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 책이 좋아 1단계
송미경 지음, 핸짱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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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송미경 작가님도 중저학년을 위한 시리즈 동화를 시작하시나보다. 이라는 번호로 시작했으니 그런 계획이 분명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송미경 작가님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신 편이지만 떡집 시리즈나 고양이 시리즈처럼 길게 가는 캐릭터의 시리즈는 내신 적이 없다. 이제 야심차게 한발을 내딛은 이 시리즈의 캐릭터는 어떠한가? 그는 생쥐이고 여성이며 작가이다. 이름은 소소. 매력이 있어야 지속될 텐데.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내게는 매력이 있었다. 소소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소소한 인물? 강함보다 약함 쪽에 가깝고, 자신감보다는 열등감에 가깝고 목소리도 작을 것 같은 평범한 인물.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동일시하면서 읽기에 적합한 인물. 동일시까지는 아니라도 애정을 담아 지켜볼 수 있는 인물.

 

지금 상황이 초라하게 보여서 그렇지 소소 씨는 벌써 10권짜리 시리즈를 낸 경력 작가이다. ‘딩동 놀이공원이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는 5권까지는 반응이 매우 좋았지만 6권부터는 시들한 정도를 넘어서 뻔하고 시시하다며 욕까지 먹고있는 상황이다. 소소 씨는 유명세를 감당하기엔 소심하고 예민한 인물 같다. 한창 팬레터가 빗발치던 잘나가던 시절에도, 재미없다는 항의 편지가 주를 이루는 지금도 친구인 두더지 봉봉씨네 타르트 가게에서 편지를 대신 받아준다.

 

핸짱이라는 그림작가님과의 콜라보는 정말 최고다. 나는 그림은 많이 따지지 않는 편인데 이 작가님의 다른 그림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림이 맘에 들었다. 소소 씨의 동네, , 봉봉 타르트 가게 등 그냥 평범한 일상의 그림인데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예쁨과 따뜻함이 있다.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색감과 그림체를 가졌다.

 

소소 씨는 5권 이후의 슬럼프 때문에 깊이 침체되어 있다. 창작의 고통은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지만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오래 갖고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오는 편지 중에 졸졸 초등학교에서 오는 편지가 있다. 다른 편지들과 같이 뜯지도 않고 넣어버렸지만, 계속 오는 편지에 궁금해진 소소 씨는 결국 열어보았다. 그건 소소 작가님을 작가와의 만남으로 초청하는 편지였다. 올 때까지 편지를 보낼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소소 씨는 답장을 쓰게 된다.

계속 편지를 받느니 가겠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누르며 소소 씨는 출발했다. 드디어 숲속의 작은 학교, 전교생 열두 마리의 생쥐 학교에 도착했다. 커다란 풍선에 매달린 환영 현수막에서 환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일반적인 강연과는 조금 다른 게 있었다. 시청각실이나 강당 같은 강연장이 따로 없었다. 교실에서 함께 지내면 되는 거였다. 졸졸초 선생님은 PPT를 꺼내려는 소소 작가에게 고개를 젓는다.

그냥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노시면 돼요. 저는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면 돌아오겠습니다. 같이 점심을 드시죠.”

 

교실도 너무 예뻤다. 4층이 모두 연결된 교실. 도서관이자 공연장이고 놀이터인 교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한때를 보내면서 소소 작가는 PPT가 줄 수 없는 진실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입속에 남아 늘 되뇌곤 하던 노래의 기원과, 옛 친구를 만나는 감격도 누린다. 졸졸 초등학교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그냥 끝나면 서운한지, 한 번의 위기가 다가온다. 봉봉 씨의 부탁으로 산딸기를 따러 갔다가 뱀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은 끔찍한 최후가 아닌 창작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넘나 행복한 이야기인 것.... 보람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소소 씨는 어제의 그 소소 씨가 아니다. “이야기는 갑자기 손님처럼 찾아온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그 손님을 정신없이 맞이한 하루는 정말 고단하면서도 활력이 넘쳤겠다. 그래, 그래서 무조건 엉덩이를 떼어야 한다니까. 그래야 뭐가 되어도 돼. 그래야 타인을 만나고, 그래야 새로운 것을 보고, 그래야 위기도 겪고! 하지만 그 위기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등등.^^

