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중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지금까지 개별 역사로 보고 따로 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유라시아 대륙 양 끝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의 경과가 내용상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세기에 시작된 지구 전체를 덮친 한랭화로 인해 유목민이 남하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가 멸망하고 서쪽 유럽에서는 로마제국이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게르만인이, 중국에서는 유입된 유목민들(오대십국)이 둘 다 정주화하면서 군벌로 성장해 최종적으로는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두 지역 모두 한랭화로 인구가 크게 감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온난화와 철제 농기구 개발로 생산성이 향상됨에 따라 9세기에서 13세기까지 인구가 3배로 늘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당나라~원나라)에 중국에서도 온난화와 기술혁신, 강남개발이 진전되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 끝에서 역사는 나란히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pp. 140~141. - P140

몽골제국은 유목민의 제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몽골-튀르크계의 유목 군사력과 이란-이슬람계의 상업 경제력이 중앙유라시아의 초원 오아시스 지대에서 융합, 일체화된 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거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안입니다. 치안이 악화되면 상품을 강탈당하거나 속아 넘어갈 위험이 커집니다. 따라서 상인들이 무력을 지닌 권력이 뒷배를 얻으려고 자신들의 이익 일부를 제공하는 형태로 양자가 결합되었던 것입니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산발적 연결 고리를 유라시아 전역의 규모로 완성한 것이 몽골제국입니다. 몽골은 자신의 군사력과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인접한 농경 세계를 차례차례 자신의 통치 아래로 편입시키는 방법으로 마침내 유라시아 전체를 통합한 대제국을 이룩했습니다. P. 155. - P155

송나라 시절 ‘송전’으로 불리는 화폐의 증산이 있었습니다. 화폐가 보급된 배경에는 당시 정권의 의도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의도란 ‘세금 징수’를 동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세금은 물품이나 노역으로 지불되었는데, 무엇으로든 교환 가능한 동전으로 대체하면 세금 징수가 간편해질 뿐 아니라 징수한 곡물을 용병 급여로 지불할 대 발생하는 손실도 없어져서 효율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 급여를 받는 측도 현물보다 동전으로 지급받는 편이 훨씬 편리했으므로 화폐경제는 단번에 사회에 보급되었습니다. P. 178.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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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동료 작가들과 식사를 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을 써보자는 내기를 했다. 그때 헤밍웨이가 썼다고 알려진 소설이 바로 다음과 같은 짧은 문구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고작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소설이지만, 내용을 해석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추론하고 상상해야 한다. 아기 신발이 왜 사용되지 못했는지, 왜 아기 신발을 파는지, 아기 엄마는 누구인지 그런 것을 추론하고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추측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독자의 이 같은 해석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짧고 간결한 문장을 쓰려면 무엇보다 중복되고 불필요한 어휘를 버리고 핵심적인 어휘들만 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문장을 이렇게 간략히 정리하면 기본적인 문형이 드러나고, 어법에 맞지 않은 비문이 나올 확률이 줄어든다. 아울러 문장에 여운이 남고, 생각은 깊어진다.



초고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중복되는 의미나 어휘를 지운다.

2. 불필요한 부사나 형용사를 지운다.

3. 긴 문장을 줄여 여러 문장으로 나눈다.

4. 필요하면 간단히 보충 문장을 넣어준다.

