 살아간다. 흔히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외모가 80% 좌우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마다 그 기준이 제각각이므로 이는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물지의 첫 장은 구징九徵이다. 이는 외부로 드러난 아홉 가지 징후를 말하는데 사람들의 타고난 성정과 재질은 아홉 가지 형태로 표출되므로 이를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을 대체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태神態~ 균형과 치우침

정기精氣(눈빛)~ 총명과 우매

근육~ 용감과 겁약

골격~ 강인함과 유약함

혈기~ 성격의 조급함과 안정감

안색~ 근심과 기쁨

의표儀表~ 흐트러짐과 단정함

얼굴~ 간사함과 정직함

말투~ 느긋함과 조급함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겉모습만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라는 게 아니라 타고난 바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내면의 ‘정신’이라는 개념인데, 자연스럽게 외부로 드러나므로 감별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전제인 셈이다.


체별體別


이는 인재의 내면 관찰에 해당한다. 즉 사람마다 제각각인 성정의 유형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다. 각각의 특성엔 장단점이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헐뜯는 것은 굳세고 엄격함에서 생겨난다.

의심이 많은 것은 남을 지나치게 품어주거나 마음이 나약함에서 생겨난다.

법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호걸스럽고 사나운 데서 생겨난다.

매사 의심하며 어려워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데서 생겨난다.

매사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굳건하고 끈질긴 데서 생겨난다.

남을 깔보며 말로만 떠들어대는 것은 말재주를 잘 부리는 데서 생겨난다.

어지럽고 흐리게 행동하는 것은 두루 주선해주는 데서 생겨난다.

좀스럽고 작은 일에 갇히는 것은 깐깐하고 정결한 데서 생겨난다.

엉성하고 덤벙거리는 것은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은 데서 생겨난다.

굼떠서 일을 지체시키는 것은 침착하고 고요한 데서 생겨난다.

속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순진한 데서 생겨난다.

우물쭈물하며 뭔가를 숨기거나 원칙을 어기는 것은 속내를 잘 숨기는 데서 생겨난다.


<인물지>가 말하려는 핵심은 성정에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이 하는 일에도 항상 득과 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득실을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용인술用人術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 재질에만 두드러진 편재偏材에 해당된다. 배움을 통해서도 편재의 성정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타고난 성정의 단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극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때 코칭과 멘토가 필요한 것이다.




재리材理


무릇 이치에는 네 가지 부문이 있다. 즉 도리의 이치(道), 마땅함의 이치(義), 일의 이치(事), 정감의 이치(情) 등 네 가지를 가리킨다. 이는 바로 세상을 이해하는 네 가지 이치인 것이다.


사람은 말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낸다. 즉 사람의 타고난 성정의 차이는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또한, 말이나 글로 자신을 표현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책은 아홉 가지의 특성을 언급한다.


굳세지만 대충대충 하는 사람은 미세한 일을 처리할 줄 모른다.

엄정함이 지나친 사람은 자신을 굽힐 줄 모른다.

고집스럽고 강경한 사람은 사실을 따지지를 좋아한다.

말재주가 좋은 사람은 말만 거창하지 주도면밀하지 못하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은 제대로 깊게 생각하지 못한다.

이해력이 낮은 사람은 어려운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너그러운 사람은 민첩하지 못하다.

온유한 사람은 함을 써야 할 때 제대로 강함을 발휘 못한다.

기발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제멋대로 기발한 것만 찾아다닌다.


사이비 인재 유형


나오는 대로 떠드는 사람

알고 있는 이치는 적으면서 말이 많은 사람

왜곡된 말로 상대의 뜻에 영합하는 사람

남의 얘기를 다 듣고 판단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고응답하지 않는 사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로만 이해했다는 사람

이기려는 마음 탓에 묘한 말로 핑계를 대는 사람


마음은 평안하고 뜻은 평탄해 무조건 이리로 가야 한다는 것도 없고 무조건 저리로 가면 안 된다는 것도 없으니[無敵無莫] (옳고 그름이란 도리에 달렸으니 이기기를 탐함으로써 유명세를 구해서는 안 된다.) 도리를 얻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과는 세상 경영[經世]과 백성 다스림[理物=治人]에 관해 더불어 논할 수 있다[與論=與議]


접식接識(사람을 알아보는 법)


인재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사람의 재질과 능력을 식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특히, 흔히 범하는 실수(잘못)과 그 원인을 제시한다. 무릇 사람이란 처음엔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누구나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와 같은 재질을 가진 사람의 좋은 점은 능히 알아차리지만{본성상 모책을 생각하는 데 장점이 있는 사람은 책략을 잘 꾸미는 사람을 좋게 여긴다.} 간혹 자기와 도량이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점을 놓치곤 한다.


흔히 사람은 유유상종한다고 한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의 성정과 생각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호불호를 결정한다. 친구를 사귀는 일이든, 인재를 추천하고 등용하는 일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 상대방을 올바로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으로만 상대를 보려하는 편재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인간의 마음에 살고 있는 질투심이란 독약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동문수학한 한비자가 진나라왕에게 등용되자 이사는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껴 한비자를 참언하여 결국 죽이고 만다.


