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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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한 15년 전쯤?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작가에게 매료되어 그의 모든 번역서를 찾아 읽었다. 대개 단편들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을 때 친정집 책 꽂이에 꽂혀있던 그의 장편을 보고 반가워 단숨에 읽었는데, 큰 감흥도 없는 몇시간만에 읽어버린 그냥 한 권의 소설일 뿐이었다. 어떤 작가의 뛰어난 대표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별로 없다. 어쩌면 내가 하루키를 좋아했던 알 수 없는 이유들,   어둡고 쓸쓸하지만 무심하고 순진한 그 염세적인 사유를 더 이상은 추종하지 않을 만큼 내가 변했을 수도, 그 깊은 우물의 세계를 더 이상은 공감하고 싶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제목도 모르는 몇시간 잘 읽고 기억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소설 이후 하루키는 그냥 한국의 소설 시장의 주류인 젊은 여성들의 지적 허영 욕구를 적당히 채워주는 돈 잘버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날 피폐해진 정신을 수습할 겸 책꽂이에 꽂혀있던 상실의 시대를 폈다. 때때로 우물 같은 그의  은유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녹초가 된 내 현실 속 피폐해진 마음에 이상하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야. 그의 책을 읽고 있는 중엔 그가 만들어 낸 인물과 비슷한 말투로 생각하고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쓰게 된다. 따라하게 되는 거다. 난 그런 종류의 여운이 좋다. 그런 여운은 강렬하지만 곧 사라지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작가의 책은 아껴서 아껴서 천천히 읽는다.

 

2013년 8월 베스트셀러 목록에 하루키의 소설이 떴다. 색채가 없는 어쩌구. 1q84는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으면서 피폐해진 마음 에 나만의 우물을 파고 그 여운을 되새김질 했던 이후 다시 일고 싶던 책이었다. 색채가 없는 을 읽으려면 전작을 몇개 더 읽어야 겠어서 시작했다. 연작은 잘 안 읽는 편이다. 3편이 끝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저걸 언제 다 읽나 하는 마음 반 또 그 만큼의 기대 반 으로 세권을 쌓아놓았다.

 

책 속의 주인공 사유에 빠지다 보면 줄거리를 잊어버린다. 비소설류를 빠르게 읽는 편인데 비해 소설류는 문장을 음미하는 편이라 3편까지 다 읽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고 일단 줄거리를 정리해보자.

 

아오마메는 전문 킬러이다. '노부인'에게 지령을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자연사처럼 처리한다. 그녀가 죽이는 사람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내를 괴롭혀온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어느날 그녀의 세계가 무언가 아구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가 알고 있는 시간 1984년의 어딘가가 묘하게 꼬여 그가 알지 못한 세계와 섞인 두개의 달을 가진 세계. 그녀는 그것을 1q84라고 명명했다. 스포츠 클럽에서 일하는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남편의 폭력으로 자살한 뒤 그를 죽인 경험과 한 돈많은 노인과의 인연으로 남자들을 죽이는 전문 킬러가 되었다. 그녀의 마음 속엔 열살 때의 첫사랑 덴고가  있다. 어릴 적 부모에 의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증인교인이 되어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격리되고 돌출된 행동으로 놀림을 받음과 동시에 외토리로 지내던 중 자신의 편이 되어준 덴고와의 작은 인연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벗어났지만 어릴때 받은 깊은 상처와 기억으로 그녀는 누구에게나 거리를 유지하고 클럽에서 픽업하는 대머리 중년들과의 원나잇 섹스에 성욕을 해결한다.

