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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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너무 재미있게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추천도 한 책이 있어. <세 여자>라고아빠가 아마 몇 번 이야기 했을 거야. 그래서 그 이후 그 책의 지은이 조선희 님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었지. 신간 알림도 해 놓았더니, 몇 달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단다. 지은이 좃ㅅㅅㅅㅅㅅ 님은 기자 출신으로 아빠가 알기로 <세 여자>가 첫 번째 소설이었어. 그리고 소설은 이번에 출간한 <그리고 봄>이 두 번째일 거야. ‘아빠가 알기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서 찾아보니, 아주 오래 전에 소설을 한 편 쓰신 것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세 여자>가 소설로는 두 번째, <그리고 봄>은 세 번째가 되겠구나. 아무튼 <세 여자>를 재미있게 봐서 신간 <그리고 봄>도 읽었단다.

<그리고 봄> <세 여자> 같은 역사 소설은 아니고 현재를 그린 사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담았더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기 깔맞춤인 그런 소설인 것 같았어. 소설은 2022년 봄부터 2023년 봄까지 1년 남짓의 시간을 다루고 있단다. 아빠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처를 옮겼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렸단다. 그에 좌절한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 나오는 50대 후반의 부부란다. 그들도 민주당 대통령 경선이 있기 전까지는 지지하는 사람이 달랐는데, 경선이 끝난 이후로 1번 후보로 지지를 통일했단다. 그들에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2번을 찍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3번은 뜻은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들의 딸은 곧 죽어도 3번을 찍었고, 아들은 소위 말하는 2찍남이었어. 이렇게 가족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면 어떨까?


1.

20대 자녀를 둔 아빠 영한과 엄마 정희. 큰 딸 하민은 3번 후보자 지지자로, 아빠와 엄마의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아 1번 후보자가 0.7%로 지는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영한과 정희는 생각했어. 아들 동민은 2찍남으로, 아빠 영한의 속을 긁었는데, 영한은 자신의 아들이 2찍남이라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어 몇 번이나 말다툼을 하고 그로 인해 동민이 집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그래서 집은 영한과 정희와 딸 하민이 지냈어. 식구끼리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도 동민을 나갔단다. 집을 나간 동민은 친구와 함께 인디 밴드를 했단다. 인디 밴드도 잘만 뜨면 엄청 인기 있고 돈도 많이 버니까, 음악을 좋아서는 첫 번째 이유지만 인기와 돈도 음악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지.

대선이 끝나고 첫 가족 식사 모임을 했어. 하민이 쏜다고 했어. 동민도 참석했지만 여전히 영한과는 냉전 중이었지. 그런데 그 식사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 선언을 한 하민외국인 여자와 진진하게 사귀고 결혼하겠다고 커밍아웃을 한 거야. 요즘 동성 커플의 공개 선언이 색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민의 커밍 아웃은 엄마 정희에게 큰 충격이었단다. 오히려 영한은 사랑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려고 했어. 정희는 딸 하민이 결혼이 아닌 친구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정희는 하민의 커밍아웃 이후 겉으로 반대는 하지 못하고(딸의 뜻을 거슬리는 엄마가 되긴 싫고) 혼자 속으로 낑낑 앓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단다.

하민은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했단다. 하민은 애인 엘리샤를 식구들에게 정식 소개도 했어. 결혼식은 지인들끼리 작게 하려고 한다며, 엄마 아빠한테도 일단 초대장은 보내는데 안 오셔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문제는 하민의 애인 엘리샤의 부모님이었단다. 엘리샤는 튀르키예 사람인데, 부모님이 하민과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한다고 하셨어. 하민은 결국 둘이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식구들에게 이야기 했단다. 정희는 안도의 한숨으로 몰래 내쉬었단다.


2.

계절마다 한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봄은 엄마의 정희의 관점이고, 여름은 딸 하민의 관점이었단다. 엘리사의 부모님의 명령으로 이스탄불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 하민은 엘리사와 이별을 준비했단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도 같이 참가했어. 그런데 그들은 이별을 준비하면서 둘은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는 것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단다. 하민은 이것 저것 알아보더니 엘리사와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어. 독일은 동성애에 관대하여 색다른 시선으로 사람도 적고, 결혼절차도 쉽고, 동성 부부가 입양하는 것도 쉽다고 했어.

일단 회사 휴직을 2년을 하고 독일에서 지내보기로 했어. 이런 계획을 하민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엄마 정희는 전보다 더 큰 근심에 빠졌단다. 갑자기 폭삭 늙으신 것 같기도 했어. 하지만 이건 하민 자신의 인생이라서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단다. 갑자기 늙어 보이는 엄마와 아빠를 걱정하는 것뿐.

이번에는 가을, 동민의 이야기란다. 동민은 수십 차례 취업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합격이었어. 얼마나 좌절감을 느꼈을까.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하기로 했어. 94라는 친구와 미호라는 친구와 인디 밴드를 만든 것이 2년 전이었어.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알리고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미호는 얼마 전에 밴드를 그만두고 취업을 했어. 94와 동민 둘만 남았단다. 2년 동안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집세 내는 것도 빠듯했단다. 누나 하민이 찾아와서 집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고, 동민은 돈도 없고 음악 하는 것도 좀 지쳐 있던 상황이라서 누나의 제안에 곧바로 동의했단다. 사실 동민 자신도 집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선뜻 먼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나가 옆구리를 찔러주었던 거지.

