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책 중에서 내가 엑셀에 따로 기록해 놓은 건 800권. 그 중 민음사와 황금가지는 총 88권이다(사이언스 북스와 반비 등은 빼고). 문학동네에 비하면 (예를들어 세계문학전집 디자인) 좀 올드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때문에 민음사라는 브랜드는 어느정도 책의 품질을 보증하는 이름이 될 수 있다. 


 황금가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작품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민음사의 역사관련 도서들과 반비의 사회과학 도서들(특히 시사통 도서화 프로젝트), 사이언스북스의 과학도서들 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이 많아서 나는 민음사 출판브랜드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러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시리즈가 폭망하고 출간이 중지된 것은 아주 마음아프다. 한국의 SF팬들이 500명이라서 관련 작품이 나오기 정말 힘들다던데, 문득 그분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민음사가 돈을 엄청 벌면 다시 나오려나....<샤프 시리즈>도 읽고 싶은데 출간 안하시나요......? 아니, 내가 영어를 배우는게 더 빠르려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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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인증사진 이벤트 응모의 장점이 출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죠. 예를 들면 절판된 책을 다시 재출간하라는 식으로 말이에요. ^^

 


충동구매

 살다보면 가끔씩 의도치 않은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책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않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날 때도 있다. 사실 나는 일본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민족주의적인 애국의식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일본소설에 나오는 배경이나 고유명사가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다.(나는 원래 소설은 한국작가 작품도 잘 안 읽는다.) 그래서 이 책을 사게 된 것도 완전히 내 의지는 아니었다.
 어느날 내가 팔로잉 하고있는 김남훈씨가 이 <작가의 문장수업>을 읽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고, 얼마 후에 이 책을 추천하는 트윗을 올렸다. 그걸 본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한심한 글쓰기 능력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다른 책에 끼워서 <작가의 문장수업>을 구매했다. 그러나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읽어보고 별로면 되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덕분에 이 책은 내 책장에서 꽤 오랫동안 묵어야했다.

 이 책을 산 이유도 별거 없었듯이,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낸 이유도 별것은 아니었다. 요즘들어 계속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고, 안읽은 책이 너무 많이 쌓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끝에 분량이 적은 책부터 읽어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도 분량이 적고 크기도 작은 편이라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글쓰기, 구상부터 퇴고까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글쓰기의 세부적인 스킬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스포츠 팬들은, 슈퍼스타 출신 감독이 선수들에게 무조건 “야, 이걸 왜못해? 그냥 이렇게하면 되잖아.”라고만 하기 때문에 선수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점은 작가들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글쓰기 책들은 작가가 굵직한 원칙만 제시할 뿐, 그걸 정확히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글의 구상은 어떻게 하는지, 문장과 글 전체의 구성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심지어 글을 쓰다가 막히면 워드 프로그램이나 폰트를 바꿔보라는 조언까지 담겨져 있다. 만약 글쓰기가 막막한 사람이라면 이 책의 세세한 조언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분간 글이 마음에 들 때까지 이 이미지를 낙관처럼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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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장바구니에 넣겠습니다 ^^..

Postumus 2016-03-09 00:16   좋아요 1 | URL
역시 책은 충동구매죠ㅎ
 

염불보다 잿밥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내 시선을 이 책으로 끈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로마의 일인자>세트에 끼워주는 데나리온 은화 레플리카와 S.P.Q.R.이 새겨진 대리석 문진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이런식으로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홍보 페이지에 발목을 붙잡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증정품만 주면 아무 책이나 살 정도로 정신을 놓지는 않은지라, 홍보문구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한욱 교수의 "시오노 나나미의 그릇된 로마사 해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걸작이다.라는 추천사를 보고 말았다. 초등학교 시절, 코묻은 돈을 모아 한권 한권 구매 했던 <로마인 이야기> 저자의 상태가 영좋지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나서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나는 이 문구에 설득 당하고 말았다. 


