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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과 책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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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지럼증과 함께 심한 두근거림을 느낀다.  

보르헤스가 그려내는 비상식적인 세계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던 세계를 송두리째 갈아 엎는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절대성이 보르헤스의 필치 앞에선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친모와의 안녕을 고함과 동시에 바로 계모를 받아 들여야만 하는 충격적 상황과 마주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충격은 그 내용에만 있는게 아니다. 나는 프로이트를 읽으며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보르헤스를 읽고 있으면 나의 모국어가 스페니쉬(Spanish)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인이며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을 공용어로 한다).  

독자를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건 보르헤스의 모호한 알레고리이며 동시에 그 알레고리 앞에서 갈팡 질팡,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번역이다. 우리는 이렇게 알레고리와 번역의 사이에서 두 번의 절망을 맞는다. 이제 이 절망들은 보르헤스 포기를 종용하는 암묵적 메시지가 된다. 평생 단편만을 고집하여 결코 두꺼운 법이 없는 보르헤스의 책들은, 그렇게 우리 손을 떠나 영영 찾을 수 없는 바벨의 도서관에 보관된다. 

보르헤스 세계의 특징은 상호 반영을 통한 이미지의 무한 복제다. 쉽게 마주보고 있는 거울을 생각하면 된다.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무한의 이미지를 반복하듯이 보르헤스는 '세상의 만물이 그려진 지도', '모든 책이 씌인 책' 등으로 세계를 언어화 한다. 만물이 그려진 지도라든가 모든책이 씌인 책은 그 자체가 전체이면서 동시에 부분일 수 밖에 없는 패러독스를 잉태하므로 그의 문학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라든가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돈키호테' 같은 기이한 불확실성을 마음껏 유희한다. 보르헤스는 이 책의 열 번째 챕터 '돈키호테에 어렴풋이 나타나는 마술성'의 마지막을 칼라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1833년에 칼라일은 말했다. 우주의 역사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쓰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 스스로가 묘사되어지고 있는 무한으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한 권의 책이라고. 

<듀안 마이클> 

보르헤스의 또 다른 특징은 끊임없는 이야기와 인용 그리고 그에 따른 방대한 주석이다. 보르헤스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39세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겪은 뒤 거의 실명 상태로 지내왔음에도 그는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살아 생전에 읽었던 책은 거의 2만권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르헤스의 글엔 엄청나게 많은 인용구와 책과 작가들이 등장한다. 마치 20세기의 '세헤라자드'가 된 듯이 보르헤스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끼워 넣고 책 속에 책을 삽입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어김없이 방대한 주석이 뒤따른다.  

주석이란 보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나 편집자가 추가하지만 보르헤스의 경우 작자인 자기 자신이 많은 양의 주석을 추가한다. 독자는 이처럼 방대한 주석 앞에서 비선형적 독서를 경험한다. 우리는 여타의 책을 읽어 나가듯 정해진 순서에 따라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독자는 본문을 읽은 뒤 주석을 찾고 때때로 이를 따라 다음장으로 이동하지만 이내 끊어진 본문을 찾아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현대의 하이퍼텍스트를 닮아 있다. 특정한 줄거리의 탐색없이 'Back', 'Forward'를 연발하며 정보를 탐색하듯이 보르헤스의 독자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조각을 찾아 부유한다.  

<에셔>

 

'만리장성과 책들'은 보르헤스의 산문집이다. 일기를 암호로 쓰는 사람이 없듯이 보르헤스의 산문은 그의 소설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 문학의 원형과 그 원형이 창조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기에 그 동안 그의 소설을 읽으며 불편해 했던 독자들은 한층 더 가까이 보르헤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다'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방대한 독서, 무한의 지식,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 차원의 비평들. 인간이란 딱 아는 만큼만 보이기 마련인데 설령 이름이 익숙한 오스카 와일드나 나다니엘 호손을 평했다 한들 이제 막 지식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네 눈 높이에 보르헤스의 사상이 그 털끝 만큼도 보일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책을 읽었으나 읽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읽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지금의 내 심정과, 이렇듯 얼렁 뚱땅 글을 마쳐야만 하는 내 무력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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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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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는 5, 7, 5 총 17자로 이루어진 일본의 정형시다. 그 유래는 렌카와(連歌) 하이카이에서 찾을 수 있는데, 렌카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어지는 노래를 뜻하고 하이카이는 렌카의 형식을 그대로 지키되 내용면에서 해학을 담아 서민적으로 발전시킨 대중시를 말한다. 렌카와 하이카이는 모두 5, 7, 5로 이뤄진 앞구와 7, 7로 이뤄진 뒷구를 갖추고 있어 보통 두 세명에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번갈아 가며 시를 읊는 형태였다. 오늘날 가요의 역할을 당시엔 렌카와 하이카이가 맡았던 셈이다.  