 

작가 지망생 덴고는 학원 선생으로 생업을 하며 한 출판사와 인연을 맺고 이런 저런 출판 관련일과 신인상 응모작품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연상의 유부녀가 섹스 파트너이다. 어느날 문학지 신인상 응모작들의 예심 알바를 하던 중 엉망의 문장으로된 수작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작품의 힘에 이끌려 그 작품의 문장을 고쳐 합작품을 본심에 내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품의 원저자 후카에리는 난독증에 본인이 직접 글조차 쓰기 어려운 소녀. 그 작품도 그녀의 말을 다른 사람이 받아 적어 낸 것이었다. 한편 그는 또래의 싱글 이성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고 연상의 섹스 파트너와 매주 한번씩 관계를 갖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성욕을 해결하는 동시에 번거로운 이성관계를 회피한다. 후카애리의 작품이 성공적으로 본심에서 우승하고 미소녀의 첫작품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녀를 7년동안 키우고 보살펴왔으며 그녀의 딸에게 애리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문예지에 응모하게 한 에비스노는 그 나름대로 그녀를 노출함으로써 그녀의 아버지, 한 때 좌익세력의 지도자였으며 시골 마을에서 농업공동체 코뮨을 만들어 세력을 유지하다가 일부 행동파 여명을 평화롭게 분리하고 다시 코뮨을 선구 라는 종교단체로 바꾸어 폐쇄적 집단으로 만든 배경에서 잠적한, 그녀의 아버지를 추적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결국 후카애리는 사라지고 언론과 경찰은 후카애리의 배경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을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이 소설의 장르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애리의 소설을 통해 언급되는 리틀 피플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지만 어릴적 상처를 지닌 두 주인공은 점차 어떤 사건에 휘말리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점점 확대된다. 어린 시설 두 주인공은 강제적인 부모의 학대로 인해 고립되고 방치된 채로 사회에 노출되었고 그 황폐한 세상 속에서 둘 사이에 생긴 공감과 따스함은 서로의 부재 속에서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비밀스럽게 간직된다. 3권 중 한 권을 다 읽었음에도 아직 전개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점점 흥미로워지고, 속도가 붙는다. 십여년이 흘렀지만, 하루키의 가슴 속엔 아직 결핍과 상실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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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 류노스케 스님의 평상심 수업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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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의 속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초월적 체험이 아닐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어쩌면 인류 역사와 함께 눈덩이처럼 뭉쳐 자라온 거대한 생각 덩어리에 불과할 지도 모를 종교가 때론 핍박 속에서, 때론 지배자의 사상적 논리로 이용되며 굳건히 인류 문화의 핵심적 행동 패턴으로 자리잡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증거할 수 없음 때문에 더욱 신비함 속에 휩싸인 어떤 초월적 체험 때문일 지도 모른다. 영적 체험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름으로 드러내면서 신앙의 확산에 또한 기여한다. 기도의 힘이 신체적 고통이나 질병으로부터의 완쾌를 주거나 명상으로 철학적 깨달음과 마음의 평온을 주는 것들 말이다.

일본의 류노스케 스님이 쓴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는 불교적 가른침을 통해 평상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영적 체험에 대해, 류노스케는 명상 중 "의식을 집중해서 계속 바라보면 긴장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지고 격한 기쁨이 치솟으며 온몸이 에너지로 가득한 느낌이 든다"고 적고 있다. 어쩌면 선택받은 자만이 아닌, 누구나 연습을 해서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닐까. 다른 명상 서적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일반인들에게 명상의 효능(?)에 대해 비슷한 설파를 하고 있으나, 단 1%의 가능성도 나에게선 없다고, 믿지 않았던 내게 조금은 가깝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이 자신과, 자신을 둘로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있는 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인 종교적 수행에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절이나 명상원을 찾아 가지 않아도 책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마음을 조절하기만 가진다면  비종교적 생리를 가진 사람도 대단하다고 알려진 그 초월적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게 될 것도 같다. 그런 초월적 경지가 주는 기쁨, 세라토닌이 가득한 상태라면 물질적 추구나 관계적 집착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와질 것, 육체적인 한계나 노화, 질병 같은 절망에도 차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속으로 의식을 들여보내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느새 아픈 느낌과 마음이 일체화 되어 편안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p.145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또한 특별한 목적없는 단순한 행동에 의식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걷기 명상이 있는데 이 때는 발바닥에 의식을 집중시킴으로써 불안한 기분이나 긴장을 완화 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운동도 되고 심적 평안도 찾고, 일석이조다.

