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8.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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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사실 해는 묵은 해가 없다. 늘 새롭게 떠오르기만 할 뿐 그저 아쉬운 사람들이
자꾸 뒤돌아보면서 묵은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세월의 속도감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빨라진다. 50대는 시속 50km정도의 속도감을
느낀다는데 70대, 80대가 되면 세월을 견디기 위해 그 속도감을 견디기 위해 매일
멀미약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내가 무엇을 느끼건 느끼지 않건 시간은
흘렀고-그야말로 정신없었고 미쳐날뛰었던 것 같은 2017년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고 가장먼저 샘터로 새로움을 맛본다. 그 어느 달 보다 '해오름달'이란
표현이 썩 마음에 든다. 뭔가 묵은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이 느껴지지 때문일 것이다.

      

개다리 소반이라고 하던가. 정말 딱 1인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밥상이 재미있다.
과거의 밥상은 찬이 소박했고 밥그릇은 어마무시해서 과연 저 많은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싶다.
그래도 오래된 밥상을 받고보니 새로운 한해도 밥심으로 씩씩하게 살아보자 하는 맘이 느껴진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햄릿을 위한 변명'이란 글이 먼저 보인다.
샘터는 그동안 사실 너무 쌌었다. 담긴 내용이나 정성에 비해 너무 헐해서 과분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딱 천원-유명한 커피브랜드전문점 커피 한잔 값도 못되는 그런 가격- 올렸을 뿐인데 서론이
너무 길고 변명이 구차하다. 진작 올렸어야지. 지금 라면 한 그릇 값이 얼만데.
살면서 느끼는 그 오랜 갈증을 풀어주는 값이 얼만데 고거 올렸다고 말이 길다니. 독자로서 살짝
화가난다. 다시 올리려면 힘들텐데 조금 더 올렸어도 좋지 않았을까. 암튼 상관없다. 샘터라면.

      

학교다닐 때 제일 못한 과목이 과학,화학 뭐 그런거였는데 나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우리나라는
일본도 거뜬히 타는 노벨과학상쪽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기초과학이 무지 부족하다는
뜻인데 여전히 과학의 길은 어렵다. 많은 과학도들이 어느 순간에 가면 대우좋은 외국으로 나간단다.
그만큼 우리는 기초과학을 홀대하고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인데 이 글을 쓴 분의 일갈이 참 부끄럽게
만든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대과학자가 이렇게 답했다니.
'갓난아기를 어디다 씁니까?' 하긴 그 갓난아기가 지금은 뭘 할줄 몰라도 어떤 위인으로 성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부지런히 젖도 주고 밥도 주고 챙겨줘야 하듯이 기초과학에도 투자를 해야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 한표!

      

'명작을 거닐다'라는 기사는 참 좋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대작가 이청준의 고향은 장흥이고 그가 살아생전 그다지 찾아가지 않았다는 고향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자신의 태를 묻은 곳이지만 돌아갈 길이 막막해진 이유와 그 이유를 작품에 녹여낸
대가의 사랑을 다시금 밟아본다. 이 꼭지는 앞으로도 꼭 챙겨보고 싶어진다.

      

3월호 특집기사 안내문을 보면서 내 집 울안에 있는 막둥이 녀석을 떠올린다.
처음에 구박덩이로 들어왔다 우리집 막내로 거듭난 사연을 한번 올려볼까나.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잘 키운 반려동물이 진정한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난 고기덩어리가 잔뜩 붙은 귀한 족발 덩어리를 기꺼이 뚱이에게 양보한다.
여러분들도 한번 도전해보심이 어떠하신지.

      

찬바람이 불면 오후 네시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이제 시골사람 다 됐구나 싶었던 나로서는
불씨를 살리지 못해 쩔쩔매던 시골 정착 초기의 기사를 보면서 동병상련이 된다.
스위치만 올리면 온 집안이 따뜻해지는 편리함을 누렸던 도시사람들은 찬바람을 맞으면서
죽어가는 불씨를 어떻해든 살려내려는 촌사람들의 사투를 이해하지 못한다.
덕분에 사위어가는 불씨에 고구마를 올려 먹는 재미도 모르겠지만.

