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맆티콘 - 삶과 죽음의 세장면
막스 프리쉬 지음, 김형국 옮김 / 전남대학교출판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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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티콘”을 우리말로 하면 “세 폭 제단화” 기독교의 제단 뒤쪽에 그려진 세 폭짜리 그림이란 뜻이다.

 

트립티콘


  막스 프리쉬의 희곡 <트립티콘>도 이 형식에 맞추어 모두 세 장면으로 되어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가운데 그림이 제일 크고, 제1과 제3 화의 사이즈가 작다. 이 희곡도 1장면과 3장면을 합한 것보다 제2 장면의 분량이 조금 더 길다.
  작품의 주제는 죽음. 또는 사후세계. 1장면은 70대 남자가 죽어 장사를 지내고 많은 조문객이 과부를 위로하기 위해 집을 방문해 차려놓은 식사를 하며 애도를 표한다. 고인이 평소에 앉아 있던 흰 의자엔 죽은 고인이 앉아 있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2장면은 죽음 이후의 세계다. 새벽, 아침, 오전, 오후, 저녁, 황혼, 밤의 구분이 없는 저승일지언정 봄이 왔다는 걸 죽은 이들이 다 알고 있다. 고인들은 이승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나이로 고착되어 있어서, 고서점을 운영하던 노인의 아버지는 영국계 정유회사 셸의 제복을 입은 젊은 모습으로 여전히 늙은 아들에게 낚시질 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타박을 한다. 이 젊은 아버지 옆에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뼈만 남은 할머니가 있으니 바로 젊은 아버지의 아내, 고서점 주인 영감의 엄마다.
  3장면은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신느와 이이의 아직 죽지 못한 연인 로제. 한때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 이별을 해야 했던 커플. 이들 사이에 놓인 죽음이란 거대한 장벽을 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미 죽은 프랑신느가 다시 살아올 수는 없는 일이니, 속주머니에 품고 있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로제가 프랑신느 있는 곳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어떤 그림일지 대강 보이실 듯. 새로운 것도 없고 기발한 점도 없다. 다만 3장면에서 죽음이란 방식으로 결별을 완성한 커플이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좀 서늘한 정도.

 

  이제 막스 프리쉬의 3대 소설, <슈틸러>, <호모 파버>, <내 이름은 간텐바인>을 읽었고, 희곡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안도라>와 <트맆티콘>까지 마쳤으니 이걸로 된 듯하다. 적어도 당분간 다시 프리쉬를 찾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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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2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치오의 이 세폭제단화가 이 소설과 연관이 있나요?

Falstaff 2021-10-22 08:59   좋아요 2 | URL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트립티콘‘이 뭔지 몰라서, 혹시 독후감 읽는 분들께서도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트립티콘이 이런 거다, 라는 의미에서... ^^;;;

coolcat329 2021-10-22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형식은 뭔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을거같네요.
1장은 이승 2장은 저승 3장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과거 회상.
저 혼자 생각해봤네요.
양쪽 그림이 가운데 그림에 꼭 맞게 포개지듯 뭔가 이 희곡에도 그런 맞아떨어지는게 있을거 같아요.
마지막 당당한 문장 아휴~부럽습니다.
저는 슈틸러 갖고 있는데 참 손이 안가네요.

Falstaff 2021-10-22 09:26   좋아요 2 | URL
슈틸러는 그래도 재미있는 편일 텐데요. ㅋㅋㅋㅋ
천천히 읽으셔요. 취미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 1도 없습니다. ^^
 
왼손잡이 여인 범우문고 74
패터 한트케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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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지금 이십대라면, 그리고 소설가가 되려 하는데 <왼손잡이 여인>을 읽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아마도 절망했을 거 같다.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는데 뭘 더 보탤 수 있을까, 라는 좌절감에 빠져 한 달 가량 술독에 빠져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체조선수가 몬트리올에서 나디아 코마네치의 퍼포먼스를 직접 본 기분과 비슷했을 것 같다.
  스토리와 문장이 다 절편이다. 다행히 난 글 써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다. 그간 페터 한트케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단정해놓고 이이의 작품은 별로 읽지 않았다. 201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스웨덴 한림원이 잘난 척하기 위해 잘난 척하는 작가한테 상을 줬다고 불만을 갖기도 했다.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그리고 희곡 <관객모독> 이렇게 네 권만 라이브러리에 들어 있을 뿐. 그래 이 책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그저 싼 맛에 골랐다가, 언필칭 대박이다. 한트케를 멀리 한 지난 세월이 아쉽다.

