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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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프라이스 킹의 주요 등장인물과 아이템을 정리한다.


1. 인물

(1) 배치 크라우더 박치국

절대로 팔 수 없는 것을 절대로 사지 않을 사람에게 팔아 내는 사람. 아무것도 사들이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팔아 내는 사람. 최고의 장사꾼 혹은 최악의 사기꾼. 2호선 강변역에 위치한 동서울 터미널 12번 승강장 앞 노점에서 껌을 파는 것으로 장사를 시작한 그는 프랜차이즈 마트 '배치의 천 원 숍'을 JP 모건에 매각한다. 이후 이렇다 할 소식 없이 자취를 감췄던 그가 주인공 구천구의 동네에서 '킹 프라이스 마트'를 개장한다.


(2) 코끼리 아저씨

<킹 프라이스 마트>의 개장 행사에 동원된 코끼리 곡예사. 커다란 수레에 코끼리를 싣고 전국을 유랑하며 산다. 코끼리 공연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간다.


(3) 분식집 할머니 기우란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미륵 떡볶이'라는 분식집을 운영하는 사장님. 디포리와 멸치를 넣어 밤낮으로 끓인 육수를 이 리터에 오천 원을 받고 판다. 인생의 전부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 구천구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인물.


(4) 구천구

이 책의 주인공. 아무런 능력이 없다. 백수로 한평생을 살았다. 그렇게 팔자 좋게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킹 프라이스 마트'의 점원으로 취직한다. 입사하자마자 신임을 얻은 그는 박치국의 성공 비밀이 담긴 신비한 금고 속에 들어가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각성한다.


(5) 구이구 & 구칠구

구이구와 구칠구는 쌍둥이다. 구천구의 친형들이다. 온갖 비행과 범죄를 일삼으며 구천구가 눈에 띌 때마다 두들겨 패기를 즐긴다. 킹 프라이스 마트에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 구천구와 함께 신비한 금고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구천구에게 삼켜(?)진다.


(6) 억조창생 여사 - 본명 이진솔

구 씨 삼 형제의 엄마. 본명은 이진솔로 나이 서른에 사도 베드로를 내림받아 점집을 운영 중이다. 그때 창성창본하여 스스로를 인척 억 씨의 시조로 삼아 억조창생으로 개명한다. 주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나 지긋지긋하여 본인이 직접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박치국이 소유했다고 여겨지는 '베드로의 어구'를 빼앗기 위해 아들 구천구를 킹 프라이스 마트에 입사시킨다.


(7) 베드로

'그' 베드로다.


(8) 위원회

어둠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집단. 억조창생 여사와 마찬가지로 박치국이 가졌다고 생각되는 '베드로의 어구'를 뺏으려 한다.


2. 아이템

(1) 박치국의 금고

당연히 평범한 금고가 아니다. 금고 속에는 또 하나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사람은 영생을 산다. 베드로도 있다. 그는 금고 속의 호수에서 여전히 낚시를 한다. 호수 위 하늘에는 천국으로 이어지는 백도어가(Backdoor) 있다.


(2) 베드로의 어구

베드로가 나사렛 호수에서 낚시를 할 때 사용했던 그물.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거라'라고 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축복이 담겨 있어 이 어구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 53%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3. 줄거리

대충 베드로의 어구를 빼앗기 위해 등장인물들끼리 치고받고 소동을 벌인다고 정리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프라이스 킹>은 소설치고는 구성이 빈약하고 농담이라고 하기엔 재미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참 산만하다. 아이디어가 적힌 종이쪽지를 상자에 넣은 뒤 손을 휘휘 저어 뽑은 대로 이야기를 이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이다. 문학동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이후로 이 출판사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 문학동네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 대단히 관대한 것 같기는 하다. 그 위대한 <고래>와 <카스테라>를 펴낸 회사니까. <프라이스 킹>도 그 과정에 있는 소설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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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의 미래 - 양자컴퓨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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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오 가쿠는 정말 훌륭한 과학자다. <초공간>도 그렇고, <양자 컴퓨터의 미래>도 그렇고,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핵심만 골라 쉽게 얘기해 준다. 과학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지기 마련인데 이 멋진 과학자는 그 간극을 힘껏 당겨 이어 붙인다. 우리가 관심을 갖든 그렇지 않든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는 계속 작고 가벼워질 거고, 반도체의 집적도는 높아질 건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는 대중의 이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상상력은 이해에서 나온다.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야 편견 없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있는 걸 보면 때로 놀랍기까지 하다. 어린 시절 30년 뒤의 미래를 그리라는 주제가 나오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상대방을 보면서 전화하는 영상통화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그렸다. 지식과 이해가 없는 상상은 천편일률로 흐르기 마련이다.


1970년대에 대중들이 배터리 혁명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면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석유의 힘은 알았지만 전기의 힘은 몰랐다. 그 힘을 가둬둘 배터리의 존재가 너무나 미미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으면 필요가 생기지 않고 필요가 없으면 욕망도 없다. 70년대 사람들에게 TV를 손에 들고 다니고, 걸어 다니면서 전화를 하며, 비싼 석유대신 전기로 충전하는 자동차를 갖기를 강렬히 욕망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자. 자본주의가 좋은 점은 욕망과 탐욕을 진보의 동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욕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팔 수 없다. 물론 현대의 자본주의는 욕망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보하긴 했지만.


