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브레드버리.  SF 대가 중 한명인데, 유난히 단편을 많이 썼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두꺼운 작품집 하나 있어서 아작에서 두 개의 너무나도 예쁜 커버의 작품집이 나왔을 때, 많이 겹칠거라 짐작하고 뭔가 아쉬워했는데(주로 이북을 삼에도 불구하고 커버가 중요하다) 목차 살펴보니 겹치는 거 하나도 없더라. 단편 작품집을 사고 나면 주로 첫편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표제작을 읽는 편이다. SF와 환상을 서정적인 정서로 묘사하는 작가로 르귄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브레드버리는 르귄과는 조금 다른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개의 소설 모두 딱 표지 이미지만큼 맑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 여름을 이하루에> 이 작품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nightfall을 연상시킨다. (nightfall은 내가 읽은 최고의 단편으로 꼽을 수 있겠다) nightfall에는 태양이 두 개인가 세개인 행성에서 낮만 존재하고 밤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일식 같은 현상으로 밤이 다가오고, 종말론적 사람들을 세상의 끝이라 여기는 둥 태초 처음 겪는 밤을 앞두고 저마다의 이론과 믿음과 과학과 온갖 생각들로 소란스러운 상황을 그렸는데. 두둥 밤이 오는 대신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본다. 처음으로 별을 보는 그들의 태도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온 여름을 이 하루에>는 지구 가까이 있는 금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nightfall에서는 태양이 없는 걸 모르는 행성에 사는 사람들 얘기고, 반대로 금성에서는 태양을 모르는 사람들 애기다.  곧 바로 닥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nightfall은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데 비해, 이 소설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조금 더 종말론적이고 어두운 배경에 스산하지만 태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아이의 마음에서 서정적인 슬픔이 느껴진다. 


금성에서는 짙은 구름에 쌓여 태양이 보이지 않고, 7년동안 비가 내려 컴컴한 지하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쨍 하고 해가 비친 적이 바로 그 7년 전이고 소설의 주인공인 학교의 아이들은 2살때 해가 났었기 때문에 태양이 어떤 것인지 경험이 없다. 그런데 지구에서 5살때 쯤 전학온 아이가 마지막으로 자기가 본 태양을 기억하고, 태양이 뜰 날만은 기다리고 있는데, 지구에서 왔다는 특수성 때문에 애들한테 따당하다가 막상 태양이 떠오르는 그 날, 해가 뜬다는 일로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사건이 터지는 내용이다. 


단편 중에서도 유독 짧은 단편들이 있는데, 이 단편이 그렇다. 매우 짧고, 아쉬운데, 태양을 그리워하는 소녀와, 컴컴한 어둠 속 인공태양광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태양에 대해 각자 상상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멜랑콜리의 묘약>에서는 몇 개 더 읽었는데, 표제작 보다는 그 다음 작품의 감동이 훨씬 심해서, 다시 다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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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8-12-19 22:4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12-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REBBP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REBBP 2018-12-19 22:41   좋아요 1 | URL
오 좋은 소식이군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립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 수상집>은 신간이 오히려 싸게 나오는 정책 때문에 매년 사서 보게 된다. 올해의 작품집에서는 어찌 하다보니 맨 뒤에 실린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박상영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다. 중간까지는 그냥 무난무난 큰 스토리도 없고 자기 얘기 길게 하는 그렇고 그런 단편인데, 소재가 퀴어라 나름 덕을 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퀴어가 아니었다면 별로 크게 감동적이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퀴어라는 소재의 자극성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 중간 정도 읽을 때까지는. 


소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작품은 퀴어라는 소재를 쓰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퀴어가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런 역설은 홍상수 영화를 까면서 동시에 홍상수 영화와 퀴어인 점만 다르지 홍상수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이 책의 주인공이 만든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찌질한 남자들의 찌질한 일상과 실패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시 홍상수 영화의 이미지들을 소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시 역설적이다. 


