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 (양장) 푸른도서관 5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 1월, 출판사 모임에서 이금이작가를 처음 뵈었는데, 소탈한 우리 이웃의 아줌마 같았다. 실제 작가의 블러그(밤티마을)에 소소한 일상을 풀어내는 걸 봐도 우리 주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주부와 다르다면 소소한 일상의 체험을 따뜻하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빚어내는 탁월함이 다를 것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네 번을 만난 작가는 작품과 삶에 괴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작가에게도 느낄 수 있으니까. ^^

 

초등 6학년 2학기 읽기에 '소희의 일기장'이라는 제목으로, 2부 소희의 이야기 첫 부분인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작은 예의'가 실렸다. 교과서에 수록돼 6학년 '미르, 소희, 바우' 세 주인공 이야기를 또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우리나라 모든 6학년이 읽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1999년 초판이 나온 후 10년이 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50만부를 돌파했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작가라는 건 두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작가의 가슴에 담겨진 느티나무가 '너도 하늘말나리야'로 나오기까지 오랜 기간 숙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름대로 한 가지 상처를 가진 세 아이가 아픔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상처가 치유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미르, 소희, 바우 세 아이를 화자로 하여 같은 상황을 각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문제를 꽁꽁 담아두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이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달밭(월전리) 보건소장으로 내려온 엄마가 미워 심통을 부리는 미르는, 마치 가시를 세운 엉겅퀴처럼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사나운 척한다. 그런 아픔을 이해하고 스스로 가시를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친구가 소희와 바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재혼으로 할머니와 살게 된 소희의 어른스러움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른만큼 훌쩍 커버려 응석이나 투정 한 번 못 부렸을 그 의젓함이 못내 안쓰러웠다. 바우는 그런 소희가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함으로 하늘 향해 피어 있는 '하늘말나리'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바우는 일곱 살에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잃고, 세상과 소통하는 문을 닫아버린 '선택적 함구증'의 아이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추수리지 못한 아빠가, 바우를 이해하거나 기다려주지 못한 결과라 더 아팠다. 

 

세 아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소통하는 마음을, 잔잔한 묘사와 연필삽화로 그려내 독자를 감동케 한다. 큰소리나 악다구니 없이 가만가만 펼쳐내는 달밭 세 아이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아픈 현실이라고 일러준다. 사별이나 이혼으로 생겨난 모부자 가정이나 조손가정, 또한 소년,소녀가장이 제법 많은 현실은, '너도 하늘말나리야'가 우리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금이 작가는 환타지를 쓰지 않아 좋다. 난 환타지적인 동화는 일종의 현실도피라고 생각돼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나 독자가 현실적인 해결 노력없이 환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맘에 안들기 때문이다. 이금이 작가는 아이들의 아픔을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보듬어서 좋다. 세상이 험하고 사랑이 메말랐다 해도 동화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그린다면, 각박한 세상도 따뜻해지라라 희망을 갖게 된다. 꽃을 닮은 아이들- 미르, 소희, 바우가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으로 소통하며 친구로 성장하는 모습에 책을 덮는 내 마음도 흐뭇하고 따뜻했다.^^

*책 속에 삽입된 시 제비꽃, 엉겅퀴꽃, 개망초꽃은 신형건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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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족, 사랑, 족쇄, 약정기간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12-01 01:11 
    <너도 하늘말나리야> 후속편인 <소희의 방>을 읽으며 너무나 감정이입이 돼버려 펑펑 울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론 이금이 작가와 황선미 작가를 동화계의 쌍두마차라 생각한다. 동화를 즐겨 읽는 엄마라면 이 두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낼 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두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토론했는데,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초등독서회에서 두 번, 중학교독서회까지 세 번이나 토론한 작품이다. 작품성도 뛰어나 인지도가 높고 나눌 이야기도 많다. 엄마들은 잎싹의 모성애와 자아실현에 초점을 두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내며 감동을 나누었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토론하던 장면이 지금도 떠오른다.

