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 145년의 유랑, 20년의 협상
유복렬 지음 / 눌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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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조선 기록 문화의 상징인 의궤!

 

 

예전에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굉장히 놀라며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우리의 문화재가 어떻게 그리 먼 나라의 국립박물관까지 가게 되었을까.

만약에 그분이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사서로 근무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의 것을 찾고자 애쓰지 않았다면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에 대해 우린 아직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 외규장각 의궤가 보도될 때마다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빼앗긴 우리 것에 대한 본능적 관심이었다.

그러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협상이 지지부진해진다느니, 양국 간의 문화재에 대한 사고의 차이가 많다느니, 그러다가 결국 지지부진하던 협상이 체결되어 아쉽게나마 대여형식으로 온다느니 하는 보도를 들었다.

그때 뉴스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문화민족이라는 프랑스는 국내법과 국제법을 들먹이며 굉장히 야만적인 사고를 하는구나, 이렇게 빼앗고 약탈해간 남의 나라 문화재들을 자신들의 국립박물관 창고에 얼마나 많이 쌓아 놓았을까.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했으니 그곳에서 빼앗은 문화재는 또 얼마나 있을까. 영국이나 미국, 일본의 박물관에서 꼭꼭 숨겨진 우리의 문화재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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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책이다. 145년 동안 유랑을 하고 20년 동안의 협상 끝에 돌아와 있는 외규장각 의궤에 얽힌 이야기다.

 

우리에게 외규장각 의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의궤는 단지 한때에만 행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만세에 걸쳐 행해지도록 만든 것이다.― 세종실록

조선의 철저한 기록 문화는 의궤에서 그 빛을 발한다. 혼례, 세자책봉, 장례, 종묘에서의 제사와 같은 왕실의 의식부터 실록의 편찬, 성의 축조와 같은 국가적인 사업, 악기 제작이나 잔치를 베푸는 일처럼 다소 시시콜콜해 보이는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행사들이 의궤로 제작되었다. 의식과 행사의 선례를 만들어 후대 사람들이 법도에 맞게 의례를 치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의궤제작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의식의 과정과 사용한 물품,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행사에 쓰인 각종 기물과 복식 등을 그린 도설과 행사 장면을 그린 반차도도 함께 그려져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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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것이 그리도 멀리 가게 되었을까.

외규장각 의궤의 약탈 배경에는 병인양요와 프랑스군의 강화도 습격이 있다.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는 무엇인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정책으로 8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병인박해 때, 프랑스 신부 9명도 함께 처형된다. 프랑스 신부의 죽음을 빌미로 당시 텐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에서 로즈 제독을 앞장세워 강화도를 침공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퇴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은괴와 외규장각에 있던 도서와 사료 등 을 가져가면서 나머지를 불태우게 된다.

당시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은 정조가 설치한 왕실서고이다. 창덕궁에 있던 규장각의 부속시설로, 외세의 한양 침략에 대비해 의궤 등 왕실의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기 위한 비상 서고였던 셈이다. 팔만대장경을 전국의 비밀서고에 보관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는 남의 물건에 대한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닐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우리가 가지지 못하도록 불태우는 정책…….

 

그때 강화도의 외규장각이 완전히 불탔기에 우리는 모든 책들이 불 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가,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냄으로써 1975년에 겨우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외규장각 의궤가 그리로 가게 된 역사적 배경도 알게 된 것이다.

원래 340권이던 의궤 중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있는 것은 297권이다. 소실된 나머지는 이리저리 팔리거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왜 우리 땅에 오는 게 이리도 힘들었을까.

늦게나마 1991년에 서울대학교가 프랑스 정부에 의궤 반환요청을 했고 같은 해에 외무부가 프랑스 정부에 공식 요청했으나 그들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러다 고속철도 사업으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급물살을 탄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돌려주고 싶다고 했으나 일부 학자들과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들의 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를 절대로 돌려 줄 수 없다며 극단으로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테랑 대통령이 의궤 한 권(수빈휘경원원소도 감의궤)을 한국에 두고 가게 된다. 단지 보여주기만 하겠다던 프랑스국립박물관과의 약속을 어기고 즉흥적으로 한국에 남겨두고 갔다고 한다.