퀴어가 특별한 이유는 게이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소수자의 사랑은 소수이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지하고라도, 우연히 감이 와서 그도 나와 같은 부류임을 알고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아 이 사람이 혹시나 양성애자라면 어쩌나, 양성애자에서 더더욱 게이혐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어쩌나 이런 두려움은 사랑을 시작하기조차 어렵고 꺼려지게 만든다. 게이는 게이를 알아본다는데, 게이들이 가진 특별한 행동이나 습관 이런 것이 서로를 알아보게 할 수도, 어떤 신호가 그들 사이를 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 한쪽에만 귀거리를 하고 다니면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는 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양성애자들이 게이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거 자체가 소수자의 인권 때문이 아니며,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흥미와 같은 소비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애초에 이 소설에 대해 의심했던 것처럼, 그 의심을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 마디로 퀴어가 잘 나가니까, 모 아이돌과의 염문설을 일부러 뿌려서 자신이 마치 게이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주인공 화자가 보기에 신파에 혹은 소수자 인권 플래그를 건 구토유발 억지감동에서 한술 더 떠, 절망하고 상처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나약한 스테레오타입의 허구의 게이들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자기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짜 게이인데, 자기가 만든 영화는 이게 무슨 홍상수 영화냐, 진짜 게이의 삶을 모르는 일반인이 만든 거라 감동이 없고, 치열함이 없고 깊이가 없댄다. 그러면서 가짜로 진짜 게이가 된 감독이 만든 영화가 눈물을 쥐어 짜기에 그게 잘 만든 영화란다. 술 퍼마시기고 패악질을 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뒤질 위인이 못되는 주인공과 그의 애인은 왕샤는 니들이 게이를 아냐고 따지는데, 그 가짜 진짜 게이 영화 감독은 자기가 몇달간 게이클럽과 게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취재했다고 한다. 


둘은 돈을 모아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자이툰 부대에서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하지만, 각자의 꿈을 향해 각자의 실패를 완성한 후에 재회한다. 우연한 재회지만, 그들은 자신의 젊음이 막바지에 달한 이 나이에 무엇을 이루었느냐 실패를 이루었음을 선언한다. 술마시고 개판치며 여자 후배를 집에 안보내려고 난리를 치다가 노래방 가서 여자도 안부르고 노래부른다고 차별당했다고 판단하여, 무선 마이크 두 개를 훔쳐 달아났다가, 들키는 등 온갖 찌질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게 그러니까 이 스토리의 메인 흐름이고, 이들 각자의 과거와 과거의 상처, 과거의 작은 영광들, 그리고 과거의 사랑, 그것들이 짬짬이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두사람의 가장 젊은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서사 자체는 많지만, 결국은 우리는 이모양 이꼴인거다 하는 모양새가 딱 홍상수 영화다.


실패란 무엇일까. 누군가 성공했다면, 그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결국 그토록 수많은 개인의 실패도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사건의 성공을 빛나게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면 우리의 삶은 억지 영화처럼 신파와 비약과 오해와 절망으로만 가득찬 무엇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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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2 : 국가 이중톈 중국사 2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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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사회조직   - 문화지표 - 대표 인물          - 이미지              - 시기구분

