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500개 키워드로 익히는 역사상식
휴먼카인드 역사문화연구소 지음 / 휴먼카인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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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휴먼카인드]500개 역사키워드를 담은 역사상식~

 

역사란 민족의 흔적이고 선조들의 자취다. 그러니 역사를 모른다면 나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상을 알고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역사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볼 수 있기에 나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공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이 스토리로 배우는 것이리라. 역사 동화, 역사 소설을 읽다보면 감정이입이 쉬워 흥미 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백과사전식의 역사공부는 간단하고 빠르게 익히는 방법일 것이다. 백과사전이나 용어사전은 색인이 되어 있기에 빠르게 찾아 간단하게나마 익힐 수 있으니까.

 

 

한국사에서 역사 키워드 500개를 뽑아 사전식으로 구성한 역사상식 책을 만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발해의 정당성.

발해에서 선조성과 중대성을 거느리면서 국왕의 정령(정치상의 법도와 규칙, 정치상의 명령)을 집행하였던 관청이다.

발해의 중앙 정치 조직은 당의 36부를 본떴으나 명칭과 운영방식은 독자적이었다. 왕 밑에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의 3성을 두었고 정당성이 중심이 되어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52)

 

고조선의 맥을 잇는 발해의 역사이기에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요동과 만주 일대에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적 유물이 많다고 들었다. 거대한 땅덩어리로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발해의 유적들,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발해유적을 발굴할수록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도 높일 수 있을 텐데…….

 

 

통일신라 727년 왕오천축국전.

혜초가 고대인도 오천축국을 답사하고 쓴 여행기.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 사상이 발달하면서 도당 승려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기행하며 직접 보고 들은 풍물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64)

    

부처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신라는 불교의 기운이 강했던 나라다. 그런 불법을 더 잘 알기 위해서 당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인도까지 여행할 정도였다니, 참으로 진취적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목숨을 걸고 가지 않았을까.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책을 보면서 좀 더 많은 설명이 되어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되어 있기에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관련 자료에 대한 사진까지 원한다면 욕심이려나......

  

어쨌든 간단하게 정리된 역사용어 사전이다. 519쪽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역사 상식 책이다. 각 쪽마다 하나의 용어에 대한 의미와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때로는 세계사와 비교한 간단 설명도 있다.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키워드 500개를 시대 순으로 담았다. 적을 수도 있지만 처음 역사를 배우려는 이들에겐 유익하지 않을까. 더구나 청소년들이 어려운 역사용어를 접했을 때 쉽게 찾아 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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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독한자들 전성시대 - 세상을 주무른 영리한 계략
쉬후이 지음, 이기흥.신종욱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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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독한 자들 전성시대]세상을 주무른 영악한 자들의 수법들, ~

 

 

중국은 넓은 땅, 거대한 인구만큼이나 지도자도 많다. 알려진 인물들도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 악독한 자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뻔뻔하고 사악한 간신들은 또 얼마나 지독했을까.

 

이 책은 중국을 쥐락펴락했던 지도자 중에서 사악한 이들만 골라 쓴 것이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읽으니 비린내가 진동한다. 모르는 이름들이 많지만, 속이 불편할 정도로 사악한 이들이다.

 

가장 시선을 끈 대목은 자식마저 요리로 바쳐 권력을 얻은 역아(易牙)이다.

 

역아는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당대 최고의 요리사, 환공의 전용 요리사였다. 물맛까지 구별해내는 신의 혀를 가진 요리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욕심이 많은 간신배였다.

 

당대의 제일가는 요리사라는 타이틀이 독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커다란 욕심이 내재되었던 걸까.

춘추시대였기에 나랏일에 시달려온 환공은 늘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역아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환공의 불면증은 치유된다. 그리고 역아는 환공의 총애를 얻게 된다.

음식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걸까. 불면증을 치료한 환공은 매일 올라오는 다른 음식들의 맛에 길들였던 걸까. 환공은 늘 새롭고 기이한 음식을 맛보면서도 사람고기가 멋있다는 말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역아는 즉시 자신의 아들을 삶아 환공에게 바치게 된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이 더함을 안 환공은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다. 이로 인해 역아는 환공의 총애를 더욱 받게 된다.

