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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지음 |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1] (글쓰기에 대한 열망)

소설에는 작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토비아스 호르바츠) 등장한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 태생이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 생애 대부분을 시계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써냈던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토비아스는 작가의 아바타인 셈이다. 주인공 역시 가족과 고국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공장에서 일하며 글을 쓰곤 한다.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한 주인공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글을 쓴다. (…) 나는 하루종일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16)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야망은 작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관찰 )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와 표면상 분리되어 있으나 분리될 없는 대상이다. 자신을 버린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에 칼을 꽂고 도망쳐 나온 주인공은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이방인이다.” (49) 저자가 시계공장에서 하루 두시간씩 오랜 시간을 일하며 글쓰기를 했던 것처럼 소설 주인공 또한 공장에서 그리고 저자와 같은 이방인으로서 여전히 분리될 없는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걸었다. 간혹 다른 행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벼워 보였고, 무게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뿌리가 없는 그들의 발은 결코 상처받지 않았다. 그것은 집을 떠난 사람들,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가는 길이었다.” (115)

 

소설 전체를 통해 주인공이 내던져진 운명은 사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경험과 분리될 없다. 이것이 그녀를 평생 지배해왔으므로. 따라서 크리스토프는 고국을 떠난 이방인들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갖고 여러 군데에 그녀만의 스케치를 배치해두었다.

 

 시간이 갈라진다. 유년의 공백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갖힌 일그러진 태양은? 허공에서 전복된 길은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계절들은 의미를 잃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 (…)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다.”(115-116)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 힘든 이방인들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인지도 모른다. 내일을 기약할 없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공백, 과거에 대한 상실감은 이방인에게 회복할 없는 무력감만을 안길 것이다. 오로지 현재만을 붙들 수밖에 없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이런 이방인의 실존적인 모습을 민감하게 포착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3] (인생의 깊은 상실감-꿈을 잃는다는 것의 슬픔)

자신의 이복동생을 사랑하게 토비아스의 결말은 순탄치 않을 것을 예비하였다. 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복동생 캐롤린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도 키우는 주부였기에 더욱이 금지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린의 가족이 해체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되면서 토비아스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마디로 요약될 있다. 린이 왔다가 다시 떠났다라고.” (134)

 

짧은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깊은 상실감과 자조, 우울감이 느껴진다.

 

토비아스는 린이 떠난 여자친구 욜란드와 결혼하여 린과 작은 아들 토비아스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여전히 주인공은 시계공장에서 일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이미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간결하다.

 

나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140)

 

아파트가 인생일대의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에게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의미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너무 뜽금없는 주문일까. 토비아스에게는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이었던 글쓰기, 그리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삶의 좌절 앞에 무너저 버렸다.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달에 꿈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꿈꾸어야할까를 생각해보게된다. 꿈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토비아스 호로바츠는 오늘날 꿈을 잃고 표류하는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꿈을 잃은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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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Cat’s Cradle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지음 |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1]

소설은 나를 조나라고 부르라라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 문장을 패러디하며, 기독교의 <구약성경> 등장하는 모티브 또한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저자가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흥미가 더해졌는, 블랙 유머와 생태주의의 시선을 잇는다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보다는 좀더 수월하게 접할 있었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 전개에도 중간 중간 작가는 진지한 마디를 알게모르게 툭툭 던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이한 여행 제안은 하느님이 제공하는 무용 수업이다.”(85) 라는 위트가 들어있는 문장이 하나의 예이다. 나는 이러한 문장이 특히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장편소설 <고양이 요람>(1963) 시점에서 21 후인 1984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작가와 과연 동일한 인물일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문장에도 전쟁의 복판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전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 팍스 아메리카나의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냉소가 묻어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2]

저자의 연보를 보다보면 저자 자신의 생애도 <고양이 요람> 주인공 조나, 존처럼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화학을 공부하던 코넬대 재학시절 대한민국의 남학생들 처럼 군대에 입대하고 기계공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커트 보니것은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처럼 2차대전에 참전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독일군 포로에 잡혀 드레스덴으로 끌려갔으며,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도시가 불타는 와중에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저자의 ---(저자가 소설에서 설정해놓은 사이비 종교인 보코논교 용어로 숙명, 필연적인 운명) 다른 이야기를 예비하는 것이었다. 커트 보니것의 인생을 흔들어놓았던 때의 체험은 다른 사람들처럼 허무주의로 빠지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애정을 품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를 커트 보니것은 전쟁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그토록 무관심한 인간을 적이 없소.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동처럼 차갑게 죽어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소. 이따금 그게 세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92)