카와 하이카이의 첫 구는 홋쿠(發句)라 불리는데, 여기엔 반드시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季語)를 넣어야 했고 노래가 지어진 배경을 읊어야 했으며 그 구 자체만으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이것이 나중에 여러 사람이 모여 시를 읊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없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하이쿠로 발전된 것이다. 

하이쿠의 형식엔 계어, 5, 7, 5의 엄격한 자수 제한과 더불어 '기레지'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이쿠 자체가 짧은 시인만큼 한 번에 읽어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쉼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읽는 이들은 이 쉼표에 잠시 머무르며 시의 여운과 경탄을 충분히 감상하게 된다(기레지의 예로 '~이여', '~로다', '~구나' 같은 것들이 있다).   

 

시란 다양한 심상과 주제를 압축된 언어에 담아 냄으로써 짧지만 긴, 적지만 많은 것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다. 하이쿠는 이것을 더욱 고도로 압축해 체계화한다. 흔히 압축과 요약을 오해하기 쉬운데 이 둘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행위다. 요약이 생략과 삭제를 통한 가지치기라면 압축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품에 안은 태초의 우주다. 크기는 작지만 매우 밀도 높은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게 바로 압축의 정수다.  

따라서 압축된 세계의 겉모습은 일견 고요해 보이나 그 안에선 강렬한 에너지가 끊임없이 도약하고 있다. 하이쿠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짧은 마디마디에서 무한한 감성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하이쿠 한 편을 감상해 보자. 

두 사람의 생애, 그 가운데 피어난 벚꽃이런가 - 바쇼  

 

두 사람이 서 있고 그 사이에 벚꽃이 피었다. 서로 아무련 관련없이 살아온 두 사람의 인연이 활짝 핀 벚꽃에 의해 연결된다. 이 시를 보고 있으면 따뜻한 봄 빛이 온 몸에 스며드는 것 같다. 벚꽃이(계어) 주는 구체적인 심상 때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의심할 여지 없이 구체적인 심상이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얘기해보자. 

불을 지른 듯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게 벚꽃의 속성이다. 이런 벚꽃이 두 사람의 생애를 가로 질러 피어났다. 불현듯 뜨겁게 타올랐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 버리는 젊은 사랑의 한계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렇게 볼 때 벚꽃은 두 사람의 앞날을 희망으로 비춰주는 등대가 아니라 파멸을 예고하는 흉흉한 들불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두 사람의 '표정'이다. 만일 두 남녀가 서로를 쳐다보고 활짝 웃고 있다면, 연인은 반드시 오고야말 이별을 눈치채지 못하는 철부지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만을 바라보겠다는 쾌락주의자이거나.  

나는 담담하지만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두 남녀가 떠오른다. 앞으로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일이 어떻게 되든 중요한건 지금 이 순간이다. 나는 두 사람의 미소에서 헤어짐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느낀다. 그래서 두 남녀는 헤프게 웃지 않는다. 지금은 벚꽃이 피었고, 연인은 아직 봄날 한 가운데 서 있다.   

 

마지막으로 '생애'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그 안에 담긴 너무나 많은 일들이 떠올라 쓰기가 벅찰 정도다. 이 세상엔 각기 다른 수십 억의 인생이 존재한다. 그 인생들이 각자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활짝 핀 벚꽃 사이로 두 사람이 걸어간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이 길은 단지 생업으로 향하는 도로일지도 모른다. 잠시 멈춰 벚꽃을 바라볼 만한 여유는 없다. 두 남녀는 수 없이 스쳐 지나 가지만 결코 서로를 알아 보지는 못한다. 숨막힐 듯이 흐드러진 아름다움도 삶의 고단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다. 

