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를 하면서 달라진게 있다면 우리 식단의 변화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단백질 공급 1등 공신이던 '돼지고기가 '닭고기'로 대체된 것이다. 이슬람 교도인 버논이 '네 발 달린' 고기를 먹지 않고 '날개 달린' 새고기만 먹기 때문이다.

요리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닭고기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지 못하니 대개 뻔~한 메뉴를 돌아가며 내 놓는다. 또 새로운 것을 내놓으면 이 친구가 한번도 먹지 않거나, 잘 먹은 요리를 다시 해주면 젓가락도 대지 않아서 맘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잘 먹는 후라이드 치킨이나 핏자를 주문하는 일이 늘어나며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홈스테이 첫 달은 서로가 신선함에 탐색하며 적응하는 기간이었고, 두 달째 접어들면서는 편안함으로 한 식구가 되어갔다. 이 친구가 첫 월급을 타면서 주말이면 여행을 갔고, 우린 기다렸다는 듯 돼지고기 먹는 날로 정했다. 어제는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전국의 원어민강사들을 경주로 불러 세미나인지 중간점검인지 한단다. 그래서 버논은 어제 아침 경주에 갔고 월요일에나 돌아온단다. ^^

남편은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무엇이든 집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본인이 먹고 싶으면 퇴근길에 돼지고기를 잘 사들고 온다. 내가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양도 훨씬 많고 고기의 신선도도 좋다. 도살장이라던가 고기를 취급하는 도매상이라던가 뭐 그런게 오는 길에 있단다. 어젯밤에도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목살과 수육용 전지를 두어 덩이 사왔다. 우리 식구들은 기름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지라 삼겹살보다는 목살을, 수육도 후지보다는 전지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이미 돼지고기 넣은 김치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고, 남편은 양파와 마늘을 곁들여 구워 놓은 목살에 소주 한잔, 아니 (우리 남편 주량은 소주 한병이다) 소주 한병을 혼자 마시며 세상을 다 얻은 행복한 표정이다. 돼지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소시민의 행복을 그 누가 막을쏘냐!

전지 덩어리를 솥단지에 넣고 다시마, 양파, 마늘, 대파, 생강에 된장과 커피도 살짝 풀고 팍팍 삶아서 묵은지 곁들여서 상추나 배추에 싸 먹으면 그야말로 놀부네 보쌈이 부럽지 않다. 바로 오늘 저녁, 우린 이렇게 돼지고기 먹는 즐거움을 누릴거다. ^*^

2002년이던가 작가 한승원님을 모시고 문학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하셨던 '돼지고기 예찬'이 생각난다. 작가는 집필을 위해 고향 해남에 내려와 오두막을 짓고 '해산토굴'이라 이름 지어 살고 있다. 부인은 서울에 계시며 간혹 내려오신다고 했다. 이렇게 혼자 살면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쇠고기 기름은 안 닦이는데 돼지고기 기름은 잘 닦인다며, 당신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문학강의가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여 점심을 대접했다.

그런데, 이 양반 강의는 정말 졸립고 재미없다. 그의 작품도 내게는 잘 읽히지 않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래도 그날 텍스트였던 '멍텅구리 배'는 재미있었다. 작가는 '인간탐구'가 작가로서의 소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후에 나온 '초의'를 토론도서로 정하려다 회원들의 반대로 못했다. 독서회엄마들도 그의 작품은 읽기 어렵고 재미없다나!

작가도 강의를 재미있게 잘 하는 분이 있는데 대학원에서 이 양반 강의를 듣는 후배는 정말 죽을맛이라고 하더니만, 나중엔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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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10-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돼지고기 드신다는 제목보고 총각이 어디 갔구나~ 짐작했습니다. 아이들도 부군도 한동안 돼지고기 자주 못 먹어서 그야말로 꿀맛이겠어요. ^^

순오기 2007-10-20 14:41   좋아요 0 | URL
토요일이라 일찍 오는 아이들 시간 맞춰 삶았는데~~ 아들녀석은 친구집 갔다 온다며 그냥 나가고, 막내는 예고도 없이 아직 귀가를 안 했어요.
그냥 나 혼자 쬐금 먹으며...음, 이맛이야!!

