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신정판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분도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67년 서른 살 무렵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마을에 정착하여 예배당 종지기로 살았던 권정생 선생님의 자전적 이야기다. 1985년에 초판된 책이라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종지기 아저씨'로 나오는데, 외롭고 쓸쓸했을 선생님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애잔하다. 더불어 사는 생쥐, 개구리, 토끼 등을 말동무 삼아, 작가로서 하고픈 말을 다 담아냈다. 생쥐의 입을 통한 자조적인 넋두리에 웃음도 나오지만 그 이면의 날선 비판도 간과할 수 없다. 85년이면 광주를 희생제물로 삼아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제5공화국 시절이라, 입도 뻥긋할 수 없었던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많았을 선생님,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을 것 같다. 

"좀 더 꾸잖고 고것만으로 깨 버리면 어떡하니?"
"하지만 나도 무척 섭섭했어요. 아저씨한테 미안하고."
아저씨가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나! 아저씨 화났다."
"화 안 나게 생겼냐?"
"그래도 한 5분 동안은 즐거우셨잖아요?"
"한 5분간 즐겁게 해 놓고 끝이 나쁜 건 정치 사기꾼이다."
"내가 어디 대통령예요?"
"대통령이 아니니까 참고 있잖니."
" 참지 않으면 데모라도 하시겠어요?"
"자꾸 화나게 하지마. 지금 세상에 데모할 자유는 있니?"
"자유가 없으니까 데모하는 것 아녜요."
"이제 보니 너, 사상이 의심스럽다."
"아이구머니나! 정말 세상 다 됐다."
"엇쭈, 한술 더 뜬다."
"한집안 식구끼리도 못 믿는 세상이잖아요?" (15쪽)

첫 챕터 '장가 가던 꿈 이야기'에 나오는 생쥐와의 대화다. 종지기 아저씨가 장가 가는 꿈을 꾼 생쥐가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서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806호 방으로 들어가고 꿈을 깨버렸다고 하자, 그만 어깨가 처진 종지기 아저씨가 화를 내면서 나눈 대화는 그냥 웃어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이렇게 한 식구로 한 이불 속에 사는 생쥐를 동무 삼아 시국에 대한 비판도 역사에 대한 날선 비판도 마다 하지 않는다. 

"너도 알잖니? 뭐 36년 동안 죽이고, 가두고, 찌르고, 패고, 다 빼앗아 가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혼까지 빼놓고도 '유감이다', 한마디면 다 되거든."
"참말 그렇구나.
그런 걸로 다 통한다면 그런 것들은 생쥐 아니라 빈대 새끼보다도 못한 거야."
"아무렴. 생쥐가 이래 봬도 옳고 그른 것은 헤아릴 줄 안다고. 뭐."
"그렇다니까. 엎드려 절받기 식으로 현해탄인지 편리탄인지 건너가서까지 '유감이다' 한 마디 듣고 잰체하지도 않고... "
"꼭 제2의 이 아무개 같다니까." (145~146쪽)

이렇게 가슴에 품은 말을 뱉어내는 선생님은 그래서 감시받는 관리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세상에 하고 싶은 말씀을 어찌 다 하고 사셨겠는가! 그저 안으로 안으로 쌓아두다 보면 마음이 아프고 결국 아픈 몸이 더 아팠겠구나, 짐작하며 안타까움이 더했다.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이 돼야 할 종교조차도 장삿속으로 병들어 가는 걸 보며 냉정한 비판과 더불어 얼마나 마음 아파 하셨을지 가늠이 된다.  

생쥐와 꿈속을 날아 하느님을 만나러 갔더니, 사람들의 심부름꾼인 천사가 어떤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지 묻는다.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 수천 수만이라 어떤 하느님을 원하는지 콕 집어서 말해야 만나게 해 줄 수 있다고.ㅜㅜ  

"사람들은 창세 이후부터 하느님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나뭇조각으로 만든 허수아비로부터 돌담이나 쇠붙이나 종잇조각까지, 수없이 만들어 모신 거지요."
"그럼, 천사님,
 이 우주 안에 하느님은 안 계시는 겁니까?"
아저씨는 말소리가 떨렸습니다.
"없다고 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하느님이 있다고 말할 때, 벌써 한 개의 하느님을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 "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이 움트고부터 각자가 만든 하느님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어지겠지요." (119~120쪽)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오만함을 신랄하게 질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들리고,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에 정신없이 놀아난 한반도의 분단과 동족살륙의 6.25 전쟁에 대해서도 반성을 부르는 음성이 들린다. 권정생 선생님의 분신인 종지기 아저씨는 세상에 전쟁없는 평화와 자유를 꿈꾸며 날마다 새벽을 깨우는 종을 울린다.