 

소소 씨도 그렇지만 주변의 인물들이 다 매력적이었다. 꾸준하고 진실된 친구 봉봉 씨도 그렇고, 졸졸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은 다들 너무 매력쟁이. 뱀들은 무섭지만 나름 허당매력이 있고. 특히 담임 선생님이 대박! 드라마라면 약간 설렘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만남. 그리고 두 고양이 일꾼들도 좋은 분들이었다.

 

마지막 장 구석에 “2권에서 만나요라고 쓰여있다. 올레~~ 벌써 다 써두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전 장 구석에는 새로 편지를 보낸 학교 이름이 쓰여 있다. , 이 시리즈는 권마다 다른 학교 순례인가? 그것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선생 마인드라서 더 그렇겠지만 진심 궁금하네. 편집자님 2권 빨리 내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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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챔피언 허달미 바람어린이책 32
정연철 지음, 심보영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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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엄청 동질감을 느끼며 읽을 거라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도 느림보니까.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달미한테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달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자자 선생님이나 "속이 터진다."고 말하는 엄마한테 공감했다. 나는 달미랑 달랐다. 그 이유도 안다. 나는 느림보이긴 하지만 '느긋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속도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불안감과 조급함이 일상적 감정이 되었다. 나는 요즘 학교에서 메신저를 가장 먼저 켜는 사람이고, 뭐든 조금씩은 미리 해두려고 한다. 마음 뿐이지 제대로 안될 때가 많지만....

허달미. 주인공 이름도 잘 지으셨다. 달팽이의 '달'자가 들어간 것도 좋고 성도 왠지 잘 어울린다. 머리 모양을 달팽이 모양으로 그리신 그림작가님의 센스도 돋보인다. 느림을 상징하는 동물은 많다. 거북이, 나무늘보, 달팽이.... 그중에서 이 동화는 달팽이를 선택했다. 나도 어떤 계정에서 닉네임이 달팽이인데...^^;;;

달미 머리모양만 달팽이인 게 아니라 실제로 달팽이가 등장한다. 이 책의 달팽이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살짜기 판타지의 분위기를 주며, 중요한 소재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소재 중의 하나는 '달팽이 똥'이다. 달미는 우연한 만남으로 달팽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달팽이는 먹은 것 색깔 그대로 똥을 눈다나? 나도 처음 알았다. 딸기 똥, 바나나 똥... 이 달팽이 똥이 여러 번 중요한 사건들을 일으키며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그건 바로 빠름과 조급함의 대표 인물, 자자 선생님과 엄마한테 '느림의 경험'을 선사하는 거였다.

빠름도 느림도 각자의 다양성 측면에서 생각하면 개인의 특성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민폐는 안 끼치는 범위에서!" 라고 생각하고 있다.ㅎㅎㅎ 현장학습 때 자자 선생님의 안타까움과 아이들의 짜증이 너무 공감되어서.... 자자 선생님은 불평하는 아이들을 단속하고 달미에게 한결같이 친절하셨지만, 나는 한번쯤은 정색하고 야단칠 것 같아서....
"시간 약속을 안 지켜서 남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그들의 시간을 뺏는 거야. 너가 무슨 자격으로 20명의 시간을 이렇게 뺏는거니? 천천히 하는 거 좋아. 하지만 시간 약속을 했으면 그건 지켜. 남들하고 연결되어 있는 건 예외로 할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야단치는 게 나의 캐릭터. 동화에 이렇게 나왔더라면 욕먹을 캐릭터겠지?^^;;;;