세실 2007-10-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아이들은 돼지갈비를 좋아해서 가까운 곳으로 먹으러 간답니다. 달랑 네 식구이고 신랑은 고기를 즐겨하지 않아 집에서 먹는것과 별반 차이가 없네요.
저두 삼겹살 좋아합니다. 보쌈 먹고 싶네요..

뽀송이 2007-10-2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이방인과 함께 잘 타협해서 살아가는 모습 뵈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라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듯 합니다.^^;;
순오기님^^ 돼지고기 수육 정말 맛나겠어요.^^
저도 어제 삼겹살에 소주는 아니고 포도주 한잔 했답니다. 캬~아

순오기 2007-10-22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뽀송이님. 한국사람들은 돼지고기 없으면 뭘 먹고 살았을까~~~싶어요.
요런 걸 안 먹으니까 뭐 해줄게 없는 거 같아요. 요리 솜씨 없는 건 생각 안하고? ㅋㅋ
 

2006년에 개봉됐지만, 우리나라에선 이제 상영하게 된 '카핑 베토벤'이  콜롬버스에 안 걸릴까봐 엄청 가슴 졸였다. 10월 13일 토요일 아침 조조를 보려고 하남점까지 20분 거리를 9분만에 달렸다~~ 영화속의 그녀 안나도 황량한 거리를 마차로 달리고 있었다. 베토벤의 임종을 지키려고...... 내면의 침묵으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게 된 그녀는 베토벤을 자연으로 보낸다.



영화에서 베토벤(에드 해리스 분)은 청각을 잃어가면서 괴팍한 성격으로 변한 것으로 그려진다. 베토벤은 자신의 악보를 정서해 줄 카피라이터로 만난 안나 홀츠(다이안 크루거 분)를 단박에 인정하지만 그녀의 표현대로 무례하고 거칠게 대하는 괴팍한 노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지 싶었다. 우리가 베토벤의 초상화로 익숙한, 너무나 베토벤스러운 그가 영화속에 있었다.

영화 '불멸의 연인'이 베토벤의 유서에 '나의 천사이자 나의 모든 것이며 나의 분신인 불멸의 연인에게 바친다'라고 남긴 그녀를 찾아가며 베토벤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것이었다면, '카핑 베토벤'은 불멸의 연인일것 같은 안나 홀츠가 청각을 잃은 베토벤의 말년에 그의 음악을 카피하고, 베토벤은 눈으로 그녀를 카피하여 교향곡 9번을 초연한다는 설정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모든 것이 실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불멸의 연인' 보다 '카핑 베토벤'의 에드 해리스가 더 베토벤스러웠고, 안나 역의 다이안 크루거도 당당하게 귀엽다. 그들이 주고 받은 대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싶었다.

"공기의 떨림이 신의 숨결이다. 우린 그것을 읽고 신을 찬양하는 사람을 낳고... 그게 아니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내 머릿속은 소리로 가득 차 있어~ 그것을 악보에 적을 때 빼고는..."
"신은 나를 귀머거리로 만들었어. 나를 빼고는 모두 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 그가 친구냐고!"
"이제 음악은 역사가 바뀔거야~~ "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자만하듯 자신만만하게 신을 찬양하기 위해 신의 소리를 옮겼다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에게
"당신은 선택받은 분이죠. 제가 도울게요. 박자를 정확하게 보여 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오케스트라 속에 쪼그리고 앉아 베토벤을 카피하는 그녀 안나 홀츠를 보며 눈으로 지휘하는 베토벤이 내 가슴에 가득 찼다.



