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역사 신문 5 - 근대와 현대 : 19세기 중반부터 현대까지 통 역사 신문 시리즈 5
김상훈 지음, 조금희.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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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역사 신문/김상훈/조금희/김정진/꿈결]한국사와 세계사를 한 눈에 보는 통합 역사신문, 우와~ 참신해^^!

 

우와!^^ 역사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신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해서 공부하는 신문 형식의 통합 역사책이다.

<통 역사 신문> 의 5번째 이야기는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옛 이야기다. 19세기 중반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사에는 조선의 강제 개항, 열강의 팽창, 경술국치,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과 파시즘, 제2차 세계대전, 한국 광복 특집, 냉전, 중동전쟁, 냉전 해체, 경제블록, 테러와의 전쟁, 인류의 미래까지 담겨 있다.

 

각 호마다 헤드라인, 국제, 정치, 사회, 문화, 엔터테인먼트까지 18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재밌는 통역사 퍼즐, 특집호, 역사 가상 광고까지 진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그 날의 신문을 펼쳐든 기분이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랄까.

 

1865년~1880년을 다룬 45호의 헤드라인은 <조선 강제 개항>이다. 슬프고 아픈 통한의 시절이기에 가슴 졸이며 읽게 된다. 1866년부터 프랑스와 미국, 일본을 격퇴하면서 척화비를 세웠지만, 1876년 일본에 굴복하며 강화도 조약을 맺고 말았다.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라고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민족주의 바람이 불었다. 민족주의가 맹목적으로 진화되면서 유럽과 일본에 제국주의를 확산시켰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외치며 오스만 제국을 침공했고,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격퇴했고, 드디어 1871년 독일 제국을 건설 했다. 러시아에선 사회주의가 고조되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엔 일본의 근대 개혁인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사실이 단연코 눈에 띈다.

 

'아시아 개혁 열풍 특집'코너에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초스피드로 근대화되는 모습, 서구 열강 따라잡기 위해 유학을 보내고 학교를 세우고 산업을 일으킨다는 기사가 있다. 일본이 근대화를 하고 세력을 넓히고 국토를 넓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기사들이다.

'정치면'에는 조선과 흥성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끄는 기사, 당백전 발행과 척화비 건립, 대원군 실각에 대한 사실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역사 광고에는 '캐나다 탄생 공고!'라는 제목으로 캐나다가 영국에서 독립함을 알리고 있다.

'경제면'에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고, 미국 대륙 횡단 철도 완공,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등 발명과 축음기 발명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띈다.

'문화'면에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신작 소개, 마르크스의 <자본론>출간 등이 기사화 되어 있다.

통 역사 가로세로 퍼즐, 사설, 전문가 칼럼, 전면 광고 , 역사 연표까지 18면에 담겨 있다.

제 46호부터는 조선의 근대화, 대한제국 선포, 일본의 약탈이 더욱 거세지고 세계적으로 식민지 확산이 되는 기사들이다. 뼈아픈 이야기들이다.

 

통통통 기자가 전하는 뉴스를 읽고 있으니 진짜 신문처럼, 읽는 맛이 있다. 흥미진진하고 새롭다. 격동의 그 시절 역사, 옛 사람들의 일상이 현장감 있게 느껴진다고 할까. 시간여행을 하며 역사를 껶은 마음이다.

 

아이들이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엄~청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역사신문, 아이디어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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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 오늘을 위해 밝히는 역사의 진실
김태훈 지음 / 일상이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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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김태훈/일상이상]이순신의 두 얼굴

 

저자 김태훈은 10년 전에 이순신이라는 인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순신의 두 얼굴>을 펴냈다. <이순신의 두 얼굴>을 통해 객관적 입장, 날 것 그대로의 이순신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처한 상황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동서양의 해전사와 이순신의 해전을 비교하는 작업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세월이 흐름 지금, 그 당시에 미처 밝히지 못한 것들을 정리해서 개정증보판을 냈다. 다시 이순신 장군을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 <명량>도 봤고, 소설도 읽었다. 이젠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난중일기, 실록, 다른 기록들을 비교하며 이순신의 여러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하고, 무과시험에 합격하고, 전쟁을 치루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모두 보여준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장점과 단점까지도.

