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건강 서적이 많이 나와 있는데 나의 불만은 이거다. 우선 첫째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게 나쁘다 자게 나쁘다 하는 종류의 대중서들에는 근거 없는 낭설이나 일화를 바탕으로 과장된 차료법을 소개하눈 경우가 많다. 이런 책들은 그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책들도 많고 의사한테 가서 책에 그렇게 써 있던데요?하고 말하면 혼나고 오기 일수다. 그렇지 않고 좀 더 상세한 내용이 나온 책은 전문적 내용이 많아 못알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신뢰가 간다.

소화관이라는 게 우리가 하루 종일 먹고 싸는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가까이 의식하는 입에서부터 시작해서 항문까지의 모든 통로로 볼 때 단지 장이라는 건 대장 소장 위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먹을 게 입에 들어가면 침샘에서 분비되는 침과 혀의 작용부터 소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고 당연히 편도와 식도 위로 이어지는 소화의 전과정이 꼼꼼하게 설명된다. 침이 고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침이 혓바닥에서 나오는가 입천장에서 나오는가 궁금했었는데 찾아볼 생각을 못했었다. 혓바닥 밑에 아랫 송곳니 뒤쪽 두 곳과 어금니 근처 양 볼의 안쪽 사이드 양쪽 이렇게 네 개의 구멍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늘 침이 고이는 게 입전체에서 땀처럼 나오는 게 아니라 샘물처럼 어떤 구멍에서 조금씩 분비되는 것이었다니 신기하다. 편도에는 공기와 음식을 통해 그리고 이빨 사이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 세균들에 맞서 면역 세포가 활발히 싸우는 관문이라고 한다. 조금만 피곤해도 목이 붓고 아픈 이유가 바로 편도의 지나친 면역 기능 때문인 것 같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환절기잉 수록 양치를 자주하라는 건강 가이드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편도에서 전쟁을 하느라 과도하게 작용하게 되면 목에 염증이 생기고 기침 재채기 비염등의 중상으로 나타나는 거 같다.만성 염증에 시달리게 되면 면역 세포가 쉴 틈이 없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면역 세포에 좋지 않다. 네 살, 일곱 살 혹은 쉰 살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편도를 제거하는 것은 과민한 면역 체계에도 이롭다. 편도 제거는 찬반양론이 있지만 면역 잣업은 혀뿌리돌기와 인두에서도 진다.

그 밖에도 입안에서의 일은 ‘침구멍이 뮤신 그물을 발사해 치아를 보호하고 진통제를 분비함으로써 과민한 통증을 막아준다. 발데이어 편도고리가 낯선 입자들을 검문하고 면역 세포 병사에게 방어훈련을 시킨다. 이 모든 일이 다 낯선 입자들이 목을 타고 우리의 내부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체 구조와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실딜작 정조를 얻는 것이 유용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게 하니까. 뿐만 아니라 알아두면 편한 정보도 많다 가령 식도는 위의 오른쪽 꼭지와 연결되므로 가스가 차는데 가 위의 오른쪽 꼭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위에 찬 가스가 옆으로 난 구멍을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땐 마중물을 넣듯 먼저 약간의 공기를 삼키면 식도 구멍이 가스 근처로 살짝 밀리며 ‘꺼억’ 소리와 함께 가스가 밖으로 올라온다. 누워서 트림을 할때는 왼쪽으로 누우면 더 수월하다고. 또한 식도는 구불구불하게 힘줄을 통해 척추와 연결되어 있다. 꼿꼿하게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면 식도가 세로로 늘어난다. 그러면 식도가 좁아져 위아래 구멍을 쉽게 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과식을생겼는데 똑바로 앉으면 식도가 좁아지며 길게 펴지기 때문에 과식 후 신물이 올라오면 구부정하게 앉는 것보다 똑바로 앉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겠다.