예전에 성가대할 때 이 영화에 나오는 모짤트의 레퀴엠이나 대관식미사, 베토벤의 장엄미사나 환희의 송가도 불러봤다. 합창단을 두 시간이나 세워 놓는게 미쳤다고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정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는거 장난 아니다~~~~ 영화속에서 교향곡 9번이 울려퍼질때 전율하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이 떨림과 이 감동을~~~~ 다시 맛보고 싶다. 이 장면 때문이라도 두번, 세번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분명히 영화적인 아쉬움이 있지만, 교향곡 9번의 전율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교향곡 9번을 감상할 수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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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0-15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 음향이 별로인 곳에서 보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럼에도 교향곡 9번의 감동은 전율 그 자체였죠. ^^

실비 2007-10-1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해도 무척 멋있을거 같아요.^^

순오기 2007-10-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아무개님, 마노아님, 실비님~~~~ 교향곡 9번은 정말 전율이죠!!
독서모임 엄마들과 다시 또 보려고 했더니, 조조가 없어지고 오후 늦게만 편성한 시간표를 보니 별로 많이 찾지는 않나봐요. 여기 광주에서는요! ㅠㅠ
 

10월 8일 월요일, 모처럼 가을여행 가려고 45인승 대형버스를 예약했는데 날씨가 심술을 부려 다음 주로 연기했다. 설레던 마음을 달래고자 영화 번개~ '행복'을 위해 달려 온 7명과 하남점 10관에 자라잡았다.

황정민 보고 싶어~~~ 짠한 임수정이랑 울어 줄려고,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다르지만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 초반 장면이 갑자기 확확~ 바뀌는 게 살짝 신경줄을 건드리지만, TV시네마에 소개됐던 은희(임수정 분)와 영수(황정민 분)의 만남은 살짝 웃음을 머금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 '외출'을 만든 허진호 감독 작품으로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우리 고향처럼, 공기 좋은 전북 장수 저지마을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옮겨가는 사랑을 그려낸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으로~~~ 오솔길에서 나누는 그들의 사랑, 시작이 아름답다. 아주 귀엽고 예쁘게 시작되는 연애 감정... 가을이면 누군가 사랑하고 싶어지는 감성코드와 잘 어울리는 영화다.

'나랑 사귈래요' '나 업어줄래요' '나랑 같이 살래요'
여자가 먼저 하기엔 너무 어려운 말을 아주 쉽게 힘 안들이고 건네는 그녀가 예쁘다. 어쩜 저렇게 하얗고 애리애리한지 폐환자다운 그녀가 안쓰러워 짠한 맘이 절로 묻어나게 하는 은희.



젊음을 방탕(?)하게 소모한 듯한 영수는 은희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죽을지도 모르는 건강 상태에서 시작하는 그들의 사랑과 행복이 계속되기를 빌어본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만 또한 사회적 동물이다. 이제 살만해진 영수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어쩔거나~~~저 인간을......

사람의 소박한 행복은 욕심부리지 않을 때에 가능한데, 한 가지가 채워지면 또 다른 욕심을 내는게 사람이다. 나 역시도...... 당신은 어떤 행복을 잡고 싶은가?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잠시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녀와 함께 했던 언덕에 그녀를 보내고 온 영수가 오열하는 장면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영수를 보내고 울던 은희의 흐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이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하지 말자, 우리 모두.   큰 기대하지 말고, 자연스럽고 잔잔한 멜로 영화에 마음을 주어 잠시 행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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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10-0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화 좋았지요.^^
황정민이랑 임수정 안 어울릴꺼라고 말들 많았는데 의외로 호흡도 잘 맞고 둘이 함께 있는 모습도 좋았지요.^^ 황정민의 청바지 입은 모습이 넘 자연스럽고 멋지더군요.^^
마음에 드는 영화였어요.^^

순오기 2007-10-10 09:45   좋아요 0 | URL
아픈 사랑 얘기가 짠하게 마음에 남아요~~~
황정민의 자연스런 모습은 언제나 보기 좋아요.
같은 영화로 감성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지요~~!!