1591년 2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선조는 정읍 현감이던 이순신을 진도 군수로 발령했고, 진도에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라좌수사로 임명했다. 무려 7단계를 뛰어 오른 것이다. 사간원들은 종6품의 수령에서 정3품의 수군 최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적절치 않다며 선조에게 간언을 했다. 하지만 선조는 인재가 부족하다며 강한 의지로 이순신의 승진을 관철시켰다. 그 바탕에는 서애 류성룡의 천거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 불의에 굽히지 않는 성품을 보았던 류승룡이었기에 그를 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은 일본 정세에 왜 그리 무지했을까.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랫동안 노렸던 전쟁이었다. 그는 일본통일 전쟁을 이뤄내면서 명예롭고 훌륭한 과업을 이루고 싶었는데, 그 대상이 중국정벌이었다. 정명가도의 명분으로 명으로 가는 길을 조선에 터달라는 것이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통일 전쟁을 통해 정예화된 무사들이 실직 상태였고 신식무기인 조총까지 있었다. 토요토미는 전쟁의 승리를 자신했으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전쟁이었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기를 바랐다.

조선통신사는 무엇을 했을까.

조선은 그의 끈질긴 요청으로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보낼 때, 일본의 전쟁 야욕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통신사로 간 황윤길(서인)은 일본의 침략이 감지된다고 보고했고, 김성일(동인)은 그런 낌새가 없다고 보고했다. 결국 집권세력인 동인이었던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 들여졌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모두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에 휩싸여 있던 정치권, 집단 이기주의에 휩쓸린 집권층의 작태를 보면 어쩜 지금과 그리 유사할까.

 

일본 통일의 기세를 모아 중국 정복의 원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을 알아 본 쓰시마 도주 다치바나 야스히로. 그는 일본의 야욕을 알았고 전쟁을 막으려고 조선에 알렸지만 조선은 무시했다는 <징비록>의 기록이 있다.

730여쪽에 이르는 책에서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실패한 장문포전투도 밝히고 있다. 장문포전투는 적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조선 수군이 심각한 전력 손실을 입은 전투라고 한다. 심지어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문포전투 보고서가 진실과 들어맞지 않아 조정에 압송될 뻔했고 선조가 이를 막은 사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사실과 다르게 적혀 있다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다.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를 그만두겠다고 사임을 원했을 때 내부의 적인 경상우수사 원균을 제거하기 위한 극단의 조처였다고 한다. 이에 조정은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출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고 한다.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해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되었다는 이야기는 <선조실록>을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명량해전이 대승을 거둔 해전은 맞지만 그 승리가 일본 육군의 퇴각을 초래했다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조선의 조정은 일본 육군의 퇴각 사실을 9월 14일에 이미 접하고 있었고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에 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상황,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해전들, 역사적인 세계 해전들, 잘못 해석한 역사들 사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역사적 기록이 모두 진실일까, 역사적 해석에 오류는 없는 걸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대단한 장군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아직도 초록 표지의 그 책이 기억이 난다. 그땐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못했던 탓에 그저 위대한 장군,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절의 국가적 상황을 알게 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존재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어느 것 하나 이순신에게 유리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해석에 소소한 오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충정과 용감무쌍은 대단한 것 같다. 생각할수록 든든한 우리의 선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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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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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이덕일/김영사]예나 지금이나 通하는 義는 같다!

 

넓이와 깊이를 두루 갖춘 역사학자, 이 시대 최고의 문제적 작가 중 한 명,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역사 작가, 굴절된 역사관을 정확한 근거와 사료를 바탕으로 바로 잡는 역사학자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덕일.

역사학자인 이덕일이 역사적 순간에서 통찰한 지혜들을 뽑아냈다. 무려 1000개의 역사 이야기 속에서.

 

<사기> '삼왕세가'에 나오는 고금통의는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의 미래도 옛일에 비추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義는 원칙, 利는 편법을 뜻하기도 한다. (책에서)

 

어제의 가르침이 오늘에도 통하고, 지난날 선조들의 일깨움이 지금도 교훈으로 통한다. 요즘 화두가 되는 인물인 삼봉 정도전과 성웅 이순신에 끌리는 이유도 이들이 말하는 義가 지금도 通하기 때문일 것이다. 古今通義.

세상은 돌고 돈다. 돈이 돌고 돌듯 역사도 돌고 돈다. 그러니 온고지신의 지혜가 필요하리라. 고금통의의 통찰이 필요하리라.

