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삭 - 동방삭은 옛날에 30살 정도되는 성인이었는데. 사고를 당해 죽음을 당한다는 점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떤 다리앞에가서는 저승사자에게 밥을 먹이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저승사자는 이 동방삭을 데려가야했습니다. 그래서 이 저승사자는 은혜를 갚기위해,

수명이 적힌 명부를 몰래 고쳐서 30년인 수명을 3000년으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이승으로 돌아가는 도중 천상세계의 과일을 먹고 어린아이로 변했습니다.

또 어린아이로 돌아가던중 나무에 걸려있는 복주머니를 가져왔습니다. 그 복주머니는

다름아닌 옥황상제의 보물주머니 였습니다. 이승으로 돌아와 동방삭

저승사자를 피해다니며 죽음을 피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천갑자 동방삭 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갑자라는 단위는 60년이라는 뜻입니다. 1갑자는 60년 삼천갑자면 60 x 3000 이 되죠 그러므로

18만년은 살았다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탄천과 삼천갑자 동방삭

등장인물 : 동박삭,청년,옥황상제

"탄천"은 성남시의 중심부를 남에서 북으로 통과하는 한강의 줄기로 숯내라는 순수한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청백리"이지직"선생의 호가 탄천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탄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는데, 옛날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약18만년의 장수기록 보유자로써 천상천하의 큰 골치거리였다. 그러나 그를 잡기 위해 온갖 계책을 세웠으나 워낙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잡기가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옥황상제는 사자를 탄천 부근으로 보내 탄천에서 숯을 씻고 있도록 명하였다. 그때 마침 탄천을 거슬러 오르고 있던 동방삭이 검은물이 흐르고 있음을 이상하게 여겨 이리저리 찾다가 냇가에서 숯을 씻고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동방삭이 "왜 숯을 물에 씻느냐?"고 물으니 그자는 "숯이 희어지도록 씻는다".라고 말했다. "나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씻어서 희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크게 웃으니 "이 자가 동방삭이 틀림없구나"하고 그를 잡아 옥황상제께 무릎을 꿇게 하여 동방삭의 일생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 내를 숯내 또는 탄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활을 쏘는 예라는 사람의 부인으로 절세의 미인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항아 또는 상아라고도 합니다.

 예는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사람입니다.

 예가 어느날 곤륜산을 지나다 서왕모를 만났는데,

 이때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게 됩니다.

 예는 그걸 항아에게 맡겨 놓았었는데,

 항아가 몰래 약을 혼자 먹고 불사의 몸이 되어 달로 날아가

 달에 있는 월궁에서 산다고 하여 월궁 항아라고 합니다.

 항아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다른 이야기로는,

 서왕모에게 받은 불사약이 두개였는데

 하나만 먹어야 하는 두개 먹어서(남편이 따라오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네요

 몸이 두꺼비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 안에 두꺼비가 앉아 있는 있는데요.

그게 바로 두꺼비로 변한 항아라고 합니다.

월궁항아라는 뜻 - 월궁의 항아.. 嫦娥 嫦娥是帝的女兒,也稱姮娥。美貌非凡

달 속에 있다는 전설의 선녀,항아(姮娥), 제곡의 딸.세칭 항아 미모가 비범.후예의 처자.광한궁에서 기거하는 것으로 알려진 달의 여신.달속에 살고 있다는 여신. 회남자에 보면 예(+,고대에 있어서 활의 명인)가 불사약을 달라고 서왕모에게 청하였다.
항아는 그것을 훔쳐서 광한궁으로 달아났다한다. 항아(姮娥)는 본디 예의 아내. 한문제(漢文帝)의 이름이 항()이어서 기휘하는 바가 커서 한나라 사람들은 항()을 상()으로 바꾸어 썼다.항아나 상아나 같은 인물을 말한다는 말이겠다.