칠무七繆(일곱 가지 잘못)


명예를 살피면서 편파적이 될 수 있는 잘못

사람을 대하면서 사랑하고 미워함이 뒤바뀌는 잘못

남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도량의 크고 작음을 헷갈리는 잘못

남의 바탕을 품평하면서 빠르고 늦음을 그릇 판단하는 잘못

자기와 같은 유형만 좋아할 수 있는 잘못

신세가 펴지거나 쪼그라드는지를 오판하는 잘못

매우 뛰어난지 허황된지를 판별 못하는 잘못


사람을 잘 알아보는 자는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갖고서 남에게서 들은 것을 바로잡지만{남의 말을 들었더라도 항상 자기 눈으로 그것을 바로잡는다.}, 사람을 잘 볼 줄 모르는 자는 남에게서 들은 것을 갖고서 자기가 직접 본 것을 내팽개친다.


석쟁釋爭(다투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군자는 스스로 덜어내는 것이 더해줌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공로가 하나여도 두 가지 찬미를 얻게 되고(스스로 덜어내면 일을 행하는 것이 이뤄지고 명성이 세워진다.), 소인은 자기를 더해줌이 덜어냄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자랑하다가 (공로와 명예) 두 가지를 아울러 잃게 된다. (스스로 자랑하면 일을 행하는 것이 허물어지고 명성이 손상당한다.)


#인문 #고전읽기 #이한우의인물지 #21세기북스 #인재등용 #용인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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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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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권의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미래의 르네는 현재의 르네에게 식량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핵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꿀벌의 예언>이란 책에 쓰여 있다는 걸 알려 주고, 현재의 르네는 인류를 구할 실마리가 될 예언서를 찾아 전생의 자신을 찾아간다. 예언서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던 전생은 무려 1천 년 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출정한 십자군 기사였고, 르네는 전생의 자신과 함께 예언서에 얽힌 거대한 모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2권의 책장은 멜리사가 연다. 그녀는 역사학자 알렉상드르의 딸 인데 르네의 방갈로 문을 두드린다. 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녀는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침대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르네를 목격한다. 커튼이 내려져 있는 분위기에서 르네는 미동조차 없다.


이에 멜리사는 르네의 귀에다 작은 소리로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아버지 알렉상드로도 자신의 방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게 두 사람 모두 같아 보여서 더 이상 강권하지 않고 방을 떠난다. 한편 르네는 자세를 고쳐 잡고 명상에 다시 들어간다. 하지만 한번 흐트러진 마음의 집중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이후 알렉상드르와 르네 등 일행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예언서에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경쟁심을 가진 두 사람 르네와 알렉상드르를 향해 멜리사가 커플 개념의 변천사史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사실 역사의 기술에 대해 지금껏 진행되어 온 논란은 강자들을 위한 기록이란 비판이다. 즉 승자만의 주관적인 기술이기에 과연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내용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이에 메넬리크도 한 마디 거든다.


“그거 아나? 서기 30년 다니엘이 진흙으로 된 발이 달린 거인의 이미지를 빌려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메시아를 자처한 사람이 170명이 넘었다는 거?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경쟁자였던 셈이야.”


1권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꿀벌의 생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서 벌집의 관찰을 통해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즉 벌집을 들여다보면 완벽하고 이상적인 인간도시의 밑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꿀벌들의 희생정신을 관찰한 이후 <목적 지향성>이란 철학이 탄생했다. 그는 이미 우리들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린 제자 알렉산드로스 왕자에게 철학, 수학, 정치, 전략 등을 가르쳤다.


소설은 다시 전생 시절로 무대를 옮긴다. 작은 솔로몬 성전에서 성전 기사단은 회합을 갖는다. 살뱅(르네의 전생인물)과 가스파르(알렉상드르의 전생인물)도 참석하고 있다. 단장인 위그 드 팽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무척 중요한 날이오. 우리 모두는 가스파르와 살뱅이 완성한 예언서 두 권을 읽고 이 자리에 모였소. 놀랍기 그지없는 내용들이었소. 먼저, 돌아가면서 감상평부터 들어 봅시다.”


가스파르의 글이 더 길고 생생하게 기록되었다고 평하는 말,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간이 달에 도착해서 걷는다는 내용, 기독교 문명의 위세가 꺾이고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미국, 중국, 러시아라는 왕국이 영향력을 넓혀간다는 내용, 아직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에 관한 내용 등등. 특히, 살뱅의 예언은 2053년까지 다룬다는 점이었다. 무려 가스파르보다 30년이나 더욱 길다.




결국 기사단장이 표결에 붙인다. 3대 3으로 동수가 되자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기사단장이 비록 글의 정제성이 떨어지지만 살뱅의 예언서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더 긴 기간을 다룬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가스파르가 쓴 예언서는 불에 태워진다.


