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광대
권리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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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분양 주택과 임대 주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정책을 고수하는 단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읽고 있는 자크 스트라우스가 살던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에 따른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했다면,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부에 따른 그야말로 치졸한 차별정책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프리카너들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권리 작가의 <폭식 광대>에도 그런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단편이 하나 실려 있더라. 원래는 문제적 표제작부터 시작하려고 했으나... 어쨌든. 제목은 <구멍>. 대한민국의 중심 강남의 어딘가에 위치한 게딱지 마을에 작은 빨간 벌레가 등장하면서 발생한 구멍이 문제였다. 별것도 아닌 작은 벌레들이 지반을 갉아 먹어서 초라한 판잣집들을 연쇄 붕괴시키고 있었다.

 

어느 사회나 별것 아닌 것들이 항상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부에 따른 노골적 차별을 부추기는 언론과 사회 풍조가 나에게는 게딱지 마을을 넘어 그 근처의 백년구에 즐비한 고층 아파트들마저 붕괴시킬 기세의 작은 빨간 벌레와 동의어로 읽혔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백년구의 구청장이 이름도 무시무시한 불도저로 바뀌면서 또 다른 욕망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재개발이라는 괴물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게딱지 마을을 불도저로 싹 밀어 버리고 뉴타운 혹은 녹지공원 그리고 천연지하수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불도저 구청장은 선보였다.

 

권리 작가가 구사하는 <구멍>에는 건설 아파트 공화국이 가진 모든 추악한 민낯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되던 말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실체가 솟아오른다. 어떻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씁쓸해지는 모르겠다. 너무 현실을 동조해서일까?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는 도대체 이해 불가한 현대 미술계 비판의 장이 열린다. 아무리 예술이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피카소가 창조한 추상미술이 기득권화된 이래 팝아트 등등 고전 미술만 보고 자란 나로서는 도무지 주석이나 해석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난해한 해석으로 미술을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그런 음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장 콕도를 모방한 게 분명해 보이는 장곡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광인을 위한 해학곡>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아니 제목에서부터 예술가들이야말로 광인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고전 미술가들이 창조를 담당했다면, 최근 현대 행위예술가들은 어렵게 만들어진 창조를 파괴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평론가와 예술가들의 협잡 같은 컬래버도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술 작품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가 평론가들의 멋진 포장 버프에 힘입어 전무후무한 예술적 행위로 거듭나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MOMA를 찾아 한편에서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다가, 또 폴락이나 앤디 워홀의 변기나 수프 깡통 사진을 보고는 또 다른 차원의 격찬(1도 알지도 못하면서)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예술은 어쩌면 거대한 자본과 미디어가 총동원된 멋진 사기가 아닐까... 암튼 그렇다고.

 

<해파리>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본 프로인 <폭식 광대>로 속히 넘어가자. 무려 12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폭식이라는 기괴한 관음증에 현혹된 우리 대중의 실상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한 때 먹방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어마 무시한 음식들을 그야말로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입안에 집어넣는 퍼포먼스에 감탄했던 적이 있다. 무도에서 국수를 흡입한 어느 방송인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식성을 자랑하는 이들이 너튜브로 무대를 옮겨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한다. 사람들은 화면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들의 퍼포먼스에 열광한다. 미디어에 공개된 화제는 바로 수익으로 직결된다. 자서전도 대필해서 인세도 벌고, 각종 굿즈들도 만들어서 짭짤한 부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행사장과 미디어 출연 요구도 쇄도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그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소설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가 그렇게 허겁지겁 집어삼킨 음식들을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화가 아닌 저장 방식을 선택(?)했던 폭식 광대는 결국 방송에서 토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폭식 광대의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매일 같이 쏟아지는 너튜브 비주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그 내용들을 미처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도 어느덧 너튜브 중독자가 되었지만, 의도적으로 먹방이나 여행 콘텐츠는 기피한다. 왜 나의 즐거움을 타인의 그것에 의존해야 한단 말인가. 구독이나 시청으로 그들의 수익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 먹고(기본적으로!) 잘 사니 무슨 걱정할 필요가 있겠냐고.

 

마지막은 오래 전에 가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에서 본 문구로 대신하련다.