위는 한쪽이 다른 쪽보다 월등히 길어서 휘어진 모양인데 물과 고형음식의 통로가 다르다. 물은 위의 오른쪽 좁은 면을 지나 소장으로 통하는 문에 빠르게 도달하는 반면, 음식물은 위의 왼쪽 넓은 면으로 떨어짐으로써 잘게 쪼개야 하는 것과 빨리 내보내도 되는 것을 노련하게 분리한다.


대장과 소장에서 흡수된 모든 수확물은 혈액을 따라 간으로 운송되고 거기서 검사를 받은 후 대순환계로 전달되는데 이 순환과정을 따르지 않는 놈이 있으니 바로 지방이다. 지방은 간을 거치지 않도 림프관을 통해 바로 심장으로 간단다. 왜 심장병 예방으로 나쁜 기름을 조심하라고 마르고 닳도록 얘기들을 해대는지 이제야 알겠다.대장 끄트머리에 있는 직장의 혈관 역시 해독 작용을 하는 간을 통하지 않고 곧장 대순환계로 간다. 그래서 좌약은 먹는 약보다 약 성분이 아주 적지만 대신 빠르게 효력을 낼 수 있다. 먹는 약은 약 성분이 높게 조제되는데, 약 성분이 효력을 낼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간이 많은 부분을 해독해버리기 때문이다. 간을 보호하려면 해열제로 좌약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거 같다.


장 파트에서는 장의 운동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의 역할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박테리아 부분은 지난 번에 읽은 책 《10퍼센트 인간》과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서 본 내용이지만 훨씬 간결하고 귀엽고 재밌게 소개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복습하는 의미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은 풀렸다. 영양표를 살펴보면 쌀이나 곡류에도 단백질이 포험되어 있지만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한두가지 특정 아미노산이 부족하기 때문니라 여러 곡류을 골고루 먹으면 해결된다고 한다. 잡곡밥이 왜 좋은지 문제도 해결된 듯 싶가 ( 아래 밑줄 인용문 참조). 과일이 좋다 나쁘다 말들이 많은데 과당은 좋을 게 없는 듯하다. 독일인응 기준으로 한 책이라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지 모르겠지만 과당이 너무 많이 섭취되면 장으로 보내지고 거기 사는 나쁜 박테리아가 먹는데 과당이라는 게 이미 다 쪼개진 분자라 소화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다가 불내증까지 있으면 먹은 게 다 대장으로 가서 불편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세라토닌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트립토판은 소화될 때 과당을 끌어안기 때문에(잘 이해는 안가지만 아무튼)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트립토판이 부족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래는 모두 밑줄)


살모넬라는 열에 약하다. 75도에서 10분만 끓여도 살모넬라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잘 익혀 먹는 닭고기가 아니라 냉동 닭을 해동시킨 싱크대에서 씻은 채소가 불행을 낳는다.


알레르기의 기원
소장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지 않으면 단백질은 알갱이 형태로 남는데, ... 분해되지 못한 알갱이가 지방 방울에 갇혀 림프관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주의력 깊은 면역 세포에게 발각된다. 면역 세포는, 예를 들어 땅콩 알갱이를 림프액에서 발견하면, 당연히 이 낯선 존재를 공격한다.


#매력적인 장여핼


우리 몸에 맞는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장 세포가 생산한다. 세로토닌은 힘들게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의 짐을 가볍게 덜어주며, 중요한 신호분자로서 일한다. 그런 신호분자 생산에 변화가 있으면, 뇌에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갑자기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이럴 땐 장만 치료를 받으면 된다. 어쩌면 머리는 아무 잘못이 없을 것이다!