소설의 무대는 다시 현생인 방갈로로 옮겨진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키부츠이다. 별안간 울려대는 사이랜, 폭발음과 함께 창문이 부서지고 벽까지 흔들거린다. 르네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사람들이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가고 있다. 마침 메넬리크 학장이 르네에게 손짓을 한다. 이들은 콘크리트구조물로 향했다. 방공호이다. 이미 알렉상드르와 멜리사는 입장해 있었다.


메넬리크는 알아크사 모스크 지하에 무단 출입한 프랑스인들이 이곳 키부츠에 숨어 있다는 걸 헤즈볼라에게 정보를 제공한 탓에 지금 로켓탄들이 날라 들어왔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말하자면 1권 후반부에 르네, 알렉상드르, 멜리사 3인들은 마치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한 장면처럼 지하 성전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으려고 무단 침입했다가 스릴 넘치는 탈출극이 벌어졌던 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 메넬리크의 아내 오델리아가 이들 일행을 발견하고 찾아와서 여왕 꿀벌이 갇혀있는 오렌지색 반투명 밀랍 조각을 보여주면서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 여왕 꿀벌이 12세기에 살았음이 밝혀졌다는 말과 함께 이 꿀벌은 현재 유리화 상태라는 것이었다. 동면 상태와 유사한 것이다. 어쩌면 여왕 꿀벌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믿기지 않는 설명이었다. 르네는 감격에 차 잠시 할 말을 잊는다. 그는 다시 화장실을 찾아 변기 뚜껑에 가부좌를 틀고 과거 여행에 들어간다.


살뱅이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보인다. 르네는 전생 체험을 통해 살뱅에게 2053년까지만 구술해주었는데, 다른 장이 또 있는 것이다. 족히 몇 페이지는 돼 보인다. 르네는 살뱅이 수정 중인 양피지를 어깨 너머로 내려다본다. 밤인 데다 방이 어두워 전체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앞머리 몇 글자만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심장이…….>


현관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자 살뱅이 황급히 예언서를 덮는다. 침입자였다. 어둠 속에서 긴 망토를 입고 나무로 만든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의 검은 격렬하게 맞부딪힌다. 상대방의 검술 실력이 출중하다, 살뱅이 일격을 당해 손에서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검을 재차 잡으려는 순간 침입자는 검 손잡이로 살뱅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엎어지자 예언서를 집어 들고 살뱅의 집에 불을 지른다.


연기 냄새를 맡고서 잠들었던 살뱅의 아내 드보라가 잠에서 깨 아래층으로 내려와 쓰러진 살뱅을 일으켜 세운다. 자초지종을 듣고선 단검 하나를 챙겨 즉각 도둑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추격을 눈치 못채고 성 다미아노 교회 쪽으로 올라간다. 살뱅과 드보라도 안으로 들어간다. 인기척을 들은 사내는 등을 돌려 살뱅 부부를 향해 활을 겨눈다. 살뱅은 자신의 물건을 돌려달라고 말하면서 예언서로 놓여있는 테이블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사내의 활 시위는 살뱅의 심장 깊숙이 박힌다. 숨이 끊어진다.


다시 현생이다. 방공호 화장실에 앉아 있는 르네는 몸이 석상처럼 굳어 있다. 가슴을 짚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본 후 심호흡을 한다. 바로 앞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여오자 르네는 정신이 번쩍 든다. 확신에 찬 의심이 생긴다. 살뱅의 살해범은 가스파르야.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간 르네는 명상 중인 알렉상드르의 멱살을 잡고 죽일 기세이다. 남자 3명이 다가와 겨우 뜯어 말렸다.


“당신이 쇠뇌로 나를 쐈어! 그걸로 나를 죽였어!”


알렉상드르가 자신은 그 사건 당시에 그 현장에 없었다며 적극 해명하자 르네는 디소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이에 재차 멜리사가 아버지에게 이를 확인하고 다음에 세 사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대화해보자고 말한다.


한편, 르네는 다시 전생을 찾아 들어간다. 이번에 보이는 사람은 17살의 에브라르인데,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이며 기사단에 음식을 배달왔다가 우연한 실수로 인해 기사단장 기욤 드 보죄의 눈에 들어 살뱅 드 비엔이 쓴 예언서를 지켜달라는 당부를 받는다.


나더러 이 예언서를 지키라고? 방금 기사단장한테 들은 얘기가 그의 가슴을 짓누른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자 그가 포기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단장에게 물어본다.


“이 예언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요?”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이 아주 상세히 적혀 있다네. 아주 먼 미래, 정확히는…… 2101년의 일까지 말이야.”


끈질진 노크 소리로 인해 르네는 명상으로부터 나와 현실로 복귀했다. 알렉상들릐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멜리사는 조용히 눈만 감고 있다. 르네는 스마트폰을 열어 메모를 시작한다. <에브라르 앙드리외. 아크레. 1291년 4월 14일> 필사본이 보관된 방과 성채 내부 구조까지 상세히 그린다. 갑자기 아크레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앞으로 르네 일행에게 어떤 일들이 닥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여왕벌 화석과 <꿀벌의 예언>은 진정 인류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방법이 예언서엔 들어 있는 것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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