마지막 소재인 '골든벨 대회'에서 의외로 마지막까지 남은 달미는 그동안 '천천히 다니다가 보았던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내가 황급히 다니며 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현대인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부질없는 전력질주. 다같이 숨만 차지 얻는 게 무엇인가? 이런 세상에서 작가님의 그려내신 '달팽이의 미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회의 속도를 전체적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그 속도 때문에 잃은 것들이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의 건강도 잃었고 관계도 잃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잃은 것도 생각해보면 그 때문이다.
"어떤 책 보니까 제목이 '틀려도 괜찮아' 였어. 나는 느려도 괜찮아. 아니, 좋아."
사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나처럼 느리면서 마음은 느긋하지 못한 사람이다.ㅎㅎ 느려도 진심으로 괜찮은 세상이 되면 가장 행복할 사람은 바로 나다. 나를 위한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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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 2024 창비그림책상 수상작
포푸라기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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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주 색상은 흰색이다. 아주 깨끗하고 포근한 세상이다. 올겨울엔 두 번의 큰 눈이 왔었다. 도로가 위험하다거나 녹으면 지저분해진다거나 등의 생각은 두 번째고, 일단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눈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풍경은 명랑하고 즐겁고, 세상 시름을 잊을 듯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듯이, 이 책의 의미 또한 그런 것 같다. 포근하고 평화로운 전체 이미지 안에 중간중간 다른 이미지들도 들어있다. 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는 그림책. 작가님이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결합하여 구성한 듯한 그림책이다. 포푸라기라는 필명의 책은 이 책이 첫 권이지만 본명으로는 이미 많은 책에 그림을 그리신 그림작가님인 것 같다. 포푸라기라는 필명의 시작은 이제 글·그림의 온전한 작업을 하시려는 출발인 걸까. 다년간 많은 작업을 하셨던 경력자라 해도 창비그림책 대상이라는 수상은 무척 감격스러웠을 것 같다. 최근들어 출판계에 상들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좋은 일이겠지?

함박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창문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던 아이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을 기다리며 눈사람을 만들던 아이는 눈밭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발견하고 따라가 본다. 새 발자국은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아, 친구를 만났구나. 아, 여기는 놀이터였구나.

새 발자국과 함께 놀던 아이는 문득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다 발자국이 나는 새 모양 같다고 생각한다. 순간 새 발자국들은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눈밭에 누웠던 아이 역시 새처럼 날게 된다.
“어서 와, 얘들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친구도 불러 함께 난다.

아이들은 멀리 난다.
“우리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요.
작지만 멋진 날개를 가졌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바다도 건너, 아주 멀리 멀리까지 날아간다. 가는 길에 만나는 하늘은 아까 동네에서 보던 그 하늘과 늘 같지는 않다. 때로 먹구름이 가득 차고, 번개가 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무사히 귀가한 것 같다. 다시 처음의 창문이 나오고, 아이는 묻는다.
“내일도 새처럼 날 수 있을까요?”

좁은 범위로 보면 이 여정을 개인의 인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먹구름과 풍파가 없는 인생이란 없으니까. 하지만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있길래 나는 좀더 범위를 넓혀 생각해 보았다.
“작은 눈송이 하나가 제 손바닥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손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아까 몰아닥쳤던 먹구름은 전쟁의 참혹함이겠다. “내일도 새처럼 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오늘의 목숨을 부지한 이들의 불안이자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이 그림책에 가득한 새 발자국에 동그라미를 씌우면 평화 표시(피스 마크)와 같은 모양인데, 작가님은 혹시 그것을 고려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아귀를 딱딱 맞춘 건축이다. 짧은 내용과 지면에 너무나 절묘하게.

아이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삶의 터전을 허락하지 않는, 모든 것을 빼앗는 폭력이다. 전쟁의 위협에서 조금 물러나 있는 아이들도 마냥 평화롭진 않다. 어른들의 욕심이 아직 주도적으로 살아가기엔 어린 아이들을 옥죄고 괴롭히는 경우가 주변에도 흔하다. 그렇게 길들여진 아이들이 장성해서도 그 밧줄을 풀지 못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 ‘새처럼’ 날아보지 못한 존재들은 그래서 너무나 많다. 뒷면지 가득한 새의 비상은 이렇게 날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읽힌다.

