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우선 대부분의 왕들은 평화를 도모하는 훌륭한 방법보다는, 나로서는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는 전쟁술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들이란 자기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토를 잘 통치하는 일보다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는 일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왕의 고문들은 모두 대단히 영리해서 다른 사람의 학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적어도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총신의 영향력을 통해서 국왕의 측근이 되려고 총신들의 지극히 어리석은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기에 아부까지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어미 까마귀는 자기 새끼가 제일 귀엽다고 하고 원숭이는 자기 새끼가 제일 귀엽다고 한다지요.

(31)

그래서 추기경님 앞이지만 내가 감히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도둑을 교수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우선 정의에 어긋나고, 또한 어떤 경우에도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처벌 차제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게다가 효과적인 억제책도 못 됩니다. 단순 절도는 목숨을 앗아 가야 할 정도로 중한 범죄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가혹한 처벌로도 먹을 것을 구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잉글랜드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가 마치 학생을 가르치기보다는 매질을 하려 드는 도둑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에만 가혹하고 끔찍한 처벌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40)

만약 이러한 악폐의 치유책을 찾지 못한다면 절도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자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현 정책이 피상적으로는 공명정대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을 엉망으로 키워서 어릴 적부터 기질적으로 점점 타락하며 자라도록 방임한다면, 그리고 초년의 습성에 따라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들을 성인으로서 처벌한다면, 그렇다면 이는 먼저 도둑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 도둑질을 했다고 나중에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63)

국왕의 명예와 안위는 국왕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 백성들의 재산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은 국왕의 노고로 자신들이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국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국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내가 말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자신보다는 양들을 먹이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목자의 의무이듯이, 자신의 안녕보다는 백성들의 안녕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국왕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빈곤이 공공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소립니다. 역사는 그와 정반대를 보여 줍니다.

(64)

만약 백성의 극심한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어서 학대와 약탈과 몰수를 통해서만 통치가 가능한 왕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는 왕의 권력은 갖고 있지만 왕의 존엄은 모두 상실하므로, 차라리 왕위를 양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왕이란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백성들을 통치할 때만 존엄성을 지니며, 걸인들을 대상으로 권력으로 행사할 때 왕으로서의 존엄성은 없는 것입니다.

(68)

당신이 나쁜 아이디어를 뿌리째 뽑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어 온 악폐를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고 해서 폭풍 속에서 배를 저버리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굳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낯선 아이디어를 오만하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정책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상황은 요령 있게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좋게 만들 수 없는 것은 가능한 한 최소로 나쁘게 만들도록 힘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한 모든 제도를 좋은 제도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날이 그리 빠른 시일 내에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73)

그러므로 사유 재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정하고 올바른 재화의 분재는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통치하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국민이, 그것도 가장 선량한 국민들이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압박을 받습니다. 이러한 부담이 어떤 제도를 통해 다소 가벼워질 수도 없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누구도 일정 한도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든가 일정 액수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일 수 없다는 법을 만들 수 있겠지요.

(95~96)

일하는 데 여섯 시간만 할애하니까 생필품의 공급이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생필품의 생산뿐 아니라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물품까지 생산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여자가 일을 하는 경우라면 남편 되는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서 코나 골고 있지요. 그리고 신부들과 소위 종교인이라는 게으른 대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모든 부자들을, 특히 신사나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주들을 첨가해 보십시오. 이들에게 소속되어 거들먹거리면서 주먹이나 휘두르는 무리인 시종들도 포함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나태에 대한 핑계로 병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건장하고 원기 왕성한 걸인들의 수효도 계산에 포함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생산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99)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아무도 과소비를 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보수 작업이 필요한 도로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길에 나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공공사업조차 없을 경우에는,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노동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들이 하루 노동 시간을 단축시킨다고 선포합니다. 이 나라 헌정의 주요 목적은, 모든 시민은 육체노동에 투여하는 시간과 정력을 가능한 한 아끼어 이 시간과 정력을 자유와 정신의 문화를 누리는 데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생각으로는 사람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109)

이렇듯 유토피아인들에게는 빈둥거리거나 시간을 낭비할 기회가 없으며 일을 회피할 구실도 없고, 술집도 없고 맥줏집도 없고 사창가도 없고, 타락할 기회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비밀리에 만날 장소도 없습니다. 만인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자기 일을 하든지 아니면 건전한 방법으로 여가를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생활 양식의 결과로 삶에 유용한 것들 것 당연히 풍족하게 되고, 따라서 그 누구도 빈곤하다거나 구걸을 해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118)

유토피아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그러한 어리석음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사회 제도 내에서의 성장과 교육과 좋은 독서를 통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각 도시에서 노동을 면제받고 학문에만 몰두하도록 지정되는 사람들의 수호는 비록 많지 않지만(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두뇌와 학문에의 헌신을 보여 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가지며,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녀 모두 일생 동안 여가 시간을 독서로 보냅니다.

(121)

사실 유토피아인들은 행복이란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선하고 정직한 즐거움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덕 자체가 우리의 본성을 최상의 선으로 이끌어 가며, 마찬가지로 우리를 그러한 종류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간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이와는 달리 덕은 그 자체로서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학파도 있습니다.

(132)

모든 종류의 즐거움 중에서 유토피아인들은 주로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이것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데, 그 까닭은 대부분의 정신적 즐거움은 덕의 실천과 선한 삶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즐거운 중에서는 건강을 최고로 여깁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 얻는 기쁨은 이러한 행위가 오로지 건장을 위해서일 때만 바람직한 육체적 즐거움으로 간주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자체는 즐거움이 아니라 오로지 질병의 은밀한 공격을 이겨 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병의 훌륭한 치유법을 얻기보다는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할 것이며, 진통제를 구하기보다는 고통을 방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유법이나 진통제로 위안을 얻는 즐거움은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이 더 좋겠지요.