그 당시에 '교류와 대여'라는 형식으로 양국 정상 간의 합의를 깨고 한국에 돌려 줬으니 프랑스 국내법을 어긴 대통령으로 몰아넣으며 공권력의 횡포니, 나치협력정부니 하는 기사까지 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 협상은 20년의 세월동안 두 나라 간의 의견차이로 팽팽한 줄다리기만 할 뿐, 늘 제자리걸음인 상태였다. 외교부에서 나서보기도 하고 당시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원장이던 한상진 교수를 민간인 협상 대표로 세워 보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꼿꼿한 콧대를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9년 주 프랑스 대사로 박홍신 대사가 임명되면서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열정과 끈기, 인내심 있는 설득으로 희망의 빛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2011년 8월 '145년 만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게 된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협상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재임 기간 중 어떻게 해서든 양국 산 협상을 재개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프랑스로 부임했다....... 한국으로부터 어떤 문화재를 대가로 받는 대신에 한국 국민들의 영원한 사의를 받아라! - 박홍신 주 프랑스 대사 (본문에서)

 

1993년 양국 대통령 간에 합의된 대전제인 '교류와 대여'의 원칙을 내세우며 의궤 맞교환 방안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관례도 없거니와 그 배후에 프랑스국립도서관 책임자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반환이 아닌 대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프랑스 국내법을 우회하면서 우리 땅에 데려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고 한다.

 

책 속에는 협상의 현장에서 외교부 실무자로서 겪은 위협, 좌절, 갈등, 위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를 찾으려는 국민들의 관심, 정부의 노력, 지도자의 관심이 모여 힘으로 작용함을 느끼게 된다.

장기 대여라는 형식이어서 아쉽지만 노력한 모든 분들, 특히 고인이 된 박병선 박사와 저자, 외교부 담당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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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직지>는 프랑스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 언제 반환이 될지.....

기록으로는 구한 말 주한 프랑스 공사가 지방 시찰을 갔다가 우연히 구입한 <직지>를 나중에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자신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을 왜 구입한 걸까. 비록 약탈이 아닌 구입의 형식을 띠고 있기에 프랑스의 순순한 반환이 아니면 어려울텐데....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하면 통하려나......

 

실제로 박물관 담당자들은 외규장각 의궤도 중국의 문화재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남의 나라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안목은 있으나 남의 나라에 대한 배려는 없는 프랑스인들......

자신들은 필요도 없는 것을 왜 가져가는지..... 제국주의적인 근성 같다.

 

 

만약 한국이 경제력이나 국제적인 위치가 예전 그대로였다면 협상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힘이 있어야 우리의 것도 찾을 수 있는구나 싶어서 씁쓸하다.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를 생각해 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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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성실록 - 우리 역사의 맨얼굴을 만나다
정명섭 지음 / 북로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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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 땅에 이런 일이!! [조선백성실록]

 

 

 

 

세종 5년, 1423년 3월 13일의 기사에는 함길도 화주의 백성들이 굶주림을 못 이겨 흙으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밀 맛이 난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다. (들어가며에서)

 

 

생활이 열악했던 조선시대에는 60세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조선시대 최고의 노인은 기록상으로는 무려 108세다. 세종 때 충청도 남포현에 사는 숙인 김씨에게 매달 술과 고기를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본문에서)

 

 

 

 

 

 

실록의 이야기 중에서 왕조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도 의외로 많음을, 그 내용도 다양하고 진기한 것들이 이리도 많음을 처음 알았다. 역사시간에 배운 것은 역사적인 큰 흐름 속에 조선왕조의 업적에 대한 것과 양반들의 치적들 이었다. 그래서 민초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양반들만의 세상이 아닌 일반 민초들도 살아 숨 쉬던 조선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사는 일이 별다를 게 있겠냐마는 조선 백성들의 삶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이다.

 

 

<조선백성실록>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절이야기에서는 아이티의 진흙과자 생각이 났다. 장수하는 노인들에게 나라에서 먹을 것을 챙겨 주었다는 이야기에서는 노인공경의 유교국가임을 새삼 깨닫는다.