 

하지만 명재상 관중이 죽기 전, 환공에게 올린 충언은 역아를 조심하라는 거였다. 관중은 자식을 요리한 역아, 스스로 자신을 거세해 환공을 섬긴 수초, 위나라의 태자 자리도 마다하고 제나라로 온 개방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라고 충언한다. 중부(작은 아버지)로 부르며 존경하던 관중이었기에 그의 유언대로 환공은 자신이 아끼던 세 사람을 내쫓는다. 하지만 환공의 불면증이 도지고 입맛을 잃게 되면서 다시 세 사람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후 환공의 병이 깊어지자 세 사람은 반란을 일으켰고, 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재상인 관중의 죽음 후 권력욕에 사로잡혀 환공을 배신했던 역아는 개방, 수초와 함께 권력을 장악한 뒤 나라를 어지럽혔다고 한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아들을 삶아 바치다니. 남은 자식들이 얼마나 벌벌 떨었을까, 자식을 팔아버리는 미친 권력욕에 아연실색할 정도다. 제정신인가. 관중의 말대로 자식을 아끼는 것,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역아와 관련된 성어로는 옹무변미, 역아팽자가 있다고 한다. 雍巫辨味는 역아(옹무는 역아의 다른 이름)를 요리사의 선조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준 말이고 易牙烹子는 직계친족을 제물로 바쳤다(역아가 아들을 삶았다.)는 말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공권력을 이용해 대부호가 된 석숭, 형제를 독살하고 황제가 된 조광의, 미녀를 위해 나라와 친족을 버린 무신, 잔인한 고문으로 세상을 뒤흔든 삭원례, 살인을 놀이로 여긴 폭군 고양, 황제를 대신해 공포정치를 펼친 유근, 속임수와 책략의 대가 가사도, 조서를 위조해 황제를 바꾼 조고, 황제를 농락해 공주까지 얻은 난대, 딸을 황후로 만들어 권력욕을 채운 곽씨, 출신을 속이고 세금까지 휩쓸어 간 유황후, 자식마저 요리로 바쳐 권력을 얻은 역아, 재상을 향한 야망에 인륜을 저버린 오기 등 13명의 악한 중국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인물 이야기 뒤에는 역사 속의 뻔뻔하고 독한 자 이야기도 있고, 역사서의 기록들도 추가되어 있다.

 

밤을 삼킨 별이 지상을 비추듯

악을 삼킨 선이 세상을 이끈다. (255)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밀고, 대단한 살기, 무섭기까지 한 교태 등의 바탕에는 권력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권력이 뭐기에....악행으로 얻은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법인데…….

비릿한 피 냄새에 속이 거북해진다.

 

중국 역사에서 등장하는 뻔뻔하고 독한 자들의 이야기는 사료를 참조하여 내용을 서술했고 날카로운 해석과 역사 자료들이 들어 있기에 스토리텔링 형 인물사다. 소설처럼 읽히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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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 인간사랑 중국사 3
쑨리췬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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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쑨리췬/인간사랑] 중국 고대 선비들을 통해 선비정신을 보다~

 

 

선비라면 예와 문을 두루 사랑하고, 명분과 이념을 강조하며 절제력 있는 옛 지식층을 말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선비정신이라는 말에는 다분히 긍정적인 평가가 들어있다.

중국 고대 선비들과 조선의 선비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학을 국가의 기본으로 하던 조선이었으니까.

 

선비에 대한 호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선비는 어떤 사람들일까. 선비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를 출판사로부터 선물로 받으면서 많은 궁금증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역사를 좋아하기에 기대 가득해서 펼쳤던 책이다. 역시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 648쪽에 이르는 책 속에 여태 접하지 못했던 중국 선비들의 이야기가 세밀화처럼 자세하고 풍부하게 나와 있었다. 읽으면서 내내 책을 보내주신 분께 감사하며 읽었다.

 

선비()는 어떤 사람들일까.

원래는 귀족 부녀자도 선비라고 함께 칭할 수 있었지만 선진시기에는 젊은 남자를 가리키기도 했다고 한다.

