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시점으로 보는 영화감상법 - 매불쇼 영화 콤비 두 남자의 진검승부
전찬일.라이너 지음 / oldstairs(올드스테어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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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굳이 안 쓰는 말이지만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과거에 이 말을 굳이 썼던 이유는 영화가 상업성이 너무 커서 예술의 범주에 넣을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과학기술의 토대 위에 발전했기에 오히려 산업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는 이 두 가지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엄청나게 많은 애호가를 가진 무한 능력의 산업이요, 예술로 존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히려 훨씬 많은 과학기술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오기도 한다. 또 상업성 문제는 아예 제기하지도 못할 정도로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는 예술적 요소가 포함돼야 예술로 인정하는 기존 예술의 범주를 영화가 뛰어넘은 데다, 예술 소비층이 귀족 등 소수에서 대중으로 확산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민주주의 요소인 대중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닌 것들은 일부를 위한 예술지상주의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날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로 떠올랐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영화를 보고 있는 시대다. 수십 년 전에 비해 영화 관람 방식도 바뀌었다. 영화관만 이용하던 시대는 지났다. 관객들은 다양한 윈도(TV, 인터넷, SNS, 스마트폰, DVD, VOD, 기타 저장장치 등)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관람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는 더 이상 취미나 오락을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영화를 관람한다.

영화는 인간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전달한다. 영화는 꿈과 희망, 기쁨과 슬픔, 낭만과 사랑, 그리움과 기다림, 시련과 아픔 혹은 악몽과 불안감 등을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와 인간의 삶과 조우한다. 부정적 감정은 정화될 수 있도록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긍정적 감정은 한층 더 끌어올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는 관람객의 기호가 변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화는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를 담아낼 수 있다. 상상의 세계를 화면에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창조적 분야 등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던 컴퓨터에 인공 지능(AI)까지 장착해 널리 이용되면서 디지털 기술은 인간 창의성을 위협하고 있다.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알던 영화가 이젠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대다.

이처럼 영화는 긍정적이고 진보적 성격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추구하는 최고의 궁극적 목적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까지 영화는 엄청난 발달을 거듭하면서 예술도, 산업도 가리지 않고 포용하는 엄청난 문화의 블랙홀 역할을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독자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공부한 적도, 실제 제작에 참여한 적도 없이 단순한 애호가일 뿐이다. 때문에 영화에 관한 각종 이론적 설명은 오히려 감상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오히려 영화평이나 영화 비평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개의 책에서 영화라는 단어가 5개나 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마 영화 평을 할 때나 영화 축제 등에 사용될 때 어떤 성격인지 가늠할 수 있는 요인이 될 듯하다. 

먼저 시네마(Cinema)란 단어다. 시네마는 영화의 이론적 전달을 부각한 용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이지만 실제 영화평을 하는 TV 프로그램, 〈시네마 천국〉 등에서 주로 쓰이는 것 같다. 다음 필름(Film)이란 단어다. 이는 예술, 독립, 작가영화를 지향하는 용어라고 한다. 물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영화제, 영화 축제 등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이를 테면 〈부산국제영화제〉를 영어로 표기할 때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쓰인다. 무비(Movie)는 가리지 않고 조금은 가벼운 용어처럼 들린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서의 영화 용어로서, 상업 영화 전반을 일컫는 용어라고 한다. 모션 픽처(Motion Picture)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자주 보이지는 않지만 영화를 산업적으로 통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고 알려져 있다.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란 움직이는 동영상의 모든 것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로서 영화 이외의 동영상이 모두 포함되는 것들을 지칭한다.

이처럼 영화가 여러 용어로 불리우는 것은 영화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영화 이론을 정리한 '영화 비평' 책에서 분류할 때 이용되고 있다. 이는 영화를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영화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읽히는 부분이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 영화는 탄생부터 남다른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알면 알수록 그 내부가 복잡하지만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다. 영화에 과학기술이 입혀진 이유로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의 진화는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 『10개의 시점으로 보는 영화감상법』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화평론가 두 분의 대담집 형식으로 집필됐다. 공동 저자 전찬일과 '라이너'이다. 라이너는 필명으로 유튜버이자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단순 영화 애호가로서 영화 평이나 비평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라이너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공중파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전찬일은 독자도 많이 들어본 이름이어서 익숙하다. 굳이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영화에 관한 책이나 잡지, TV 프로그램에서 독자들은 자주 봐서 아는 인물이다. 두 저자는 「찰나의 순간, 지극히 빛나는」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꽤 멋진 말로 말머리를 이끌어낸다. 

"'섬광처럼···.' 서문을 쓰기 위해 원고와 마주한 순간 이 대사가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스치고 가는 것을 느꼈다. 영화가 아니라 만화인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36권에서 스토리 작가 산죠 리쿠가 쓴 대사이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 아니 더 나아가 우주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우리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은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앞의 작품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을 앞에 둔 포프는 설령 남은 시간이 5분이라 해도 섬광처럼··· 눈부시게 불태우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어난다."(p.6)

저자에 따르면 영화란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하나의 인생과도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이 발산하는 그 엄청난 에너지, 화면에 담기는 모든 장면이 토해 내는 의미와 색과 그 모든 조화들이, 시간이, 순간이 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고, 침묵의 순간에 마침내 포착되는 진실의 순간들이 전율하게 만든다. 시간에 종속된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영화는 마치 한순간 튀어 오르는 불꽃, 섬광과도 같다. 저마다 빛을 내고 반짝이는 이 한 줄기 섬광들이 모여 있는 이곳이야말로 우주의 축약판이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평론가의 역할」, 2장 「평가의 기준」, 3장 「흥행의 관점」, 4장 「감동의 코드」, 5장 「명작의 조건」, 6장 「연기」, 7장 「사운드」, 8장 「미장센」, 9장 「관람」, 10장 「장르」 등이다. 이어 마지막에 「관객, 극장, 그리고 영화」란 제목의 〈맺는 이야기〉로 달라지는 관객, 사라지는 극장, 바꿔야 할 영화의 정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독자 개인적 입장으로는 「평론가의 역할」보다 「평가의 기준」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우리를 왜 영화를 보는가'란 제목의 글에서 "우리는 왜 영화에 끌리고, 영화를 보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를 먼저 말한다. 어떤 작품은 대중의 평가와 평론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고, 또 어떤 작품은 평론가들끼리도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무엇 때문에 평가가 갈린다고 생각하는지 두 저자의 대담이 이어진다. 평가가 갈리는 작품들의 특징은 무엇인지이 대해서도 덧붙인다. 