(149)

유토피아에는 법이 몇 개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최소한의 법 외에 다른 법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교육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유토피아인들이 보는 다른 나라들의 가장 큰 결함은 무한한 양의 법률서와 해설서를 가지고도 국사를 올바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도 없고 너무 난해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법률들로 사람을 결박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 유토피아인들의 생각입니다. 변호사로 말하자면, 변호사들이란 사건을 조작하고 말싸움이나 다양하게 요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라서 유토피아인들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191)

생계에 대해서 아무 걱정도 없고 모든 불안에서 자유로우며 기쁘고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사람한테 무엇이 더 큰 재물일 수 있겠습니까? 남편은 돈에 대한 아내의 짜증이나 불평에 시달리는 일이 없으며, 아버지는 아들의 가난을 걱정하거나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려고 애쓸 일이 없습니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생계와 행복만이 아니라 자기 가족 전체의 생계와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내,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등 양민들이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를 무척 좋아하는 긴 계열의 후손들까지도 포함됩니다. 한때 일을 했었으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조차도 마치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똑 같은 보살핌을 받습니다.

(193)

더 나쁜 것은 부자들이 개인적인 사기 행각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세법을 통해서 이 사람들의 하찮은 임금의 일부를 착취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로부터 최상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의 착취에 법의 색깔을 입혀 놓음으로써 정의를 한층 더 왜곡하고 타락시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의를 <법적>인 것으로 위장하여 놓습니다. 오늘날 번영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볼 때, 그러한 나라들 안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가라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이익을 축적하고 있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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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봄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꽤 많단다. 봄이라서 그런지 그런 책들 중에 봄에 관련된 책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더구나. 이번에도 읽은 소설도 제목에 ‘봄’이 있어서 집어 들었단다.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의 실명을 숨기고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출판사 포레는 메리 웨스트매콧의 필명으로 쓴 소설들을 모아서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를 출간하였는데, 이번이 아빠가 읽은 두번째란다. 작년 봄에 그 책 역시 책 제목에 ‘봄’이 들어가서 봄에 읽었었지.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이고….

이번 소설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리 행복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니야. 애거사 크리스티도 남편과 불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소설로 그린 것이라는 것 같았어. 오늘 들려줄 <두번째 봄>이라는 소설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니 너희들에게 되도록 짧게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피곤하고독서편지를 쓰기 귀찮아서 아니라는 점.. 꼭 알아줘~~~^^)

 

1. 

레러비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 샐리아를 만났어.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지나쳤는데, 직감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할까다시 샐리아가 자살을 하려고 그곳에 왔음을 직감했어. 래러비는 힘든 시절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어서…. 그래서 샐리아를 다시 찾아가 설득해서 자살을 막았고, 숙소까지 데리고 와서 밤새 샐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단다. 왜 샐리아가 이 낯선 곳에서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참이 소설의 출간년도는 1934년이라는 점도 알고 이야기를 들어줘.

샐리아는 어린 시절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라났어. 아버지 존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요양을 위해 프랑스 남부에 다녀오기도 했어. 프랑스에서 다녀온 이후에도 부모님만 여행을 가시고, 샐리아의 오빠 시릴과 샐리아는 하녀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어. 이런 생활이 샐리아의 성격을 만들었을까아니면 천성이었을까? 샐리아는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이 곤충들의 생명을 해치는 행동에도 눈물을 보이곤 했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듯 하는 말도 마음 속에 담아두었단다.

샐리아의 아버지는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샐리아가 열 살 때 돌아가셨어. 이후 샐리아 가족의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어. 엄마는 샐리아의 학업을 직접 가르쳤고, 일부 가르치지 못하는 과목들은 따로 가정교사를 두어 가르치기도 했어. 샐리아가 10대 후반이 되었을 때 파리로 공부라고 갔어. 이 때 음악에 대한 소질이 약간 있었는데, 예민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을 잘 하지 못했어.

샐리아의 엄마는 샐리아가 젊은 시절에 이런저런 재미를 누릴 수 있게 했어. 돈이 들긴 하지만이집트 여행도 같이 갔어. 샐리아는 커가면서 점점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고남자들의 대쉬가 이어졌어. 그러나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샐리아는 잘 표현하지 못했어.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도 마음 속에만… 자신의 타입이 아닌 이들에게만 청혼이…. 어떤 돈 많고 나이 많은 소령이 적극적으로 청혼을 했지만, 소심한 성격에 여러 번 망설이다가 소심하게 거절했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짐이라는 남자가 어느날 이웃으로 이사 와서 농장을 했어. 짐과 책사상 등 지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어. 짐이 청혼을 했지만샐리아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짐이 6개월 간의 약혼기간을 가져보자고 했는데, 그것까지 거절할 수 없어서 그러자고 했지만역시나였어. 짐과 약혼기간에 오히려 우울증이 생겼지.. 이런 고민을 친구의 오빠인 피터에게 편지로 물어보곤 했어. 피터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알게 된 이후 편한 관계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피터가 샐리아를 사랑하고 있었어. 짐과 파혼을 하자 피터가 청혼을 했고샐리아는 오케이를 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겸손한 피터는 자신이 너무 가난해서 샐리아와 결혼할 자격이 없다면 조금 시간을 갖자고 했어. 군인이었던 피터가 외국으로 2년간 파견을 하게 되었는데,  2년동안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때 결혼하자고 했어. 그 사이 더 멋지고 부자가 나타나 청혼을 하면 부담 갖지 말고 결혼하라고 했어. 피터는 왜 그랬을까샐리아를 왜 시험대에 올려놓았을까? 겸손하고 착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그 또한 나쁜 남자였던 것일까?

 

2.

얼마 뒤 샐리아에게 더멋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 피터가 이야기한 부자도 아니고멋진 남자도 아니었어. 피터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군인이었어… 그런데더멋은 자신의 상황 같은 거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샐리아는 더멋의 청혼을 받아들였어. 피터에게는 미안했지만 현시점에서 더멋을 사랑하는 것은 맞으니까. 샐리아의 엄마 미리엄은 더멋을 싫어했어. 콩깍지가 씌어져 보이지 않는 더멋의 진모습이 명확히 보였거든. 더멋은 그리 착한 남자가 아니었어나쁜 남자.