5.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예시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제각기 여러모로 다양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 그 꿈은 단지 취득하고 싶은 물건부터 자신이 이룩하고 싶은 미래의 직업까지 온 갖가지 모양의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평탄하게 이루어진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열중하던 때부터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대학에 마침내 들어온 이후까지, 꿈으로 인한 여러 갈등이 지속적으로 벌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그런 갈등의 요소가 다양하게 들어 있고 해소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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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가지고 산다. 그 꿈은 갖고 싶은 물건부터 미래의 직업까지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아무런 갈등 없이 평탄하게 이룬 사람은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던 대학에 마침내 들어온 이후까지,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여기에 그런 갈등의 요소와 해소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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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경치를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보게 되니 지나간 세월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니, 그 풍광 속에 그대로 저축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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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경치를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보게 되었. 지나간 세월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풍광 속에 그대로 저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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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산길을 올라가서는 전기도 욕실도 화장실도 불편한 나무집 숙소에서 잠을 자는 일정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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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나는 산길을 올라가서는 전기도 없고 욕실도 화장실도 불편한 나무집 숙소에서 잠을 자는 일정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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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중에 훈련소에 가서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훈련을 한 뒤 “그때 겪어보아서인지 하나도 무섭지 않더라”고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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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중에 훈련소에 가서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훈련을 했다. 편지에 “그때 겪어보아서인지 하나도 무섭지 않더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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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칠흑 같은 어둠, 별빛을 보고 길을 찾아가던 시대의 행복을 알려주는 일은 자기 직전까지 누워서 스마트폰을 밝히는 요즘으로선 아주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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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 별빛을 보고 길을 찾아가던 시대는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그런 행복을 알려주는 일은 스마트폰만 보는 요즘으로선 아주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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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생물학자들은 중세 과학자 갈릴레오가 “지구는 둥글다”라는 이론을 발표했던 과거 플로렌스의 명성에 걸맞은 새로운 과학이론을 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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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플로렌스에서 중세 과학자 갈릴레오가 “지구는 둥글다”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런 플로렌스의 명성에 걸맞게 이탈리아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이론을 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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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도쿠가와 시대 내지 그 이전 시대가 ‘정체’되었다가거나 ‘폐쇄적’ 혹은 ‘쇄국적’이었거나 ‘봉건적’이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1853년 페리 제독의 내항이 일본을 ‘개국’시켰다는 주장이나 1806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도쿠가와의 유산과 급격한 단절을 이루었다는 주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일본도 하루아침에, 아니 한 세기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 도시화는 획기적이었다. 1550년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일본에서는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가 하나에서 다섯으로 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일본 도시 인구는 중국이나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많았다. 오사카와 쿄토, 에도(토쿄) 인구는 각각 적어도 100만을 넘었다. 특히 에도 인구는 130만에 육박했다. 일본 인구의 6~13%가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에 살았다. 반면 당시 유럽의 도시인구는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본 인구는 세계인구의 겨우 3%였지만, 10만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은 무려 8%나 되었다."<리오리엔트>

















"메이지 유신 이전 도쿠가와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260여 개의 지방마다 영주가 있었다. 이 지방 영주를 다이묘, 또는 번주라고 하고, 그들이 다스리는 봉건국가를 번이라고 한다. 이처럼 반독립적인 번이 다수 존재했다는 점은 막말기의 변혁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각 번들 간의 경쟁의식이 강했다. 다수의 정치에서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의 경쟁, 생존의 경쟁 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점이 대내외 위기에 민감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였다.”<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일본의 정치와 사회 체제의 분권화와 다양성이 중국에서 나타난 것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대응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러한 다양성 덕분에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대응하였다. 예를 들면, 번 대부분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 너무 작거나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충분한 수의 번들이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엄격한 계급 구분도 영향을 끼쳤다.”<동양문화사(하)>
















"일본의 봉건제는 유럽의 봉건제와 유사한 면도 있지만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센고쿠(戰國)시대 이후 일본의 봉건제는 쇼군과 다이묘가 주종 관계에 있지 않았다. 유럽의 왕-제후 관계와 달리 일본의 쇼군은 가장 강력한 무가(武家)일 뿐이다. 천황 위임을 정통성의 근거로 하지만, 그 위임은 힘에 기반한 것이었고, 결국 통치 근원이 되는 것은 무력이고 실력이었다.



제한적 권위의 통치자로서 쇼군은 다이묘들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 없었다. 다이묘들의 충성 서역은 전시에 쇼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군역만을 의무화하였다. 일반적으로 중앙 권력이 강성해지면 지방의 사적 무력 보유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통치체계가 정비되지만, 일본은 그럴 수 없었다. 군역이 계약의 기초이므로 다이묘의 무력 보유를 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극상이 난무하는 센고쿠시대를 거치면서 충성 맹서는 약속의 무게를 잃은 지 오래다. 쇼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군역 의무가 쇼군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패러독스 상황에서 쇼군은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해 군역을 다른 형태로 부담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쇼군이 군역의 연장선상에서 성곽 축성, 제방이나 도로 건설 등 전쟁 기간시설 관련 공사에 다이묘가 인력과 자재 등을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가한 것이 천하보청(天下普請)이다.



이에야스는 쇼군 자리에 오른 후 바로 천하보청을 발령한다. 히비야이리에 매립사업을 비롯하여 소토보리(에도성 바깥쪽 해자) 조성, 에도성 축조, 고카이도 정비 등에 전국 다이묘를 동원한 것이다. 천하보청은 쇼군 통치의 상징이자 다이묘 견제책이기도 했다. 이에야스는 다이묘들의 천하보청에 대한 순응 정도를 다이묘의 충성심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저항 가능성이 높을수록 더 많은 의무를 부과하고 순응할수록 의무를 경감하였다.