먼저 전찬일의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뿐 아니라, 많은 예술이 반복이나 변주 중 방점을 어디에 찍어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데, 관객은 이 차이를 알아내기가 조금 어렵다. 반복 안에서 적절한 변주를 잡아내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봐도 계속 비슷한 장면의 반복으로만 보이고, 지루하다고 느낀다. 관객이 평론가보다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워낙에 이런 건 훈련을 하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 예술에는 의식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만 잡아낼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 평이 갈리는 영화들이 나온다. 그리고 평론가들끼리도 평이 갈리는 이유는 취향과 지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라이너의 주장도 이어진다. "대중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평론가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왜 그렇게 머리 아프게 영화를 보냐?'인데, 이것이 대중이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을 상징하는 말 아닌가 싶다. 대중은 좋은 경험을 위해, 재미있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그래서 블록버스터 영화나 오락 영화를 선호한다. 그런 영화는 대중에게 쾌감을 주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하다. 저는 '정보의 양이 적다'고 표현한다. 단순하기 때문에 분석하거나 읽어내야 할 정보가 적다는 뜻이다. 평론가가 보기에는 딱히 재미가 없는 영화인 것이다. 늘 사용하던 클리셰를 쓰고,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고, 배우의 연기나 캐릭터도 어제까지 봐 온 것과 크게 다르기가 어려우니까."

「평가의 기준」에 관한 두 저자의 대담은 길게 이어지지만 모두 여기서 서술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항목에 나오는 영화명만 열거해 본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해운대〉, 〈도둑들〉, 〈곡성〉, 〈헤어질 결심〉, 〈슬픔의 삼각형〉, 〈기생충〉, 〈코다〉, 〈파워 오브 도그〉, 〈그린 북〉, 〈로마〉, 〈미나리〉, 〈블랙 팬서〉 등이다. 저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위해 어떤 작품들을 사례로 들고 있는지를 안다면 평론가의 말을 알아듣기 훨씬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독자가 임의로 책을 구성하는 형식과 내용을 예시로 이 부분만 발췌했다는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한다. 

독자에게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마지막장 「장르」이다. 장르(genre)란 플롯, 등장인물의 유형, 세트, 촬영 기법, 그리고 주제 면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특징적으로 유사한 영화들의 그룹을 말한다. 영화마다 이러한 관습(convention)을 반복 사용하면 개별 영화가 특정한 하나의 장르(그룹)에 속하게 된다. 또 감독이 이러한 관습을 이용하면 할수록 관객들은 개별 영화에 좀 더 친숙함을 느낀다. 관객이 장르 영화를 보면서 특별한 쾌락을 느끼게 되는 것은 형식의 친숙함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반면 장르의 관습을 단순하게 반복하면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인 영화가 된다. 창의적인 감독은 기존 관습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작품에 불어넣는다. 동시에 장르 영화는 시대 변천에 따라 변하고 발전한다고 영화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책 『10개의 시점으로 보는 영화감상법』에서는 마지막 영화감상법으로 소개된다. 독자가 이 대목에 흥미를 가진 건 그동안 열심히 봐 온 영화가 장르별로 분류되면서 조금 더 이해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저자의 대담 내용이 사전적 풀이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우리 영화의 발전에 기여했고, 앞으로 영향을 더 미칠지를 진단하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액션'이라는 분류가 가장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내며 별로 의미 있는 분류가 아닌데도 액션물이 관람객을 이끄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테면 〈올드 보이〉가 드라마로 분류되어야 할 영화인데 몇몇 장면에서 액션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액션으로 분류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장르는 좁혀지고 넓어졌다가, 묶이고 독립적으로 바뀌는 등 장르의 구분은 사실 영화의 종류를 분류함으로써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 나누는 장르와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 제목만을 다시 열거해 본다. ① SF와 판타지-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은유 ② 히어로물과 동화-창작과 계몽 사이의 어떤 선택 ③ 다큐멘터리와 독립 영화-놓쳤던 것들에 대한 포착 ④ 애니메이션-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산업적 구조 ⑤ 뮤지컬과 사극-득도 실도 되는 장르적 관습 ⑥ 누아르와 공포-문법과 클리셰, 지키거나 혹은 파괴하거나 등으로 구분한다. ①에는 〈고질라〉, 〈28일 후〉, 〈부산행〉,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킹덤〉, 〈창궐〉, 〈이티〉, 〈서복〉, 〈서던 리치: 소멸의 땅〉, 〈헤어질 결심〉, 〈기생충〉, 〈주유소 습격사건〉, 〈달마야 놀자〉, 〈반칙왕〉, 〈완득이〉, 〈소림축구〉, 〈건축학개론〉, 〈유열의 음악 앨범〉, 〈너의 결혼식〉,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등장한다. ②에는 〈배트맨〉,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천둥의 신〉, 〈600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파이더맨 2〉, 〈액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블랙워싱〉, 〈청년경찰〉, 〈걸캅스〉, 〈뮬란〉, 〈겨울 왕국〉, 〈포카혼타스〉 등이 거론된다. ③에서는 〈시청률 살인〉,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초선〉, 〈전투왕〉, 〈미싱 타는 여자들〉, 〈니얼굴〉, 〈아치의 노래, 정태춘〉, 〈내언니전지현과 나〉, 〈그대가 조국〉, 〈김군〉, 〈울림의 탄생〉, 〈잉투기〉, 〈가려진 시간〉, 〈콘크리트 유토피아〉, 〈올빼미〉, 〈왕의 남자〉, 〈연애 빠진 로맨스〉, 〈밤치기〉, 〈비치온더비치〉, 〈습도 다소 높음〉, 〈낮과 달〉, 〈가시꽃〉, 〈룩앳미 터치미 키스미〉, 〈파수꾼〉, 〈벌새〉 등 다소 낯선 영화명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는 독립 영화로서 예술성 등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상업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현실의 벽을 느낀 작품이 많다는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저자 : 전찬일

저자 전찬일 평론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즐겨 관람했다. 독문학을 전공하던 대학 2학년 때 영화 스터디에 전격 뛰어들었다. 주간신문 기자를 거친 후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의기투합해 서울대 재학 중인 6인조 남성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을 매니지먼트 하던 1993년 11월, 월간 『말』에 기고하며 영화 비평에 투신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느슨하게 참여했고, 2009년부터 2016년까지는 프로그래머, 마켓 부위원장, 연구소장으로 그 영화제에 몸담았다.

저서로 평론집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2008), 『부산의 문화 인프라와 페스티벌』(공저, 2017), 『호모헌드레드와 문화산업 : 대중문화 백세를 품다』(공저, 2018) 등이, 역서로 『존 레논 1940-1980』(1993) 등이 있다. 2020년 5월 현재,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강원영상위원회 운영위원,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집행위원,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Glocal Cuture Planner & Connector)를 표방하며 비평을 넘어 다채로운 문화 프로젝트들을 기획·추진해오고 있다. 지난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출간한 단행본 『내 삶에 스며든 헤세』(라운더바우트, 2019년 5월 25일)도 그 중 하나다.