타인의 허락에 따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가련하다.”

 

[뱀다리] <폭식 광대>로 드디어 올해 100권 읽기 돌파했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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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권 읽기 돌파, 축하합니다!!!

레삭매냐 2023-12-25 23:38   좋아요 0 | URL
가까스로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 소크라테스에서 갈릴레오까지의 철학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뱅상 자뷔스 지음, 니코비 그림, 양영란 옮김, 요슈타인 가아더 원작 /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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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도서관에서 내일 책을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라? 무슨 책을 내일까지 반납하라는 거지? 이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서도 읽지 않거나 아니 아예 무슨 책을 빌렸는지디 모르게 된 모양이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1>이라고 한다. 아직 펴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올해 파이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노르웨이 사람이니 아마 이 철학개관 소설, 지금은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인 십대 소녀 소피 아문센도 아마 노르웨이 사람이려니 싶다. 철학 개관서로 되게 유명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는 책으로는 만나 보지 못했다. 이럴 때, 그래픽 노블은 치트키로 되게 유용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수수께기 철학자의 편지가 도착하는 것으로 기후변화 시위를 준비하던 소피는 세계 철학의 세계에 뛰어 들게 된다. 철학과 판타지 그리고 그래픽노블의 만남이라,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철학의 기본 덕목은 놀라움 그러니까 경이로움을 느끼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에 있어서 아주 간단한 질문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걸까?

 

이런 거창한 질문을 던지면 일상의 노동에 찌든 우리들은 아마 대답할 말이 없지 않을까. 한달 전 회사 회식에서 친한 동료에게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난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그리고 우드카빙의 명가 모라나이프를 당근에서 나무 조각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건 아마도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 시스템이 철저하게 암기위주의 교조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주입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만약 교실에서 젊은 청춘들의 그런 엄청난(?) 질문들을 대하게 된다면 과연 교육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똑 떨러지는 대답을 원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해마다 그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데, 왜 우리들에게는 소위 넉넉한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는가? 대표이사만 항상 최대 이익을 챙기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아마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바로 다음날 회사에서 자리가 비게 되지 않을까. 늘그막에 이런 심오한 질문들이 마구 발생하는 걸 보면 과연 그래픽노블 <소피의 세계>를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대단히 서설이 길었다. 철학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그리스가 될 것이다. 여러 고대 철학자들이 책에 소개가 되지만 그중에서도 데모크리테스의 4원소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몇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가설,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상당히 유물론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성과 감각을 통해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질문을 동반한 사유를 하게 된다. 소피(이름부터 소피아 혹은 필로소피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역시 수수께끼 철학자와 동반한 철학 여행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배우고 느끼면서 다음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묘사한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각성한 현대여성으로 바로 반박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이거지! 결국 깨달은 사람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그런 현실을 그대로 적시한다.

 

다음 수순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등장이다. 델포이 신전에 써있던 말인 너 자신을 알라는 분수를 알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세상만사를 모두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알라는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격언이다. 그 말인즉, 결국 매사에 겸손하라는 말이 아닐까. 속된 말로 무식한 이가 용감한 법이다. 아니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맹신적 모습을 경계하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지금도 여전히 철 지난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와 그놈의 지긋지긋한 트리플다운 효과를 앵무새 타령하듯 주술처럼 외우는 나라와 보수 언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보다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사유와 그런 사유에 기반한 창조적 도약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판타지 회로를 돌려 보기도 한다.

 