봄날 한철 피고 지는 벚꽃의 생명은 무한한 시간, 그 막막한 무게 앞에 놓인 우리의 생애를 닮아 있다. 이 찰나의 순간을 잡아채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생애, 그 사이에 무심히 피어난 벚꽃 눈송이. 나는 어서 빨리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 봤으면 한다. 벚꽃 사이로 지나가는 저 여자가, 그리고 그 옆을 스쳐가는 저 남자가, 서로의 짧디 짧은 생애 그 한 가운데 피어난 봄날의 꽃이라는 사실을, 어서 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더 많은 하이쿠를 소개하고 싶지만 도무지 글이 끝날 것 같지 않아 여기서 멈춘다. 그래도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기본의 취지로 돌아가 한 마디 덧 붙이면, 번역의 한계상 모든 시가 17자로 번역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상에 무리가 따르진 않는다. 이 후에도 많은 하이쿠 선집을 찾아 보겠지만, 이 하이쿠들에서 받은 감동은 오랫동안 잊혀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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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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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훈의 글은 종이 위에 연필로 씌여진다. 김훈은 종이위에 연필로 써야만 한줄 한줄 온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글쓰기를 강도 높은 육체 노동으로 비유하는데, 김훈의 문장을 보고 있으면 매초 매시 거대한 삶을 밀고 가는 순교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순교자의 모습에서 보는 이를 초죽음으로 만드는 피로가 쏟아져 나온다. 김훈의 문장은 사람을 녹초로 만든다. 

이 글은 김훈이 자전거 여행을 하고 놀고 누군가의 글 위에 평을 하고 또 누군가와 인터뷰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모두 김훈의 에세이에서 익숙한 풍경들이다. 또 다른 산문집 '자전거 여행'과 '바다의 기별'을 짬뽕해 놓은 듯 하다. 삶의 스펙트럼이 그렇게 넓은 사람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미 나와있는 에세이가 너무 많거나. 

김훈의 문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이다. 그의 문장에는 '수 많은 역사가 담겨 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수 많은'이라는 단어로 일단락 짓기에 김훈의 문장은 너무나 '깊고 넓다'. 내가 어떻게 이 책을 말할 수 있을까? 굳이 말한다면 '말할 수 없다'이다. 나의 평은 이토록 초라하고 민망하다. 

 

 

<이미지출처: http://bonjo6z.egloos.com/5251946

 

훈의 문장에선 거친 마초의 냄새가 난다. 문장은 섬세하디 섬세한데 여성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김훈의 얼굴은 사랑방에 눌러 앉아 온종일 침묵하는 가부장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는 온 몸으로 밀고 나가며 문장을 쓴다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엔 밀고 나가는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거다. 기계에 들어간 반죽 덩어리가 고운 면발이 되어 나오듯 그는 온 몸으로 눌러 문장을 낸다. 이렇게 나온 문장은 뜨거운 물에 빠져 한 동안 삶아지다 이내 시원한 물에 식혀져 차가운 놋쇠 그릇에 담겨 나온다. 김훈의 문장은 '깊고 넓으며' 또한 '차갑고 뜨겁다'. 

김훈의 문장엔 아스라히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회한과 상념이 담겨 있다. 김훈은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 대다 찬바람이 불자 울음을 멈춰 버린 벌레들의 시체를 찾아 숲으로 간다. 늦가을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철새의 주검을 찾아 들판으로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끝끝내 벌레와 새의 시체를 찾을 수는 없다. 김훈의 문장은 '뜩'하고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들의 과거를 더듬는다. 

그러던 김훈은, 어느날 강둑에 앉아 나비의 최후를 목격한다. 나비는 꽃 위에 앉아있다 바람에 씻겨 사라졌다. 벌레가 시체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바람 때문이었다. 벌레는 바람에 날려 무로 되돌아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는 어디에서 죽는가? 새들은 따뜻한 곳과 먹이를 찾아 바다 위를 나른다. 그러나 바다에는 오로지 바다 뿐이다. 바다는 잠시 쉬어갈 틈도 주지 않는다. 기진한 새는, 바다뿐이 없는 바다 위에 떨어져 시체가 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 새의 시체가 만든 최후의 물결마저 지워지고, 차가운 바다가 시체를 삼킨다. 