각 다이묘는 천하보청에 따른 재정 압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정해진 기일 내에 높은 완성도로 사업을 완료할 수 있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 실패할 경우 신임을 잃는 것은 물론,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오거나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이묘들이 천하보청의 명을 받아 공사에 임하기는 하지만 공사 완료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각자 부족한 자재나 기술을 번끼리 거래하거나 전문가들을 인력 시장에서 구해야 했다. 기존에 없던 자본이나 자재,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천하보청은 각 번의 통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하보청 수행을 위해서는 번의 자원 동원력이 향상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다이묘가 천하보청의 압박을 견디기 위해 행정력 강화와 세수 증대를 위한 새로운 땅 개간 등 통치체제 정비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천하보청의 묘미는 국가에서 거둔 국부가 고스란히 인프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쇼군이 중앙의 군주로서 징세, 즉 화폐나 현물 형태로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거두어 갔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비효율과 왜곡된 자본 축적이 발생했을 것이다. 일본은 천하보청에 따라 세금 징수가 아니라 ‘결과물’ 형태로 의무를 부과했기에 관리비용 등의 매몰비용이나 착복으로 인한 증발 없이 모든 투입이 실물 인프라로 이어졌다. 



일본으로서는 쇼군이 다이묘를 견제해야만 하는 정통성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전근대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소수의 중앙 지배층을 정점으로 하는 다단계의 착취적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하고 통치에 민주성이 결여된 전근대이기에 세금은 비효율성도 높고 생산력 확대를 위한 재투자에도 사용되기 어려웠다. 세금은 누군가의 금고로 들어가 사치로 낭비되거나 다 쓰이지도 못하고 소멸되는 국부의 무덤이었다.



일본은 중앙의 징세권이 없었다는 사정이 천하보청과 맞물려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선 천하보청에 동원된 자원은 중앙 지배층에 이전되어 축적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지방 지배층인 다이묘들은 자본 축적의 기회는커녕 악몽 같은 상황에 처했다. 번 정부는 동원 인부들에게 노임을 지급하고 자재를 구매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정을 지출해야 했다. 천하보텅 비용 마련을 위해 빚을 내야 하는 다이묘도 있을 정도였다. 말단에서 세금 형태로 걷히는 생산물은 천하보청을 거치면서 노임이나 자재 대금 형태로 제분배되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자원 투입 결과로 높은 수준의 공공인프라가 창출되자 한층 더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이는 다시 말단 세금 납부자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졌다. 천하보청이 의도치 않은 국부 인큐베이터가 된 셈이다.<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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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현대 복지국가 이념을 최초 기록한 라이프니치(1646~1716)의 정치철학에 기반을 둔 듯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국가는 평화와 시민 안전을 보장하는 일뿐 아니라 자비로운 행위를 통해 시민의 도덕적이고 물질적인 행복을 증진해야 할 의무를 진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이 추구할 최고 목표는 ‘행복’이다. 헌법에 언급될 정도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목표가 행복이다. 



『행복의 함정』(2011)의 저자 리처드 레이어드(1939~ )는 행복은 자연스러운 목표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게 마련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 궁극의 목표인 이유는 그것이 단지 선(善)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좋다는 것은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을 만큼 명백하다. 우리에게 행복이 왜 그렇게까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행복의 절대적 중요성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에도 나타나 있듯이 행복은 ’그 자체로 명백한‘ 목표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증명보다는 전제에 해당한다. 레이어드 자신도 말했듯이 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없고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해지길 원하는가?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선택할 수 없다.

