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반격 다산어린이문학
엠마 캐롤 지음, 로렌 차일드 그림, 노지양 옮김 / 다산어린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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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있는 한 소녀는 '성냥팔이 소녀' 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눈빛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제목도 그런 점을 강렬하게 시사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이라 하니 말이다. 어떤 반격일까.

일단 우리가 아는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 슬픔, 불쌍함의 대명사다. 소녀는 추운 겨울 밤, 성냥을 거의 팔지 못해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밤길에 남아있다. 소녀가 창문으로 넘겨다본 가정의 모습은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락한 곳이지만, 지금 소녀는 춥고 배고프고 외롭다. 소녀는 팔던 성냥으로 잠시의 작은 불이나마 켜본다. 성냥불이 보여주는 환영에서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소녀도 사랑받았었던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녀는 그렇게 밤길에서 할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이 동화의 의도도 당시 성냥 관련 종사자들, 특히 아동노동의 실상과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거나 한탄한 것일수도 있지만, 시대 배경을 모르고 읽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너무 가련하고 불쌍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책은 그 동화를 실화와 결합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쓴 이야기다. 그 실화란 19세기 후반 영국의 '브라이언트 앤 메이' 성냥 공장의 파업 사건을 말한다. (이 동화를 읽고서야 그 사건을 알게됨....)

하지만 실화기반이라고 해서 다큐처럼 쓰여진 건 아니고, 동화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고, 적당히 환상성도 들어있다. 그건 '성냥개비의 마법'이었다. 이 마법은 주인공 브리디(성냥팔이 소녀)가 간절히 원하던 순간으로 브리디를 인도했지만, 원작에서처럼 슬픈 환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브리디를 굳세게 해주었다고 할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었다고 할까.

내가 잘 몰랐던 성냥 공장의 실화... 그건 끔찍한 근무 환경에서의 엄청난 착취였다. 근무시간은 살인적이었고 유해물질(성냥머리의 원료였던 백린)은 근무자들의 신체에 치명적인 이상을 일으켰다.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건, 그 한푼이라도 벌지 못하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기에.... 왜 세계 어느 곳에든 이런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많은 사례들이 있었지.

결국 연대하고 맞섰기에 그들은 바꿔낼 수 있었다. 엄청난 걸 요구한 것도 아니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환경, 적절한 근무시간, 현실적인 임금 정도였다. 그것도 인간의 선의에 기대해서는 절대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압박해야만 얻어낼 수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 브리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애니의 기고가 언론을 움직였다.

인간 세상이라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살려면 싸워야 된다니.... 싸우지 못해 착취로 즙짜여진 인생, 싸우다 못당해서 죽어간 인생.... 그런 피로 다져진 바닥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 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혹자는 인간 전체를 혐오하는 걸 경계해야 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욕심이 죄를 만들지만 욕심은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는 것이므로.

결국, 누군가의 욕심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시스템을 부단히 합의하며 만들어가는 게 정답일까.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인류는 그걸 잘 만들어오고 있는 걸까. 이 성냥팔이 소녀 당시보다는 나아진 것 같은데 과연 나아진 게 맞을까.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은 있을까.

이 책은 5,6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중학생들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문학으로 읽어도 충분히 괜찮고 사회 교과와 관련하여 읽고 이야기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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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날 수 있을까
이지은 지음, 박은미 그림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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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이 고민 없고 평안하며 행복한 삶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저마다 자신의 불행이 있고 그 불행이 커서 마음의 병이 되는 사람도 많다. 만성적인 불안이 우리를 휩싸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하며 박탈감과 소외감에 괴로워한다. 아이들은 어떨까? 멀리는 모르겠고 우리나라만 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부모에게 떠밀려서 그러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안타까운 점이다. 이 모든 것은 비교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런 우리가 절대 빈곤의, 우리의 모든 고민이 배부른 소리로 느껴지는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남의 불행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일은 정말 별로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이 책은 불법적인 아동 노동의 현장에 내팽겨쳐진 두 아이의 모습을 통해 아동인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얼핏보면 외국 번역책처럼 보이는데 글 그림 모두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다. 박은미 그림작가님은 이국의 풍경과 인물들을 잘 그려냈고, 이지은 작가님은 짧은 글이라도 마음에 스며들게 이야기를 잘 쓰셨다.

