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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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활동을 하며 TV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아나운서 손미나, 하지만 언젠가부터 TV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녀가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 출간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도 당시로서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스페인이라는 나라여서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치열한 경쟁이 있었을 테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긴장 속에서 살아왔을까 싶어 놓는 게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과 그렇게 달려왔으니 지칠 만도 하겠다는 생각 속에서 아무튼 멋진 결정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하게 된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처음 출간됐을 당시엔 꽤 화제가 됐었음에도 당시 읽어봐야지 하면서 못 읽어봤던 책이기에 뒤늦게나마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방송일을 하며 지냈던 그녀가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스페인에서! 자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타국에서 그 나라 언어로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수시로 진땀 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 상상은 가지만 솔직히 피부로 느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나라는 다르지만 스페인 또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에는 국경을 넘는 차이는 크지 않은 듯하다. 그 나라의 문화적 성향 등이 다를 수 있겠지만 소개되는 에피소드 속에 함께 공부했던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의 친밀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신선하고 즐겁게 보였다. 이런저런 아찔한 상황들이 많았겠지만 많은 경험들을 손미나식 유쾌하고도 긍정적인 문체로 담아냈기에 글을 따라가는 발걸음도 즐겁고 가벼웠던 것 같다.

고집이 세서 단점인 점도 있지만 서양 문물을 마구 받아들여 뒤섞여버린 우리의 문화와 비교했을 때 해외 영화를 들여오면서도 자신들 언어로 더빙하여 영화로 상영하는 스페인의 방식은 참 독특하고 강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국의 음식도 맛있는데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는 인식은 멈춰 서서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시간 개념이 달라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나와도 미안해하기는커녕 유쾌한 그들의 방식 또한 조급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문화와 상당히 달라 개념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시간에 쫓기며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반문하게 되는 대목이어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당황스러운 일들이 많겠지만 그로 인해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다양한 생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선택한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묵묵히 즐기는 그녀의 일상들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가슴 찐하게 다가와졌던 건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녀의 문장력도 한몫했지만 영화 속에서나 만나봄직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운명 같은 만남이 점점 각박해져 고립돼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기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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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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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이스라엘 전쟁까지 미디어로 접하는 전쟁의 실상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미디어나 글로 접하는 것도 이렇게 참담하고 처참한데 바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팔, 다리가 잘려나가 신음하다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격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 6.25 전쟁을 겪으신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자신이 겪은 것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전쟁이었노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전쟁영화나 소설이라 하면 피부로 와닿는 정도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최근 불거진 전쟁 상황이 더해져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는 다른 소설보다 더 깊게 와닿았던 것 같다.

4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 이바노프스카야, 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보고 자란 세라피마는 정규 교육은 물론 독일어까지 공부한데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배운 사격 솜씨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소녀이다. 작은 마을이기에 가족같이 지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엄마와 사슴 사냥을 나섰던 세라피마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독일군들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침까지 웃으며 인사 나누었던 이웃들이 처참한 몰골로 하나 둘 총에 맞아 쓰러지고 그것을 바라보던 엄마가 우두머리에게 총을 겨누던 찰나 오히려 엄마가 독일군에게 먼저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바로 옆에서 처참하게 죽은 엄마를 목격한 세라피마는 독일군 앞에서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마을로 끌려가 독일군들 앞에서 강간당하려던 순간 붉은 군대의 등장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리나를 만나게 된다.

이미 죽은 엄마의 몸에 석유를 뿌려 태우고 아끼던 세간살이를 깨부수던 이리나를 향한 세라피마의 분노는 독일군에 대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을 이용하여 이리나는 세라피마를 소녀 저격수로 키우기로 하고 소녀 저격수를 훈련시키기 위한 장소로 데려간다. 그 곳에서 만난 비슷한 연배의 소녀들은 세라피마처럼 가족을 잃고 이리나를 만나 모이게 되었고 다들 전쟁으로 인해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서로 끈끈하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녀들. 눈앞에서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현실에서도 그녀들의 순수한 모습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한창 공부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고민할 나이에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격 연습을 한다는 게 가혹하고도 슬프게 다가왔다.

일본인이 쓴 독소전쟁 소설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가장 크게 다가와졌던 것 같다. 잘 모르던 역사 공부를 다시금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전쟁에 대해 방관하는 태도만으로 있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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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 문학인 산문선 4
메도루마 슌 지음, 박지영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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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키나와 문제를 다룬 '슈리의 말'이란 소설을 읽고 오키나와 역사를 조금 더 알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시기적절하게도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그간 오키나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1879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병합되고 이후 일본의 패전으로 미국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다시 일본으로 되돌려진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오키나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며 이 책은 그런 오키나와가 처한 상황과 일본 본토인들의 이권을 위해 이용당하는 오키나와인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당한 일들과 상당히 겹쳐짐을 알 수 있다. 야마토(본토) 인들에게 우치난츄(오키나와인)는 같은 일본인이라는 동질감과 유대감보다는 자신들보다 하위 종족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이 전시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수난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자행되던 것과 유사한 면이 많이 포착된다. 전시 상황에 오키나와로 끌려와 위안부란 수난을 겪었던 중국인과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물론 패전 후 일본인 대신 미군들을 상대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이것은 오키나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이 나름 충격적이다.