저자 : 라이너

영화 유튜버이자 영화 칼럼니스트.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시와 소설, 철학에 빠져 청년 시절을 보냈다. ‘라이너’라는 필명도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학원 강사로 일하며, 몇 권의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라이너 TV’라는 게임 관련 채널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라이너의 컬쳐쇼크’라는 영화 전문 채널로 더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특유의 날카로운 입담과 다양한 콘셉트의 영화 리뷰로 수많은 구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간지 〈매경 ECONOMY〉에 영화 칼럼을 연재 중이며, MBC 〈섹션TV 연예통신〉, KBS Cool 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KBS 1Radio 〈주진우 라이브〉,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글쟁이로서 계속 글에 파묻혀 살며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다.

Youtube: 라이너의 컬쳐쇼크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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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
법상 지음 / 열림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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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의 저자 법상은 책의 〈서문(프롤로그)〉에서 "우리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생각 속을 사느라고, 눈앞의 진짜 삶을 놓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꿈틀거리는 생생한 삶을 살지 못한 채, 생각이 만들어낸 가상현실, 가짜 삶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고 말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생각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생각의 드라마는 우리의 진짜 인생이 아니다"고 말한다. 내 생각으로 구현된, 내가 그림 그려놓은 가짜 드라마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과연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혹은 성공하고 실패하고, 잘났고 못났고 하는 이 모든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생각으로 그림 그리듯 삶을 덧칠하지만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완전한 삶이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인생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진부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것은 선물이 주어지는 것과 같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그런 선물이다. 이 선물은 본래 우리에게 갖춰져 있다. 그러나 자기 생각 속에 갇혀 있는 사람, 생각으로 해석된 세상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해석은 나의 생각일 뿐이며, 행복은 상황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한다.

“스님, 더 많이 해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어떻게 살아가나요? 내가 지금 너무 가난하다는 생각이 있어야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죠. 집착하지 않으면 열심히 살기 어렵지 않을까요? 집착하지 않으면 삶의 원동력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스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것이다. 실제 도반들은 저자 법상의 법회에 찾아와 이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히 답한다고 밝힌다. "그 집착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분별(分別)을 강요하고, 삶에 대한 끝없는 덧칠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희망하는 목표를 쉽게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아픔과 괴로움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을 내놓는다. 저자 법상은 부처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고통받던 실존적 존재였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사랑포기, 취업포기, 양육포기, 노후포기에 이르기까지 상실이 일종의 습관이 돼버린 오늘의 우리들에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는 조용한 울림을 준다.

저자는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과 자신과의 사이에 선을 그어 분별함으로써 오히려 성취보다 포기를 자초하는 모순의 쳇바퀴를 돌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통해 엉켜있는 집착의 끈을 과감히 내려놓으라는 목탁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생활수행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 법상은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종교를 초월한 16만여 구독자와 오랜 세월 소통해왔다. 「하되 함 없이」의 핵심을 담았다. 매주 실시간으로 열리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토요법회와 대원정사 일요법회는 매 회 1,000명 이상의 도반들이 온오프라인에 참여해오고 있는 마음공부 터전이라고 한다. 법상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강력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냉정하다고 알려져 있다. 법상은 법회에서 무엇을 하라고 도반들에게 지시하거나 규칙을 정해주지 않는다고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그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저절로 괴로움이 쉬어가고 삶이 변화된다고 느낀다는 것. 법상은 우리가 부처에 기대게 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을 쥐어준다. 

이 책은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괴로움은 생각으로부터〉, 2부 〈중도, 인연 따라 왔다 가는 것〉, 3부 〈여덟 가지 생활수행, 팔정도八正道〉, 4부 〈진실은 이미 눈앞에〉, 5부 〈삶을 놀이처럼〉, 6부 〈행복을 찾아서〉 등이다. "갓난아기들은 몸이 나 자신이라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라볼 뿐이고, 소리가 나면 들을 뿐입니다."라는 주문(註文)을 내놓은 1부 〈괴로움은 생각으로부터〉는 「인생의 문제」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 「집착은 안목을 좁아지게 한다」 「생각과 분별이라는 망상」 「보이는 것이 진짜일까?」 등 5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이 파트에서 다루는 문제는 우리들의 '삶'이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삶은 고통이다'는 것이 있다고 독자는 알고 있다. 저자는 삶의 고통에 대해 고통은 우리가 살면서 스스로 부여한 의미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부처의 말을 풀어 전한다. 즉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의해 고통받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의미 있고 의미 없는 것, 고귀한 일이 있고 고귀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말은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의해서 분별되고 그것이 자신에게 속한다고 믿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목탁 소리는 청아하고 듣기 좋은 소리라고 여기기에 듣기 좋고 오히려 고통을 완화해주고, 윗집 쿵쾅거리는 소리는 짜증나기 때문에 죽일 듯한 증오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증오하고 싫어하는 것들의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도 전한다. 상대적 박탈감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때 스트레스는 분별심이 원인이라라고 짚어낸다. 분별심은 진실이 아니라란 말도 덧붙인다. '부자다, 가난하다'라는 것, 그것은 망상이라고 말한다. 분별에는 항상 망상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분별망상. 이 두 가지를 한 단어로 쓰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는 '나는 괴로워'라는 말은 '나는 다른 사람보다 돈이 없어 괴로워.'란 말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옳은 게 아니고 분별일 뿐이라고 밝힌다. 분별과 집착에 빠지면 삶은 괴로워진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나는 가난해. 가난한 게 확실해. 내 인생은 비참해.' 등의 생각을 믿었단 말이다. 전혀 믿을 필요가 없는 분별심에 불과한 것을 진짜라고 여기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그렇게 규정하기 때문에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것임을 부처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게 시스템화 되었다고 저자는 이해하는 것 같다. 저자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은 사람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기준점으로 잡은 그 사람만큼은 내가 부자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앞만 보고 쉴 새 없이 달려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쉬는 건 곧 인생에서 뒤처지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사는 이유이다. 사실은 쉬어야만 하는데. 이렇게 되면 내면이 쉴 때, 분별이 쉴 때, 올바르게 진리를 체득하는 무분별지(無分別智)에서 근원적인 지혜가 드러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분별지만 지(智)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불교와 기독교와의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근원적인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삶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고 주문한다. 즉 자기 생각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생각은 하되 생각을 믿지 마라. 집착할 것이 있으면 집착은 하되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마라. 마음을 내긴 내되 결과에 대해선 완전히 하늘에 맡겨버리라고 가르친다. 이게 '내맡김'의 자세이다. 삶에 맡긴다. 우주 법계에 맡긴다. 그렇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복과 지혜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통해, 열심히 연구하고 계획하고 일하는 것을 통해서 삶을 100%로 살아가는 게 지혜를 닦아가는 것이라고 지혜로운 삶을 저자는 강조한다.