이 책은 불교적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어려운 철학적 질문보다는 쉽게 명상적 실천과 마음가짐으로 불교적 수행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백팔번의 절을 하지 않아도 접근하는 생각만으로, 평정심을 갖고 자아에 집착하거나 뭔가를 추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메타자아로서 들이다 봄으로써 수행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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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전면개정판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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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마농의 원서가 출판된 지 대략 60년이 지났다. 이제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이다. 흑인 대통령. 이제 우리의 머리 속에, 미국인과 전세계인의 머리 속에 오바마는 그냥 미국의 대통령인가 미국의 흑인 대통령인가 자문해볼 차례다. 최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한 민족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민족적 정체성에 대의와 정의를 대입하던 우리는 갑작스레 조금 검고, 조금 더 강렬한 인상의, 찬란했던 고유 문화를 뒤로 한 채 비슷한 식민 역사를 가진,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정적으로는 경제적 오리지낼리티가 열세한 동남아인들과의 공존을 맞닥뜨렸다. 우리 나라 땅에서 살지만 언어가 서투르고 생김새가 다르다. 다름을 우열로 규정하던, 그리고 학교 교과서를  다민족 국가로 고쳐쓴 지 한참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다름을 우열로 규정하고 있는 편견에 가득한 우리. 우리들  메타포 속에는 스스로가 백인인가? 


그렇다면 백인이 우세하고 흑인이 열세하고 그밖의 많은 민족들이 각자가 정해놓은 편견의 틀 안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섞이어 있는 미국을 보는 시선 중 오바마 대통령은 무엇일까? 훌륭한 즉석 연설과 설득력, 카리스마, 외모까지 갖춘 미국 대통령에게 아직 찬사이던 비하이던 흑인이라는 머리표를 붙인다면 우리는 아직 자신의 문화적 기원을 말살하고 앤틸리스에서 식민모국으로 건너와 , 자신의 흑인성을 부정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학적 비판의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거다. 그것은 파농의 흑인에 대한 지적처럼  스스로를 백인화하고 백인 이외의 인종에 대한 자기 우월화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천천히 읽히는 책은 오래간만이다. 문장이 안매끄러워서가 아니라, 문장에서 뜻을 해석해 내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통치자, 과거 우리의 선교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검둥이를 숭배하거나 검둥이를 혐오하거나 사실 우리에겐 마찬가지로 역겹기 때문이다. " 


책의 들어가는 부분에서 있던 말이다. 같은 생각이다.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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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넘버 원! 세계일주
박유찬 지음 / 나무자전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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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염장질이다. 맹목적인 무모함마저도 용서되고 수용되는, 일년을 놀아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빛나는 청춘이 아니라면 꿈조차 꾸기 어려운 세계 여행. 학업, 경력, 스펙, 육아, 수도 없이 많은 종류 의무와 책임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일상에 매몰된 일반인들에겐, 단 7박 8일 짜리 단체 관광 마저 사치인 평범한 직장인들과 주부들에겐 이 책 염장질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오고 청춘은 간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미래를 누구의 희생이나 헌신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찰라처럼 지나가는 청춘의 한 가운데 어느 지점을 누구나 통과한다. 거기 서서 이처럼 나만의 브레이크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저만치 떠나 버린 청춘의 그림자만을 붙들고는 부러워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청춘 이후의 인생인 책임과 의무의 삶을 사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 그랬었지.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지. 내 나머지 인생을 걸고 무모하게 어디든 뛰어든 큰 전환기는 결혼 이외에는 없었지만 그것은 책임과 구속을 안정과 맞바꾼 일종의 은밀한 거래였으므로 제외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있었지. 졸업후부터 결혼전까지. 직장과 연애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만일 내가 원했다면 직장보다 연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으러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1년간 떠나려고 했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야 열악한 환경이지만 세계일주라는 꿈같은 계획을 만일 가졌다면 나도 그 짧은 자유와 체력과 경제력과 미래를 스스로 저울질할 수 있는 결정권과 모든 것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그 때에도 그러지 않았고, 되돌아 간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세계일주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과 꿈꾸던 꿈꾸지 않던 세게일주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고 후자이고, 대부분의 지구인들이 후자일 것이다. 