점    - 원시공동체 - 나체직립 - 이브

면    - 씨족         - 생식 숭배 - 모계씨족  여와  - 물고기 개구리 달  - 삼황

L부계씨족 복희 - 새, 뱀, 태양 - 삼황

편 - 부락 - 토템 숭배 - 초기부락 염제 - 소 - 삼황

- 후기 부락 황제 - 곰(혹은 기타) - 오제

권 - 부락 연맹 - - 초기 요 - - 오제

- 중기 순 - 오제

- 후기 우

국 - 부락 국가 - 조상숭배 - 하나라 계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사는 이전 편의 여와, 복희, 염제, 황제, 치우에 이어 요, 순, 우, 하나라 계까지다, 사기에서 찾아 보면 요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게 다 유가 사상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협한 시각에서 그들을 미화했으며, 실은 요 순이 아주 작은 부락 연맹의 CEO였으며, 선양은 말이 좋아 선양이지, 겸손하고 양보하고 선량하라는 유가사상에 부합되도록 잘 치장된 말이었고, 그런 좋은 말은 다 헛소리이며, 요, 순 우의 시대에는 선양이 제도화되어 있고, 부자 상속이라는 것이 아직 제도화되지 전이었을 것이라는 게 이중톈의 견해다. 그는 존경받는 사마천도, 근거없는 고대 신화에 영향받아 뿌리깊은 전통처럼 되어 버린 선양, 양보라는 위선을 뿌리치지 못한 뿌리 깊은 악습이라 평가한다. 


이중텐은 선사시대의 문화 궤적이 원시공동체, 씨족, 부락, 부락연맹, 부락국가 순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최초의 원시 문화의 형태는 점으로 문화점은 세계 각지에 분산된 채 스스로 생겨나고 소멸한 무수히 많은 공동체다. 이것들이 살아남아 발전을 이루고 강력해지면 ‘문화면’이되고, 문화면들이 분열과 확산, 상호 영향과 융합으로 인해 ‘문화편’이 되고, 또다시 문화편들이 이주, 연합, 겸병, 나아가 전쟁으로 인해 ‘문화권’을 형성했는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국가가 탄생되고, 인류는 문명시대로 들어선다.


이런 문화의 전개 과정에 맞춰 시리즈의 첫 편에서는 원시공동체와 씨족, 부락까지를 다루었고, 신화 속 안개처럼 쌓인 삼황이 어떤 한 시대에 존재했던 특정 영웅이나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상징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다른 인물로 교체되던 시대의 대표상이었다는 것이다.


평화롭고 좋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막 직립하기 시작한, 나체로 다녀도 창피한 줄 몰랐던 이브가 에덴 동산을 떠난 이후, 모계 씨족의 여와가 대표하던 여성 생식숭배의 시대에도 평화롭고 자유롭고 싸울 일 없이 평안했다. 권력이 생기고 남성생식 숭배로 변하면서 세상은 조금 더 피곤해지기 시작했고, 초기 부락 시대부터는 피와 살이 터져 대지를 물들이는 잔혹한 전쟁이 시작된다.


딴소리지만, 이렇게 보면, 인류 진화의 역사는 학살의 역사, 전쟁의 역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적어도 이브의 시대에 서로 잡아먹기야 했겠는가, 창과 칼이 태어나기 이전에 그들이 싸운 무기는 고작 눈에 띄는 뽀족한 돌맹이였을테니, 뾰족한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갖지 못한 인류가 거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었던 도구들이 인구증가와 경쟁을 부축였고,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 이기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해서 생긴게 현재의 인간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 할지라도 전쟁은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운명을 이끄는 하나의 코드가 아닌가 싶다.