이 책은 동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날선 비판과 성찰을 담아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우리들의 하느님>으로 읽힌다. 책을 읽으며 간간히 나오는 이철수 판화가의 삽화를 감상하는 것도 행운의 보너스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11-05-3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무슨 영화 보러 가셨을까요? ㅎㅎ

순오기 2011-06-01 16:19   좋아요 0 | URL
간밤엔 캐러비안의 해적 봤고
오늘 심야엔 써니 보려고 예약했고요~ ^^

수퍼남매맘 2011-06-0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아직 못 봤는데 순오기님 리뷰를 보니 꼭 읽어봐야 하겠는걸요.

순오기 2011-06-01 20: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꼭 읽어보시라 추천합니다~
 
슬픈 나막신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저녁밥은 뭘까?"
미쯔꼬가 신고 있던 나막신을 훌쩍 공중 높이 차 던졌다. 나막신은 빙글빙글 공중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털썩 땅바닥에 떨어졌다. 밑바닥이 젖혀져 있다.
"어머나!"
미쯔꼬는 눈쌀을 찌푸렸다.,
"엎어졌구나, 죽이야."
쿠니오가 미쯔고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 말하고 자기도 신발을 던졌다. 반듯하게 바로 꽁들 앉았다.
"와, 우린 밥이야."
아이들은 저마다 신발 점치기를 했다. 발바닥이 위로 적혀지면 죽, 바로 놓이면 밥이라고 한다.
"야! 우리는 떡이야, 떡!"
용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지른다. 나막신이 모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저기만큼 길바닥에 모서리로 간들간들 서 있는 용이의 나막신을 바라보았다. 용이는 자랑스러운 듯 앙감질로 가까이 가서 꼬득이 선 나막신을 발가락에 꿰었다.  

"어머나!"
분이의 까만 무명 끄나풀의 나막신이 하나꼬네 사철나무 울타리 사이의 단풍나무 가지에 걸려 버렸기 때문이다.
'저러면 뭘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분이는 어쩌면 아주 맛나는 과자 같은 것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식이를 업은 채 조금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나막신을 내리려고 발돋움을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좀 더 발끝을 세웠ㄱ다. 조금 더, 조금 더.......  간신히 나막신 끈을 붙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등에 업힌 금식이가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분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아쿠쿠!"
분이는 뒷일은 잘 모른다. 금식이의 뒤통수에 피가 흐르고, 헝겊으로 머리를 친친 동여매 다음, 호남댁은 분이를 온몸이 부서져라 두들겨 대었다. 저녁밥도 굶은 채, 분이는 준이네 부엌 모퉁이에서 훌쩍거리며 앉아 있었다. 지붕과 지붕 사이에 간신히 보이는 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분이는 배가 고팠다.
'아까 신발 점친 게 맞았어. 나뭇가지에 걸리면 굶는다고. 내일 준이한테 가르쳐 줘야지.' (60~62쪽)

이 책에 나오는 나막신은 우리 조상들이 신던 나막신이 아니고 일본의 게다(요즘의 쪼리같은)를 말한다. 어째서 '슬픈 나막신'일까 궁금했는데, 위 장면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일본 도쿄 시부야 혼마찌에 사는 가난한 조선인과 일본 아이들은 태평양 전쟁으로 배급표를 받아 살기에 늘상 배가 고프다. 작은 배도 채우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아이들은 어울려 놀며 서로 돕고 나눌 줄 아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성장기 체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답고 슬픈 동화다. 

권정생의 분신이 아닐까 싶은 준이, 걸핏하면 우는 용이, 동생을 돌보는 분이는 조선아이다. 하나꼬와 에이꼬, 미쯔꼬, 키누요는 일본 아이다. 하지만 모두들 가난한 아이들이다. 잔잔한 일상을 그리며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투명하게 녹아 있다. 날이 새면 어울려 노는 아이들에겐 국적이 따로 없고 조선인 일본인 장벽없이 지낸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아이들은 어른이나 형들처럼 국적을 가르며 조선인이라 놀림을 받는다. 겉으로 확 드러내지 않아도 어린 마음에 빼앗긴 나라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을 꿈꾸는 희망도 그려진다.  

