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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덤이에요 - 10년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
봉부아 지음 / 자상한시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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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봉부아!

 

오늘은 왠지 샹송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봉부아란 불어로 좋은 숲이라는 뜻이라죠? 아주 아름다워요! 그런데요 언니, 저는 이 뜻보다 언니가 지은 두 번째 뜻!이 더 좋았어요. ‘봉부아의 원래 의미요. 프롤로그에 있는 언니의 고백을 읽으면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몰라요. 평생 잊지 못하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고백하자면 저는 신부아예요. (, 봉 옆에 신이요! 큭큭큭)

 

언니가 쓴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처음 본 건 인스타에서였어요. ‘내 마음의 아지트<자상한 시간>에서 출간한 책이라기에 사서 읽어야지 했어요. ‘1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뭔가 확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요. 왜냐면 제가 ‘6년 차 편의점 앞집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편의점을 자주 애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편의점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언니의 글을 읽으면 우리 앞집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하고도 왠지 가까워질 것 같았어요. (이미 제가 넌 알콜을 사도 땅콩을 챙겨주실 만큼 친해졌지만요 ^^)

 

편지를 쓰기 전에 밝혀야할게 있어요. 언니의 책은 제가 사지 못했어요. ‘서평단에 덜컥 당첨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자상한 시간인스타에서 서평단 뽑기를 하면서 ‘000은 덤이에요라는 이벤트를 하신다기에, ‘손편지는 덤이에요라는 댓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제가 뽑혔지 뭐예요! 제가 쓴 문장이 아름다워서! 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건 아니고요, 자상지기님들이 제비뽑기를 했는데, 제 아이디가 뽑힌 거예요. (어디서 뭘 뽑혀본 적이 별로 없어서 진짜 놀랐어요) 그래서 선물처럼 온 언니의 책을 읽었답니다.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우리 유머 코드가 맞나봐요) ‘무서운 얼음컵읽으면서는 여름마다 얼음컵 살 때 탁탁 깨트리던 제가 떠올랐고요 (물론 우리 편의점 매니저님도 그러다 컵 깨진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날 이후 저는 탁탁 하지 않아요. 저는 말 잘 듣는 손님이거든요), ‘나의 첫 캔커피를 읽으면서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 취직했을 때가 떠올랐어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느라 밥을 먹지 못해서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레쓰비를 먹곤 했거든요. 그 때 미스터2’<하얀 겨울>이라는 노래가 나오곤 했는데, ‘나의 첫 캔커피를 읽으면서 그 시절 생각이 나더라고요. 역시 캔커피는 레쓰비! (롯데 보고있나?)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러 왔던 관장님 이야기는 감동이었고, 화장실 빌리러(?) 왔던 오누카 부부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울컥했어요. 엉엉.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게(언니 포함) 너무 좋았거든요. ‘두릅엔 막걸리지. 나도 신랑이랑 그렇게 먹었어할머니 이야기도 찡했어요. 저도 언젠가 그 말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일단 두릅에 막걸리를 마셔야 할 텐데, 요즘 두릅이 나왔나 모르겠네요.

 

언니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새삼 다시 느꼈어요. 어떤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정말 달라보인다고요. 언니가 끼고 있는 다정함이란 렌즈를 우리도 끼워보면 어떨까... 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언니라고 하느냐고요? 언니 나이는 모르겠지만 외화 V’를 아는 걸 보니 분명 언니일 것 같아서요. 저는 그거 꼬꼬마 때 봤거든요. 그리고 편의점!’이라고 하는 것 보다 언니라고 하는 게 더 다정해보이니까요. 우리에게 다정함은 덤이잖아요. ^^

 

추신 : 언젠가 <자상한 시간>에서 커피 한 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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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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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2022년의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끝났다. 새해가 될 때까지 더 이상 수업과 회의와 원고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휴가가 없는 법. (지인이 알려준 말인데, 누가 한 말인지 까먹음) 나는 둘째가 아침에 등교해 오후 늦게 돌아오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새해 계획도 세우고, 새로 써야 하는 원고 기획도 마무리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서! 아침 시간을 즐기며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러나 이런 계획은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늘 무용지물이 된다.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예정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화요일!이 있으니까. 그러나 아이는 화요일에도 아팠다. 아침부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투어를 했고, 아이와 함께 수 시간을 병원에 묶여 있었다.

 

이런 일은 두 아이를 낳고 키웠던 17년 동안 비일비재했다. 내내 건강했던 아이는 내가 지방 출장을 갈라치면 아프기 시작했고, 남편은 늘 바빴으며(그래서 혹자들은 내게 남편이 없는 줄 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때문에 항상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항상 프리한 내 몫이었다.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진짜 힘들고 서러운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도 가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돌봄덕분이었다. 딸의 작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돌봄을 해준 엄마 덕분에 나는 학생도 되고, ‘작가도 되고, ‘강사도 되었다. 엄마의 돌봄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 한 곳에 묵혀두었던 지난 시절들을 다시 떠올린 것은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를 만났다. 어쩌다 한 두 명의 생각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책을 쓴 11명의 저자들에게 깊이깊이 공감했다.