다시 중국사로 돌아오면, 이 책은 국가의 탄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국 국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명이 태동하고 도시 규모의 국가가 탄생한 배경과 의미에 대한 여러 역사 학자들의 서술을 시공을 초월하여 넘나들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황금시대, 은의시대, 철의시대, 청동시대와 같은 은유적 구분을 중국에 적용하여 국가의 탄생 단계를 4단계로 여와와 복희까지의 황금시대, 염제와 황제에서 요순까지를 은의 시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시대를 청동시대,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를 철의 시대로 비슷하게 끌어다 붙였다. 즉 역사학자들은 인류가 국가가 탄생한 이래로 점점 더 나빠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족 부락 시대가 훌륭해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고, 밤에 문을 안잠근건 훔칠 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문명을 삐딱하게 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문명을 지탱하는 힘이자 필수불가결한 종착역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어떤 민족이 국가가 없으면 아메리칸 인디안의 운명처럼 ‘역사는 선사시대에 머물’지만, 국가를 세우고 나면 그 국가가 쇠락하여 사라지더라도 고유한 문명은 남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2천년동안 떠돌이 삶을 살아각면서도 고유 문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결속할 수 있는 국가라는 공동체적인 허구의 개념을 그토록 끈덕지게 대대손손 믿어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요소 중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그것은 2천년도 더 전에 그리스와 로마에서 싹튼 민주주의와 공화정은 먼 옛날의 일이었고, 오래전 몰락한 이후, 최초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부분 군주제였고 ‘서양 학문이 도입되기 전까지 중국인들은 군주제를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서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역시 무수히 많은 민주적 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직접 군주제라는 걸 시행한 적도 있었고, 로마의 법치와 같이 예치를 실행을 시도했으며, 갖가지 방안을 설계하여 군권과 민권을 함께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나, 번번히 실패했으며 ‘분권은 집권으로, 집권은 전제로, 전제는 독재로 변하면서, 진, 한, 수, 당, 송, 원, 명, 청으로 가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위기와 부패가 반복’되어 결국 서양 열강을 스승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민주적 권리로 맘껏 민주제를 풍자하면서도 아리스토파네스는 당연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테네의 겨우 2550제곱킬로미터의 국토에서 행해진 정치적 실천의 성공과 실패, 경험과 교훈이 어떤 씨앗과 원천이 되어 수천 년 뒤 하늘을 찌르는 거목과 도도한 강으로 변해서 “순응하는 자는 번창하고 거스르는 자는 멸망하는順之者昌逆之者亡” 세계사적 조류가 되리라는 것을.


제목은 역사책으로 되어 있지만, 이 시리즈의 책들은 엄청 지식이 많은 학자의 역사 비평 혹은 에세이집에 가까운데, 그럼에도 역사책인 이유는 엄청 딴얘기를 하는 것 같아도 금새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커다란 줄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공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속의 일부인 중국,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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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걸작선> 원저는 2003년에 출간되었고, 번역은 그 다음해인 2004에 한번 2014에 재출간된 것 같다. 작품과 작가의 선택 배열 편집 이 모든 것은 데이비드 하트웰과 캐서린 크래머 두 SF 작가이자 편집자의 작품이다. 원제가 <Years Best SF 8>으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매년 출간되는 작품집 중 8회째 작품집이 아닌가 싶은데, 아쉽게도 황금가지에서는 생뚱맞게 이 여덟번째의 책만 단권으로 출간하고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출간을 포기한 듯하다. 수많은 SF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장르의 특성상 허접 쓰레기가 많은 분야가 이 쟝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매니아가 아닌 독자들에게는 안목이 있는 전문가들이 엄선해서 내는 작품집들이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잘 안팔리니까 더는 안만들어 낸 거겠지만 이런 선집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날 처럼 과학이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시기에 오래된 SF는 (물론 그 때 쓰여졌으니까 그런가부다 하고 대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지만) 때때로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학적 상상이라는, 그래서 과학은 빠지고 환상만 남아버리는 시대착오적 텍스트가 될 때가 있다. 오늘의 SF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 해 쓰여진, 그러니까 바로 어제까지의 과학적 지식이 상상력과 결합된 최신의 과학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 감동이 오래 가는 명작은 새로운 세계가 반영된 것보다는 50~60년대의 오래된 소설을 더 쉽게 접한다. 오랜 기간동안 살아남은 검증된 클래식이라야만 한국말 독자들에게까지 와 닿기 쉽다.