과거의 질펀한 세월을 견디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기에 지나간 일들이, 지나간 선조들의 삶이 소중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조선 백성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때론 아프게, 때로는 눈물겹게, 때로는 멋지고 용기 있게 다가온다.

 

 

음력 5월 5일 단오에 행하던 돌 던지기 놀이에서는 잔인함도 느껴지지만 스포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갑갑한 현실을 풀어주는 행사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여러 가지 놀이를 전수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부분이다.

 

 

국가에 미역이나 어류 말려서 진상하던 포작간, 소금을 만드는 염간이 바다에서 왜구를 만나 활약한 이야기엔 그들의 힘과 용기와 애국심이 느껴진다.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을 밑바닥 인생들이지만 자신들의 삶을 숙명으로 알고 충실히 살다간 또 다른 우리의 역사임을 생각한다.

 

양반들이나 재산가들이 직접군역을 치를 사람을 사서 대체복무를 시키는 이야기, 그래서 군역의 붕괴를 가져오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곤경을 겪은 이야기를 읽을 땐 지금의 우리는 부끄러움이 없는지 반성하게 된다. 현역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기에.

매를 대신 맞아 주는 매품팔이의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아려온다. 관리가 죄를 지으면 하인이 대신 벌을 받는 관행이 매품팔이로 이어진 것이라니.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조선 양반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도 지금과 닮았는지...

 

 

 

그 밖에도 조선의 고아원, 조선의 찜질방, 사고사 1위인 벼락, 원각사, 인육 괴담, 조선 운하의 꿈, 온천 마니아인 세종의 온양군 이야기, 조선의 119 멸화군, 울릉도, 삼봉도, 무릉도, 대마도에 대한 이야기, 만산군이 고려의 유민들이었다는 사실, 경복궁에서 <코란>을 낭독한 계기, 조선판 백분토론, 중국어만 사용하던 사역원, 명나라에 바치던 공녀들의 순장이야기 등이 있다.

 

 

 

유교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곳에도 지금과 비슷한 삶이 , 때로는 다른 삶이, 아프고 고달픈 삶이 있었구나 싶다. 사람이 사는 것은 매한가지임을 느끼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조선백성실록.

역사적 기록들이 꼭 왕이나 지배층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백성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다. 커다란 역사적인 물결에 휩쓸려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실록에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다.

 

교과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이야기다. 그렇다고 시시콜콜한 잡담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없는 백성들의 삶의 무게를 확인한 책이다.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잘 것 없는 일반 백성들의 손들이 모여 거대한 수레바퀴를 끌어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 손들의 위대함을 지도자들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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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 - 세상을 뒤바꾼 세계사 7대 코드, 그 비밀의 문을 열다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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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7대 코드!!~[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세계사도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에 어떤 계기가 있듯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계기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흘러가는 데는 어떤 이치들이 작용했을까.

그런 이치가 주는 정보들만 알아도 길을 잃지는 않을 텐데...

도대체 세계사를 바꾼 7대 코드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인류사의 수많은 사건 중에서 7개의 사건을 선택의 법칙, 필연의 법칙, 우연의 법칙, 흐름의 법칙, 위치의 법칙, 인과의 법칙, 종합의 법칙으로 나누어 간추렸다고 한다.

 

선택의 법칙에 따라 뽑은 것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선택이었던 니케아 신조의 반포다.

니케아 신조가 뿌린 파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을까.

모든 종교전쟁의 뿌리요, 지금도 종교조직의 기반이기도 한 신조를 선택했던 니케아 공의회이야기, 밀라노 칙령과 니케아 신조의 형성과정과 삼위일체의 교리, 그 이전의 팍스 로마나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필연의 법칙에 따라 나이팅게일의 크림전쟁에서의 간호정신을 뽑았다. 전쟁에서 부상병의 생존율을 높이고 체계적인 간호법과 위생시설을 갖추게 된 계기를 세웠던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다. 헌신, 봉사, 친절이 의학의 기본 정신이 된 이야기들이 있다.

 

우연이 만들어 낸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우연이 어떻게 인류 최초의 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피살 사건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이야기다.

 

인류사의 흐름에 큰 획을 그은 단군 조선 이야기.