운모 병풍 앞 촛불 그림자 깊어만 가고 / 雲母屛風燭影深

은하수 너머 새벽별 기울어 갈 때 / 長河漸落曉星沈

항아는 영약 훔친 일 후회하고 있으리 / 嫦娥應悔偸靈藥

푸른 하늘 밤마다 홀로 지새는 마음 / 碧海靑天夜夜心

唐代詩人李商隱的《嫦娥》당대시인 이상은의 '상아'



한편 바로 이런 전설 때문에 중국인들은 달을 그냥 월()이라 하지 않고 월궁(月宮)이니 섬궁(蟾宮)이니 계궁(桂宮)이라 불렀으며 보름달의 모양이 쟁반같다 하여 섬반(蟾盤)이라 하였고 수레바퀴같다고 하여 계륜(桂輪)이란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토끼와 두꺼비에 착안하여 금토(金兎), 옥토(玉兎) 혹은 섬토(蟾兎)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과거(科擧)가 있던 시절, 가을 시험이 마침 음력 8월에 있었으므로 장원급제를 월중절계(月中折桂)니 섬궁절계(蟾宮折桂)로 표현하였던 것은 바로 과거급제를 하늘로 날아갈 듯 출세한다고 생각한 비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름달의 모양은 둥근 원()이다. 어느 곳 하나 구겨진 데가 없이 온전한 모습이며 구심점을 향해 가지런히 모이고 있다. 이런 외형적 특징을 상징적으로 비약시켜 중국에서는 매년 중추절이 오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 곁으로 모인다.
이를 중국어로 '투안위앤'(團圓)이라 하며, 중추절을 '투안위앤지에'(團圓節)라 부르고 있다. 중국 시인들이 고향에 못돌아가고 객지에 떠도는 신세를 한탄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달()도 알고 보면 이런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추절의 주역은 당연히 보름달이므로 일반 민중들은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음식을 장만하여 달님께 차례를 올린다. 이것을 '빠이위에(拜月)'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절차나 장소는 우리가 조상께 차례를 드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차례의 대상 자체가 틀리고, 이어서 중국의 경우는 달이 음기(陰氣)로 이루어졌다 하여 여자들만 절을 하고 남자들은 절을 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의 경우 차례 장소도 누각(樓閣)이나 마당인데 비해 우리의 경우는 안방이나 대청마루에서 지낸다. 물론 차례를 지내며 축원도 하는데 여자들은 의례적으로 항아(嫦娥)같은 용모를 기원하고 남자들은 「월중절계(月中折桂)」를 빈다. '빠이위에'를 마치면 온가족이 음식을 즐기며 달놀이를 간다. 이것을 '상위에(賞月)'라고 한다. (「欣賞」의 賞) 감상한다는 뜻이다.
대개는 집마당에서 하기도 하지만 높은 누각이나 산으로 가기도 하고 운치있는 문인들은 비늘처럼 반짝이는 잔파도에 일엽편주를 띄우고 그윽하게 쏟아지는 흐르는 월광(月光) 아래 시조를 읊조리기도 한다. 후예는 천상에 사는 활의 명인인 신이다. 요제 때의 일이다. 제준(帝俊)이 낳은 열 태양이 번갈아가며 천상에 올라가 있는 동안은 태평하였지만, 어느 날 그들이 서로 의논한 끝에 장난삼아서 열 태양이 한꺼번에 하늘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상은 삽시간에 염열지옥으로 변하여 농작물은 타고 초목은 말라 비틀어졌으며, 하천은 말라서 먼지가 났다. 요제의 덕으로도 이 뜻밖의 천재지변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마침내 제준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이에 제준은 활의 명수인 후예를 하계에 파견하고 아무쪼록 온당하게 사태를 수습 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솜씨를 자랑하는 후예는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약간 높다란 언덕에 서서 때마침 타는 듯이 뜨거운 햇볕을 내리쏟고 있는 열 태양을 향해 활을 잡아 당겼다. 드디어 훌륭한 솜씨로 아홉 태양을 쏘아맞춰서 떨어뜨려 버렸다. 그 뒤엔 단 하나의 태양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지상의 인간들은 다시 온화한 햇빛을 받아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후예는 그 수습하는 방법이 너무 거칠었다고 해서 제준의 노여움을 사고 지상에 추방되는 운명을 감수하게 되었다.