다음 계보로 등장한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 철인정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250쪽 가량의 분량에 자그마치 천년이 넘어가는 철학의 유구한 역사를 압축해서 다루는 저자의 패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키니코스학파(혹은 견유학파)의 안분지족하는 삶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향기를 느꼈다. 사악한 쾌락주의자로 매도된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에 이어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교부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개종한 마니 교도였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이런 내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점들도 바로 놀라운 경이의 연속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면 자각한 개인은 나처럼 무언가 더 알고 싶다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소피 아문센처럼 개인의 성장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게 바로 저자가 철학 소설을 집필하면서 의도한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존 밴빌의 <케플러>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과 오래된 질문들을 격발시켰던 유사한 동인들을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이거야말로 명징한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이제 철학을 읽을 시간이 되었다는. 그런데 아쉽게도 <소피의 세계 2권은 나와 있지 않더라. 내일 도서관에 가니 원본 <소피의 세계>를 빌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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왬! 라스트 크리스마스
앤드류 리즐리 지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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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매니아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서 가요를 듣지 않았다. 왜냐구? 너무 구려서. 그 시절에는 팝송만 들었다. 누군가 가요를 듣는다고 하면, 단체로 다구리를 쳤다. 그 다음에는 헤비메틀에 미쳐 살았고. 또 그 다음에는 클래식의 세계에 흠뻑 영혼을 팔아먹었다. 지금은 다시 아이돌들이 부르는 가요를 즐겨 듣는다. 요즘 아이돌과 오래 전, 팝의 공통점을 가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신기하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조지 마이클 형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건 외전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거리에서 만났다. 들어 보니 내 덕분에 음악에 미친 그 친구는 음악다방을 차렸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때 나는 죽어라 가요를 듣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에게 나는 배신자였다. 그에게 나의 배신을 알리지 않았다.

 

중고서점에서 <!>의 멤버였던 앤드류 리즐리의 자서전을 보는 순간, 이건 사야돼!가 절로 흘러 나왔다. <라스트 크리스마스>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영국 부시 미즈 시절, 팝스타를 꿈꾸던 두 소년이 만나 훗날 세계적 팝 듀오가 되는 <!>의 태동기가 그려진다. 요그(조지 마이클)는 그리스계 혈통으로 자신의 이름과 외모 특히 그의 골칫거리였던 곱슬머리 때문에 호남자 앤드류 리즐리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의 절친 미스터 리즐리에 의하면, 요그는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범생이었던 모양이다.

 

둘은 영국 사회에서 약간이방인이었던 모양이다. 미스터 리즐리는 이집트계 그리고 요그는 그리스 혈통의 남자였다. 여튼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청소년들은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작업에 들어갔다.

 

요그와 앤드류가 청소년기를 보낸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자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 영국은 무기력증이 휩쓸고 있었다. 세계적 불경기와 민영화 바람으로 영국에서는 대규모 실업과 파업이 일상화되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은 1982년 발표된 왬의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의 가사에도 잘 나타난다. 일자리가 있건 없건 간에 하고 싶은 걸 즐기라고.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유행가 가사에 이런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물론 훗날 세계를 주름잡게 되는 왬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그런 밴드는 아니었다. 처음에 앤드류와 요그가 만든 밴드 이름은 <더 이그제큐티브>였고, 숱한 멤버 체인지를 겪으면서 듀오로 이너비전과 계약하게 된다.

 

당시 음악계는 MTV의 등장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왬의 선배격인 듀란 듀란 그리고 스팬다우 발레를 비롯한 거의 모든 밴드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각적이면서 멋진 그리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왬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초반부까지만 해도 미스터 리즐리는 곡을 만드는데 있어 요그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였다. 왬의 최고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Careless Whisper>만 하더라도 공동 작사가와 작곡가로 미스터 리즐리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음악에 있어 욕심쟁이였던 요그(팝스타가 되기 위해 조지 마이클이라는 예명을 정했다)가 친구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명곡을 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1981년에 대강의 모티프를 잡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세계적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되는 조지 마이클이 이 곡을 만들면서 거의 완벽을 추구하는 바람에 곡의 시그니처가 된 초반의 색소폰 연주자를 11번인가 갈아 치웠다고 했던가. 지금도 절로 곡의 가사가 외워지는 <Careless Whisper>를 대학 시절 어느 맥줏집에서 같이 듣던 동기는 나이트클럽 부루스 타임에 스텝이 쩍쩍 붙는다는 말을 내게 했었지. 그저 이 곡을 노래로만 알았지, 댄스 플로어에서도 즐기는 명곡인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행운의 여신이 왬에게 미소를 보냈고, 1983년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이 영국에서 대성공하면서 비로소 왬이 세계적 밴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소녀팬들의 우상이 된 두 영국 청년들의 야심은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영국 시장의 성공만으로는 야심가였던 조지 마이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팝의 본토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만 했다. 한편, 유명세를 타기 위해 팀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온갖 종류의 자극적 루머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스터 리즐리가 죄인 역할을 맡았다면, 조지 마이클은 성자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Club Tropicana>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이비사섬에서 조지 마이클은 앤드류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힌다. 자신이 게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1980년대였고, 지금과 또 상황이 달랐다. 유리 멘탈(?)이었던 조지 마이클은 자신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겼다. 건강하고 순수한 쾌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이미지가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팬을 속였던 걸까? 모르겠다, 지금의 기준에서 40년 전의 팝스타들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는 게 옳은지 말이다.