행복희망꿈 2007-10-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였던것 같아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퀼트 소품들이 많더라구요.
그 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저의 눈에는 확~ 들어오더라구요.
황정민은 "너는 내운명"에서 보다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순오기 2007-10-10 09:47   좋아요 0 | URL
오호~ 퀼트 소풍들이 많았다고요?
역시 관심이 있어야 눈에 뜨이나봐요~
전 잘 모르고 지나갔어요~~ㅠㅠ

프레이야 2007-10-10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굿모닝~ 이거 보셨군요. 전 임수정이 좀 실망스러웠지만 나름 좋았어요.
신신애 되게 웃겼어요. 전 박인환이 어찌 짠한지..
허진호식 이야기 여전히 괜찮더군요.^^

순오기 2007-10-10 09:51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굿모닝, 정말 날씨도 좋아요~~~~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해야죠~~ 임수정도 정말 연기가 안 느는 배우 같아요.
그래도 그 청초함과 애리애리함이 영 마음을 짠하게...
신신애, 영화는 또 웃는 맛도 있어야죠~~ ?
박인환~~~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 공감돼요!
감독이든 작가든 자기만의 색깔이나 한계가 느껴지죠~~~~
 



시월의 첫날, 추석에 수고한 자신에게 영화 한편 상으로 보여주자며 독서회원 12명과 하남점을 찾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거나 짜증내지 않은 나를 위한 선물로! 개인적 영화 취향에 따라 새내기부부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젊은아낙들은 '사랑'을, 불혹 주변의 아짐들은 '즐거운 인생'을 선택했다. 이준익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좋아하는 난, 우리 세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 만땅이었다. 시작부터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며 즐거운 인생이 펼쳐졌다.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네의 삶, 여성 최고의 직업이라 꼽히는 학교선생인 마누라 덕에 백수로 살아도 돈 벌 중압감 없는 철딱서니 남편 기영(정진영 분)~ 에구 백수면 일어나서 아침이라도 챙겨주면 좋으련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누라와 딸내미가 나가면 슬며시 일어나 혼자 룰루랄라 먹는 저 남자 꽁 쥐어박고 싶었다~~ ㅠㅠ 

회사 짤리고 낮엔 택배로 밤엔 대리운전으로 죽어라~~ 돈 벌어서 아들놈 학원 보내랴 뒷바라지에 등골 빠지는 성욱(김윤석 분)은 피곤하다. 요즘 자식들 학원보내느라 일터로 나선 주부도 많은데, 집에서 안 하는 공부 학원 간다고 할려나~ 의문이지만 학원에서 공부하겠지 믿고 싶은 엄마는 안심하고 싶을거다!  

'대학교수님이 타던 차라 믿고 사셔도 됩니다'라는 접대 멘트 날리며 중고차를 팔아, 캐나다 보낸 처자식에게 돈 보내는 대머리 아저씨 혁수(김성호 분)는 자신은 창고 다락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살아도 만족하는 모습이다. 그런데~~이 대머리 아저씨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아, 저게 사는거야? 왜 마누라의 허영에 끌려가서 저 고생을 하느냐고? 저 마누라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거야?' 괜히 남의 일이지만 화가 치밀고 마음이 불안하다.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활화산' 밴드를 결성하고 세번이나 예선 탈락해서 해체됐다는 그들은, 멤버였던 성우의 죽음으로 다시 만난다. 참, 사는게 뭔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중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당신이 꿈꾸는 '즐거운 인생'은 어떤 것인가? 하고 싶은 일 다 미루고, 그저 자식 새끼한테 올인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혼하거나 집 나가고 싶을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고~ 동감하는 아짐들의 한숨이 들린다. 나는 저런 유형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망가진 인생, 놓쳐 버린 인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런 후회를 곱씹기 전에 부모들은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할 영화다.

죽은 친구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 분),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고. 내 기타도 아버지가 부셔 버렸다'는 말이 가슴에 콱~~ 박힌다. 자기의 꿈을 좆아살면서 마누라는 도망가고 하나 있는 아들놈은 아버지처럼 생각도 안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만나니, 참 가슴이 답답하다.


