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류 역사상 개인이 가장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시대, 다만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허하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인가? 머릿속에 정보와 지식을 더 쏟아 넣어 가득 채우면 나아지려나? 채워보고 채워보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그 답 역시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머리만 키웠기 때문임을 말이다.

 

(11)

그렇다면 깨달음은 어떠한가? 지금은 깨달음이 뭔가 싶은 마음이 더 클 테지만 일단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니 대략적인 느낌을 말해보자. 당신에게 깨달음은 어디에 가까운가? 그것은 지식의 영역인가, 아니면 지혜의 영역인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깨달음도 이 두 가지 측면이 혼재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어쩐지 깨달음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혜일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지식을 통해 깨달음이 무엇인지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 경계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깨달음의 윤곽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달음의 실제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는 없다. 실천을 통해 그것의 실제 의미가 체화될 때에야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9)

사실 이 둘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당신 영혼의 두 가지 모습이다. 모든 개인은 한 가지 빛깔의 삶을 살지 않는다. 어느 때 우리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고, 다른 때에는 진리를 향한 투사였다. 어느 때에는 세상이 명료했고, 다른 때에는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당신 영혼은 치기 어린 젊은이의 영혼이었고, 미래의 당신 영혼은 원숙한 노년의 영혼일 것이다.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는가?

 

(49-50)

유물론과 과학이 정신적인 요소를 완벽히 배제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모순성이다. 모든 신념이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언제나 무모순적일 수 있듯. 경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유물론과 과학은 물질의 울타리 안에서 완벽히 무모순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유물론과 화학이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객관적인 진리라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세계를 축소했다고 할 수 있다. 무모순성의 영광은 정신과 관련된 모든 가치를 세상 밖으로 쫓아냄으로써 얻게 된 반쪽짜리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승리는 오늘날의 학계와 대중의 유몰론 편향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94)

일상의 번잡함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이 그 생각 자체가 되어 그저 생각의 반복 위를 흘러가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혹은 어쩐지 스스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느낀다 해도 그것이 잘못임을 알지 못한다. 원래 사람들은 생각이 많은데 나는 좀 더 많은가 보다 정도로 여기고 그 생각의 반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또 다른 이는 생각의 과다와 반복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는 그것 자체에 빠져든다. 이처럼 오늘날의 사람들은 생각의 반복이 너무도 익숙하기에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 자체를 모른다. 생각의 반복이 멈추는 경험을 한 사람만이 그것이 고통이었음을 알 수 있다.

 

(119)

마음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하나의 상념이 일어서면 그 즉시 마음은 그것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려는 이원적 작용을 한다. 이때의 끌어당김과 밀어냄은 개인에게 매력과 혐오의 강렬한 감점으로 체험된다. 그리고 이 강렬한 감정은 상념을 강화하고 사유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결국 그 상념이 마음 안의 하나의 존재자로 일어서게 한다. 나의 마음에 드러나는 모든 존재는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눌러앉아 있는 것이다.

 

(124)

명상이라는 단어도 그러하다. 사전적으로는 어두울 명()에 생각 상()으로 어두운 가운데 생각함을 의미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이들은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해 명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다른 이들은 똑같이 명상이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서 명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다른 이는 같은 이유에서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명상이라는 단어를 진리와 엮어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현실 도피적인 무엇이라는 전제에서 사용하며, 또 다른 이는 오늘날의 힐링 문화가 만들어낸 상업화된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 사용한다.

 

(138)

어떤가? 당신은 아, 이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그것을 움켜쥐었는가? 우리는 나에게 없는 어떤 멀고 험난한 세계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나에게 없지만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어떤 경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나에게 있었다. 나에게 속하고 나의 바탕이 되는 것. 이것이 자아의 본질이고, 세계를 일으키는 배경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바탕과 배경이 그러하듯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 사유와 논리로는 그 앞까지 갈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고, 그 끝에서의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정확히 알게 되는 것. 이것이 내면의 근원이자 의식의 실체이며 본질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가 찾던 것이다.

 

(164)

우리는 침묵을 통해 알게 된다. 이 텅 비어 있음은 크기가 없고 경계가 없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의 배경이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 안에 깃든 의식은 몸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의식의 크기를 말할 수 없다. 작은 미물의 내면세계는 좁고, 큰 생물의 내면세계는 넓은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는 어떤가? 개미는 상대적으로 작으니 외부세계가 크다 느끼고, 혹등고래는 상대적으로 크니 외부세계가 작다고 느끼는가? 그렇지는 않다. 의식은 몸의 크기나 신체 능력, 뇌의 크기, 지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199)

이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일상과 나의 감정과 나의 선택과 나의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끌어당김과 밀어냄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감정과 상념과 느낌과 욕망에 연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좋아하고 그 좋아함은 커져간다. 나는 내가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고 그 미움을 키워간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싫어하고 그 싫어함을 키워간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나의 경향과 쏠림도 조금씩 변해갈 테지만, 나는 나의 행동 양식과 내면의 상태를 섬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유의미한 시간의 범위 안에서 과거와 미래의 나를 가늠해볼 수 있다.

