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책은 교차로 리아의 이야기-몽 족의 이야기를 배치해놓았는데 중반에 접어드니 리아가 겪는 의학적 고비와 몽족이 거쳐온 사회 역사적 수난의 배경, 그 상관관계가 내게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된다. 이야기 자체는 몰입할 수밖에 없게 재밌지만 읽기에는 고통스럽다. 가령, 상태가 위독해서 전담 병원으로 아이를 옮기는데 부모는 원래 다니던 병원 주치의가 놀러가느라 애를 그리로 보낸다고 잘못 알고 있고.. 수술과 위험에 대한 카운슬링을 병원측에서는 부모가 이해했다고 기록했는데 부모는 애가 혼수상태에 빠진지도 몰라서.. 잠자는 주사를 줬냐고 묻는..

그들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었고 실력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엔 리아의 목숨을 살리느라 너무 바빠 병리 현상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쏟지 못했다. 예를 들어 코파츠는 열두 시간 이상 쉴 새 없이 리아를 돌보는 동안 아이의 성별을 잘못 알고 있었다. "남아의 대사성 산증은 중탄산염을 투약하자마자 가라앉았다."라고 기록했던 것이다. 이런 부분도있었다. "그의 말초 조직 순환은 향상되었고, 맥박 산소 농도계는 동맥혈샘플의 포화와 상관성 있는 수치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의학의 명과 암이 여기에 있다. 환자는 여자아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분석할 증상들의 집합으로 취급되지만 의사는 그만큼 신경을 분산하는 일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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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 이야기 비룡소의 그림동화 110
요르크 뮐러 그림, 요르크 슈타이너 글, 김라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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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 “생명의 법”을 어기고 죄 지은 결과로 오갈데 없어진 큰 섬 사람들을 당연히 작은 섬 사람들이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하던 아이의 얼굴이 다음장에서 변하는 걸 봤다. 작은 섬 사람들이 너그럽게 받아주는 장면에서 큰섬 사람들에 잔뜩 화나있던 아이 표정도 금세 녹아 밝아지고… 아이 얼굴에 드러나는 그런 변화를 생생하게 보게 될 때 바깥을 향하는 내 마음의 불퉁함도 조금씩 녹는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말로 백마디 떠들어도 나야말로 “공동체 감각”이 있는 사람인가. (얼마전 북토크에서 배워온 말. 페미니즘 교육이 향해야 할 곳, 방점 찍어야 할 부분에 대한 이야기 중에 나왔다. 이 책 얘기해야하는데!) 어떤 것들은, 내가 어른이랍시고 아이한테 일일이 말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 아이들 마음이 훨씬 너르고 유연하고…. 그림책은 위대하다ㅜㅜ 요르크 뮐러의 그림책 두번째인데 지난 번 책에선 책 속으로 우리를 끝없이 데리고 들어가더니 이번엔 세상사, 인간사 멀찍이 보게 만들어주구.. 대단한 작가시다.