가난하지만 바르고 반듯하게 자라도록 신경을 쓰는 준이 엄마 청송댁, 사는 게 버거워 걸핏하면 분이를 매질하는 호남댁, 하나꼬를 양딸로 데려온 마에다씨 부부, 준이 형 걸이가 자기의 아들 히로시와 같이 전쟁터로 가는 걸 보고 태도가 달라진 가즈오네 엄마. 다닥다닥 붙은 집에 이웃하고 사는 조선인 일본인 가정은 시대가 가져온 저마다의 슬픔과 애환을 갖고 산다. 전쟁 막바지에 공습에 대비한 방공훈련이 강화되면서 보여지는 그네들은, 일본인 조선인을 떠나 함께 목숨을 보존해야 할 이웃이고 형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작가의 말에서, 30년 전에 썼던 초판을 본 이인자 선생님(이오덕 선생님 사모님)이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 거구나 생각했는데, 우리교육에서 새로 책을 내면서 다시 읽어보니 요렇게 밖에 못 썼나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말씀하신다.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하시는데, 읽어보면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한 마디 말이나 한 줄 문장에 아이들의 모습이 살아난다. 가식하지 않는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슬픈 나막신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년기가 투영된 슬픈 나막신은을 읽고 나면, 선생님이 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지 그 마음이 감지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06-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찡하네요. 지금도 둘러보면 슬픈 일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요.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리뷰가 난 좋아요.

순오기 2011-06-01 16:20   좋아요 0 | URL
전쟁은 정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지요.ㅜㅜ
 
마법에 걸린 성 동화 보물창고 32
엘리자베스 윈스롭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환타지는 현실도피인 것 같아 즐겨보지 않는데, 이 책은 그런 기우를 해소시켜 준 책이다.
상상의 세계로만 생각하는 마법의 환타지가 탄탄한 이야기 구조 덕분에 현실과 분리되지 않은 리얼리티를 살렸다.
  
표지의 소년은 맞벌이 부모님 덕분에 필립스 할머니의 돌봄을 받는 윌리엄이다. 소년은 열 살이고 곰인형과 잠들고 체조를 좋아한다. 고민이라면 필립스 할머니가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게 돼서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은 것 뿐이다. 할머니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윌리엄에게 2층으로 된 멋진 중세의 성을 선물하는데, 2층으로 된 성의 구조까지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다락방에 올려 둔 커다란 성을 갖고 노는 소년은 행복하다. 다락방과 성, 뭔가 비밀스런 일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윌리엄은 필립스 할머니가 성과 함께 준 납으로 된 은빛기사를 갖고 놀다가 은빛기사가 잠에서 깨어나는 놀라움을 목격한다. 이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마법에서 깨어난 은빛기사 사이먼 경은 아퀼라 영주의 외아들로 마법사 얼래스터의 마법에 걸려 납인형이 되었음을 밝힌다. 사이먼 경은 빼앗긴 성을 되찾기 위해 야누스의 토큰이 필요하고, 윌리엄은 필립스 할머니를 떠나보내지 않을 비법이 필요하다. 두사람의 다락방의 공존은 현실과 마법의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자네가 어떤 사람의 시간에 손을 댄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네.(74쪽)
자넨 여기 숙녀 분께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더군. 그녀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84쪽) 
우리 둘 다 너무 조급했네. 윌리엄 군, 부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아졌어. 그 사실은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아.(94쪽)

윌리엄은 할머니를 붙잡아 두려고 할머니에게 마법의 토큰을 사용하여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윌리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대가를 치루기 위해 스스로 종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인이 열심히 수를 놓고
기사가 칼을 시험할 때,
종자가 도개교를 건널 것이고
바로 그때가 모험에 나설 적기일지니 

마법의 토큰으로 작아진 윌리엄은, 사이먼 경과 필립스 할머니께 훈련을 받으며 모험을 준비한다. 시동 윌리엄이 지켜야 할 행동규칙은 "궁핍한 자들에게 인정을 베풀라. 부를 낭비하지도 축적하지도 말라. 절대 수치심을 잃지 말라.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대답하되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 사나이답고 기개 있게 굴라. 자비를 구하는 적은 결코 죽이지 말라."는 것과 "언제나 사랑에 충실하도록 하라"(114쪽)는 것이다.   