 

몇 해 전 중국은 길림성 안도현 길가에 '당 발해국 조공도'라는 큰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실크 로드 옛길인 감숙성 안서현에 '설인귀 서경비'를 세웠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당 발해국 조공도'를 '당의 발해국 간첩도'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역사와 영토 뺏기에 나서고 있기에 우리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단순히 염탐하러 사신으로 왔던 길을 조공도라니, 서경비라니. 우리 영토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이 알고 있어야 할 우리 이야기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1998년 3월 일본 나라 현 아스카에 있는 기토라 고분 천장에서 천문도 벽화가 발견됐는데,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까지 남송 순우 7년에 만들어진 <순우 천문도>가 최고의 천문도였으나

그보다 5세기나 빠른 세계 최고 천문도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세계 최고 천문도가 고대 일본인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 못했다.

(중략)

면밀한 작업 끝에 기토라 고분 벽화는 일본 하늘의 별자리가 아니라

고구려 수도 평양 하늘의 별자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에서)

 

그 별자리가 고구려 평양의 별자리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국보 228호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덕분에 평양 별자리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역사책에서 많이 봤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구려 천문도 석각본의 인쇄본이 고려에 계승되었고, 조선 태조 이성계도 이를 구하여 석각본 제작을 명했다고 한다. 당시 천문도는 세상을 통치할 권한을 준 하늘의 뜻을 담은 것이었으니까.

 

7세기 고구려 평양의 별자리가 왜 일본고분에서 발견되었을까. 세계 최고의 천문도가 바다를 건너게 되었을까.

 

<일본서기>에는 백제 성왕 23년 역박사 고덕왕손을 일본에 보냈고,

무왕 3년에 관륵이 역본과 천문서를 가지고 일본에 갔다는 기록하는데,

백제 역시 천문학 강국이었다. (책에서)

 

백제의 선진 문물이 일본에 전해져서 고구려 평양의 별자리가 그려진 걸까. 아니면 고구려인이 직접 그린 걸까.

 

지금 1만 원권 지폐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다.

참고로 앞면에는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고 왕의 뒤에는 일봉오월도가 그려져 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도 많이 보던 그림이다. 자세히 보니 용비어천가 내용도 있다. 불휘기픈……. 방문살 무늬도 있다.

뒷면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배경에 깔려 있고 세종 때 만든 천문도구인 <혼천의>, 보현산 천문대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현대식 광학망원경도 있다.

 

역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익히고, 옛 별자리를 통해 지폐 속 역사와 과학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지폐를 이리 꼼꼼히 살피고 검색해 본 것도 첨이다. 모든 지폐에 예술, 문화, 과학이 들어 있다니.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군더더기 없으나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500쪽에 이르는 내용들, 모두 꼼꼼히 읽어야 할 우리의 역사다. 무심코 펼쳤다가 반해 버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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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든 사람들 - 일생에 한번은 역사에 미쳐라!
현경병 지음 / 무한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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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든 사람들/현경병/무한]대표 12인으로 풀어 본 중국사!

 

 

 

개인적으로 뜨는 중국에 대해 많이, 아주 깊이 알고 싶다. 중국의 역사, 문화와 예술, 경제와 정치까지 두루두루 말이다.

이 책은 삼국지보다 빠르고 흥미진진하다는 중국 역사책이라는 말에 기대하며 읽었다. 오늘의 중국이 있기까지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사다. 지금의 중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공자.

공자의 언행과 일부 제자들의 언행을 담은 <논어>는 중국 고전 중에서도 최고의 위상을 갖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릴 적 습관이 중요한가 보다. 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일찍 여읜 공자는 예를 갖추어 어머니를 아버지 옆에 묻고 3년 상을 치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공물의 받침대 용기를 늘여놓으며 제사를 비롯한 의례놀이를 좋아했기 때문일까.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의례, 제도, 관습에 밝았다고 한다. 14세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6예(의례, 음악, 활쏘기, 말 타기, 글쓰기, 수학)를 배우기도 했지만 평생 스스로 익히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방대한 공부와 독서가 그의 지혜를 밝게 했으리라. 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자신의 듯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찾았지만 공자를 기용한 이는 노 정공이었다.

공자가 노나라의 대사구가 되어 재상을 맡게 되자 상인들은 물건 값을 속이지 않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는 이가 없었으며, 여행을 가도 관리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3환씨(계손씨, 숙손씨, 맹손씨)의 등장으로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주유방랑의 시절을 보냈다.

 

공자에게도 단점은 있었겠지만 그의 업적은 유학을 창시하고 정립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 전파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현으로 추앙받고 있을 정도다.

 

 

진시황.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를 거친 중국은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져 있었다.