 

  이 여자 마리안느는 서른 살.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진 도자기 회사의 지점에서 판매 책임자로 근무하는 남편 부르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스테판과 함께 테라스 형태로 지은 방갈로에 살고 있다. 부자라고 할 수는 없어도 안락한 생활을 누릴 정도의 중산층으로, 언제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날지 몰라 방갈로에 세 들어 있다. 부르노가 몇 주일 만에 스칸디나비아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작품은 시작한다.
  아내가 공항으로 남편을 마중 가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인 아이를 재우고 나서, 부부는 오랜만에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정찬을 즐긴다. 가슴이 팬 드레스를 입은 아내를 앞에 앉혀놓고 칼바도스를 곁들여 훌륭한 식사와 늙은 종업원의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는 일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뿐만 아니라 기묘한 방식에 의해 인류 전체와의 화해를 의미하는 일이라 규정하는 남편 부르노. 봉건적 봉사정신의 완숙미를 보여주며 서비스를 하는 종업원에게 부르노는 빈 방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이왕 나온 김에 호텔에서 자고 가기로 결정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마리안느는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떠오른다. 즉각적인 생각.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핀란드에서 자기 회사 제품의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공포감에 휩싸였다는 남편의 말 때문인가? 아내와 함께 견고하게 묶여 있다는 감정, 이런 걸 느끼면서 그러나 남편은, 당신이 없어도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더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말을 나눈다. 사람 없는 이른 아침의 공원에서.

 

  당신이 나를 떠나리라는 것. 당신이 나를 혼자 내버려두리라는 것. 바로 그것이에요. 부르노, 가세요.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요.
  영원히 말이지?
  모르겠어요. 그저 당신은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리라는 것뿐이에요.
  난 우선 돌아가서 호텔에서 따뜻한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어. 그리고 오후에 짐을 가지러 가겠어.

 

  이렇게 남편은 호텔로 돌아가고, 아내는 집에 도착해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남편의 트렁크 두 개를 채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와 놀아주다가, 남편이 오고, 악수를 한 다음, 트렁크를 들고 떠난다. 마리안느는 소파에 앉아 TV를 본다. 아이들 놀이터의 CCTV와 연결이 된 TV를 쳐다보는 마리안느의 두 눈에 이제 눈물이 고인다. 밤이 온다. 마리안느는 이불을 싸들고 아이의 방에 가 아이의 침대 옆 바닥에 눕니다.
  다음날 아침, 마리안느는 예전에 다니던 출판사 사장에게 편지를 해 프랑스어 번역 제안서를 보낸다. 우체통이 단지 끝 공중전화박스 옆에 있어 그곳을 지나다 기다리고 있던 부르노를 만난다. 부르노는 여자를 전화박스로 몰아넣고 한 대 치려고 했으나 전화박스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 실패한다. 부르노는 화가 난다. 무척 화가 난다.

 

  나를 너무 오래 혼자 두지 말아. 그러다간 당신도 어느 날엔가 죽고 말 거야.

 

  부르노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이유 없이 자기 집에서 쫓겨난 거다. 마리안느의 친구이자 아들 스테판의 담임선생인 프란치스카의 집에서 지내라고 한 것도 아내 마리안느다. 그러나 이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여자는 말한다.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생각해라. 너희들이 나에 대한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나는 너희들로부터 자유스러울 것이다.

 

  집에 돌아온 마리안느는 집안의 가구를 다시 배치하고, 대청소를 마친다. 아들이 도와준다. 일을 다 마치고 어린 아들과 눈이 마주친 마리안느가 웃는다. 스테판이 말한다.

 

  웃지 마세요. 일부러 웃으려고 애를 써서 웃는 거잖아요. 나도 슬프단 말이에요. 슬픈 건 엄마뿐만이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마리안느, 한 여자가 자발적인 긴 고독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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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21 0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도와준다….이 문장이 아픕니다.