자, 이들의 모험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위험을 어떻게 극복하고 헤쳐나갈 것인지, 마법사 얼래스터와의 한판 승부는 승리하게 될지... 사이먼 경의 유모였던 캘린더 할머니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책을 놓지 못한다. 더구나 곳곳에서 만나는 명언과 생각거리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으로 윌리엄의 모험에 책을 덮지 못하고, 내면의 두려움과 싸우며 나가는 윌리엄의 모험에 동행한 즐거운 독서였다. 자~ 마법사 얼래스터를 물리친 건 사이먼 경일까, 은빛기사의 종자인 윌리엄일까? ^^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자기 안의 두려움을 먼저 정복하는 사람이야." (19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5-0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네가 어떤 사람의 시간에 손을 댄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네'
이 문구는 너무 의미심장한데요?
되씹을수록 양파 껍질처럼 여러 생각이 들어요. ^^

순오기 2011-05-09 21:02   좋아요 0 | URL
흠~ 이책은 고학년이 읽으면 좋겠어요.
 
제주의 빛 김만덕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1
김인숙 지음, 정문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 중학교 1-1 국어 교과서 첫 단원에 실린 '제주의 빛 김만덕'의 원작도서다. 교과에 실린 요약된 글만 읽는 것보다 전체를 보면 김만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김만덕은 객주를 차려 성공한 사업가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이고, 5만원 권 화폐 주인공으로 신사임당과 경합을 벌였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사임당보다는 김만덕이 5만원 권 화폐의 주인공이 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덕이 사임당보다 덜 알려졌기 때문이지 사임당보다 훌륭한 인물이다.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눌 줄 알았던 김만덕은, 우리시대 부자들이 본받아야 할 룰모델이 아닐까. 이렇게 이타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진정한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작년에 드라마로 방영됐던 거상 김만덕에서는 한양에서 유배 온 선비의 딸로 그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 책에선 그의 출생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데 <아름다운 위인전>에는 육지와 제주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 김응렬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한국사 전>에서는 "김만덕(1739~1812)은 정조 20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양인 신분의 만덕은, 열두 살에 풍랑에 아버지를 잃고  콜레라로 어머니마저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오빠 만석은 동생 만재를 데리고 남의집살이를 떠났고, 만덕은 이웃의 대정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다가 기생 설향의 수양딸이 된다. 설향은 만덕에게 부엌일 대신 기예를 가르치고 열일곱에 관아의 기적에 올렸다. 양인이면서 천인인 기생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만덕은 제주 목사에게 기적에서 빼줄 것을 부탁한다. 엄격한 신분제를 따르던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돈으로 양반을 사는 등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세금을 내던 양인의 수가 줄어들었다. 부모 가운데 한쪽이라도 노비면 그 자식은 당연히 노비가 되는 종부 종모법을 따랐지만, 양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1731년 노비 종모법으로 바뀌었다. 즉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신분이 세습되므로 아버지가 노비여도 어머니가 양인이면 그 자식들은 노비가 되지 않는 제도다.   

나이 스물이 넘어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만덕은 객주집을 차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물건만을 거래하여 거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에서 '자냥'이란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아끼고 절약하는 걸 이르는 제주말이다. 만덕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자냥'하는 삶이었다. 거상이 되었어도 소박한 밥상과 검소한 옷을 입으며 재물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백성을 도우며 살겠다던 만덕은 1792년부터 시작된 기근에 자신의 재물을 털어 죽어가는 제주민을 먹여 살렸다. 객주 앞에 솥단지를 걸고 죽을 쑤어 주린 백성을 먹였으며, 곡물을 사재기 한 이웃 객주의 농간에 속수무책 당할수 없어 뭍으로 사람을 보내 곡물 오백 석을 구해왔다. 그 중 오십 석은 사람을 먹이는 일에 쓰고, 사백 오십 석은 관아로 보내 주린 백성에게 나누어주게 했다. 제주 목사 유사모가 만덕의 공덕을 조정에 알리자 감동받은 정조는 만덕의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라 명을 내렸다.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오로지 서울에 올라가 임금이 계시는 궁궐을 우러러 뵙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둘러보는 것이 소원입니다."(129쪽) 