 

저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이 지식에 대한 욕구만 있는 지식인, 도덕적인 책임은 회피하는 과학자들의 문제를 미국의 핵폭탄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는 설정을 통해 보다 극적으로 제시한. 문득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정신을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절실하게 이해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3]

언젠가 경제학을 전공한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적이 있다. 사진가 경력의 대부분을 세계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 학살 현장 난민 캠프 현장에서 보냈던 살가두는 르완다 난민 학살을 경험하는 것을 끝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안전히 잃어버린 했다. 그리고 마음에 병을 얻고 카메라에서 손을 한동안 놓았던 것이다.

 

살가두가 방문한 난민 캠프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우리가 당장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포화를 피하여 피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에서와 같은 환경에 처해지는 것은 피할 없는 결과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도 제주에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있지만, 문제에 대한 결론을 바로 내리지는 않아도 공적인 대화의 장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할 사항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나라에서 난민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한 도덕성이나 우리의 처지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인간이 타인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위가 아닐까. 인간(人間)’이라는  이 매우 철학적인 용어를 고려할 , 인간은 '인간 사이의 관계' 형성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이유로든 정신적인 이유로든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통해 문득 문득 드러나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관심, 애정이 느껴졌다.

 

 

[4]

소설은 알듯 모를듯 매우 다양한 이슈들이 화자인 조나의 지나가는 말투를 통해 다루어진다.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 나치즘, 지식인과 과학자의 사회적/도덕적 책무, 진짜와 가짜의 문제, 종교의 본질, 미국의 매카시즘이 50-60년대에 남긴 , 비트 세대로 대변되는 미국의 저항운동, 여권 문제 등등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관심이 보니것 특유의 신랄한 유머에 묻어 나오고 있다. 무거운 사회문제 뿐만 아니라 저자는 문학의 역할 내지는 기능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다.

 

나는 아버지 캐슬에게 물었다. “선생님, 문학이 주는 위안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죽을까요?”

하나겠지. 심장 경화 아니면 신경계 위축.” 그가 말했다.

어느 쪽도 그리 유쾌하진 않을 같군요.” 내가 말했다.

그렇소. 그러니, 젠장, 사람 모두 제발 계속 글을 쓰시게!” 아머지 캐슬이 말했다.’ (276-277)

 

 

[5]

옮긴이는 책의 제목 고양이 요람 상징하는 것이 사람들 스스로가 행복과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든 모든 종류의 거짓이라고 풀어주고 있다. 이는 밀란 쿤데라가 <참을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야기 했던 키치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고양이 요람이든 키치이든 모두 진짜에 해당하는 대상 또는 진실이 아닌 허구 내지는 모조품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진 산업사회의 제품/결과물(모조품) 우리는 나의 개성을 표현해주는 물건이라 착각하고 살아가며 이를 욕망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실을 대면할 무엇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양이 요람>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호니커 박사의 난쟁이 막내 아들 뉴트가 실뜨게를 하다 문득 대화 상대방에게 고양이가 보이세요? 요람이 보이세요? 묻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이는 아마도 화자들이 사회의 진실에 대면하는 순간 대화 상대방에게 묻는 절차를 빌어 우리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손에 걸린 실을 보고 요람 같이 생겼는지혹은 요람 속에 고양이가 보이는지 사람의 상상력 선택 달려있을 것이다. 뉴트는 대화 상대자에게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지는 '무엇을 보고 싶은가?’ 묻고 있는 것이다.

 

보니것은 고양이 요람 선택 기로에서 어느 입장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아마도 어떤 규칙이나 관점을 정하여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더없는 죄악이 아닐까 생각하는 듯하다. 이유는 소설의 커버 페이지에 나온 일명 <보코논서> 구절에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책의 어떤 내용도 진실이 아니다.

그대를 용감하고 친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포마(무해한 거짓말) 따라 살지어다.