상과 주 시대에는 무장한 병사나 각급 귀족에 대한 통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선비들은 지식과 기능을 두루 갖췄지만 엄격한 신분등급제였기에 실력을 펼칠 수 없었다.

 

치열한 변혁의 시대인 춘추전국 시대에 오면서 국가적으로 지식과 지략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선비는 자유로운 신분, 예우를 받는 신분이 되었다. 선비들은 점차 자신만의 정치적 주장을 펼치면서도 도의를 지키는 지식층으로 인식이 되었다. 각자 개성이 뚜렷했던 선비들은 유가, 묵가, 법가, 음양학, 명가, 병가 등 수많은 유파를 이루면서 서론 논쟁하는 백가쟁명의 시대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선비들은 정치, 경제, 문화, 문학가, 사상가 등 각 분야로 진출하면서 중국의 사상과 문화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대부분은 권력이나 물질에 혹하지 않았다. 책이 아주 귀했던 기원전이었는데도 학문과 사상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선비들의 경쟁도 작용했으리라.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선비()는 독립된 계급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지식인에 대한 일종의 호칭으로 儒生이나 文人을 일컫게 된다. 선비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문화전파와 사회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무엇보다도 지식과 정의라는 부분에서는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은 선비의 의미가 유학자이자 문관이고 시인의 품격을 갖춘 지식인 정도라고 항 수 있다.

 

중국 고대 선비의 품격은 어땠을까.

선비들은 역사에 대한 강한 사명감과 우환의식을 지녔기에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했다.

이들의 청렴한 생활, 공정한 법 집행, 깨끗한 관리, 사회에 대한 책임감, 위기에 대처하는 용감한 헌신 등은 사회 질서 유지의 버팀목이 되었다.

 

선비들의 이상형은 각 유파마다 차이가 있다.

유가의 이상적인 인격은 군자나 성인의 경지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가치로 여겼기에 정치적인 인격에 오르는 것이었다. 도가의 이상적인 인격은 자연주의다.

 

선비들에게 있어서 독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매일 독서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끌렸던 부분이다.

선비들의 독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로 확장되었고,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전기가 없었던 시절, 선비들은 어떻게 책을 읽었을까.

옛 이야기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인데.

광형은 벽에 구멍을 뚫어 이웃집의 불빛을 빌어 책을 읽었고, 손강은 가난하여 눈빛에 비추어 독서를 했고, 차윤은 반딧불을 주머니에 모아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니.

소진은 잠을 쫓기 위해 송곳으로 자기 넓적다리를 찔렀고, 손경은 잠을 쫓으려 자기 머리와 들보를 끈으로 연결해 책을 읽었다니, 정말 대단한 독서열이다.

독서의 공리적인 측면, 출세의 도구, 인격 수양의 도구임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독서야말로 만 배의 이익을 주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아침에 땔감을 해주고 남의 책을 빌려보는 정신자세, 책을 베껴서라도 소장하고 싶었던 선비들의 이야기는 책이 풍부한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당대의 대문학가 한유는 그의 손에서 책이 떠난 순간이 평생 한 번도 없었다니. 선비들의 삶에서 독서는 일상의 중요한 일부였다.

책을 읽고, 책을 모으고, 책을 베끼는 삶, 평생을 부지런히 익히고 배웠던 선비들의 이야기 속에서 형설지공과 남아수독 오거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야를 넓혀주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는 독서에 대한 옛 이야기들이 독서의 소중함을 새삼 깨치게 된다. 책 좋아하는 버릇, 나도 고칠 이유가 없음을 새삼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다.

 

위진 시대 선비들의 삶의 특징에는 특별히 노장사상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역사책에서 배웠는데. 선비들이 정치투쟁의 희생양이 되자,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풍조가 성행이었던 시절이었는데.

위진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기에 이 시대의 선비들은 세속에 구애됨이 없이 대범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고, 자아의식이 강해 삶과 죽음에 대한 각성이 뚜렷했으며, 심지어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약을 먹고 술을 흠뻑 마시는 풍조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세상을 피해 살아야 했던 선비들의 안타까움을 볼 수 있었던 시대다.