2002년에 처음 읽었는데 막내가 일곱 살부터 눈물을 흘리며 읽고 또 읽은 책이라 더 애정이 간다. 아이들도 여러번 이 책을 읽으며 눈높이가 다른 만큼 읽을 때마다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막내를 비롯한 삼남매가 서너 번은 읽었고, 나도 세 번을 읽었더니 잎싹의 마음이나 장면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모성애와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를 잘 드러낸 황선미 작가 최고의 작품으로 추천한다.  
 
암탉은 어느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알낳는 닭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잎싹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잎싹'이란 이름을 붙이고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과, 알을 품어 새끼를 까고 싶은 꿈을 가졌기에 여늬 닭과는 달랐다.

잎싹은 물렁거리는 알을 낳으며, 점차 알을 낳고 싶은 마음도 없고 입맛도 잃어 폐계닭으로 내쳐진다. 병든 닭들과 구덩이에 버려졌지만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족제비에게 벗어나 마당으로 돌아 온다. 수탉부부와 오리를 비롯한 마당식구들은 잎싹을 달가와 하지 않지만, 잎싹은 알을 낳아 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꿈꾸며 버틴다. 
 

마침내 청둥오리 새끼인 초록머리를 부화시켜 키우게 된 잎싹은 마당을 나와 물가에서 떠돌며 사냥꾼 족제비를 피한다. 나그네처럼 겁내지 않고 맞서는 용기만 있으면 절대로 족제비가 건드리지 못할 거라며, 날마다 잠자리를 바꾸어 초록머리를 지켜낸다.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한 초록머리는 부쩍 자랐지만 우울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었다. 족제비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넋을 놓은 초록머리를 지키기 위해 잎싹은 족제비에게 덤벼 들었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지만 내동댕이처진 잎싹은 눈을 감았고, 초록머리는 마침내 날아 올랐다. 

만세~ 기적이다! 잎싹은 초록머리의 비상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족제비를 겁내지 않아도 되고, 넓은 저수지를 금세 다녀올 수 있고, 갈대숲 위에서 둘러보고 좋은 잠자리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잎싹의 눈물겨운 모성애로도 초록머리의 쓸쓸함을 알지 못했고,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인시킨다. 하지만 초록머리는 마당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마당에 가도 외로울거라는 걸 아는 잎싹은 말리고 싶었지만 멀찍이서 뒤따라 갈 뿐이다. 

마당에서 살아도 여전히 따돌림당하고 외톨이인 초록머리는 주인여자에게 붙잡혀 다리에 끈을 매고 기둥에 묶인다. 잎싹은 기회를 엿보다 주인여자가 기둥에서 풀었을 때, 달려들어 초록머리가 도망치도록 돕는다. 자식을 지키는 엄마는 어떤 일에도 겁내고 두려워하지 않는 건 모성애의 특징이다. 물론 청둥오리 나그네의 부성애도 뒤지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초록머리는 다리에 끈을 매단채 날아 올라 저수지로 돌아온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52쪽)


초록머리는 사춘기가 되었을까? 저수지로 돌아온 후로는 잎싹에게 다가오지 않고 잠자리도 따로 정했다. 잎싹은 먼 발치에서 초록머리가 잘 먹고, 잘 자는지 지켜보는 것 뿐이라 슬프고 외로웠다. 서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초록머리를 이해하고 발에 묶인 끈이라도 없애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잎싹의 모성애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초록머리를 청둥오리 무리로 떠나 보낸 뒤 잎싹은 커다란 슬픔과 외로움을 느낀다. '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결국 떠나는구나!' 땅이라도 치며 통곡하고 싶지 않을까?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시키며 느끼는 배신감(?)은 수습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잎싹의 심정을 가늠하며 마음이 아팠다. 자식이 장성하면 떠나 보내는 게 정한 이치라는 걸 알지만, 초록머리를 지켜보는 잎싹은 안타깝다.  

 

무리에 끼이지 못하고 힘들고 외로워서 엄마를 찾아 온 초록머리는 지쳐 잠들었고, 잎싹은 초록머리 다리에 묶인 끈을 밤새 부리에 피가 나도록 쪼았다. 비록 발목의 끈은 무리 속에서도 알아보기 좋은 내 아기라는 정표로 남았지만, 자식의 장래를 위해선 피흘림도 불사하는 모성애가 절절하게 이해되는 장면이다.   

