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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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라고 하면 참 지루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드러나지 않은 곳을 찾아 발굴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신나는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고고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유물에 숨은 진실을 밝히는 일은 짜릿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금방 생활에 적용되거나 이득을 주는 학문은 아니겠지만
인류가 걸어온 시간을 발굴하는 의미있는 학문이고 인기가 없음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연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이 학문에 입문하고 고집스런 길을 걸어온
고고학자의 글에서 고단했지만 행복한 시간들을 만났다.

      


인류가 걸어온 발자욱에는 무수한 시간들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고 땅속에 숨어있는 유물
한점에는 이들의 숨결이 녹아있다. 표지에는 땅을 파고 유물을 수습하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과이 고상해보이거나 안락해보이지는 않는 고된 작업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닿을 수 없었던 시간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묻혀버릴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땅을 파서 보물을 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지는 일이라는 말에 깊은 존경심이 우러난다.
인류가 누리는 지금의 이 풍요는 인류가 수만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토대위에 세웠졌기에
헌것을 부수고 새 것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과거의 흔적들을 사라지게하는
개발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의견에 동감한다.
금싸라기 같은 땅이 유적지라는 이유로 개발되지 못하고 잠들고 있는 것은 분명 아깝기는 하지만
수만년 전의 흔적들이 돈이라는 명분으로 사라져버린다면 지금의 우리는 너무 쉽게 귀한 보물을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후손에게 풍요가 아닌 무책임을 전가하는 일이다.
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소신을 지켜온 수많은 학자들이 너무 존경스러워 보인다.

      


오래된 동굴안에서 혹은 사막의 땅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유물 한점에도 그 시대를 살다간
이들의 스토리가 숨어있고 시간이 숨어있다. 어떤 간절함이 전해져 누군가에게 발견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전설로만 존재했던 실체가 유물로 나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상상하게 된다.
유라시아 끝에 자리잡은 한국의 존재를 일찌감치 알아내어 연구해온 외국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참 감동스럽다. 고독한 길임에도 꿋꿋하게 밟아온 그들의 족적이 있기에 우리는
잠시 그 시대를 상상하고 기억속에 붙들 수 있는 것이다.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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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이야기 더봄 중국문학 전집 1
쑤퉁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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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부부참새가 앉아 있었다. 포수가 총을 겨누는데 아내 참새가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재혼하지 말고 술도 줄이고 일찍 일찍 들어오고....'
그러자 포수에게 남편 참새가 외친다.
"아저씨 얼른 쏴 주세요"
참새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는 이런 유머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 제목에
등장하는 참새는 소설의 줄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조연도 못되는 참새를 굳이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하나
참새가 뒤에 있음을 모른다'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지만 정작 그 뒤에 참새가 숨어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이 고사성어를 책을 덮은 다음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 바오룬, 류성, 선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무대는 1980년대 개혁개방 격변의 시대로 아직은 문화혁명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살아있고 공산주의의 억압에 찌들었던 세대이후 자유를 갈망하는 세대가 공존하는 시간이다.
열 여덟살인 바오룬의 가정이 바로 딱 이 시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와 중년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바오룬은 여드름 투성이의 인물은 별
반반하지 않았고 공부도 못하는 소년인데 천성은 착해서 정신병원으로 쫓겨난 할아버니를
간병하게 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바오룬은 발작을 일으키고 병원을 헤집어
놓는 할아버지를 묶다가 매듭을 기가 막히게 묶는 재주를 터득하게 된다.
후에 이 매듭을 묶는 재주가 저주로 되돌아오게 되리라는 걸 모르고 말이다.

      

바오룬과 동갑인 류성은 마을에서는 그나마 유지집안으로 정육점을 하는 부모덕에
가난을 모르고 자란 철부지 소년이다. 겉멋이 들어 허세도 심하지만 소심한 구석이 있다.
대략 그 나이대의 소년들이 그러듯 이 소년들에게도 첫사랑 비슷한 감정들이 스며드는데
하필이면 그 대상이 바로 선녀라는 열 다섯 소녀이다.
고아인 선녀는 정신병원의 정원사인 할아버지 부부에게 입양되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가난하게 큰다. 성질도 어찌나 드센지 다소곳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얼굴과 몸매가 좀 남다르게 좋은 편이라 두 소년의 눈길을 끌어 삼각관계가 되고 만다.
하지만 바오룬은 자신의 감정이 뭔지 잘 모른다. 류성 역시 바오룬과 선녀를 연결해주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은근 자신이 선녀를 좋아한다는걸 미처 깨닫지 못한다.