 

책 속에는 선비들의 과거시험 풍경, 과장의 풍경들, 선비의 수수한 복식, , 고기, 생선, 만두, , , , 채소 등 음식과 관련된 일화들, 주거생활, 자연을 본뜬 개인용 원림, 산천유람의 취미, 선비들의 회합과 결사, 선비와 금기서화, 제 뜻과 제멋에 살고자 했던 독특한 위진 시대 선비들의 생활 등 풍부한 사례들이 즐비하다. 다른 책에서 소소하게 접했던 선비들의 삶이 총정리되는 기분이랄까.

 

선비들의 높은 지식수준, 꾸준한 독서, 나름의 취미생활, 고집스런 주관, 솔직하고 호방한 성격, 멋과 품위를 중시하는 가치관, 개성과 다양성, 문과 예가 함께하며 자연을 즐기는 풍류, 고상함과 운치, 지식과 오락, 음악을 함께 즐기는 금기서화(琴棋書畵), 강렬한 사회참여의식, 사회적인 책임감 등에 대한 일화들을 접한 책이다.

 

사회적 풍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선비들의 삶에는 책과 문화, 높은 정신력, 이상과 가치가 함께 함을 알게 된 책이다. 세속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는 적극성도 있고, 세속에 초연하기도 했던 선비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선비정신을 다시 정리해보게 된다.

 

 

지식을 생활 속에 녹이고자 했던 옛 선비들, 정치가, 사상가, 문학가, 군사전략가가 되어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했던 선비들의 실천력과 과감한 행동력을 접하면서 안다는 것은 실천하는 것임을 새삼 되새기게 된 책이다.

기대 이상의 내용들이기에 소중하게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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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사 살림지식총서 495
이희진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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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사/이희진/살림]누가 전쟁을 일으켰을까.

 

 

한국전쟁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경제부흥과 보수 체제의 안정을 이루며 강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국제 정치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도 대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후, 미국이 군사력을 더욱 키우게 되는 발판을 마련해줬고 그로인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사실도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미국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배경에도 전쟁과 원조의 힘이 있었다.

전쟁의 결과와 그 힘을 예측했는지 모르지만 전쟁이 가져다준 결과에는 주변국들에게 포상 같은 정치적인 힘과 경제력의 부가 있었다.

   

 

한국전쟁사.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은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때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한국전쟁이 남침설이냐 북침설이냐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은 것 같다. 6.25전쟁의 책임론에는 미국의 남침유도론, 한국 내부의 분열이 원인, 북침설 등이 있다는데, 역사적 사실들은 어떨까.

한국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고, 전쟁은 왜 일어나게 된 걸까. 누가 전쟁을 일으켰을까.

 

광복이후 한반도에서는 194599일 하지 중장이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로부터 항복문서를 접수하면서 군정의 첫 걸음을 떼고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이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항복 이전에 아베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여운형에게 한국의 통치권을 넘겼고,

여운형은 조선건국위원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전후처리 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가 수차례 결렬되면서 남북한 별개의 정부가 각각 세워지기에 이른다.

남한은 1948510일 단독 선거 이후 단독정부가 출범되었고, 북한은 인민회의 선거를 통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하게 된다.

북한은 19482월 인민군을 창설하게 되면서 같은 해 12월 북한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을 철수하게 된다. 남한은 194910월 주한 미군을 철수하게 된다. 194910월 중국은 공산화되면서 나름의 소용돌이를 겪게 된다.

 

한국전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김일성은 1949년 스탈린을 만나 남침계획을 논의하면서 겉으로는 평화적 제스처를, 속으로는 남침을 통한 통일을 꿈꾸게 된다. 심지어 194910월 북한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힘으로 통일을 이룰 권리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

 

북한이 내부조직을 정돈하며 전쟁을 준비한 것과는 달리 남한은 정부 수립 이후의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더구나 전쟁 직전의 남북한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북한이 압도적인 우세였다. 전쟁을 치른다면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할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의 군사전력은 국군에 비해 월등했던 이유에는 소련의 군사원조가 있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이 남긴 소련제 전차, 자주포를 갖춘 기갑부대, 장비와 무기를 잘 갖춘 보병까지 잘 갖추고 있었다. 전방에 135,000명 병력에, 후방에 10만 명 예비대까지 배치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남한에 대한 군사원조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기본적인 원조 수준이었다, 19494월 한국은 약 10만의 병력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전차도 없고 무기도 질적 양적으로 열세였다.