2003년도 당해의 베스트 작품이므로 오늘이라고는 해도, 오늘이 아닌 15년 전의 소설들이므로 아르테미스나 마션 같은 최신 하드 SF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선정된 작가들의 면면과 SF의 흐름 같은 것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위키에 Year's Best SF로 치면 볼륨의 목록이 나오는데 1996년 1권을 시작으로 해서 2013년 18로 끝난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2013을 끝으로 폐간되었는지, 아니면 계속되고 있는데 정보가 없는건지, 그런데 2011년부터 3개는 그나마 링크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찾아보니, 18로 끝인 것 같고, 대신 이름이 비슷한 다른 시리즈가 있었다. Year's Best 까지는 똑같고 애뉴얼인 것도 같은데 SF 대신 Science Fiction 이 붙는다. 아무튼 이걸 찾으면서 부러운 게 뭐냐면, 밑에 리뷰들이 잔뜩 붙어 있는데, 뭐 어디어디 서점서 $0.99주고 사서 읽었다는 거다. 이게 애뉴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잡지 같은 개념이라 저가 상품으로 내놓은 건지, 도정제로 1만원 이하의 책은 손에 쥐어보기도 힘든데 도정제로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게 된 현실이 또다시 개탄스럽다. 이렇게 쉽게 싸게 서점에서 주어 들을 수 있으니 걔네들은 응? 아무데서나 책을 읽는 거 아니야. 읽다가 다읽으면 그냥 버리거나 누구 주거나 하는 값싼 종이의 가벼운 책들이지만,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컨텐츠가 가격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낸시 크레스  - <특허권 소송> 


여기 실린 단편 중 짧은 단편 하나를 소개한다. <특허권 소송>은 SF라고 할 만한 요소는 유전자를 독감 치료제에 이용했다는 사실 하나 뿐이고, 그냥 아주 평범한, 한국에서는 거의 크리쉐에 가깝도록 매일매일 자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내용이다. 


크리스피 기술이 퍼져가면 실제로 그것을 체세포의 유전자와 결합하여 산 사람의 유전자가 바뀌는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전체는 질병 치료에 이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례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직면한 바로 우리 세대의 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개인의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 자본의 힘에 무릎꿇는지의 아주 단순한 예를 보여준다. 


어떤 회사에서 유전자를 이용해서 최근 유행하는 얼바턴 감기 치료제를 헬리텍스를 개발했다는 보도자료로 시작된다. 이 기사를 본 한 미즈는 그 신약에 사용된 유전자가 자기의 유전자이므로 그 유전자가 제공된 경위를 설명하고, 이익 배분을 요구한다. 회사에서 부랴부랴 알아보니 그의 조직 샘플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무단으로 이용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이익배분을 할 생각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욱 바짝 약만 올리는 동시에 법의 헛점을 이용해 그를 골탕먹일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면역 샘플을 이용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독감치료제인 핼리텍스를 조사했어야 했는데, 헬리텍스 소비자 외에는 이 면역체제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획득했다고 주장하여 반대로 그를 감옥에 보내는 내용이다. 이로써 개발사는 개인 유전자 사용에 따른 지분 배분을 하는 대신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소송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내는데, 이후 미즈가 도둑으로 몰려 6개월형을 선고받은 이후 노이즈 효과가 떨어지자 다른 계략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작가 낸시 크레스는 네뷸러상 두번 휴고상 한 번 수상하고 기타 후보에는 10번 올랐다고 한다. 이런 게 무슨 도움이 될 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다른 방법으로는 작가를 설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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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 : 선조 이중톈 중국사 1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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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하늘에 서광이 비칠 때 아침별은 아직 남아 있고 달빛도 어슴푸레했다. 자신의 과업을 마치고 물러나면서 이브는 쏜살같이 날아가는 여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동양의 그 위대한 여신이 구름에 휩싸인 황토 언덕 위에 서서 사방에 빛을 뿌리며 포효하는 것을 확인했다.”


역사책이라고는 하지만, 눈에 잡히지 않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중국사에서는 맨 앞의 약 반쪽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사기에서는 단 몇줄, 혹은 몇 단어에 해당되는 내용을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엮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갑골과 금문 문자 이야기이다. 유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가 아니라, 성경을 포함한 전세계의 역사가 총동원되어, 중국인들의 창조신화 여와와 복희의 신화를 세계라는 전체 속에서 본다.