1부 4장 「생각과 분별이라는 망상」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의 핵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아(無我)'다. "이게 내가 아니다. 인연 따라 잠깐 인연이 화합된 것뿐이다. 부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이게 진정한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크다거나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자기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저자의 풀이가 필요하다. "마하라는 것은 법(法)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 법이라는 말을 초기 불교에서는 다르마라고 했다. 선불교에서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 법이 마음이다. 또 본래 면목이라고도 한다. 본래의 진정한 자기라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의 본래 면목, 그대로 이것을 다른 말로는 진정한 자기라고도 한다. 진정한 자기의 본래 면목. 진짜 내가 누구냐가 핵심이다." 독자는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자어로, 한자어에서 다시 한글로 옮겨오는 도중에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말의 성찬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이다. 아니면 독자가 불교 신자가 아니어서 알아듣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다시 저자의 해석에 기대어 본다. 

"마하는 진정한 자기가 누군지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는 크거나 작을 수 없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상이면 크다 작다라고 할 수 있다. 물건 같은 대상이면 크다 작다고 할 수 있다. 이건 크다 작다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애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법을 마하라고 한다. 자기 마음을. 사람들의 본래 면목은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들어 있을까? 알 수 없다. 어디에 있는지"(p.54~55)

1부 마지막 장 「보이는 것이 진짜일까?」에서 괴로움에 대한 저자의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부처가 설파한 정견(正見)은 있는 그대로를 보기만 하면 그것이 해탈이다. 그런데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자기 식대로 표상 작용으로 상을 취하고 모양을 그린 다음, 그 모양을 가지고 걸러서 바라본다고 지적하고 있다. 걸러진 모습을 가지고 좋다 혹은 나쁘다고 규정한다. 사실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못 본다. 이렇게 표상으로 걸러서 보는 마음, 그걸 허상이라고 한다. 헛된 망상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어진 해석에서 정치와 종교가 바로 우리의 관념이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지적한다. 비유하기 제일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멀쩡한 사람도 종교 하나에 빠져버리면 대책 없이 빠져든다. 상식도 안 통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극단적인 보수인, 극단적인 정치인을 모두 만나 봤지만 평소에는 멀쩡하고 무척 지혜롭고 자상하다. 그런데 정치 얘기만 나왔다 하면 극단으로 치우친 것을 자주 목격했다고 귀띔한다.

"그릇된 말은 아니데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그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발끈하기 시작한다고 에피소드를 전한다. "스님이 그럴 줄 몰랐다"고, "스님이 세상을 모른다"면서 정말 강렬하게 발끈한다고 말한다. 반대 극단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돌변해 버린다는 것. 특정 정치 세계나 특정 종교나 어떤 특정 견해에 치우쳐 있게 되면 '이 종교는 이런 것, 정단은 이런 것, 이쪽만 좋은 거야'라는 상을 스스로 취하고 있게 되면, 세상을 그 필터로 걸러서 본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 세상을 보는 필터를 가지고 그 필터만 옳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정치도, 정책도 다 그 필터를 통해서만 바라보게 된다고 여기서 밝히고 있다. '정견'이라는 부처의 가르침, 저자의 '필터론'을 통해 듣게 되니 비로소 부처의 가르침에 조금은 다가선 듯하다. 

3부 〈여덟 가지 생활수행, 팔정도八正道〉에서 정견(正見) 이야기가 다시 자세하게 설명된다. 팔정도란 여덟 가지 바른 견해, 바른 길이다. 경전 『중아함경』에서는 고(苦)를 소멸하기 위해서 또 무명을 끊기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잠아함경』에서는 삼독을 끊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것, 『중일아함경』에서는 생사의 어려움을 건너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고 저자는 밝힌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바르게 본다,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바른 직업을 갖는다. 이런 식의 이야기인데, 르다는 게 뭘까? 바르다는 것은 중도의 '중' 자와 같다. 중도적으로 보고, 중도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팔정도이다.

저자에 따르면 첫 번째 정견은 바르게 보는 바른 견해이다. 정견이 팔정도의 핵심이다. 정견은 어찌 보면 중도의 핵심이기도 하고, 팔정도를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이 공부는 바르게만 보면 완성되는 공부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는 것이 바른 것이고 어떻게 보는 것이 바르지 않은 것인가? 분별로 보면 바르지 않게 보는 것이고, 무분별로 보면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분별지'라는 표현도 쓴다. 이를 분별하되 분별하지 않는 지혜, 부처의 지혜인 반야지혜라고도 부른다. 저자는 분별하지만 않고 보면 이 세상에는 아무 일ㄹ도 없다. 삶은 이대로 완전하고 그냥 부처가 부처로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분별해서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생으로서 허망한 삶을 되풀이해서 살았을 뿐이다. 분별하지만 않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식대로 왜곡해서 보고 해석해서 보고 판단해서 본다. 정견은 무위법이라고도 한다. 전혀 애쓰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표제어에서도 나오지만 이 책은 '생활 수행'이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모든 대중이 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속세의 일반 대중도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깨닫게 되면 누구든 부처가 된다는 불교에서의 오래된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수행자로서 도움을 주는 에세이다.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려면 왜 멀리 떠나 명상해야 하고, 부처님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저자는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부처도 외로웠던 존재임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열반의 언덕으로 제도(濟度)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 제도해줄 수 없고, 그것은 부처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일러준다. 부처의 힘에 기대어 깨달음을 얻으려고 집착하는 마음이 오히려 나와 부처를 둘로 나눠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이 곧 부처’라는 진실을 일깨운다. 나의 바깥에 있는 부처는 나를 깨닫게 하지 못하며, 바깥의 부처님은 형상의 부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부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진짜 부처는 누구일까? 법상스님은 바로 ‘자기 마음’이라고 명료하게 답해준다. 겉보기에는 스님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에 놓여있으나, 오히려 우리들이 더 빨리 마음공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 바깥을 향해 구한다면 우리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일상 속의 자신에게 집중할 때 진짜 생활수행이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저자 : 법상(法相)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서고금의 영성, 종교, 명상 단체와 역사 속 성자와 스승 등을 두루 찾아가 수행했다. 1999년부터 군승으로 재직하며 장병들에게 마음공부를 전했고, 인터넷 마음공부모임 ‘목탁소리’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예편하고 목탁소리 근본도량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으며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로 14만여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다가 발심 출가한 뒤 오랜 세월 깨달음을 찾았다. 불교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동서고금의 영성, 종교, 명상단체와 역사 속의 성자와 스승 등을 두루 찾았으며, 갈고 닦았고, 절망했다. 결국 돌고 돌아 방편을 뺀 초기불교와 선불교에 눈뜨면서 더 이상 찾지 않을 수 있었다. 스님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강력하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이 없음에도,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괴로움은 쉬고, 삶이 변화된다.