책 읽어주는 게 솔직히 버겁지만 ㅜㅜ 아이랑 나를 같은 선 상의 동료 독자로 만들어주는 경험이라서 이런 책 같이 읽으면 의미가 크다. 아이와 그림책 읽은 것도 가끔은 남겨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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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에 관심없다 보니 연말마다 서점에서 책구경할 때 걸리적거리는 게 많다. 유명했던 책 홍보 매달매일매시매분매초 봤는데 연말 총결산으로 광고 짱짱한 책들 제목 표지 추천사, 굳이 또 봐야 하나? (책에는 불만 없음. 정말 좋아서 유명해졌을 한 두권의 책 저도 소중하게 생각하고요.) 친구가 나한테 올해의 책 뭐냐고 했는데 난 그걸 못하고ㅜ 그냥 매달 “오 이 책 넘 좋은데? 내 마음 속 올해의 책 감이야!!! 1월부터 이래도 될까?”라며 새해벽두부터 수없이 호들갑을 떠는 사람인데다가, 신간을 잘 안보니까 뒷북일 경우가 많다 ㅋㅋㅋ “다들 좋다더니 이럴 줄 알았다. 왜 난 지금 읽은 거야. 흑흑”거리며 주접떠는.. 책 추천으로 늘 은혜를 베푸는 친구가 물어봐주었으니 올해 좋았던 책 꼽아보는 중이긴 한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암튼 그러던 중에 예스24 책아 미안해 이벤트가 눈에 들어왔다. (알라딘에 이런거 써도 되는 거죠?) 안 팔린 책들(증쇄되지 않은 책들..ㅎㅎ) 편집자분들이 자기 책한테 편지(무려 손편지) 쓴 건데.. 되게 눈물겨움 ㅜㅜㅋㅋ 너(책)는 좋은 앤데, 내가 못 팔아서 그래. It’s not you. It’s me……. 구남친스러운 내가 잘할게부터 해서 책제목 n행시 쓰고 출생의 비밀 밝히고 자기 객관화-분열 사이를 오고 감 ㅋㅋㅋ 파주 물류창고에서 책들 얼어죽을까 걱정하고..ㅜㅜㅜㅋㅋㅋㅋ 근데 필력이 쩔어서 그런 와중에도 편지가 넘 웃김 ㅋㅋ 예의상 여기에 링크 붙이진 않겠슙니다. 이 쫄보.. 알라딘 애용하고 있슙니다. ㅋㅋ “30쪽만 읽어보세요”이것도 넘 와닿았다. 꾹 참고 30쪽만 읽어 보면 시작되는 뉴월드 다들 그거 찾아 헤매는 거 아닌가.

아무튼 내가 이걸 적는 이유는 책 리스트 만들려구.. 알라딘에다 해도 되나 고민했는데 책을 어디서든 사든 보든 할거니까 여기에 읽고싶어요 리스트 만들어놓으려고 한다. 교보 몇년전에 통곡의 리스트했다던데 그거 새삼 궁금하다 ㅋㅋ 알라딘도 오열의 굿판 한번 짜보는 게 어떠신지..

리아의 나라도 읽는 중이고, 리스트 보기 전부터 읽어봐야겠다 싶었던 책도 많았지만 페이퍼 적게 된 이유는 저 편지 때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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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2-08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 당장 저기 옆동네 구경가봐야겠어요. 내가 잘할게.... 너무 웃기네요.
우리의 출판 현실 생각할 때 웃으면 안 되는데... 아...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 2022-12-08 13:04   좋아요 0 | URL
웃으면 안되는데 웃게 될 때 할 수 있는 것은 공유겠다는 마음에 ㅋㅋ 언급하지 않은 편지도 재밌죠 단발님 ㅋㅋㅋ

수이 2022-12-08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리스트를 적어줘야 더 잼나죠 유수님아 ㅋㅋㅋ 근데 막 가슴이 찢어진다 웃으면서도 ㅠㅠ

유수 2022-12-08 13:05   좋아요 0 | URL
아니 북플 제가 사용이 서툴긴 한데.. 페이퍼에 열권 밖에 안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읽고 싶어요로 저장했는데 그럼 리스트가 안 묶이자나요… 흑흑흑

수이 2022-12-08 13:48   좋아요 1 | URL
글 쓸 때 책 정보를 넣어야 함~ ❤️

다락방 2022-12-0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보고 예스 갔다 왔어요. 리스트 중에 제가 이미 산 책들이 보여 뿌듯하네요? ㅋㅋㅋㅋㅋ(읽지는 않음)

유수 2022-12-08 13:06   좋아요 0 | URL
그럼 저는 다락방님 페이퍼를 기다리며 야금야금 읽어야겠구만요.ㅋㅋ

붉은돼지 2022-12-08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 이거 또 시장을 뒤흔들겠구먼...했는데....나만 재밌었나 봐....유감이야... ㅜㅜ
(거의 모든 안경의 역사 - 유유 손편지)

유수 2022-12-08 13:07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그 구절도 저를 뒤흔들었죠. 나몰라라 한국엄마 그 편지 정말 웃겼어요 ㅋㅋㅋㅋ 반갑습니다 붉은돼지님!!
 

친구 왜 저에게 오백쪽짜리 재밌는 책을 선물로 주었죠? 멈출 수가 없다.