김훈의 문장엔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과 한계 지워진 땅에 대한 경탄이 담겨있다. 김훈은 자전거로 여행한다. 자전거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자전거는 바다 너머 저 곳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주저 앉는다. 그리고 주저 앉은 그 자리에서 소금이 듣는 염전을 바라보거나 만선에 흐트러진 밧줄을 본다. 만선과 염전의 수확은 풍요와 결실의 상징일진대, 김훈의 문장은 이 모든 것들을 쓸쓸히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더 나아갈 수 없는 자전거의 비애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곳에서 피어나는 거룩한 생명의 신화가 짬뽕된 결과일 것이다.  

어느날 김훈은 자전거를 버리고 10일로 계획된 어선을 탔다.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최초의 여행. 하지만 흔들림에 익숙하지 못한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흐트러진 밧줄을 부여 잡고 그물을 끌어 당기려 했지만 선원들은 번거로운 그를 만류했다. 결국 흔들림에 이기지 못하고 김훈은 돌아오는 배로 갈아탔다. 10일로 계획된 어선에는 4일만 머물렀다. 

 

 

 

김훈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김구의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무협지를 써 밥을 벌었다. 하지만 밥을 벌었던 시간이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김훈은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었을 때의 가장 큰 고민이 '먹고사는 데 대한 공포'였다고도 했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 김구의 수발을 들었던 아버지의 아들, 가난한게 싫었던 그 아들은 소설가가 되었다. 

밥벌이는 지겨운 것인가? 김훈은 '노는게 신성하다'고 했다. 노동은 숭고하지만, 인간의 삶에있어 불가피하기 때문에 존속되는 것이다. 김훈은 오늘도 종이 위에 연필로 글을 쓴다. 악전고투, 한줄 한줄 온 몸으로 밀어낸 문장이 폭염 속, 한톨 한톨 돋아나는 소금처럼 쌓여 글이 된다.  

김훈은 이 글을 팔아 밥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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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머뭇거리다, 드디어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지난 1년 간 iOS를 이용해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엎치락 뒤치락했는데 이제야 겨우 첫 게임이 나오네요. 그리 대단한 게임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을 보충해야 하지만 생각한 것을 10%도 그리지 못했기에 앞으로가 더더욱 설레입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한다는게 쉽지가 않더군요. 지옥같은 아침을 찢고 회사에 출근해 시체같은 일과를 보낸 뒤 깊은 밤까지 다른 삶을 꿈꾸는 나날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꿈이란 아침에 피어났다 저녁엔 반드시 깨지고 마는 유리장미 같습니다. 이 장미를 죽을동 살동 품에 안고 매일을 달렸어야 했는데 피어나고 빠개지기를 수 백번, 결국 1년이나 걸리고 말았습니다. 고작 이런걸 만드는데 1년이나 걸렸냐고 탓한다면, 네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걷기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가 닿을 수 있겠죠. 중요한건 꾸준함과 의지니까요. 

제가 다른 삶을 꿈꾸게 된 결정적 이유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웃긴건 그 사람이 30대든, 40대든, 50대든 모두가 똑같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리는 지금의 30대는 동시대의 40대가 그토록 갈망하는 '10년의 젊음'일 겁니다. 그리고 그 40대는 역시 동시대의 50대가 바라마지 않는 '10년의 젊음'일 거고요. 그리고 60대는... 그리고 70대는... 

생을 살면서 가장 도전하기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토록 취업이 어렵다는 시절에 괜찮은 직장을 얻었고 4년 간 일했지만 더 이상 꿈을 태워 인생의 기차를 전진시킬 수는 없습니다. 조만간 회사를 떠날겁니다. 대양 한 복판을 항해하던 크루즈에서 내려 허름한 조각배 위에 올라섰지만 마음은 어느 때 보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꿈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지금 바로 출발 하세요. 우리 서로 응원하면서 같이 가보자구요!  

Tap the Bean 

장르: 퍼즐. 단기기억 측정 게임. 

앱주소: http://itunes.apple.com/us/app/tap-the-bean/id455617107?mt=8 

다운가능한 앱스토어: 한국 빼고 다!! 