저서로는 『붓다수업』,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반야심경과 선공부』, 『금강경과 마음공부』, 『불교경전과 마음공부』, 『365일 눈부신 하루를 시작하는 한마디』,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날마다 해피엔딩』 등이 있다. 2005년에는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유튜브채널: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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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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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바로 써먹는 쓸모 있는 한국사
미리내공방 엮음 / 정민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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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韓)민족은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다.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세운 고조선부터다. 이 시점을 단기(단군 기원)로 표현해 왔다. 서기(서력 기원) 이전부터 썼다. 1960년대 들어서서 비로소 공문서 등 모든 연도 표기를 서기로 바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나라말(국어)을 배우고 역사를 배운다. 나라를 잃었을 때는 나라의 말과 글도 잃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다. 물론 강제 조치이지만 하루 아침에 바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배우면서 수천 년 농업 국가로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배웠다.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었다는 게 증거라고 했다. 약간의 의문점을 가졌지만 6·25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가 가르친 사실이어서 그대로 믿었지만.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이처럼 자랑스러워 할 일이 많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약소국으로 오천년 세월을 살아온 저력의 민족이라는 데 더 큰 방점이 찍히는 우리 역사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부적인 사실을 추가로 배우면서 몰랐던 많은 사실을 배웠지만 우리 역사의 큰 줄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운 바 그대로다. 독자가 초등학교 때는 한국 역사 수업 시간이 따로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 배웠다.(지금도 그럴 것 같다) 중학교 첫 역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셨던 말은 아직도 잊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말씀은 "자기 나라의 말이나 글을 모르는 것과 역사를 모르는 것은 '무식한' 사람들이고, 이들에게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말씀이었다. 이 책 『읽고 바로 써먹는 쓸모 있는 한국사』는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처럼 연대순으로 역사를 써 내려갔다. 역사 시간에 배운 역사서술 방법으로 편년체와 기전체가 기억에 남는다. 전자는 시간 순서로 기록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인물 중심의 서술 방식이다. 이에 따라 구별한다면 이 책은 기전체 서술이다. 책 한 권에 한반도 역사를 모두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이 책을 교과서 읽는 느낌으로 천천히 훑어본다면 매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한반도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는 한민족이라는 DNA가 축적된 우리의 진화 히스토리다. 이 책은 고조선, 신라·고구려·백제의 삼국, 통일신라와 발해, 고려와 조선,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모두 9개 파트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기술했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역사의 명암을 통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역사 인식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 나은 현재와 미래 실현을 꾀하자는 의미에서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만주 대륙을 호령하는 동아시아 최강국으로서 긍지의 역사를 펼치기도 했고(고구려), 일제 등 열강의 침탈에 무너져 치욕의 역사를 감내하기도 했고, 같은 민족 간 자중지란으로 혼돈의 역사를 토해내기도 했다(한국전쟁). 그리고 지금 더욱 더 불확실한 세계 안에서 여전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21세기, 우리의 한반도는 여전히 열강 사이에 낀 채 안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며 국익을 도모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걸어온 역사를 이정표로 내세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대부분 흥미 위주의 책이다. 심지어는 소설도 많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사실 기록은 정부에 의한 사관의 공식 기록일 터다. 우리가 조선시대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 때문이다. 왕도 실록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한 조선의 역사 의식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지난날의 역사를 바로 알고 되새길 때 긍정적인 미래가 열린다고도 배웠다. 과거를 읽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우리의 빅 히스토리,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가슴과 머리속에 담아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이 책은 시험을 앞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딱딱한 국사책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정리하여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내용마다 관련 이미지를 덧붙여 시각화했고, 시대별 핵심 사건을 스토리화하여 좀 더 재미있게 각인하도록 유도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우리 역사의 명암을 통시적으로 들여다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한 걸음 내딛기가 시작된다.

편저자 미리내공방은 「찬란한 반만년 역사, 위대한 민족의 긍지를 키우자!」란 제목의 〈머리말〉에서 "우리 역사는 아득한 옛날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한 단군조선이 뿌리다. 원시시대인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시작으로, 위만 조선, 낙랑·진번·임둔·현도의 한사군·대방군, 부여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 신라·고구려·백제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 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세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고 설명한다.

또 우리나라는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는 만주 대륙을 영토로 동아시아의 최대 강국으로 위력을 떨쳤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된 채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왔던 남북 통일방안도 여러 가지지만 평화, 민주, 자유주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원칙엔 변함없다고 편저자는 밝힌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통일된 자유 민주국가를 이룩해야 하는 과업이 역사 앞에 가로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한국사 줄거리〉, 2장 〈우리 민족의 기원〉, 3장 〈삼국의 발전〉, 4장 〈후삼국과 발해〉, 5장 〈고려〉, 6장 〈조선〉, 7장 〈대한제국〉, 8장 〈일제 강점기〉, 9장 〈대한민국 탄생〉 등이다. 각 장에는 사건 위주로 소항목을 따로 마련해 구분하고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이를 테면 2장 〈우리 민족의 기원〉에서는 「상고시대」와 「고조선」으로 소항목을 나누어 구별한다. 상고시대는 고조선의 건국 이전의 시기를 말하며 구석기, 신석기, 유물 등을 주로 소개한다. 「상고시대」에서는 한반도의 나이를 짚어본다. 지질학자들은 대략 6억 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한라산은 처음에 무시무시한 폭발을 하는 화산이었다. 백두산의 천지나 한라산의 백록담은 화산의 불구멍이었다. 그 불구명에서 용암이 솟아나와 땅을 덮었다고 설명한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0만 년 전쯤으로 보고 있다. 이때는 국가가 형성되기 전 원시사회를 거쳐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 등의 단계를 거쳤다. 이는 다른 세계의 어느 곳이나 마찬지다. 

이에 따라 우리 민족의 기원도 신석기 시대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대는 농경을 시작하고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씨족사회다. 그 뒤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권력과 재산을 가진 군장(君長)들이 나타나고 이들이 주변을 관장하면서 부족사회를 이끌었다. 여기서 지배계급과 권력이 형성되고 경쟁 사회로 바뀌면서 씨족이 모이고 부족을 이루면서 집단생활을 한다. 이때 우세한 군장, 리더십이 강한 군장이 다른 부족국가를 병합하여 초기 국가를 이루었다. 우리 최초의 국가인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에 의해 세워졌다. 이때는 문자가 없었고, 따라서 구두로 전하는 신화를 근거로 한다. 우리가 중국의 한자를 쓰게 된 이후 신화를 후세 사가들이 글로 옮긴 것이다.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정확한 연도를 표기한 것은 신화를 문자로 옮길 때부터다.