동민은 악기들도 모두 처분해 버렸어. 집에 들어왔지만 아빠와는 여전히 서먹한 사이동민은 다시 취업을 한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결과는 안 좋았단다. 그러다가 미호의 소식을 들었어. 그날 이태원에 갔다가 그만 죽었다고 말이야. 동민은 큰 충격을 받았어. 아빠도 재작년에 그 뉴스를 듣고 비록 아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 충격이 컸던 기억이 있구나. 동민에게 미호가 단지 같은 인디 밴드 멤버만은 아니었어. 동민과 미호는 한때 사랑하던 사이였거든. 그런 미호의 죽음은 동민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겨낼 수 없는 슬픔이었단다.


3.

겨울이 왔어. 아빠 영한의 관점이지. 식구 구성원들 중에 아빠를 겨울로 삼았다는 것은 좀 의미심장한 것 같구나. 네 식구 중에 겨울을 누구와 매핑을 시켜야 할까? 하는 생각에 지은이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아빠와 매핑시키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의 계절 겨울. 어울리는 것 같다. 영한은 1980년대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었어. 1 4개월 동안 감옥에도 다녀왔어. 1 4개월이냐. 1 4개월보다 더 감옥에 가면 군대 면제가 되기 때문에 나라는 그 꼴을 볼 수 없어서 군대를 갈 수 있는 가장 긴 1 4개월을 감방에 넣은 거야.

감옥과 군대를 모두 다녀오고 뒤늦게 공부를 해서 사회학 박사가 되었지. 지방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했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학과가 인기가 없어지면서 사회학과가 폐지되었어. 어쩌다 사회학과가 폐지되는 세상이 되었나, 한탄도 했지. 그래도 학교에서 버텼어. 20년을 채워서 사학 연금을 받으려고 말이야. 20년을 채우고 영한은 은퇴를 했단다. 은퇴한 영한은 친구들과 가끔 산에도 가고 그랬어. 등산은 은퇴한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상인 것 같구나. 나이를 먹다 보니 건강을 잃은 친구의 소식도 가끔, 이른 나이에 친구의 부음도 듣곤 했어. 그런 나이였어.

영한도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도어락 비밀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어. 아빠도 얼마 안 있으면 소설 속 영한의 나이가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봤단다. 약간은 우울한 것 같은데그런 일을 대비해서 꼭 핸드폰을 갖고 다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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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어느 날 이른 오후 집에 왔는데 영한은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번이 기억나지 않았다. 불편한 기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의식의 아래 칸으로 쓸어냈더니 무차별 망각의 쓰나미에 몇 안 되는 실용적인 정보도 딸려 내려가 버린 모양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영한은 현관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파트 뒷산을 넘어 보라매공원에 가서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와우산숲 위로 넘어가고 오리들도 사라져 텅 빈 연못에 어둠이 내릴 때 영한은 내 인생도 헛되고 헛된 공부들 끝에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비감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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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은 사회학과 교수다 보니 관련 책들도 참 많이 샀단다. 그 책을 사면서 아이들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지만, 그간 영한 만의 헛된 꿈이었지. 영한은 예전에도 책을 썼는데, 다시 한번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단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들 동민을 보았단다.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동민이 먼저 와서 아는 척을 했어. 둘은 오랫동안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동민은 아버지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어. 그리고 저녁도 같이 먹게 되었고, 술자리가 이어졌단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의 시간인가. 영한은 그런 동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오늘만큼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단다. 그 대화 매너의 3금은 아빠도 꼭 명심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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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동민이 먼저 와서 말을 걸다니, 영한은 이 무슨 사건인가 싶다. 동민한테는 그동안 찜찜했는데 잘됐다. 집을 나간 2년 반은 동민이 대화를 거부했고 집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대화는 번번히 핀트가 어긋났다. 노트북을 접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영한은 부자간의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 안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 돼. 지적질 금지! 가르치려는 습관을 버려야 돼. 강의 금지!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마. 곤란한 질문도 금지! 영한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정해놓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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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는 괜찮았어. 조심스레 정치 이야기도 하고동민이 왜 2찍남이 되었는지도 들었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보려고 했어. 술이 잔뜩 취하게 되자, 동민은 미호의 죽음의 이야기했어. 친한 친구인데 이태원에서 죽었다고동민은 그 일로 무척 힘들었는데 어디서 위로도 못 받고 있었던 것 같아. 술자리에서 이렇게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위로 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 술자리 이후 네 식구는 다시 관계가 좋아졌단다. 동민이 다시 가족 카톡방에도 들어왔어. 얼마 후 동민은 선배가 차린 수제 맥주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어. 영한과 정희는 그 취업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민이 그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단다.

