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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와 배신자들 - 제2차 세계대전 속 논란의 인물들
이준호 지음 / 눌와 / 2023년 9월
평점 :
얼마 전에 나온 이안 부루마의 <부역자>란 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이준호 작가의 <반역자와 배신자들>이라는 책이 나와 호기심에 나열된 인물들의 일대기를 읽게 됐다. 네이버 브런치북 시리즈 턴코트인가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기존의 10명에 책에는 4명을 추가해서 1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역사상 유명한 반역자와 배신자들 가운데서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공간으로 한정했다. 광활한 공간인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습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영웅일 수도 있지만, 상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반역/배신자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먼저 가장 많이 나의 관심을 끈 인물은 바로 지난달에 읽은 <베를린 함락 1945>에도 등장하는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이었다. 소비에트 적군 출신으로, 스탈린의 무자비한 숙청의 피바람 속에서도 살아남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 중의 하나였던 독소전 초기에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파죽지세로 적도 모스크바까지 쇄도한 독일군을 상대로, 소비에트 엘리트 장군 출신 블라소프는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독일군을 격퇴시키는 엄청난 무공을 세웠다. 아마 이 때가 그의 군인생 최고의 절정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블라소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1942년 독일군에 대한 역습에 나섰다가 역으로 포위되어 결국 독일군의 포로 신세가 된 블라소프. 스탈린의 군부에 대한 대숙청에 진절머리가 나고 스탈린의 소비에트에 환멸을 느낀 블라소프는 독일군에 적극 협력하기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독일군의 기세는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결국 모두가 알다시피 히틀러의 제3제국은 패망했다. 소비에트군은 그 누구보다도 독일에 협력한 히비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그 사실을 잘 알던 히비들은 발악적으로 전투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히비(Hiwi: 힐프스빌리게(Hilfswilige, 자발적 조력자)들로 구성된 자유 러시아군을 이끌던 블라소프는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됐다.
앙리 필리프 페탱이야말로 문제적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군인으로서 페탱의 출발은 소박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끝낼 전쟁(1차 세계대전)을 통해 조국 프랑스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하면서 영웅으로 거듭났다. 슐리펜 계획을 앞세워, 1871년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독일군의 침공을 마른 전투에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100만에 가까운 전상자가 발생했지만, 베르됭 전역에서도 페탱은 독일군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냈다. 참, 그전에 자신의 수하 부하로 애송이 장교였던 샤를 드골과의 만남도 잠시 언급이 되었던가.
모두에게 칭송받는 전쟁영웅이었던 페탱은 전후 프랑스 좌파들이 잇달아 집권하는 시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39년 초, 자신과 인연이 있던 프랑코 총통의 나라 스페인 대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독일의 전격전으로 프랑스군이 참패하고 파리가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페탱을 말리지만, 조국의 위기를 못본 체 할 수 없었던 페탱은 인생에서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 독일군이 조종하는 비시 괴뢰정부의 수반이 되면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쌓아온 그동안의 업적을 무위로 돌린 것이다.
나치의 프랑스 지배와 정복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으로 끝났고, 드골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비시 정부를 대신하게 됐다. 졸지에 부역자 신세에 사형 선고까지 받은 왕년의 전쟁 영웅의 말로를 그냥 볼 수 없었던 드골은 직권으로 페탱을 종신형으로 감형시켰다. 어느 순간 엇나가기는 했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어느 장군의 말로가 씁쓸하게 다가왔다.