4대 문명보다 1000년이나 앞선 랴오허 문명은 단군조선의 뿌리다. 단군조선이 인류사에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정신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는 이 인도주의의 발현은 지역사이지만 세계사에 빛날 정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에렉투스, 호모하빌리스의 역사, 세계문명들, 랴오허문명, 신석기문화, 청동기문화에 대한 설명들이 들어 있다.

 

살라미스 해전이 차지한 위치적 의미.

살라미스 해전은 인류사를 지배하는 집단이나 사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임을 보여 주는 전쟁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그리스 문명을 더욱 꽃피우고 르네상스에까지 미친 영향의 발단이 된 전쟁이다. 하지만 그리스 역시 페르시아의 전철을 밟아 민주정 대신에 군주정을 따른 것이다. 민주정으로는 존속하기가 힘들었던 걸까.

 

인과의 법칙으로 형성된 유럽지도 이야기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유럽을 전체적으로 움직였다.

중앙아시아의 훈족의 이동과 침략이 게르만민족을 이동하게 했고 오늘날 유럽지도를 형성하게 했다.

 

종합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인류 학문의 원형질이 되고, 어떻게 철학의 근원이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와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할 디딤판을 얻기 위함이다. 주제를 갖고 보는 역사 이야기는 깊이 있는 설명으로 인해 언제나 흥미롭다. 우리의 역사교육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세계사의 심층과 만나는 스토리텔링과 이미지의 역사 여행이다. 깊이 있는 역사 여행이다.

생생한 사진과 화보가 많아서 현장감을 더하며 쉽게 이해를 도운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역사를 보는 눈을 키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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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 / 어드북스(한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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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만 알던 김유신을 새롭게 알게 해준 책. 역사책이 재미있는 이유를 알게 해준 책. 이야기에서만 끝나지 않고 교훈과 깨달음을 얻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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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 / 어드북스(한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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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같은 삼국시대 이야기~~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예전에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단편적인 지식들에 대한 암기가 전부였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서인지 철이 들면서 역사책 속에는 훨씬 많은 재미있는 사실들이 숨겨져 있음에 전율하기도 했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평소 김유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낯선 사실들을 읽으면서 그 새로움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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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말에 목을 베다.>

 

이 책의 저자는 황윤.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이라는데 그 묵직함에 놀랐다. 460쪽의 분량이라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리라.

글과 그림이 같이 있어서 삼국지를 읽는 느낌도 들었고 손수 발로 뛰며 자료를 모으는 방식으로 생동감과 생생함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액자소설 기법으로 구성하였다고 한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경주 김유신 묘 앞에 있는 비석은 2개인데 그 중 오른쪽에 있는 1934년 조성된 비석은 陵이라는 한자에 물이 젖으면 墓로 변한다고 한다. 왕의 무덤인 陵과 일반인의 무덤인 墓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신기한 사실이다.

그런 양면성이 김유신에 대한 평가와도 관계있을까.

김유신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고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간웅일까, 가야계 신라인의 한계를 극복한 시대의 영웅일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들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책이나 위인전을 보면 어렸을 적의 가정환경과 주변관계를 눈 여겨 보게 된다. 어렸을 적의 경험과 추억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늘 들어 왔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 할아버지는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무력, 아버지는 만노군(지금의 진천군)의 태수,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인 만명부인.

 

그의 가문은 진골에 가야계에 신라왕실의 피가 섞인 셈이다.

 

 

정통 왕경인(경주인)이 아닌 가문을 빨리 일으켜 세우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웠기에 집안의 지위가 올라가지만 아직은 미약한 수준... 그렇기에 김유신의 고민도 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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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영토를 넓히고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화랑제도가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 일까.

 

김유신은 15세가 되자 화랑이 되어 낭도를 거느리고 심신수련과 체력단련을 하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게 된다.

 

그는 여사제라는 설도 있는 천관녀의 집에 자주 가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반대하자 가지 않겠다고 맹세 한다. 하지만 화랑들과 술을 마신 후 취한 채 집으로 오던 중 말이 인도한 곳은 천관녀의 집...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다.

그 과감하고 단호한 선택이 그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엄격함이 그의 전 생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 무인의 기개가 느껴지기도 한다.

 

 

 

 

화랑은 신라가 적극적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그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키기 위해 무장조직이 필요하게 되자 진흥왕 시대부터 운영한 제도였다.

