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전 세계 어디나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중국의 책벌레 이야기라 흥미를 갖고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활자중독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를 당기면서도 에세이로서 훌륭하다, 정말 재밌다, 이런 느낌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수필은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쓰기 형식이라 생각하지만 주제가 명확하지 않는 만큼, 독자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걸 느낀다.

요즘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지 책읽는 고양이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강아지와는 다르게 고양이는 사뿐사뿐 걷고 짖지도 않고 밖에 데리고 나갈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 먹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에게 안기지도 않고 그냥 조용조용 자기 할 일만 하는 느낌이랄까?

어쩐지 책 읽기를 좋아할 것 같긴 하다.

저자가 고양이를 키우는 건 아니고 인터넷 필명이 고양이라고 한다.

중국 문화혁명 시대를 거친 사람이고 천문학을 전공했으며 과학사를 연구하는 교수이고 관련 책들을 50여 권이나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일단 평범한 책벌레는 아니고 책을 직업으로 삼는 프로 독서가인 셈이다.

그러니 나처럼 퇴근 후 잠깐 책을 읽는 소비자로서 독서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

문화혁명 당시 학교를 다녔던 저자는, 학교 도서관 관리를 했던 어머니 덕분에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많이 읽고 친구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출판된 책을 국가 권력이 금지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적인 정책인가 싶다.

과연 진시황의 분서갱유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갈망이 컸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위험한 책들을 찾아 그것에 탐닉하고 그런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다.


서재에 책이 3만 여 권이나 된다고 하는데, 프로 독서가인 저자 역시 공간에 대한 문제로 고민한다.

죽고 나서 이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보인다.

다행히 저자는 딸이 물려 받기로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아빠가 열심히 모은 DVD와 책들을 받을 생각이다.

남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하겠지만, 내가 책을 못 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죽으면 이 책들을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도 있어서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하면 건강이 그만큼 상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나이가 들었다는 게 독서할 때도 확 느껴진다.

이 책 같은 에세이는 예전 같으면 금방 읽었을텐데 어제도 정말 힘들게 완독했다.

눈이 너무 아프고 피로한 느낌이 확 온다.

은퇴 후 본격적인 독서 계획은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고 지금부터라도 더욱 가열차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83p

지금까지 독서는 나의 낙이었다.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였다. 나는 독서를 통해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했다. 독서는 나 자신이 진실로 꽉 차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허황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도 독서가 이런 의미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183p

우리가 식량 부족으로 고구마가 없다면 당장 굶어 죽을 위기라면 앞에서 말한 정책이 아무대로 옳다(적어도 부득불 써야 한다). 그렇지만 학문 관리는 식량 공급과 다르며 학술 연구 결과가 좀 줄어든다고 '굶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저명한 소설가 첸중수는 "학문은 본래 황량한 강가, 거칠고 낡은 늙은이의 집에서 마음이 맑은 한두 사람이 함께 논의하는 일이다"라며 학문이 태생적으로 청정한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학문에서 양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하물며 생태계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 우리의 학술 생태계는 이미 '과열'되어 있어 학술 연구 결과가 조금만 적어져도 '굶어 죽기'는커녕 오히려 좋은 점이 생겨날 수 있다(최소한 멀리 내다봤을 때는 그러하다).

244p

요즘 내가 종종 중얼거리는 구절 두 가지는 이렇다.

'책 읽으면 부자, 일 없으면 신선'

'안온한 상태를 얻기가 가장 어려운 법'


<오류>

207p

신무대왕의 즉위 후 신하들은 궁파의 딸이 미천한 출신이라 왕비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했고 그에 따라 신무대왕은 약속을 어겼다. 이에 원한을 품은 궁파가 병사를 끌고 반란을 일으키자 

-> 신무왕은 즉위 해에 사망했고 그 아들 문성왕이 장보고와의 약속을 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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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 - 고고학으로 제주도 여행하는 법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4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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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기획 의도는 좋은데 너무 소소한 이야기까지 더해져 늘어지는 느낌이라 아쉽다.

남편이 제주도를 좋아해 휴가 때마다 갔던 곳이라 나름 관심이 있어 관련 서적들을 종종 보곤 한다.

이 책의 주제는 원 지배 이후 목장을 운영하면서 살았던 몽골인들의 반란, 즉 목호의 난이다.

사실 이런 반란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처음 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영 장군이 무려 2만 5천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제주도로 쳐들어가 목호의 난를 진압했다고 하니 나름 역사적 의의가 있는 듯한데 많이 안 알려진 것 같다.

제주도의 역사라고 하면 삼별초가 아는 지식의 전부였는데 군현제로 편입되기 이전의 제주 역사를 알게 된 점이 소득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는 일종의 속국 개념이라 고려인, 제주인이 마치 외국처럼 나뉘어졌다고 한다.

오키나와와 일본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적 경험이 필요한 모양이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독신을 꿈꿨기 때문에 최대한 버티디가 결혼을 했고, 다른 건 몰라도 아이는 안 가지려고 했는데 늘 계획과 다르게 인생이 흘러간다.