Falstaff 2021-10-21 09:38   좋아요 4 | URL
ㅎㅎㅎ 저는 참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이 드실지 궁금하군요.
읽으면서 여러차례 감탄을 했었습니다.

새파랑 2021-10-21 0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른 한트케 작품과 다른가 보네요. 전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한 작품만 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구요 ㅜㅜ
이건 무조건 찜~!!

Falstaff 2021-10-21 10:51   좋아요 4 | URL
뭐든지 그렇지만 한트케도 독자하고 잘 맞는 게 젤 중요한 듯합니다.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지요.

붕붕툐툐 2021-10-21 12: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낯익다 싶었는데 <관객모독> 작가였군요! 이 작품은 연극으로 본 적이 있거든요! 저도 이 작품 찜!!ㅎㅎ

Falstaff 2021-10-21 13:07   좋아요 2 | URL
넵. 관객모독은 희곡으로 읽어도 괜찮았어요. ㅎㅎㅎ

잠자냥 2021-10-21 1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우 한트케 저도 합이 안 맞아서 버린(?) 작가인데 이 책까지만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나디아 코마네치에서 빵! 터집니다. ㅋㅋㅋㅋ 요즘 젊은이들은 저 코마네치 잘 모르겠죠?

Falstaff 2021-10-21 13:0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문고판 책값이 싸지 않았으면 안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ㅋㅋㅋㅋㅋ
이름만 조금 들어봤겠지요, 나디아 코마네치. 당시엔 정말 경악이었는데 말입죠.
보고, 보고, 또 보고 아우... 근데 너무 오래 전 이야기를 했나 싶기도. ㅋㅋ

coolcat329 2021-10-21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리안느가 왜 그러는건지 이해가 안가는데 코마네치 수준이라니 저도 찜하겠습니다. 책 읽으면 마리안느 이해가 가겠죠?😙

Falstaff 2021-10-22 08:19   좋아요 2 | URL
마리안느의 행복 또는 자아 찾기입니다.
며칠 전에 읽은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선 네드라가 깔끔하게 이혼해버지만 마리안느는 자신의 일을 갖고자 하는군요. 이하 생략! ㅋㅋㅋ
 
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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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체프 두메르소를 많이 좋아해서 그랬는지 이 커피는 진하게 내렸는데도 그리 인상 깊지 않더라고요. 오늘 처음 마셔봤는데 좀 더 마셔봐야겠습니다. 신맛이 원하는 만큼 안 나는 것도 같고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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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20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가체프 두메르소! 제가 알라딘 원두 중 첨으로 500g짜리 추가 구매한 원두입니다!

Falstaff 2021-10-20 19: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반 킬로씩 구매하는 게 훨씬 덜 귀찮더라고요. 예가체프 두메르소, 괜찮지요!

잠자냥 2021-10-20 21:01   좋아요 2 | URL
스탬프 마니 줘서 깜놀했어요. ㅋㅋㅋ 이런 식이면 스탬프 바꿔서 할인 쿠폰 금방 받겠다 싶더라고요?!
 