작년 여름 말레시아 쿠알라룸프르에 8박 9일간 여행을 했다. 널널한 일정으로 도심 구석 구석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다 걸어다니며 역사, 문화, 인종,종교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마데르카 광장 부근의 전철역에서 커다란 베낭을 짊어진 독일 말투의 여대생들이 KL센트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길을 묻는다. 이런 허당 베낭족 같으니라구. 내가 관광객 차림이었고 지도 한장을 열심히 들이다 보면서 다니는데도 나에게 묻는 것도 한심하지만 여태 베낭 메고 뭘 하고 다녔길래 쿠알라룸프르의 허브 KL 센트럴 가는 법을 숙지하지 못했던 건지. 졸지에 잘난척을 하며 5번 빨간색 라인을 타고 라왕 방면으로 가라고 오버 친절을 떨며 얘기해 준다. 그리곤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객에게 다른 여행객은 동질감을 준다. 비록 베낭을 멜 수 있는 청춘은 아니지만, 유스호스텔에서 아무하고나 섞여서 자고 친구를 만들고 함께 다니고 하는 개방성과 모험심은 가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도 그렇게 걷고, 길을 묻고, 지도를 보고, 찾고, 다른 여행자와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런 행위들을 통해 저멀리 달아나는 청춘의 끈 한가닥을 살짝 놓지 않고 버텼다고나 할까.

여행의 무엇을 즐기는가? 왜 여행을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여행을 계획하려면 왜 가는지, 보기 위해 간다면 무엇을 보고 싶은 건지, 그 시간과 돈과 노력과  바꾼 그동안에 추구하는 것인지를 대략 생각해야 한다. 대개 짧은 여행을 갈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에게 여행은 휴식과 체험(?)일 것이다. 그래서, 비용대비 좋은 호텔 좋은 구경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1년간의 여행이라면, 1년간의 다른 기회의 비용과 맞바꾸는 여행이라면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냥 막연히, 보고 싶다? 무엇을. 세계를? 노우. 세계라는 말은 추상명사다. 모든 걸 포함한다. 세계의 문화, 역사, 지리, 날씨, 음식, 예술, 그 모든 걸 다 보려면 내가 세계인의 숫자만큼 세계의 역사만큼 많아야 하고, 세계의 부를 다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무얼 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친구는 세계 각국의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서반어 등 외국어 공부를 미리미리 준비했고, 가고 싶은 도시와 지역을 꼼꼼하게 체크하여 루트를 정했고, 많은 문화를 체험을 접했다.

이 염장질의 책은 저자의 1년간의 세계 여행담이다. 세계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에게는 경험으로부터 듣는 도움말과 충고만큼 값진 게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더럽고 냄새나고 위험한 골목을 걷을 수 있는  용기, 안나푸르나를 올라갈 수 있는 체력, 여러나라 여행자와 여행을 통해 교감하고 사귈 수 있는 싱글 여행자의 마땅한 권리..