      


세 사람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처럼 다소곳하고 가슴 설레이는 첫사랑이 아닌 다소 과격하고
시끄러운 사랑놀음에 휩싸이는데 결국 류성의 꼬임을 받은 바오룬은 선녀를 매듭으로 묶어놓고
도망가고 류성은 선녀를 강간하고 만다.
이렇게 세 사람은 불운한 운명에 휩싸이고 바오룬은 류성의 죄를 뒤집어쓰고 강간범으로
감옥게 갇히고 류성은 부모의 거간비로 죄를 모면하고 석방되지만 철저한 악인은 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10년 후 다시 만난 세 사람은 과거의 일로 다시 얽히게 되고 끔찍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줄거리 그 자체는 크게 세련되거나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기의 중국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공산주의체재가 흔들리고 자본주의가 유입되는 시기의 중국은 '돈'이 최고라는 의식이
팽배하기 시작하고 공평하게 살아가던 인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악귀처럼 싸우게 된다.
그 와중에 온갖 범죄와 악이 싹트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졸부들을 상대로 웃음을 팔고 스폰서를 찾는 여자들, 과거 내노라했던 대장이었지만 지금은
졸부의 위협과 싸워야 하는 과거의 사람들, 그러면서도 효가 중요시되던 예전 관습이 겹치면서
혼란에 빠진 신세대들의 모습들이 우리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와는 다른 풍습들도 눈에 띈다. 혼이 빠져나갔다고 절망하면서 조상들의 유골을 찾아 헤매는
바오룬의 할아버지가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잘 모르면서도 자꾸 선녀에게 끌리는 바오룬이 비극으로 치닫는 계기가
아주 사소한 선녀의 말 한마디였다는 것에서 아직은 순박한 정서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세 주인공이 등장하는 80년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작가여서 더 리얼한 작품이 탄생
된 것 같다. 우리와는 다른 정서로 인해 몰입이 쉽지 않지만 중국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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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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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가 작품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분명 서양인이면서도 우리 동양인들에게만 있다는 정(情)의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이고
단순히 달콤한 스토리로만 독자들을 현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 '파리의 아파트'는 첫장면의 비오는 우중충한 파리처럼 우울하게 시작한다.
술만이 유일한 위안인 유명 작가 가스파르와 열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한 여형사 매들린,
그리고 천재화가이지만 불행한 삶을 살았던 숀 로렌츠, 그리고 우울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그의 친구들과 아름답지만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등, 등장인물조차 대체로 우울하다.

      


유명 작가인 가스파르는 일년에 한달은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해야만한다. 은둔작가로 이름이 날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는 가스파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여정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었던 매들린은 전 남친이 낳은 아이를 우연히 보게 되자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져 자살을 기도했고 기적적으로 살아나 파리로 향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파리에 같은 날 도착했고 한달 여 묵을 숙소안에서 마주친다.
이중 예약으로 한 집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환멸을 느끼고 서로 나가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며칠간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되고 원래 집주인이었던 숀 로펜츠의 영혼을
만나게 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기이한 작가였던 숀 로렌츠는 아내인 페넬로페를 만나 무명화가에서 유명화가로 거듭날 만큼
아내를 사랑했다. 어렵게 낳은 아들 줄리안이 납치된 후 죽음에 이르자 폐인이 되고 만다.
그 뒤 전혀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대행인인 화상 베르나르는 3점의 작품이 있다고 주장한다.
매들린에게 작품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베르나르는 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건넨다.
마흔의 나이를 눈앞에 둔 매들린은 난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운명처럼 숀의 시간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가스파르역시 어린시절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가졌고 결국 그런 이유로 사람들을 적대시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숀의 집에 묵게 되면서 그의 작품을 보게되고 역시 운명처럼 숀의 시간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숀의 시간을 추적하면서 두 사람은 숀의 마지막 메세지를 발견하는데...