카이트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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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 베데킨트. 독일 최고의 악녀일 수도 있는 ‘룰루’의 창조자. 룰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곡 <지령地靈 : 땅의 정령>과 후속 작 <판도라의 상자>를 쓴 이다.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이 팜므파탈의 대표선수 격인 룰루에게 매혹되어 1937년 오페라 <룰루>를 작곡했지만 완성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읽어보지 못했으나 <룰루>는 여러 버전의 DVD와 CD로 보고 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쇼킹한 작품이다.
  프랑크 베데킨트, 벤쟈민 프랭클린 베데킨트는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의사와 헝가리 이민 출신 미국 국적 여배우 부부가 다시 독일로 돌아온 후, 하노버에서 태어난다. 1864년생. 60갑자가 처음 시작하는 해, 갑자년이다. 아빠가 의사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부르주아는 아니지만 비싼 장난감 가지고 놀고, 좋은 사립학교 졸업하고 선진국으로 유학시킬 정도의 지원은 가능한 부유층 가정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마지막 거주지로 정한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뮌헨 등지에서 법학을 전공한다는 전제로 베데킨트 역시 아빠의 무한 지원을 받았으나, 법학보다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에 훨씬 매력을 느껴 학업을 멀리하다가 급기야 일체의 금전적 지원이 끊기고 만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 스물세 살에 부자간에 화해를 해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1888년, 일 년 만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 하직하는 바람에 이제 법률 공부를 작파하고, 자기가 상속받은 돈으로 파리, 뮌헨 등을 오가며 말은 작가활동이지만 본격적인 딴따라 생활로 접어든다.
  1894년에 이미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은 베데킨트는 95년에 첫 직장을 갖게 되니 소위 “낭독 예술가”라는 것. 이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자기 이름으로 갖는 것이 쪽팔린 줄은 알아서 ‘코르넬리우스 미네하’라는 가명을 썼단다. 하여튼 이 당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1887년에는 거지꼴을 하고 드레스덴의 여동생 집에서 기숙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와중에도 유부녀 프리다 스트린드베르히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도 낳고, 할 짓은 다 했다. 아 글쎄, 예술가라잖아, 예술가.
  이렇게 살면서 많은 희곡을 쓰고, 스스로도 무대에 올라 연기도 하며 한 평생 잘, 부유하게가 아니라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다가, 1차 세계대전이 있던 1914년에, 전쟁에 참전하는 대신 맹장수술을 받는다. 요즘 맹장수술은 메스를 쓰지도 않고 배에 조그만 구멍 몇 개만 뚫어 복강경으로 잘라버리거나, 그마저도 비키니 입을 때 티가 나서 싫으면 돈 더 많이 들여 식도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위장을 뚫고 대장 충수까지 진입해 입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이 있으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칼로 배를 짜개는 개복수술 말고는 없었다. 근데 이이는 맹장수술이 잘못되어 염증이 도무지 낫지 않아 복막 전체로 번졌는지,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에 숟가락을 놓고 만다. 이 양반은 죽는 것도 우화적이었다. 물론 지금 시각에 그렇다는 말씀이지만.
  이이의 작품에는 주로 제 5의 계층들, 예술가, 사기꾼, 보헤미안, 서커스 주변, 범죄자, 매춘부 등의 집단을 그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인습적인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아웃사이더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대표작인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당연하거니와 넓게 보아 이 작품 <카이트 후작>도 이런 범위에 든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카이트 후작>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 지문에서는 백작, 카이트 스스로는 후작, 시종 사샤는 남작이라고 호칭한다는 점. 이 책은 성신여대출판부에서 찍은 것으로 대학 출판부답게 작가소개와 해설이 대단히 세밀하고 좋아서 검색을 따로 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카이트의 작위에 혼란이 있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제목은 분명히 <Der Marquis von Keith>, 카이트의 후작임에도.
  카이트의 출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을 위한 초고는 <향락인간>이라고 한다. <향락인간>을 계속 손질하면서 제목도 함께 바뀌어 <추락한 악마>를 거쳐 <뮌헨의 장면들, 인생묘사>가 되었다가 이어서 <카이트 후작 (뮌헨의 장면들)>, 그리고 드디어 <카이트 후작>이 되었단다. <카이트 후작>에서도 ‘향락인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돈을 숭배하지만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 돈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 가진 것이 없어 아침을 먹지도 못했고, 언제 집달리가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도 캐비아를 곁들인 샴페인을 추구하고,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의 정찬을 바라는 주인공 카이트. 일찍이 쿠바 혁명 당시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마지막 1달러를 구하지 못해 당선되지 못했다는 불운의 아이콘. 내 돈이 없으면 다른 부르주아의 돈으로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온갖 신분의 부르주아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선녀궁을 건축하려는 야심에 찬 인물. 그러나 자금의 입출에 관한 아무런 영수증이나 회계 장부가 없는 윤O향 같은 인간. 어떠셔, 끝이 훤하시지?
  카이트는 대단히 머리가 좋지만 가난한 수학 가정교사와 집시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천민이다. 수학 좀 하면 대수인가, 엄마가 불가촉천민인 집신데. 이 아이가 아빠를 닮았는지 머리 굴리는 건 가히 천재적이라 전 세계, 그래봤자 유럽과 아메리카에 불과했지만 하여튼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활약하며 국제적인 사기꾼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결정적으로 쿠바에서 뽀록이 나 고국인 독일 뮌헨으로 도망쳐 와서 후작을 사칭하고 다녔던 것. 이런 인간이니 후작이란 작위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백작이건 남작이건 간에. 본인도 어떻게 불리는지 신경 쓰는 모습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남의 돈으로 선녀궁을 지으려는 이 작자는 사실 알고보면 예술가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그냥 사기꾼일 뿐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으니, 이이가 작품생활을 했던 때가 세기말, 벨에포크 시대. 바야흐로 문학판엔 자연주의가 꽃피우고 있을 당시. 게다가 베데킨트가 중요하게 다루던 계층이 제5 계층인 사기꾼, 예술가, 보헤미안, 서커스, 범죄자 등이었으니 연출만 다양하게 하면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극작가는 독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카이트 주변에 꼬이는 인물에게 과감한 이분법적 성격을 부여한다.
  트라우테나우 백작은 카이트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신분은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평민의 이름인 숄츠라 불리기를 바라며, 몇 번 실패한 인생을 쾌락으로 만회하기 위해 카이트에 접근한다. 애인 몰리는 카이트를 사랑하지만 결코 카이트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보답 받지 못하는 비운의 여인이며, 바그너 전용 헬덴 소프라노를 목표로 하고 있는 안나는 정작 노래보다 아름다운 얼굴과 빼어난 몸매로 인정받아 단 한 번의 연주회로 하루에도 몇 명으로부터 청혼을 받기에 이른다. 카지미어 영사의 철없는 열다섯 살 먹은 (바지역) 아들 헤르만은 아빠 몰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누구에게나 조금의 돈을 얻어 쓰기에 바쁘다.
  이런 인간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누구한테? 카이트 후작한테, 선녀궁을 지으려는데, 카이트는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주회와 불꽃놀이 등의 대규모 행사를 열기에 이른다. 이 연주회와 놀이가 크게 성공해 도취한 사람들이 난장판으로 어울리는 장면은 여지없이 동시대의 거장 에밀 졸라의 총서 가운데 (만일 있다면)희곡으로 쓴 한 편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특히 <쟁탈전>과 <돈>에서 돈 놓고 돈 먹는 장면이나, 공매도와 공매수가 난리법석을 이루는 장면과 비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설과, 무대 위라는 한정된 공간만 허용하는 희곡의 근본적 차이를 감안하면 비교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재미있는 극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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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19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 도서관에 <눈뜨는 봄>:청소년 비극 딱 한권 있네요😭 폴스타프님 리뷰읽고 궁금해져 <지령,판도라의 상자>가 궁금해서 알라딘에 찾아보니 대부분‘중‘급이고 한 권 있는 ‘상‘급은 25000원. 작가가 자유분방하게 살면서도 작품을 많이 남긴듯한데 국내 번역된 책이 몇 권 안되어 아쉬워요!