항아(嫦娥)도 천상의 여신이다.
후예의 아내였으나 추방되어 후예와 함께 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어느날 후예는 곤륜산(昆崙山) 서쪽에 사는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이 불로불사의 약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 그 약을 얻어와 아내에게 맡겼다. 약을 맡은 아내 항아는 후예가 없는 사이에 몰래 그 약을 혼자서 삼켜 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녀의 몸이 아주 가볍게 둥둥 공중에 뜨기 시작하더니 차츰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계에서 추방당한 신세로는 새삼 다시 천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선 월궁(月宮,廣寒宮)에 들어가 잠시 몸을 숨기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월궁에 도착 하자마자 그녀의 몸이 이상스럽게도 점점 짤막하게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대신 배와 허리가 옆으로 퍼지더니 입은 크게 찢어지고 눈은 흉하게 불거져 나왔다.
살결은 검어지고 게다가 또 동전 크기만큼씩 얽어서 곰보가 되었다. 참으로 보기에도 흉칙스런 두꺼비가 되고 만 것이다. 맑게 갠 밤, 달빛에 비치는 두꺼비의 그림자는 다름아닌 바로 이 항아의 변신인 것이다.휘적이며 밤새도록 장난친다.달을 보면서 두꺼비를 연상시키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아릿따운 항아를 연상시켜기 때문에 선인들은 그렇게 달을 칭송한 것은 아닐른지 생각해볼일이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왕모 - 질병의 신을 취제하는 여신 : 서왕모 혹은 서방의 황후는 곤륜산(崑崙山) 확 트이는 곳에 크고 아름다운 궁전에서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전설적인 존재인데 그녀가 살고 있는 궁전에는 3000년에 한 번 익는다는 선도(仙桃, fairy peaches)가 자라며 그것을 먹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그녀의 산간 거처는 아름다운 정원 대리석과 벽옥의 건물, 9층 탑, 금빛 찬란한 개울로 놀라울 뿐이다.

회화에서 보통 그녀는 중국의 왕녀의 복장을 한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묘사되고 있고, 거기에는 젊은 두 소녀가 수행하고 있는데 한 소녀는 큰 부채를 들고 있고, 또 한 소녀는 장수 복숭아가 담긴 광주리를 들고 있다. 옥녀(玉女,Gemmeous) 혹은 신녀(神女,Fairy Maids)로 알려진 그녀의 주요 시녀들은 다섯 명이며, 저들의 칭호는 나침반의 각기 다섯방위에 속하는 빛깔과 일치한다. 그녀는 신령 군대의 선봉에 서며 황실의 신봉자와 끊임없이 영교를 갖는다고 한다.

"주나라 역사책(周書)에 따르면 기원전 985년 목왕(穆王)은 서방의 보옥 호수(瑤池)에서 그녀의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기원전 140~86년 한나라의 무제(漢武帝)도 그녀의 산간 궁전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는 보통 그녀가 탈 것으로 이용하는 왜가리와, 때로는 그녀의 매신저 노릇을 하는(비너스의 비둘기처럼) 담청색 날개를 지닌 새(靑鳥)를 대동한다. 현대의 작가들은 서왕모는 고대 서방의 한 지역이나 한 주권 국가의 이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녀는 도교 문필가의 편에서 많은 탐구의 대상이었다. 후대의 전승에선 그녀에겐 동방의 동왕공(東王公)이라는 사람을 배우자로 딸려주는데 그의 이름은 분명 그녀의 이름을 모방한 것같다. 그리고 그의 속성은 베다의 신인 인드라를 숭배하는 힌두 전설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그는 모든 도가의 신선들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왕실의 한 쌍은 9명의 아들과 24명의 딸을 두었다. 곤륜산은 중앙 아시아의 힌두쿠쉬와 동일시되고 있다. 도가의 전설에 따르면 거기엔 수많은 귀금석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

초기 제수잇파 선교사들은 서왕모를 쉐바의 여왕(솔로몬왕 이야기의 등장 인물)과 동일시하였다. 자일 교수는 그녀를 로마의 여신 쥬노(헤라)와 연관시켰다. 장수의 복숭아는 황금의 사과와 비교될 수 있으며, 서왕모의 시녀들은 헤스페리데와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여신에 대한 이야기는 항아분월(嫦娥奔月)의 고사에도 약간 비친 바 있다. 그러나 서왕모의 전설은 각양각색이어서 하나로 통일되기는 어렵지만 [산해경(山海經)]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서왕모는 중국에서도 서쪽으로 멀리 옥산(玉山)이라는 산에 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사람과 비슷하고 표범의 꼬리에 호치(虎齒)를 지녔으며, 휘파람을 잘 불고 봉발(蓬髮)에 화승(華勝-머리장식)을 꽂고, 천려와 오잔을 관장하는 여신 으로서 질병의 신을 취체하는 임무를 띤 괴수(怪獸)와 같은 모습을 지닌 여신 이었다. 이를 볼 때 겨우 봉발에 화승을 꽃았다는 것쯤에서 여성 비슷한 모습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서왕모는 후세에 이르러 기품있는 여신으로서 전해 내려왔다. 그리하여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동방의 남신(南神)과 한 쌍이 된 여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후세에는 도교(道敎)의 신으로서 민중신앙의 대상으로도 되어 있다.