 

어쨌든 왬이 세계 정상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 음악적 성취는 바로 두 번째 앨범이었던 <Make It Big>1984년 발표되면서였다. 전작 <판타스틱>이 치기 어린 두 청년들의 장난기 이런 그런 음악적 시도였다면, <Make It Big>이 차원이 다른 그런 음악들을 선보였다. 색소폰 전주만 들어도 짜릿해지는 <Careless Whisper>는 차치하고서라도, <Wake Me Up Befor You Go Go>를 필두로 해서 <Everything She Wants> 그리고 <Freedom>의 잇단 대흥행 그리고 전미투어까지 대성공시키면서 왬은 단순하게 영국 밴드가 아닌 그야말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또한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가 합심해서 창조한 왬의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한다. 차트 성적에 유난히 집착하는 조지 마이클과 달리 미스터 리즐리는 순수하게 대규모 밴드와 함께 하는 투어를 온전하게 즐겼다.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로 불타는 야망을 가지고 있던 조지 마이클에게 왬은 어쩌면 하나의 굴레였을 지도 모르겠다. 밴드에서의 비중도 지나치게 조지 마이클에게 기울면서 두 친구의 불화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언론의 지나친 관심 덕분에 정상에 섰던 두 친구의 밴드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둘이 합작해서 만든 <Careless Whisper>는 조지 마이클의 솔로곡으로 발표가 되었다. 미스터 리즐리가 많은 면에서 음악적으로 자신보다 출중했던 친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였다면 그 또한 이상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그런 오해들을 해소하는데 할애한다. 어쩌면 이제 고인이 된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왬은 1986628일 웸블리에서 가진 파이널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대항해를 마무리지었다. 해체와 더불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지 마이클은 다음해에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발표하면서 레전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슈퍼스타 친구의 버프를 받았지만, 미스터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폭망했고 그는 영원히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전에 잠시 레이서로서 활동도 했지만 그 역시 그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왬의 자서전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청소년 시절, 왬의 태동기 그리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진행한다. 왬 이후에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2016년 크리스마스날 날아온 비보를 전하는 것으로 자서전의 대미를 마친다.

 

음악으로만 접하던 어린 시절 우상이 직접 저술한 자서전을 통해 만나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 나오는 노래들을 찾아 다시 듣고, 또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영국의 평범한 청년들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팝스타가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곡/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가라는 부모님의 명령은 1981년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이십대의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자신들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노래에 담았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그에 반응했던 게 아닐까.

 

인기 절정의 팝스타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거대한 도전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머쥔 청년들에게 조언을 건네줄 멘토의 존재가 부재했다는 점도 아쉽게 다가왔다. 특히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터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하도 들어서 절로 싱어롱을 하게 된다. 나에게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그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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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2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am 저도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었는데 와! 요그라는 이름 참 이색적이네요 그리스를 연결해서 상상해 본적도 없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아했던,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레삭매냐 2023-12-23 22:59   좋아요 0 | URL
지난 여름에 넷플릭스에서 <왬!>
다큐가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넷플 구독자가 아닌지라 아직
도 못봤네요 ^^ 진짜 재밌다고 하
던데 말이죠.

항상 음악만 듣다가 책으로 만나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4-01-1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혹시 넷플릭스 왬 다큐보셨나요?
초딩 6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조지 마이클이었어요. AFKN에서 faith 뮤직비디오 보고 세상에! 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ㅋㅋ
내 나이에 보면 안될 거 같은데 보고는 싶고 혼자 흠모했었네요. 어릴 때는 외모가 좀 아니었는데 데뷔하고 섹시해지면서 여성팬이 폭발적으로 늘자 본인도 당황하고 괴로워했다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은 모르니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지.