일본의 70%가 넘는 미군부대시설이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성폭력, 폭행, 살인 등의 사건, 어떻게든 군사시설을 본토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일본인들 간의 의견 차이, 오키나와인들의 항의에 선심 쓰듯 인구가 더 적은 곳으로 군대를 이동해 주겠다는 등의 눈 감고 아웅식의 대처, 그럼에도 본토인들은 오키나와의 역사나 오키나와인들의 수난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기에 이르렀으며 자국 국민들 인식에 해가 되는 사건은 은폐하거나 교묘한 말장난으로 둔갑하여 오키나와인들을 두 번 죽이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분노를 일으켰던 일이고 그로 인해 젊은 세대가 우익으로의 파장이 크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점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집단 자살이나 학살을 자행해놓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만행과 교묘한 말장난으로 역사를 대면하는 그들의 행보는 피해를 입은 오키나와인들에게도, 책을 읽는 나도 분노를 느끼기에 차고 넘친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모든 증거가 있음에도 외면하고 부정하며 오히려 사건의 발단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행위보다 더 어려운 일인가 묻고 싶다. 왜 독일인은 가능하고 일본인은 가능하지 않은가, 투쟁 중인 오키나와인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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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픽션 나이트
반고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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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불 끄고 혼자서 전설의 고향을 즐겨볼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호러'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절대 외면할 수 없었던 <호러 픽션 나이트>는 아직 접해보지 못한 작가님이기에 더욱 궁금하게 다가왔다.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호러 픽션 나이트>는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귀신이란 존재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소설들이라 일상의 서늘함과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오며 생각했던 궁금증들이 명쾌하게 소설 속에 녹아 있어 낯설지 않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결코 실망감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의 첫 문은 흉가 체험으로 모인 동호회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각자 겪었던 기묘하거나 오싹했던 이야기들을 돌아가며 주고받는 형식으로 시작하며 끝맺음이 '좀 싱거운데?' 싶은데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무관심의 존재인 주인공이 자기한테 다가와 준 친구와 어울리며 느꼈던 기쁨을 이후로 자신감을 회복하여 다른 친구와도 어울리게 된 주인공은 오싹한 친구의 계략에 빠져든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지만 화장실에서 나누는 익명의 낙서가 매개가 되어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던 <시체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어릴 적부터 혼자 노는 것이 일상이었던 주인공이 학교 수업 시간에 만든 종이 전화기를 통해 듣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그로 인해 친한 친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이야기가 담긴 <벽 너머의 소리>,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블랙아웃 증상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정신이 들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장소나 모습인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옥상에 갇힌 상태로 술을 마시지만 이후 정신이 들자 엄마의 뱃속에 있던 태아 시절부터 다시 거스르는 인생을 사는 이야기들 담은 <과거로부터의 해방>, 인간의 욕심을 담은 섬뜩한 옛날이야기인 <검은 짐승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물갈퀴가 생기면서 살던 도시에서 벗어나 바다로 돌아간 이야기를 담은 <제3의 종>, 첫 번째 이야기와 이어지는 <귀신은 있다>로 <호러 픽션 나이트>는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는 단편마다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자연을 해치게 되고 그로 인해 물고기로 변한 사랑하는 아내가 죽음에 내몰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제3의 종>은 오래전 진화하며 물 밖에서 숨을 쉬게 된 인간이 공기가 나빠지면 다시금 물로 돌아가는 진화를 거듭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귀신 이야기와는 다른 섬뜩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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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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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봤을 때는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지만 최근 읽은 <호텔 피베리>의 작가 '곤도 후미에'란 이름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던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는 예상보다 더 가슴 따뜻하고 술술 읽히는지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겨 하지 않고 혼자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에이코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미스이다. 남자친구도 없지만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어 휴일에는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에이코는 어느 날 우연히 집 근처에 위치한 '카페 루즈'를 발견하게 되고 오래전 한 직장에 몸담았던 동료가 카페 사장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규모는 작지만 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 루즈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된 에이코는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한다.

한 직장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직장 동료들과 친밀히 만남을 갖는 일 등을 피하며 지냈던 에이코의 생활은 카페 루즈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게 된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오다가다 마주치기만 했을 뿐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던 주민과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의 남편이 들고 오는 디저트가 힌트가 되어 불륜은 아니지만 불륜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뻔한 사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약속하여 직장을 그만두려던 동료가 카페 루즈를 방문한 뒤 남자친구의 실체를 알게 되기도 하고 거래처 불륜 커플의 속 깊은 사정을 알게 되는 일도 생긴다. 사라진 월병으로 생긴 오해가 재밌는 말장난이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카페 루즈의 주인인 마도카가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맛본 인상 깊은 디저트들을 가게에 내놓으며 디저트의 유래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역시 디저트에 진심인 마도카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읽고 싶은 마음에 평소 즐겨 다니는 카페에 가서 읽었는데 카페 사장님이 새로 만든 디저트라며 내주시는 모습들이 카페 루즈의 마도카와 닮아서인지 소설이 더 정감 있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 그런 이유로 에이코로 빙의되어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카페를 주제로 한 소설인 '아오야마 미치코'의 말차와 코코아 시리즈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왠지 모를 반가움도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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