 

(250)

세속 안에서 세속적인 마음을 줄여간다면, 현실을 살아가며 동시에 현실에 대한 마음 씀을 줄여간다면 나의 본질은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내면을 여행하는 자. 이것이 나의 본질이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행지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추억이 전부인 것처럼, 내가 이 삶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부와 성공이 아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의식에 남을 흔적뿐이다. 그 흔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뇌를 기반으로 하는 물질적 기억과는 다를 것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일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회상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상처의 흔적 같은 단편적 인상일 수도 있고 혹은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우주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 같은 것일 수도 있다.

 

(281)

지혜로운 부모를 상상해보자.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지혜로운 부모도 자녀의 안녕을 바란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그들의 자녀가 안락과 편안함보다는 적절한 위기와 실패에 대면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녀가 스스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깨뜨리고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아의 본질도 그러하다. 나의 깊은 의식, 수많은 삶을 살아내고 또다시 수많은 삶을 이어나갈 자, 세상을 스스로 일으키고 그것을 관조하는 자도 그러하다. 그 본질은 어른 되고자 할 것이다. 신의 어른이, 모든 의식적 존재의 어른이 되고자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모든 신체가 아이의 옷처럼 보이게 할 만큼의 깊은 성정을 원할 것이다. 그때서야 자아의 본질은 어른답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과 사를 관통하는 깊은 의식의 관점에서 배움과 사랑은 삶의 이유로서 부족함이 없다.

 

(339)

천천히 눈을 뜬다. 충분히 쉬었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다. 세상은 아직 적막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시계를 본다. 이제 사랑하는 이들을 깨우고 그들을 챙긴 후 출근할 시간이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었으며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조금은 줄이리라. 심판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일으킨 것도 나고 굳이 이 신체로 이 세계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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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미군들은 월남사람들을 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다. 그러나 이라는 비칭은 월남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은 원래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천시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 비하의 지칭에는 아시아 황색인종 전체를 업신여기는 의미가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군들은 한국군은 연합군으로 자기네와 같다고 애써 구분하면서 월남인들만 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이상재는 그 얍삽한 수작이 오히려 역겹고 기분 상했다.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간주한다는 글을 일찍이 읽었기 때문이다. 황인종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취급해 버리는 백인들의 그 대책 없는 오만과 우월감, 그에 대한 반감이 이상재는 월남에 와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미군들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월남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6.25 때 한국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86)

상층부 몇 명이 북쪽에 가고, 노동당에 입당을 하고, 거액의 돈을 받아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악명 높은 중정의 고문수사에 의한 조작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재판을 하게 되면 조작이 폭로되고 말 텐데 그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한두 명이 연루된 사건도 아니고 70명이 넘게 구속된 대사건을 가지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런 행위가 온몸에 휘발유 뒤집어 쓰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위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자신들이 추구했던 운동이 김일성 정권을 편드는 것이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남쪽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동시에 직시하고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혁신이며, 진정한 통일운동의 길이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층부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자금이 필요해서? 그건 전혀 말이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중단해야지 돈 때문에 운동의 순수한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니면 상층부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원들을 속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악질적인 흉계고, 속은 자들의 순수한 무참하게 짓밟혔을 뿐이다.

 

(150)

전태일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야기 들을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내뿜으며 책상 옆구리에 붙여둔 빈 의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저어, 저희들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작업환경부터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도록 형편없이 나쁩니다. 먼저, 천장 높이가 1.5미터밖에 안 되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원래는 3미터 높이였는데 사장들이 임대료를 줄이고 돈을 많이 벌려고 절반을 막아 2층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장들은 대개 8평 정도고, 평균 32명씩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좁은 공장이 복도로 통하는 문 외에는 세 벽이 모두 막혀 있어 통풍이 전혀 안 될 뿐만 아니라 환기장치도 일절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봉제공장은 모두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통풍도 안 되고 환기장치도 전혀 없으니 원단에서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며, 옷감을 재단하고 옷들을 만들면서 끝없이 일어나는 실밥먼지는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대로 공장 안에 갇혀 있어서 공장 안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침침합니다. 공원들은 그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는 옷감일 때는 서너 시간만 일해도 먼지가 앉아 머리가 허옇게 되고, 도시락을 펴놓고 첫숟가락을 넘기기도 전에 밥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아 먼지밥을 먹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먼저구덩이에서 날마다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염, 진폐증, 폐결핵, 각종 눈병들이……”

 

(160)