레삭매냐 2024-01-10 12:59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독서모임에서 저희 동지분께서
넷플 <왬!> 다큐 소개를 해주셔서 보고
는 싶었으나 넷플 계정이 없는 관계로
못 봤네요.

그러니깐요, <Faith> 시절 조지 마이클
은 정말 !!! 쨩쨩쨩 ~ 저도 에프켄에서
뮤비 보고 기냥...

조지 마이클의 성정체성은 책에 보니
이미 1집 <클럽 트로피카나> 뮤비
찍을 적에 앤드류 리즐리에게 고백했
다고 하더라구요.
 
치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9
빌렘 엘스호트 지음, 금경숙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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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가운데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책이 바로 빌렘 엘스호트의 <치즈>. 엘스호트가 1882년 생이니 19세기 사람이네.

 

소설 <치즈>의 주인공 프란스 라르만스는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30년째 장기 근무 중인 회사원이다. 정말 징하게도 한 직장에서 오래도 해먹었구나. 그에게는 8명의 형제자매들이 있었고, 고령의 어머니는 노망이 나셔서 한 개 중대분의 감자를 깎거나 솜이불의 보풀 뭉치를 해체하시는 일로 하늘나라에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 앞에서 임종을 맞으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리가 언젠가 맞게 될 운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형님의 소개로 알게 된 독신남 변호사 판스혼베커 씨의 소개로 명망가 클럽에 들어가게 되고, 변변하지 못한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주선으로 어느 날 갑자기 라르만스는 사업가로 변신을 하게 된다. 명망가 클럽에서 라르만스는 해외여행도 해보지 못하고, 그네들이 나누는 레스토랑 순례기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그런 천덕꾸러기 행세를 한다. 요즘 같으면 맛집과 호화 여행지 사진들이 넘실거리는 SNS에서 소외된 중년의 전형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그에게 자극이 되었을까. 얼떨결에 네덜란드에 위치한 호른스트라사로부터 고지방 에담 치즈를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서 판매하는 총책을 맞게 된 라르만스. 그것은 1933년 당시 마치 로또 맞은 그런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한 라르만스는 당장에 다니던 조선소를 때려 치울 생각을 하지만 식구(아내)와 열두 살이나 많은 큰형님의 만류로 직장과 사업을 병행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나중에 판명되지만 잘한 결정이었다.

 

자신이 만날 회사에서 계약서를 다루었으면서도 미처 호른스트라사와의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라르만스. 자신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식구 덕분에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계약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호른스트라사에서 자그마치 20톤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양의 고지방 에담 치즈가 도착하면서 라르만스의 사업도전은 위기에 처한다. 아니 이걸 어떻게 다 팔지?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 월급쟁이로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의 노예였던 라르만스는 장사꾼의 기질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호른스트라사의 유통책이라는 직책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대한 유혹 때문에 49세 중년 남자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큰형님 의사 라르만스는 처음부터 동생 라르만스의 실패를 정확하게 예견했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라르만스의 실패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어마무시한 20톤이나 되는 에담 치즈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유통기한이 정해진 제품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 장치가 설비된 창고가 그에게는 필요했지만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다. 사무실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사는 집에 마련했다. 시간이 돈이라는 걸 알면서도 중고 책상과 타자기를 사기 위해 일주일을 허비했다. 치즈를 팔기 위해서는 유통망이 필요했는데 그에 대한 준비도 전무했다. 부랴부랴 중개상 수배에 나섰지만, 책임감 있게 자신을 대신해서 치즈를 팔아줄 사람은 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라르만스는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에서 조선소를 과감하게 때려 치우려고 했으나 식구와 형님의 만류로 일단 자발적인 신경증 환자가 되어 3개월짜리 무급병가를 냈다. 아무리 신경증 환자라고 하더라도 조선소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기에 스파이처럼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다. 세상에 이런 악조건을 업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재밌는 장면 중의 하나는 조선소에서 그의 존재감이었다. 헨리 사장님에게 보고하지 않고, 장기 무급병가를 처리하겠다는 제안을 들어 보니 라르만스는 조선소 사무실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게 아닌가 말이다. 요즘 세상이라면 당장에 정리해고 대상 1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라르만스의 일탈적 치즈 사업이 실패로 귀결되고, 그는 다시 자신의 원래 직장으로 조기 복귀한다.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그런 일탈을 라르만스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손실로 틀어막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면 소중한 인생경험을 한 것으로 퉁치자고 할까. 원래 상태로 복귀한 라르만스는 얀과 이다 그리고 식구와 더불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런 삶을 지속하게 되리라.