다시 봄이 되었어. 하민은 베를린에 간지 6개월이 되었고, 그곳에서 적응을 잘 한다고 했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어.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준비도 한다고 했단다. 동민은 회사가 있는 이천에서 주로 생활했단다. 그렇게 네 식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기를 찾으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그리고 그런 것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되어 가는 모습이 잔잔하면서 재미있게 그려진 소설이었어. 아빠는 아무래도 네 명의 구성원 중에 영한에게 공감이 많이 가더구나. 소설 속 영한은 아빠보다 나이가 많지만, 네 식구에서 아빠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아빠와 비슷하잖아. 그리고 아빠도 요즘 들어 나이를 먹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그런 점들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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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24)

늙는 건 정말 종합적으로 어려워. 은퇴라는 것도 쉽지가 않지. 예전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한가운데였는데. 일이 돌아가고 같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이젠 자기가 자기를 추스르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안 굴러가. 몸은 여기저기 빵꾸 나기 시작하지. 요새 친구들 만나면 어디 아픈 얘길 많이 하는데 무릎 하나 가지고 30분씩 떠들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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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직도 3년도 더 남았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어렵게 성사된 4인 가족의 점심 식사였다.

책의 끝 문장: 지금도 남편은 박스에서 책을 꺼냈다 넣었다를 계속하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미호는 너무 아름다웠어. 동민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바꿔 불러본다. 미호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스무 살엔 누구나 아름답다. 우리도 스무 살에 만났지. 스무 살에 저 노래를 부르며 데뷔한 서태지가 지금 오십이 됐다는 건 이상하다. 우리도 결국은 오십이 될까. 그럴 리 없어. 우리가 어떻게 오십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내후년이면 서른인데 그다음에 마흔이 되고 나면 또 자동으로 오십이 되고 마는 거지. - P193

마르크스, 당신은 우리 인류에게 구원의 이름이자 저주의 이름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당신은 20세기 인류를 반으로 갈라서 싸우게 만들었다. 절대권력과 독재정치가 당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은 식민침략과 제국주의로 질주하던 자본주의의 악마성에 제동을 걸었다. 식민침략을 당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당신은 복음이었다. 당신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당신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이제 편히 잠드시라. 당신이 남긴 것을 구원의 도구로 쓰거나 파멸의 정치로 쓰거나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다. - P220

여기서 진보가 정치에 희망을 잃고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의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면 그것이 지금 일본이다. 총선 투표율이 50% 정도, 어차피 정치는 자민당이 알아서 하든 말든, 국민 절반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 관심 없다. 전후 70여 년의 자민당체제에서 민주당이나 사회당이 집권한 건 단 두 차례, 6년이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투표율도 높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자민당의 수족이 돼 있는 행정부에서 민주당은 거의 외계인 내각이었다. 민주화운동에서의 역할, 시민운동의 경험이 한국의 진보가 일본의 진보보다 나은 점이다. 그 다음은 집권 경험이 쌓여야 진보도 실력이 쌓인다. - P268

우리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믿을 것은 민주주의이고 의회정치인데 이상적인 의회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화의 한 세대를 지나 차세대로 넘어가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저 우아한 시스템에 올라탈 것인가. 독일은 나치를 딛고 훌쩍 건너뛰었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바닥을 치는 이 시기가 변화의 지렛대가 될까. 성숙한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것, 사회적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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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를 보면 볼수록 경제의 중요성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당나라와 이슬람 군대가 벌인 전쟁도 탐험가들이 새 항로를 개척하러 나선 것도, 두 차례 발발한 세계대전도 모두 경제적 이유로 설명이 더 잘 된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경제학을 돌아보게 되었고, 경제사라는 분야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23)

우리는 모두 돈을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라는 약속된 매개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안전하고 아늑한 삶을 보장해주는 집이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이 될 수도 있고요. 즐거운 공연이나 게임 속 아이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 서비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 역시 그런 욕망의 일종이지요.


(48)

경제학은 본래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이득, 또는 만족에 관심을 두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만족이나 이익을 경제학 용어로 효용이라고 하는데요. 한정된 자원과 조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따지는 게 경제학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도록 효용을 수치화할 수밖에 없는 거죠.


(55)

경제학에서 한계란 한 단위가 추가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오래 굶주렸다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경우 밥을 한 술 뜰 때마다 만족감, 즉 효용이 증가하겠죠? 이렇게 한 단위가 추가될 때 늘어나는 효용을 한계효용이라고 부릅니다. 밥을 막 먹기 시작했을 때는 배가 많이 고프니까 밥 한 숟가락으로도 상당한 효용을 얻습니다. 한계효용이 큰 거죠. 그렇지만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한 숟가락이 주는 효용은 줄어들어요. 한계효용이 점점 작아집니다. 이렇듯 더 많이 소비할수록 추가되는 만족의 크기는 줄어드는 현상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불러요.


(78)

정부라고 해서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가 모라토리움 혹은 디폴트 사태에 직면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나요? 모라토리움(moratorium)은 쉽게 말해 빚을 갚을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없으니 상환 날짜를 늦춰달라고 요청하는 일이에요. 지불 유예를 신청하는 거죠. 반대로 디폴트(default)는 채무 불이행, 즉 빚을 못 갚는다고 파산 선언하는 겁니다. 정부가 나라 살림을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놓고 그 빚을 제때 갚지 못할 때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태예요.