배경은 인도의 한 관광지다. 빅키는 여기서 '삼촌'의 짜이 가게에서 일하고, 티티는 식당에서 일한다. 둘은 악덕 사장의 고기잡이 일에서 탈출해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 여기 와서도 삶의 고단함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저 먹고 자고 목숨을 부지하는 댓가로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면에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또래와 놀 시간은 당연히 없이.

가장 슬픈 건 이들 눈에 보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다. 특히 자녀와 함께 온 가족 관광객. 부모의 사랑을 받고 환하게 웃는 그 아이들은 눈부시게 빛난다.
"엄마들이 우릴 사랑했으면 버리지도 않지, 바보야."
이렇게 말한 친구 티티는 때리는 사장을 피해 두번째 탈출을 했다. 빅키는 친구가 몰래 주머니에 넣어주고 간 돌멩이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누가 우리를 닦아주지 않아도 우리가 빛날 수 있을까."
여기서 제목이 나왔다. <빛날 수 있을까>

어둠이 있으니 빛이 있다는 것은 자연현상이고, 사회는 그렇지 않다면 좋겠다. 저 아이들이 어둠을 담당해서 우리가 빛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빛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어린이 독자들도 그것에 동의했으면 좋겠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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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다양성 교실 -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통합교육의 시작
김명희 지음 / 새로온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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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 책을 읽고 공저자 중 한 분인 김명희 선생님이 쓰신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나는 이제 교직 후반부에 이르렀는데, 돌아보면 어떤 책이나 연수도 나를 바꾸지 못했다. 그저 내가 좌충우돌하면서 깨지거나 나의 강점이나 취향이 나를 만들어왔을 뿐이다. 교실 이사를 앞두고, 며칠 전 짐도 정리할 겸 교육도서들을 후배쌤들께 나눔하려고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목록을 보며, 이 책들을 다 읽었으면 좀 유능한 교사가 되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예를 들면 PDC 관련 책이 기본부터 시작해서 활동편 등등 4권이 다 있는데, 나는 우리 교실을 전혀 그 시스템으로 바꾸지 못했다. 놀이수업 책이 넘치도록 있는데, 나는 이제 여기 기웃거릴 시간에 교재연구를 더하자로 노선을 바꾸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알량하게 책 수십 권 나눔하면서 많이 읽었다는 거냐? 다른 쌤들은 너보다 더 많이 연구했으니 교실이 바뀐 거지.’ 라는 생각도 들고, ‘콩나물에 물주는 비유 있잖아. 그게 다 피와 살이 된 거지. 은혜도 모르는 바보.’ 이런 생각도 든다.ㅎㅎㅎ

교직 끄트머리에 이 책을 읽으며 이번 방학에 읽은 책들만은 나를 좀 눈에 띄게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그 분야는 기초학력과 통합교육이다. 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하고 나의 취약점이기도 해서다. 위에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배은망덕의 말을 했는데, 솔직히 그건 내가 한 번 읽고 말아서다. 반복해서 읽고 가지치기도 부지런히 해야된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연구와 실천을 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뭐든 혼자서 죽쑤는 나는 그래서 발전이 없었던 것....ㅠㅠ 아쉽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는 없고, 이번 방학의 책들이라도 적용에 힘써봐야겠다. 확실히 <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를 읽을 때보다 한 권을 더 연이어서 읽으니 좀더 구체적인 느낌이 들긴 한다. 물론 장차 닥칠 현실의 강풍 앞에서 그게 살아남을까? 그때 되어봐야 알겠지만.^^

저자는 ‘신경 다양성 교실 연구회’에 소속되어 왕성한 연구와 실천을 하시는 교사 중 한 분이다. 수업 동영상을 수시로 찍어 함께 돌려보며 문제의 지점을 발견하고 대안을 논의하시는 모습에 넘사벽을 느꼈지만.... 그렇게 연구하신 저자의 결과물에서 배울 점을 찾고자 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장애를 어떤 결핍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다양성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생물학적 다양성,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당연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간의 뇌신경학적 다양성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53쪽)
즉, 정상과 비정상의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 상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의 결핍과 무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들이 가진 강점과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환경을 구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긍정적 환경 구축’이라고 한다. (55쪽)

신경다양성 교실의 특징을 저자는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강점중심적 접근, 둘째 다중지능적 접근, 셋째 통합교육 지향이다. 이 책에는 강점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온다. 마치 특수교육대상자가 우리 학급에 배정되면 그 아이의 결함과 약점에만 집중하는 나를 바꿔놓겠다는 듯이.
“어떠한 장애와 다름이 있더라도 그 학생만의 강점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58쪽)