15세부터 18세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과, 체력단련, 학문을 배우게 하던 인재양성 집단이다.

처음에는 예쁜 여자 둘을 내세워 인재를 모으다가 서로의 미모에 질투하다 죽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자 진골 출신의 남자들을 골라 단장하고 꾸며서 화랑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김유신의 무리들은 용화낭도라고 불렀는데, 용화 낭도는 미륵을 쫓는 무리라는 의미이므로 불교신앙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김유신을 미륵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당시 신라는 불교신앙을 이용해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던 시기였다.

신라왕은 자신을 전륜성왕이라 하여 불국토라는 이상 국가를 통치하는 존재로 설정했다고 한다.

미륵의 현신인 화랑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때 다음 시대엔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불교 신앙이야말로 정복전쟁의 당위성을 갖추어 주는 셈이다.

 

 

화랑도에서 배우던 세속오계에 임전무퇴, 살생유택이라는 조항이 그런 종교적 의미까지 가지면서 그들에게 살생의 특권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단지 용기를 주기 위한 것, 생명존중 사상이 담겨 있는 게 아니라 정복과 지배적 안정, 통합을 꾀하기 위함이었다니.....

 

 

 

국가의 기틀을 잡기 위해서 신라가 선택한 불교와 화랑도는 삼국통일에 도움을 준 듯하다.

 

 

 

김유신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신라군 총대장이 되어 계백장군이 거느린 백제군을 황

 

산벌에서 만난다.

 

계백은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전장에 나왔기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었다. 패색이 짙던 신라진영

 

에 김유신은 귀족의 자제들인 화랑들을 출동시킨다. 결국 계백의 군사들을 무찌르고 백제를 멸망

 

시키는 신라군사들.....

 

 

문무왕 8년(668) 고구려를 공략할 때도 신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삼국의 영토

 

에 야심을 드러내던 당나라 군사도 물리치면서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게 된다.

 

 

결국 김유신은 문무왕으로부터 태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신라 최고의 관직을 받고 흥덕왕 때는

 

흥무대왕으로 봉해지기도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사돈이 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김유신과 친밀하게 지내던 김춘추가 공을 차며 놀다가 김유신이 일부러 김춘추의 옷끈을 밟아 떼

 

어버린다. 그리고 동생 문희에게 옷끈을 달아 주게 한다.

 

 

그러다 문희가 결혼도 하기 전 김춘추의 아이를 갖게 된다. 김유신은 선덕 여왕이 남산에 놀러 나

 

오는 날, 문희를 화형 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광경을 보게 된 선덕 여왕은 김춘추의 소행임을 알

 

고, 문희를 살려내 김춘추와 혼인을 하도록 명한다.

 

 

신라 토착 세력들의 배타성을 넘어서 가야출신 가문의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심초사했던 김유

 

신은 동생 문희를 김춘추와 혼인시켜 왕족 가문과의 결합을 지혜롭게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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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확장해가고 국가의 기틀을 잡으려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라가 불국토가 된 이야기를 읽으며 신앙으로 단합시키고 왕권 유지를 위해 불교신앙을 받아들이는 지배자들의 속성을 보게 된다.

화랑에, 세속오계까지 윤리적으로 뭉치게 해 놓았던 신라는 덕분에 영토를 확장하면서도 안정적인 기틀을 잡아 간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중심에 있었던 김유신.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지닌 지도자의 용맹과 지혜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음을 보며 인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화랑정신으로, 불교정신으로, 가문에 대한 책임감, 나라에 대한 충성심, 여인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살았던 한 시대의 영웅 김유신.

 

 

 

김유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개인문제나 신라에 국한하지 않고 삼국시대의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1500년 전의 신라 경주, 한반도 전체, 동아시아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새로운 스타일의 성인을 위한 위인전이다. 다양한 자료들을 고찰해서인지 김유신 연구서 같기도 하다.

예전에 알던 김유신이 전혀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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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7-15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으로만 알던 김유신을 새롭게 알게 해준 책. 역사책이 재미있는 이유를 알게 해준 책. 이야기에서만 끝나지 않고 교훈과 깨달음을 얻게 해 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