이 책의 절정! 아직 눈도 못 뜨는 족제비 새끼들을 발견한 잎싹은, 초록머리를 노리는 족제비를 유인하기 위해 그 새끼들을 이용한다. 어린 것들을 움켜 쥐고 족제비와 맞짱뜨는 잎싹, 비참한 표정으로 제 새끼들의 안전을 애원하는 족제비는 보편적 모성애의 진수를 보여준다. 잎싹과 족제비를 내세워 우주적 생명 질서를 설파하는 이 장면은,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생명의 목숨을 이어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제다.

잎싹과 족제비는 각기 제 자식의 안전을 위해 타협한다. 청둥오리 나그네가 갈 수 없었던 그 곳을 초록머리는 파수꾼이 되어 훨훨 날아갔다. 잎싹에게 찾아와 머리 위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작별을 고하고... 잎싹은 언젠가 말하려고 간직했던 말들을 미처 들려주지 못하고 떠나 보낸 후, 세상이 너무 조용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했다. 잎싹은 '날고 싶은 또 다른 소망을, 자신보다 몸이 간절하게 원하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잎싹은 고달프게 살았지만 행복했음을 기억하며, 족제비 새끼들의 먹이가 되어 주는 것으로 우주를 품어 안은 모성애를 마감한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비록 적일지라도 그 새끼를 불쌍히 여겨 목숨을 내어준 잎싹은, 진정한 모성애의 완성이고 실현이었다. 흰눈이 아카시아 꽃처럼 내리던 날, 잎싹은 아주 가볍게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았다. 비쩍 말라서 축 늘어진 암탉을 물고 가는 족제비를 보며 자유를 느꼈으리라! 잎싹아, 이제 모든 짐 내려놓고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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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11-18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감동적인 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기회 되면 다시 읽어봐야 할 책으로 꼽고 있고요.

순오기 2010-11-18 20:08   좋아요 0 | URL
몇 번을 읽어도 감동받는 책이죠~
 
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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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권을 주제로 한 5권은 1~4권과 달리 한 꼭지마다 주제에 맞는 인물 인터뷰가 실렸다.

1부 인간은 10편의 사례가 소개된다.
가장 높은 산에 먼저 오르는 건 등반가가 아닌 셰르파임을 상기시키고, 고산거벽만 등반하는 김세준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월드컵 진출 48년만의 첫 골을 넣은 황선홍 선수의 눈물겨운 분투. 팡 아티스트 백남준과 낸시랭, 무저항 비폭력의 간디와 전쟁의 참상을 판화로 그린 평범한 어머니. 농부로 살면 착한언어로 싸우는 판화가 이철수 인터뷰. 콜롬비아 내전을 몸으로 겪은 아이들에게 춤으로 자신에 대한 존경을 가르친 알바로 레스트레포. 초등학교부터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 청소년 대안학교 '하자센터' 노리단 멤버로 행복하게 사는 강희수 인터뷰. 침묵의 판토마임으로 소통하는 피에로 빕, 놀기 좋아한 우리 민족의 축제정신을 복원하고 세계적인 춘천마임축제로 승화시킨 유진규 인터뷰. 스페인의 파시즘에 대항해 망명생활을 하는 파블로 카잘스, 대중예술인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허락돼야 한다는 공연연출가 탁현민 인터뷰. 통신비빌보호법에 반대해 사생활 보장을 주장하는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인터뷰. 안락사 문제까지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케 하는 책이다. 

2부는 인생에 관한 10가지 이야기다.
숲을 지킨 인도의 칩코 여인들과 개발로 코카나무조차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 가비오따스가 되면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인 도법스님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서 찾는다. 즉 인간과 자연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불교와 사회도 분리될 수 없는 인드라망이 추구하는 공동체의 원리라고 답한다. 풍요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평화와 아름다운 인간사회를 꿈꾸었던 히피정신, 불편을 감수하며 반개발과 친환경에너지를 이용하는 사람들, 외국인이라서 당하는 인권이 실종된 사례들, 감당키 어려운 대학등록금과 사교육비 등 저마다의 아픔과 설움과 분노를 담고 있다.   