<보코논서> 15

 

관점에서 선언 성경에 등장하는 핵심, 사랑 다른 표현으로도 읽힌다. 다시말해 세속적인 사랑의 개념차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애정, 배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타인에게 강요한다거나, 특정 집단/기득권 층에만 유리한 법의 제정은 없는 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교조적인 장치가 될 뿐이다. 차라리 타인을 배려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포마'가 오늘 나오 타인의 하루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커트 보니것의 소설은 사이비 종교 보코논이라는 설정과 저자의 유머를 통해 숙성된 매우 기독교적 배경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며, 인간 관계의 핵심적인 비결을 알려주는 비전(秘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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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감성과 이성
고명수.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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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시인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요? 이들의 대화가 과연 유쾌할 수 있을지? ^^
어쩌면 이들은 한 사람의 다른 이름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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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hotobada.com/221299906879

https://blog.naver.com/foto3570/221299906879


흑백 아날로그 인화작업을 하는 현대사진연구회(이하 포토이즘 PhotoISM)의 회원인 김은정 양의 개인사진전 소식을 전합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사진 전공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으로서 수준있는 사진 내용과 아날로그 인화 결과물을 가지고 10년 가까운 김은정 양의 작업을 정리하는 성격을 갖습니다.

나아가 일반 RC 실버프린트 인화가 아니라 좀더 결과물이 아름다운 톤을 보여주고 오래가는 화이버베이스 인화지에 작업한 결과물이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 컬러가 아닌 흑백사진의 톤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저도 준비과정에 일부 참여하여 전시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전시는 이대역 주변의 동호회 모임 장소의 갤러리에서 준비했습니다.
사진(아날로그&흑백사진)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전시기간: 2018.06.23-07.21
Gallery ISM


자세한 내용은 위 아래 링크 참조해주세요.



http://photobada.com/22129990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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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선택
로버트 마이클 지음, 안기순 옮김 / 책세상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인생을 결정짓는 다섯가지 선택>

로버트 마이클 지음/안기순 옮김/책세상

                        

 

 

책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만나게 되는 혹은 반드시 고민할법한 인생의 결정 사항 5가지를 중심으로 할아버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후배들에게 조언해주는 책이다. 경제학자 답게 수많은 연구결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통계 자료를 제시한다. 다만 연구의 대상과 통계 자료의 표본이 미국인들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생의 중요한 다섯가지 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고려사항들을 깊이는 얕지만 세부적인 사항까지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 사항 5가지로 꼽은 것은 학교교육’, ‘직업선택’, ‘배우자선택’, ‘부모되기’, ‘건강습관 관한 사항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흔히 말하곤 한다. 저자가 선택한 인생의 5가지 결정사항은 사실 온전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국면마다 서로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고, 연관되어 있는 사항이다.

   예를 들어 학교교육과 직업선택은 현대 사회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의 대학교육은 인간의 정신적 성숙을 돕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직업을 갖기 위한 사설학원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평생교육 장려하고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국민들을 교육시장의 소비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극단적인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서 현재 매년 1 4-5000 수준의 박사를 배출하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좀더 극단적으로 대한민국에는 박사 실업자가 많이 양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공계 분야는 상황이 낳은 편이나, 인문계 박사들은 가정을 갖고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거나 하는 과정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런 점들은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통계 지표인 고학력 일반적으로 높은 소득 얻는 경향과 맞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배우자선택과 부모되기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주제이다. 책의 옮긴이는 부분을 각각 결혼을 해야할까 아이는 가져야할까라는 제목으로 장에서 논의하는 방향이 상당히 왜곡될우려가 있다. 혹은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질 있는 세부 주제 가지를 장의 전체 제목으로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점은 저자의 의도를 왜곡시킬 있기에 다소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책에서 저자도 언급하듯이 파트너로서의 배우자를 전통적인 이성 배우자 뿐만 아니라 동성인 배우자도 범주에 무리없이 포함시킨다. 할아버지 경제학자(1942 )로서 미국에서 민감한 주제인 동성 결혼이나 동성 부모 가족의 양육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점은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도 이제 매년 결혼하는 커플의 10% 이상이 국제결혼이고, 다문화라는 개념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의 변화가 지속되고 다양성이 근래에 들어 급증한다는 증거로 있겠다.

   인생의 여러 결정 사항에 대해 경제학자로서 조언하고 있는 저자는 본인의 세계관에 따라 경제학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듯하다. ‘시간 비용에 대한 투자’, ‘불확실성’, ‘외부효과’, ‘주인-대리인 관계’, ‘수익률 등의 용어로 독자의 선택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경제학적인 판단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혹은 옳은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예컨대 대학교육을 이야기할 , 저자는 교육을 하나의 투자개념으로 바라본다. 사실 대학입시 원서를 제출하는 시기가 되면 국내 언론에서도 적성, 혜택, 학과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4 투자해도 좋을 곳을 선택하라 기사를 싣는다. ‘투자라고 하면 수익률 같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관점이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되면 학내 인문학과의 축소 폐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컬 것은 현재 대한민국은 인문학 열풍 한가운데에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맨큐의 경제학 필두로 우리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중심지 시카고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저자가 평생 내면화한 신자본주의적 가치에 기반하여 어떻게 하면 '합리적' 근거로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인지 조언하고, 체제에 가장 합리적으로 순응하여 살아갈 있는 무난한 선택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점이다.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노경제학자가 딸에게 전해주는 노파심어린 충고이다.