복숭아 ; 학명으로 Amaygdalus Persica 신선의 과일로서도 알려진 복숭아는 진짜 중국 본래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중국에선 복숭아의 소푸이 아주 많아 그 이름을 나타내는 오른쪽 변의 기호()는 그것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류도 다양하여 산동(山東)의 비성(肥城)에서 나오는 훼이츠엉 복숭아(肥桃), 무게가 한 파운드가 넘는 편도(扁桃), 황도(黃桃) 등 아주 많다. 숭도복숭아(유도,油桃)도 드물긴 하지만 재배된다. 그 열매는 폐질환에 효과가 많다고 하며, 그 씨앗(桃仁)은 감기, 류마티즘, 기생충에도 처방된다. 꽃은 완화제라고 하며, 나무껍질은 황달, 수종증, 공수병, 천식 및 기타 여러병고에 처방된다. 한편 껍질을 베어 낸 자국에서 뽑아내는 수액이나 수지를 중국인 의사들은 진정제, 변질제, 수렴제 및 진통 치료제로서 처방된다.

"복숭아 나무는 중국의 미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람들의 심미적 감각에 크게 호소한다. 복숭아는 결혼의 문장이며 신선과 봄철의 상징이다. 서왕모의 궁궐 정원에서 자라는 신들의 복숭아나무(天桃) 3000이 지나야 익어 열매를 맺는다. 복숭아 나무의 목재는 귀신들의 은신처이며, 도가의 승려(道人)들은 도장을 만드는데 사용하며, 그것으로 그들은 호부나 부적을 찍는다. 도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목검은 반드시 이 나무를 이용한다. 귀신을 쫒는데도 이 나무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나무의 가지들은 또한 열으 귀신을 몰아내기 때문에 열병환자를 때리는 데 사용한다. 그러나 그 열매는 목재보다 훨씬 중요하다. 신선들을 불사하게 해주는 것은 그 열매이며, 도가에서는 생명의 특효약의 주 성분이라고 한다. 장수의 신(壽星)은 가끔 복숭아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그려지고 있으며, 자물쇠 형태로 깎아 만든 복숭아 돌은 어린이들을 죽음에서 보호하는 부적이다."

"복숭아 부적(桃符)은 꽃가지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신년에 온갖 방식의 악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집의 문에다 놓아 둔다. "

결혼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경사스러운 시기는 봄이라고 생각되며, 중국인의 신년 정월(二月)을 꼽는다. 바로 그 달에 중국에선 복숭아 꽃이 피며, 따라서 그것과 결혼과의 관련에 대한 암시가 언제나 있어 왔다.


봄의 사랑스런 자식이여, 정원의 여왕이여!
저곳에 서 있는 복숭아 나무는 하릴없는 나의 눈을 끄는구나.
그 향기로운 잎새는 얼마나 짙푸른가!
그 꽃은 얼마나 멎지고 향기로운가!
부드럽게 빛나는 아름다운 새 색시는
사랑과 정성스런 덕을 지니고
새 집 살림을 차리려 하니
조용한 기쁨이 맴돌며 퍼지누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마다 명절이 되면, 충남서산 일대에 사는 독거노인들 집 수 십 채 앞에는   
맑은 천일염 30킬로그램 들이 포대가 놓여 있곤 했다.   

13년째다. 아무도 누군지 몰랐다.
지난해에 ‘범인’이 잡혔다.   

“나 혼자 여러 해 동안 소금을 나르다 보니 힘이 들어서...

읍사무소에 맡기겠다고 소금을 트럭에 싣고 그가 자수했다.
강경환(50). 충남 서산 대산읍 영탑리에서 부성염전이라는 소금밭을 짓는 소금장수다.
그런데 보니, 그는 두 손이 없는 장애인이 아닌가.
손 없이 염전을?  

또 서류를 살펴보니 그는 7년 전까지 그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빈한한 사람이 아닌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사내가 남을 돕는다?

소금장수 강경환은 사건이 발생한 연월일시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1972 12 24일 오전 9 40.
1959년생인 강경환이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은 6학년, 나이는 13세였다.

서산 벌말에 살던 강경환은 해변에서 ‘안티푸라민’통을 닮은 깡통을 발견했다.
나비처럼 생긴 철사가 있길래 그걸 떼내 가지고 놀겠다는 생각에 돌로 깡통을 두드려댔다.