가격: 무료! FREE!  

 

솔직히 고백하면, Camera Mind라는 플래시 게임의 룰을 그대로 카피했습니다. 대신 그 위에 'Green family'의 뉴욕 여행기라는 스토리를 warpping 했죠. 보고 배운게 스토리텔링이라 가장 잘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평소 대도시에 대한 동경과 일탈을 꿈꾸던 Green Family(완두콩 가족)는 답답한 시골 마을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New York으로 떠납니다. 데굴데굴 고속도로 위를 굴러 드디어 뉴욕에 도착한 우리 완두콩들은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에 완전히 매료 되고 맙니다. 특히 가족의 막내 큐트 그린(Cute Green)은 사람으로 빽빽한 길거리와 노점에 늘어선 각종 채소들을 보고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립니다.  

 

도시를 구석구석 여행하던 큐트 그린은 순간 굉장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가족이 모두 사라져 버렸던 거죠! 큐트 그린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가족을 불러봤지만 찾질 못했어요. 완전히 절망에 빠질 법도 했지만 큐트 그린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어렸지만 강인한 마음을 가진 콩이었어요. 

큐트 그린은 당당히 맨하탄까지 굴러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하죠. 가족들이 자신의 소문을 듣고 찾아올 만큼 맨하탄에서 유명한 콩이 되겠다고! 그리하여 큐트 그린의 숨바꼭질, 'Tap the Bean'이 시작됩니다. 

게임 방식은 무척 간단합니다. 우선 화면에 나타난 우리의 큐트 그린을 Tap 합니다.  

 

그리고 나면 잠깐 동안 화면을 가리는 Transition page가 지나가고,  

 

짠! 혹시 새롭게 나타난 큐트 그린이 어디 있는지 아시겠나요? 자 그럼 새롭게 나타난 큐트 그린을 Tap 해 보세요.  

 

짠~ 또 다시 새로운 큐트 그린이 나타났네요. 이제 대충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시겠죠?  

 

너무 쉽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10레벨이 넘어가고 20레벨이 넘어가면 점점 만만히 볼 수 없어 집니다. 특히 기존 콩의 바로 옆에 은근 슬쩍 나타나는 작은 콩들은 정말로 찾기가 힘들죠. 혹시 큐트 그린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땐 좌측 상단에 있는 힌트 버튼을 눌러 보세요. 친절하게 새로 나타난 큐트 그린을 찾아 준답니다.   

 

결과 페이지에선 도달한 레벨을 기준으로 유저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평가해 줍니다. 지적 수준은 총 17개로,  

18세기 백과전서파의 고전적 동물 지능 분류법과  

심리학자 스키너의 단기기억 측정에 따른 보편적 인간 지능 평가,  

그리고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등을 토대로 초과학적이고 정밀하게 분류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그냥 제 맘대로 1~45레벨 사이를 나눠 총 17개의 지적 수준을 정해 놓았네요.  

 

 

자신의 지적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해 보세요. '똑똑한 지렁이'나 '신중한 침팬지'가 나왔다고 너무 화내지는 마시고요. 친구들과 내기 해서 누가 더 똑똑한지 겨뤄 보면 더더욱 재밌어 지겠죠? 

다양한 Achievements와 Records, SNS를 지원하는건 기본이죠. 광고가 싫으신 분들을 위해 I hate Ads 메뉴도 있네요.   

 

하지만 더더욱 기대되는건 다음 버전에서 등장할 Challenge mode 입니다.   

 

이번 버전이 가족을 찾기 위한 큐트 그린의 몸부림이라면 다음 버전은 기적과도 같은 가족과의 상봉입니다. 시즌2에서는 적어도 10개의 Challenge mode를 탑재해 완전히 새롭고 다채로운 플레이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니 업데이트 되는 그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마세요! 

자 이제 그럼, Are you ready to TAP? 

 

<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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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과학 - 세종마케팅총서 1
파코 언더힐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쇼핑의 과학이 제안하는 '고객을 사로잡는 9가지 성공 법칙'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여기에 나름대로의 사례와 논평을 추가한다. 