여와는 중국의 창조신으로 진흑으로 사람을 빚다가 빚다가 지쳐 나중에는 나뭇가지에 진흙을 묻혀 마구 흩뿌려 사람들을 창조해낸다. 평균 수명이 스무살도 되지 않던 네안데르탈인의 서른살도 넘지 못했던 베이징원인을 생각해보면, 오래 전 인간(혹은 인간 이전 단계의 어떤 생명체)의 수명은 매우 짧았으며, 따라서 생식능력은 신비한 힘이었고 여성 생식기가 숭배되었는데, 그것이 개구리와 물고기에 대한 토템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최초의 여와의 신화는 개구리라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최초의 모계적인 씨족사회를 다음과 같이 상상했다.


“남녀가 뒤섞여 놀고 중매나 약혼도 없었으며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알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섹스도 자유로웠고 선택권은 주로 여성에게 있었다. 여성은 심지어 원하기만 하면 동시에 여러 남자친구를 가질 수도 있었다. 여성의 유일한 ‘횡포’는 더 나은 섹스 상대의 선택이었지만 어쨌든 그것도 종족 보존이 목적이었으므로 탈락자에 대한 냉대나 소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물며 선택은 자유롭고 쌍방향적이었다. 강간도, 매음도, 감정적인 갈등도 없었다. 재산 분규도 없었다”


그러나 권력이 일단 탄생하자 관리는 통치로, 소유는 점유로, 안배는 사주로, 배치는 노역으로 바뀌고 감옥, 군대, 정부, 국가가 연이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계씨족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 모호한 의식 속에서 여성생식숭배만으로는 모자라고, 생명 창조에서 남성의 작용을 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일치해서 탄생한 것이 남성생식숭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상징으로서 뱀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와의 시대가 가고 복희의 시대가 오는데, 흥미로운 점은 신화에 등장하는 여와와 복희는 모두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라는 것이다.  여와가 상징하는 것은 모계씨족사회이고, 복희가 상징하는 것은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부계 씨족 사회다.


즉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역사는 하나라 이전의 역사를 여와-복희-염제-황제-요순이라는 기호로 해석하고 각기 모계씨족, 부계씨족, 초기부락, 후기부락, 부락연맹을 대표하는 인물로 규정하고 그 변천사를 추정한다. 중국 역사와 신화를 제대로 잘 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겠지만, 베스트셀러 작가 답게 아무것도 몰라도 홀리듯 읽을 수 있게 흥미로운 문체를 유지한다.


선사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보잘것 없는 한 줌의 유물과 현대인의 가치에 갇힌 제한된 상상력의 결합이다. 길고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선조들의 삶에 대해 말해주는 유물과 전승은 공기 중의 물방울 만큼이나 작다. 결국 우리가 선사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과 통찰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의 총합일 수밖에 없다. 신비로운 미지의 과거로 가는 빗장을 열어주는 열쇠 중 하나는 신화다. 신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역사를 재구성하는 관점도 무한대다.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과 신화가 기록되는 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 신화는 누구의 상상력에 의해서건, 혹은 어떤 사건에 의해서건, 그것이 발생한 순간의 이야기가 공간을 넓혀 말과 말로 세대와 세대를 넘어 시공을 퍼져 가며 더 그럴싸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그것이 기록되던 어느 순간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이중택은 신화를 “세계적 범위의 집단몽상”이라고 썼다. 민족끼리 자원을 공유하는 신화는 결국 이브라는 세계 최초의 여성에게 도달한다.


제목에서 풍기는 딱딱한 역사책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책을 이토록 흥미로운 추리와 가설로 된 확실하지 않은 시작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여와는 뱀이 아니라 개구리였다라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중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던 중국 신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최초 공동체가 모계사회였다고 공언한다. 신화와 유물, 그리고 한글 만큼 훌륭한 그들의 문자들이 결합해서 뜻을 이룬 과정 등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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