   저자의 경제학적 세계관을 인생의 국면에 적용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계속 등장한다.  저자가 양육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에서 어머니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면 모유수유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모유수유가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일보다 좋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모유수유가 돈이 들지 않는 가장 값싼 방법이므로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권하는 것인지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경제학자다운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모유수유를 권하는 근거로는 빈약해보인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저자가 건강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는 건강 정의는 어떤 점에서보면 매우 플라톤적이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시말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에서 진정한 실체와 실체의 모사인 그림자적 측면을 말한다. 우리의 현실은 그림자에 해당하고, 저자가 말하는 건강 상태는 바로 유일한 진실의 실체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건강 정의를 다른 말로 이해해보면 매우 기능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조화롭고 정상적인 역할 해내는 상태만이 저자의 건강범주에 들어갈 있을 듯하다. 다시말하면 저자는 사람이 건강한 상태는 신체에서 측정된 수치가 정상적 범위 내에 속해있을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수많은 크고 작은 병에 걸리고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병치레를 하는 것도 크게  건강 범주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앓고 온전히 회복하는 일도 결국은 건강한 상태로 봐야할 듯한데, 이부분은 단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책내용만을 보고 저자에 대해 짐작해보면 저자는 온건한 보수성향의 백인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이 아닐까한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발생한 후인 1942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저자는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지만 저자의 가치관은 50-60년대 호황기 백인 중산층 가족 가치관의 전형인듯하다. 건강을 이야기하며 프랭클린을 인용하는 것도 어떤 점에서보면 저자가 종교에 대한 표면적인 편견은 없으나 청교도적인 가치관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프랭클린으로 대표되는 청교도적 윤리관은 근면, 절제, 검소 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면 건강해진다.’라는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건강 관한 장에서 저자에 대해 분명히 청교도적 가치의 영향을 느낄 있다. 아울러 동성 결혼과 양육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논의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킨 점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의 가치관은 <사피언스의 미래>라는 책에서 이루어진 토론의 참석자인 매트 리들리와 스티븐 핑커의 관점과 너무나 유사한 같다. 매트 리들리와 스티븐 핑커는 과학자이고, 사회에 대한 모든 인식과 판단 기준은 절대적으로 수치와 자료에 기반하는 같기 때문이다. 이들이 참여한 토론의 주제는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대한 것이었으며, 상대편 토론자는 알랭 보통과 맬콤 글래드웰이었다. 알랭과 맬콤은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로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인간의 정신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토론을 진행해나갔다. 반면 매트 리들리와 스티븐 핑커는 인류의 미래는 절대적으로 낙관적이며, 모든 통계와 수치가 이를 증거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전문가는 경제학자였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결정짓는 다섯가지 선택> 저자인 로버트 마이클은 경제학자이자 공공정책 분야의 권위자 답게 방대한 통계자료를 인용한다. 통계자료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해석하고 이를 어떠한 의도를 갖고 견해를 표출하게 때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환기하게 된다. 저자의 조언은 수긍이 가는 부분도 많지만 사실 저자의 조언은 전문가이기에 있는 조언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있는 조언일 것같다. 상식적으로 이미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어본 조언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책에는 할아버지 경제학자가 후배들에게 해주는 조언들이 가득하다. 다만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판단할 기준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소 제한적인 조언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모든 선택의 행위를 투자, 그리고 선택이 잘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수익률 된다면, 기대한 수익률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개인의 선택은 틀린 것이 된다는 것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각각의 중요한 선택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불확실성 떠올려본다면 독립적인 성인 된다는 것은,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노력하되, 자신의 선택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결정의 순간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최소화는 선택을 하여 자신의 삶에 주도적으로 관여함을 의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모든 통계와 진심어린 조언들 뒤에는 결국 인생의 주인인 본인이 모든 국면에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깨닫는 일이다. 

   독자가 인생의 단계에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을 , 저자는 수많은 선택의 길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사정은 모두가 다른 ! 결국은 여러 주제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선택의 가능성의 수에 반하여 지극히 원론적인 선택시 고려사항만을 전달해 있을 뿐이다. 결국 각자의 인생에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이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 문제와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지극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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