다른 이들의 감상이 매우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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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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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소재의 동화였다. 이 책이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인 건 그런 새로움에 대한 높은 평가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동화에서 주인공들은 다양한 통로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모험을 하곤 한다. 이 작품은 역으로 자기들이 살던, 일상의,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이 '새로운 세계'가 된다. 그건 하나가 사라지면서 가능했다. 바로 '문'이었다. 남매가 깨어난 어느날 아침, '문'이 사라져 있었다. 그들은 그 공간 안에 완벽히 갇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외부와의 소통 시도, 생존, 탈출 시도가 모험의 내용이 된다. 이야기의 전말이 궁금해 책을 빨리 넘기게 된다. 말하자면 무척 재미있고 가독성이 높다는 뜻이 되겠다.

해리와 해수 남매는 티격태격하던 현실 남매였지만 이 극한 상황에서 힘을 합하는 동료가 된다. (물론 완벽하진 않고 싸우고 놀리던 옛 버릇도 나옴) 이 황당한 상황에서 다행인 건 수도와 전기 공급은 평상시처럼 된다는 것(안그랬으면 끔찍한 재난 동화가 됐을 터), 불행인 건 온갖 통신 수단들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다행히 집 천장 구석 어느 곳에 아주 미세하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있어서, 남매는 유튜브(이 동화에선 '아이튜브') 계정으로 간신히 동영상을 올려가며 외부와 소통한다. 주작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힘내라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계정 주인인 엄마 선화 씨는 애타는 마음을 댓글로 전달하며 자식들을 찾아 헤맨다.

문도 창문도 없는 공간에 갇혔다.... 나는 생각만 해도 폐소공포증이 생겨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아이들은 나름대로 서바이벌 생활을 잘 해나간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하지만 나같은 어른이 할 수 없는 생각도 해내는데, 유정란을 부화시키는 일이었다. 정성으로 알을 돌보는 일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도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라는 말 몰라? 스스로 나올 수 있게 놔둬야 해. 남이 깨 주면 금방 죽는대."
아마도 작가님은 이 말에 많은 의미를 심어두셨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대로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경찰들은 경찰들대로 수색을 계속하는데 아이들이 고립된 그 공간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엄마가 듣지 못하는 아이들의 소리를 아랫집 할아버지는 어떻게 들으신 것인가? 아이들은 어떻게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궁금증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다.

상상해보면 공포와 절망의 상황인데 작품의 느낌이 그토록 심각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밝고 유머도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건과 장치들을 통해서 작가님이 말하고 싶은 것도 여러 가지가 느껴지는데, 그게 아이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것일지라도 좋았다. 아니 그래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활동이 하나 있었다. 이 책의 초반부만 읽어주고 나머지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활동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 공간의 성격을 규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사건들의 전개와 결말을 만들어야 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물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활동일 것 같다. 활동 후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때론 감탄도 하면서. 작가가 괜히 작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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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로 할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26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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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이야기’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자 마지막 권이다. 이 시리즈, 내용도 짧고 책도 얇고 문장도 짧고 금방 다 읽을 쉬운 책이다. 근데 어른인 내가 이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5권이 완간되기 몇 달 전에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작가님 본인도 자신의 작품 중에서 이 시리즈에 애착이 많이 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본인이 만든 캐릭터지만 ‘정이’가 참 사랑스러우신 게 아닐까. 나도 그렇다. 그때 마지막권 완간되면 바로 읽어봐야지 생각해놓고 2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읽어보았다.^^

중, 고학년에서 온작품읽기를 많이 진행해 보았는데 저학년과는 동시에 같은 책으로 못해보았다. 그때는 예산이 없어서였는데... 올해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요 몇 년간과 비슷하다면 학기당 한두권 정도는 학년이 함께한다면 구입이 가능할테니 이 다섯 권 중에서 한 권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은 4권 <나는 망설일거야>의 두 번째 작품 [초등학생은 망설여] : 이건 제발 애들이 좀 이랬으면 하는 나의 흑심 때문에^^;;;
두 번째 좋아하는 이야기는 3권 <나는 기억할거야>의 첫 번째 작품 [카드뮴은 너무해] 여기엔 끝말잇기를 비롯한 말놀이 이야기가 나와서 저학년과 읽기에 재미있을 것 같다.
5권 <나는 따로 할 거야>의 두 이야기 [단골은 쓸쓸해]와 [근육은 소중해]는 두 편 다 무난하게 재미있다. 3,4,5권 중에서 한 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고민될 것 같다.^^