(118)

주식은 한자어로 그루 주()와 법 식()자를 씁니다. 무슨 조합인지 바로 이해가 되질 않죠? 그게 당연합니다. 이 표현은 주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톡(stock)’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거든요. ‘stock’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그중에는 그루터기와 저장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루터기가 뭔지 다들 아시죠? 나무나 곡식을 베고 남은 밑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루터기에서 자라난 가지를 베어다가 겨울을 보낼 땔감으로 저장했기 때문에 저장품이라는 의미까지 생겼고요. 거기서 확장해 주식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236)

다가올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구하게 되죠. 경제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골치 아픈 분야가 아니라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존재해온 인간 삶의 총체니까요. 그래서 저는 경제와 역사를 아는 것이 곧 인간을 아는 것이자 세상의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238-239)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화책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비유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골디락스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오두막을 발견합니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외출하고 빈집 식탁에 세 그릇의 수프가 놓여있었습니다. 하나는 뜨거운 수프였고, 또 하나는 식어서 차가운 수프였고, 나머지 하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수프였어요. 골디락스의 선택은 당연히 미지근한 수프였습니다.

데이비드 슈먼이라는 경제학자가 이 동화에 착안해 골디락스 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경제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중간쯤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고 지속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254)

파생상품이란 예금, 주식, 채권 같은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을 말하는데요, 부동산 저당권을 채권처럼 만들어 내다 팔고, 또 그 채권들을 잘 섞고 포장해서 평균 위험도를 낮은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내다 파는 식입니다.


(287)

흑사병은 인류사에 두고두고 남을 지독한 재난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은 농도들은 사회적 지위와 실질 임금이 높아지는 혜택을 입었어요. 또 많은 경작지가 버려지면서 영주의 통제력이 약해진 덕분에 농노는 이동의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 영지에 묶여있던 농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됐죠.

한편 지배 계층 사이에서는 보다 강력한 귀족 가문이 생겨났어요. 상당수의 영주가 권력을 잃고 몇몇 집안에 통폐합된 결과였죠. 말하자면 영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어난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귀족 가문은 이후 유럽에서 절대왕정이 등장하는 데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289)

흑사병이 퍼질수록 기존 사회의 지배층이었던 영주와 교회의 권위는 가파르게 추락했습니다. 앞에서 사람들이 이주가 전보다 자유로워졌고, 또 실질임금도 늘어났다고 했잖아요. 흑사병에 걸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오늘을 즐기자!’는 식의 소비와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후 유럽은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합니다. 타락하고 무능한 교회에 반발해 일어난 종교개혁, 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중시한 과학혁명도 비슷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죠.


(294)

경제학의 대가는 귀한 능력들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는 어느 정도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이자, 철학자이어야 합니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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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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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매년 10월이면 애서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있단다.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인터넷 서점에서는 노벨 문학상을 예상하는 이벤트도 벌이곤 하지. 아빠도 거의 매년 그 이벤트에 참가하여 투표를 한단다. 예전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를 투표했는데, 두어 년 전부터는 아빠가 모르는 작가에 투표를 한단다. 왜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대부분 아빠가 몰랐던 작가들이었거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수상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책을 찾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그래서 아빠에게 노벨 문학상은 숨어 있는, 훌륭한 작가를 알게 되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단다.

작년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수상하였단다.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사람이 탔단다. 노르웨이 작가라고 하면 아빠가 좋아하는 요 네스뵈가 있는데, 욘 포세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단다.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래서 대표작 중에 한 권인 <3부작>이라는 책을 읽었단다.

연작 소설 3편인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을 하나로 엮은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출간되었단다. 책의 뒤편에 옮긴이의 글을 보니, 폰 욘세가 최근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많이 거론된다고 써 있더구나. 몇 년 전부터 유력한 후보였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폰 욘세의 작품을 몇 년 전에 소개한 출판사는 노벨 문학상 발표 후에 돈 좀 벌었으려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드는구나. 대표작 3부작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줄게.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은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1.

첫 번째 이야기는 <잠 못 드는 사람들>이란다. 노르웨이 서남부 해변가 도시 베르겐의 옛이름은 벼리빈인데,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러니까 베르겐이 벼리빈이라고 불리던 옛날 이야기인 것이야. 벼리빈 인근에 뒬리야 지방이라는 시골 마을에 아슬레와 알리다가 살고 있었지. 아슬레의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슬레도 아버지와 함께 연주를 하곤 했단다. 아슬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슬레는 살고 있던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알리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집을 떠나셨고, 엄마와 언니 올린과 함께 지냈는데, 엄마는 언이 올린만 좋아하고 알리다에게는 막 대했단다. 그래서 알리다와 엄마 사이는 오래 전부터 좋지 않았어.

아슬레와 알리다는 17살 어린 나이지만,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고, 알리다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난 아슬레는 알리디와 함께 뒬리야를 떠나 벼리빈으로 가기로 했어. 벼리빈은 번화한 곳이므로 그들이 묵을 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이 소설은 마치 아슬레와 알리다, 젊은 여인의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싶었어. 아빠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좀 몽환적인 느낌이었단다.

벼리빈에 도착을 한 아슬레와 알리다…. 벼리빈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했어. 그런데 이 두 젊은 연인을 받아주려고 하는 집이나 여관은 없었어.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들겠지만, 그들은 묵을 만한 방을 찾지 못했단다. 아무래도 낯선 젊은 연인에, 여자는 임신해서 출산을 앞둔 것처럼 보여서 방이 있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어. 한참 뒤에야 한 노파의 집에서 머물 수 있었는데, 거기도 거의 억지로 부탁해서 간신히 묵을 수 있었단다. 그래도 정착할 곳을 찾기 전에 임시로나마 묵을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다행이구나.