'줄이안은 살아있다. 줄리안은 살아있다. 줄리안은 살아있다.....'
암호처럼 남겨진 그의 작품에 새겨진 이 메세지는 사실일까. 너무나 깊은 슬픔에 영혼마저 침식당해 미쳤던 것은 아닐까. 혼란에 빠진 두 사람처럼 나 역시 의문에 휩싸였다.
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이 의문을 풀기위해 함께 여정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연쇄살인에 얽힌 범인이 등장하고 과연 이 연쇄살인과 줄리안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미스터리한 실종과 살인을 따라 정신없이 몰입하다보면  '사랑'이란 종착점에 도달하게 된다.

상처없는 영혼은 없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 상처를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다른 모습으로 투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선자라고 믿었던 남자의 악행과 절망의 끝에서 만난 두 사람이 찾아낸 진실을 알게되면 독자들은
인간의 본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려진 상처를 어떻게 봉합하고 살아가는지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으로 나는 이 책을 얼마나 잘 선택했는지 안도하게 된다.
번역자의 말처럼 기욤 뮈소가 아들을 얻고 난 후 부쩍 부성애에 관한 메세지가 많이 등장함을 발견했다.
이처럼 인간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사랑이 삶에 얼마나 큰 위안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아름답고 감동적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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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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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도 많지 않은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참 오랫동안 품에 끼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못했었다. 뭐랄까 아끼는 팥앙꼬를 아껴가며 먹다가 마지막에 일격을 가하듯
극치감을 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채색의 고상한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오래오래 묵혔다가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겨우 3시간만에 독파하고 말았다.
그냥 술술 읽혀졌다. 82년생이면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기 시작하면서
거의 최고점을 찍었던 시점이 아니었을까.
82년생 김지영이 다녔던 국민학교도 11반에 저학년의 경우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등교를
시켰다는 것을 보면 '무작정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고 외치던 산아제한 시절을 살짝
지나면서 한집에 1~2명을 낳던 시절도 접어들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후기에 보면 당시 가장 많았던 이름이 '지영'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인공 '김지영'은 당시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의 범위에 들었던 여성인 셈이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3남매가 사는 전형적인 보통 가정에서 자란
김지영은 그래도 혜안이 있었던 어머니 덕에 아버지가 퇴직을 했어도 큰 걱정없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방직공장에 취직을 하여 월급을 남자형제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던 어머니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아들 우선주의의 시어머니에게 먼저 두딸을 안기면서 다소 기가 떨어졌다가 세번째로 아들을 낳음으로써 기사회생한 어머니는 뭐든 아들 우선이긴 했지만 두 딸에게도 희생을 강요하진 않는다.

      


크게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서울안에 있는 인문대에 무난히 진학한 지영은 대학시절 잠깐씩
연애도 하고 졸업후 취업을 걱정하는 시기가 온다.
대단한 성적이나 스펙이 없었던 지영은 중견 홍보업체에 취직하고 드디어 남성위주의 직장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소모성이 큰 일을 시키지만 업적이 될만한 일은 남성에게만 배당하고 '남자들은 가장이 될 사람들이니까'라고 핑계를 대는 상사들의 변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괜찮은 IT기업에 다니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육아전쟁에 시달리면서 급격한 우울증을 앓게 되고 빙의현상같은 이상증세들이
나타나게 된다. 정말 신내림이라도 받는 것인가 싶었지만 지영의 입을 통해 만나는 인물들은
지영이가 하지 못했던 말, 아니 그동안 여자들이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여자이니까 애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독박육아에 맘충이란 이야기를 들어야하고
명절이면 불려가 진종일 일만하면서 친정에 먼저 갈 엄두는 내지못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82년생 김지영 이전의 여자들은 더했고 이후에 여자들은 조금 덜했을 뿐 여전히 지금도 82년생
김지영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이 어떤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이 작품을 분명 여자들이 더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남자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딸이 손녀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 이 세상의 현실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무작정 아들손주를 기다렸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여성이 여성을 비하했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 역시 또 다른 김지영이었지만 내 딸, 내 손녀는 더 이상 김지영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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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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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여전히 일하는 여자가 불편한 사회이다.
남자들에 비해 일자리도 적고 같은 일을 해도 월급도 적다. 승진도 차별받아야 하고 더구나
결혼을 하면 직장내 입지도 위축된다. 더구나 최근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드러난 성추행이나
성폭행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달나라를 넘어 더 먼 별에도 우주선이 오가는 시절임에도 말이다.
하긴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먼저 정착된 선진국에도 여성이 참정권을 가진 시간이 길지 않다.
여성대통령이나 수상이 나오면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이니 아직 여성의 인권을 결코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
거의 40여 년전 여자가 일을 가지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고작 남자들의 보조역할이나 비서,
마침 한국이 산업화에 접어드는 시기여서 공단에 여직공이라는 일자리를 차지하는 정도였다.
공무원이나 교사, 전문직을 가진 여성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사기업이나 금융권에서는 결혼후
퇴직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교육열 높은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제 몫을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오래전에는 자기 색깔이 없는 그저 그런 일을 할 수 없이 해낼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그런 일자리도 많지 않은 시절이니 어느 것이 더 문제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자기색을 분명히 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11명의 여자들 이야기는 전투신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일단 표지부터가 눈물겹다. 흔히 먼길을 나서기 위해 신발끈을 다져 묶는 장명이 등장하는데
여자들은 브래지어 끈부터 질끈 매고 본다. 저 브래지어는 몸의 자유를 구속하는 억압처럼
느껴지지만 덜렁덜렁 맨 가슴으로 일터로 나서지 못하는 여성들의 신발끈처럼 비장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많은 여자들이 집안에서는 노브라로 자유를 만끽한다. 나부터 말이다.
건강상으로 좋지 않다고 하기도 하고 얼마전 방영된 드라마에서는 불편한 브래지어때문에 노브라를 선호하는 여성이 남성동료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장면이 등장했다.
아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일에 지장을 주나? 하긴 응큼한 남자들이라면 흘끔거리느라 그러기도 하겠다.

