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영랑 따라쓰기 ㅣ 처음책방 필사책 2
김영랑 지음, 김기태 엮음 / 처음책방 / 2025년 3월
평점 :

김소월, 윤동주, 김영랑 시인의 시를 담은 필사책이 출간되었다.
김소월, 윤동주 시인은 알겠는데 김영랑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학창시절에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모르는 시인이라고 봐야할 듯 하다.
그래서 김영랑 시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알아 낸 내용을 공유해본다.
그 전에 김기태 교수가 엮은 『김영랑 따라쓰기』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자면, 김영랑의 시를 직접 따라 쓰며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된 필사책이다. 여기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오-매 단풍 들것네」 등 총 5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엮은이인 김기태 교수는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며, 2024년 10월 '처음책방'을 설립하여 국내 유일의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영랑 따라쓰기』는 '처음책방'의 첫 출판물로, 독자들에게 좋은 시를 필사하는 즐거움을 전하고자 기획되었다.
우선 김영랑의 시 중 가장 유명한 시를 찾아보니,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이 시는 아름다운 모란꽃이 질 때의 아쉬움과 다시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마음을 담아 그의 섬세한 감성과 애절한 정서를 잘 보여준다. 눈으로 읽는 것과 직접 손을 움직여 가며 따라 써보는 감각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필사로 기록할 때 쓰는 당시에는 못 느낄 수 있지만 기억에 조금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한자 한자 정성들여서 쓰고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처럼 김영랑 시인에 대해 잘 모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 그의 시가 왜 유명한지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김영랑의 시는 한국적 정서와 서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 많다. 그의 시어(詩語)는 맑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감성을 담고 있어, 읽을수록 더 큰 울림을 준다. 특히 토속적인 단어와 부드러운 운율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리듬감을 형성한다.
둘째, 김영랑은 한자어나 외래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순우리말로만 시를 썼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한글의 순수한 미학을 잘 보여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다.
셋째, 김영랑의 시는 마치 노래하듯이 흐르는 부드러운 운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반복되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같은 구절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넷째, 김영랑의 시는 자연과 삶, 사랑, 기다림, 그리움 같은 주제를 다루며,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모란이 피기까지는」처럼 기다림과 아쉬움을 표현한 시여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다섯째, 김영랑은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어로 창작 활동을 하며 우리말과 문학을 지키려 했다. 그의 시는 민족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 덕분에 김영랑은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순수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도 사랑 받고 있다.
그리고 김영랑이 생전에 남긴 공식적인 시집은 『영랑시집』(1935년) 한 권뿐이라고 한다. 이후 그의 사후에 유고 시편들이 정리되어 추가로 출판되었다. 김영랑은 많은 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완성도가 높고 순수한 서정성을 간직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김영랑이 살아 생전에 많은 시를 남기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철저하게 다듬고 고민하는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 때문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보다 오랜 기간 동안 정제된 작품만 내놓았다.
둘째, 그는 현실 참여적인 시보다는 순수 서정시를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많은 작품을 양산하기보다 한 편을 깊이 있게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셋째, 김영랑이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1910~1945년)였다. 이로 인해 창작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으며, 특히 한국어로 창작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었다. 1940년 이후에는 일본어 창작이 강요되면서 시를 자유롭게 발표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포탄 파편을 맞아 크게 다쳤고,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시 창작 활동이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1950년 9월 29일,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시대적 환경 속에서 한국어로 시를 창작하고 남기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영랑은 꿋꿋하게 시를 써왔다. 그의 시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서정성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ㅡ
'백인혜 | 문화콘텐츠 SNS 마케터 @baekinhyebest'님을 통해 '처음책방'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