신경다양성 교실을 만들기 위한 긍정적 환경구축의 7가지 구성요소를 설명해 놓았는데,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 두 가지를 적어본다.
세 번째로 설명하신 ‘보조공학 및 보편적 학습설계’이다. 보편적 학습설계란 다양한 수준의 학습자들이 일반 교육과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내용제시 방법, 다양한 표현 방법, 다양한 참여 방법으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의미는 알겠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다. 이게 나에게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로 설명하신 ‘강점기반 학습전략’이다. 보편적 학습설계 시 개별학생의 다중지능 수업 전략을 삽입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 또한 이 책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더 배워야 가능할 것 같다.

이상 총론적인 내용이 1,2장이고 3~7장에는 저자가 만난 다섯 명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3장 수호 이야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장을 읽고 더욱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특수학급이 모든 학교에 생기면 좋겠다. 왜 몇 학교에 하나씩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상자가 적어서?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수호도 검사결과 지적장애로 나왔는데 대상자 선정에는 실패했다. (적응행동 수준이 정상적이어서라고...) 지적장애이기 때문에 학습장애로도 선정이 안되어서 특수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잘은 모르지만 대상자 수에 학급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급 수에 대상자 수를 맞추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든다. 나도 몇년 전에 우리반에 심각한 학습부진 학생을 맡아 고생한 적이 있었다. 지원이 필요했고 보호자를 설득하여 검사를 해 본 결과 경계선보다도 낮은 지능이 나왔다. 지적장애였다. 복지카드도 나왔다. 나는 장애진단이 나왔으면 당연히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는 줄 알고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결과는 반려였다. 너무 놀랐다. 아, 장애 진단이 나왔고 부모가 동의했는데도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지 않을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궁극적인 지향은 완전통합으로 가야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특수학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마다 있어야 한다. 웬만한 규모의 학교에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당연히 있다. 한 학교로 몰지 않아도 있다고! 그냥 자기 학구의 학교에 다니게 하면 된다고! 당연히 특수교사 채용도 늘려야 한다. 특수교사의 역할은 더욱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특수교사-일반교사의 협업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모든 학교에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데다 돈을 써라 제발. 천문학적 돈지랄 좀 그만 하고.

[4장 지선이 이야기]
지선이 이야기에서는 상호 협력 가능성을 보았다. 장애 아동이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부분은 도움을 받고, 자신의 강점으로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학급을 만드는 것이다. 지선이도 지적장애였는데, 다중지능으로 봤을 때 언어와 수리 지능은 낮았지만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자연탐구지능 등은 높았다. 지선이는 이러한 자신의 강점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친구가 아니라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매우 좋은 케이스라 하겠다. 강점이 이렇게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아이도 있으니까.... 하지만 같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디나 지선이네 반처럼 되지는 않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교사의 설계와 분위기 조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반 아이들의 성품도 중요하다. 이건 담임에 의해 많이 좌우되긴 하지만 정말 안되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라서.... 어쨌든 이 상호협력의 가능성은 담임으로서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되는 것이라 기억해둔다.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일단 추구는 해야 한다.

[5장 하연이 이야기]
하연이는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이였다. 나도 10년쯤 전에 함묵증을 가진 아이를 맡은 적이 있어서 눈을 뗄 수 없이 읽어나갔다. 내가 잘했던 것과 잘못했던 것이 보였다. 잘한 점은 초반에 바로 부모와 상의했다는 점, 부모의 요청에 따라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말을 안해도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었다. 아이는 비언어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했고, 친구들은 그것을 잘 알아들었으며 아이는 글을 잘 썼고, 교사가 그것을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어도 싫어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둡지 않았고, 모둠활동도 신기하게 해냈다. 예를 들면 즉흥극 같은 것을 할 때 모둠 친구들은 그 아이에게 대사가 없는 역할을 만들어 맡겼다. 그러면 그 아이는 웃는 얼굴로 그 역할을 해냈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아 생각해보니 그때 아이들 정말 예뻤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있다. 내가 이 평화에 도취되어 그냥 만족해버렸다는 것이다. 도전과 극복에는 실패한 것이다.