 

우리 현대인에게 만족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기 위해 노동하고,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끝없는 소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작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탈을 꿈꾼다. 누군가는 그 일탈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겠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던 프란스 라르만스의 실패 이야기가 누군가를 주저앉히는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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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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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기다렸다,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만나고 나서. 존 밴빌의 혁명 3부작중에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케플러>가 드디어 출간됐다. 그리고 존 밴빌의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펀딩을 해서 지난 토요일에 받아서 어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완독을 하루 끌었다. 그만큼 재밌다는 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 들여, 수천년 동안 점성술 혹은 미신에 가까웠던 천문학을 새로운 학문의 경지로 끌어 올린 문제적 인물이 바로 슈바벤 바일데어슈타트 출신의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존 밴빌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시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서 출발해서 아이작 뉴턴에 이르는 근대 자연철학자 열전 가운데 중간다리 역할로 케플러를 골랐다. 전작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이것이 전기소설인지, 아니면 바로 옆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은 관찰예능인지 모를 정도의 몰입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케플러의 아버지는 허풍장이 용병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타고난 독설가였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박쥐 날개 같이 요즘으로 치면 마약에 가까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물품을 취급하던 자연치료사, 당시 말로 하자면 마녀에 가까운 그런 인물이었다. 이런 연대기적 흐름 대신, 소설은 1600년 그러니까 새로운 세기에 프라하 근처의 베나테크성으로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 출신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학자 튀코 브라헤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대 유수의 지식인이었던 케플러의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점성술에 힘입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겨울의 추위와 튀르크 군단의 침공을 예언하면서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우주의 신비>보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케플러가 발견했다는 전체의 세 법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관심이 없는 분야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는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보다 루터 교도로서 자신이 믿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가톨릭 신앙이 대세였던 그라츠와 린츠 그리고 합스부르크 군주 밑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봉사해야 했던 인간 케플러의 고뇌에 더 관심이 갔다.

 

아내 바르바라 뮐러에게 케플러는 놀랍게도 세 번째 남편이었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수전노 같은 이미지의 장인과 바르바라에게 협공당하는 장면은 네이트판에 등장할 법한 스토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전력투구하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역시 우리네 같은 그런 일상과 싸워야 했단 말이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그런 풍경이 문득 살갑게 다가왔다.

 

생존과 알량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장인과 달리 케플러는 평생 종교적 신념을 지킨 인물이었다. 케플러가 루터 교도로서 정체성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면 그의 신산한 삶에 한줄기 빛이 비추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제국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 앞에서도 눈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떠들던 자가 바로 케플러가 아니었던가. 동행한 브라헤가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외골수였던 케플러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끝까지 십진법 체계이기 때문에 모든 수가 9로 나뉜다는 황제의 화두를 설명하는 장면은 케플러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존 밴빌식 해석이 아닐 수 없다.

 

훗날 화성 전쟁으로 알려진, 화성의 공전 궤도를 알아 내기 위해 무려 70번이나 되는 엄청난 계산을 마다하지 않고 7년이란 세월을 투자한 사나이가 바로 케플러였다. 어쩌면 그에게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운행과 천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한 어떤 하나의 놀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그런 놀이를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요하네스 케플러라는 문제적 인물이 가진 다양성의 본질과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자의 서사에 놀랄 수밖에 없다. 물론 상당 부분을 후대에 쓰인 글들을 참조했겠지만, 그것을 뼈대로 해서 지근거리에서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글로 옮긴 것 같은 전언적 서술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의붓딸 레기나와의 관계에서 특히 그런 점이 느껴졌다.