백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한국인이 동남아인과 흑인에게 가하는 인종차별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성공회대 교수 보노짓 후세인의 진단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상식에 어긋나고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사회를 보며 마음이 무겁고 암울하지만, 그럼에도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과 인간 감성에 호소하는 지식채널e를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고 위로 받는다.  

마음과 몸을 흔들어 깨우는 지식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보다 나은 사회로 발전해 가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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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11-18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서재에서 지식채널e 책을 만납니다. 무식한 제가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생각거리도 많을 책이네요.

순오기 2010-11-18 20:07   좋아요 0 | URL
3권은 읽다가 너무 오래돼서 리뷰를 안썼고... 4권과 5권은 독서마라톤 기간에 읽어서 리뷰를 대충 썼어요.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면 자극이 되지요~
 
빨간모자 울음을 터뜨리다 - 독일 올덴부르크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10
베아테 테레자 하니케 지음, 유혜자 옮김 / 대교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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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7년 독일 올덴부르크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를 받아 들었을 땐, 솔직히 가족의 성폭력을 소재로 한 책이라 읽기가 꺼려졌다. 더구나 예민한 사춘기의 중3 막내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자 빨간 모자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안타까워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가족내 성폭력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침묵을 강요받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보다 노출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조차도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온실 속에서 자녀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면, 성폭력 예방과 문제 발생시 대처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도 꼭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할아버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있는 폐단도 있지만... 성추행이나 성폭행범을 누구로 설정해도 가능한 현실이다.  

열네 살 말비나는 중학교 2학년, 키가 175센티나 되는 빼빼 마른 사춘기 소녀로, 리지라는 절친과 어울려 남자 아이들도 놀려대며 그 나이에 걸맞게 잘 지낸다. 가끔 혼자가 된 할아버지 댁에 도시락 심부름을 가야 하는 걸 제외하곤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시락 심부름이라는 설정이 '빨간 모자' 동화를 연상시키며, 말비나를 잡아 먹은 늑대는 과연 누구였는지 생각케 한다. 열네 살 '말비나'가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을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말비나의 일기형식으로 진술한 작가는, 성폭력은 말비나의 잘못이 아니고, 슬픔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열여섯 중 3 막내는 1시간만에 후딱 읽고는 눈물을 훔치며 나와 짧은 한 줄 서평을 남겼다.

"가슴이 먹먹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으나 실제로도 있는 일들이었다. 제발 참지도 말고, 방관하며 모른 척 덮어두지도 말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용기를 내야 한다. 바구니를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가던 빨간모자가 마침내 용기를 내고 진실을 밝혀 다행이다." 

 
성추행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모와 청소년이 꼭 봐야 할 성장(사회)소설이다. 성추행하는 인간을 할아버지로 제한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 누구로 대체해도 가능한 이야기다. 가족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폭력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비겁함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끔찍한 비밀, 하지만 누군가 내편이 되어 준다면 '말비나'처럼 용기를 낼 수 있다. 가족의 성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 두려움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부당한 성폭력의 진실을 외면하는 당신의 비겁한 침묵에 아이들은 절망한다.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할아버지도 용서할 수 없지만, 침묵으로 동조하고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까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무덤까지 암묵하도록 종용한 할머니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가족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옭아매고, 네 말을 믿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겁주는 비열한 할아버지는 천벌을 받으라!


성폭력은 진정 피해자의 잘못인가? 할아버지가 진한 애정 표현을 할 때, 말비나는 갑자기 돌이 된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졸지에 당하는 성추행에 몸이 굳어 거부의사를 표시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우리는 들어왔다. 말비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거품 목욕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채면서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친구 리지를 데려간다. 어렴풋이 자각하면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던 말비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어린아이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말비나 곁에는 불편한 진실을 밝히려는 이웃이 있었다. 할아버지 댁 이웃에 사는 폴란드인 비첵 부인, 그녀는 엄마를 잃고 아버지에게 시달려야 했던 친구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 친구는 어린 동생을 아버지로부터 보호할 수 없었기에 자매는 산 꼭대기 바위에서 뛰어내렸고... 비첵 부인은 그때 비겁하게 침묵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려는 부인은 말비나에게도 진실을 말해야 된다고 조언한다. 할아버지는 선과 악을 알면서도 악을 선택했다고... 말비나의 친구 리지와 폼쟁이, 리지의 엄마도 말비나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주었다.  
 

