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숨쉬는 생명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
EBS 흙 제작팀 지음, 이태원 감수 / 낮은산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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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4월, 인천으로 전학하기까지 충청도 시골에서 자란 내게 흙은 친숙한 존재다. 그러나 광주에서 나고 자란 우리 삼남매는 흙과 더불어 사는 걸 모른다. 도시의 주택이야 손바닥만한 화단이 고작이고,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 가야 흙을 만질 수 있다. 요즘엔 학교 운동장에도 인조잔디를 깔거나, 공원 산책로마저 포장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흙을 접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흙속에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는 걸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황토가 사람에게 좋다고  알려져 황토집을 짓거나 황토염색을 하고, 황토 찜질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에게도 흙을 체험할 수 있는 주말농장이나 체험 캠프에 보내기도 한다. 흙의 어떤 성분이 인체에 이로운지, 흙 속에는 어떤 생물종이 깃들어 사는지 책으로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이야기가 있는 과학, 함께 숨쉬는 생명들의 희노애락을 담아낸 EBS의 다큐멘터리다. 아이들에게 흙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와 환경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책이다. 온갖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죽어가는 흙을 살리기 위한 노력, 흙 속에 깃들어 사는 작은 벌레들과 미생물들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흙을 살리는 파수꾼 지렁이, 박테리아와 곰팡이의 역할 등 친절한 설명과 섬세한 사진으로 이해를 돕는다.  

 
 


인간을 비롯해 흙에서 살아가는 생명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밝혀내어, 흙이 단순한 광물질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가는 보고임을 일깨우는 훌륭한 교재다. 0.4그램의 자기 몸무게만큼 먹고 두배로 싸는 지렁이는 사나흘에 20~25센티의 똥탑을 쌓고, 쉴새없이 싸는 오줌은 작물에 영양공급과 살균력도 좋아 진짜 흙을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오~땅 속을 헤집고 다니며 산소를 공급하는 지렁이, 단순하게 환경파수꾼으로 알았던 지렁이에 대한 놀라운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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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 이쁘네요.
흙이라........ 단어 자체 만으로도 푸근해지는 느낌.
예전에는 지렁이가 너무 징그러웠는데, 환경파수꾼이라는 것을 안 이후로 점점 친근감이 간다할까요.

순오기 2010-11-18 00:17   좋아요 0 | URL
흙~~~~ 지렁이, 모두 좋지요!^^

마노아 2010-11-1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와 낮은산의 결합이라니, 벌써 신뢰가 가요. 지렁이가 똥을 많이 싸는군요. 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르스 생각나요.^^

순오기 2010-11-18 00:18   좋아요 0 | URL
낮은산도 출판 마인드가 좋지요.^^
지렁이는 정말 똥을 엄청나게 싸더라고요.ㅋㅋ

양철나무꾼 2010-11-1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렁이,싫어하는데...
지구를 구한 꿈틀이 사우루스라...이러니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순오기 2010-11-18 00:18   좋아요 0 | URL
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르스는 못 봤는데 궁금하네요~ ^^

같은하늘 2010-11-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기언니 서재에는 항상 제가 관심가는 책이 잔뜩이예요.^^
우리아이도 예전에는 지렁이 무서워했는데, 지구를 구한 꿈틀이 사우루스 외 지렁이 관련 책을 여러권 보고나더니 시멘트 바닥에 있는 지렁이 보면 덥썩 잡아서 흙으로 옮겨 놓아요.ㅎㅎ

순오기 2010-11-18 00:19   좋아요 0 | URL
하하~ 덥석 집기까지 하다니 독서효과가 굉장하네요.^^

감은빛 2010-11-1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할 책이군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0-11-18 00:20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이 읽으면 진로를 이쪽으로 잡을지도 모르지요.^^

