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찰진 번역 무슨 일인지 ㅋㅋ 미터기 이런건 그대로 번역했을까 싶기도 한데. 페르세폴리스도 대단하지만 이건 전격 ‘부역자’ 토크라서 재밌다. 기혼 페미의 자조와 기만…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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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왜 이러는지 알 거 같아서 계속 읽게 된다.

나는 내가 이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외롭다고 느꼈다. 다만 그렇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구름 한조각이 시야에 들어와 그러지 않았더라면 볼 수 있었을 것들의 반은 가려버리는 듯했다. 두통이 생기려할 때 항상 그랬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좋아. 이제 난 죽을 거야.‘ 그래서 나는 모자를 벗고 걸어가서 태양 아래 섰다.
고향에서 태양은 마치 신처럼 무섭기도 하다. 여기 있는 이것은―이게 같은 태양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이윽고 하늘이 내게 가까이 왔다. - P90

나는 목욕을 하다가 게들 때문에 첨벙대곤 했다. 게는 긴 더듬이 끝에 작은 눈이 달려 있었고,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으면 껍데기가 으스러지면서 부드럽고 하얀 물질이 보글보글 흘러나왔다. 나는 항상 이 연못이 나오는 꿈을 꾸며 꿈속에서 그 녹갈색 물을 보고 있었다.
"안돼요, 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살면 안돼요." 도스 부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젊은‘이라는 말을 하며 마치 젊다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굴지만, 정작 늙어가는 것은 항상 그리도 무서워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늙어서 이 모든 망할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침울한 기분에 빠져있진 않을 텐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 P111

제비꽃 다발은 양치 컵에 꽂기에는 너무 컸다. 물병에 꽂았다.
나는 베개 밑에서 돈을 꺼내 핸드백에 넣었다. 난 벌써 그 돈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동안 죽 그 돈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돈은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물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란 돈에 너무나 빠르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옷을 입는 동안 줄곧 어떤 옷을 살지 생각했다.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고 몸이 아프다는 사실도 잊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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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당연히 책을 살 생각으로 서점 여러 군데를 다니긴 했으나 여행지니까 작은 책을 고르리, 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두 손바닥 크기의 하드커버 책을 골랐다. 집어 들었을 때 눈맞춤하게 된 문장들이 있어 첫마음 따위, 순순히 접고 들어갔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을 읽는 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위에 있는 것은 배트... 그다음은 공... 그다음은 깨진 창문. 내가 부분부분을 보여주면 독자들은 그것들을 조합한다. 누군가가 공을 배트로 때려서 공이 창문을 뚫고 들어간 것이라고! 보다시피, 이 세 칸의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그림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바로 그 사이가 독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리고 독자들 각각은 공이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마음속에 그릴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들 사이의 틈새. 순간들 사이의 공백. 없어져 버린 듯한 것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경우에도 정말로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그 없어져버린 것들이었다."127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작가는 그래픽 노블(옮긴이는 픽션이 아니라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그래픽 노블이 아니라 '그래픽 내러티브'라고 짚는다)이 품고 있는 칸 사이의 공백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혼합형 치매에 걸린 본인 엄마의 기억상실에 기가 막히게 비유해서 서사 안으로 들여온다. 이건 그림 없이텍스트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느껴지지만 가져와 보면,


"기억 속의 틈새를 메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엄마는 더욱더 광적으로 안달하게 되었고, 공백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팔다리나 장기 하나를 잃었을 때 일어나는 문제는 물리적이고 납득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에 적응하게 된다.

기억상실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것은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갈 대 사용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을 상실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말이다."117




치매에 걸린 엄마(아빠도 있겠지? 딱히 기억이 안남)를 돌보거나 죽음을 앞둔 노부모를 여성작가가 돌봄/관찰한 책, 영화는 몇몇 생각나지만 남성 작가의 수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남성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보다 내가 이 기록을 더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 읽다가 한번씩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동생 있는 성인 남자가 엄마의 주보호자가 되어 병수발을 든다? 알고보니 빚 뿐인 자산을 떠안아 관리하면서 동시에 복지수급을 위한 행정업무에 시달린다? 공황장애도 겪고.. 나 스스로가 그려보지 않은 미래도 아니고 애처롭지 않을 수 없지..

부모세대의 노화와 죽음을 제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견뎌낼지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고 이걸 읽음으로 해서 결국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다. 물로 비유하는 것 기똥차고.. 책 시종일관 나오는 캐릭터들의 기운빠진 냉소들도 내 취향이고.. 그냥 책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냄..

쇠퇴한 산업도시의 명암, 트라우마, 공공의료체계, 돌봄, 공동체 역할, 유년과 자아 등의 굵고 찐하고 급한;;; 여러가지 화두를 너무 잘 녹였다. 찾아보니 작가가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 후보인 일러스트레이터지만 이 책은 영국에서 독립출판된 걸 편집자가 픽해온 거라던데(서점 주인분 말씀) 오.. 안목.. 게다가 하드커버와 겉싸개가 한국판으로 들어오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것 같은데 책 다 읽고 겉싸개(더스트자켓 애호가) 입혔다가 벗겨보면 그 자체가 품은 메시지에 또 감탄하게 됨..


<언다잉> 앤 보이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위에 구구절절 쓴 것을 한 문장으로.. 가능하구나 ㅜㅜ

"자기 자신만을 다루는 글쓰기는 죽음에 관한 글쓰기일 수도 있지만, 죽음에 관한 글쓰기는 만인에 관한 글쓰기다.'(출처 리시올 트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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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쪽수 밀리 기준)

좋은 글, 빼어난 글, 읽을 만한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논문(학문?), 과 ‘잡문’의 구별을 지양한다.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사람일수록 그 지성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다. 글은 정치적 입장과 문장력으로 구별되는 것이지 학문, 잡문 예술로 구별되지 않는다. … 좋은 글은 읽는 이의 정치적 입장이나 기호와 상관없이 합의된다. - P17

내게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 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 - P20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려는 지적 자극의 본질적 측면은 요동하는 세계관이다. 아는 방법을 질문하는 책. (중략) 조감도는 전경을 볼 수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
우리를 다른 세게로 인도하는 책은 피사체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 P28

독서가, 조금 ‘다른 책’이 나한테 이런 확신과 자신감을 준 것은 여성학 책을 통해 획득한 위치성(positionality) 때문이다. - P47

책을 읽는 데 필요한 태도는 왜 이 책을 읽는가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자기 탐구라는 정의감과 그 정의감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독서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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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책 정보를 보고 가급적 모녀 서사 다룬 책은 피하는 편인데 읽다가 이중으로 뚜드려 맞음 ㅋㅋ 읽다가 못 피했고, 제목이 탈혼기인데 조금이라도 안 나오리라 생각한 것도 말이 안됨… 피하는 이유 아프니까 ㅜㅜ
“딸은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ㅜㅜㅜ 메타에세이… 재밌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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