불편한 진실에 용기 있게 나서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가족인가? 이미 자녀를 온실 속에서 키울 수 없이 불안한 현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내 성폭력을 비롯해 학교와 학원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예방책과 더불어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책을 통해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말비나에게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오히려 덮어두고 외면하려는 가족들의 비겁함에 가슴이 떨렸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할 가족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치는 일은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말비나를 응원해주는 이웃과 친구가 있었고 언니가 있었으니 다행이다.    

내 이름은 말비나다. 난 열다섯 살이다. 나는 권리를 지킨다는 의미의 말비나고, 바닥이 보이지 않아도 펄쩍 뛰어낼 만큼 용감한 말비나다. 내가 펄쩍 뛰었을 때 밑에는 리지, 폼쟁이 비첵 부인, 리지 엄마와 안네 언니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갔다. 예를 들어 울 오빠, 엄마와 아빠가 그랬다. 그들은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부끄러워 했다. 난 내가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리지와 폼쟁이는 그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나에게 날마다 반복해서 알려 주고 있다. 그들이 나를 단 1초도 혼자 있게 두지 않는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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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03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리뷰를 페이퍼로 작성해서 다시 리뷰로 올렸어요. 그래서 댓글을 복사했다는...ㅜㅜ

같은하늘 2010-11-03 17:04 댓글달기 | 삭제 | URL
이 책의 내용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빨간모자를 쓰고 할머니께 과자를 가져다 준다는 동화에서 제목이 나왔을까요? 그 대상이 할아버지였다니...ㅜㅜ 요즘 하도 별별(?)일이 많아서 씁쓸한데, 그래도 말비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끝얘기가 있어 다행이예요.

양철나무꾼 2010-11-0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이런 책이었군요~
여기저기서 봤었는데 말이죠.

말비나 주변의 사람들이 칼자루를 말비나에게 쥐어주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순오기 2010-11-04 09:36   좋아요 0 | URL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은 꼭 읽어뵈면 좋을 듯해요.
매사에 조심해야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니까요.ㅜㅜ

프레이야 2010-11-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고 말비나를 지켜준 의미있는 타인들이 고맙지요.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말 되어지지 못한 소재가 아닐까 싶어요.

순오기 2010-11-04 09:37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부끄럽고 불편한 진실이 밝혀지는 거죠.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들이 돼야지요~~~~
심야방송에서 가족내 성폭력을 다루는 다큐를 본 적 있는데, 의외로 비일비재하고 해결책마저도 타인의 성폭력과 달라서 오히려 더 심각하더라고요.ㅜㅜ

마녀고양이 2010-11-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성폭력당한 것의 20~30%가 근친상간이나 선생님이라는 통계를 어제 봤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에 의해 당한거니 그만큼 충격도 크구여,
또한 주위에서는 진실을 보기 두려워 외면하니 믿을 곳도 없구요.

이런 아이가 어떻게 클지는 너무나 자명해보입니다. 외롭고 믿을 곳 없고, 아...... 답답해.

순오기 2010-11-05 04:17   좋아요 0 | URL
그러게 의외로 많더라고요. ㅜㅜ
어떤 형태의 성폭력도 있어선 안되는데, 현실은 점점 반대로 진행되고...

2010-11-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0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고전 홍길동전 읽기
홍길동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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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홍길동 생가를 중심으로 한 문학기행을 앞두고,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로 선정했다. 전에 나랏말에서 나온 청소년용을 읽었지만 민음사에서 나온 건 완판본(전주에서 판각한 목판)과 경판본(경성에서 판각한 목판)이 다 실렸다.  