 

자신을 발탁한 튀코 브라헤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장년의 변덕스러운 브라헤 특의 오만함과 허영심에 질린 케플러는 그의 존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천문학계에서 코페르니쿠스를 계승해서 나름 빼어난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신이 크리스티안 롱베르나 텡나겔 같은 브라헤의 조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과음 때문에 발생한 방광염으로 사망한 브라헤가 남긴 천문관측 자료들은 결국 그의 유언에 따라 케플러가 상속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케플러에게 브라헤가 남긴 자료들은 그야말로 노다지가 아니었을까.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루돌프력을 만드는 수고 역시 케플러의 몫이 되었다.

 

브라헤 사후, 케플러는 제국의 공식 수학자가 되었지만 군주들이 원하던 점성술사로서의 역할에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지지해주던 루돌프 2세가 강제로 퇴위되고 경쟁자 마티아스 그리고 자신과 악연으로 얽힌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케플러의 운명 역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30년전쟁>이라는 대전란 가운데,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페르디난트 2세의 치하에서 곡예에 가까운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케플러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자신에게 한푼의 유산도 상속하지 않은 아내 바르바라는 끝내 케플러의 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다. 의붓딸 레기나 역시 27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라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도 유년기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케플러에게 삶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의 원천이기도 했다.

 

소설 후반에 아주 짧게 페르디난트 2세의 총사령관으로 전장에서 맹활약한 발렌슈타인과의 인연도 등장한다. 구두쇠 황제는 자신이 케플러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돈을 발렌슈타인에게 떠넘긴다. 케플러를 천문학자라기보다 자신의 개인 연금술사나 점성술사 정도로 받아들인 발렌슈타인은 케플러가 바라던 후원을 해주지 않았다.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총애를 잃고 몰락해 버리면서, 케플러는 연구와 책의 인쇄를 위한 자금줄이 막혀 버렸다. 다시 한 번 황제에게 자금 출연을 호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케플러는 16301115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했다.

 

르네상스 부흥으로 촉발된 인문주의와 자연철학의 세례, 새로운 세계관을 상징하는 종교개혁 그리고 인쇄술의 진보에 힘입어 요하네스 케플러는 새로운 천문학의 길을 닦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식들과 부인을 차례로 잃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마녀 재판에 회부되어 송사로 수년간 시달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케플러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질서와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케플러의 인생 후반기는 역병과 기근이 끊이지 않던 30년 전쟁이라는 대전란의 시기였다는 점이다. 다사다난한 개인사, 종교적 핍박과 역경의 시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케플러의 3법칙과 훗날 뉴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행성 간의 중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단순하게 근대 천문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케플러가 품고 있던 다채로운 삶의 스펙트럼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무대에 올려 독자에게 소개한 저자 존 밴빌의 의도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혁명 3부작의 마지막 주자인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는 <뉴턴 레터>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인별그램에서 케플러에 대한 피드가 있나 해서 검색해 보니, 죄다 걸그룹 케플러에 대한 피드만 보여서 좀 실망했다. 21세기에는 천체와 행성 전문가 케플러보다 아티스트 케플러의 유명세가 더 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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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12-19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언제 다 읽으시고 이렇게 정성들여 쓰셨나요^^ 대단하세요! 저도 받아서 표지만 구경한 상태입니다^^ 혁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도 기다려지네요!

레삭매냐 2023-12-19 08:24   좋아요 1 | URL
너무 재밌어서 손에 잡는 순간,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고고씽!~입니다.

언능 <뉴턴 레터>가 나왔으면
합니다.

존 밴빌은 책도 많이 썼는데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책이 많이 없더라구요.

독서괭 2023-12-19 0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재밌어 보이네요! 1부 코페르니쿠스도 몰랐는데 혁명3부작, 찜해갑니다~~

레삭매냐 2023-12-19 08:25   좋아요 1 | URL
아숩게도 <닥터 코페르니쿠스>는
절판돼서 이제는 구할 수가 없더라
구요. 중고서점에도 없구...
도서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케플러> 너무 재밌었습니다.

blanca 2024-01-09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지도 몰랐네요. 존 밴빌 <바다>는 지금도 그 강렬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는데 케플러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