아아 청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청춘을 떠나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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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 -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
애덤 알터 지음, 최호영 옮김 / 알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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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혹은 자주, 은유는 은유가 아니라 진실 혹은 실제와 가깝다. 온도가 뜨겁다는 말을 사랑과 열정과 같은 격한 감정에 실어보낼 때 우리는 그 뜨거움이, 실제 감정의 뜨거움과 신체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격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몸에서는 열이 난다. 빨간색의 열정은 문학적 표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빨간색에 노출되면 몸에 변화가 생겨, 열정 호르몬이 상승된다. 뜨거운 사랑이 시가 아니라 과학이 되는 순간이다. 분홍색에 노출되면 힘이 빠지고 안정되며 빨간색과 검은색은 실제로 몸 속의 테스토스테론 홀몬을 증가시켜 흥분 상태에 가깝게 한다. 저자는 올림픽과 월드컵 경기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뛰는 경우, 우승을 하는 확률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왜 도핑 테스트에 운동복 색깔을 넣지 않는지 의아해 해야 될 정도로가 지적한다.

 

길거리의 게시판, 신문,  텔레비전 광고 등을 통해 수많은 상징에 노출되는 현대인들은 어떤 한 상징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의식의 밑바닥에서 은밀하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당하고 있다. 실험에 의하면 우연히 부정적인 상징을 봤던 학생들은 나중에 그 사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상징에 의해 채택된 인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우리 주변의 애플 로고는 그 로고가 미처 머리속에서 로고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화면속에서 언뜻 스쳤을 지라도 학생들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쳤고, 통찰에 대한 은유로 알고 있던 백열전구의 빠른 노출 역시 학생들의 통찰력을 증가시켰다. 쉽게 말해 애플 로고가 가진 창의적 상징이 그것에 직접 노출되지 않더라도,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무의식 속에서 실제로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가 예스 라고 말할 때 자신의 의지가 맞다면 당당히 노 할 수있는 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영혼없는 가르침을 이곳저곳 종교지도자나 공익광고 같은 쪼가리 캠페인을 통해 배운다. 그것은 이상적이나, 현실에서 그러면 왕따된다. 소신이라 생각하는 것은 똥고집일 수 있고 진리라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나의 근시안적 색맹의 눈으로 보는 착시 이미지일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남들 따라 하는 게 속 편할 때가 많다. 여럿이 함께 갈 때는 생각 없이 엉뚱한 곳으로 가더라도, 자신있게 가는 사람을 따라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은 길거리 신호등 빨간 불이 오랫동안 바뀌지 않을 때 종종 경험한다. 차가 지나다지지 않을 때 빨간불이 오래 켜져 있으면 누군가 건너기 시작해야 비로소 우루루 건넌다.

 