일단 화려해지고 풍성해지고 더 따뜻해졌다.
굳이 화려한 옷까지는 필요없었을지 모르지만 곳곳에 배려감은 더 높아짐을 느꼈다.
2018년도 지금같은 마음으로 주욱 독자들에게 사랑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따뜻한 밥상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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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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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맹랑한 소설이다.
유괴라는 소재자체가 일단 맹랑하고 주인공의 유괴극 또한 책을 덮고 보니 역시 맹랑하다.
기업의 광고나 프로듀를 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쿠마는 제법 유능하다고 자부했지만
새로 기획중인 닛세이자동차의 오토모빌 파크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어 큰 충격에 빠진다.
닛세이자동차의 창업자의 아들이면서 부사장인 가쓰라기의 요청이었음을 알게된 사쿠마는
취기에 힘입어 가쓰라기의 저택으로 향한다.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보겠다는 치기는 저택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되돌아 오려는 순간 저택의 담을 넘는 여자를 보게 된다.
이상한 호기심에 이끌려 그녀의 뒤를 쫓게 된 사쿠마는 그녀가 가쓰라기와 연인사이에서
태어난 주리임을 알게된다. 갑자기 저택이 답답해서 가출을 했다는 주리에게 호텔을 잡아주고
집에 되돌아 가라고 조언하지만 주리는 전혀 그럴 뜻이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문득 이 주리를 이용해서 자신을 프로젝트에서 제외시켰던 부사장에게 한 방 먹일 수도 있게다는
판단을 한 사쿠마는 게임을 시작한다. 바로 주리를 유괴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유괴게임은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주리 역시 돈도 없이 가출을 한 관계로 3억엔을 요구하는 유괴게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가짜 계정을 만들어 협박메일을 보내고 가쓰라기 역시 사쿠마의 의도대로 돈을 준비한다.
주리는 가출전에 친한친구에게 전화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에 완전범죄를 위해 다시 지워야
겠다고 사쿠마에게 말한다. 그렇게 주리의 친구집으로 향한 사쿠마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품에 안게 되고 뭔가 중요한 실책을 한 것 같은 찜찜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사쿠마의 지능적인 의도대로 돈을 건네받고 사쿠마는 3억엔의 10%안 3천엔을
제하고 주리에게 돌려준다. 사쿠마의 의도는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잡히기 않고 돈을 손에 넣은 주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둘은 헤어진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사건이 시작된다.

가쓰라기에게 복수하기 위해 꾸민 유괴게임에서 승리했다고 믿는 순간 진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닛세이자동차의 딸이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실종되었다는
딸의 사진을 본 순간 사쿠마는 크게 놀란다. 그녀는 주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연 주리라고 믿었던 여자는 진짜 가쓰라기의 딸이긴 했을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주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실종되었던 가쓰라기의 딸은 결국 시체로 발견되고 유괴를 계획했던 사쿠마에게로
의혹의 눈길이 다가오는 것 같이 초조한 시간이 밀려온다.
사쿠마는 이제 잘못하면 유괴범뿐만 아니라 살인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는 사쿠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작품이다. 마음을 놓는 순간 독자들을 뒤 흔드는 반전의 트릭은
여전하다. 완전범죄로 멋지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한 순간 되돌아온 한방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마지막 반전에 이은 결말은 다소 아쉽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니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오래전 출간되었던 작품을 재출간한 소설로 지금 읽어도 시대감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그의 새 작품이 또 나왔다는데 안 볼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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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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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거 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고압적이던 종교계에서 자신들의
부정을 전가시키고 무지한 백성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술책이라는 설도 있고
부정하다고 여겼던 여자들을 그런 죄목으로 처단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유럽에서 저질러진 마녀사냥이 현대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면?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마을,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고 그 강에서 두 여자가 차례로
사체로 발견된다. 이제 겨우 열 여섯살의 소녀 케이티와 중년의 여인 넬은 오래전 마녀를 익사시키던
'드라우닝 풀'같은 강속으로 스며들었다.
케이티의 옷 주머니와 가방에는 돌이 가득 들어있었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지만 케이트의 엄마
루이즈는 넬이 케이트를 죽였다고 믿고 있다.  케이트를 직접 물에 밀어 넣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케이티가 물에 스스로 들어가도록 부추겼다고 생각했다.

      

넬은 그 마을에 전해지는 의문의 역사들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에서 발견된 여자들과 마녀라고 처형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출간할 계획이었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를 딸을 키우면서 유부남들과 놀아난다고 소문이 난 넬은 이러저러
동네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 강에서 사체로 발견 된 것이다.  넬의 동생 줄스는
절대 넬이 스스로 그 강에 몸을 던질리가 없다고 믿는다.
넬은 얼음을 깨고라도 강에 뛰어들만큼 강을 사랑했고 땅에서 보다 강에서 더 유연했던
언니가 절대 익사할리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넬은 누가 죽였을까. 그리고 그토록 아끼던 엄마의 유품인 팔찌의 행방은?

      

넬의 딸이며 케이티의 절친이었던 리나는 케이티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왜 강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하지만 절대 입밖으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것만으로 이미 고통스러운데 엄마마저 죽어버리다니. 정말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케이티의 엄마 루이즈는 케이트의 죽음을 엄마때문이라고 믿지만 리나는 안다. 죽음의 이유를.