그런데 며칠 뒤 알리나가 아이를 낳으려고 했어. 그들은 아이 낳는 경험이 없으니 산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아슬레가 수소문 끝에 산파를 데리고 왔는데, 그 산파 왈, 아슬레와 알리다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도 산파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 집주인인 노파는 집에 없었단다. 사실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았어. 이때부터 아슬레가 좀 의심스러웠어. 갑자기 스릴러 장르로 바뀌는 건가? 아무튼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했단다.


2.

아슬레와 알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시그발이라고 지었어. 그들은 벼리빈을 떠나서 바르벤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지냈어.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면서 이름도 아슬레는 올라브로, 알리나는 오스타로 바꾸었단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이 아슬레가 이름을 바꾼 올라브가 들어간 <올라브의 꿈>이란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올라브와 오스타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할게.

올라브는 오스타에게 결혼식은커녕 아무것도 준 것이 없어서 바이올린을 팔아서 반지 선물을 사려고 벼리빈에 갔단다. 그런데 어디선가부터 어떤 노인이 올라브를 따라왔는데 올라브를 안다면서 계속 말을 걸어왔어. 올라브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데 귀찮게 계속 따라왔단다. 빠른 걸음으로 그 노인을 따돌리고 선술집에 들어갔는데, 소름 끼치게도 그 노인은 먼저 선술집에 와 있었어. 그러면서 올라브에게 자신을 아냐고 계속 물어봤고, 올라브는 그 질문을 무시했단다. 올라브는 선술집에서 오스가우트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노인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어.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기를, 아슬레가 살던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그 마음에 어떤 딸의 엄마도 죽었고, 벼리빈의 한 산파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했어. 올라브는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자신은 아슬레가 아니라고 했단다. , 아슬레가 결국 일을 벌였던 것인가. 역시 노르웨이는 범죄 스릴서 소설에 강점이 있는 것인가. 색다른 스타일의 스릴러?

올라브는 원래 반지를 사러 벼리빈에 온 것인데, 오스가우트가 산 팔찌를 보고 너무 예뻐서 올라브도 마음이 바뀠어서. 반지 대신 팔찌를 사고 싶었어. 하지만 가격이 비쌌지. 아빠는 오스가우트도 죽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오스가우트의 도움으로 오스가우트와 같은 팔찌를 싼 가격에 살 수 있었어. 올라브는 오스타에서 그 팔찌를 줄 생각에 기뻤단다. 그런데 그날이 저물어서 벼리빈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했어. 어떤 노파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에게 계속 추파를 던졌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의 팔찌를 훔쳐갔단다.

더 놀라운 일은 노파의 남편이 집에 왔는데,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올라브를 쫓아다니면서 아는 척을 했던 그 노인이었단다. 그 노인은 이제서야 경찰에 신고를 했고, 올라브는 경찰에 체포되어 철창에 갇히고 말았어. 올라브는 왜 항변을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올라브는 그 죄가 인정되어 얼마 후에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올라브가 진짜 범인이라고 해도, 왜 항변하지 않고 그렇게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죽었을까. 아빠가 책을 읽다가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었단다. 가족을 두고 그렇게 순순히 죽을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3.

세 번째 작품을 읽다 보면 앞의 두 작품에서 읽다가 생긴 궁금증이 풀리려나. 빨리 책장을 넘겨보았단다. 3부작의 마지막 <해질 무렵>은 엘리스라는 할머니가 먼 옛날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단다. 엘리스는 다름 아닌 알리다의 딸이었단다. , 알리다와 아슬레 사이의 아기 이름은 시그발이었는데어찌 된 일인지 얼른 읽어보았단다.

아슬레가 돌아오지 않자 알리다는 시그발을 데리고 벼리빈에 갔단다. 하지만 아슬레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가 선착장에 앉아 있었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헤매 다녔으니 힘들었겠지. 그때 고향 뒬리야의 어른 오슬레이크 씨를 만났어. 오슬레이크는 알리다가 굶주린 것을 알고 밥도 사 주면서 고향 소식을 알려주었어. 알리다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했어. 그것도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의문사라고 했어.

이 소식을 들은 알리다는 충격을 받았단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엄마는 엄마인데 말이야. 그리고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벼리빈의 산파도 살해당한 후 실종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과 연루된 아슬레가 교수형을 당했다고 했어.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알리다는 오슬레이크가 한 이야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 아슬레가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막막했을 거야. 잠자리가 없는 알리다. 오슬레이크는 자신의 배에서 하룻밤 재워주겠다고 했어. 오슬레이크의 배로 가는 선착장에서 알리다는 팔찌를 하나 주었는데, 한 눈에 그것이 아슬레가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잘 간직했단다.

알리다는 아기 시그발과 함께 오슬레이크의 배에서 하룻밤을 지냈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오슬레이크는 고향인 뒬리야에 간다고 하니 알리다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갈 곳도 없었어. 결국 오슬레이크의 제안으로 그의 집의 가정부로 일하기로 했단다. 그러면 최소한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오슬레이크는 얼마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집안 일 할 사람이 없다고 했어. 알리다는 그렇게 오슬레이크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사실 오슬레이크는 알리다를 자신의 가정부로 둔 또 다른 검은 이유도 있었단다. 알리다는 얼마 후 오슬레이크의 첫째 딸 알레스를 낳았고, 둘째 딸도 낳았지만 둘째 딸은 어려서 죽었단다. 어느날 알리다는 해안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자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세월은 한참 지나서 알리다의 딸 엘리스도 할머니가 되었고, 엘리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앞서 이 소설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는데, 소설의 끝까지 그런 느낌이 들었단다. 아슬레가 예상치 못한 연쇄 살인범으로 죽어서 깜짝 놀랐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는 반전을 기대하였지만, 그런 반전을 일어나지 않았단다. 아슬레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은 알리다라도 해피 엔딩이면 좋았겠지만, 이미 소설의 분위기가 해피 엔딩이 아닐 것 같았단다.