매국노의 대명사처럼 등장하는 노르웨이 출신 비드쿤 크비슬링의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나는 처음에 크비슬링이 그저 평범한 나치즘에 경도되어 나라를 팔아 먹은 정치인 출신 매국노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출발점은 노르웨이 육사 출신의 군인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에서 활약은 인도주의자였다. 이런 인물이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놀랍지 않은가. 물론 여자관계를 포함한 사생활은 좀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영국으로부터 훈장도 받은 이른바 소련통이었던 크비슬링은 소비에트 독재 치하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게 됐다. 조국 노르웨이로 귀국해서는 유사 파시스트 정당활동을 하면서 점점 더 오른쪽으로 치닫게 됐다. 노르웨이 국내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나쁜 친구’ 알프레드 로젠베르크(나치 이론가)를 만나게 되면서 선을 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전쟁 수행을 위해 스웨덴의 철광석 수입과 영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나치 독일이 베저위붕 작전으로 노르웨이를 침공하게 되고 크비슬링을 괴뢰 정권의 수반으로 삼았다. 베저위붕 작전이 궁금해서 어제 너튜브를 검색해 보니, 철광석 자원과 부동항 확보가 주된 요인이 아닌, 1년 뒤에 개시될 소련 침공을 대비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약체로 생각했던 노르웨이군의 치열한 저항으로 국왕 호쿤 7세와 정권 인사들이 탈출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이 때 베저위붕 작전으로 입은 독일 해군의 손실로 독일의 영국 침공 작전에 차질이 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발칸 작전으로 소련을 제압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주자인 드라자 미하일로비치로 넘어가게 되는 건가. 참, 크비슬링은 전쟁이 끝나고 당연히 반역자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서방에는 체트닉 지도자로 알려진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역시 문제적 인간의 전형이다. 구 세르비아 출신 민족주의자 그리고 엘리트 군인이었던 미하일로비치는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다. 그리고 보니, 첫 번째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들도 상당히 많이 이 책에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한 반독 성향의 쿠데타를 제압하기 위해 히틀러가 정예군을 파견하면서 그 결과 바르바로사 소련 침공을 6주 정도 연기하게 되었는데, 총통이 소련 공략에 실패하게 되는 후과를 초래했다. 당연히 유고군은 독일군에게 10일 만에 조국이 유린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미하일로비치가 이끄는 체트닉과 티토의 빨치산이 점령 독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항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서방 진영에서는 티토의 빨치산보다 체트닉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티토보다 왕정 복고를 주창하는 민족주의가 미하일로비치가 서방 연합군의 취향에 맞아서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대독 저항에 미온적인 미하일로비치의 애매한 태도였다. 독일 점령군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티토의 빨치산과 달리 체트닉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은밀한 지원 아래, 크로아티아 괴뢰 정부 소속의 우스타냐나 티토의 빨치산과 전후를 대비한 권력 투쟁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국 이를 알게 된 서방에서는 체트닉에 대한 지원을 끊고, 유고슬라비아 국왕 페타르 2세도 티토를 저항군 지도자로 추인하게 된다. 물론 체트닉이 많은 연합군 조종사들을 구출한 공로도 있지만, 저항세력의 주도권은 티토의 빨치산으로 넘었갔다. 전쟁이 끝나고 1년 가까이 도주하던 미하일로비치와 잔당들은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티토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던 구 유고의 질서가 붕괴되면서 대 세르비아주의의 부활로 미하일로비치의 이미지가 반역자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변신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반역자와 배신자들> 최악의 빌런은 역시 카렐 추르다가 아닐까 싶다. <새벽의 7인>, <유인원 작전>, 로랑 비네의 인프라 소설 <HHhH>, 리디체 학살 그리고 라인하르트 프리드리히. 역사에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체코 출신으로 동지들을 배신한 카렐 추르다야말로 저자가 꼽은 14인의 악인열전 중에서도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히틀러의 재무장과 인근 국가들에 대한 영토적 야욕으로 2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가운데, 1938년 뮌헨 회담으로 신생독립국 체코의 운명이 결정됐다. 300만 소수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주데텐란트 병탄을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독일에게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결국 전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주데텐 할양을 허용해 버렸다. 그것으로 레벤스라움을 주창하는 히틀러의 야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삼킨 히틀러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체코는 독일의 전쟁 수행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였다. 독일 전쟁기계를 위한 병기창이었다고나 할까. 한편, 체코 지하 저항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히틀러는 보헤미아-모라비아 총독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국보안대 수장을 지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프라하에 파견했다. 이 희대의 악당은 1942년 반제 회의에서 전 유럽의 유대인 전멸계획은 세웠다. “금발의 짐승” 혹은 “프라하의 도살자”로 불린 골수 나치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기대에 부응해서 보헤미아의 소요사태를 일소하기에 이른다.
