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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스프링벅이 무엇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뜻일까하고 고민을 했다. 대개 제목으로 내걸 정도라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일 테니까. 그런데 스프링벅은 아프리카에 사는 어떤 양이란다. 형용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물이라니. 스피링벅이라는 양 이야기를 들으니(정확히 표현하자면 읽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문득 레밍이라는 쥐가 생각났다. 물론 레밍은 왜 달려가는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단순히 개체수를 조정하려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정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다. 스프링벅은 풀을 뜯어먹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하니까.
창비에서 내놓는 청소년문학은 처음부터 신뢰하고 있었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지가 오래되어서일까. 요즘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생활하는구나, 선생님들은 이렇구나를 생각했다. 반면 학부모의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새로울 것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의 나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 뿐인 셈이다.
동준이가 그저 그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우연히 창제의 가출로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서서히 동준이에게로 옮겨진다. 뜻밖의 형의 죽음을 맞으면서 가정은 아슬아슬해지고 마음 붙일 곳 없는 동준은 점점 연극에 몰두한다. 아니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으로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하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결국 동준이가 연극에서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형의 마음을 대신해서 엄마에게 퍼붓는 말이 되고 만다.
대개 청소년 소설의 경우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가 많은데 반해 이 책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많다. 이런 선생님들이라면 아이들도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현재만 생각하고 자기들 위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돌아볼 줄 알고 때론 진지하게 토론도 하는 등 그야말로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리 요즘 청소년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개인주의화 되어 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이 훨씬 많겠지라는 기대를 해본다.
사실 청소년책이나 동화책이 지나치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 나머지 현실에서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래서 폭력이나 가출, 반항 등을 아주 당연하게, 때로는 멋있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에서 그런 것을 그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어른들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지 그런 행동의 당위성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이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창작를 읽히는 것에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어른들의 잘못도 인정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른이 하고 싶은 말을 은근슬쩍 던져주고 있어 안심이 된다. 즉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하되 적절한 선을 확실하게 긋고 있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가 들어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동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간중간에 연극 대본이 들어 있어 마치 두 개의 글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화를 쓰던 작가가 첫 청소년소설을 썼다는데 오히려 동화로 만났을 때보다 더 공감이 가고 구성도 매끄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억지로 결말을 내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어차피 인생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는데 결말이란 것은 없는 법이니까. 동준이는 그렇게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