지은이가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사실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런 작품에서 어떤 우수한 점을 찾아내어 지은이 욘 포세에게 노벨 문학상이 돌아갔는지 잘 모르겠구나. 아빠는 아마추어 독서가이니, 전문가들의 높은 뜻을 알겠니. 책이란 게 그냥 재미있으면 되지…^^


PS,

책의 첫 문장: 아슬레와 알리다는 벼리빈의 거리들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아슬레는 그들이 가진 모든 물건을 담은 보따리 두 개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아버지 시그발에게서 물려받은 바이올린이 든 가방을 쥐고, 알리다는 음식이 든 그물자루를 들고서, 그들은 이제껏 몇 시간이나 벼리빈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머물 곳을 찾으려 했다.

책의 끝 문장: 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자 파도가 그녀의 잿빛 머리를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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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케플러는 우주의 조화를 지배하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좇고 있었다. 그건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뒤엉킨 덤불을 헤치며 전설의 사냥감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도 같았다.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냥꾼만이 목표물을 정확하게 겨냥할 기회를 얻는 법. 무기라고는 아직 불완전한 계산과 미완성의 공신뿐이고, 더군다나 가장 노릇과 책임, 빌어먹을 가정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종을 번갈아 울려대며 소리치고 날뛰는 광대들에게 에워싸여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기회를 노리단 말인가? 그러나 딱 한 번, 아주 잠깐이나마 그 전설의 새를 본 적이 있다. 기껏해야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것을 보았단 말이다. 섬광 같은 그 짧은 순간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126)

케플러는 내기를 위해서, 그리고 튀코의 자료를 빼내기 위해서 자신을 속인 셈이었다. 화성은 그렇게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똑똑한 학자들이 수없이 도전했음에도 화성은 수천 년간 비밀을 내주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대로 우주에서 행성이 태양이 아닌 지구의 위치에 따라 그 값이 결정되는 왕복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 행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행성이 일정한 속도로 완벽한 원을 그리며 돈다면, 궤도상에서 동일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화성의 궤도를 규명하기에 앞서 이런 의문점을 비롯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시치미를 뗀 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며 매끈하고 복잡한 설계도를 재구성해야 하는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221-222)

제 입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주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저는 행성이나 별의 위상, 즉 행성끼리 이루는 각도와 그 배치와 인간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좋은 위상과 나쁜 위상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습니다. 우주의 현상은 조화와 규칙성, 아름다움, 강렬함, 약함, 불규칙함, 이렇게 분류할 수 있을 뿐이지요. 별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없애는 것도 아니며 개인의 구체적인 운명을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특정한 성격과 기질을 불어넣을 뿐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별자리가 지닌 특성과 양상을,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별빛의 특징을 그대로 받아서 무덤에 갈 때까지 지니게 됩니다. 이 특성이 그의 육체 형태와 몸가짐, 태도, 성향, 정서적 감응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생기 넘치고 친절하며 사교적인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고 나태하여 매사에 시큰둥한 특징을 보이는 겁니다. 아름답고 정확한 별자리일 때 태어났는지 광범위하고 볼품없는 모양일 때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리고 행성들의 색깔과 움직임에 따라 그런 특징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233-234)

대사님, 갈릴레오의 얇은 책이 간결하고 단순해 보인다는 이유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그의 저서 <별의 전령>은 아주 중요하고 훌륭한 책입니다. 몇 쪽만 훑어보아도 금세 알 수 있지요. 그러나 그가 주장하듯 그 안에 담긴 모든 내용이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황제께서도 예전에 작은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신 적이 있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비록 증거를 제공하진 못했지만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의 무리일 거라고 추측한 바 있습니다. 행성에 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저는 그가 발견한 네 개의 새로운 행성이 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이 있다면 다른 행성에도 위성이 있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별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과 그것들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251)

나의 사랑하는 레기나야. 나는 삶이란 게 정해진 형체도 없이 끊임없이 변하는 물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주어진 용해된 유리 덩어리와도 같아서, 아주 조야한 도구조차도 없이 오직 맨손으로 만지고 다듬어 완벽한 모양으로 빚어 우리 안에 품어야 하는, 그런 물질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우리가 이생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바깥세상의 혼돈을 내면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으로 바꾸는 것. 하지만 아니더구나. 삶이 우리를 품는 것이고, 우리가 커다란 유리구슬에서 지워 내야 할 흠집인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자기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본다고들 하지. 사실 어찌 물에 빠져 죽는 사람만 그렇겠니? 어떤 방식으로 죽든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수많은 모습과 행동과 생각 속에 감춰져 있던 본질적인 모습을 인식하게 될 거야. 죽음은 완성을 위한 수단이지.