Falstaff 2021-10-19 12:22   좋아요 4 | URL
아, 독일 국가대표 팜므파탈 룰루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아오, 정말 대단한 여잡니다. 물론 비극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세상에나...
제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립자면, 2만원을 넘게 들여 읽으실 필요는 없을 듯하네요. 당분간 다시 출간하지도 않겠지만, 공연 있으면 그때 구경 한 번 가시는 게 훨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거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10-20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맹장수술로 참 안타깝게 가셨네요. ㅠ
근데 룰루 처음 듣는데 찾아보니 엄청 복잡한 여자네요. 남자관계도 그녀 심리도...폴스타프님의 찰진 설명에 또 한 명의 극작가와 독일 최고 악녀를 알았네요~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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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설터. 본명이 제임스 아널드 호로위츠. 이름만 가지고도 러시아에서 이민 온 가족의 일원이란 걸 알 수 있다. 제임스 호로위츠는 뉴욕 맨해튼에서 자라, 호레이스 만 학교를 졸업한 후, 스탠퍼드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저울질 하다 17세 1개월의 나이에 미국식 못말리는 애국심에 충일한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가 졸업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이때가 2차 세계대전 중이라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952년에 전투기 비행사로 자원한 호로위츠는 미그기 몇 대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쌓기도 했는데, 이때 한국 땅에서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장편소설 <사냥꾼: The Hunters>을 출간하기에 이르고 이때 필명으로 제임스 소금쟁이, 영어로 제임스 솔터Salter를 사용한다. 이후 솔터, 우리나라 발음으로 ‘설터’가 자신을 호칭하는데 더 익숙해지자 아예 호로위츠 집안의 호적을 파버리고 맨해튼 설터 씨의 시조가 돼버렸다. 그래 두 아내와의 사이에 얻은 다섯 자식들, 앨런, 니나, 클로드와 제임스(쌍둥이), 테오 모두 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왜 이름에 집착했느냐 하면, 작중 주인공의 이름이 블라디미르 벌랜드, 애칭으로 비리 벌랜드인데, 선대에 정확한 지명은 주인공도 모르지만 하여튼 러시아 남부지방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란 걸 몇 번이나 밝히기 때문이다. 비리처럼 러시아나 동부 유럽 출신으로, 비록 이민 3세인 비리는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디시 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을 흔히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라 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인종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음악을 연주하는 천부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제패한 고리대금 기술이다. 물론 순서로 치자면 고리대금 기술로 충분한 현금과 금 등 주로 유동자산을 확보하여 여유가 생긴 후에 음악을 연주하고 즐겼을 것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 비리 벌랜드의 아내 네드라가 주장하기를, 돈이 없는 유대인은 이빨 없는 개와 같단다. 여기서 돈 없는 유대인, 이빨 없는 개는 당연히 자기 남편 비리를 일컫는 말.
  비리 벌랜드의 직업은 건축가다. 영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피터 애크로이드, <혹스무어> 참조)을 숭배하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수준. 그러니까 아내한테 돈 없는 유대인 취급을 받는다. 자신은 런던과 파리 등을 견학해보았지만 아내는 아직 미국 땅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네드라 벌랜드는 소위 전업주부. 뉴욕 시외의 강변에 넓은 땅에 커다란 집을 짓고, 마구간과 작은 나무 숲, 정원을 가꾸며 산다. 말은 자신이 집안일을 모두 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가사일을 하면서도 두 딸 프랑카와 다이앤을 티 하나 안 묻히고 키우며, 오전에 뉴욕으로 장보러 나가서 레스토랑에 들러 점심 먹고 돌아와 요리를 하고 초청한 커플(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 파티 또는 만찬을 하는 걸 규칙으로 할 정도라면 말은 안 해도 도우미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근데 미국 영화에서 흔하게 보는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벌랜드 여사님께서는, 이 여사님이 비록 시골 세일즈맨 홀아비의 외동따님이긴 하더라도, 스스로도 결혼을 잘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가 바랐던 결혼 또는 배우자는 입고,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행위를 위해서도 구애받지 않게 해줄 정도로 부유한 삶을 보장해야 했던 것. 비리 벌랜드가 가난한 유대인이라는 건 단지 네드라 벌랜드의 눈에 그렇다는 것이지 당신이나 내가 생각하는 가난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머리에 콱 찍고 책을 읽기 바란다. 네드라가 바라던 포드가나 카네기가의 후손은 아닐지언정 부르주아 바로 아래의 중산층이란 것을.