독자는 다른 내용도 다시 공부하는 차원에서 재학습한다는 의미가 컸지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한국 현대사 중 우리의 '대한민국' 국호에 대한 문제이다. 왜 똑 같은 하늘 아래에서 똑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 대한민국 국호 사용 시기에 차이를 보이느냐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국호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가? 왜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시각이 다른가? 더욱이 이 문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의 역사적 견해에 맞춘 '식민사관'이 있었는데, 식민사관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그것도 정부 내에서 고위직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안타깝고, '정치 불신'마저 가중되게 한다. 국민들에게는 혼란뿐만 아니라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되살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갈등이라는 희귀한 현상이 생겨서 사라질 만하니까 또다시 대한민국 국호 제정 시점을 가지고 국민들을 혼란케 하는지, 역사가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마지막 장 〈대한민국 탄생〉 중 「대한민국의 성장」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남부에 자리한 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쪽으로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이, 북쪽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다.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다. 6·25 전쟁 이래 일명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DP)은 3만 2,775달러로 세계 11위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고, 2018년 국제연합(UN)의 인간개발지수(HDI) 조사에서 세계 22로 상위권 그룹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대한민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2018년 10월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1조 6,556억 달러로 세계 11위 규모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의 대한(大韓)은 고대 한반도 남부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이름인 한(韓)에서 유래한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불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합쳐 삼국 또는 삼한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韓)이라는 의미는 종교상 의미와 정치상 의미가 복합으로 이루어진 고대부터 내려오던 말이다. 이후 근대국가의 국호로서 대한은 1897년 조선왕조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선택한 것으로, 그때 고종은 새 국호를 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라는 옛 나라의 천명을 새로 받았으니 이제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삼대((三代)이래로 황제의 나라에서 이전의 나라 이름을 쓴 적이 없다. 조선은 기자가 봉해졌을 때의 이름이니 당당한 제국의 이름으로 합당하지 않다. 대한이란 이름을 살펴보면 황제의 정통을 이은 나라에서 이런 이름을 쓴 적이 없다. 한이란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 우리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원래의 삼한을 아우른 것이니 '큰 한'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다."(p.355~356)

여기에 민국을 더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에 만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정한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자 중국 상하이에서 소집된 임시 의정원에서 신석우가 먼저 '대한'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여운형은 "대한은 조선왕조 말기에 잠깐 쓰다 망한 이름이니 부활할 필요가 없다."라고 반대하였다. 이에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며 대한제국의 제국을 공화국을 뜻하는 '민국'으로 바꾸어 대한민국을 국호로 다시 제안하였다. 이를 다수가 공감하면서 받아들임에 따라 '대한민국'이 독립 국가의 국호로 정해졌다. 광복 후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계승하여 헌법에 명시하였고, 다시 1950년 1월 16일 국무원고시 제7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에 관한 건'에 의해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나라 공식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이를 줄여서 '한국', '대한' 등으로 부르며, 우리나라를 호칭할 때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한다. 이렇듯 대한민국 국호에 관해 깔끔한 설명을 달아 두었다. 왜 이제 또 이것을 문제 삼으려 하는 것은 저의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 가지 더 알아 보고자 한 것은 고려시대 거란족 침입 때 양규 장군의 분투다. 양규 장군은 독자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배울 때 없었다. 얼마 전 KBS의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이 크게 부각됐다. 독자도 유심히 흥미롭게 지켜본 기억이 있다. 양규의 투혼은 놀라웠다. 왜 강감찬은 영웅으로 부각됐는데 양규는 그렇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막연하게나마 갖게 되었다. 이 책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펼쳐보았다. 5장 〈고려〉 「거란과 대결」에서 거란의 세 차례에 걸친 침입이 기술된다. 고려는 거란을 세 차례 모두 물리쳤다. 드라마에서 거란의 멸망까지 다루진 않았으나 독자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몇 가지 책을 통해 살펴본 바 거란의 멸망은 고려의 세 차례 침입 후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결국 수십 년 후 멸망했다.

거란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세 차례 모두 물리침으로써 드디어 고려는 원(元-몽골 칭기스칸의 후대에 세운 나라) 세조 이전에는 외적의 침입이 없었다. 왕권 강화와 군사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이야기다. 993년 1차 거란 침입은 옛 고구려의 땅이었던 강동 6주를 오히려 되찾은 외교관 서희의 활약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고려 장군 강조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러 왕을 갈아치우자 이를 명목으로 거란 성종은 1010년 40만 대군을 이끌고 3차 침입했으나 통주에서 강조가 대패하면서 개경이 일시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 등으로 피난을 가는 등 난관을 겪었다. 그러나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거란군을 곳곳에서 크게 무찔렀다고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거란은 퇴로가 차단될 위기에 몰리자 고려와 강화를 자청하고 겨우 물러갔다. 

이 3차 침입에서 강감찬의 활약은 크게 부각되지만 양규는 최후의 순간까지 거란에 맞서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잘 부각되지 않았다. 드라마 내용과는 조금 달라 독자가 개인적으로 좀 더 찾아봤지만 대부분의 역사 책은 강감찬의 치적을 훨씬 크게 적어놓았다. 정사인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별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강감찬 장군이 노구를 이끌고 귀주대첩을 해냈다는 사실은 부각되어 마땅하다. 더욱이 고려군 최고 사령관 자격으로 참전했고, 양규는 부하 장수였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도 해본다. 다만 당시는 고려는 문관 우대 사회였고 무관은 멸시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이 반영된 역사 기록이었나? 하는 의문은 버릴 수 없다.


편저 : 미리내공방


미리내공방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책의 힘을 믿으며 늘 새롭고 유용한 지식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양질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발굴 및 집대성하고 가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양서 발간을 꾀하며 지식정보화사회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주요 편저로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목민심서》,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손자병법》,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고사성어》,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사서삼경》,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삼강오륜》,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채근담》,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명심보감》,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삼국유사》, 《데일 카네기 여자를 위한 자기관리론》, 《데일 카네기 여자를 위한 인간관계론》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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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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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들은 신화, 동화에 나오는 존재들, 특히 남성 중심의 이야기에서 희생자 혹은 피해자로 나오는 여성들의 존재에 새로운 가치와 서사를 부여한 엔솔로지 단편 묶음이다. 이 작품들에서 인물은 창의적으로 재창조되고, 페미니즘은 진화한다.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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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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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복수의 여신』은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란 부제를 갖고 있다. 여전사들의 이야기인 듯 부제가 다소 거칠다. 그러나 전사들의 이야기란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책엔 영어권 세계 여성 문학인 15명의 앤솔러지 단편 소설집이다. 1973년에 설립된 영국 ‘비라고 출판사’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작품집이라고 한다. 이례적으로 출판사 이름이 앞 부분에 등장하는 이유는 '비라고'라는 출판사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닿기 바라는 마음으로 설립된 출판사다. ‘비라고(virago)’는 영웅적이고 호전적인 여성을 일컫지만, ‘말참견 잘하고 어디서나 문제를 일으키는 드센 여자’를 뜻하는 멸칭으로 주로 쓰인다고 한다. 멸칭(蔑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경멸하여 일컬음', 또는 그렇게 부르는 말로 정의되지만 '비어', '속어' 등으로 쓰는 말이다. 이 책에도 「진짜 사나이」란 제목의 단편 소설이 '‘비라고’를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 ‘비라고’라는 사명(社名) 자체가 “현 상태에 대한 도전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라는 사명(使命)을 함의하고 있다고 책의 〈서문〉을 쓴 작가 산디 토츠비그(Sabdi Toksvig)는 설명하고 있다.