 
당시엔 '월해금법'이 있어 여자는 절대로 바다 건너 뭍으로 나갈 수 없었다. 만덕은 쉰여덟, 정조 20년(1796년)에 한양에 가서 좌의정 채제공을 만나고 '의녀 반수'의 벼슬을 받아 정조를 배알한다. 벼슬이 없는 여자는 임금을 뵐 수 없으니 내의원 의녀 가운데 수석 의녀의 벼슬을 받은 것이다. 정조는 만덕의 손목을 잡고, 죽어가는 백성의 목숨을 구한 귀한 손이라며 칭찬하였다 한다.  

만덕은 이듬해 봄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채제공이 만덕의 덕행을 기록한 '만덕전'을 받아 온다. 제주 백성 모두가 만덕을 환영하며 한양과 금강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존경의 뜻을 담아 '만덕할머니'로 불렀다. 만덕은 일흔네 살이던 1812년(순조 12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났고, 그 뒤 1840년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만덕의 이야기를 듣고 나무판에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 는 글을 새겼다. 

 
책 뒤에는 제주의 역사와 생활 및 관습에 대한 자료와 사진이 실렸는데, 정작 김만덕에 관한 자료는 실리지 않아서 아쉽다.
네이버 검색만 해도 모충사의 김만덕 기념관이나 만덕제, 채제공의 번암집에 실린 '만덕전'도 나오는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04-2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萬德, 그야말로 이름대로 살다 간 사람이네요.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저에게 이름을 주신 부모님의 뜻을
따르지 못해 부끄러워집니다.

순오기 2011-04-28 14:17   좋아요 0 | URL
정말 이름값이 무언지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어요.^^

모름지기 2011-04-2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래미 국어교과서를 아직까지도 훑지 못했는데
김만덕도 실려있군요. 어제 책주문하는 날이었는데..요건 담번에 꼭.
우선은 담아놓구요.~~

순오기 2011-04-29 02:06   좋아요 0 | URL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중학교 1-1 국어에 실렸는데, 다른 출판사 국어에도 실렸는지는 몰라요.
전에 국정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던 듯 하지만...

2011-04-29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4-29 18:11   좋아요 0 | URL
^^
 
차일드 폴 미래의 고전 22
이병승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 이런 신선한 발상이라니!!
초등학교 5학년, 짜장면집 만리장성의 열두 살 소년 안현웅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반장은 커녕 줄반장 한번 못해 본 현웅이가 어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단 말이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어린이가 대통령이 되다니, 소가 넘어갈 일이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지만 사실이다.^^ 

2019년 환경대재앙을 겪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재벌 기업가들이 모여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정치가들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모아 자연과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런 재앙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차일드-폴(Child-Pol)>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린이(Child)와 정치(Politics)를 합친 '차일드 폴' 법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어린이가 정치에 참여해 어린이 국회의원을 뽑고 어린이 정당을 만들며, 특히 각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이나 수상은 반드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작가의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가 뽑은 대통령이라니, 믿어볼만하지 않은가?^^

"열 살에서 열네 살의 어린이들 가운데 우수한 두뇌와 뛰어난 감성, 탁월한 인성과 지혜로운 통찰력을 갖춘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선별하고 또 선별했어요.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 지능 지수와 감성 지수 검사, 인성 검사와 적성 검사는 물론, 사주와 관상까지도 기초 정보에 포함시켰죠. 적어도 200여 가지 이상의 데이터를 참조하도록 하는 특수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뽑힌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대통령이 바로 연만흠 씨의 아들 안현웅입니다." (17~18쪽) 

 
이렇게 뽑힌 대통령 안현웅은 늦잠도 자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겠다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회의를 하고, 정치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다독이고, 다른 나라의 어린이 대통령과 만나서는 놀지도 못하고, 산더미같이 쌓인 일이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차가운 비서실장과 경호팀장의 호위를 받으며, 지구의 평화와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멋진 대통령이다.  