미리엄의 입장에서는 다행히 전쟁이 일어나 더멋도 전쟁이 참가한다고 갔어. 하지만일 년 뒤 부상을 당하고 후방으로 배치를 받았고, 샐리아는 더멋과 결혼을 했어. 더멋은 결혼을 하면서 한마디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아빠도 그렇고샐리아도 그렇고 그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다정스러운 이야기인줄 알았지, 그 말이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 말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라는 말이야. 나이를 먹고아이를 낳다 보면 그 나이에 맞게 아름다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더멋이 이야기하는 하는 아름다움은 지금 이순간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때는 더멋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을 거야.

가난한 군인과 신혼생활은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어. 샐리아는그 전에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무료한 가정주부의 생활의 시작이었어. 군인에서 제대한 더멋은 사업을 하게 되었고, 사업이 위기도 있었지만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 하지만 샐리아에 대한 집착특히 샐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심했어. 그리고 자상함이란 것도 없었어. 샐리아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샐리아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사람 같았어. 주디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기쁨보다 샐리아가 아름다움을 잃을 것을 걱정했으니….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샐리아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조금씩 바래기 시작하면서, 더멋을 아무렇지 않게 샐리아를 버렸어. 그는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어.

 

3.

내성적이고 성격이 예민했던 샐리아는 힘든 시간을 가졌어. 홀로 오랜 시간을 가졌어. 딸 주디도 자라서 결혼을 했어. 그렇다가 우연히 마이클이라는 남자를 만났어. 의사였던 마이클은 그 옛날 피터와 비슷한 성향이었어. 그리고 어느날 그 남자는 샐리아에게 청혼을 했어. “아름다움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라는 말과 함께… 더멋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들었으니 얼마나 경악을 했겠니. 그 말을 듣고 그 남자를 떠나 버렸다는구나. 샐리아의 나이 이제 서른아홉. 그의 삶이 아직도 삼십 년이나 더 남았을 텐데… 그런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살 수 없다면서 자살을 생각했다는구나.

래러비는 밤새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 샐리아가 자살의 생각을 접었을 것이야. 래러비가 손을 다정하게 손을 잡아준 것이니까. 래러비와 헤어진 샐리아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야. 예전에 유명한 초상화가였던 래러비가 한쪽 팔을 잃고 좌절했다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야…

.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로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가장 많은 시간을 갖고 가족과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한 것 같구나. 성격이 만들어지는 어린 시절… 그런 시간을 갖고 있는 너희들… 아빠도 더욱 더 너희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을 쓴 다른 소설들…. 가끔씩 찾아서 읽어봐야겠구나. 이제까지 두 권은 봄마다 읽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것 매년 봄마다 하나씩 찾아서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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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어렸을 때는 누구나 다 예쁘죠. 살도 부드럽고, 어른들도 어린이는 누구나 다 예뻐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어린이처럼 돼라,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돼 있죠. 결론인즉 순순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는 게 핵심일 겁니다. 초심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받은 가르침이나 교훈을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또 자아가 형성되면서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때가 묻습니다. 나이가 든 만큼 때가 많이 묻게 되는 거죠. 그러니 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 기자는 늘 초심을 잃지 않으니 존경한다고 말할 수밖에요. 저는 주기자를 만날 때마다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곤 합니다. 제가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73)

미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어로 퓨처(future),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오는 미래에요. 그런데 성서의 대림에서 말하는 미래는 앞당기는 미래, 선취하는 미래입니다. 선취적 미래, 그러니까 내가 지금 비록 2015년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미 2020, 아니 멀리 2050년을 살고 있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이룩되고 통일이 이룩된, 박근혜는 이미 타파된 그런 미래를 살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75)

하느님,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 재벌, 부패한 모든 공직자들, 사법부와 검찰 인사들을 모두 정화해주시고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꼭 이루어주십시오. 저희와 국민 모두를 깨우쳐주십시오.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 그리고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애썼던 희생자의 삶을 늘 되새기며 아름다운 삶을 살겠습니다. 오늘 역사를 배운다는 주제 속에서 나 개인의 삶, 가정의 삶, 공동체의 삶과 증언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핵을 이루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거짓된 자들이 잠시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만, 역사의 물줄기와 기록은 그것을 넘어서 언제나 정사를 기록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꿈을 실현해가는 가족들, 그리고 우리 겨레와 동지들을 영육간에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옵소서. 이 밤, 기쁘게 잠들 수 있게 해주시고 희망찬 기쁨의 내일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주시옵소서. 우리 시대의 주역인 청년들에게 희망과 기적을 보여주옵소서.

(101)

저는 비례대표제가 바뀔 수 있다면 국회의원 수도 현행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 때는 인구 10만 명당 한 명의 국회의원이 나왔어요. 그러니 인구가 5천만 영인 지금은 500명쯤 나오는 게 맞지요. 우리가 정책을 논할 때 300명이 논하는 게 좋겠습니까, 500명이 논하는 게 좋겠습니까? 당연히 많은 쪽이 좋겠죠. 국회의원 늘리면 세비가 더 늘어난다고 하는데, 지금 대통령이 한 해 동안 주무르는 예산이 얼마입니까? 375조 원이에요. 이걸 청와대와 재경부가 마음대로 씁니다. 반면 국회 예산은 27백억 원, 인건비까지 합쳐도 54백억 원에 불과합니다. 비교가 안 되는 수치입니다. 국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게 국회입니다.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해요. 다 우리 세금이니까요. 청와대와 재경부가 자기들 만대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해야죠.