군웅할거와 약육강식의 혼란기에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위인이 진시황이다. 진시황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여불위다. 여불위는 조나라에서 장사를 하던 중 자초를 알게 되고 자신의 재력과 지략을 활용해 진나라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애첩이던 조희를 자초에게 바쳐 영정(진시황)을 낳게 한다. 일부에서는 진시황이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설도 있던데……. 결국 진 효문 왕의 제위를 자초에게 물려받게 하는 모든 과정에 여불위의 재정과 지략이 쓰였던 것이다.

 

진시황의 업적은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했다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 지략과 카리스마가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거느리게 된 진시황은 이사를 재상으로 등용해 법가 사상을 실천해 간다.

 

그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잔인하게 백성을 다스렸고 분서갱유를 단행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최초로 문자통일, 최초로 화폐 통일, 최초로 도량형 통일, 최초로 수레바퀴 크기 통일, 최초로 도로 정비, 만리장성 축조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지금의 중국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진나라는 대초원 북방민족 서융이 지배층이어서 한때는 진나라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통일 중국의 출발을 한나라로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중국의 원형은 분명코 진시황의 중국통일과 최초의 제도들에 기인한 것이었다. 지금 중국의 영어 표기인 China, 라틴어 Cinic, 일본식 표현 지나(支那) 도 모두 진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분서갱유의 마지막 이야기가 놀랍다. 불로초와 서귀포의 이야기도 놀랍다.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하던 시절, 불로장생의 약초를 찾던 진시황에게 영약을 구해오겠다고 속이고 달아난 위인이 있었다. 방사였던 서복은 불로초를 찾아오겠다며 많은 재물과 수천 명의 선남선녀들을 데리고 제주도 남쪽 서귀포에 도착해서 살았다고 한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그렇게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복공원에는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었군. 서귀포, 서북공원이야기는 처음 접한다.

 

 

책에는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형성한 공자에서 출발해서 중국의 국가적 틀을 만든 진시황, 한족의 중국을 형성한 유방, 강대국으로 만들어버린 한 무제, 중국 리더십의 정수를 보여준 당태종,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 한족의 나라를 다시 세운 명의 주원장, 섬기는 리더십으로 청을 이끌어간 강희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건륭제, 현대 중국 건설의 모택동, 미국에 버금가는 중국을 만든 등소평까지 있다. 이 12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중국을 재조명하자는 책이다.

 

 

중국사에서 결정적인 인물이 12명 만 있을까. 하지만 이 12인 인물들을 살펴도 중국사에 대한 대략적인 흐름은 알 수 있진 않을까. 저자는 이들 대부분이 대체로 독서광,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을 더 강하게 하며 뜻을 이루었다는데…….

 

읽으면서 배움에 대한 열의, 자신에 대한 신뢰, 두뇌활용을 펼치는 지략적인 월등함, 큰 포부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고, 때로는 불타오를 정도로 열정 가득한 면이 예사롭지는 않다. 대표 인물 12인으로 보는 중국사다.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도 있고, 거대 중국을 이끌어 온 리더십을 훑어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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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현 2015-07-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국만사를 올려 정성스럽게 다루었음에 감사드리며 잘 활용하겠습니다.
 
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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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잔혹사]왕으로 선택된, 왕이 되길 원했던, 왕이 되지 못한 남자이야기!

 

처음부터 끌렸던 책이다. 조선 왕들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조각조각 꿰맬 수 있을 거라고 여겼으니까. 결론은 기대 이상!

평소 역사책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조선 왕권을 휘두르던 절대 권력자 왕들이 좀 더 현명하고 힘이 있었더라면 나약한 군주가 없지 않았을까.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좀 더 철저히 받았더라면 중심을 잡은 정치로 중신들과 백성들의 신뢰를 받았을 텐데...... 왕자들에게 왕위를 두고 경선을 붙였더라면 방황하는 왕권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

 

조선 시대 왕의 역사를 보면 혼돈과 불안의 역사다. 장자라고 해서 반드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왕이 된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왕이 되어도 온전히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고, 권문세가나 사대부의 휘둘림에 시달리기도 했다. 때로는 가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왕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선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 성군이 있었다는 것이 위로였다.

 

성군의 기준을 세운 임금, 세종.