꿈꾸는섬 2010-11-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 도서로 찜했어요.^^

순오기 2010-11-19 23:46   좋아요 0 | URL
요런 건 과학지식을 더하니까 좋아요~
 
다롱이의 꿈 동심원 11
이옥근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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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4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작품집 <방귀 한 방>으로 만났던 이옥근 시인의 첫 동시집이라 반가웠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고딩들과 생활하며 동시를 쓴다니 의외였다.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고딩들도 있겠지만, 입시에 각박할 일상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서.^^   

<방귀 한 방>에서 만났던 시가 11편 실렸는데, 같은 시를 다른 삽화로 감상하는 맛도 나쁘지 않았다. 시인이 온갖 시어로 한 상 가득 차린 밥상을 받는 기분... 가을과 어우러져 더욱 좋았다.

   

시인처럼 세상 보는 눈을 가진다면 우리도 시인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고, 거저 얻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처럼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그런 눈을 갖게 되나 보나. 시인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겸손한 마음, 작고 하찮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운 일을 만나면 같이 아파하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알록달록 예쁘고 따듯한 시들을 쏟아낼 수 있겠다.  

호기심을 잃지 않은 시인이 발견한 것들이 새롭다. 일상에서 늘 대하는 것들을 무심코 지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눈을 가진 시인이 부럽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동시집을 볼때마다, 술래잡기 선수 같은 시인에게 감탄사만 날린다.  

장롱 속 옷걸이 

무엇이  
궁금해서 

?????? 

바깥세상
궁금해서 

?????? 

이런 표현은 정말 아이들 아니면 생각해내지 못할 거 같다. 혹시 시인 곁에 있던 아이들이 한 말을 시로 옮긴 것은 아닐까?^^ 

내 동생 

오랫동안 꿇어앉아
벌 받던
내 동생 

일어서려다
힘없이 주저앉으며
울먹인다. 

-엄마,
발가락이
사이다를 먹었나 봐. 

<나는 뚱보 시침 바늘> 엄마따라 학교 운동장을 억지로 도는 아이는 엄마는 날씬한 초침, 강아지는 분침, 뚱뚱한 나는 시침이라 노래한다. <우리집 냉장고가 죽었습니다>에서는 끙끙 앓던 냉장고가 집을 비운 사이에 죽어버려, 돈 들어갈 일에 심란한 엄마 마음을 읽어내고, <아저씨, 이만해요>는 엘리베이터 탈때는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엄마 말처럼, 공연히 같이 탄 아저씨를 의심했던 미안한 마음을 그려냈다. 표제작인 <다롱이의 꿈>에서는 한달 간 가둬 기른 다람쥐를 뒷산에 놓아 준 후, 다롱이가 베란다 화단에 묻어 둔 해바라기 씨앗이 음표처럼 싹을 튀웠다는 걸 발견한다. 술만 마시면 큰소리 뻥뻥 치는 아빠가 좋다는 <큰소리 뻥뻥>에선 가진 것 별로 없는 평범한 아버지의 고단한 일상을 그려냈다. <횡단보도 사다리 타기>는 횡단보도에 그어진 줄을 사다리로 생각하는 아이가 등장하고, 주인을 닮은 신발장의 실내화들이 시끌시끌 떠들다가, 선생님처럼 뒷짐지고 지나는 내 모습에 조용해졌다는 <에헴, 오늘은 내가 선생님이다>는 사랑스럽다. 

방앗간 고추씨 

토옥! 튀어 나간
방앗간 고추씨 하나 

문 앞
시메트 바닥의 갈라진 틈
한 줌도 안 되는 흙에
뿌리 내리고 싹을 내어
세 뼘 키로 자랐다. 

방앗간 주인이
어린 고추 다칠까 봐
막대를 대고 묶어 주니
겨드랑이마다
하얀 별꽃 초롱초롱
초록 고추 대롱대롱 

옆집 옷 가게
길 건너 식당
방앗간 손님들
오며 가며 한마디씩 한다.
-고것 참, 대견하구만! 