식물성 단백질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적기 때문에 종종 ‘불완전 단백질’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떤 식물성 단백질에는 (단백질로 합성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필수 아미노산이 겨우 한 가지만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 한 가지 아미노산을 제외한 나머지 아미노산 분자들은 그냥 소변으로 배출되거나 어찌어찌하여 재활용된다. 콩에는 메티오닌methionine 아미노산이 부족하고, 쌀과 밀(그래서 밀 고기에도)에는 라이신lysine이 부족하고, 옥수수에는 심지어 동시에 두 가지, 라이신과 트립토판tryptophane이 부족하다!.. 콩에는 메티오닌이 부족하지만 그 대신 라이신이 아주 많다. 밀가루로 만든 토르티야에 맛있는 콩으로 속을 채우면 우리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 계란과 치즈를 먹는 세미채식주의라면 불완전 단백질을 넉넉히 보완할 수 있다. 콩과 쌀, 치즈와 스파게티, 참깨 소와 빵, 토스트와 땅콩버터 등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수백 년째 불완전 단백질이 보완되도록 식사를 해왔다. 꼭 한 끼 식사에서 보완하지 않아도 된다.

-알라딘 eBook <매력적인 장腸 여행 : 제2의 뇌, 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기울리아 엔더스 저) 중에서

상처가 났을 때는 이런 메커니즘이 도움이 된다. 염증이 박테리아들을 쓸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테리아들이 장 점막에 머무는 한 그들이 가진 신호물질은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점막에 머물지 않는 나쁜 박테리아가 있을 때, 그리고 기름진 음식물을 많이 먹었을 때는 너무 많은 신호물질이 피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몸은 신호를 받고 가벼운 염증 모드에 돌입한다...

박테리아의 신호물질이 간이나 지방 조직에 머물며 이곳에 지방이 쌓이도록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박테리아 염증 신호물질이 갑상선에도 효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갑상선의 일을 방해하여 갑상선호르몬 생산에 지장을 주고, 그 결과 지방 연소가 더 느려진다...

심한 염증은 몸을 쇠약하게 하고 마르게 하지만 무증상 염증은 뚱뚱하게 만든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박테리아만 무증상 염증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호르몬 불균형, 에스트로겐 과다, 비타민D 결핍, 글루텐 함량이 높은 음식물도 무증상 염증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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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다 전업작가로 직업을 바꾸고《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썼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관과 작가로서의 가치관을 자본론의 관점에서 가볍게 꺼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사실 작가가 이 챡에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월급받을 때보다 경재적으로는 훨씬 못미치지만 대신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위햐서만 쓰고 있으미 행복하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재미있는 일화라고 써놓은 세부 사정은 실제로 전업 작가로서 먹고 살기가 얼마나 팍팍한 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비에는 소유형 소비와 체험형 소비가 있다고 한다. 엥겔 지수가 빈부의 차이를 말해준다는 것도 옛말, 우리는 좋은 식당과 맛있는 맛집들을 찾아 다니며 풍요롭게 먹는 미식가들에게 엥겔지수로 빈부를 측정할 수 없다. 저자 역시 할부로 해외 여행 가고 호텔에서 파는 빙수 먹으러 가서 강제적 발렛 파킹비를 생각한다. 서점에서 인기 없는 사회과학 서적을 쓰고 있지만 그동안 원숭이자본론을 비롯해서 여러 책들이 서점에서 네임 밸류를 얻고 방송과 강의 등을 활동으로 많이 알려져 꽤 이름 있는 저자임에도 수입이 충분치 않은 것을 보면 전업 작가로서 가족을 꾸리고 생활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알려지고 책도 꾸준히 내야 할 것 같다.

가벼운 내용이긴 하지만 원숭이자본론에서 자세히 썼겠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그의 고유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대략 어떤 책인 지 알고 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경희대에서 마르크스 자본론 관련 2학점짜리 교양 강좌를 맡도 있는데 신입생이 국정원에 신고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니 헌법으로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명시된 대한민국에서 자본론을 국가 전복적 공산주의와 연결시켜 노동과 인권을 탄압했던 구시대의 유물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크게 재활했던 듯 싶다.