서점에 가면 『나는 행복을 선택했어요』나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하루에 한 걸음씩 행복해지기』 『스스로 행복하라』, 『행복으로 가는 길』과 같은 행복 관련 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다. 이러한 책들은 안녕감(well-being)이나 만족 등을 추구하라는 바람직한 담론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사회에서 회자되는 행복 담론은 그저 무해한 개념이 아니다. 흔히 행복 담론은 우리에게 고통과 안녕감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요는 우리가 언제나 행복을 선택할 수 있고, 행복에 이르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전제한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삶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삶에서 어려움과 비극은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행복 담론은 고통과 행복이 개인 선택 문제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중세 스토아 철학은 자신 의지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토아 철학 핵심에는 깊은 숙명론이 있다. 세상은 내가 쓰지 않은 대본에 따라 움직인다. 언젠가는 직접 연출도 하고 싶겠지만, 포기하는 게 좋다. 우리는 단지 연기자일 뿐이다. 자신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스토아 철학에는 ‘운명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조건부 표현이 많은데, 이를 ‘유보조항’이라 부른다. ‘유보조항’은 우리가 직접 쓰지 않은 대본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건은 그저 ‘운명이 허락하는 대로’ 펼쳐진다.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2007)의 저자 메리 파이퍼(1947~ )는 대학교 졸업반 시절 행복 관련한 대중 도서에 한창 빠져 자만심으로 가득할 때 그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파이퍼는 암으로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계시던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행복하게 사셨어요?” 할머니는 손녀 질문을 무시했다. 손녀는 할머니가 못 듣기라고 한 듯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화를 내다시피 하며 대답하셨다. ”메리, 난 내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을 제대로 잘 썼나? 내가 있어서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지.“ 
















손녀에게 행복은 바람직한 인생을 함축하지만, 그녀 할머니에게는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행복의 역설’(헤도니즘의 역설, Paradox of Hedonism)을 설명했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우리는 특히 ‘아주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원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예를 들면 많은 돈과 명예,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갖게 되면 우리는 원하는 바를 재조정한다. 이전보다 그저 조금만 더 생기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얼마큼이 충분한지 알지 못한다. 



상대적 빈곤 때문에 불행하다.

행복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일 뿐 아니라, 부(富)를 기반으로 한 행복은 상대적 빈곤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에 더 민감하다. ‘오늘날 가장 궁핍하게 사는 사람조차 수백 년 전 왕보다 잘 살사는 데 몇몇 사람들이 엄청 잘 사는 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큰 빈곤을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에 평범한 사람은 부자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누구든 백만장자 삶이 어떤지 자세히 알 수 있다. 텔레비전은 부자들의 호화로운 삶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크게 보도한다. SNS에서 백만장자들의 집을 볼 수 있다.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SNS로 인한 불만’이라는 증상이 생겼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절대 소유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괴로울 정도로 자세히 볼 수 있다. SNS 그 자체든 다른 형태의 대중적 노출이든, ‘SNS 불만’은 보통 사람들이 소유한 것을 하찮게 보이도록 만든다. 비록 그 사람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넉넉한 삶을 누리고 있고, 인류 역사에서 극도로 풍요로운, 수천만 명 중 한 사람일지라고 그렇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상대적이다. 사람들은 자신 행복을 판단할 때, 자신 실제 상황을 과거 혹은 현재의 사회적 경험에 비추어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이 상대적이라면 국가가 객관적으로 경제를 개선하고 부양하더라도 반드시 국민이 실질적으로 수혜를 얻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무슨 일이든 쉽게 적응하며, 행복은 객관적으로 충족되지 않기에 국가 경제 정책이 국민 행복 증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의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여건이 극도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자신 운명에 주관적으로 만족하고 사회적 불만을 막고자 보편적 기본 소득을 도입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두고 어떤 정의를 따르든, 일단 한 번 누구에게나 그것을 무료로 제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하게 될 것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 덕분에 빈곤층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 지구에 불평등이 만연한 것에 극도로 분노할 수 있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진정으로 달성하려면 보편 기본 소득은 다른 의미 있는 추구에 의해 보완돼야 할 것이다. 일-이후(이외)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 심지어 가난하고 직업이 없더라도 삶의 만족도를 높일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보편 기본 소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한 “심지어 가난하고 직업이 없더라도 삶의 만족도”를 높인 사회가 요즘 일본이 아닌가 싶다. 현재 일본 젊은 층 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취직률은 저조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며 워킹푸어로 일하고, 현대판 홈리스라고 볼 수 있는 피시방에서 난민처럼 산다. 



하지만 20대 일본 젊은이들이 느끼는 생활 만족도와 행복 지수는 78.3퍼센트까지 상승했다. 일본 중학생과 고등학생 95퍼센트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1980년 절정기를 맞았던 일본의 ‘입시 전쟁’이 상징하듯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이라는 중산층 꿈으로 일본 전체를 압도하던 시기는 지났다. 1990년대 이후 중산층 꿈이 무너짐과 동시에 기업의 정식 구성원이 되지 못한 젊은이가 증가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의 삶 만족도가 증가하고 있다. 