 

 

 브래지어의 자유와 더불어 생리대의 자유를 외치는 이지혜의 목소리도 귀 기울였으면 한다.
너무 오랫동안 한 달에 일주일 이상 호르몬의 채찍에 시달렸던 여성이라면 그녀의 전도에
넘어가도 좋지 않을까.

 

문학계의 거장인 여성작가는 자신의 첫걸음이 눈밭에 찍힌 발걸음처럼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누군가 자신의 발자욱을 따라 올 것이므로 발을 떼어 놓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은하 기자의 고백은 울림처럼 다가온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독고다이로 가야했던 시간들. 영화기자라는 여자로서는 많지 않은 직업을
선택한 순간 그녀의 고독한 발자국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영화잡지사 기자를 거쳐 그녀의 말처럼 '내 밭은 내가 간다'는 심정으로 잡지사를
만들었고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MC를 거쳐 런던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녀의 모든 발걸음이 뒤를 쫒는 여자들의 표식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길을 따라 기자로 작가로 들어선 최지은이 있는 것을 보면 첫발의 의미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잡지사에 여자가 많은 이유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들이어서가 아니라 임금 문제라는 것을
알게되면 절로 분노가 끓어오른다.

      


더구나 최근 성폭력문제가 대두되면서 그녀들이 느꼈던 경험담은 가슴이 쓰리다 못해 아리다.
밤을 세워 일을 하고 가고 싶지 않은 회식자리에 나서서 먹고 싶지 않은 술을 마셔야 하는
문화를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걸까.
최근 불거진 여가수의 성추행사건에서도 '니가 문제를 일으키면 뭐가 좋은데'하는 선배 여가수의
충고아닌 충고가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의사나 여약사를 더 신뢰하지 못하더라는 고백도 있고 인기있는 여자들은 디스하는 것은 오히려 많은 여자들인 것을 보면 단순히 남성우월주의에 피해자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머리도 좋다.
적응력도 뛰어나고 인내심도 강하다. 섬세한 감각과 집중력은 또 어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여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억지로 주면서
싸게 부려먹으려고 한다.  여전히 인권후진국인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 이 책속에 주인공이 된
여자들은 대단하다. 어여쁘다. '나는 이 길을 모르고 걸었지만 너희는 오더라도 알고와라'.
아름다운 여자도 좋지만 쎈 언니들이 더 좋다.
제 몫 이상 해내면서 오기가 있는 쎈 언니가 더 좋다.
책에서 오기가 뚝뚝 떨어져서 더 좋다.
지금, 당신들의 그 길을 지켜보면서 뒤를 쫒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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