5.18이 국가 전복을 꾀하는 불온 세력의 폭력적 사태라고 믿어졌던 예를 보면 국민 대다수가 누군가의 의도로 특정한 관점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국민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나는 그게 국가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임승수는 이 책에서 남이 보여주는 의도에 맞춰 사리를 판단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없고 사실상 정신적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민주화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 국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시선으로 세계를 보도록 유도한다고 생각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주어진 특정한 ‘관점’을 잣대로 삼아 사물·현상·사건을 가치판단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가장 한 가운데 있는 관점이 바로 돈이다.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길거리 요요 공연을 하는 학생들이 수상을 했는데 상금을 얼마 받았느냐로 공연의 가치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다. 자본론을 이야기 하면서 화폐로 환산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예컨대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다. 되레 적지 않은 화폐가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그 시간을 기꺼이 감내한다. 오히려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그 시간을 통해 행복과 보람, 감동을 느낀다. ‘

저자가 말하는 행복한 시간이란 돈과 바꾸지 않은 시간이다. 취업난과 취업난의 공포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 어떻게 다가올 지 의문스럽지만 막상 회사라는 조직은 자본론에 의하면 회사에서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에서 ‘착취‘한 만큼의 이윤으로 기업이 굴러가고 자본주의가 풍요로와지는 것이므로 노동 시간은 내가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고용주에게 팔아버린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몰랐던 세계에서 일을 배우고 시스템이 돌아가는 동작 과정을 이해하고 어떤 일의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데서 누리는 행복은 없나? 사실 이런 이야기는 빠져 있다. 본인이 적성에 안맞는 과를 가고 적성에 안맞는 일을 하다가 글쓰는 전업작가로 전환을 했을 뿐인데 이것이 자본이 주가 되는 사회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한 불행한 인간에서 자기 주도적 작가로서의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전환한 전형적 예로 잘못 일반화할 수 없다.

전업 작가가 되면 작가로서의 경험이 글의 소재나 소재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로서 명성을 가졌던 그러지 못했든 상관없이 작가가 아닌 일보다는 작가로서 더 적성에 맞을 것이고 그것은 반대로 작가가 아닌 일은 작가 일보다 더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것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며 작가가 책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흔히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로서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는 있었지만) 책의 의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행복한불량품입니다


아내가 자기 자식 돌봐주고 밥그릇 닦아주면 마누라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내가 가사도우미로 남의 자식 봐주고 남의 밥그릇 닦아주면 마누라가 일한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차이를 만드는 기준은 ‘돈’이다. 아내가 자기 자식 봐주면 돈이 생기지 않지만, 남의 집 가사도우미를 하면 돈이 생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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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9-01-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인문사회 관련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땅의 우리는 좋든 싫든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 탓에 갖가지 병폐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의 정점에 선 전업작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될 시간이었습니다

CREBBP 2019-01-23 12:00   좋아요 0 | URL
책을 내는 작가들이 흔히 자신의 선택을 독자들에게 예시하는 경우 독자들이 알아서 잘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자본주의의 병폐가 많지만그걸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건 어렵겠지요

2019-01-22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1-23 12:04   좋아요 0 | URL
제가 잘 전달을 못한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소질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거지 일반 독자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막 회사 그만두고 들어앉아 글쓰는 건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는 취지로 쓴 단락이었습니다. ^^
 



SF나 판타지 소설은 휴고, 네뷸러, 로커스 수상작(혹은 수상후보작)이라는 명함을 달지 않고는 국내에서 번역되기 힘들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한 때의 대중적 성공을 기반으로 아무리 허접한 작품을 내놔도 잘나가는 작가가 득세하는 이상한 시장에서, 저자의 명성만으로 작품을 선택하기엔 신뢰가 떨어진다.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수상작이라는 권위를 빌려 이 작품을 소개한다면 앞서 말한, 휴고 네뷸러, 로커스 수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SF계의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이 세개의 상을 그 해에 모두 석권했으니, 그 해에 장편을 낸 다른 작품들은 지못미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작가의 명성과 심사자들의 타입이 상이한 여러 작품상을 동시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굿리즈나 아마존 평에 별점 테러가 많다.  별점 테러에 대한 반박 댓글도 엄청 많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재미가 쥐뿔도 없고 말도 안되는 설정이다 라는 게 별점 테러리스트들의  이유이고, 반박 댓글러가 하는 말은 그건 멍청해서 이해를 못하는 너님의 뇌용량을 탓해야지 왜 책을 탓하냐, 니가 휴고 수상작을 이렇게 폄하할 권리가 있는거냐 라는 거다. 나는 양쪽 입장 다 이해가 갔다.  