(159-160)

제가 함석헌 선생님을 직접 뵙기도 하고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게 많아요.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시길 나는 하느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이다라고 하세요. 그분이 일제강점기 때 감옥에서 서너 번 가신 분인데, 해방이 된 다음에는 북한에서 소련군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해요. 그 뒤 , 내 나라 내 땅에서 고문을 당하다니싶어 북한을 몰래 탈출해 남한으로 건너오죠.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이건 또 이승만 독재에 박정희 독재에 온통 독재뿐인 거예요. 여기 맞서 싸우다 보니 , 나는 일제와 싸우고, 소련과 싸우고, 북한 공산당과 싸우고, 남한에 와서는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와 싸우는구나. 이게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 거죠. 그러면서 고백하신 말씀이 나는 하느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우리 역사와 연결시킬 수 있을 때, 그러니까 순국선열, 한국의 역사, 우리 민족을 위해 나는 발길에 차인 사람이다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26-227)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불덩어리예요. 더러운 것을 태우면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이 불덩어리를 함부로 대하면 꺼질 수도 있고 짓밣힐 수도 있겠죠. 그러니 각자 주부는 주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 그냥 흘려듣지 마시고 왜 저렇게 보도하는지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그런 보도를 하는 저의가 있고 나름의 계획이 있는 거니까요. 이런 걸 파악할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겠죠.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국회의원이 얘기하는 것, 박근혜가 이야기하는 것, 국무총리, 검찰, 법관들이 얘기하는 것의 속내가 뭔지도 다 보일 거고요. 이런 것들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집중하셔야 해요. 집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함께 부모님이 내게 무엇을 가르치셨나내지는 이럴 때 나의 부모님이라면, 나의 스승님이라며, 예수님이라면, 또는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면서 우리 생각을 확장해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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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59호 - 2018년 3월~4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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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또다시 봄이 찾아왔구나. 예전에 봄이라고 하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이 떠오르지만, 봄이 온다고 하면 미세먼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식구가 봄을 맞이하여 놀러 가면 미세먼지가 언제나 따라와서 숙소 안에 콕 박히게 만들었잖아. 그래서 올 봄은 아예 놀러 갈 생각을 접었단다. 역시나 시도 때도 없이 미세먼지가 습격하여 화를 돋구는구나. 그래도 최근에는 좀 나아졌지만, 언제 또 습격할 지 모를 일이야. 여름철에 더위에 의한 불쾌지수란 것이 있는데, 이젠 미세먼지로 인한 불쾌지수 또는 울화통지수라는 것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정말 대책이 없는 것인가….

아빠의 어린 시절의 향기로운 봄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정말 답답하구나. 봄이 되어서 그런지 이번 녹색평론의 부제는 약간 봄과 비슷한 “농본주의가 세상을 살린다라고 정했단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도 살고, 농촌이 살아야 미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단다. 이번호에 농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녹생평론에서는 그동안 줄곧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단다. 다시 한번 특집으로 정리를 해 준 것 같아 좋았어.

미래에 단 하나의 직업이 남는다고 하면 그것은 농업일 거야. 그런데 그 농업이라는 것은 산업농, 기계농은 아니고 소규모 자작농이 되겠지. 농업을 하라고 해서 무조건 하면 되는 것은 아니란다. 산업농과 기계농 등 대규모 기업형 농사는 오히려 땅을 망치고 지구를 망치고 환경 오염의 주범인 것이야. 산업농 시스템은 엄청난 비효율을 자랑하고 있단다. 그런 비효율성 때문에 비료 사용이 날로 급증하게 되고, 이 비료는 지하수를 먹는 하마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물부족을 부추기게 되고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난화 가스의 주범을 배출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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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산업농은 단절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식품생산과 인간의 영양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즉각적인 금전적 수익 추구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농민들과 농기업들은 갈수록 옥수수처럼 영양가 낮은 작물의 단일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옥수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작물인데, 흔히 영양가 없고 열량만 높은식료품으로 가공된다. 그 결과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빈곤지역을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건강한 식생활 패턴이 빠르게 증가했다. 오늘날 비전염성 질환의 대부분이 식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2020년이 되면 그러한 질병이 전세계 사망 원인의 대략 75%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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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럼 대안이 있는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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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단순하게 말해서, 자연 순환의 질서를 깨뜨리고 인간이 마음대로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게 공업이라고 한다면, 농업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종하기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틀에 순응해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또 그 과정에서 부산물을 땅으로 돌려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연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요.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순환의 틀에 순응하면서 산다고 해도 훼손은 되거든요. 자연이 소모가 돼요. 그렇지만 그걸 최소화할 수는 있어요. 그 방법이 유기농업적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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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법의 소농이 답이 될 수 있단다. 그런데 작게 농사를 지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수 있겠니.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 노릇을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아빠는 다른 건 모르겠고, 농민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것만이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농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

두달 후면 지방선거가 있단다. 이번 광역단체장 중에서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오는 후보가 있으면 좋겠구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는 많이 익숙해졌잖아. 이제쯤은 나올만한 공약 아니겠니…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이 책에서 생태순환농사, 즉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장길섭씨를 인터뷰한 글을 실었는데, 그 인터뷰를 맺으면서 장길섭씨의 농장을 묘사하는데,, 글쓴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낙원의 모습이 떠오르더구나. 아마 아빠도 마음 한 구석에는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있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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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농장을 둘러보았다. 집 뒤에는 농산물 가공작업을 하는 건물이 있고 안에는 저온창고, 곡물 가루를 찌는 커다란 솥, 제분기, 반죽기, 발효기 등의 설비가 잔뜩 있었다. 거의 모두 선생이 손수 설계하여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편에 강의실 겸 식당, 주방,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또 그 뒤에 축사가 있었다. 널찍한 축사에는 20여 마리의 암소와 송아지, 돼지 20여 마리, 산양, 닭이 느긋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잔돌이 많은 넓은 밭이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선 마늘과 양파가 추위를 피해 비닐을 덮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 옆에는 작은 비닐하우스 여섯 동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모두 녹비작물로 덮여 있었다. 증폭제를 만들어 보관해둔 상자도 눈에 뜨였다. 5,000여 평 땅에서 이 많은 일을, 선생 내외분의 힘으로 감당해오신 것이다. 이 농장은 선생 가족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학교이며,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바로 그 낙원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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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해가 메이시유신 150주년이라고 하는구나. 다른 나라 역사적인 사건을 뭐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나 싶을 수 있겠지만, 일본이 그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이하여 성큼 오른쪽으로 또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한 글들을 실은 것 같구나. 메이지유신 150주년과 요즘 일본 동향에 대한 글은 적은 이유를 알겠더구나. 일본이 점점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지. 최근 들어 대동아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구나.