자아, 그럼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야.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나 다 똑같이 평등해. 사람이면 모두가 다 공평하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니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말야. 우리 공원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제대로 봉급받고,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수당을 따로 받고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져 있어. 그건 나라가 만든 법인데, 그 법 이름이 바로 근로기준법이야. 그런데 그 법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공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처럼 뼛골 빠지게 혹사당하면서도 거지꼴을 못 면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그 법이 안 지켜질까? 사장들이 돈 많이 벌 욕심으로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그거 맞는 말이야. 그러나 그건 정확한 답이 아니야. 사장들의 잘못은 3분의 1밖에 없어. 그 법이 제대로 확실하게 지켜지게 하려면 사장들 말고 또 책임져야 할 데가 두 군데가 더 있다 그런 말이야. 자아, 이 대목에서 내 말 똑똑히 들어. 그 두 군데 중에 한 군데가 나라에서 만든 법을 제대로 잘 지키나, 안 지키나 감독해야 하는 공무원들이야. 그럼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지?”

전태일은 두 공원 아가씨를 응시했다.

 

(283-284)

원병균은 여러 가지 정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말을 잃고 있었다. 산비탈은 45도가 족히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런 급경사에 단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세운 것이다. 최신 장비나 최신 기술이 있더라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자재들을 등짐으로 져올리고, 콘크리트 반죽도 삽으로 적당적당 해치우는 형편에 그런 난공사를 한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평지보다 몇 배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공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하고, 감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산동네마다 솟아오르는 시민 아파트들이 너무 졸속이고 날림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르도자시장은 그런 우려와 비판을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며 일을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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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김왕규는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는 친일파이며 민족반역자요, 나는 적어도 우리 조선민족을 외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김왕규는 일제시대에 일본정부의 관료로 출세한 친일파요. 그런 친일파가 해방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애국자 행세를 하며 설치고 있소. 나는 그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오. 김왕규는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애국자라 하며 나를 비애국민으로 매도하지만 과연 누가 애국자고 누가 비애국민이오? 내가 취조를 받기 위해 검사 방에 갈 때마다 김왕규는 양담배를 수북이 쌓아놓고 피워댔소.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의 경제를 부흥, 발전시켜야 할 이 마당에 양담배를 피워대다니! 그가 과연 애국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오. 누가 애국자였고 누가 이 민족을 위해 살았으며, 누가 사형을 언도받아야 할지는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형을 선고한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애국적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제의 앞잡이들이 선고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소!”

 

(173)

아이를 낳던 날 방구들을 파내던 경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태어난 날부터 내쫓겼던 아이, 죽는 날까지 울음 한번 시원하게 터뜨려보지 못하고 쫓겨만 다니던 아이, 네 앞에서 결코 부끄러운 어미는 되지 않겠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질긴 운명과 슬픈 이별을 강요하는가. 어미는 그것을 부숴버리고야 말겠다. 이 땅의 모든 어미가 밥을 달라고 우는 아이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야 말 테다.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는 날 어미는 네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테다. 네가 큰 소리로 맑은 웃음을 터뜨려도 입을 막지 않고, 같이 웃으며 힘차고 뜨겁게 너를 안아줄 테다. 여기서 쓰러지는 건 아이를 두 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녀는 이를 악다물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내색하지 않아도 아이를 잃은 충격은 역시 컸던 모양인지 뱀사골에서 좀 좋아지던 건강이 다시 나빠졌다. 당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건강이 최우선이었다. 예전처럼 다른 동지들의 짐만 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일꾼으로, 아니 아이까지 두 몫의 일꾼으로 이제는 제 할 일을 다하는 투사가 되어야 했다.

 

(305-306)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 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평에서 9백여 명에 가까운 대부대로 승승장구하던 남부군은 이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고 난 후 150여 명 정도만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 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388-389)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갔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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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래전에 쓴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목숨까지 걸게 했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쿠바 정도가 사회주의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사회주의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 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사회주의가 사멸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33-34)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어항 속의 금붕어였을 뿐이었다. 어항의 벽을 깨뜨릴 수 없다면 굴욕적으로 숨쉬느니 어항 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내게는 벽을 깰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있을 따름이었다. 판검사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든가, 판검사가 될 수 없으니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의사라도 되겠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살기로 했다. 나를 소외시킨 세상을 오히려 내가 소외시킨면서 말이다.