요즘 일본 젊은이는 예전만큼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는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해외여행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유학생 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선거 때 투표하러 가는 젊은이 수도 현저하게 줄고 있다.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으려는 대규모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대신 태어난 지역에 애착을 느끼는 젊은이가 증가하고 있고, 대도시권으로 이동하는 인구수가 감소하고 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2011)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1985~ )는 그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고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될 때, 지금 행복하다.”
















원하는 걸 얻어도 행복하지 않다.

점점 더 많은 세속적 물질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기에 오히려 물질적 풍요 그 자체가 불행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세상은 소비자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더욱 매혹적인 제품을 제공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는 기쁨보다 물건을 갖지 못하는 비참함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754년에 이미 장자크 루소가 그러한 말을 했다. ”만약 당신이 세상 물질을 갖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물질을 소유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원하는 것을 돈으로 사더라도 점점 커지는 소비 때문에 일과 소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행복을 얻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써 소비는 빚 때문에 망하거나 최대 수입만 좇다가 영혼이 고갈되는 결과를 낳는다. 
















내면의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오지 않는다. 외부에서 무언가 주어지는 행복은 지속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원했던 승용차를 사더라도 만족감이 반년을 넘기기가 어렵다. 인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쉽게 적응한다. 이 같은 현상은 인간의 행복에는 설정점(set point)이 존재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행복감은 기저수준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은 결국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속적인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마치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처럼 아주 잠깐 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 뿐이라 하여, 이 현상을 흔히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른다.
















결국 내가 새로운 상황에 곧 적응하리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지 못할 뿐이다. 노인들은 대게 건강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기에 노인이 젊은이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우리는 매우 놀란다. 하지만 많은 사람 대부분은 만성 질병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인간은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 예측하는 데 서툴다. 우리는 자신 감정의 반응 강도와 지속시간 모두를 크게 과대평가한다. 
















흔히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BC 341~270)는 행복을 대부분 사람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긍정적인 정서 차원에서 행복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 측면에서 행복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행복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당신이 불필요한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하면 고통이 생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갈망에 비해 그 성취감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쾌락으로 시작된 것이 고통으로 끝난다. 유일한 해결책은 욕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내 행복은 타인 불행으로 이루어진다.

부처는 우리 행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사람의 번영은 보통 다른 사람의 궁핍이나 배제에 의존하고 있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항상 불평등이 불행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작가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말한 것처럼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다수 사람이 가난하고 불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상주의’라고 부르는 이러한 논리는, 한 사람의 손실이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된다는 뜻이다. 중상주의자가 해줄 수 있는 최고 조언은 임금은 낮을수록 좋다는 점이다. 값싼 노동력은 경쟁 우위를 창출해 수출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맨더빌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 국가에서 가장 확실하게 부를 창출하는 것은 부지런히 일하는 빈곤층 다수다.”



이러한 거리낌 없는 주장이 용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빈곤층이 형편없는 사람들이기에 빈곤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동료 노동자와의 경쟁에서 패한 노동자는 나태와 우둔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빈곤이라는 형벌을 받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영국 전 총리 마거릿 대처(1925~2013)는 빈곤을 ‘인격 결함’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빈곤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은 그럴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한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 언젠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현대사회에는 ‘긍정적 사고’라는 신앙이 있다. 이 같은 낙관주의에 사로잡히면 최악의 경우 모래밭에 머리를 묻고, 우리 모두에게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나아가 내 자신 감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냉담하게 대하게 된다. 하지만 부처(BC 560?~480?)는 “괴로움의 현실이 우리 존재 전체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데서부터 우리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는 삶의 목표로써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삶의 실재인 변화의 고통[生老病死]을 깨닫고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행복을 가져오는 뭔가를 얻자마자 곧 그것을 잃을까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늘 욕망의 대상을 쫓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결국 그것 때문에 불행해질 것임을 알고 있다. 부처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고정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도 실제로는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을 낳고 또 그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만족스러운 순간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좌절하는 것이다.”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1975~ )는 인간이 고통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실패를 겪은 사람은 그것이 왜 실패했는지 생각하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고민하여,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신이 부여한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인간은 적어도 이성적으로 자신 능력에 따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선택한 직업 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노력만 한다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수도 있다고 여긴다. 누구나 자신 행복에 대한 주인이다. 