 젊고 멋진 장근석과 활화산 멤버들의 라이브에 열광하면서, 즐거운 인생의 맛을 물씬 느낀다. '그래~ 바로 저런 따뜻함이 이준익의 시선이다!' 지나간 청춘을 회상하는 우리 속에도 아직은 저런 열정이 남아 있을거라 위안을 삼아본다.

부부도 잘 나갈때는 사실 애정전선에도 이상없다. 하지만 잘 나가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한번도 잘 나가 본 적이 없는 내 남편을 비롯한 가장들이 안쓰러워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사오정 세대로 지금은 힘들게 견디고 있을 평범한 가장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넣어주는 영화라고 느꼈다. '내 남편이, 우리 아빠가 저렇게 돈을 버는구나' 이제라도 그 수고를 알아줘야 할 마누라와 자식들이 보면 좋겠다.

이제는 대머리에 희끗한 서리가 내려앉은 내 남편 속에도 저런 열정이 있었을거라 짐작해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잘 나가지 못하는 내 남편이 짠~하고 따뜻한 눈길로 보듬어 주고 싶었다. 이마트에 들러 장을 보면서 그에게 건넬 '자일리톨' 한 통을 사왔다. 내 남편과 같이 '즐거운 인생'을 한번 더 보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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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7-10-0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보고싶어지네요. 하지만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언제 자라서 엄마를 영화관에 보내줄런지^^;;

순오기 2007-10-04 15:32   좋아요 0 | URL
음, 세살 다섯살이면 엄마 떨어지기가 쉽지 않지요~~
저도 삼남매 키우는 10년 세월은 극장에 갈 수 없었어요 ㅠㅠ
요즘은 한주에 한편은 보니까 한달에 네번쯤...음, 행복해요!!

비로그인 2007-10-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통 극장엘 못가서 ^^

순오기 2007-10-04 15:34   좋아요 0 | URL
체셔님, 아프셨던데 이제 생기발랄 원상복귀하신거죠?
영화는 정말 자기 취향에 맞아야 한다는걸 새삼 확인했어요.
최근 몇달간 본 영화중에서 젤 좋았던 영화로 추천~~~~~^*^

라로 2007-10-0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멋져요!!!!
꼭 봐야겠어요,,,,저두 이준익감독작품을 좋아라하는데,,,ㅎㅎㅎ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길것 같아요,,,님처럼.
저두 미리 자일리톨 껌을 장만해놔야겠어요,ㅎㅎ

순오기 2007-10-04 18:01   좋아요 0 | URL
ㅎㅎ~ 나비님은 자일리톨 말고 다른 멋진 걸 준비해 보세요.
출산 전 남편을 감동시키면 아마 두세배는 불어서 돌아오지 않을까요~~~~~^*^
 

 24일 월요일 아침, 광주 송정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목포 큰댁으로 향했다. 물론 버논도 함께...  한시간만에 목포역에 도착하니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온 작은조카가 마중나왔다. 오전에 부지런히 전을 부치고, 작은조카를 드라이버겸 가이드로 내몰아 목포 관광을 보냈다. 간식거리와 가이드비를 푹 찔러주면서...

목포해양박물관과 유달산을 들러 돌아왔다. 반드시 유달산 노적봉을 찍어오라는 특명을 무시하고 돌아온 우리 아들녀석과는 코드가 영 안 맞는다. 엄마가 알라딘에 올린다는데 전혀 협조를 안한다.(노적봉 사진 올린다고 마노아님께 말했는데...)ㅠㅠ 돌아와선 다같이 송편을 빚었다. 모처럼 송편을 만드는 사나이들, 삼성맨인 큰조카와 우리 아들, 다리가 불편해 어쩔줄 모르는 버논을 주목하면서 감상하시길... ^*^  버논, 이 친구 검증된 음식만 먹는거 같은데 본인이 만들고 눈 앞에서 찜솥에 쪄 줬더니 여러개 먹었다. 설탕을 듬뿍 넣은 깨가 맛있었는지, 검증된 음식이라 안심이었는지 속 마음은 모르겠다~ㅎㅎ