책 속에 그려진 모래 폭풍처럼 불어오는 황사,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 도시의 침몰, 유독 물질이 섞인 붉은 비 등,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이거나 미래에 닥칠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일본의 핵원전 사고로 환경재앙을 실감하는 요즘, 이 책은 공감의 쓰나미를 불러온다. 타락한 정치와 온갖 부정과 비리에 물든 어른들 세상엔 희망이 없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어린이만이 인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했으니, 이젠 벌 받을 일만 남았다는 걸 현실에서 감지하지 않는가! 

오염된 비를 맞는 새들과 곤충을 위해 우산을 씌워주고, 댐 공사를 반대해 맨발로 걷는 소년과 함께 걸어주는 어린이 대통령. 자동차를 만들거나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고, 국방비를 줄여서 환경을 위해 쓴다는 제안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어린이 대통령이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또한 차거운 비서실장과 경호팀장을 비롯한 기업 회장의 행보를 보면, 어린이 대통령을 통해 어른들 속에 잠자는 어린이를 깨우는 의미로도 읽힌다.  

 환경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차일 폴> 법안을 통과시킨게 아니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세계를 장악한 이트(Eat)와 빅 마우스(Big Mouth)의 등장은 더 큰 공포를 조성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계적인 거대한 괴물 조직과  싸워야 하는 어린 대통령의 행보에 주목하며 재밌게 읽었다. 후손에게 지구를 빌려 쓰는 우리는 소중하게 잘 사용하고 돌려주어야 하며, 진정한 나비효과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우치는 흥미롭고 뭉클한 감동도 선사한 책읽기였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사이 2011-04-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확 끌리네요.
책 속 안현웅 어린이의 활약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져요.
우리 동네 도서관에 들어와 있을까 모르겠어요.
댐 공사를 반대하며 맨발로 걷는 소년과 함께 걸어주는 대통령, 산에 나무를 심어야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하는 대통령,
너무 멋져요.

순오기 2011-04-15 00:41   좋아요 0 | URL
이병승 작가님 책을 세 권 봤는데, 모두 기대를 충족시켜 줬어요.^^
신간이라 도서관에 없으면 신청도서로 올리면 구입해주겠지요.
우리부터 환경을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겠어요~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나무심기에 동참하고요.^^

양철나무꾼 2011-04-1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블랙데이라는데, 자장면 드시나요?^^
슈퍼컴퓨터가 뽑은 대통령이라구요?
전 '밤은 무자비한 달의 여왕'이라는 책이 생각나는걸요~

순오기 2011-04-15 00:42   좋아요 0 | URL
블랙데이~ 혼자서 짜장면 먹기는 그렇죠?
점심 저녁은 집에서 혼자서 먹거든요.^^
밤은 무자비한 달의 여왕, 검색 들어갑니다~~~~

hnine 2011-04-1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이런 신선한 이야기 좋아요.
저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머리 속으로 생각해본적 있어서 더욱 읽어보고 싶네요.
제목도 잘 지었고요.

순오기 2011-04-15 00:43   좋아요 0 | URL
오~ 비슷한 내용을 생각했다니, 작가적 상상력이 충만하네요.^^
신선한 이야기, 생각만 하지 말고 써 보세요~~~~~

hnine 2011-04-15 18:07   좋아요 0 | URL
아 참, 이 성자 작가 강연 잘 다녀오셨어요?
저요, 순오기님 말씀에 힘을 내어 마감되었어도 그냥 명창순 작가 강연장 찾아갔다가 보기 좋게 퇴짜 맞고 돌아왔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여럿 와서 이미 진치고 있더라고요. 누구만 들여보낼 수 없어 그랬는지 다 같이 쫓겨나 돌아왔습니다 ㅋㅋ 또 기회가 있겠지요.

순오기 2011-04-16 01:54   좋아요 0 | URL
이런 세상에~~~~~ 그런 분이 많아서 그랬을 듯, 헛걸음을 하셨군요.ㅠㅠ
이성자 작가 강연회에 가서 시집도 한 권 선물받았어요.^^

마녀고양이 2011-04-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코알라의 세계를 보면,
과연 어린이 대통령이 순수하기만 할까 싶은 이 삐뚤어진 마음이... ^^
저는 아무래도 이젠 순수랑 거리가 먼가봐요.. 헤.

순오기 2011-04-15 02:05   좋아요 0 | URL
나 어릴 때 생각해봐도 어린이라고 다 순수하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어른들 속에 잠자는 어린이를 깨운다는 의미로도 읽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