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서 살아남기 1 만화로 보는 세계사 대사건
정나영 글, 이정태 그림 / 상상의집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일전에 중국에 여행갔을 때 조선족 가이드가 고려가 먼저인지 삼국시대가 먼저인지 물어보는 걸 듣고 속으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니, 어떻게 당연한 걸 모를 수가 있지? 하지만 과연 무엇이 '당연한' 것일까.  아마 나는 은연중에 조선족이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할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들은 엄연한 중국인인데도 말이다. 그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자 우리의 왕조 변천사를 모르는 게 이해가 간다. 마찬가지로 내가 영국이나 프랑스의 시대적 변화를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잠깐이나마 세계사를 배웠고 그 나라들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었어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남의 나라 역사는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는 프랑스 혁명. 그런데 남의 나라 역사여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전체적으로 체계가 안 잡혀서인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가 헷갈린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는 1592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는 1905년, 이렇게 똑똑 떨어지는데 프랑스 혁명은 언제 일어났는지 외우고 돌아서면 또 잊어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짐이 보이다가 확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던 1789년을 배경으로 한다.

 

  잃어버린 왕의 모자를 찾기 위해 누리와 자크가 과거로 돌아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내용이다. 뭔 이상한 동물인 키몬 덕분에 과거로 돌아간 둘은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상황을 함께 겪는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서 하이힐이 생겼다는 이야기며 위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막기 위해 양산이 생겼다는 이야기 등을 알 수 있다. 어른인 나는 프랑스 혁명에 초점을 맞춰서 누리와 자크가 벌이는 말썽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데 아마 아이들은 그 둘의 천방지축 못말리는 행동을 보느라 정작 프랑스의 상황에 대해서는 휘리릭 넘기지나 않을런지 모르겠다. 하긴 이런 만화를 보면서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디선가 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래도 기억을 한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뚜벅뚜벅 우리 신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최재숙 글, 이광익 그림 / 보림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에 신발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데도 나는 왜 영적인 존재인 '신'을 생각했을까. 아마 설 명절 즈음이고 조금 있으면 대보름이니 전통 문화에 대한, 그 중에서도 우리의 다양한 신-성주신, 측신, 조왕신 등-에 대한 책이라 지레짐작했나 보다.

 

  네 명이 살아도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차 있는 요즘이다. 사실 나는 신발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한 개로 세 계절을 날 정도인데도 그러니 구두 모으는 걸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지금은 운동할 때 신는  신발이라도 달리는 데 신는 신발과 걷는 데 신는 신발이 따로 있을 정도로 세분화되었다. 어찌보면 그건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 할지라도 왠지 구분해서 신어야 할 것만 같다.

 

  지금은 신발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과연 옛날에도 그랬을까.(요즘도 간혹 어느 부족은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기도 하지만 그것은 예외로 치자.) 신발의 형태를 갖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이거늘 지금까지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또한 신에 대한 책도, 못 보았다.

 

  당연히 옛날에는 주변에서 얻기 쉬운 재료를 이용해서 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짚신을 신었던 것이고. 이집트에서는 구하기 쉬운 파피루스를 이용했고 벼 농사를 짓는 우리는 짚을 이용했던 것이다. 비가 올 때 신는 나막신과 눈이 쌓인 곳에서 신는 설피, 다양하고 예쁜 고무신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특히 수혜는 만드는 과정이나 결과물이 예술이라고 할 정도이건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한복을 입을 때도 진짜 수혜가 아니라 수혜처럼 생긴 신발을 신으니 말이다. 나도 지금까지 꽃신을 신어보지 않았는데, 그리고 굳이 신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니 하나쯤 간직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나는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니 종부세를 폐지하든 안하든 변하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 다주택 소유자의 양도세 폐지에 대해서도 당장 나와 관련없고, 오히려 혹시 나중에라도 이득이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아예 모르는 척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종부세 폐지로 인해 지방교부금이 줄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역사회의 복지사업 축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던가.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예산과 위에서 이야기한 세금 감소로 인해 많은 사업이 축소되었는데 교육 예산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무상급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무상급식이 갑자기 시행되는 바람에 예산이 변경된 건 사실이겠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야말로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방향으로만 본다고나 할까. 이렇게 결국 귀 닫고 눈 감고 살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이.

 

  악몽과도 같았던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끝났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일 년이 남았고 다음에 어찌될지 모르니 더 얼마를 참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던 것이다. 현 대통령은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았기에 전 대통령의 자취를 지우려고 그토록 기를 썼던 것이고.

 

  한겨레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책을 내가 골라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 내 생각과 같은지 모르겠다. 법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우리의 법과 다른 나라의 법을 이야기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소 어렵긴 하지만 애초부터 저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었기 때문에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같은 시기에 <닥치고 정치>를 함께 읽었는데 그 책은 상당히 직설적이고 거칠게 이야기해서 마음이 후련하긴 하지만 신뢰성 면에서는 이 책이 훨씬 낫다. 감성적이면서도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냉철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흔히들 언젠가는 선이 이긴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려 애쓴다. 설마 BBK가, 용산참사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당장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고 밝혀낼 수 없다 하더라도 먼 훗날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그것이 바로 정의고 선이 아닐런지. 그러나 제목에서 시사하듯 워낙 상식이 안 통하고 정의가 안 먹히는 사회에서 4년을 지내다 보니 언제나 선이 이긴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으로서 바라는 건 딱 하나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 히어로즈 4 - 거대 공룡, 박물관을 습격하다! 슈퍼 히어로즈 4
제로니모 스틸턴 지음, 이승수 옮김 / 사파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그러나 유물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영화와 달리 여기서는 고린내파의 음모에 의해 유물들이 움직인다. 생명 주입 광선을 주입하면 무생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포크레인에게 실험을 한 결과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블랙봉봉은 새로운 음모를 꾸민다. 물론 아둔한 블랙봉봉이 처음부터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낼 리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생각을 해냈든 그것이 나쁜 사람에게 들어갔을 경우 결과는 똑같이 나쁘다는 점이다.