 

(55-56)

역사란 세계사 책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 내가 사는 이 반내골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구름 위로 솟은 지리산을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다가왔다. 할머니의 말대로 공산당이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설령 두 분 때문에 연좌제 정도가 아니라 목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반쪽짜리 역사였거나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은 배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내 혼란의 일부분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왜 세상에는 차별이 있는지, 왜 나는 공산당의 딸로 태어나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책에 씌어진 역사와는 다른,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 내 부모는 그 역사의 와중에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 내던졌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92)

그러던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됐다. 그가 소속해 있는 철도에서의 파업이 총파업이 불씨였다. 애당초 철도파업이 내건 요구사항은 쌀을 달라는 대부분 인민들의 요구와 별다른 바 없었다. 일급제 반대, 기본급료 인상, 가족수당 일인당 육백 원 지불, 물가수당 인상, 식량을 본인에게 네 홉, 가족에게 세 홉씩 지급할 것, 운수부 직원도 동등하게 대우할 것 등이 노조의 요구조건이었다. 당시 모든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일제시대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철도국장 맥크라인은 철도노조가 제출한 요구조건에 대하여 인도 사람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를 먹고 있으니 행복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군정청의 회답이 없자 철도노조는 24일 오전 9시를 기해 사만여 노조원들이 일제파업에 돌입했고, 26일에는 서울지역 출판부문 노동자들이 동조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26경성지방 총파업 출판노동조합 투쟁위원회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51-152)

천하의 개망나니 박종하는 46년 말이 되면서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천하의 박종하를 저렇게 얌전하게 만든 게 누구냐며 수군거렸다. 박종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곧 밝혀졌다. 바로 공산당이었다. 주먹이나 휘두르는 것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말뿐인 해방조선 젊은이의 답답함이 무신자를 위한 평등한 새 세계 건설과, 친일파를 비호하며 조선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라는 이 땅의 역사적 사명을 알아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놀랍게 변해가는 박종하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공산당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당시 남조선 대부분의 인민이 그랬지만 박종하와 같은 동네 사람들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노인네나 젊은이들이나 모두가 좌익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조금 말썽피우는 사람을 보면 으레 저놈 공산당 만들어야 사람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62)

동무들! 우리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이오. 굶주리고 짓밟힌 무산대중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가들이오. 혁명가는 이미 자기를 버린 지 오래요, ……혁명가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혁명당을 따라야 하오. 동무들은 한 지도자의 일시적인 오류로 혁명사업을 그르쳤다고 해서 영원히 혁명을 포기하겠다는 거요? …… 이번 전쟁은 언젠가 중앙에서 다시 검토될 것이오. 그때 모든 과오들이 가려지고 비판되겠지요. 이 점 명심하고 동무들 몇 명이서 북으로 가겠다는 거요? 이미 퇴로도 끊겼소. 지금까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시오.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각자 자기 부서로 돌아가 자기 임무를 다하시오.”

 

(313-314)

여름과 함께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한번 해방이 물거품으로 사라자는 순간이었다. 여순사건, 작년 여름의 광주 입성, 그 짧았더니 해방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의지만으로 움직여지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내일모레일 것 같던 해방은 미제의 참전으로 물거품이 되고, 미제의 완전한 한반도 점령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저지되었다. 세계의 복잡다양한 얽힘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부서졌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거대한 역사의 덩어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확신하면서도 웬일인지 정체 모를 허전함은 마음 깊숙이 똬리를 틀고 사라지지 않았다. 생성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아름답고 분명한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에는 슬픔도 있는 것일까. 한 인간, 그 개체는 죽되 인류는 발전한다는 위대한 진리 앞에서도 그는 가끔씩 섬뜩한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363)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도도한 원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384)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보라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 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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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선오는 눈을 맞으며 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득한 눈발 저쪽에 무등산이 그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산, 광주에 오면 누구나 바라보는 산, 언제나 중후하고 의연하고 듬직하고 넉넉한 자태의 무등산은 겹겹의 눈발이 지어내는 환상적인 옷을 입으며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광주를 내려다보듯 보듬듯 하고 있는 그 산을 무시로 바라보며 무등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던 지난날을 김선오는 왠지 슬픈 감정으로 더듬고 있었다. 등수를 매길 필요가 없도록 으뜸이 되겠다는 꿈 속에는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꿈은 클수록 좋고, 욕망은 치열할수록 좋다.”

 

(37-38)

그게 말입니다…… 얼핏 보면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이 더 손해일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딴 그릇에 따로 내와도 깍두기가 모자라게 되면 사람들은 또 달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갖다 주느라고 일손만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 일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또…… 딴 그릇에 두 번 내온 것이 많아서 남기게 되면 그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씩만 꺼내 먹으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두면 인심을 후하게 쓰는 것 같아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하고, 그게 더 손님을 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78)

허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을 거야. 자기 할아버지와 집안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떻겠어. 일본놈들이 백배사죄하며 돈을 싸짊어지고 와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이쪽에서 사죄 같은 건 상관없이 어서 돈이나 좀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 아니냔 말야. 그러니 자기 할아버지가 짓밟히고 모독당하는 것 같고, 괜히 헛된 일 한 것 같고, 또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면 얼마나 기막히겠어. 우리가 허진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는데, 어쩌면 죽고 싶은 심정으로 데모를 하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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