하지만, 고통을 장애나 시스템 오류로만 생각하며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려고만 한다면, 인간은 자기 실존과의 중요한 연결 지점을 잃고 말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한계가 있는 존재로 인정할 때 자아를 갖게 된다. 인간이 그 한계와 고통을 경험하고 자신 인생과 사회가 대체 왜 이러한지 근거를 캐물어야 한다. 고통은 생각을 낳는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그 고통을 억지로 참는 사람은 성과(成果)의 강요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 『사피엔스』(2014)와 『호모 데우스』(2016)에서 행복은 달성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다스리는 마음 상태라는 것을 제안한다. 행복을 갈망하지 않는다면 현재 순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고, 스트레스와 불만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 주관적 느낌이라고 믿기 쉽고, 자신이 행복한지 비참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특정한 감정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행위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함정이다. 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의 여부, 쾌락적 감정을 즐기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행복을 갈구한다면, 쉬지 않고 그런 감각을 쫓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마침내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그 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과거의 행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행복은 갈구할수록 점점 더 스트레스와 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행복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인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만족의 느낌이 아니라 우리의 성숙된 삶 전체 문제였다. 성숙된 삶은 교육을 받고 습관화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 즉 덕이 있는 행위를 하도록 훈련받고 또 이를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를 반복하여 우리 본성을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위를 하여 정의로워지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하여 절제 있게 되고, 용감한 행위를 하여 용감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같은 행위와 덕을 행복이라고 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1885)



고흐는 해바라기나 붓꽃, 별이 빛나는 밤처럼 아름다운 정경도 많이 남겼지만 시들어 가는 해바라기나 해골과 같은 어두운 소재도 많이 표현했다. 그에게 삶은 기쁨과 환희뿐 아니라 고통과 절망도 함께 버무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바니타스’(vanitas)의 의미를 담은 정물화가 유행했는데, 해골이나 시든 꽃이 대표적으로 바니타스를 상징하는 소재였다. 인생무상과 삶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는 삶은 언젠가 끝나기에 부와 명예, 순간적인 쾌락에 집착하는 것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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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는 소비 물건이 분류의 체계를 이루며 행동을 구조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는 한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는 상징을 통해 상품을 코드화하고, 그럼으로써 이를 일련의 배열에 끼워 맞춘다. (그 대상(object)은 개별 소비자에게 그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소비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리하여 잠재적으로 무한히 반복될 기호작용이 제도화되어 사회를 규제하게 되며, 동시에 개인에게 자유에 대한 환영적인 감각을 심어준다. 



소비대상은 욕망을 무한히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유하는 기표들의 연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실, 상품을 단순히 인간적 욕구의 고정적 체계와 연관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닌 효용물이라고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드리야르, 특히 그의 상품=기호의 이론화가 매우 중시된다. 그는 이제 상품이 소쉬르적인 의미에서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소비는 사용가치의 소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호의 소비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개인이 대상을 통해 질서체계에서 그 위치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상품의 기능은 개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일 뿐 아니라 개인을 사회 질서와 연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는 생산에서 시작된 경제적 연쇄의 종착점일 뿐 아니라 교환체계이며 언어이기도 하다. 언어 상에서 볼 때 상품은 개인에 선행하는 기호체계에서 생각되는 물품인 셈이다.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자기 충족적인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회체계, 특히 언어나 재화, 혈연과 같은 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사회질서에 차별적으로 연결시키고, 그럼으로써 개인에 대한 감각을 구성할 따름이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정보는 점점 많아지고 의미는 점점 적어져 간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처럼 정보의 과부하로 고통받는 사회에서는 의미를 거부하는 것만이 저항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인생 매 순간마다 정보로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의해 그야말로 폭격을 당하고 있다. 이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 우리 인생을 점령해 버릴 정보의 힘에 저항할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오직 기표나 표면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의미와 기의는 거부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단순히 시청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표면적인 이미지들, 기표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날 저녁 뉴스를 기억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기억할 것이 없고 오직 이미지와 기표들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콜라주다. 개개 이미지는 더 많은 것을 낳고 더 많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원본이 없는 완벽한 복제품, 즉 시뮬라크르이다. 뉴스는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의 이미지인 바, 최종적인 하이퍼리얼리티인 셈이다."









니체는 미래에 희망을 거는 어떠한 믿음도 반대했다. 니체는 절대적 진보, 즉 역사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계획이나 목적을 거부했다. 경험적 사실들에 비추어 보아도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념은 오류다. 니체는 "인류의 최종 목표는 인류 최고의 바람직한 모습에 있을 뿐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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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7-2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시대 속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 광고와 홍보로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의 변주를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쇼핑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7-26 15:39   좋아요 0 | URL
넵 우리는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소비하는데, 반면 그들(?)은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