 

법칙1.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손이 자유로울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상품을 집어들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은 모든 매장은 우선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오늘날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매장들은 입구에 락커룸을 설치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 쇼핑 카트는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실 카트의 위대한 점은 바로 거기에 아이들이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아이들은 가방이나 목도리, 책이나 코트와는 달리 락커룸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카트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이가 카트에 앉아 있는 이상 어른들은 매장을 휘젓고 다니며 물건들을 쏟아 버리는 아이의 뒤를 쫓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신이 짐짝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그 곳에 앉기를 좋아한다.  

카트와 락커룸은 현재로서도 제법 괜찮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두 가지 점에 있어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명품 가방과 애완견을 보관하는 일이다. 명품 가방을 락커룸에 보관하는 것은 너무 불안하다. 그렇다고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당근, 파, 마늘을 함께 넣었던 카트에 올려 놓으라고? 애완견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명품 가방만큼 소중한게 애완견일 것이다. 

 

 

 

법칙2. 고객의 동선에도 법칙이 있다  

쇼핑의 과학은 극단적으로 말해 상점에 들른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고객이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당신의 장사는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고객은 어디로 향하는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 단순한 법칙은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들이 오른손 잡이라는 단순한 사실과 관련이 있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이 사실을 간단히 알아채지는 못했다. 이제 당신은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매장 입구 오른쪽에 '신사복 매장'을 설치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고객의 80%가 여성인 당신의 백화점에서 말이다.  

간단한 사실 하나 더! 사람은 앞으로 움직인다! 인류는 이집트 상형 문자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게걸음을 걷지 않는다. 인간의 눈은 앞을 지향하고 두 다리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상품들이 복도를 따라 옆으로 진열되어 있다! 상품들이 약간 비스듬히 그러니까 앞으로 걸어가는 고객들에게 적당히 노출 될 수 있을 만큼 기울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줄지어 늘어선 상품들은 고객의 심장을 두방망이질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법칙3. 광고의 생사는 1미터로 결정된다.  

한 마디로 매장 입구에 광고판을 설치하지 말라는 얘기다. 매장 입구는 고객들에게 그리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느긋하게 서서 광고판을 읽을 여유는 없다.  

당신의 광고판을 입구에서 고작 1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해 보라. 입구의 혼잡함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이제 여유를 찾고 매장을 둘러 보기 시작한다. 광고가 위치해야 하는 곳은 고객이 다른 것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안락한 장소여야 한다.  

얼마전 버스에서 QR 코드 광고판을 본 적이 있다. 이 광고판은 무려 버스 뒷문에 위치해 있었다! 하차를 위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스마트폰 App을 실행해 QR 코드를 찍는다고? 넌센스 오브 넌센스다. 

 

 

 

법칙4. 고객의 본성에 섣불리 도전하지 말라. 

본성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독자를 위협하지만 사실은 별 내용 없다. 만약 창틀이나 장식용으로 설치한 화단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면 당신의 매장에 지금 당장 의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객이 편안히 쉴 수 있다면 쇼핑으로 지친 그들은 의자에 앉아 기운을 회복한 뒤 다시 맹렬한 쇼핑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고객은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완벽한 촉감의 극세사 이불을 파는 주제에 그것을 비닐로 꽁꽁 싸매고 있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상품이 팔리지 않거나, 고객들이 남몰래 비닐을 찢어 이불을 만져 보거나!  

 

법칙5. 남성은 마음 편한 쇼핑을 원한다.  

스탠포드 MBA 출신인 로이 레이몬드는 부인에게 속옷 선물을 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백화점 속옷 매장에는 부끄러워서 갈 수가 없었다. 이때 로이가 얻은 아이디어가 고급 속옷을 사러 갈땐 고객이 변태처럼 느끼면 안된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매장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77년, 4만 달러의 은행 대출금과 함께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을 만들었다. 로이는 첫 해에만 5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5년 뒤인 1982년 The Limited에 회사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400만 달러였다.  

 

법칙6. 여성은 고급스런 쇼핑을 원한다. 

여성은 고급스런 쇼핑을 원한다. 지금 당장 명동 롯데 백화점에 들러 명품관을 찾아 보라. 정장을 입은 떡대 한명이 매장 입구에 서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다.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입구의 떡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여성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무때나' '아무나' 구경할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님을 학습한다. 기다림의 불편이 '특권'으로 대치된다. 