(278)

정신은 모든 수학적 개념과 형태를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경험적인 신호를 통해 이미 아는 것을 기억해 낼 뿐이지요. 수학적인 개념은 정신의 본질입니다. 정신은 한 지점으로부터의 등거리를 생각해낸 뒤, 다른 어떤 감각 인식이 없어도 그 점으로부터 원을 그립니다. 이렇게 설명해 보지요. 만약 정신이 신체의 눈을 쓰지 못한다면, 외부에 있는 사물을 상상하기 위해 눈이 필요하므로 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나름의 법칙을 지시할 것입니다. 정신 속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양()에 대한 인식이 눈의 존재 방식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정신의 존재 양태에 따라 눈의 존재 양태가 결정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기하학은 눈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미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니까요.


(280)

나는 다시 한번 화성에 원 궤도를 적용해 연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화성 궤도는 양옆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위아래는 바깥으로 나가는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타원형 궤도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학자들이 천문학이라는 학문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고수해 온 원동운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찾아낸 증거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모양의 궤도가 화성뿐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나머지 행성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미천한 내가 어떻게 우주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낸단 말입니까? 그리고 거기 들어갈 노력과 수고란! 주전원과 행성의 역행,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마구간을 싹 치우고 이제는 수레에 가득 실린 말똥, 즉 이 타원형 궤도만 남았습니다. 어찌나 악취가 지독한지! 그런데 이제 그 안에 들어가 구린내나는 말똥을 혼자 끌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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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1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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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 <강신주의 장자수업 1>을 읽었단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강신주 님을 좋아한단다. 아빠는 틀에 박혀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면서 지내는데, (그게 더 편한데) 강신주 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거든.. 아빠랑 생각이 많이 다르시지만, 아빠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그런 분이지그래서 강신주 님의 책이 출간되면 관심 있게 눈 여겨 보는 편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쓰신 책이 장자라니…. 강신주 님이 장자에 대한 책은 그 전에도 쓰신 것으로 알지만, 다시 한번 장자에서 대해서 이야기하신 모양이구나.

장자는 아빠가 동양 철학자들 중에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란다. 동아시아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공자이겠지만, 장자는 공자가 영향을 준 동아시아에 살고 이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사람이거든. 장자를 읽다 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아빠도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행동하고 싶게 만든단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곤란을 좀 겪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생각만 장자처럼 하는 것으로…^^ 그렇다고 아빠가 장자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야. 장자에 대한 책들을 여럿 읽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심오한 철학을 아빠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아무튼 아빠가 좋아하는 강신주 님이 아빠가 좋아하는 장자에 대해서 책을 쓰셨다니, 당연히 읽어야겠지.

이 책은 EBS를 통해 강신주 님이 방송도 하신다고 하더구나. 어찌 보면 그 방송의 교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TV가 없으니, 본 방송을 보긴 어렵지만, 유튜브에도 조금씩 소개가 되고 있더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신주 님이 살이 많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방송하시는 모습을 보니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구나. <강신주의 장자수업>은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뿌듯하면서 무엇인가 가슴 속에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채워진 느낌을 다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참 어렵더구나. 너희들에게 이 책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희들이 좀더 크면 직접 한번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물론 바쁘시고 장자에 관심이 없으면 안 읽어도 상관 없고 말이야. 서두가 길어졌구나. 아빠가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짧게 몇 가지만 이야기할게. 장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관련된 책도 많고, 유튜브에 동영상도 많으니 보면 될 것 같구나.


1.

장자(壯者)는 장 선생님 정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 중에 송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송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약해서 무시당하고 깔보던 나라였다는구나. 그런 그의 국적이 사상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장자>는 장자뿐만 아니라 장자를 따르던 이들이 약 300년간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장자가 직접 쓰거나 이야기한 내용도 있지만, 그런 장자를 따르고 공부한 이들이 쓴 내용도 있는 거야. 인터넷 좀 찾아보니 <장자>는 총 33 6 4606자로 되어 있다는 구나.  

<장자>는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마다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이해한 바로는 장자 사상의 핵심은 쓸모 없음이란다.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단다. 어떤 사람이 능력도 좋다면, 그러니까 쓸모가 많다면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나라는 그 사람을 등용하게 된단다.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거나 때론 전쟁에 투입되지. 그렇다 보면 금방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별로 능력도 없이 쓸모가 없다면 국가는 신경도 쓰지 않을 테고, 조용하게 한 평생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쓸모 있는 인재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단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단다. ? 장자가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단다. 물론 쓸모가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쓸모 있는 인간은 자신보다 국가가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했어. 그러면서 국가가 원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단다. 나아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이 찔릴 말이로구나.

쓸모 없음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반에 걸쳐 나온단다. 6장 거목 이야기도 쓸모 없음을 이해하는데 재미있는 우화가 나온단다. 잘 자란 나무는 재목이라고 해서 금방 누군가 베어간단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가질 않아서 엄청 클 때까지 자랄 수 있단다. , 쓸모 있는 것이 좋은가? 쓸모 없는 것이 좋은가? 장자와 강신주 님께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대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장자가 쓸모 없음을 이야기하자 혜시라는 사람은 반박을 했단다. 쓸모 없는 커다란 박은 부서져서 버려진다고 말이야. 그러자 장자는 이에 반박을 한단다. 커다란 박은 박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배로 쓸모다 있다고 말이야. 사람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란다. 어느 일에 있어서 내가 쓸모가 없을지라도 다른 일에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보통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쓸모가 없어져도 그를 소중히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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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도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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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라고 하면 빈 배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빈 배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오쇼 라즈니쉬가 장자에 대해 쓴 책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관념을 딱 깨어주는 이야기였단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우리가 빈 배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이야기는 이렇단다.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는데 어디선가 떠 내려온 빈 배가 내 배에 부딪히게 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내 배에 부딪힌다면 어쩌겠니. 당장 노발대발 큰 소리를 칠 거라는 거지두 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자신을 빈 배처럼 만든다면 아무도 나에게 맞서지 않고, 나로 하여금 상처를 입지 않게 되겠지. ,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구나.