이런 악당을 제거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와 런던의 체코 망명정부는 이른바 <유인원 작전>을 시행하기로 결정하고, 얀 쿠비스와 요제프 가브칙을 필두로 한 암살요원들을 프라하에 파견한다. 그리고 그전에 먼저 파괴공작을 위해 투입된 이가 있으니 바로 배신자 카렐 추르다였다. 그 역시 조국을 점령한 독일에 저항하는 전사였다. 하지만 쿠비스와 가브칙이 우여곡절 끝에 하이드리히 암살에 성공하고, 나치가 대대적인 범인 검거에 나서자 그만 막대한 현상금과 사면이라는 유혹에 눈이 멀어 그만 동지들을 배신했다. ‘새벽의 7인들’이 성키릴과 성메토디우스 성당에서 벌인 처절한 사투는 영화에서 리얼하게 그려졌다. 얀과 요제프의 마지막 순간은 정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7인의 용사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성당을 찾아가 보도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드리히 암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고위직을 상대로 유일하게 성공한 표적암살 사례로 기록되었다. 나치의 보복으로 리디체 학살사건과 카렐 추르다의 밀고로 숱한 체코 레지스탕스들이 나치 독일군에게 처형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전후 처리과정에서 독일에게 할양되었던 주데텐란트를 다시 찾아올 수 있었으며, 체코 망명정부의 위신도 올라갔다. 인터넷의 어느 글에서 보니 이 사건이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들며 왜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냐는 지적을 인상 깊게 봤다. 하이드리히 암살 사건은 계속해서 영화나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승승장구하던 독일 제국의 승리에 베팅했던 카렐 추르다는 결국 독일의 패망과 함께 체포되어 처형됐다. 왜 동지들을 배신했냐는 질문에 배신자는 100만 마르크를 준다면, 너도 그랬을 거라는 말로 응대한다. 바로 영화 <암살>의 엔딩이 떠올랐다. 밀정 염석진은 조국이 해방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해방될 줄 알았다면 그랬(배신했)겠냐는 말과 너무 똑같지 않나.
군출신 행정가 카를 프리드리히 괴르델러의 행적은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지금은 폴란드 영토가 된 포센 지방 출신의 괴르델러는 보수적 환경에서 자라났다.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처럼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기도 했고, 철십자훈장을 두 개나 받은 베테랑이었다. 전후에는 자유군단 소속으로 독일 좌파들과 대결하기도 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부시장과 라이프치히 시장을 역임하면서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파펜 이후,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히틀러가 수상이 되면서 역사가 뒤바뀌게 되었지만 말이다. 괴르델러는 뒤통수를 맞아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극우 나치즘과 결을 같이 했지만, 반유대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괴르델러는 결국 히틀러를 암살해서 소련군이 서쪽으로 더 진군해 오기 전에 서방연합군과 종전에 협의하겠다는 이른바 <발퀴레 작전>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수많은 인사들이 가담한 발퀴레 작전은 히틀러가 볼프샨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작전이 성공했다면 총리의 자리에 올랐을 지도 모를 괴르델러 역시 체포되어 1945년 2월 2일 베를린의 플뢰첸제 교도소에서 처형당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독재자의 폭주를 막고 조국을 파멸에서 구하기 위해, 독일에도 이런 양심가들의 저항이 존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외에도 독일 출신으로 미국 할리우드 건너가 화려한 은막 스타가 된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필두로 해서, 벨기에 출신 마지막 파시스트라는 별명의 레옹 드그렐(베를린 전투에서 독일인이 아닌 외국 의용군 출신 무장병력들이 소련군에 대항해서 더 악착같이 싸웠다), 귀족 출신 외교관이자 무솔리니의 사위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갈레아초 치아노 같은 인물들도 흥미를 끌었다.
처음부터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인물들도 있었지만, 페탱이나 블라소프처럼 한 때는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들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이 연상됐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일개 너튜버들의 자의적 해석에 의지해서 무리한 일을 벌이는 모습에 안쓰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