평소 개성과 독립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인들. A B C 세개의 선 중 왼쪽 그림과 같은 것을 찾으라고 했을때 너무나 빤한 답을 주위 사람 모두가 틀리게 말하면 30퍼센트가 이에  동조하여  자신들도 똑같이 틀린답을 대답한다.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이 동조성 효과가 극적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나서 일본인은 경마 50%라고 한다.  도덕과 관습도 다수의 행동방식에 따라 정해졌을 것이다. 한  끼 끼니를 때우더라도 파리 날리는 식당보다는 줄을 서더라도 북적거리는 곳을 들어가고,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다시 또 남들이 많이 입는 유행하는 옷을 사고, 내 의견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달르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다수의 견해에 대체로 맞서지 않는다. 애덤 알터는 학계에서 대체로 인정하는 근거라며 이러한 집단주의적인 생각이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보다 한,일,중 등의 동양적 사고 체계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이름은 사람의 나이, 성별, 시대, 인종 등을 반영하고 때때로 사회 경제적 지위까지 유추하게 한다. 도로시는 1920년대 가장 흔한 이름이었지만 지금 새로 태어나는 아기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은 없다. 반면 에바는 21세기 이전엔 거의 전무한 이름이었으나 최근 흔해진 이름이다. 인구조사에 따르면 에바는 대개 백인이고 페르난도는 라틴 아메리카계, 알리야는 흑인일 가능성이 높고 한발 더 나가 루시엔과 어데어는 부유한 백인인 경향이, 엔절, 미스티는 가난한 백인일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괴짜 경제학>의 저자 레빗과 더브너는 어머니의 교육 수준과 그 자녀의 이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는데, 예를 들어 리키나 바비의 어머니는 샌더나 기욤의 어머니보다 교육 수준이 낮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작명소에서 짓는 이름은 조부들이 짓는 이름에 비해 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세련된 이름이 많다. 그러고 보면 아예 길한 이름을 짓겠다고 생년월일 같은 것들을 작명소로 보내 그 이름이 한 인간의 운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믿든 안믿든 전문가의 손에 맡겨 버리는 풍습도 어찌보면 현명한 선택같다. 상업적인 작명소인 만큼, 이런 저런 나름대로의 이론이 있을 것이며, 불리우기 쉽고, 시대가 요구하는 이름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발음이 쉽고 백인 경향의 이름은 경력이 부족해도 입사시 서류전형에 합격할 확률이 50퍼센트가 높았고, 발음하기 유창한 이름을 가진 변호사가 승진할 확률도 높았던 이 예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가령 순자, 용자와 같이 일제시대풍의 이름을 21세기에 지어준다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패선 디자인 회사에 응시했다면 같은 조건의 서연과 같은 종류의 최신 경향의 이름에 서류 전형에 떨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쉬운 이름 성공 법칙은 회사 이름, 상장 코드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쉬운이름을 가진 회사의 주가가 어려운 이름의 회사에 비해 상장한 지 일주일 동안 평균 상승폭은 두배 이상 컸으며 주가코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하는 뜻밖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만들어진 생각, 만들어진 행동>의 원제는 Drunk Tank Pink이고 원부제는 번역서의 부제와 거의 비슷한데, 원제의 원뜻 drunk tank pink의 뜻을 나는 잘 모르겠다. Drunk tank는 주정뱅이 유치장? 세단어의 합성이 무엇을 말하는 지 누군가 설명해 주면 좋겠다. 부제는 책의 내용을 압축한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깊숙한 것들을 꺼내다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그들이 보여준 행동을 유의 깊게 관찰하고 해석한다. 

 

<상식밖의 경제학>과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로 잘 알려진 댄 애리얼리가 대표적인데, 말콤 글래드웰이 추천을 한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책에서도 이미 접한 비슷한 내용도 다수 포함한다. 이런 류의 책들이 재미 있는 이유는 실험자들을 마치 몰래 카메라처럼 특정 반응을 관찰할 목적으로 설계된 상황에  처하게 한 후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연구자들이 세운 가설에 따라 관찰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구실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은 몰래 카메라만큼 재미있으면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이 무엇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고 우리를 움직이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뻔하게 알고 있을 법한 내용도 많다. 예를 들면 체스를 둘 때 미인 앞에서 더욱 호전적인 수컷들, 사람 눈 사진을 크게 붙여놓은 무인 커피 판매 시스템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는 것, 종교적 상징 앞에서 조금 더 양심적이 되는 것 등이다. 많은 내용을 담다 보니, 실험과 해석에 있어 신뢰 수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일일히 짚어주다간 자칫 딱딱한 논문이 되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일부러 쉽게 풀어쓰고 학술적 기반지식이 필요한 부분도 모두 생략한 듯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라 해서 전편을 다 읽은 말콤 글래드웰과 댄 애리얼리와 비슷한 내용들이 많아 굳이 비교를 하자면, 말콤 글래드웰은 어떤 일관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소스에서 가져와 스토리를 서로 엮음으로서,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흥미진진함을 주는 데 비해, 애덤 알터는 실험실의 내용을 훨씬 다양하고 많은 사례들로 한데 엮었다. 정보가 더 많은데. 그 만큼 깊이는 조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댄 애리얼리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끝이 없이 변형된 실험을 하면서 조금씩 가설을 증명하고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비해 알터의 주제는 조금 더 넓고,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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