  
독서를 위한 준비물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매우 분량이 많은 시리즈이다. 평균 500~600쪽 정도되는 책 세 권이 1부를 구성하고 있으니 단행본이 모여있는 위용 만으로도 독자를 움츠러들게 한다. 또 이름들은 왜이리도 길고, 많고, 어려운지. 심지어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하니, 책을 읽는 동안 암기로 인한 고통이 상당하다. 게다가 사람 이름 외에도 수많은 지명이 읽는 이를 괴롭힌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자그마한 것들에 집착해서 끙끙대는 것은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처음 읽는 독자들은 곁가지들에서 시선을 거두자. 사소한 것들을 외우느라 책의 스토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핵심인물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중해도 외울 내용은 충분히 많다. 다만, 주요인물들의 코그노멘과 노멘, 프라이노멘은 잘 외워두자. 거기에 간단한 가계도 정도만 알아둔다면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유서가에서 나온 증정용 지도 또는 인터넷에서 출력한 고대 로마 지도를 옆에 펴놓는다면 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시리즈를 읽을 준비는 끝난다.


야심가들의 시대

 이 시리즈의 배경인 로마 공화정 말기는 여느 사회의 말기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던 시절이었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계급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불안. 그리고 여러 “야만인”들의 침입이 쉴 새 없이 로마를 향해 들이쳤다. 이러한 사회적 격변은 다수의 인민을 고통 속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수많은 야심가들을 낳기도 했다. 또한 혼란은 그 야심가들을 정치적 거물로 성장시켰다.
 

 내가 이들을 “영웅”이 아닌 “야심가”라고 지칭한 이유는 그들이 신화적인 영웅의 면모 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유능하면서도 음험하지 않다. 그는 작품 초반 가장 완벽해보이는 인물이며, 영웅에 걸맞는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그는 육체가 시들어감에따라 점점 뒤틀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술라는 아폴론 신과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그의 내면에는 탐욕스러운 냉혈한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없는 현실에서는 술라의 모습이 영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 술라를 영웅이라고 칭하기에는 거북한 마음이 든다. 이 두 인물 외에도 다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모두들 결함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특징은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더욱 생동감있게 만든다. 만약 마리우스가 끝까지 근엄한 영웅이었다면, 술라에게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없었다면, 스카우루스가 그저 꽉막힌 수꼴 악당이었다면 이 작품은 지금과 같은 현실성과 흡입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입체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작가가 상상에 의존해서 쓴 흥미위주의 소설로 치부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큰 실례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도 끈질기게 매달렸다. "13년 고증, 20년 집필.” 세일즈 문구로 이보다 적당한 말이 또 있을까? 이 책의 고증은 역사적 사건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당시 로마인들의 이념, 가치관, 문화 등이 녹아있다. 그리고 모든 인물들은 그 가치관에 입각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말 그대로 로마인들이 직접 상연하는 로마 시대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P.Q.R.과 대한민국

 이 작품에서 핵심적인 소재는 로마의 인민들이다. 공화정 로마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로마 시내에 웅크리고 있는 인민의 무리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거대한 물리적 위협이 되거나, 든든한 지지기반이 된다. 머릿수로는 한 줌 밖에 안되는 원로원, 호민관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많은 인민들이 화가나서 몰려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졌을 것이다. 반면, 인민을 등에 업은 자는 로마의 통제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혈통이나 인맥을 갖지 못한 자들은 인민들의 지지에 집착했다. 마리우스가 그랬고, 사투르니누스가 그랬다. 그들에게 로마 인민은 수단이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수없이 접한 선한 인민과 악한 지배층이라는 구도에 익숙해져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런 단순한 프레임은 유효하지 않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대부분의 지배층은 탐욕스럽고 거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민들이 선하게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수의 인민들은 정치적인 권한을 갖지도 못했지만, 큰 불만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선동정치가의 세 치혀에 놀아나거나, 마리우스와 같은 명망가의 말에 부화뇌동 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면서 엉뚱한 일에만 화를 내고, 자신들의 역량을 사용한다.