장자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라고 하는 아주 큰 새에 관한 대붕 이야기란다. 붕은 원래 엄청나게 큰 물고기 이었어. 그런데, 엄청나게 큰 새 으로 변했어. 얼마나 크냐면 날개가 몇 천 리라고 했어. 그렇게 크다 보니 땅에서는 날개 짓을 못해서 날지를 못했어. 커다란 태풍이 와야만 그 바람을 이용해서 날 수 있었단다. 마침내 큰 태풍이 와서 붕은 날아올랐단다. 그렇게 하늘을 날면서 붕은 자유롭다고 생각했어. 오랜 기다림과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자유라고 할까.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하는 자유. 제한된 자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 제한적 조건이 어려워서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마치 메추리처럼메추리는 날고 싶을 때 날고, 앉고 싶을 때 앉는단다. 현재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 얻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유롭다고 하지. 태풍이 오면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피한단다. 대붕처럼 제한적이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그리고 대붕은 바람이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이것은 두 존재 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해. 장자는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고민했던 철학자이고, 우화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단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에 바람 이야기가 있어.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구멍이 소리를 나지 않는다는 거야. 피리 등 악기들 중에 구멍에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있는데 바람이 없다면 그 악기들은 아무런 소리를 못 낸다는 거야. 그렇게 관계에 엮여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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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으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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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듣는 것을 장자는 강조했단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더 나아가 기로 들으라고 했어. 아빠가 성격이 급해서 차분히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노력은 하려고 한다. 아빠도 잘 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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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325)

음악을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혹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거실의 불을 끄거나 빛을 약하게 조절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군주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행위와는 다릅니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상대방에 복종하겠다는 의지와 무관합니다. 음악이나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이 상대방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면, 눈을 감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는 신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타자의 말이나 혹은 타자를 듣는다는 것은 지해에의 의지나 복종에의 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건 소통에의 의지니까요.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고 말합니다. ‘’, ‘마음’, 혹은 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은 듣겠다는 그의 의지입니다. ‘듣겠다는 소통에의 의지가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고,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 기로 듣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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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리소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이 이야기도 참 인상 깊었거든. 장자의 핵심 철학인 쓸모 없음에 대한 주제도 포함되어 있고 말이야. 지리소라는 사람이 있었어. 지리소라는 외형은 꼽추로 제대로 설 수도 없는 몸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지리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지리소는 그 자신의 몸을 탓하지 않았어. 빨래와 바느질에 소질이 있어서 돈벌이에도 문제가 없었어. 자신이 다 가졌다고 생각했어. 장애를 가졌다 보니 나라에서 돈도 좀 주고 그랬대. 그런데 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이미 자신은 먹고 사는데 문제 없고 사는데도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끌려가도 지리소는 꼽추라는 장애 때문에 피할 수 있었어. 진정 모든 것을 다 자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주어진 여건이 열악하지만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지리소를 보면서 아빠 자신을 반추해 보게 되더구나. 아빠 자신을 볼 때 갖고 있는 것보다 뭔가 부족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 말이야. 지리소에게서 참 배울 점이 많구나.

….

그 밖에 아빠의 머리를 때리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2권의 이야기도 조만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장자>는 인류가 자랑하는 고전입니다.

책의 끝 문장: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면, 열자는 이렇게 산 것입니다.


행성 충돌이나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거나 압도적인 포획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못을 스스로 조르는 자기 파괴적 동물입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진행되는 전쟁을 보세요. ‘우리는 같은 종이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늑대나 토끼가 보았다면 당혹스러울 일이고, 인간을 전염병균처럼 여기며 멀리 떠나려 할 겁니다. "인간들은 서로 거침없이 착취하려 하고 심지어 서로를 살육하니, 우리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늑대와 토끼마저도 동족의 피를 묻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도망할 곳마저도 인간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버렸으니까요. - P18

사랑이 힘든 것은, 양쪽 다가 주인이고 양쪽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자유가 만나는 팽팽한 긴장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상대방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떤 강요도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셈이죠. - P46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 P77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독맥적인 것 따르기를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기를 수 있고,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 <양생주> - P187

기원전 4000년경 인간은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간 가축은 동물 가축과는 달리 말이 통하고 더 섬세한 작업에 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대 건축물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는 인간 가축화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20세기 전번에 민주주의를 자임했던 국가에서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유행처럼 사용했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혹은 자국민들을 길들여 지배하려 할 때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유한 거죠.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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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31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축화, 고대 문명의 창작품이 지금도 이어지는 듯해요. 우매한 백성들을 선동질하는 사이비 정치인들 때문에 팬덤까지 형성되니 말입니다. 슬프요.ㅠㅠ

bookholic 2024-01-31 16:55   좋아요 0 | URL
그들의 가축이 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