 

역사의 모든 악업은 내가 짊어지고 간다. 주상은 성군의 이름을 만세에 남기라.-태종

 

4년 동안 아버지 이 방원(태종) 밑에서 정치를 익힌 세종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다. 조선의 모든 왕들이 세종과 같았더라면, 세종보다 더 훌륭했더라면…….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방대한 독서 습관을 가진 천재였다. 다른 왕족들이 무인의 피를 물려받아 사냥이나 격구 같은 운동을 즐긴 반면에 세종은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서도 꼼꼼히 읽었다. 아버지 태종이 장자이자 방탕아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녕대군(세종)을 세자에 앉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충녕대군의 뛰어난 학문과 어진 성품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의 안정적인 정치를 위해 외척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아준 것도 평소 절대왕권을 원했던 태종이었다. 야심가에 지략가였던 방원(태종)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왕이 되었기에 왕권강화의 필요를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처남들에게 사약을 내리고 세종의 장인인 심온에게도 역모의 죄를 덮어씌워 사약을 내렸다. 물론 심온의 아내와 딸들도 노비가 되었고 아들은 귀양을 보냈다.

 

그런 불행한 가족사를 딛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세종은 학문과 제도와 문화를 꽃피운 조선 최대의 왕이 된다. 세종에게 있어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집현전 설치라고 생각한다.

처음 집현전 설치를 건의한 사람은 태종의 심복이던 박은이었다. 학문을 사랑했던 세종은 집현전의 기능을 정치적 역할이 아닌 왕의 자문 역할, 정책 개발 연구에 두었다. 그리고 뛰어난 수재들을 집현전 학사로 뽑았다. 세종은 자신의 분신처럼 집현전을 관리하면서 조세·재정·형법·교통 들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재정비 했고 윤리·농업·지리·수학·약재 등 실용서적 등의 많은 책들도 편찬했다.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은 서운관(천문학 연구)을 설치했고 혼천의와 자격루도 만들었다. 박연을 등용해 아악을 정비하고......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한 처가 식구들을 위한 배려였을까. 세종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 노비 처우 개선법까지 신경을 썼다. 심지어 관비의 출산휴가를 100일로 연장하고 남편에게도 1개월의 출산 휴가를 내리는 것을 법제화 할 정도였다. 노비에게 혹형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노비를 죽인 주인을 처벌하는 등의 법도 만들었다.

 

공부는 좋아했지만 운동을 싫어했고, 고기를 좋아했지만 채소는 싫어했던 세종이었다. 그러니 비만, 풍질, 당뇨(소갈병), 시력 저하는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책을 좋아했다는데 운동 서적은 왜 없었을까. 세종은 몸이 나빠지면서 세자(문종)에게 정치를 맡겼고 자신은 훈민정음 창제에 몰입했다고 한다. 훈민정음 창제 후 3년 만에 정식으로 반포하게 되었다.

 

세종에게서 아쉬운 점은 세자교육이나 직계후손교육이 아니었을까. 그의 승하 후 병약한 첫째 아들(문종) 역시도 이른 죽음을 맞았다. 이후 어린 손자 단종이 즉위하자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왕(세조)가 되었으니. 아들과 손자들에게 후계자 교육, 제왕학 공부를 철저히 시켰더라도 수양대군의 야심을 꺾기는 힘들었을까. 애초에 몸이 약한 첫째보다 야심차고 총명한 둘째를 왕으로 세웠더라면, 피비린내로 고통을 받지는 않았을 것을…….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던 집현전 학자들의 죽음 이후 학문을 연구하던 집현전이 폐쇄되었다는 것은 정말 애통한 일이다.

이 책에는 평소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다뤘던 왕들이 나온다.

역사가 사랑한 성군의 두 얼굴의 성종, 총애를 담보로 정치를 펼친 군주 중종, 당쟁을 이용해 왕권을 누린 임금 선조, 미완으로 사라진 성군의 영혼 광해군, 가장 최악의 군주 인조, 예정된 비극이 만들어 낸 화려한 폐허 연산군, 숙종, 정조,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까지…….

 

이전의 책에서는 단편적인 조선 왕들의 비극만 알았다면 이 책에서는 총체적인 조선 왕들의 비극 사를 알 수 있었던 책이다. 출생과 왕위 계승의 배경, 문화 창조의 바탕을 알 수 있었던 책이다.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까지도 놓칠 수 없었던 책이다. 그런 왕들의 잔혹사가 있었기에 조선의 역사도 비참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예전에 몰랐던 이야기들, 단편적인 지식들을 맞추어 주는 이야기들, 조선의 역사가 그리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역사는 우연보다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왕이 바로서지 못한 나라, 왕권이 백성을 위해 실력 발휘를 못하는 나라, 세도가들이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지 않는 나라에는 불안과 파멸, 피비린내가 진동함을 깨칠 수 있는 책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조선 임금 잔혹사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정말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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