      

이 사건의 이미 30년 전 강에서 발견된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찰인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여인. 강에서 발견된 그 여인의 마지막을
지켜봤던 아들 션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순간의 비밀을 알게된 동료경찰
지니는 어느 날 사라졌고 비밀은 풀리지 않은 채 30년 후 두 여인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비밀에 얽혀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작가의
이끌림에 끌려가기 어려운 소설이다.  한 소녀의 죽음에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한
숙제가 남겨졌고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던 여인의 죽음에는 집요한 추적과 방만한 삶에
대한 댓가가 숨겨져있다.  넬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말하지 못하는 딸을 키우면서 왜 그토록
강에서 숨져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추적해야만 했을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마치 강에서 죽어간 여인들의 영혼이 씌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염원이 결국은 넬을 다시 강으로 끌고가버렸다.

늘 그렇듯 이 소설의 비밀을 마지막 몇 장에 담겨있다.
다소 지치고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다고 할 즈음 작가는 비밀의 열쇠를 슬며시 쥐어준다.
오랜시간 언니와 반목하고 살았던 줄스가 언니와 진정한 대화를 나눴더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너무 편협한 시각에 갇혀 스스로를 묶어놓은 것은 많이 아팠다.
혹시 우리도 그런 순간들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전작 '걸 온더 트레인'의 명성에 걸맞는 신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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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에는 슬픔이 없다
정제성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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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의 노모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사랑만 가득하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나이!
치매를 앓는 남편을 병원에서 빼와 간병을 하면서도 여전히 따시고 정성스런 밥상을 차린다.
그게 엄마다. 그런 엄마를 두어서 좋겠다고 아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한다고 했다.

 

환갑의 나이에 노모가 차려주는 밥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첫번 째 일 것이고
더구나 오랜 내공이 깃든 범상치 않은 맛으로 차려진 밥상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고장날대로 고장나버린 몸뚱아리를 힘들게 일으켜세워 죽어가는 남편에게 생명의 줄을
더 붙잡게 하고 입맛 까다로운 자식이며 친척, 지인들까지 챙기는 주인공 어머니는
프랑스의 여전사 '잔다르크'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숙적이었던 이웃나라를 향해 어린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던 잔다르크처럼
죽어가는 남편을 등뒤에 세우고 사신(死神)과 맞서고 흐려지는 정신을 똑바로 일으켜세우면서
여전히 손주들 생일까지 기억해내는 전투력에 텃밭을 진두지휘하며 밥상이라는 전선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모습이 바로 여전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냉장고 몇 번째 칸에 무슨 반찬이 있고 장독안에 언제 담가둔 장아찌가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더구나 그걸 나누어갈 사람의 취향까지 기억하는 노모의 정신력은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읽는내내 놀랍기만 했다.
아내만 찾는 병든 남편이 가능하면 기억을 더 잃지 않도록 추억하나라도 더 떠올려 시간을
되돌려보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아니 눈물겹다 못해 치열하다.
아무리 순하게 왔다 하더라고 치매는 치매인데 그 변덕스러움과 괴팍한 성격은 고사하고
배설물을 치우고 병자를 간호하는 일이 구순의 노모가 어찌 견디기 쉬울 것인가.
환갑의 아들은 겨우 주말에 내려와 힘든 일이나 거들다 올라가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도 자신이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어머니의 99%의 역할이 너무 안쓰러워서.

스러져가는 몸뚱이와 정신을 붙들어가며 여전히 시골 본가를 의연하게 진두지휘하는
노모의 모습에서 모성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소박한 재료에서 찾아내는 오묘한 맛으로 밥상을 차려내는 재능에 놀라게 된다.
도시락의 재질이 형편없던 시절 운동회때 싸준 기가막힌 도시락의 향연을 보니 지금
잘 나가는 유명쉐프의 감각에 전혀 뒤떨어짐이 없다.
음식 잘하는 아내는 소박이 없다는 말이 있다. 현명하고 부지런하고 음식솜씨까지 좋은
어머니를 두었으니 남편이나 자식들은 그야말로 왕행운아인 셈이다.
하물려 사돈의 팔촌까지 챙겨보낼 음식을 만들어내는 배려심은 흉내내기도 힘들다.

환갑의 아들은 베이비붐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를 지낸 아버지 덕분에 심각한
가난은 겪지 않았지만 가난한 조국에서 힘들게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하여 그래도 효자소리를
듣고 앞길을 잘 챙겨온 세대.
하지만 이제 점점 생명의 불이 꺼지고 있는 부모세대를 챙겨야 하고 아직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세대는 여전히 어깨가 무겁고 과연 자신의 노후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워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식들은 나를 챙겨주지 못할 것이고 몸도 마음도 삐꺽거릴 그 시간에
나는 치매걸린 아버지나 몸뚱아리가 무너져버린 어머니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날이 오면 미국의 늙은 부모처럼 산소통을 자동차에 싣고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는 지경이
되지나 않을까.
아니 스스로 찾아갈 정도면 행운아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요양병원같은데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지.
아들은 의사인 친구와 이미 그렇게 스러져간 부모의 모습을 닮을까봐 걱정스럽다는 대화를
나눈다. 역시 지금 나의 고민이 겹쳐진다.