하여간에 저녁밥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오니, "송편 언제 먹어요. 내일 먹어요?"하고 묻는다.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어요~ 송편 더 먹을래요?" 물어보니 "OK" 란다. 접시에 담아주었더니 밤참으로 또 먹었다. 아마도 모두 열너넛개는 먹은 듯하다. 만들때는 다리도 아프고 하기도 싫었는지, 아들의 말에 의하면 동그라미를 만들어 넓적하게 눌러서 가운데 소를 넣고 반을 딱 접어 붙이면 끝이었다는데... 어린이집 원장이신 큰동서가 조곤조곤 가르쳐주더니만 말짱 도루묵이다~ㅎㅎ 그래도 버논이 만든 것 중에 잘 생긴 녀석만 골라서 한 컷 찍었다. 세개 이상은 고르기가 힘들었다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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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앙리인 줄 알았다는....^^

순오기 2007-09-26 13:48   좋아요 0 | URL
ㅎㅎ 앙리처럼 예쁘고 귀엽게 생겼어용~ㅎㅎ
에구~ 사진 올려놓고 내용 작성하는 중에 벌써 댓글을 달아주셨네용~

세실 2007-09-2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이 참 좋아보여요~~
순오기님 고개좀 돌려주시징. 날씬하십니다~~~
웬지 만두 만드는 풍경 같다는...ㅎㅎ

순오기 2007-09-26 14:5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전 송편 하나도 안 만들었어요. 주방에서 전 부치고 튀김하는라고요~
사진속의 저 날씬한 분은 우리 큰동서, 5년전에 위암 수술하셔서 저렇게 빼빼하셔용~~저는 두배나 세배 정도 될텐데, 이 사진 찍느라 찍힐수가 없지용~~ㅎㅎ
근데 진짜 만두 같이 만들었어요. 사진부터 올리고 글 쓰는데 댓글 달아주셨네요. 버논은 자기가 만든거 다 먹었어요~ㅎㅎㅎ

마노아 2007-09-2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편이 아니라 만두로 보였다는 전설입니다^^ㅎㅎㅎ
버논이 모처럼 우리 문화를 체험했네요.
노적봉은 다음을 기약해야겠어요^^

순오기 2007-09-26 21: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만두로 만들었다는 전설~~~~~~ㅎㅎㅎ
노적봉은 예전에 핸드폰에 담은게 있는데, 밤이라 그냥 서커멓습니다!
다음을... 기약해야죠~~

비로그인 2007-09-2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논 미남이네요? ㅎㅎ
참하게 생겼다 뒷통수도 동글동글하니 이쁘구... :)

순오기 2007-09-26 21:35   좋아요 0 | URL
뒷통수도 동글동글 잘 생겼지요, 만두 아니 자기가 만든 송편보다 훨~~~ ^*^

라로 2007-09-2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논 넘 힘들었겠어요~.ㅎㅎㅎ
저렇게 앉아서 뭐 하는거 외국인들에겐 익숙치 않아서
오래 있지도 못하는데,,,거기다 송편까지,,,ㅎㅎㅎ

그나저나 넘 화목한 풍경이에요,,,

순오기 2007-09-27 20:49   좋아요 0 | URL
예, 나비님. 양반다리가 안돼서 무릎을 꿇기에 일본스탈이라 했더니 미국스타일이라며 옆으로 모아 앉던데...그도 힘들었는지 수시로 바뀌더군요.
화목한 풍경인가요? 애들이 다 커버렸고 큰댁에 저희만 가니까 단촐한 모임이라 썰렁했어요~~~ ㅠㅠ

프레이야 2007-09-2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에야 버논을 보군요. 인상이 참 좋아요^^ 송편도 잘 빚었구만요.
좌식이 불편한지 외로 꼬아앉아 있는 폼이 귀여워요. 에구구 다리를 어째야 쓸까나~

순오기 2007-09-27 21:28   좋아요 0 | URL
에구구~ 다리를 어째야 쓸까나~ 이하 동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