이제 막 싹을 틔운 기술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특히 더 중요하다. 기술은 어느 시점에 다다라 지수적으로 발전 속도가 증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데 한 우주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그 거리를 수천, 수만 배로 짧게 만들어준다. 핵융합이나 양자 컴퓨터 같은 초 선행 기술의 개발은 대부분 국가적 지원 아래 진행된다. 대중의 관심이 높다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수백, 수천억 원의 세금을 마음 편하게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양자 컴퓨터의 미래>는 양자 컴퓨터의 작동 방식과 이론적 원리보다는 그 능력이 몰고 올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철마다 나타나 곧 망할 기술을 혁신이니 미래니 울부짖는 테크 Geek의 장밋빛 미래라고 생각될 만큼 양자 컴퓨터의 미래는 엄마는 외계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뉴욕 치즈 케이크를 7:2:1로 섞어 만든 것처럼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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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형우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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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한다. 투표는 시민의 권리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권리가 의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시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안목을 길러야 한다. 후보의 이미지가 아니라 공약을 읽어야 한다. 숙제가 많아지면 공부는 지겨워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나의 결정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다는 것.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주의의 위기는 늘 낮은 투표율로 설명되곤 한다. 위기의 본질을 시민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한다는 의미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말을 했다간 시대착오적인 엘리트주의자, 권위의식에 가득 찬 똥덩어리, 자기애에 심취한 나르시시스트로 취급받을 것이다.


잠시 편견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자. 가장 현명한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게 정말로 나쁜 일인가? 각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논의를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궁극적 목표를 행복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지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든 독재든 공산주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늘날 대다수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최대의 이상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그것이 최적의 정치체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렇기 때문은 아니다. 정말로, 정말로 현명한 사람, 혹은 AI가 있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만 있다면 신성한 선거권 따위 개한테 줘버린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정치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이 극적인 반전을 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발작적으로 솟구칠 순 있겠지만 그 흐름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해 안대를 벗고 동굴에서 나와 뛰어난 안목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시민이 절대다수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공급의 측면에서 해결하는 게 현명한 일 아닐까? 나는 시민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수록 위기는 악화할 것이라 확신한다. 대중이 원하는 자유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에 가깝다. 이들이 선택과 판단의 자유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선택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쉽게 말해 누구를 뽑든 상관없이 후보자 자체를 훌륭하게 길러내자는 것이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현재 영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학교에 같이 살며 같은 가치관을 공유해 온 철부지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과거에도 영국의 정치가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로 구성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 대전이라는 상처 속에서 전우로서 함께했던 연대가 있었다. 심지어 그 '엘리트'들은 대중과 함께 참호 속에서 함께 기도를 올렸던 경험이 있다. 평화의 시대에 자란 옥스브리지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기들끼리 기숙학교에 다니며 다른 삶을 산 자들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그들에게 공감을 바라는 건, 오히려 바라는 쪽을 탓해야 할 일 아닌가.


대한민국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의 상당수는 언론인과 법조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 두 세계는 워낙에 견고해 새로운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나마 지금은 그 구성원들의 성장 배경이 꽤 달라 어느 정도 다양성이 갖춰져 있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에 자란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강남의 전문직 자제들이 대부분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들이 결국 이 세계에 다수 진입하는 시점이 되면 대한민국은 영국 못지않은 정치적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민주주의 위기를 공급의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내용은 대부분 옥스브리지 출신 정치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그 주장의 본질에 대해선 깨닫는 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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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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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야기에 빠지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 인간이 둘셋씩 모여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자 이는 곧 이야기로 발전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예기치 못한 자연현상, 그러니까 어제까지 안전하고, 따뜻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던 동굴을 몇 시간 만에 수몰시키는 비바람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미지는 곧 공포였다.


캄캄한 밤, 자꾸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실은 유리에 부딪힌 나뭇가지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안도하게 된다. 동굴에 불을 피우고 모여 살았던 인간들은 지역과 종을 막론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공유했다. 세상에 대한 설명과 근거. 공포를 제거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무엇.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의 근원이다.


세상이 왜 그렇게 동작하는지 잘 설명하는 이야기는 질서를 가져다준다. 질서는 더 많은 인간을 모이게 하고, 그 인간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질서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과 따르는 사람 사이의 위계를 형성한다. 질서는 곧 권력,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가 곧 권력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란 가장 널리 믿어지는 이야기를 전하는 자다. 질서를 만드는 자에게는 이리저리 변형되고, 너도 나도 신이 되는 고대의 이야기가 가진 약점이 또렷이 보였을 것이다. 권력자는 좀 더 견고하고, 독점적이며, 관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했다. 이로써 종교의 시대가 찾아왔다.