하지감자를 밑에 깔고 갈치를 알맞게 조려내고 잘 익은 열무김치를 보리밥에 쓱쓱 비며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아직은 언제라도 달려가 어머니의 밥상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환갑의 나이에.
참 부러운 이야기다. 세월의 냉정함이야 누구든 비껴갈 수 없으니 언젠가 육신의 고통을
내려놓고 훌훌 오신 곳으로 돌아갈 아버지의 시간들을 묵묵히 견딜 수 밖에.
그리고 이미 우리도 그 곳을 향해 서서히 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아 문득 어린시절 쪽마루밑 아궁이에서 끓고 있던 동태찌개맛이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나는 여전히 잠을 떨치지 못하고 아랫목 이불에 몸을 숨기고 있고 마당에서는 엄마의
종종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오던 그 시간.
코를 간지럽히는 찌개의 구수한 그 맛을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난 내 자식들에게 어떤 음식으로 추억을 물려줄 것인가.
잔잔하지만 그리움이 가득한 마당에 앉아 맛깔스런 밥상을 받은 것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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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견주 1 -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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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별나다 별나 욘석 솜이!


 


내 집에도 솜이처럼 별난 녀석이 있다. 막둥이라고 이름 짓고 뚱이라고 불리는 요녀석!

사모예드종은 털이 많고 온동네에 존재감을 뿜뿜 알릴 정도로 털이 많이 빠지는 종인 듯하다.

우리 뚱이 역시 털날림이 장난이 아니다.

집 마당 구석에 보면 털이 소복이 쌓여있다. 마치 눈처럼.

텃밭에도 수북, 솜이처럼 과격하게 달려드는 애교쟁이여서 그런지 녀석이 달려들었다 싶으면 옷에 온통 털투성이다.


 


털을 빗겨주면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싫어하는 목욕을 하고 털을 말려주다보면 온통 털이 날린다.

극한견주의 심정을 백분 이해한다. 그래도 어쩌랴 저도 그렇게 털이 많이 날리고 싶었겠나.

그저 음식에서 털이 나오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솜이는 목욕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뚱이도 목욕후 도망가서 물을 터는데 벽에 몸을 부비면서 털을 말린다. 그러다보면 다시 털에 먼지가 붙어서 목욕하나마나가 되건만 그래도 열심히 벽에 몸을 문지른다.


 


비교적 한적한 곳에 집이 있어서 그런지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건 열심인데 조금 안면이 있는 사람이 지나가면 반가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솜이처럼 달려들어서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하는데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라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 그래도 좋다고 서서 달려든다. 뚱이는 지가 사람인줄 아는지 자주 서서 세상을 본다.


 


솜이도 사람 음식을 먹는 걸보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반려견에게 사람음식을 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사료만 주려고 했는데 가끔 족발이며 치킨같은게 오면 조금씩 나눠주다보니 사료를 먹지 않고 자꾸 우리 음식을 노린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료를 먹지 않고 결국 우리를 이기고 만다.


 


그래도 솜이는 뚱이보다 똑똑하다. 손, 앉아, 엎드려, 누워 정도는 알아먹고 할 줄 아니까.

비록 간식을 주는 경우에만 움직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 뚱이는 별명이 꼴통이다. 애초에 훈련을 시키지 않아서인지 들어가, 맞는다 정도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제집으로 줄행랑을 치지만 그외에는 '나 잡아 먹소'하면서 눈만 멀뚱거린다.

진돗개라 머리가 비상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먹는 것에 열중하는 것으로 우리 기대를 저버린 녀석.  그래도 뚱이가 우리 가족인 것처럼 솜이도 한 식구라는 것을 안다.


얼마 전 반려견이 사람을 물어서 사망한 사건을 보면서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 마당안에서 벗어날 일이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사람을 물면 어쩌나 싶어 긴장했는데

어찌나 겁이 많은지 물기는 커녕 안기려고 할거다.


별난 견 솜이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소동들이 전혀 낯설지 않고 '맞어 맞어'를 연발하게 된다.

아무리 별나고 골통짓을 해도 견주의 눈에는 하트가 뿅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1'이란 숫자를 달고 나와 좋다.

분명 다음 편이 있다는 뜻일테니. 솜이야 또 어떤 엉뚱한 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래.

우리 길게 오래 같이 가자.

극한견주님 정말 웹툰 재미나게 잘 그리셨어요. 오래간만에 실컷 웃었네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귀여운 솜이 포스트잇도 감사합니다! 아까워서 어떻게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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