 그렇기때문에 독자들은 계속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다. 저 어리석은 인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원로원이 빵 몇 덩이로 그들을 계속 “사육”하다시피 하는 것이 옳은가? 만약 인민들이 권력을 얻는다면 선동정치가들이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스스로 제왕적 위치에 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기존의 체제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로마는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붕괴했을지도 모른다. 이민족과의 전쟁, 시칠리아 반란, 삼니움 전쟁 등이 그 붕괴의 전조였다. 당시의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지금와서 어떤 방향이 옳았다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2천년 전 로마인보다 크게 나아졌을까?

 로마의 모토는 S.P.Q.R.이었다.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들”. 로마인들은 이들이 로마의 주권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주권자 인민이란 최소한 어느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무장을 하고 로마군에 입대할 수 있는 자를 뜻했다. 그러지 못할만큼 가난한 자들은 로마 시민이기는 했으나, 사실상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00년 후 한국의 헌법 역시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고 말하고 있다. 역시 구호는 구호일 뿐인 것일까?



완간을 기다리며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한 부를 완독하기 위해서는 거의 2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어느부분에서는 지루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파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작가의 완급조절일 뿐이다.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다시 엄청난 긴장감으로 독자를 작품으로 끌어당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분량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품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밀당을 하다보면 어느새 당신은 책의 마지막 장을 붙잡고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이 때의 기분은 마치 몇 개월을 기다린 미드의 시즌이 끝날 때와 같은 느낌이다.
 

 혹시 기다리는게 힘들다고 완간되면 한 번에 사서 읽어야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이미 한 번 완간에 실패한 적 있는 불운한 시리즈이다. 90년대에 교원문고에서 출간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시오노 할머니의 <로마인 이야기>에 밀리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완간까지 기다리느라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이 시리즈는 또 다시 절판 될지도 모른다. 정 한 번에 쉬지 않고 읽고 싶다면 책을 사서 책장에 묵혀둘 것을 권한다. 그렇게하면 교유서가의 아기자기한 증정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콜린 매컬로 여사의 역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이번에는 꼭 완간되어서 한국독자들 사이에서 로마열풍을 불러 일으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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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유서가가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출판사인데다가 지금의 인기를 생각하면 절대로 절판되지 않을 겁니다. ^^

Postumus 2016-03-08 15:58   좋아요 0 | URL
네, 얼마전에 보니까 대략적인 완간 스케줄도 나와있더라구요. 그래도 기다리는건 힘들어요ㅎ
 


 사실 제 서가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똑같이 세계문학접집을 내고 패밀리 브랜드도 가지고 있는 민음사나 문학동네에 비해 훨씬 적은 수지요. 그렇다고  열린책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들을 구매할 때 가장 꺼리는 부분은 바로 페이지의 글자 밀도가 너무 높고, 대부분의 책이 양장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세계문학전집같이 사이즈가 작은 책들에서 가장 불편한데요, 큰 책이라면 책상에 놓고 읽으면 되니까 양장본인 점이 그다지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작은 책의 경우는 손으로 잡고 읽는 경우가 많은데 커버가 양장이 되어있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어정쩡한 그립으로 책을 잡고 읽게 됩니다. 그렇다고 책상에 놓고 읽자니 책이 훌러덩 넘어가 버리니 환장할 노릇이지요. 그래서 문학동네처럼 양장과 반양장 두 가지로 책이 나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자의 밀도도 약간만 낮춰서 책 가격이 좀 오르더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앞으로 열린책들의 책에 좀 더 손이 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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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스터 노` 세계문학전집이었을 때 판형이 작아서 좋았어요. 들고 다니기가 편했어요. 단점이라면 역시 활자 크기가 작아서 눈이 금방 피로감을 느껴요.

Postumus 2016-02-10 16:51   좋아요 0 | URL
들고다니기 편한 작은 책들의 숙명인거 같아요. 그렇다고 활자크기를 키우자니 책이 두꺼워질거 같고 말이죠.
 