저자는 하연이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줌과 동시에 불안의 요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낮춰주며 단계별로 도전하도록 과제를 주었다. 결국 단계별로 넘어서는 하연이의 모습에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이지만, 표면을 넘어 좀더 깊이 보는 눈이 필요할 것 같다.

[6장 현우 이야기]
현우는 ADHD로 진단 받은 아이다. 이 장에 가장 읽을 것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왜냐하면 가장 흔한 상황이면서(거의 모든 반이 예외가 아닌)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상황이라서.... 저자는 현우 또한 강점중심으로 접근하여 적절한 역할을 맡겼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교사들도 마음을 쓰는 부분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그들이 어쩌지 못하는 움직임의 욕구를 채우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구를 사용하신 수업설계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스탠딩 책상과 짐볼의자가 그것이다. 아, 이거 엄두가 잘 안나는데.... 그래도 꼭 필요한 상황이면 이 대목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시작 도와주기’도 중요한 아이디어다. 나는 올해 가장 힘든 아이랑 이것으로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안하고 앉아있는 것을 ‘버티기’라고 생각해서 괘씸하게 여기고 몰아세우기만 하면 아이는 더 못하고 안하며 관계도 망가진다. 그럴 때 시작을 살짝 도와준다. 첫 문장을 써준다든지, 내가 시범으로 보여준 반제품을 그 아이이게 준다든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뭐라도 한다. 개발새발이어도 일단 수고했다고는 해준다. 뭐라도 칭찬할 점이 있다면 크게 칭찬해준다. 나도 하고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 부분을 읽었다.ㅎㅎ

‘문제해결과정에 공동체 참여시키기’는 내가 자주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 심각하게 읽어보았다. 보통 ADHD 아이들을 맡았을 때 가장 힘든 점은 민폐다. 특히 공격성을 동반할 때 그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끼치는 피해. 친구들도 괴로운데 참으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정말 이게 너무 괴롭다. 저자도 다른 학부모의 민원까지 받고는 슬퍼한다. 그리고 ‘회복서클’을 진행했다. 교사의 솔직한 심정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의 심정도 돌아가며 들어보았다. 그때 현우가 눈물을 흘렸고 이후 본성을 거슬러 변화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같이 문제해결을 교사의 지시로만 하지 않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협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언젠가 내가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이런 것을 진행했다가 그반의 현우 보호자로부터 “그게 뭐냐. 애 하나 놓고. 인민재판하냐.”라는 민원을 받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정서학대라고 괴롭히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운영의 묘라는 것이 있지. 저자쌤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고. 하게 되면 부모 동의를 받고 해얄 것 같은데 어찌될지는 모르겠다....ㅠㅠ

[7장 도현이 이야기]
도현이 이야기에서는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과 강점을 잘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긍정적 행동지원’의 사례도 알려주셨는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쉽지는 않겠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이어서 꼭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AAC(보완대체 의사소통)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통합교육을 염두에 둔다면 공부해야 할 것이 무척 많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음...

어떤 학자가 ‘공감자’와 ‘체계자’의 스펙트럼에서 자폐인은 체계자 방향의 맨 끝에 위치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또한 신경다양성에 근거한 설명이다. 그리고 체계자로서의 강점이 있을테니 강점이론의 설명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강점을 가지고 적절한 직업을 훌륭하게 수행해내는 자폐인들이 많다는 것. 주로 외국의 사례가 많긴 하지만.... 우리도 이런 가능성에 지향을 두고 교육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8장 다양성 존중 교육 이야기]
신경‘다양성’교실이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다양성 존중이다. 저자는 꼭 장애를 주제로 하지 않아도 다양성 교육을 다양하게 펼치시는데, ‘서로 다른 우리 함께 해요’ 라는 프로그램을 강추하셔서 관심이 갔다. 서울시교육청 자료다. 솔직히 자료의 홍수라 놓칠 때가 많아서 그렇지 요즘은 교육청 자료 중에도 좋은 게 많더라고.... 기억해 둬야겠다.