일본의 권력층인 속마음은 변한 것 없이, 그동안 꾹꾹 참고 지냈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그리고 그 속마음을 다시 끄집어 내 행동으로 나타내는데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그런 모략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안 하는 일본의 자세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잖니. 1945년 종전조서에도 아시아 민중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언급이 안되었대. 이미 그때부터 사과라는 것은 마음에 없었던 거야. 그들은 종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생각한거야.. 그들은 메이지유신을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자랑질을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제국주의국가의 시작이었고, 그로 인해 아시아 민중들이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았던 것을 그들은 모른 채 하는 거야. 그럼에도 그들은 메이지유신에 대한 그림자는 보지 않고, 빛만 보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메이지유신의 공로자를 드라마로 제작해서 영웅시 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역사왜곡은 끝이 없어 보이는구나.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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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현재 아베 정권은 단계적으로 현행 평화헌법을 전쟁이 가능한 헌법으로 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와 아울러  교과서 내용에서도 점진적으로 제국주의시대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분량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국가 틀(헌법)의 개편과 함께 국민들의 제국주의 역사와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은 그것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이지유신의 일등 공로자인 사이고 다카도리는 평화사절 파견론자로 계속 미화될 것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일본 공영방송의 대화드라마는 역사의 진실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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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한번 탈핵을 이야기를 다루었단다. 탈핵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독일의 환경단체 인터뷰를 실었어. 2020년이면 전면적인 탈핵을 하는 독일의 에너지 상황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가 싶었어. 정상적인 국가와 국민이라면 탈핵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당연한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구나.

독일은 탈핵을 대비하여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대. 2016년에는 31.5%가 재생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대. 재생에너지 중에서는 풍력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바이오, 태양광 순서라고 하는구나. 재생에너지의 초기 설비 비용으로 전기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하는데, 국민들도 그런 것을 감수하고도 찬성을 한다고 하는구나. 지금 돈이 문제인가? 나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인데개인이 얼마의 돈을 써서 안전과 건강이 보장된다면, 누구나 돈을 쓸 것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어.

독일은 어떻게 이렇게 탈핵에 국민 전체가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을까? 독일의 핵발전 반대 운동의 역사는 무척 길다고 하는구나. 1970년대부터 이미 반대 토론이 이루어졌어. 그리고 지방자치정치구조이다 보니 거센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으면 주정부는 주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대. 그리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도 컸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독일은 녹색당이 의회에 상당수 진출하여 탈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는구나.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야. 그들은 기존의 화력발전소와 원전도 아직 가동을 하고 있어. 수출원이기 때문이야. 화력발전소와 원전에서 만들어낸 전기를 주변국가들에게 팔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러다 보니 화력발전소, 원전 등이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있어.. 최근 정치권에서도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입장이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대. 이런 정치권에 대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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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탈원전은 이미 역사의 대세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화력발전을 확실히 포기하는 일이다. 원전을 폐쇄해도 갈탄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독일은 세계 갈탄 소비 국가이고, 대형 전력회사들과 지자체들이 관련되어 있어 탈석탄은 쉽지 않다. 독일에는 이미 폐쇄된 원전들이 있는데, 해당 지역에 그와 연계된 일자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갈탄은 다르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높은 실업률과 인구 감소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갈탄산업을 대체하려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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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이런 모습을 하면서, 부럽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언제쯤 국민들이 원전의 고위험성과 고비용에 대해 이해를 할까. 탄핵촛불처럼 탈핵촛불이 타오를 수는 없는 것일까.

4.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와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씨가 나눈 대담을 실었는데, 문재인 정부를 동학농민전쟁 이후 최초의 민주정부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기대를 하는 것 같았어. 아빠도 물론 기대를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시스템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런 것은 이해해 주어야지. 그리고 이왕이면 대한민국 시스템을 좀 바꿨으면 좋겠는데딴지 거는 이들이 오늘도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데, 정말 꼴보기 싫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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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문재인 정부는 단지 양심적인 진보파 정부라는 자기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동학농민전쟁 이후 최초로 성립된 민주정부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사실 김대중 정부도 군사독재세력(김종필)과 연합함으로써 가능했고, 노무현 정부의 출현 역시 재벌세력(정몽준)과 어느 정도 손을 잡은 결과였다. 그래서 결국, 정권 탄생 시의 근본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명박이라는 희대의 사기꾼과 박근혜라는 극단적으로 아둔하고 무책임한 인물에게 정권을 내주는 참사가 빚어졌던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은 물론 군사독재와 오랫동안 싸워왔던 민주화 투사들이 집권하여 정부를 운영한 정권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최초이다. 이 사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요소요소에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하여, 사생결단을 한다는 각오로 온갖 부패, 비리, 부조리에 구조를 혁파하고, 역사의 진로를 용기 있게 개척해야 한다. 그런 안목과 결연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실은 걱정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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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 소개된 서평들도 읽고 싶은 충동을 주는 책들이 실려 있었단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도 읽고 싶고, 이육사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강철로 된 무지개>도 꼭 읽어보고 있었어. 그 밖에 <시의 눈, 벌레의 눈>이라는 책과 기본소득에 관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이란 책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놓았단다.