경판 24장본은 내용이 간략해서 완판36장본과 비교해보면 좋을 거 같다. 내용이야 뻔히 아는 거지만, 고전소설의 상투어인 화설(話說)-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차설(且說)-이야기를 전환할 때, 각설(却說)-앞에 하던 이야기를 그만두고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이란 용어가 나와서 옛이야기를 읽는 맛이 더 났다.  엮은이 김탁환씨는 ’허균, 최후의 19일’을 쓴 작가로 특별히 허균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홍길동전이 영웅의 출세만을 그린 게 아니고, 임진왜란 이후 산적한 조선의 제반 문제를 다룬 사회소설로 적서 차별, 탐관오리의 횡포, 승려의 부패, 조정의 무능함 등이 적나라하게 담겼고, 홍길동은 이런 문제를 백성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홍길동전의 율도국은 허균이 꿈꾼 유토피아로 봉건체제를 그대로 답습한 한계가 있지만, 조선을 율도국으로 만들기 위한 허균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홍길동이 꿈꾼 세상이 기대치만큼 만족스럽지 않아도 소설이 쓰인 당시로는 파격적이었을 듯.


완판 36장본은 내용이 경판본보다 자세해서 좋다. 길동의 형, 홍대감의 소실, 길동을 잡겠다고 나선 이의 이름도 조금씩 다르다. 게다가 이 책은 동양화 풍 삽화가 있어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같으면서 약간 다른 홍길동전을 세번째 보는 거라 살짝 식상하지만, 경판본에는 길동이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 춘섬에게 ’장길산’을 거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완판본에서는 길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역시 판본이 거듭되면서 훨씬 후기의 장길산 이야기가 끼어든 게 분명하다.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문학사적 가치는 충만하지만, 홍길동이 활빈당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이나, 병조판서를 요구하는 건 출세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위에 올라 아버지를 추존하여 태조대왕이라 하고 어머니를 왕대비에 봉한 거나, 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기존 질서를 답습한 것으로, 독자로서 혁명을 꿈꾼 홍길동을 보고 싶었는데 좀 실망스럽다. 홍길동 부부가 오색구름에 홀연히 자취가 사라진 결말은 환타지다. 홍길동의 형 길현도 연이어 승진해 승상이 되어 잘 살았고, 길동은 원한을 풀고 효성과 우애를 다한 당당한 장부로 아름답고 희한한 일이기에 후세에 알린다는 마무리도 안습이다. 개인의 부귀영화에 머물지 않고 백성을 위한 큰 틀에서 다뤘다면 진정한 우리시대의 영웅이 되었을 텐데 좀 아쉽다.



영인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돼 있는데, 현대어에 익숙한 내겐 외국어나 다름없어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냥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주욱 구경만 하고 글을 읽어 내용을 알아 먹기는 힘들었다. 하하~~ 세종대왕께서 만든 훈민정음을 현대어로만 읽을 수 있으니 이를 어쩌리오!ㅠㅠ


세 권의 홍길동전을 보고 ’허균, 최후의 19일’을 읽었더니, 진정으로 허균이 꿈꾼 새로운 세상을 알 것 같았다.  
홍길동전을 읽었다면, 시대를 앞서간 천재 기인 허균이 꿈꾼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허균 최후의 19일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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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0-10-0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순오기님!
하, 저도 순오기님 따라서 홍길동전이랑 '허균, 최후의 19일'을 읽어야겠어요.
예전에 허난설헌 때문에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던 적이 있거든요.
어쩌면 또 안타까운 마음에 며칠을 싱숭생숭하게 지낼지라도 읽고 싶네요. ^^

순오기 2010-10-04 16:16   좋아요 0 | URL
허난설헌은 정말 가슴 아파요,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은 언제나 먹먹하게 하죠.ㅜㅜ
10월에 홍길동 생가를 비롯한 장성지역 문학기행이 있어서 열심히 읽었어요.^^

양철나무꾼 2010-10-0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이 책 '김탁환'때문에 읽었었던 기억이...
물론,'허균,최후의 19일'도 죽음이었구요~^^

순오기 2010-10-04 16:17   좋아요 0 | URL
김탁환 소설, 처음인데~ 허균 최후의 19일은 사건의 역순으로 진술돼서 좀 그래요.
드라마틱한 허균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독자에겐 친절한 진술이 아니라 죽음이죠.ㅋㅋ

마녀고양이 2010-10-0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균 최후의 19일 이거 읽고 싶어요.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요. 굉장히 궁금해집니다.

순오기 2010-10-05 03:4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하편부터 거꾸로 읽어야 이해가 빠를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