나머지 두 장은 신경다양성 교실 연구회, 미래교육에 대한 간단한 장이라 빨리 넘겨가며 읽고 끝냈다. 이렇게 하여 이 책을 다 읽었다. 이 책이 교직 말년에 이른 나를 더 지혜롭게 하고 더 단단하게 해준다면 좋겠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한발 앞서서 애쓰는 분들 덕분에 그나마 사회가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식 면에서도 그렇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과거 나 초임 당시 도움반의 비전문성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더 좋아질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나는 내 한몸 할일이나 똑때기 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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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와 케이티 - 나를 함부로 대하는 친구에게
트루디 루드위그 지음, 에비게일 마블 그림, 강빈맘 옮김 / 서교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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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미국에서 유명한 작가이자 강연자라고 한다. 전작들을 살펴보니 주로 이와같이 아이들의 관계 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 같다. 책과 강연이 있고 그걸 찾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관계 문제는 어려운가보다.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남성보다는 관계 지향적인 여성들에게 더욱 많이 나타난다.(남성들은 또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고) 그래서 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는 고학년 학급에서는 여학생 그룹을 관찰하는 게 훨씬 난이도가 높기도 하다.

나타난 양상들을 보면 깜짝 놀랄만큼 악랄한 면이 있어 역시 성악설이 맞구나 한탄하게 될 때도 있고, 너무나 보편적이라 이건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이구나 싶기도 하다. 나의 지나온 길에 혹시 누굴 밟고 오지 않았는지 흠칫 놀라며 돌아보게 될 정도로.

이 책의 추천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관계적 공격성이라고 불리는 정서적 괴롭힘을 성장기에 으레 겪는 통과 의례쯤으로 쉽게 치부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관계적 공격은 신체적 공격 못지않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4쪽)
통과의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도 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하면 같은 패턴을 계속 반복하게 되고, 반복된 경험은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가 그렇게 많다고 들었다. 언젠가 2학년 담임을 할 때 2학기 상담을 하는데, 영이 엄마가 부탁이 있다고 하더니 자기 딸이랑 순이랑 내년에 같은반 되지 않게 반편성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분반시즌도 아직 멀은 데다가, 두 아이는 다투는 사이도 아니어서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순이엄마랑 떨어지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닌 순전 어른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순이엄마가 자기를 그렇게 교묘하게 따돌린다고 하며 눈물까지 펑펑 쏟았다. "선생님, 순이엄마는 진짜 무서워요."

참, 이런 일에 개입하거나 어떤 약속을 할 수는 없어서 입장이 곤란했다. 그냥 어머니를 위로하고 그 시기를 먼저 지난 사람으로서 그 관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얘기했던 것 같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내 앞에서 울 정도면 영이 엄마도 꽤 주책인 면이 있구나 싶기도 했지만 저 안의 관계도 보통이 아니구나 실감했다. 듣던대로.

우리 엄마한테 들어보니 노인정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아이구야.... 이건 그냥 평생이구나.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인걸까. 어차피 평생의 문제라면 나름의 대처 원칙을 세워두는 것이 좋겠다. 어릴 때부터. 그러니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의 제목은 두 친구의 이름으로만 되어있지만 '나를 함부로 대하는 친구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친구인 척하며 나를 괴롭히는 애가 한 명 있어.
그 애 이름은 케이티야."
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니카는 헷갈린다. 어떤 때 케이티는 정말 다정한 친구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쎄한 느낌은 점점 커져갔고 급기야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니카를 배척하고는 그걸 즐겼다. 이젠 모니카가 뭔가 대처해야 될 시점이다. 이 그림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줌으로써 비슷한 상황의 어린이 독자들에게 용기와 통찰을 주고자 한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행동에 빠져 그게 가해 행위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겐 경고와 성찰의 효과도 있을 것 같고, 주변인들에게도 상황을 바로 보는 지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통제욕과 지배욕,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주로 이게 큰 사람들일수록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성향이기 때문에 쉽게 고치지 못한다. 학급을 맡으면 이런 아이들을 파악하고 관찰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지배욕을 되도록 건강한 쪽으로 유도하면 훨씬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계는 물밑이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지만....

이 책에서 모니카는 일단 끙끙 앓기만 하지 않았고, 지혜로운 어른(엄마)과 함께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용기있게 할 말을 했다. 그리고나서 상황이 바뀌었는데, 이걸 보고 누군가는 황당해 할 수도 있다. "한번에 그게 해결된다고? 그게 쉬워?"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기막힌 반전이 쉽지는 않지만 일리는 있다. 괴롭힘의 양분이자 먹이는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고 당당해지는 것은 일단 그 토양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다. 두려움 극복, 용기, 당당함. 이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때문에 주변에서 잘 지지하고 도와야만 한다.