미국은 고문단만 남기고 미군은 철수했고,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거시킨다는 에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까지 발표했다.

 

한국전쟁 직전 북한은 북한의 비밀스런 남침 대비 움직임들은 어땠을까.

북한은 38도선 인접 지역의 주민들을 분산이동하고 군사용 도로 건설을 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북한의 전면공격의 분위기가 감지되었지만 미국 정보참모부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육군본부 상황실에서는 624일 전후로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긴급회합을 가졌지만 국군은 비상경계령을 해제할 정도였다. 더구나 병사들은 휴가 나가고, 24일 밤늦게까지 육군회관 장교클럽 준공 파티로 각급 부대 지휘관은 밤늦도록 연회를 벌이는 등 군대 내부적으로 느슨해진 상황이었다.

드디어 몇 시간 뒤 625일 북한은 서울의 괴뢰 정부군이 반역적인 침략을 해와 어쩔 수 없이 반격한다.’는 방송과 함께 남침을 하게 된다. 준비가 안 된 육군은 낙관적인 전망만 하면서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울을 고수하고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겠다던 채병덕 육군총장의 말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27일 정부의 이동을 지시하고 한강 다리 폭파를 준비하면서도 라디오 방송에서는 난관적인 방송만 했다고 한다.

피난하고 있는 시민,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 철수하지 못한 군인들을 두고 갑자기 한강 다리를 폭파한 것이다. 그로인해 많은 무기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남한은 국군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명령체계 남발, 북한 전차에 육탄공격까지 명령하는 무계획성 등으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수도권을 내주게 된다.

한편, 북한의 전면적인 남침을 보고 받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소삭을 받자마자 미국의 개입을 결정했다. 지켜줄 전략적 가치가 없다던 한국에 미국이 적극 개입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는 북한의 철저한 남침계획과 무너지는 남한에 있지 않았을까.

미국은 이미 타의에 의해 시작된 한국전을 신속히 끝내고 다른 지역에 대한 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는데......

 

미국은 먼저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나섰고 일본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를 한국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군의 병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면서 대규모의 병력 지원을 하게 된다. 결국 긴급 유엔보장이사회를 열어 북한의 침략에 대한 규탄을 하게 되고, 소련의 방해 등 우여곡절 끝에 38선 철수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게 한다. 그리고 유엔 차원의 병력 파견이 이뤄진 것이다.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 다부동 전투에서 치열한 접전을 하며 낙동강 이남을 지켜내게 된다. 그리고 19509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기에 이른다. 아무도 예상 못한 지역을 통해 북한군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후 공산군 포로가 다수 발생하지만 공산군의 나머지 병력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남한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미군을 중심으로 유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곧 통일이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우리 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책에서는 전쟁 발발, 속수무책의 패전,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개입, 역전의 발판이 된 인천상륙작전, 38선 돌파와 맥아더의 북진작전, 중공군의 개입, 패배와 재역전, 크리스마스 공세, 중공군의 반격, 유엔군의 위기, 유엔군의 반격, 서울 재탈환, 맥아더 해임, 공산군의 마지막 대공세 등의 내용들로 이어진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남한의 군에서는 명령 체계의 혼선과 실책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그러니 춘천-홍천 지역에서의 남한의 선전과 북한 측 작전의 차질은 돋보일 밖에.

 

남북분단과 그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을 가져오게 된 한국전쟁의 이야기, 강대국의 이해논리에 좌우되던 한반도의 현실 등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해방이 되면서 어수선했던 분위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힘없는 나라의 백성, 가난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야했던 조상들의 처절했던 생존투쟁들을 보며 조상들의 울분이 느껴진다.