몽족 난민의 아이 리아가 미국에서 태어나 뇌전증을 진단받게 된다. 아기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부모는 응급실에 달려가긴 하지만 샤머니즘적 세계관 때문에 뇌전증을 무속적 신내림 정도로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데다, 무엇보다 몽족에게는 서양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리아가 위중한 상태로 응급실에 올 때마다 문화, 신념, 종교와 같은 여러 난관(언어는 아주 사소한 문제일 뿐)에 의료인들이 부딪히는 상황. 의학적 치료를 잘 따를 수 없다는(따르지 않는다는) 것 외엔 리아의 부모는 아이를 최선으로 보살피고 사랑하는 양육자다. 앤 패디먼이 이렇게 된 역사 사회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1/3 정도 읽음)

문화중개인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서문에 잠시 나왔던 것 같은데, 책을 다 읽을 때쯤엔 그에 대해 자세히 다시 다뤄주길 바라게 된다. 어린 아이의 건강과 안녕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좋은) 양육자와 (좋은) 의료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구 문화(의료도 문화라는 걸 책 읽으면서 절감한다)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서 자란 동양인으로서 양측 다 이해되는 데다가.. 앤 패디먼이 꽉 짜인 조사를 바탕으로 유려하게 리아가 위치한 경계에 읽는 사람을 데려다 놓음.

그런데다..종이 잘 모르지만 나는 이런 얇기와 질감의 책 페이지가 좋더라. 만지작 만지작거림ㅋㅋ 문자 그대로 놓을 수가 없어.

“그러다 아이가 죽으면 의사의 책임이다. 그 경우 어떻게 책임을 지겠는가? 사람 목숨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의사와 부모가 계속해서 협상을 한다면 서로 의견이 달라도 갈등은 신념 체계의 차이로만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이 불려 오고 법원의 명령을 받게 되면 차이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차이는 더 이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사는 경찰을 부르고 국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몽족에겐 그런 힘이 없다.“145

친구 이래놓고 이건 작년 올해의 책이고 올해 올해의 책은 에브리바디라고요? 알게써 알게써 ㅜㅜ 쫓아가기 바쁘넴..

"리아는 계속해서 발작 증세를 보였어요. 그렇다면 페노바비탈 농도가 충분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니면 페노바비탈 농도가 충분한데도 발작을 일으킨 것일까요? 부모가 우리가 처방한 대로 약을 주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해서였을까요, 원치 않아서였을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훌륭한 통역자가 없다는 건 의사소통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닐은 나오 카오가 "돌담을 쳐두었으며 때로는 일부러 속인다고 느꼈다. 페기는푸아가 "아주 어리석거나 완전 바보인 줄 알았다. 통역을 정확히 해줄 경우에도 그녀의 대답은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의사는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 중 어느 정도가 의사소통이나 부모의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느 정도가 문화적인 장벽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린 그녀가 또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서 말했어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수정이 가능한 마지막 난자 하나가 남아 있다가 수정됐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우린 이 아기는 또 어떻게 될까 겁부터 났어요. 다운증후군을 갖게 되진 않을까, 심장병을 타고나진 않을까 걱정이 됐지요. 만일 잘못되면 우리는 한 집의 아픈 아이 ‘둘‘을 봐야 하니까요. 리아의 엄마는 양수 검사를 거부했어요. 검사해서 아기한테 문제가 있는 줄 알아도 임신중단을 할 리 없었겠지만 말이죠."

내가 보기에 몽족의 의료관은 미국의 일반적인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미국의 의료는 점점 더 협소한 하위 전문 분야로 핵분열을 했고 각 분야사이의 교류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에 비해 몽족은 언제까지나 전체론을 견지했다. 내 서류철 중 상호 참조할 서류들의 관계도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갈수록 의료 문제에 대한 몽족의 집착이 삶에 대한 집착과 크게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해서도, 사후의 삶에 대해서도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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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2-06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백쪽짜리 책 선물해주는 친구 흔치 않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하죠 ㅎㅎㅎ
이 책 참 좋네요.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유수 2022-12-07 00:27   좋아요 0 | URL
예이!! 같이 읽어요😍😍
 

뭐지 이거….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는 우리집 어린 사람들 휘어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넘 매혹적이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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