(21)

단순하게 말해서, 자연 순환의 질서를 깨뜨리고 인간이 마음대로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게 공업이라고 한다면, 농업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종하기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틀에 순응해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또 그 과정에서 부산물을 땅으로 돌려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연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요.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순환의 틀에 순응하면서 산다고 해도 훼손은 되거든요. 자연이 소모가 돼요. 그렇지만 그걸 최소화할 수는 있어요. 그 방법이 유기농업적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죠.

(102)

역사를 사람들의 주체적 선택의 누적으로 봐야, 역사의 실패도 잘못도 반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우리가 자립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그러한 자립한 자각적 주체성의 결여야말로 전쟁이라는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시세나 대세에 맡기고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야말로 사대주의이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이다.

(148)

탈원전은 이미 역사의 대세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화력발전을 확실히 포기하는 일이다. 원전을 폐쇄해도 갈탄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독일은 세계 갈탄 소비 국가이고, 대형 전력회사들과 지자체들이 관련되어 있어 탈석탄은 쉽지 않다. 독일에는 이미 폐쇄된 원전들이 있는데, 해당 지역에 그와 연계된 일자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갈탄은 다르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높은 실업률과 인구 감소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갈탄산업을 대체하려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174)

예를 들어, 당장 개헌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의 국회에서는 결코 정당한 개헌안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이다. 선거법을 개정하고 헌법을 보다 민주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게다가 자기들의 재선 가능성을 줄이거나 특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선거법 개정은 절대로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도 지난번 원전문제를 처리할 때처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실은 최근에 몽골에서도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론조사 방법을 채택했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이 나서서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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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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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세여자> 2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권의 줄거리는 다시 안 해도 되지?

..

고명자는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옛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를 소리를 듣고, 남은 가족들과 멀어지면서 혼자 외롭게 지내게 되었어. 경찰들은 계속 감시를 하면서도 전향을 했다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하느냐고 다그쳤어. 옛 동료들을 찾아가 회유하라고 협박까지 했어. 그 와중에 단야가 국내에 잠입했다는 소문을 들었어.

, 헛소문단야는 이미 모스크바에서 누명을 쓰고 죽었잖아. 단야만 생각하고 있던 명자는 그 소문을 듣고 알아보려고 했지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무작정 나라밖으로 갈 생각에 신의주로 향했다가 사기만 당하고 빈털터리로 다시 경성으로 왔어.

그렇게 외롭게 지내던 명자에게 옛 동지 박희도와 김한경이 찾아왔어. 잡지사동양지광에서 같이 나와서 일하자고 했어. 명자와 같은 지식인 여성이 필요하다고 했지. 명자는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어. 답변을 안 하자 경찰까지 찾아와서 협박을 했어. 다시 감옥을 갈래? 동양지광에 출근할래? 결국 명자는 동양지광에 기자로 취직을 했어. 명자가 망설였던 이유는 그곳은 친일잡지를 만들던 곳이었어. 조선인들을 회유하고, 전쟁에 자연하라는 내용이었지. 그리고 그곳에서는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명자는 다들 어쩔 수 없이 강압에 의해 전향한 척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어. 다들 철저한 황국신민이 되어 있었어. 또 한번 크게 실망.

고명자는 기자 일만 했던 것은 아니야.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어. 박헌영, 여운형을 회유해라…. 이걸 어떻게 하겠니.. 이런저런 핑계로 미뤘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양지광은 휴간을 했어. 다시 고독하고 우울한 시간들.. 멀리서 들려온 정숙의 소식.. 조선의용군에 들어갔다고비록 전쟁터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겠지만.. 고독하고 외로움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거야.


1.

1945 8 15일 일본의 항복 소식너무나 갑작스러운명자는 해방되기 얼마 전부터 여운형의 연락을 받고 건국동맹비밀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어. 그리고 해방 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여운형은 명자가 전향했던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견딜 만큼 견디고 나서 어쩔 수 없는 전향이라고 이해해 주었어. 해방이 된 조선땅에 소련과 미국이 진군한다는 소식은 모든 백성들에게 좌절을 심어주게 되었단다. 죄는 일본이 지었는데, 벌은 조선이 받는 기분이랄까

.

연안에 있던 정숙도 일본의 패전 소식과 항복 소식을 들었어. 조선의용군들은 모여서 경성 귀환에 대한 회의를 했어. 그동안 정숙은 창익과 다시 이혼을 하고 동지로 남았단다. 그들에게 소련과 미국의 분할점령 소식이 전해졌어. 다들 이해가 가지 않는 움직임이었지. 정숙을 비롯한 조선의용군은 평양으로 가기로 했어. 남쪽은 반공주의로 똘똘 뭉친 미국이 들어와 있다고 하잖아. 북쪽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성공한 소련이 와 있으니, 비록 고향은 서울이지만, 정숙은 평양행이 맞다고 생각했어.

행군으로 신의주를 거쳐 국내로 들어왔단다. 그들을 반기는 환영인파는 기대도 안 했을지 몰라. 하지만, 무장 해제 당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 심사까지 했을 때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평양에서도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어. 소련이 새파랗게 젊은 김일성 대위를 앞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어. 항일 투쟁에 있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김일성이 갑자기 나서게 되니 다른 이들은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어.

그 와중에 거기에 죽은 줄 알고 있었던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지. 평양에 도착한 정숙과 조선의용군은 김일성과 만났어. 생각보다 김일성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 호감이 갔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도 해방 소식을 들었단다. 세죽은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대를 잠시 했지만, 길이 보이질 않았어.. 길이세죽은 딸 영이, 아니 이제 러시아 이름이 더 익숙한 비비안나와 점점 멀어졌어.


2.