산디 토츠비그는 〈서문〉에서 지금은 작고한 위인 카르멘 칼릴이 세상에 페미니스트 출판사가 있어야겠다고 결정하고 '비라고'를 창립했다고 한다. 1973년으로 페미니즘 운동의 '두 번째 물결'이 세계 무대를 강타하고 있을 무렵이다. 여자들이 정치·사회적 변화를 요구했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보고자 했다. 그 삶이 여자들이 읽는 글 속에 반영되고 수호되고 기념되기를 원했다고 밝힌다. 토츠비그는 엄밀히 말해 비라고가 '영웅적이고 호전적인 여성'을 일컫지만 칭찬의 의미가 아닌 유사어를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수다쟁이(biddy), 개년(bitch), 무서운 아줌마(dragon), 입이 험한 여자(fishwife), 한을 품은 여자(fury), 잔혹녀(harpy), 할망구(harridan), 화냥년(hussy), 가십녀(muckraker), 잔소리꾼(scold), 악녀(she-devil), 요부(siren), 성질이 불 같은 여자(spitfire), 싸움닭(termagant), 사나운 여자(tygress), 독설가(vituperator), 구미호(vixen), 촌년(wench)······. 대단하다. 독자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이 가운데 '화냥년'이란 단어에 주목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던 여성비하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전쟁에 져 청나라로 끌려간 사람이 50만 명에 이르렀다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나중에 돈을 주고 다시 데려온 여자들을 '화냥년(還鄕女)'으로 손가락질 받았다는 말이다.

사실 한자어에서도 '여자(女)'가 들어간 한자가 좋게 보인 것은 '좋을 호(好)' 하나뿐이다. 독자가 아는 한자가 별로 없어서 제대로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열거해도 몇 개는 된다. '간음할 간(姦)' '간사할 간(奸)' '미워할 질(嫉)' '샘낼 투(妬)' '싫어할 혐(嫌)' 등 계집 녀(女)자가 붙으면 부정적이고 비도덕적 일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좋을 호(好)도 사실은 자식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본따 만든 글자로 여자의 할 일을 집안에서 아이 돌보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듯하다. 이렇듯 여성은 수천 년, 어쩌면 수백만 년 동안 힘이 약하다(남성에 비해)는 이유로 바깥 생활은 금지해왔다. 구석기 시대나 그 이전부터 수렵 생활을 할 때는 공동 협력으로 먹이를 잡을 때 도움이 안 되어서 아이틀과 집을 지키라는 의미로 집에서 생활을 강요했을지 모를 일이다. 자연스럽게 외부 생활은 남자들이 도맡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시장으로 장 보는 것도 남자들이 대신한 경우가 아직도 중국의 일부 지역이나 튀르키예 등 여러 곳에서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에는 현대 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해 앨리 스미스, 엠마 도노휴, 카밀라 샴지, 키분두 오누조, 헬렌 오이예미 등 다양한 국적과 인종, 성적 정체성과 문화를 가진 여성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았다. 그들은 ‘비라고’와 같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고 정의해온 멸칭들을 하나씩 선정해 자신들만의 언어로 전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멸시와 편견의 언어를 비틀고 파괴하고 전복하는 열다섯 여성 작가의 릴레이 속에서 여성의 언어는 “세계의 절반이 아닌 그 세계 자체가 되고, 때로는 세계의 전부를 넘어서는 세계”가 되어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성해방운동, 페미니즘 차원에서 이 작품들은 기능하고 있다. 여성이 우선적으로 배려받는 줄 알았던 서구와 미국 등에서 여성 비하나 차별의 역사는 동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여성 비하나 차별이 왜 이루어졌는지, 왜 차별받아도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아야 했는지는 여성해방운동 차원이 아닌 인류학이나 인류사에서 다뤄져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 지역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거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2000년에 출간된 한 사회학사전에서는 미국에서 여성운동을 다룬 항목이 있다. 이에 따르면 1840년대 이후 1920년 여성참정권이 인정될 때까지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 것이었지만, 여성해방운동은 1960년대 중반에는 대중적인 관심에서는 크게 후퇴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서구 페미니즘에 의해 부활된 여성운동은 여성해방운동을 들고 나왔다. 미국에서의 시민권운동의 경험은 여성의 종속적 위치에 대해 투쟁할 필요성을 촉진시켰다. 초기 여성운동과 달리 여성해방운동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각성된 여성의식을 모든 이론과 실천의 기초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억압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선언하는 구체적인 정치활동에 강조를 두게 되었다. 이 운동은 다양하고 비위계적이며 조직이 허술하고 엄격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도 없고 여성해방에 대한 관심은 여러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는데, 그것은 모든 여성들이 한결같이 억압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것을 모든 남성들은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으로 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보수적인 페미니스트, 개혁주의자들은 법을 수단으로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존의 정치체계를 통해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보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과 같은 조직들이 현재 남성지배적인 지위체계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개혁주의적 집단을 비판하고 있다. 몇몇 급진주의자들이 사회주의적인 해결방식을 믿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기본적인 불평등이 계급보다는 성에 기초한 차별에 기인하며 주요한 변화들이 정치영역에서 이러한 차별을 수정하기 위하여 나타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페미니즘은 성별 고정관념을 해체할 방법을 모색하고 실현하기 위해 성별 관계의 구성을 분석한다고 한다.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표현될 때보다 진일보한 느낌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 같은 범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유하고, 이 사유를 바탕으로 가부장적 위계에 맞서 싸우기 위함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통해 성별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생물학이 사회적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이 우연한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고유한 사회 문제의 배열 속에서 발생하는 체계적 억압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가부장제와 여성억압 현상을 이해하는 지식을 생산해왔으며 여성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꾸준히 진화되어 왔다는 말로 이해된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각각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 여성·평등·정의·변화 등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범주화된다. 대체로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급진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 정신분석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레즈비언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등이 주요한 페미니즘의 조류로 이야기된다는 말은 여전히 페미니즘은 사회의 중요 문제 중 하나인 채 진화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첫 머리가 강렬하다. 무심코 읽었다간 된통 한 대 엊어맞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뭐지? 소설집이나 사회풍자 혹은 범죄 스릴러 같은 제목이지만 부제가 책의 성격에 조금 다가선다면 〈서문〉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에 모인 탁월한 작가들의 합창이 이런 존재들의 진실을 말하고 분노를 풀어놓는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던 것처럼 이 이야기들이 그저 “잡음과 분노로 가득해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여기 이야기들은 유머와 휴머니즘으로 숙성되었다.”고 토츠비그가 한 말은 책을 다 읽고도 다시 떠오르는 강한 충격을 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모두 15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색적이라면 웹툰(만화)가 한편 실렸다는 점이다. 독자의 저급한 독서로서는 처음 본 형태이다. 산디 토츠비그의 지적처럼 여성을 대상화하고 비하하고 정의해온 멸칭이 하나씩 들어 있다. 「뜨개질하는 요물들-사이렌」 「진짜 사나이-비라고」 「보리수나무의 처녀귀신-추라일」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테머건트」 「촌년-웬치」 「포르노 배우의 우월함-허시」 「약물대응팀-버튜피레이터」 「할망구의 정원-해러던」 「예지몽의 전사-워리어」 「의자 속 악령-쉬-데블」 「홀아비 염탐꾼-머크레이커」 「공군 지원 부대-스핏파이어」 「피압제자의 격분-퓨리」 「호랑이 엄마-타이그레스」 「용 부인의 비늘-드래건」 등이다. 