 

  진시왕릉의 병사를 연상시키는 테라코타 병사들을 발굴해서 유물을 전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고린내파 일당은 수많은 병사들에게 생명 주입 광선을 사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밤에만 움직이는 것에 비해 여기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수많은 병사들이 떼로 몰려다니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고린내파 일당이 잘 활용했다. 마침 요요가 그 박물관으로 견학을 가서 그들의 음모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건을 미리 막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누구의 짓인지 금방 알아서 우왕좌왕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표지와 제목에는 거대 공룡을 내세우는데 왜 난 그것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고 테라코타 병사들이 더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경찰이 사건을 모두 해결했을 때, 그리고 마침 고린내파 일당을 잡으려는 찰나에 도착해서 결과적으로 고린내파 일당이 도망가도록 만들어 준다. 그럴 때 보면 무스콰시 반장은 악당과 손잡고 비리를 저지르는 경찰이 아닐까 싶다. 설마 어린이 책에서, 그것도 그냥 유쾌하게 읽기만 하면 되는 책에서 그처럼 커다란 복선과 의미를 숨겨두지는 않았겠지만. 마지막에 고린내파 일당이 지하세계로 사라지고 나서 무스콰시 반장이 도착했을 때 지하세계는 자기들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수색할 수 없다는 말, 이거 작가가 그냥 우스개 소리로 넣은 걸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라서. 아무렴 이런 책에서 사회를 비판할 리는 없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머리 앤 올 에이지 클래식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도서관(방학이지만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조용히 하라는 말도 못하는 이곳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휴식공간이다.)에서도 꿋꿋하게 읽고 집에 가자마자 할 일도 미룬 채 새벽까지 다 읽고 잠들었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았기에 이미 결론이 어떤지, 중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알고 있는데 무엇이 이 책에 빠져들도록 했을까. 만약 읽자마자 글을 썼다면 상당히 감상적인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밤이 지나고 낮이 되니 이성을 되찾았다. 덕분에 나중에 쓴 글을 보며 부끄러워할 일은 줄어들었지만 온전한 마음을 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 머리 앤> 만화를 보았듯이 나도 그랬다.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릴 정도로 친숙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만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도 이 만화를 엄청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만화를 보며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봄이면 자연이 싹트는 과정이 보이고 벚꽃과 사과꽃이 만발한 곳에서 앤이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리고 동생은 그런 자연을 동경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묘사가 나를 다시 설레게 했다. 길 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아치 모양을 이루고(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작은 숲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배가 다닐 정도로 충분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가 있는 곳, 바로 내가 꿈꾸는 곳이다. 물론 그곳에서 살기에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릴라와 매튜가 과수원을 하는데 사실 과수원(목장도 마찬가지다.)이라는 곳이 보기에는 낭만적이어도 일이 오죽 많은가 말이다. 바느질도 해야 하고 겨우내 필요한 땔감도 준비해야 하고 저장식품까지 직접 만들어야 하니 쉴 틈이 없겠다.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초라는 사실을 이럴 때 느낀다. 옷도 직접 만들어 입고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며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조차 낭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상상하는 모습이 더 낭만적으로 각색되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온갖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를 하는 앤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에서도 입을 열었다 하면 한 페이지는 후딱이니 말이다. 마릴라처럼 냉철하고 상상의 여지가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 앤의 말을 듣기가 참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가끔 딸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쫓아다니며 이야기해서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화법을 적용해서 처음에는 잘 들어주고 공감도 해주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만 짓다가 급기야 먼저 일어나거나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마릴라가 이야기할 틈을 주지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던 앤이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걸 보며 내가 더 아쉬웠다. 그리고 마릴라가 앤이 자라는 것이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섭섭해 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부분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기분을 솔직히 표현는데 서툴다. 특히 단점이나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되어 안에서 조금씩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아원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때는 거기에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히 이야기한다. 물론 기저에 그런 어린이의 말을 들어주는 어른들이 존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마도 앤의 그러한 성격 때문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실수를 하는 앤, 그래서 실수조차 배움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마지막에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에 갈 기회를 얻지만 포기하고 에이번리에 남기로 하는 걸 보며, 만약 예전 같았으면 그 아까운 기회를 버린 것에 안타까워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각이 하루 아침에, 그것도 특별한 이유없이 달라질 리는 없을 테니까. 그건 아마도 때로는 야망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앤의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초록지붕 집을 나 또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지내는 앤의 모습을 보니 곧 기숙사에 들어갈 딸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딸도 앤처럼 열정과 낭만을 가지고 생활했으면 좋겠다. 물론 100여 년이 넘는 차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앤처럼 밖에 나가 실컷 뛰어놀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내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그 때 느꼈던 설렘을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엄마가 되어 앤을 바라보는 시간-그래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다-이었다. 그러니까 앤에게 나를 대입하기도 했다가 마릴라에게 대입하기도 했다가 나중에는 앤에게 딸을 대입하며(신기한 건, 이때는 마릴라에게 나를 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읽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이런 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꿈꾸는 감성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