5권에서 튼튼하고 강골인 정이와 선천적으로 약체인 오빠 혁이가 자주 비교된다. 전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바, 오빠 혁이는 입이 짧고 예민하며 자주 아프다. [단골은 쓸쓸해]에서는 정이가 이런 오빠의 마음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단골이란 ‘병원 단골’을 말한다. 바로 혁이 말이다. 반면 정이는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던 정이가 어느날 귀가 먹먹하고 건드리면 아팠다. 엄마는 조퇴할 상황이 못되고 병원 경험이 많은 오빠 혁이가 정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가기로 했다. 보호자가 된 오빠는 전에 없이 자상해지고 눈빛에 사랑이 그득하다.

하지만 진찰 결과 염증도 종기도 아닌 대빵 큰 귀지였다. 이비인후과에는 이런 환자가 왕왕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적이 있거든.ㅎㅎ 다행이지 뭔가. 하지만 혁이의 눈에서는 따뜻함이 빠져나가고 쓸쓸함이 들어찼다. ‘역시 나만 단골이구나’(나만 약하구나) 이런 마음 아닐까. 동생이 아픈 게 아니어서 다행인 것과는 별개로, 쓸쓸해지는 이 마음. 정이는 그걸 엄마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귓속말로.
“엄마, 단골은 쓸쓸해. 아프면 함께하려고 했는데..... 내 손을 잡아주려고 했는데.... 내가 금방 나아서, 그리고.... 오빠는 나으려면 오래 걸려서.”
엄마도 조그맣게 얘기한다.
“우리 정이, 많이 컸구나.”

두 번째 작품 [근육은 소중해]에서 이 책의 제목 <나는 따로 할 거야>가 나왔다. 가족은 공원에 갔다. 정이와 오빠가 시소를 타는데.... 균형이 맞지 않는다. 남매니까 당연히 무게가 다르겠지? 문제는 오빠가 아닌 동생 정이가 무겁다는 것.... ‘혁이가 한 칸 더 뒤에 앉아 봐’ 라는 아빠의 말에 성질을 내고 가버리는 오빠. 자가발전 전기 자전거를 둘이 탈 때, 정이는 아무 생각없이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탔는데 오빠는 낑낑대며 온 힘을 다해 타다가 역시 화를 내고 가버렸다. 알고보니 정이가 전기를 더 많이 만들었다. 심지어 추운데 밖에서 놀았다고 감기까지 걸렸다.
“나만 아파, 나만 약해. 아, 짜증 나.”

가족은 함께 헬스장에 등록하러 갔다. 실내에서 운동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이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가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
“따로 놀면 안 돼?”
정이가 엄마한테 이렇게 묻는다. 다행히도 엄마는 이렇게 대답.
“그래, 따로 하는 것도 소중해. 엄마 생각이 짧았다. 미안.”
이렇게 되어 실내 체질인 오빠와 엄마는 헬스장에서, 바깥 체질인 정이와 아빠는 공원에서 운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정이가 공원을 누비며 느끼는 자유로움이 참 부럽고 소중하다. 마지막 문장까지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참 좋다.”
난 이 문장이 오늘따라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결혼하면 당연하게 자녀를 낳던 나 때와는 달리, 요즘 젊은 부부들은 쉽게 자녀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이기적이라 매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겠어?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둡기만 한데 말이야.
이런 세상에서 정이가 “태어나서 참 좋다” 고 하니 왠지 눈물겹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어찌하면 그게 되려나.

‘함께, 또 따로’ 라는 이 이야기의 주제에도 심히 공감한다. 내가 유난히 ‘따로’를 선호하는 성향이어서만은 아니다.ㅎㅎ 뭐든 균형이 맞아야 하니까. 역시 유은실 작가님의 책은 아무리 얇아도 재밌고 할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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