학교든, 엄마모임이든, 노인정이든 이렇게 관계를 좌지우지하며 악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없으면 좋으련만, 인간의 본성인 것을 어찌해.... 내 안의 괴물은 없는지 늘 돌아보며, 대처의 원칙도 세워두는 수밖에. 요즘 전 세대가 읽는 그림책이 많은데 이 책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교사들은 활용 목록에 넣어두셔도 좋겠다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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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 하늘을 나는 책 8
이토 미쿠 지음, 소시키 다이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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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범한 제목의 책이다. 내용도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라면 자기 얘기처럼 읽을 책이다. 개를 키우는 분도 똑같을 것 같다.

화자인 가즈마는 4학년, 고양이 고토라는 열여섯 살이다. 가즈마가 태어났을 때, 이미 여섯 살 고양이가 있었던 것이지. 부모님 신혼 때, 아빠가 길에 버려진 아기고양이를 데려와서 그때부터 쭉 키웠다. 정말 가족일 수밖에 없겠다. 문제는 가즈마는 아직 어린이인데, 고토라는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고토라가 늙고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과거 이야기는 지나가는 말로 살짝 들려줄 뿐이다. 고토라가 아프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엄마다. 아빠의 직장이 멀어져서 주말에만 오시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엄마가 일하면서 고토라도 돌봐야 한다. 수시로 병원도 데려가고. 가즈마도 열심히 돕기는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다가 어느날 편안하게 잠든다면 좋으련만, 길고 짧고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병고를 겪다가 떠나간다는 것이 참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토라도 그랬다. 사료를 통 못 먹기 시작했고, 먹지 않으니 기운이 없고 말라갔다. 움직임도 어려워졌다. 못 올라가는 데가 없던 고양이가 어느날 40cm 소파에도 올라가지 못해서 버둥거려야 했던 날, 가족들도 고양이도 모두 충격을 받았다.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부분도 미화 없이 드러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드는 검사비와 진료비는 다들 알다시피 사람 병원비보다도 비싸다. 엄마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주려고 애쓴다. 나중에는 수액 꽂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직접 수액을 놔주기도 했다. 하지만 고토라는 상당한 노령이고, 죽음이란 누구도 막을 수는 없는 것, 엄마는 부질없는 연명보다 고통없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에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린 가즈마는 그럴 때 서운해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고토라는 열여섯 살이니까 병이 낫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에요?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냐고요?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48쪽)

상태는 점점 심해지고 고토라는 이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먼 곳에 근무하는 아빠까지 기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글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미 기차에 탔지 뭐야. 내일 아침 첫 차로 가려고.”
한 마리의 동물에 이렇게 온 가족의 일상이 매달리는 일, 나 어렸을 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때는 집안에 절대 동물을 들이지 않았고, 하루종일 개집에 묶어 놓는 걸 당연한 줄로 알았고, 어느정도 크면 누군가에게 팔았다. 그 말로를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고... 하지만 짐작한 아이들(나)은 목놓아 울곤 했지.... 뭐 심지어는 키우던 개를 동네에서 같이 잡아서 먹기도 했잖아?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서 미정이는 염소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구씨한테 이렇게 말했었지.
“이름 부르던 걸 어떻게 잡아먹냐?”
“그래서 이름 안 지어 줘. 그리고 이웃집이랑 서로 바꿔서 잡아먹어.”
옳고 그른 건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동물과 사람은 교감이 가능하고, 그래서 깊이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해버리면 이후엔 어쩔 수 없다.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 수밖에.

고토라의 마지막을 세 가족이 모두 함께해서 다행이다. 먼저 아빠의 눈물이 터진 건, 그 어린 고양이를 못본 체 못하고 데려왔던 사람이 아빠였기 때문이 아닐까. “괜찮아, 괜찮아.”를 되뇌던 엄마는 고토라의 숨이 끝내 멈추자 비로소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슬프게, 어쩌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고토라는 떠났다. 이 책은 맑고 따스한 날의 풍경 그림으로 한 장을 채운 후 에필로그처럼 다음주의 가족 일상을 보여준다. 아빠가 어항과 송사리를 사왔다. 으으... 내가 엄마라면 화냈을 것 같아. 하지만 가족은 또 가만가만 송사리의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는 우리 강아지 떠나고 나면 절대 아무것도 키우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슬픔까지 사랑할 큰 사랑이 있다면 또 함께할 수 있겠지.

집사님들이 울지 않고 읽기는 어려울 책 같지만, 그래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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