명자는 여운형 아래에서 일을 했지만, 미군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어. 그리고 미국과 소련은 5년간 신탁 통치를 한다고 결정했는데, 이후에는 전국이 반탁과 친탁으로 갈리게 되었어. 이때 반탁이었던 박헌영과 공산당은 친탁으로 돌아서자, 남한에서는 거의 매장 분위기였단다. 결국 박헌영은 북한으로 향했어. 남북을 초월했던 조선공산당을 창건하고 이끌던 박헌영이 북한에 오자, 대단한 환영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 하지만 북한의 일인자는 젊은 김일성이었어. 박헌영이 설 자리는 김일성의 옆자리였지.

.

명자는 해방을 했으니 단야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서울역에 나가보곤 했단다. 그런 명자를 보기가 안쓰러워 여운형은 사람을 시켜서 단야의 소식을 알아냈단다. 단야는 이미 10년 전에 죽었다고 했어. 더 이상은 알려 하지 말라고 했어. 더 이상이라 함은 죽기 전에 단야가 세죽과 재혼했다는 것이겠지. 명자가 얼마나 실망하겠어. 그동안 단야만 믿고 버텨왔는데…. 여운형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윤동명이라는 사람을 명자에게 소개시켜 주었어. 고명자는 윤동명과 재혼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비극 하나자신을 그렇게 잘 봐주고 지원해주었던 여운형이 암살당한 거야.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었어. 일본의 총칼도 수십 년 생명을 앗아가지 못했는데, 같은 민족에 의해 죽는 사건들.. 정말 비참하고 슬픈 일들이구나.

한편, 정숙은 몇몇 불만들이 있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소비에트 국가 만들기에 협조하기로 했어. 김일성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야.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도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어. 김일성파, 연안에서 온 연안파, 남쪽에서 올라온 조선공선당파, 소련파 등등…. 계속되는 분파들의 갈등들김일성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도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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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어. 세죽의 소식을 들은 거야. 세죽이 유형지에서 남편 박헌영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보내달라는 요청 문서를 보내온 것이야박헌영이 오케이만 하면 세죽은 평양으로 올 수 있었어. 하지만 박헌영은 냉담하게도 거절을 했단다. 세죽의 처지 좀 생각해 주지세죽은 남편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있었고, 상황이 단야와 재혼하게 만들었고, 단야와 고작 3년 생활을 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유형 생활을 7년이나 하고 있으니책을 읽는 아빠가 다 억울하더구나. 속 좁은 박헌영어찌 인민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변한 것이냐…. 심지어 모스크바에 와서 딸까지 만났었는데, 세죽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박헌영, 너는 이미 변절한 사람이도다. 세죽이 불쌍하지도 않단 말이야. 세죽이 잘못한 게 뭐 있단 말이야. 이 속좁은 인간아.

명자는 남부연석회의의 남한대표 중 한 명으로 평양을 가게 되었어. 평양에서 정숙을 만나고 정숙을 통해 충격소식을 들었어. 단야와 세죽이 재혼했다는 소식그리고 세죽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자유 연애를 하는 정숙에게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단야 한 사람만 믿고 십 년 넘게 기다린 명자에게는…. 뒤늦은 심한 배신감…. 정숙은 명자에서 평양에 남아달라고 했지만, 명자는 서울을 선택하게 된단다.

비비안나는 무용수로 유명해져서 평양까지 공연을 하러 왔단다 평양에 있으면서 아버지인 박헌영도 만나고 허정숙도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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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49년에서 50, 평양은 전쟁을 통한 남조선을 해방하는 의견들이 많았어. 정숙은 한 민족끼리 전쟁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대세는 전쟁으로 기울었단다. 참 안타깝구나. 일제의 지옥에서 벗어난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이번에는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라니..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없었던 말인가. 북한은 소련과 중국에게 전쟁의 불가피함을 설득해야 했어. 정숙은 모택동과 인연이 있어서 모택동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어. 중국은 개입을 안하겠다, 하더라도 미국이 먼저 개입하게 되면 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1950 6 25일 전쟁이 시작되었어.

전쟁 직전 서울은 공산주의가 불법으로 되어 있었어. 공산주의자들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어. 명자도 도망 중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하고 있었어. 그 와중에 전쟁이 일어났어. 이때 남한은 후퇴하면서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이들을 많이 죽였는데, 김삼룡, 이주하 등이 이때 처형되었다고 하는구나. 다행히 명자는 다시 풀려났어.

북한군의 진군을 본 명자는 마치 해방 때의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명자가 일했던 근로인민당 사무실에 다시 출근을 했어. 하지만, 노동당은 근로인민당이 중도 성향을 띠고 있어서 인정하지 않았고, 명자는 친일 활동을 했던 근거를 들어 전향서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어.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니…. 해방이라고 느꼈던 명자가 며칠 만에 다시 수감되어 며칠 동안 전향서를 쓰고 나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어. 집에 먹을 것도 없어서 굶주리는 날이 많았고, 당의 명령으로 툭하면 사역을 하러 나갔어. 결국 명자는 병에 걸려 외롭고 쓸쓸하게 죽고 말았단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다시 밀리기 시작하면서, 북한군은 압록강까지 밀려났단다. 그러자 전쟁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어. 전쟁이야 최고 지도자의 책임이지 뭐 볼 게 있겠니. 다만, 그에게 니 책임이다 물러나라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문제지. 그러다 보니 그 밑에 어떤 사람한테 덮어 씌울까 그걸 고민하게 된 거야. 결국 3여 년에 걸친 전쟁은 남북을 둘로 그대로 유지된 채 끝나고 말았어. 전쟁을 왜 한 건지

전쟁이 끝나고 북한에서는 다시 책임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수상인 김일성은 이걸 이용해서 반대파를 제거해 나갔단다. 빨치산파, 남로당파, 연안파를 차례대로 숙청했어. 박헌영은 미국 스파이로 몰려 사형을 당했어. 문화선정상이었던 허정숙은 이런 사태를 일어나지 않게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 그리고 자신도 연안파였잖아. 결국 허정숙은 생존을 위한 선택들을 했단다. 허정숙도 잠시 연안파 숙청 때 감옥에 가기도 했지만, 가족까지 끌어들인 협박에 결국 김일성 편에 서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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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던 세죽비비안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모스크바에 왔어. 비비안나가 결혼하면서 비비안나도 조금씩 엄마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 1953년 전쟁이 끝나고도 여전히 세죽은 크질오르다에 있었어. 그곳에서 신문을 통해 박헌영의 체포 소식을 들었어. 비비안나가 걱정이 되었어. 당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가족도 벌을 받는 연좌제가 당연시되었거든..