순간 앞이 번쩍하더니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안티푸라민이 아니라 전쟁 때 묻어놓은 대인지뢰, 속칭 발목지뢰였다.

폭발음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달려와 경환을 업고 병원으로 갔다.
사흘 뒤 깨어나 보니 손목 아래 두 손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 되었다, 노래 잘해서 가수가 꿈이었던 소년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 것은,  

피를 너무 흘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났다.

하지만 “남 보기 부끄러워서” 중학교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 뒤로 3년 동안 경환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머니가 밥 먹여주고, 소변 뉘어주고 살았다고 했다.
소년은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그리 살았다.
인생, 포기했다.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친정에 가셨는데, 오시질 않는 겁니다.  

배는 고프지... 결국 내가 수저질을 해서 밥을 먹었어요.

3년만이었다.  

석 달 동안 숟가락질 연습해서 그 뒤로 스스로 밥을 먹었다.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혁대를 차게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모든 게 귀찮아서 농약 먹고 죽으려고 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주막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아침 10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어요. 주막에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깐, 술로 살았죠.

어느 날 유인물이 하나가 왔길래 무심코 버렸다가  

“아침에 유인물을 보니까 정근자씨라고, 팔 둘이랑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강의를 한다는 거에요.  

가서 들었죠.  ,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는 그 반도 아닌데, 이 사람같이 못 살라는 법 없지 않나...”  

강경환은 편지를 썼다.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나.” 

답장이 왔다.  

너도 나처럼 잘 살 수 있다고

 아주 아주 훗날이 된 지금, 강경환은 이렇게 말한다.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고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강경환은 훌륭하게 그 방법을 찾아냈다.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삽질을 익히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며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지독히 가난한 집이었다.

1994, 아버지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너 염전 할 수 있겠냐?
이미 1987년 교회에서 사랑을 만나 결혼한 가장이었다.  

하겠다고 했다. 피눈물 나는 삶이 시작됐다.  

농사짓는 삽보다 훨씬 무겁고 큰 삽을 ‘손 몽둥이’로 놀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해야 했다.

정상인만큼 일하기 위해 밤 9시까지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펐다.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보람으로 일을 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라는 게 그리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1996년 그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으니,  

손을 잃은 대신에 얻은 사랑을 실청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소금 한 포대가 1만원 가량 하는데, 여기에서 1000원을 떼서 모았죠.
그걸로 소금을 저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까지 14년째다.  

한 달 월급 받고선 고된 일 마다하고 도망가 버리는 직원들 대신에 부부가 직접 염전을 지으며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아산의 한 복지단체를 통해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강경환의 ‘부상염전’은 1 2000.
한해 소출이 6000만원 정도다.
이거저거 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한해에 1800만원? 정도라고 했다. , 1800만원?
거기에서 10% 200만원은 꼬박꼬박 남을 위해 쓰고 있으니 이게 어디 이 사람에게 쉬운일인가요?  

작년에는 400만원 정도 되더라고 했다.

강경환 그는 말했다.

“조금만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겁디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대면 500만원이잖아요.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되어 돌아오고,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

그 나눔과 연결의 원리에 충실한 결과, 2001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 꼬리표를 뗐다.  

작지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시청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포기했다.  

수급자 수당 30만원이 날아갔다.  

장애인 수당도 포기했다. 6만원이 또 날아갔다.

“나는 살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닦아졌으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주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어렵다.  

염전도 남의 염전을 소작하고 있고, 여고생인 둘째딸 학비도 버겁다.  

손을 내밀라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을 내밀라고,  

작년에는 ‘밀알’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운 일.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불우한 사람들을 더 도우려구요~

“한 30억원 정도 모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마음 놓고 남 도울 수 있잖아요,  

지금은 형편이 이래서 돕고 싶어도 어렵고...

오늘도 부부가 소금밭에 나가서 소금을 거두는데,  

손 없는 남편이 능숙하고 진진한 몸짓으로 소금을 모으면 아내는 얌전하게 삽으로 밀대에 소금을 담고,  

남편이 그 밀대를 ‘손몽둥이’로 밀어 소금창고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 모습, 장엄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다. 열심히 사시는 인생의 참모습을 보았다. ~ 건강하시기를...
당신 같은 분과 이 지구상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음이 행복합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바로 이렇게 사는 삶이거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어머니의 말씀

 
아들아!

결혼 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데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데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데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는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안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끼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무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는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너희도 좀 이해

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났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마라.

너 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어느 어머니의 말씀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