 

먼저 이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 ‘내게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마 그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p29, 정서경), 라는 문장이었다. 그렇다. 나도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될 줄 몰랐다. 어른들이 말하던 것처럼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24시간, 할머니의 25시간을 잡아먹으며 컸다. (우리 아이들은 종종 말한다. ‘엄마는 우리를 낳기만 했지, 할머니가 다 키웠잖아라고. 으허허허.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서유미 작가가 쓴 아이는 마트료시카처럼 어릴 때 모습을 품고 있고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아팠다. 자다 깬 아이가 자리에 앉아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아이를 재우고 작은방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원고를 쓰고 책을 봐야했다. 자기가 잠들면 엄마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들었다가 이내 깨서 서럽게 울었다. 시험을 보고, 마감을 해야 하는 나는 아이를 안고 같이 울었다. 이제 나보다 훨씬 큰 아이지만, 그 아이의 모습 속에 울고 있는 작은 마트료시카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부모에게 잔인한 양육 지침들에 대해 꼬집은 홍한별 작가의 글도, ‘남자 학자나 지식인을 보면 존경심보다는 밥은 누가 차려줬는지, 아이는 누가 키워줬는지등이 궁금해지며 코웃음이 나왔다던 임소연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의 글도, ‘육아란 스스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의 과정이며, 때로는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을 원한다는 전유진 아티스트의 글도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특히,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하고 위로 받은 부분은 인터뷰어 엄지혜의 글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인데,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같은 여성으로서 미안했다고 한다. ‘돌봄을 끝낸 시기에 또 다른 돌봄을 시작하게 만든 당사자가 나라서.’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엄마의 시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엄지혜는 친정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한 창 일 때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학 전문가가 해 준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엉엉 울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고, 부모가 또 자식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어요. 그때 잘하시면 돼요.”

 

*

 

돌봄과 작업을 읽으며 생각했다. ‘돌봄은 결국 돌아봄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돌보며 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누군가의 돌봄에 기대어 살며, 내가 돌볼 또 다른 누군가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돌봄돌아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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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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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샹송을 듣고 있습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패배의 신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샹송을 듣고 있으면 불어는 입술과 입술이 가장 많이 닿는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좋다고요.

 

그 아름다운 언어로 쓴 당신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던 12월이었지요. 녹색광선에서 패배의 신호를 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당신의 작품 두 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작가인지 먼저 알아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먼저 제가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고백해야겠군요. 작년 12월 전까지 저는 당신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흘려 들은 이야기로 당신의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이죠. 내게 당신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긴 당돌한 아가씨였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요절했다고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당신은 요절로 박제된 젊은이가 아니었어요. 열여덟 살에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한 이후 2004년 심장과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설과 희곡 등을 꾸준히 발표한 현역작가였지요.

 

제가 읽은 당신의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습니다. 나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어떻게 열여덟 살의 아이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스물 네 살의 젊은이가 중년의 감정을 그릴 수 있을까? 놀라고 또 놀라고 말았지요. 그래서 패배의 신호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렸습니다. 가장 통속적인 사랑을 가장 통속적이지 않게 쓰는 당신의 작품을요.

 

패배의 신호가 도착했던 날, 나는 오랫동안 책의 표지를 바라봤습니다. 쨍한 오렌지색 안에 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어요. 창가에 기대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요. 그리고 천천히 책장을 펼쳐 당신의 글을 읽으며 루실과 샤를, 디안과 앙투안을 만났습니다. 각 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생에 한두 번쯤 사랑에 대해 같은 정의를 내리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 우리는 진격하는 사람이 됩니다. 앞 뒤 잴 것 없이, 옆을 바라볼 틈도 없이 서로를 향해 진격하고, 함께 나란히 달려갑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겹칠 때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된다는 걸. 루실과 앙투안이 그랬던 것처럼요.