책의 역자 이수영은 "여성 혐오적 멸칭들이 다양한 구성과 문체를 통해 여성의 삶과 성적 정체성의 변화무쌍한 면모를 포괄하며 소수자의 힘을 드러낸다. 이 소설집은 온갖 주의 주장들의 경연장이 되어 인종 차별, 성청치, 계급 투쟁, 세대 갈등, 영웅주의, 테러리즘이 페미니즘의 감독하에 전개된다."(p.366~367)고 정리했다.

책의 첫 번째 작품은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뜨개질하는 요물들」이다. 여성의 유혹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siren)’이 화자로 등장해 “경계에 선 존재들”끼리 모여 뜨개질 모임을 결성하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어류의 몸을 한 세이렌, 오리 부리에 물갈퀴가 있고 알을 낳아 부화한 새끼를 젖으로 기르는 오리너구리, 그리고 삶과 죽음의 중간자적 존재 뱀파이어 등 그 어떤 표준이나 분류, 범주, 정의, 집단에 들지 못하는 이들이 모임의 일원으로 호명된다. 모임의 가입 자격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이들은 각종 신화, 동화, 우화에 나오는 존재들, 특히 남성 중심의 이야기에서 희생자 혹은 피해자로 나오는 존재들을 소환하며 그들의 존재에 새로운 가치와 서사를 부여한다. 이 짧은 이야기 한 편이 하나의 비유이자 우화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시엔 레스터의 「진짜 사나이」는 여성으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온 한 남장 여자의 수난기를 다뤘다. 19세기의 실존 인물 ‘샨도르 베이(Sandor Vay)’를 모티브로 삼았는데, 동성 간의 사랑과 그들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비라고’가 남자같이 호전적인 여자를 지칭하는 동시에 과거 남성 중심 병리학의 관점에서 성도착자를 정의하는 용어임이 드러나는데, 이 글을 통해 과거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이해되고 다뤄졌는지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카밀라 샴지의 「보리수나무의 처녀귀신」에서는 파키스탄의 여자 귀신 ‘추라일(churail)’이 등장한다. ‘추라일’은 남아시아 일대의 설화적 존재로,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 남편이나 시댁으로부터 학대당하다 죽은 여자, 한 번도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죽은 여자 등 억울한 죽음을 맞은 여성의 넋을 이르는 말이다. 이 작품은 추라일이 된 어머니의 혼령을 피해 아버지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영국으로 이민 간 소녀의 성장 스토리를 토대로 가부장제의 억압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안 등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이민 사회에 대한 이슈나 기후위기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이 밖에도 책은 정신없는 속도로 독자를 빨아들여, 우리는 레이첼 시퍼트의 「피압제자의 격분」에서 1942년 폴란드 여성들의 용맹한 항거에 직접 참여한 듯 전율하게 될 것이고, 클레어 코다의 「호랑이 엄마」에서 자녀 교육에 열성이었던 ‘타이거 맘’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게 될 것이며, 여성의 갱년기를 소재로 한 스텔라 더피의 「용 부인의 비늘」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이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 : 산디 토츠비그(Sandi Toksvig)

덴마크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자라다가 열네 살에 영국으로 왔다. 코미디언이자 작가로 40년간 연극과 방송 활동을 하며 2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영국작가협회장을 역임하고 여성평등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불독 버턴 부인의 이야기』가 번역·출간되었다


저자 : 시엔 레스터(CN Lester)

음악가이자 작가, 트랜스/퀴어/페미니스트 교육가로 다양한 국제적 활동을 펼치며 예술 기획자 및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작곡가 바르바라 스트로치에 대한 학제 간 연구와 공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음악과 젠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역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도 관심을 두며 산문집 『트랜스 라이크 미: 우리 모두를 위한 대화Trans Like Me: Conversations for All of Us』로 비평적 찬사를 받았다.


저자 : 카밀라 샴지(Kamila Shamsie)

파키스탄 출신 영국 소설가. 1973년 카라치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에게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기대했으나 샴지는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작가인 어머니와 고모할머니의 지지를 받으며 소설가로서의 길을 밟을 수 있었다. 해밀튼 칼리지에서 문예창작과 학사,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캠퍼스의 시인 및 작가를 위한 MFA 프로그램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시절 카슈미르 출신 시인 아가 샤히드 알리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1998년 출간된 첫 소설 『바닷가 옆 도시에서In The City by the Sea』는 영국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의 최종후보작 명단에 올랐다. 이듬해 샴지는 이 작품으로 파키스탄 총리가 수여하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에는 ‘21세기 오렌지 작가 21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발표한 『카르토그래피Kartography』(2002)는 세간의 폭넓은 호평을 이끌어내면서 영국 ‘존 루엘린 라이스 상’ 최종후보작으로 선정되었고, 『카르토그래피』와 더불어 『단절된 구절들Broken Verses』(2005)은 파키스탄 문학 아카데미로부터 ‘파트라스 보카리 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타버린 그림자Burnt Shadows』(2009)는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블랙 퓰리처상’이라고도 불리는 ‘애니스필드 울프 도서상’을 수상하였으며 ‘여성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올랐고, 『모든 돌에 깃든 신A God in Every Stone』(2014)은 2015년 ‘월터 스콧 상’과 ‘베일리스 여성문학상’ 최종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최근작 『홈 파이어』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종교 및 정치 간의 관계 그리고 이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소설로, 2017년 ‘맨부커상’ 후보작에 올랐으며 2018년 ‘여성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역자 : 이수영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기자, 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밴디트: 의적의 역사』 등 인문서로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소설 『클로리스』, 『XX』, 『비하인드 도어』, 에세이 『국경 너머의 키스』, 『마이 코리안 델리』,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너의 시베리아』 등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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