 

한국전쟁이후 한반도는 많은 도로와 다리가 폭파되고 공장과 학교, 서민들의 삶이 무너졌다. 세계 최대빈국으로 전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남과 북의 감정적인 소모, 이념대립, 선량한 양민들의 학살과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보며 그로기 상태를 느꼈을 그 시절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족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리는 역사를 보면서 새삼 그 시대를 버텨온 어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한국전쟁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역사다. 제국주의 밑에서 식민지를 경험하고 연이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전쟁을 겪었기에 자존감마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보며 조상들의 아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던 우리의 어른들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지금도 휴전 중인 국가인 슬픈 현실을 보며 통일을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는 게 가능할까. 언제쯤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고 자력의 통일을 이루게 될까.

 

전쟁은 그저 한판승부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이에게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유산으로 남긴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전쟁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처투성이의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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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 2014-09-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사란 연혁표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이해...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시에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나 근대사의 가르침에 그런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듯.
 
김구 청문회 1 - 독립운동가 김구의 정직한 이력서
김상구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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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청문회/김상구/매직하우스]김구,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이다!?

 

 

 

한국인이라면 대개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를 존경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김구가 쓴 <백범일지>가 허구투성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친일파 문인 춘원 이광수가 <백범일지>를 윤문 각색했고 절대 성역의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2권으로 이뤄진 책에는 김구에 대한 진실, 김구에 대해 잘 못 알려진 사실들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1부에서는 김구의 정직한 이력서를 부제로 하고, 2부에서는 김구는 통일의 화신인가를 주제로 한다.

 

 

 

 

 

 

김창수(김구의 옛 이름)는 팔봉접주였나?

김창수는 19세에 동학의 정식 접주가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팔봉이란 접명을 지었다. 동학의 접주 자격은 포교 인원이 105명 이상인 사람에게 준 자격인데, 천도교의 자료에는 19세 접주인 김창수가 없다고 한다.

 

 

해주성 전투에서의 김창수의 활약은 사실인가.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해주성 전투 일화는 다른 사료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범의 아들 김신조차 아버지의 동학 참여 사실에 대해서 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는데......

 

 

스무 살 무렵 민비 살해범으로 추정되는 일본육군 장교 쓰치다를 살해 한 치하포 사건은 김구의 첫 무용담이다. 그는 일본 군인을 죽이고 '국모보수'라 했지만 쓰치다는 평범한 상인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김창수는 감옥에 가게 된다.

 

 

책 속에는 <백범일지>를 속속들이 따지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고종은 전화통화로 김구를 정말 사면했나. 3·1운동 당시 각종 선언서에서 김구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이유, 이봉창 의거의 진실, 윤봉길 의거에 오랫동안 도움을 준 이유필의 활약을 <백범일지>에서 언급하지 않는 이유, 수백 명 광복군이 20만 광복군으로 둔갑한 사연, 미군정의 악법과 악정에 대해 김구는 어떻게 반응했나, 김구는 왜 남북연석회의를 선택했나, 김구의 며느리 안미생은 왜 조국을 떠났을까, 안두희는 김구 부하였다, 엄항섭의 김구 우상화 작업, 백범일지는 이광수가 윤문했다, 김구를 키운 것은 박정희였다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백범 김구의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윤색이 되었다니, 처음 접하는 이야기다. 더구나 <백범일지>를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가 각색하면서 색깔을 바꿔버렸다니, 황당한 일이다.

 

2권의 책, 860여 쪽에 이르는 글 속에는 이전에 알고 있던 김구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책의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백범일지> 의 오류가 엄청나게 많다면 김구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구가 임정의 마지막 주석으로 독립을 위해 애쓴 것은 맞지만 진실은 바로잡아야 하니까. 만약 <백범일지>의 과장을 통해 선전도구로 이용했다면 그것 또한 진실을 밝혀야 하리라. 방대한 부분의 오류가 사실이라면 토론과 공청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과거사에 오류는 있을 수 있기에 바로잡는 것은 신중함과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할 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김상구다.

저자는 우리가 알던 김구를 다시 재조명하고자 <김구청문회>를 썼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행위를 비판함에 앞서 기독교의 본질인 도그마와 교조인 예수를 비판하는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유관순, 한경직, 주기철, 손양원 등 선교영웅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했다. 역사왜곡으로 뒤틀린 임시정부정통론을 부정하는 작업으로 <범재 김규홍과 3·1혁명>을 썼다.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행적>, <미 제국의 두 기둥, 전쟁과 기독교>,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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