  확실한 건, 돈 많은 사람들이나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행복을 바란다는 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들이 행위 하는 건 이미 숱하게 많은 TV 드라마, 막장 드라마 말고, 보통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장면들인데, 그렇다고 책이 쉽게 읽히는 건 아니다. 둘째 딸 다이앤이 다섯 살에 <가벼운 나날>이 시작해 두 딸의 엄마가 될 때까지 시간이 후르륵 지나 속도감도 있는 작품인데도 그렇다.
  비리와 네드라는 두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지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부부가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실에 놓인 두 개의 침대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는 과정을 겪는다. 고인 저수지도 가끔 비워줘야 하는지라, 비리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새로 고용한 아름다운 비서 카야 다우트로와 하고 한 날 낮거리를 벌인다. 그러다가 카야에게 새롭고 막강한 남자가 생기자 실연당해 크고 큰 슬픔에 젖는 비리. 네드라는 네드라대로 벌써부터 비리가 자주 집에 초대하고는 했던 친구 지반과 뼈와 살이 타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보내고, 지반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하지 못해 새롭게 하나를 더 장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들의 외도는, 실제로는 그렇기가 참 힘든데 용하기도 하지, 끝까지 서로에게 들키지 않는 천생 연기자들 수준이다.
  비리는 네드라만 인정하지 않는 그럭저럭 성공한 건축가. 네드라는 유한 여성. 이들에게 모자란 것이 무엇일까. 가정은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수준 이상이고, 둘 다 바람을 피우고 있을지언정 서로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변하지 않은 부부, 건전한 의식수준과 교양. 비리는 네드라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드디어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 그렇게 숭배했던 17~18세기의 거장 크리스토퍼 렌이 지은 교회 건물을 감상하고, 박물관 구경을 하며 런던에 매료되어버린다. 이때 벌써 네드라의 나이가 마흔. 부부는 그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쪽으로 노력해왔으며, 행복의 형태 역시 결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행의 마지막 밤에 아내 네드라는 “오늘 나는 당신을 몹시 사랑해. 내 가슴을 다해서 당신을 포옹해.”라고, 남편 비리가 잠에 빠진 동안 새로운 남자 앙드레에게 편지를 쓴다. 네드라는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빠진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자유.