 

 

 

법칙7. 작은 것은 불편하고 큰 것은 아름답다.  

이는 점차 소비 세계의 주류로 떠오를 실버 세대를 위한 법칙이다. 이들의 쇼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게 뭘까? 우선 모든 활자의 크기가 너무 작다. 실버 세대들은 오메가-3와 두통약, 키토산 알약의 효능과 유효기간을 살펴보기 위해 200배줌 현미경을 들이 밀어야 한다. 옛날 우리 말에 노파심이란 말이 있듯이 실버 세대는 대체로 걱정이 많다. 그들이 만약 약병에 적힌 설명을 읽지 못한다면, 실버 세대들의 노파심은 결코 그 약을 구매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법칙8. 아이들의 쇼핑: 쇼핑은 상품과 노는 것이다. 

맞벌이가 주류가 됨에 따라 가족의 쇼핑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엄마의 직업은 가정주부였다. 가정주부는 가족이 등교와 출근을 한 틈을 타 쇼핑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나 아빠 모두 출근을 한다. 이에 쇼핑은 주말에 가족 모두가 떠나는 즐거운 산책이 되었다. 

아이들의 넘치는 호기심을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만지려'한다. 그런데 세상에 아이들을 위한 콘푸로스트가 매대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콘푸로스트가 아이들의 손이 닿는 아래쪽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곧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파란 상자를 들고 부모에게 달려가 조르기 시작할 것이다.  

요새 몇몇 대형 서점을 둘러 보면 어린이 도서 코너의 차별화된 디자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곳은 서점을 통틀어 유일하게 '코너 안에 의자'가 배치된 곳이다. 의자는 코너의 가장자리를 쭉 둘러싸 그 안 쪽은 광장을 형성한다. 광장의 바닥은 딱딱한 대리석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고무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뛰거나 앉거나 눕는다. 부모들은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감시할 수 있으며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책을 읽어 줄 수도 있다. 어린이 도서 코너는 거의 놀이방에 가깝다.  

 

칙9. 쇼핑은 체험이다.  

쇼핑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다. 쇼핑은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보고 냄새맡는 오감의 체험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온라인 쇼핑이 결코 오프라인 쇼핑을 대체할 수 없을 거라 말한다. 반박할 충분한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형 매장들의 엄청난 성공을 돌아봤을 때 - 그들은 시식 행사를 열고 화려한 광고판을 설치하며 과감히 포장을 뜯어 고객이 사용해 볼 수 있게 한다 -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이다. 

현실 세계의 매장은 고객에게 접촉과 즉시 만족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해당 물건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떤 맛을 내는지, 무슨 향이 나는지 직접 경험하며 오랜 기다림 없이 즉시 구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오감의 퍼포먼스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패키지 디자인>  

 

따지고 보면 쇼핑의 과학은 고객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행동 패턴을 파악해 그것을 충동구매와 연관시키려는 전략적 속임수를 뜻한다. 저자는 매출 증대의 핵심이 충동 구매에 있다고 믿는다. 샘숭전자의 갤럭시S를 1+1으로 파는 대국의 시민답다. 

쇼핑의 과학은 출간된지 벌써 10년이 지난(한국에서만), 초판 34쇄의 명작답게 오프라인 매장 운영 전략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만약 당신이 퇴직을 앞둔 회사원이라면, 그리고 장사라고는 털끝 만큼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나 막연히 치킨집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감동을 받은 건 쇼핑의 과학이 아니라 그 과학을 도출해 내는 과정 이었다. 2만 시간이 넘는 비디오를, 그것도 초고속으로(슬로우 모션으로 찍는다는 얘기) 촬영하여 고객의 행동과 매장을 꼼꼼히 기록하는 장인 정신. 아마도 인바이로셀(쇼핑의 과학을 연구하는 저자의 회사)에는 '내 생각에는 ~하니 ~할 것 같다'같이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사원은 없을 것 같다. 철저히 데이터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해석하는 강박적 꼼꼼함. 

이 책에서 뭔가 배울게 있다면 그건 확실히 '쇼핑의 과학'은 아니다. 그 과학에 이르는 '길'. 오히려 이 부가 정보가 100배 더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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