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 애지시선 54
이경호 지음 / 애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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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까치집을 볼 수가 있다.

앙상한 나무위 까치집이 두개가 있을 때 참 신기하고 부지런한 까치구나 하곤 한다.

집 한개는 부부가 살겠고

나머지 한개는 새끼 집일 것이고.

입으로 짓는 집



까치 두 마라가 며칠 전부터
집 앞으로 빙빙 돌며
전봇대 틈새에 집을 짓는다



긴 가지를 물고 오더니
끼우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얼른 하강한 녀석은 딴전 부리다가
다른 가지를 물로 올라간다



열흘 지난 집이 제 몸뚱이 반도 안 된다
입으로 짓는 집이 쉬 지어지랴
둥지는 침 냄새가 날 것이다



어르지 못할 가지 다 뱉어낸
어머니의 입은 가장 따뜻한 집이다
그 속에서 새끼들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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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2-27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들은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입에 잔뜩 물고가서 집을짓거나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모습을 보면 부모의 모습이 사람보다 나은거 같아요^^

후애(厚愛) 2014-12-29 15:43   좋아요 0 | URL
그쵸~ 그리고 무척 부지런하기도 하고요.^^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풀씨를 심는다는 것
김형오 지음 / 열림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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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니 포근한 봄이나

따스한 가을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여름은 너무 더우니 생각이 덜 나는 것이고.

 

가끔씩 가벼운 시집들을 읽으니 참 좋다

물론 어려운 시들도 있지만

그래도 읽고 또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일은 동지~

간만에 팥죽 먹겠구나

언니도 팥죽 끓이고

선생님도 팥죽 끓인다고 오라고 하고

내일은 팥죽 복이 터졌네.^^

잎이 없는 것들



입이 막힌 늦가을부터
나뭇등걸마다 잎을 품고
섣달 보름 좀 넘어가면
벌써 봄 입술이 간지럽게
가지 티눈마다
두런두런 말 배워
잎들 하나씩 열리는 날엔
서로 나서며 꽤 시끄럽겠다

실밥



아범아 저게 웬 실밥이냐
밥이 아니고 금이랍니다
뜬금없이 웬 돈줄이라니
애들이 사금파리로 여기저기
금을 그어 놓았다니까요
거 참 좋은 일인가 보다
우리가 돈 밭에서 산다니

겨울 한 묶음



섣달그믐이다


나무들 모두 제자리에서
웃통을 벗고
밤새 눈 이바지로
철철 매 맞다가


어깻죽지 안쪽에 씨눈 감추고
버팀을 서로 베끼며


더듬어도 소리는 멀어
바람이 차곡차곡 쌓이다


한겨울 말 묶음
하얗다

봄 무침



물감을 묻히다가
고들빼기 는개 햇발 흙손으로
지난여름 풋마늘 굵게 다짐도
무침


봄 너무 나댄다

예순여섯


밥 먹는 일만 배웠소

들키다



풀씨는 심는다는 것은
흙 한쪽이 비었다는 말
얼떨결 날씨를 밟고
울 넘어 진달래 훔치다
봄날이 들켜

풋 술


벌이
꽃 옆에서 벌벌 떨다
돌아가 몰래
술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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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2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동지군요. 요즘은 시간 가는것도 모르겠어요

후애(厚愛) 2014-12-23 21:07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해피북 2014-12-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내일이 동지로군요ㅎ 팥죽 정말좋아하는데 부럽습니다ㅎ

후애(厚愛) 2014-12-23 18:53   좋아요 0 | URL
동지였어요. ㅎ 저도 팥죽 무척 좋아해요~ 못 드셨군요..ㅠㅠ

2014-12-23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나기
이수호 지음 / 삼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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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니 별을 못 본지가 참 오래 된 것 같다

나중에 나중에 별 구경을 해야겠다.^^






내가 눈을 감아야
고운 네가 보인다
내가 귀를 막아야
고운 네가 들린다
내가 입을 닫아야
너를 위한 고운 노래
부를 수 있다



빛나는 것만이
별이 아니다
먹구름 뒤에 있을 때
별은 희망이다
캄캄한 내 마음에서 빛난다

겨울 예감




당신은 아무 일도 없는데
당신은 언제나 꿋꿋한데
칼바람 속에서도 당신의 시린 향기
푸른 하늘마저 붉게 물들이는데
그래도 내 이 아픔은 오로지
당신 탓입니다


예고 없이 눈이 내리고
하늘은 잿빛으로 변하고
가슴은 먹먹해 오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지붕 위에 키 큰 가로수 위에
하얀 아픔이 날리고 있습니다
더 하얀 슬픔이 쌓이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천지에 가득합니다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누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은
차라리 미필적 고의의 살인
칼끝으로 산 가슴을 도려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눈은 그치겠지요
우리의 삶도 서둘러 잠잠해지겠지요
일상의 어둠이 눈을 덮고
거대한 망각의 늪 속이 되겠지요
그때도 아픔은 작은 별로 반짝이고
슬픔은 더욱 푸르게 일렁이겠지요

겨울나기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는 옷을 벗고
풀들은 씨알을 준비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비는 번데기가 되고
개구리는 얼음장 밑
돌 틈에 웅크리고
곰들도 바위 동굴에서
긴 잠을 청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철새는 스스로 뼛속을 비우고
상승기류에 몸을 싣는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자기의 겨울이 있다
나는 내 겨울을 나기 위해
오늘도 새벽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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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한국의 서정시 84
유자효 지음 / 시학(시와시학)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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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는 너그럽다
무수한 생명들을 품에 안고 먹이고 키운다
생명이 비롯된 것도 바다가 있음으로서였다



바다는 무섭다
한번 노하면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자신이 만들었던 생명들도 거두어 간다



한없이 너그럽던 공자님도 예수님도 때로는 무섭게
화를 내셨다

춘분




음과 양이 지상에 균형을 이루었도다
음은 양을 그리워하고
양은 음을 그리워하며
헤어지고 만나며
만나고 헤어지며
생명을 만들고
거두어 가며
세상을 충만하게 이루는구나
오 비로소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으니
음과 양이 지상에 균형을 이루었도다




3월의 마지막 날
옷을 버린다
50년 동안
아까워 버리지 못한
옷이 수십 벌
옷장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무더기로 실려 나간다
빌려 입은 외삼촌 양복 같은
옷들이 모두 실려 나간다
아 내가 이렇게 살이 쪘었구나
참 보기 싫게 비대했구나
그 욕심은 다 어디로 가고
다시는 입지 못할 세월의 크기
욕심을 비워 내듯
옷을 버린다

감기



더 갈까
그만둘까
늘 망설인 내 인생



목에 걸려 괴로운
기침처럼
가래처럼



언제나 미열의 상태
뱉지 못한 아우성

부끄러움




뭇 풀 속에 함초롬히 몸 감춘 네 잎 클로버
손대면 소스라치듯 오므라드는 함수초
세상에 나서지 않고 숨어 버린 들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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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8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옥비의 달 문예중앙시선 35
박태일 지음 / 문예중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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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비는 숲으로 온다 어디를 딛고 오는지
보이지 않다가 붉솔 숲에서 천천히 걷는다



골짜기 두 옆으로 부챗살처럼 담을 친 빗소리
고개 돌리니 풀썩 무너진다



잠자리 앉아 날개 꺾듯 비가 그친다 승가대학
용마루 너머 키다리 상왕봉이 섰다 가고



낮 한시 수업을 시작했는지
디딤돌 아래 열네 켤레 학인 하얀 고무신



콧등마다 연비 자국이 곱다
나비가 법당으로 알았나 보다 앉았다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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