저자는 글 쓰는 사람이라 가능하겠지만, 제주도 박물관에서 여는 전시회 보려고 당일 코스로 비행기 타고 왔다는 게 너무 부럽다.

독서인의 삶은 恒産 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돈이 엄청나게 필요하지 않은 대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책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

코로나 시대가 되니 그나마 1년에 두번 휴가 가는 것도 못하고, 정말로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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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이광수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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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서도 다소 어려웠다.

힌두교가 정확히 어떤 신을 숭배하고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는지 막연한 느낌은 들지만 분명하게 이해는 다 못했다.

그래도 힌두교의 시작부터 발전 과정을 인도 역사와 더불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마치 인도사 한 권을 읽은 기분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교회에서는 강조하는데 힌두교는 앎이 바로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상숭배로 보는 신상을 향해 절을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내제된 신의 뜻을 갈구하는 것이다.

힌두교라고 하면 잡다한 신을 섬기는 다신교라고 폄하했던 것도 무지의 소치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의례 행위가 곧 종교 그 자체라는 게 신기하다.

또 불교와 힌두교의 연관성도 신선했다.

사실 불교 교리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보살이었는데 이 보살의 존재가 힌두교의 여러 신들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또 소승불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대승불교가 대중의 구원을 추구하는 반면, 소승은 자기 자신의 해탈만 원하는 약간은 이기적인 분파라고 알고 있었는데 왠걸, 책에 따르면 소승불교야 말로 부처가 처음에 추구했던 본질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 공덕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나는 노력과 각성을 통해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속을 떠나는 모양이다.

재가신자의 후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대승불교는 오히려 힌두교와 매우 비슷하다고 본다.

불교와 힌두교 또 인도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힌두교가 단순히 갠지스강에서 영성을 찾는 다신교라 여겼던 게 얼마나 피상적인 생각이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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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풍요의 강 - 아프리카의 물줄기에서 바라본 이집트 역사의 파노라마 문명의 강 시리즈 4
베이징대륙교문화미디어 엮음, 한혜성 옮김 / 산수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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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도나우강 편은 유익하고 재밌었던 것 같은데 이번 나일 강 편은 솔직히 아쉽다.

중국에서 교양서로 펴낸 책들은 독자의 수준을 다소 낮게 잡는 느낌이다.

고대 이집트 5천 년 역사를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은 좋은데 투탕카멘의 비밀 같은 음모론이 마치 진짜 역사처럼 끼어들어 황당했다.

어찌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의 영화가 끝난 후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때부터 로마와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는 셈인데 이 점이 연속성을 가진 중국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사라지고 중국의 한자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슬람이 다스린 7세기부터의 역사는 소략되어 아쉽지만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류>

24p

수많은 자녀들이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람세스 2세가 60세가 되고서야 아들 메르넵타가 왕위를 이었다.

-> 메르넵타가 6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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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탄생 - 고대 올림피아부터 현대 올림픽까지
볼프강 베링거 지음, 강영옥 옮김 / 까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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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고 독일책이라 지루하면 어쩌나 긴장했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아주 유익했다.

서양에서 발간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동아시아 사회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육체에 대한 과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포츠 문화도 없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스포츠 문화도 결국은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을 받아들인 셈이다.

올림픽이라는 전지구적인 행사에서 상상의 공동체 즉 국가의 역량을 뽐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 스포츠의 확산에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전 국민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미친 듯이 몰입하고 온 나라가 축구에 들떠 있는 게 약간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지금은 어떤 의미로든 국민들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축제의 장이고,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이 바뀌긴 했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도 안 봤던 축구 경기를 10여 년이 지나 유튜브로 보다 보니 축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운동인지 확 빠져 버린 탓도 있다.

아마도 그 때는 국민적인 열광에 반감이 생겼던 것 같다.

솔직히 스포츠, 더 정확히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정말이지 1도 관심이 없지만 프로 선수들이 보여주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책에서는 21세기의 스포츠가 거대한 쇼 비지니스라고 하지만, 근대 올림픽 창시자들이 추구했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중가수에 대한 편견도 최근에 깨지긴 했다.

전에는 단순히 연예인, 딴따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감동을 주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그들 역시 대중 예술가이고 아마추어와는 다른 기량을 가진 프로구나 인정하게 됐다

역시 엘리트 선수와 박수를 치는 관중은 구별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스포츠의 기원, 곧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제전부터 시작해 21세기 스포츠의 역사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흥미롭게 풀어 쓴 좋은 책이다.


<오류>

113p

1513년,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레오 10세)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조카 줄리오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주교로 선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기경에 올랐다.

-> 줄리오 데 메디치, 즉 훗날의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의 조카가 아니라 사촌 동생이다.

208p

카를 5세 황제가 영국을 방문한 이유는 그의 이모인 캐서린의 딸, 즉 당시 6세에 불과했던 조카 메리 튜더와의 약혼 때문이었다.

-> 카를 5세가 약혼한 이는 이모 캐서린의 딸인 훗날의 메리 여왕이 아니라,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공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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