고추 씨에서 나온 싹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이미 시인의 마음과 눈을 가진 시인들이다.
어른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고단함을 따뜻하게 감씨 안은 -은행나무, 우리 동네 가게, 신호등 앞에서, 웃는 얼굴, 날아라 연탄- 시,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한 - 귀뚜라미야 안녕, 갯벌 마을 철새- 시,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 녹아 있는 시 등 다양한 소재로 풍성한 감성을 노래한 동시집을 읽으며 동심에 풍덩 빠져 보는 가을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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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동시는 참 이뻐요.
언니가 올려주시는 동시 시집마다 왜 그리 탐이 나는지요.

하얀 별꽃 초롱초롱
초록 고추 대롱대롱.. 가만가만 읽어봅니다. 좋은 하루되셔여!

순오기 2010-11-11 20:37   좋아요 0 | URL
동시는 참 이뻐요~ 이쁜 시를 쓰는 시인은 더 이쁘겠죠.ㅋㅋ

stella.K 2010-11-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 보고 놀랐어요.
우리집 다롱인 줄 알고...ㅎㅎㅎ

순오기 2010-11-11 20:37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댁에도 다롱이가 있군요.^^
 
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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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중학교독서회에서 김남중작가 초청강연이 있어 6월 토론도서로 정해 읽었는데, 리뷰는 엄청 늦었다. 

부부가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있을까마는, 이혼한다고 확실한 미래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해보면, 이혼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퍼뜩 정신이 난다. 게다가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어찌할 건데... 새엄마 새아빠보다는 그래도 제 친어미 아비가 낫지 않겠는가? 


부부생활도 경제가 잘 나갈때는 큰 문제가 없다가,  경제가 안 돌아가면 부부 관계도 삐그덕 거리기 마련이다. 돈이 없으면 사람 노릇을 못하고, 여러가지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보면 불평과 불만이 생기고, 평소엔 너그럽게 받아주던 것들도 서로 예민하게 대립하게 된다. 그러면서 ’돈이 있든 없든, 병들때나 건강할 때나,  늙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변치않고 사랑하겠냐?’는 혼인서약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잘못된 결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참견하지 마. 당신이 언제 호진이 교육시키는 데 관심이나 있었어?"
"교육? 말 잘 했다. 그렇게 교육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애 혼자 놔두고 밖으로 나돌아?"
"그게 누구 때문인데,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데!"

나는 고장난 신호등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가 가운데 있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엔 불안했는데 차츰 화가 났다. 나도 엄연히 우리 집의 삼분의 일인데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도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무시했다. 더는 이런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15~20쪽)

 엄마 아빠의 불화로 이혼 위기에 처한 호진이네. 호진이는 엄마한테 대들었다고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호진은 가출을 결심하고 저금통을 털어 광주에 있는 삼촌에게 온다. 삼촌은 공부도 제대로 안했고 취직도 못했다며 호진의 집에서는 내놓은 사람이다. 호진은 그런 삼촌을 따라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의 약칭인 ’여자친구’의 국토횡단 대장정에 조수로 따라 나선다. 삼촌은 처음에는 트럭에 태우고 잔심부름만 시킨다. 중간에 엄마 아빠의 전화로 호진의 상황을 파악한 삼촌은, 고민하기보다 딴 생각을 잊으려면 땀 흘리는 게 최고라고 자전거를 타게 한다. 죽을 힘을 다해 자전거를 타면서 호진은 점차 깨닫는다. 한심하게 생각하던 삼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전거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고민이 있으며 모두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간다는 것도 배운다. 


 
  

"내가 왜 집을 나왔는지 알기나 해? 엄마는 내가 바라는 게 뭔지도 모르잖아. 엄마 맘대로 안 된다고 화만 내잖아. 가족이 뭐 그래? 헤어지면 뭐가 달라져? 더 좋아져? 왜 다른 사람 생각은 하나도 안 하는 건데!"