  십여 년 전에 “우리 이혼하면 행복할까?”란 카피가 유명했다. 네드라는 여전히 비리를 사랑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후에 이혼해버리고 유동자산의 절반을 지닌 채 집을 나간다. 물론 집을 비롯한 부동산도 소유의 절반은 네드라의 것이고, 두 딸이 비록 다 크긴 했으나 얼마 남지 않은 양육의 책임은 비리가 지기로 한 것 같다. 자세한 설명은 없더라도. 어쨌든 네드라는 지금도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인근의 아파트를 구하고 새롭게 연극에 관심을 둔다. 반면에 비리는 이혼의 충격으로 새롭게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스트레스에 푹 빠져 도무지 헤어나올 줄 모른다. 비리의 돈벌이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어 독자들이 알 방법은 없지만 그것도 잘 해봤자 현상유지 아니겠나 싶을 정도의 의욕상실 상태다. 네드라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 배워보려 했으나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고, 개성있는 연극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때는 1970년대 초반. 네드라는 직업이 없는 이혼녀. 천성이 사치스러운 40대 초반. 내 눈엔 앞길이 캄캄하다. 유동자산이란 건 말마따나 일단 쓰고 뒤 돌아서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여태 살아온 수준이 있어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옆의 비싼 아파트를 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월세를 꼬박꼬박 물어가는 것도 힘들 텐데, 연극을 배워보겠다고 하고, 연애도 해야겠고, 연애 상대는 걸뱅이 비슷한 연극배우. 네드라도 참 딱하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조금 더 큰 책임도 져야 한다는 걸 오랜 세월을 두고 꼬박꼬박 잊은 듯. 그리하여 몇 년 후, 네드라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젊은 여자와 새살림을 시작한 비리에게 편지를 해 만 달러‘만’ 빌려달라고, 나중에 꼭 갚겠다고 얘기했다가, 어린 이탈리아 여인에게 거절을 당하고 말지. 나 같으면 굶어 죽더라도, 전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편지는 혀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안 보내겠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가벼운 나날>은 이런 서사를 중심으로 읽으면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사는 모습, 그 쓸쓸함을 좇아가는 작가의 시선을 보는 것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 필요할 듯하다. 누구나 다 옳고 그른 삶을 산다. 한 사람이나 한 식구들의 사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보다 가정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무수하고 무수한 가벼운 날들이 모여 만든 삶을 느껴보는 것이 백 번 좋다.
  작가의 시선이 내 수준엔 동감하기 힘든 상류 수준이라 유감이긴 하다. 네드라 눈엔 이빨 없는 개 같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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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10-1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첨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 페이퍼에서 소문 듣고 살짜기 서재구경하러 왔습니다. 친구 수락 감사합니다^^ 수년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설터 중 한 권이네요. Falstaff님 덕분에 읽은 느낌이에요ㅎㅎ; 예전에 직장동료들과 얘기하다가 부자의 기준이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 나네요. 제가 어떤 이에 대해 와 부자사람이었구나 감탄했다가 그게 뭐가 부자냐며 비웃음 당한-_-;;;;

Falstaff 2021-10-18 20:1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뭐 별 거 있나요. 그저 그냥 사는 얘기 위주로 할 뿐인데요.
반갑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마시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