비비안나가 걱정이 된 세죽은 모스크바로 향했어. 당시 공포 정치를 벌였던 스탈린은 비록 죽었지만,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모스크바를 가득 메우고 있었거든하지만 모스크바 가는 길은 쉽지 않았어. 이제 나이도 있으니…. 가는 길에 세죽은 폐결핵에 걸려 위중한 상태로 모스크바에 도착했어. 딸 비비안나는 지방 공연 중으로 없었고, 사위 빅토르가 보살펴주었어. 곧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그만 죽고 말았단다. 다음날 비비안나가 도착을 해서 엄마의 임종을 보지도 못했어.

세죽의 죽음의 여정을 읽을 때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졌단다. 이것이 단지 허구가 아니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 자신의 열정으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이런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니너무 가슴이 아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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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중에 생존한 이는 이제 정숙 하나뿐이구나. 정숙은 숙청의 바람에서 살았고, 1980년대까지도 북한에서 여러 중요 요직을 맡아서 활동을 했다는구나. 그리고 1991년 눈을 감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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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소설을 가슴 아프지만 재미있게 읽었단다. 지은이 조선희라는 분은 처음 알게 된 분인데, 이 분이 쓰신 다른 책들도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중간이 공직의 일을 맡는 바람에 소설을 쓰는데 12년이나 걸렸다고 했는데, 이런 소설을 써 주셔서 정말 고맙더구나. 직접 전할 길은 없으니, 아빠는 이 책을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전달하기로 했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10여 년 전 보았던 드라마 <1945>가 많이 생각이 났고, 태백산맥, 아리랑 등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들도 생각이 나고, 이 책에 등장한 위인들의 평전들도 많이 생각이 났단다. 무엇보다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 세 분을 알게 되어 좋았고, 그들의 이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더구나. 그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다시 만나, 화해를 하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모습으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174)
815 해방 당시 조선에 관한 한 루즈벨트는 스탈린보다 무지했고, 미국 정부는 아시아보다 유럽에 관심 있었고, 태평양 사령관 맥아더는 조선보다는 일본에 몰두했으며, 군정책임자인 하지 중장은 한국엔 처음이었다. 하지는 어느 정파가 자신의 우군인지, 이 난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정치지도자가 누구인지 헷갈렸다. 미군정이 남로당을 불법화시키는 한편 이승만, 김구 같은 극우로도 복잡한 한국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판단에 도달한 끝에 그 중간 지대의 여운형과 김규식을 자신의 파트너로 찍었을 때 여운형이 암살돼버렸다.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만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그건 여운형이었을 것이다.

(282)
세죽에겐 함흥에서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랬다. 사는 건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겨울이면 춥고 배고프고 여름이면 덥고 배고팠다. 게다가 고향도 조국도 잃고 남편을 두 번 잃고 아들도 잃고 낯선 나라에서 유형수로 홀로 늙어가다니, 상상도 못 한 불운이 끝없이 밀려왔다. 남편이 감옥에서 고문당해 미치면서 마음자리가 한 번 깨지고 난 이후론 밑 빠진 독처럼 행복이 고이질 않았다. 사랑이 두려웠고 희망은 슬펐다. 단야와의 결혼생활도 언제 깨질지 몰라 늘 불안했고 결과는 걱정한 대로였다. 어쩌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건 신혼의 훈정동 시절인지 모른다. 좁은 방에서 버글버글한 객식구들에 시달리며 끼니 걱정하고 밥해대느라 손이 마를 날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자 세죽은 슬며시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따스해졌다.

(297-298)
그녀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 나이 오십, 귀찮은 것이 많아지는 나이로구나. 아니, 사람에 대한, 사람들 집단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린 것 아닌가. 누가 잡든 권력의 속성은 똑같다는 생각, 어느 개인이 더 현명하든 덜 현명하든 집단이 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권력을 포식한 집단이 권력에 굶주린 집단보다 낫지 않을까. 굶주린 이리떼보다 배부른 사자 떼가 낫지 않을까. 이건 가장 저급하고 비겁한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인데 자신의 어느 결에 이토록 회의주의자가 되었던가, 하고 정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 한때 태산도 옮길 것 같았던 그 믿음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349-350)
북조선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토지개혁도 근사했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서 그 사상 위에 정부를 세우는 일을 해보았으니 행운이었다. 권력이라는 것도 누려보았다. 그녀는 남자들이 그것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팔자를 고쳐줄 수 있는 힘, 싫어하는 사람을 나락에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권력은 권력자로 하여금 그것이 그대로 자신의 인격이라 믿게 만든다. 또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권력은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들고 그 마력이란 때로 목숨과 바꿀 만큼 강력하다. 그녀도 권력의 맛을 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묻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 그녀는 땅에 떨어져서 흙이 묻어 있는 것도, 똥이 묻어 있는 것도, 그게 권력이라면 털지도 않고 주워 먹는 남자들을 많이 보았다.

(371-372)
1848년 팸플릿에서 시작된 19세기의 이론은 20세기에 세계적 규모의 이데올로기투쟁으로 전개됐지만 세기가 바뀌기 전에 종료되었다. 한반도 북쪽의 소비에트 실험은 일찍이 공산주의 트랙에서 튕겨나와 해괴한 파시즘으로 가버렸다. 21세기로 넘어와서 마르크스주의는 체제나 혁명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태도와 정책의 문제로 남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경합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마르크스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그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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