"아빠가 황금기를 도둑맞았다고 했잖아."
"내가 그런 말을 했냐?"
"응, 했어. 누가 훔쳐갔는지 알아?"
아빠는 말이 없었다. 나는 대답이 꼭 듣고 싶었다.
"누가 훔쳤느냐니까? 엄마랑 나야?"
"아니야."    (213~213쪽)

 

오로지 페달을 굴리며 치솟은 산을 넘고 내리막길을 달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어떤 건지 배운다. 숨쉬기조차 고통스러운 여행을 끝내며, 호진이는 성큼 몸과 맘이 자란 듯, 엄마 아빠에게 자기를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한다. 밤을 같이 지내는 게 가족인데, 서로가 고통스러워 가족을 해체하려는 부모님의 이혼에 해답을 얻은 것이다. 두분의 자전거 여행의 시작을 알리며 이야기는 끝나지만, 많은 뒷 이야기를 그려 볼 수 있다. 시작은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었지만 아주 멋진 휘날레를 장식한다.


부모의 이혼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혼만이 능사가 아니라 반드시 지혜로운 해결책이 있을거라는 제시가 돋보였다. 삼촌과 친구, 삼촌 애인과 선배는 같이 중국집을 운영하며 교대로 자전거 여행을 꾸려가는 멋진 젊은이들, 신선한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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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1-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혼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어느 부부나 고비가 있는것 같아요.
잠시 쉬어가며 아이들의 입장을 꼭 생각해 줘야한다고 봐요.
아무런 준비 없이 당하는 아이들을...

순오기 2010-11-03 17:33   좋아요 0 | URL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겠죠.
특히 아이들은 자기 잘못으로 이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니까...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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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글이 많고 그림도 상당히 거칠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르카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버닝햄의 젊은 시절 첫번째 그림책으로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주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은 작품이란다. 어린이 그림책에선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한 특징이다. 따라서 어린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도 역시 그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 끌지도 붙잡아 두지도 못한다. 또한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어렵고 집중하는 시간도 짧다. 왜 그럴까 따져보니, 보르카를 제외한 등장인물의 이름이 귀에 낯설고 입에 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일거라 생각됐다. 게다가 매끄럽지 못한 번역, 우리말 어순에 맞지 않는 문장이 간간이 눈에 띈다. 출판된지 10년도 넘었으니 번역을 다듬어서 개정판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의 특성에 맞게 세심하게 살펴보자. 검은선으로 굵게 처리된 그림이 강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보르카가 부딪혀야 할 세상이 이렇게 거칠고 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부모형제의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라야 할 보르카는, 남들과 달리 깃털없이 태어났기에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다. 깃털이 없는 것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거리가 된다. 포근한 깃털처럼 회색실로 털옷을 짜 입힌 어머니조차도 보르카의 외로움을 알지 못한다.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자녀의 성장기에 엄마 역할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아이가 부르면 달려가서 안아주고 놀아줘야 하는데, 엄마는 바쁘다고 혼자 놀아라 방치하는 경우가 있으니 플럼스터 부인과 다를바가 없다.  

 
혼자 갈대밭에 들어가 엉엉 우는 보르카가 우리 아이의 모습은 아닐까 돌아보게 한다. 바쁜 일상에 아이를 소홀히 하여 울게 하지 않는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끙끙 앓는 일은 없는지 세심한 보살핌으로 키워야 한다. 보르카가 수업에 빠지거나 겨울여행에 빠졌어도 알아채지 못한 부모라면 온전하게 돌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보르카는 이제 세상에 버려져 혼자 거친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세상은 따뜻한 온실이 아닐진대 이 일을 어쩔거나?  