자연 모두에 영혼이 있으며, 그들 모두를 신적 존재로 만들었던 신화가 종교로 탈바꿈하는 건 필연적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신화와 비슷한 다신론을 믿는 민족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한 건 전부 유일신을 섬기는 민족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중국과 인도인데 중국은 유교가, 인도는 다른 종교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신분제도가 그 역할을 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종교라는 이야기에도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 사이에 불일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항상 의문인 점은 도대체 무엇이 먼저냐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 걸까,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진 걸까? 아마도 둘은 거의 동시에 발생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균열을 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에 반응하고, 살을 붙이고 그 이야기가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킨다. 고대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예언을 피하기 위해 주체적인 선택을 거듭하지만 결국에는 그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이것은 운명론이고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었으며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다르다. 그는 처음으로 선택 앞에 고뇌를 바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가른다는 이야기를 전파한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라는 이야기, 다른 말로는 르네상스, 또 다른 말로는 근대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이용하면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까지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세상이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규범, 원칙, 윤리, 도덕은 모두 인간이 만든 이야기다. 이것들은 인간을 꼼짝달싹할 수 없게 옭아맨다. 인간은 이야기라는 거미줄에 사로잡힌 피식자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이 거미줄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며, 우리가 언제든지 바꿔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야기'로 쓰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쳐 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비밀이자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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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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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은 말이 좀 이상한데, 무엇이든 어렵게 쓰려는 이 책의 목표와 딱 맞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서론을 읽으며 나에게 이 글을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들었고 13페이지에 걸친 난타를 맞은 뒤 정말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나는 물질적 결핍이란 조건과 가난함에 대한 인식 및 감각 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하면서(서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는) 빈곤 경험의 지층들을 헤집고, 빈자의 외연을 확장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현행의 '빈곤 레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비판하는 작업, 이 레짐을 닫힌 구조로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에 열린 어셈블리지로 만드는 작업을 모두 포함한다.(p. 8)


아마도 이런 책은 배운 사람들끼리 주고받으며 평생 읽지 않은 채 각자의 서가를 채우는 장식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같이 무식한 사람이 직접 사서 진짜로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은 전적으로 이 책을 사서 읽은 나의 잘못이다. 나는 서론을 다 읽고 내 한계를 인정하며 재미있는 소설로 옮겨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두꺼운 양장본에 2.4만 원이라는 가격이 극심한 비염 환자의 콧물처럼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다행히 이 책의 본문은 서론만큼 어렵지 않다.


<빈곤 과정>의 영어 제목은 Poverty as process다. 빈곤은 시대와 누군가의 요구에 맞춰 계속 모습을 바꿔온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냥 빈곤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는 특별한 형태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었을 테고, 좀 먹고살기 시작한 때부터는 달동네, 판자촌 등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놀라운 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오늘날,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에게 '당신은 가난합니까?'라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그렇다'라고 답한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구 다수가 불평등 구조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p. 7)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이 왜 우리 시대에 "경계 없는 불평등"이 만연 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면 내 입장에선 좀 더 흥미로웠을 테지만 이 책은 모두가 가난하다고 울부짖는 시대에 가난을 중요한 정치적, 윤리적 문제로 드러내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내용 중 가장 신선했던 건 정부, 사기업, 빈곤이 한데 뭉쳐 산업화된 과정을 드러낸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빈곤 레짐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 같다. 레짐은 체계, 권력, 시스템, 프레임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우리가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고의 틀을 정의한다. 빈곤 레짐이 동작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 권력이 익숙하게 반복하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레짐이 청년의 빈곤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체계에 저항하는 사람마저 자본주의의 소비자로 만든다는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론은 이미 익숙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비판에 익숙한 사람들조차 교묘하게 얼굴을 바꿔 우리 삶에 파고든 '빈곤 레짐'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게 소름이 돋는 지점이다.


21세기의 기업들은 채용 없는 성장을 거듭한다. 이들은 빈곤과 부의 양극화, 특히 젊은 세대의 빈곤에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타파의 대상이지만 사회공헌, 윤리적 자본주의, ESG 같은 경영 구호를 앞세운 마케팅에 청년들은 오히려 '착한 기업'의 팬이 되어 그들의 물건과 서비스를 더 소비한다. 


한국해외봉사단, 코이카 봉사단처럼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답시고 기획되는 화려한 행사들도 청년들을 착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NGO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미명하에 청년들을 불러 모아 가난한 나라로 파견한다. 청년들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봉사의 보람도 느끼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 한 줄도 얻어간다. 심지어 이 모든 비용은 기업이 부담한다. 청년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저렴하게 소비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채 이 놀라운 혜택에 그저 눈이 멀고 만다.


빈곤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빈곤과 싸워야 할 활동가들은 전선이 점점 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인서울 대학에 다니며 1.5평짜리 원룸에 사는 20세 청년이 빈자인가? 아니면 중학교를 중퇴하고 산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여전히 최저시급을 면치 못하는 40세의 중년 여성이 빈자인가? 빈곤 산업의 목표는 애초에 이 전선을 넓히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정상이 만연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모두가 빈자라면 더 이상 빈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결국 자신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득세한다. 빈곤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놀라운 건 이게 미래가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이미 과거가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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