유럽 1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갑자기 유럽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교보문고 어플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저자가 캠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교수라는 점이 내가 이 책을 선택하는데 큰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유럽사를 다룬 책인만큼, 유럽의 전문가가 집필한 책이 좀 더 나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BBC에서 논픽션 부문 상도 받았다고 하니, 기본적으로 말도 안되는 퀄리티의 책은 아닐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 책은 두 권짜리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1453년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2권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나의 관심사는 근대사였기 때문에 일단 1권만 샀는데,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약간 겁먹기도 했다. 
 내가 책의 분량때문에 긴장한 이유는 나의 습관인 책쇼핑때문에 쌓여있는 책들을 빨리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만져보니 다른 책보다 종이 재질이 약간 두꺼웠고, 뒤의 100쪽 가량은 참고자료 목록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책의 분량은 370쪽 가량이었다. 이것을 확인하고 나니 책의 분량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1453년은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해인데, 유럽사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시대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내가 세계사를 배울때를 생각해보면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비해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동로마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로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유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 세력과 서유럽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제국이 무너지면서, 오스만 제국이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술탄 메메드 2세가 자신을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하고 그 이름을 바탕으로 보편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제국이 무너지고나서, 동로마제국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서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로인해 동방의 각종 학문이 서유럽으로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초반부에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나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신성로마제국은 당시 유럽의 세력균형에 가장 중요한 무게추였다. 그렇기때문에 강대국의 왕들은 선제후 회의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기를 바랐고, 이를 위해 왕들은 갖가지 로비와 협박 등의 정치행위를 벌였다.
 동시에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독일 지역이 통일된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않았다. 당시 독일은 바이에른, 작센, 프로이센 등 여러 지역과 도시가 황제 아래에서 독자적인 지배권을 갖는 영방국가 체제였는데, 당시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통일되어 단일한 국가가 된다면 유럽의 세력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독일의 분열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당시 유럽의 중요한 정책기조 중 하나였다. 
 이렇게 당시 유럽은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모두가 중부유럽의 지배자가 되고자 했지만, 그곳에 강력한 국가가 탄생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것은 결국 하나의 목적성을 드러내는데, 오직 자신만이 유럽의 보편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갖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르봉과 합스부르크는 대륙의 패권을 노리는 대표적인 세력이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 외에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은 낮은땅이라는 뜻의 플랑드르이다. 플랑드르는 프랑스 북부 지역 일부와 네덜란드, 벨기에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키는데, 이 지역에는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우선 영국의 입장에서는 플랑드르가 적대세력의 지배권에 들어갈 경우 본토를 위협하는 침공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에게 이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합스부르크의 대 프랑스 포위망의 일부이기도 했다. 반대로 합스부르크에게는 프랑스를 견제하는 거점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플랑드르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기 때문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플랑드르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의 사이에 위치한 사부아 왕국이나 알자스-로렌 지방에서도 나타난다. 각국은 서로 자신의 영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국경 사이에 자치국 형태의 완충지대를 두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완충지대의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곤했다.
 나는 이 당시 유럽 국가들의 전략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국가의 등장을 막고, 적대국가와의 사이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리 해 보았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 대원칙이 깨질 위기를 경험한 유럽의 국가들은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 빈체제를 구성하였는데, 메테르니히가 혁명의 전파보다 보편제국의 등장을 더욱 두려워했다는 식의 서술을 보면 결국 빈체제의 목적 역시 기존 세력균형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유럽 근세사의 기본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아주 좋은 지침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전에 파편화되어서 머릿속에 널려있던 역사적인 흐름들을 하나로 꿰어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전반적인 역사를 긴 기간에 걸쳐서 다루고 있기때문에 각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서술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또한 유럽의 정치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만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유럽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한 후에, 관심이 생긴 부분은 세부적인 분야의 책들을 통해서 깊게 파고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은 자주 등장하는 지명, 플랑드르나 사부아, 보헤미아 등의 위치 같은 것을 숙지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 지역들이 왜 중요한지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 땅들이 어디 붙어있는지, 어떤 민족/문화적 특징이 있는지를 모르면 몰입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점(4/5): 유럽 근세사 입문서로 아주 훌륭한 책. 그러나 자꾸 앞으로 돌아가거나 반복되는 듯한 서술이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를 지치게 만든다. 또한 특정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김이 빠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나폴레옹 전쟁 부분을 매우 기대했지만, 아주 간단한 서술로 넘어가 버려서 허무하기도 했다.
 결국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분량에 비해 재미의 요소가 다양하지 않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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