보르카, 눈물만 흘려서는 안돼! 자~ 온통 회색빛으로 보슬보슬 비까지 내리는 바닷가의 풍경은 보르카가 헤쳐나갈 세상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용감하게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보르카는 어두컴컴한 바닷가 불거진 배 한 척을 골라 올라갔다. 멍멍 짖어대는 개를 만나 지붕 있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용기를 내어 다가서는 것, 바로 이것이 장애우가 세상에 나아갈 때 가져야 할 기본자세다. 누가 먼저 손내밀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움츠러들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고, 남들과 달라도 먼저 손내밀어 세상과 함께 손잡고 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보르카는 코롬비 호에서 멍멍이 파울러의 도움으로 선장과 사람들과도 친해진다. 물론 당당하게 배삯만큼 일을 거들고 맛난 음식을 듬뿍 받는다. 장애우라고 무조건 동정이나 일방적인 도움만 받아서는 안된다. 스스로 한몫을 감당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보르카는 선원으로서 한몫을 담당하고 드디어 런던에 도착한다. 이제 회색바다가 희망에 찬 붉은 그림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보르카의 앞날에 희망이 보인다. 혼자 남겨졌어도 포기하지 않고 새 길을 열어간 보르카는, 이제 도전하면 앞이 보이고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 것이다. 


 

런던에 도착한 선장은 온갖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큐가든에 보르카를 내려 놓았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서운하지만 런던에 오면 꼭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작별한다. 큐가든에선 아무도 보르카를 보고 놀리거나 웃지 않는다. 모두들 친절하고 보르카가 부족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보르카는 그들과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이 장애우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라고 말한다. 나도 처음 한두 번 읽었을 땐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형제도 결국 어쩔 수없이 버리거나 시설에 맡긴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여러번 읽어주면서 그게 다일까? 곰곰 생각하니 또 다른 것들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장애우 스스로 헤쳐가야 할 세상 이야기로 해석한다. 가족에게 버림 받았다고, 또는 선장이 수용시설에 맡겨버렸다고 슬퍼하고 좌절했다면 보르카가 큐가든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바로 자기에게 닥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는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또는 자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보르카는 큐가든에서 친구들의 친절에 감사하고 함께 어울리며 비로소 행복할 수 있었다.


물론 장애가 아니라도 남들과 다른 특성 때문에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보르카도 깃털 없는 것 외에는 다른 문제가 없었으니까. 소심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먼저 나아가고 먼저 손내밀며 같이 어울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다. 장애 때문에 버리거나 입양 보내는 경우가 있듯이, 보르카도 런던으로 혹은 수용기관으로 입양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가족만이 책임질 일이 아니고 사회가 같이 감싸안아야 할 일이다. 보르카가 큐가든에서 행복했듯이 남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사회가 찾아줘야 한다.


존 버닝햄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큐가든 같은 세상을 꿈꾸며 보르카를 내 놓았을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큐가든 같은 낙원을 이 땅에 실현하자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의 음성이 들린다. 우리도 보르카와 약속을 지킨 선장과 파울러처럼, 큐가든을 찾아가 행복한지 살피며 세상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함께 살아가야 하리라!


초등학교 저학년은 저학년대로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눈높이에 따라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주제에 접근하도록 어른들이 이끌어주면 좋을 책이다. 요즘은 장애우를 소재로 한 동화가 많다. 아이들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마음도 준비되었고 실천할 의지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런 준비가 충분치 않다. 따가운 눈총도 불쌍히 여기는 눈길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때마다 장애우들도 움츠러들거나 물러서지 말고 당당히 현실과 부딪혀 보르카의 큐가든 같은 세상을 이루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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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1-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가 어렸을때 이 책 보았는데, 이제 조금 더 컸으니 다시보고 이야기 나눠 봐야겠어요.

순오기 2010-11-01 17:21   좋아요 0 | URL
책 볼때마다 소감이 다르긴 하지요.
 