 

언제나 뜨거운 사랑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저이지만, 이번에는 디안과 샤를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퇴각의 북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마음에 제 마음을 포갰습니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외면하며 그저 지나가는 소리일거라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두 사람을 보면서, 어쩌면 패배의 소리는 모든 감각을 잃게 하는 주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패배의 신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결국 고독이었으니까요. 그제야 당신이 책 서두에 샤를의 입을 빌려 루실이 갖고 있는 희열이 고독의 희열이었다고 쓴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사랑은 결국 고독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다시 책의 표지를 바라봅니다. 창에 기대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인은 루실이 되었다가 디안이 되었다가 앙투안이 되었다가 샤를이 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창 너머 세상이 아니라 퇴각의 북소리를 따라 온 고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겠지요. 고독이 된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프랑수아즈 사강. 모든 것이 퇴각하는 겨울에 패배의 신호로 내게 와 주어 고맙습니다. 사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패배의 신호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처럼 퇴각한 후에 다시 진격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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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태석 - 톤즈에서 빛으로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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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삶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신부님 선종 10주기에 맞춰 나온 정본 전기 신부 이태석(이충렬, 김영사)이었지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앞부분만 보려고 펼쳤는데,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어 한 호흡에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와 생활성서사에서 출간한 내 친구 쫄리 신부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톤즈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얼마 전에는 그가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챙겨보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몰랐던 신부님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저는 신부님이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의사의 길을 가려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고만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다는 문장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부님이 전공의 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 대신 성당을 찾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속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시험은 봐도 되지 않았을까, 일단 시험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그 분 발 앞에 엎드려 세상을 향해 자라날 욕심마저도 봉헌하셨더군요. 이 사실이 제가 간과한 이야기의 출발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부산에서 태어나 소알로이시오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제가 몰랐던 사실입니다. 책을 읽으며 소알로이시오라는 이름을 만났을 때 저는 전율했습니다.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으니까요. 훗날 선교 사제가 되어 톤즈의 아이들을 만나러 갈 신부님께 세례를 베푼 사제가 세계 곳곳에 <소년의 집><소녀의 집>을 만든 소알로이시오 신부님이었다는 사실은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이 하느님 당신 계획에는 있었습니다.”라는 고백이었지요.

 

신부 이태석을 읽으면서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고백이 신부님 삶 안에서도 펼쳐졌음을 느꼈습니다. 의사가 되려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수사가 되고, 사제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톤즈로 가기까지 신부님 삶의 여정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계획들은 신부님께 주어진 자유 의지속에서 선택돼 더 빛을 발했지요.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의 선택 덕분에 말이에요.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서 지원했을 때 수도원 시설에 있던 청소년들이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지원자 수사님은 왜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님이 되려고 하세요?” 아이들은 의사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겠다는 신부님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신부님은 의사보다 신부가 좋아서 수도원에 왔다고 대답했지만 이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돌멩이다이아몬드였지요.

 

아이들이 또 다시 의사 말고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자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되 물었습니다. 길거리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떨어져 있으면 무엇을 집어들겠느냐고요. 아이들이 당연히 다이아몬드죠!”라고 대답하자 신부님은 말합니다.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야.”라고요.

 

하느님과 청소년이라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든 신부님은 여러 과정을 마치고 톤즈로 향합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지요. 가난과 전쟁에 일상을 잃어버린 아이들 속에서 신부님은 돈보스코 성인의 삶을 이어갑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성인, 신부님이 소속돼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의 창립자인 돈보스코 성인처럼 아이들 곁에서 살아간 것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공부하며 청소년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며, 다이아몬드의 원석인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세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신이 보여준 사랑 덕분에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갔습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고, 악기를 연습하며 꿈을 꾸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신부님은 완성된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발견된 병 때문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다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으니까요. 신부님의 죽음은 톤즈에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신부님과 우정을 나누던 아이들은 물론, 신부님께 치료를 받던 한센인들과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던 군인들까지도 신부님의 죽음을 애도했지요. 그러나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톤즈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린 제자들도 있고, 의료진이 된 아이들도 있었지요. 신부님이 가르친 제자 중에 40여 명이 의료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당신을 기억하며 톤즈에 있는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하고 말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한 사람의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2021년 겨울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서로를 향해 마음 한 조각 내어줄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요. 이런 시기에 사랑을 나누었던 신부님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온 것에도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그 이유를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이 신부 이태석을 읽으며 그 이유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신부님의 열 번째 하늘 생일을 기념하며 세상에 온 선물일지도 모르니까요.

 

돌멩이가 아닌 다이아몬드를 집어 들었던 이태석 신부님!

당신의 삶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다이아몬드를 집어들길,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 더 반짝 빛나게 되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신부님께서 사제서품 성구로 선택하신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는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잊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도 기억해주시기를 전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음악인 청소년의 웃음소리가 날마다 천국까지 전해지길, 그 음악을 들으며 신부님과 돈보스코 성인이 함께 미소짓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짧았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쫄리 신부님, 신부님이 발견한 다이아몬드가 온 세계에 빛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안녕!

 

2021년 12월, 당신을 기억하는 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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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사, 기쁨과 희망의 여정
김선필 지음 / 눌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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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가 어떤 걸음으로 걸어왔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다양한 시선으로 교회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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