트리갭의 샘물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 대교출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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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은 전혀 몰랐던 책, 하지만 읽고 나서 반해 버린 책이다. 나는 환타지 동화는 현실도피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환타지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사건이 한 줄로 꿰어지기 전의 도입부는 감을 잡기 어려웠지만, 곧 트리갭의 샘물은 어떤 비밀을 갖고 있는지 호기심을 고조시키며 긴장감을 최대로 끌어 올린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집을 나선 위니는 숲 속 샘물가에서 제시를 만난다. 제시는 백네 살, 아니 열일곱 살이고 위니는 곧 열한 살이 된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위니는 마침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겠다 하고, 제시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샘물의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 가족은 본의 아니게 위니를 납치한다. 납치 현장을 목격한 노란 옷의 사나이는 그들의 뒤를 밟아 온다.  

 


무조건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해 준다며 말을 달리는 터크씨네 가족은 무척 비밀스럽다. 위니가 감당하기에 벅찬 비밀은 뭘까? 우연히 포스터씨 숲에서 트리갭의 샘물을 마신 터크씨 가족은, 그 샘물을 마실 때의 모습 그대로 늙지 않고 영원히 죽지도 않는다. 어려서 삼천갑자 동박삭이와 한 번 구르면 삼년 산다는 3년 고개를 수없이 굴러서 오래도록 살았다는 옛날 이야기를 들었지만, 영원히 사는 샘물이라니 이거야말로 환타지 아닌가? ^^   

 
 
샘물을 마시지 않은 큰아들 마일즈의 아내와 두 딸은 늙지 않는 그들을 마법사로 오해하고 곁을 떠난다. 다른 가족은 나이 먹고 늙어가는데 영원히 그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몇 년을 지낸 마을에선 이런 모습을 들킬까봐 떠돌아 다녀야 했고, 이웃의 눈에 뛸까봐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친구와 이웃들은 모두 나이 먹어 늙고 죽어가는데, 남겨지는 터크씨네 가족은 쓸쓸하고 죽을 수도 없는 게 고통이었다.    


노란 옷의 사나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인간욕망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샘물의 비밀을 알아낸 그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샘물을 팔 계획을 세운다. 터크 가족을 산증인으로 내세워 샘물을 홍보하겠다며 협상하지만, 인간들이 돼지떼처럼 몰려들어 샘물을 마신다는 생각만으로 끔찍한 터크씨네 가족은 결사 반대한다. 불로장생의 인간욕구는 스스로 재앙을 불러 올 뿐이고, 삶과 죽음의 자연 질서에 따르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그들은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연 노란 옷의 사나이는 사람들에게 샘물을 팔았을까? 제시는 위니가 열일곱 살이 되면 샘물을 먹고 성장을 멈춘 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위니는 제시가 준 샘물을 과연 열일곱 살에 먹었을까? 위니는 트리갭의 샘물을 먹고 제시와 결혼해 영원히 사는 길을 갔을까, 살다가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까? 먼 훗날 트리갭에 돌아온 터크씨 가족이 발견한 무덤은 누구의 것일까? 마지막까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짜여진 글이다.   


1975년 발표되어 미국 도서관협회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초 중고생의 필독도서로 읽히는 책이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청소년이 시간과 영원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토론하기에도 좋을 책이다. 개정판에는 작가와의 대화도 실려 있어, 트리갭의 샘물 집필과 관련한 작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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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0-26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고학년인 큰 아이에게 한 번 권해봐야겠어요. 원서도 찾아봐야겠네요^^

순오기 2010-10-26 20:36   좋아요 0 | URL
삽화를 넣기 전에 보셨네요~ 고학년 아이들도 재밌게 봤어요.

카스피 2010-10-2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내용가 비슷한 영화를 TV에서 소개한적이 있는데 원작 소설이 있었군요.결말이 어찌될지 참 궁금하네요^^

순오기 2010-10-26 20:37   좋아요 0 | URL
아~ 영화도 있었군요. 결말은~~~~~~~~ 읽어보면 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