책의 호불호는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초딩의 지식을 가지고 애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입장에서 별1도 아깝다. 그렇다고 내가 초딩보다 더 나은 과학적 지식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아는 것만 연결시켜도 충분히 새롭고 멋졌다는 인상이다. 우주 과학 박사이면서 미래학자로서 이미 많은 현상들의 예측한 바 있는 지식으로 무장한 데이비드 브린이 소설 속에 끼워넣은 먼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이해할 과학적 기반이 상식으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정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황당하게도, 맨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독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돌고래 우주인(?)이다. 스트리커호라는 거대한 우주선이 물로 가득찬 어떤 행성 키스럽에 불시착해 있는데, 이들에게 닥친 어려움이 단지 망가진 우주선 뿐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돌고래 150명, 인간 일곱 명, 침팬지 한 명이 스트리커호의 탑승 인원이다. 지구생명체를 위협하는 외계인들이 이  행성 위쪽에서 서로 이 지구인들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주선의 안쪽에서는 유전자 변형 돌고래 우주인들과 몇몇의 인간, 그리고 침팬치들이 위기를 헤처나가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선장은 돌고래고 돌고래 선장은 돌고래 선원들과 돌고래 연구원들을 총지휘한다.

그럼 몇 안되는 인간과 한 마리 아니 한 명의 인격을 갖춘 침팬지는 무엇일까? 침팬지는 이 우주선에서 가장 저명한 연구원이고 인간들은 돌고래와 침팬지를 감독하는 한 레벨 위의 생명체로 돌고래의 주인종족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명체의 기능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이 미래 사회에 지능과 인격을 지닌 사피엔스들은 다른 동물 종들을 보호족으로 선택하여 유전자조작으로 인격과 지능 자아 영혼 기타 등등의 인간과 유사한 정신적 활동을 가능하게 개조하고 그들을 자신의 보호종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시키는 대가로 그들에게 봉사받는다  이 봉사의 기간은 은하계 표준으로는 몇만년간이다. 그동안 인격체가 된 이 새로운 종들은 자신의 종들을 번영시키고 자신의 마더종족들을 섬긴다. 인간이 자기들의 후손 종족으로 선택한 종이 침팬지와 돌고래인데 침팬지는 이미 인간과 융화해서 같은 환경에서 서로 구분 없이 잘 살고 있고 돌고래는 아직도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는 종족이다.

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애초에 돌고래가 우주에 가게 되었을까. 그들의 유전자 조작 기술과 인공 신체 기술은 매우 발달해서 이런 것 쯤 일도 아니지만 읽는 내내 이건 좀 무리수로 읽히는 부분이다, 아무리 유전자조작을 한들 물리적 생김새가 다른데 어떻게 물속에서 사는 돌고래가 우주선을 조작해서 우주로 나가고, 게다가 망가진 선체를 수리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한쪽 구석에서 내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돌고래를 개량해서 인간이 가진 지능을 심어주기까지 했는데 그깟 팔과 손 쯤 기계로 얼마든지 작동 가능하게 설정했고 (이해는 잘 가지 않지만) 인간과 상호 의사 교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정교하게 갖추어 놓았다. 가령 우주선은 거대한 물탱크로 되어 있지만 인간과 돌고래 모두가 모여 의사 소통하는 언어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인간 역시 물 속에서 공기에서만큼 자유롭게 활동하고 얘기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이들에게 닥친 문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스트리트호가 키스럽 행성에 꼻아박혀 망가졌다는 거다. 다행히도 키스럽 행성은 주로 물행성이면서  금속이 도처에 자라고 있어서 자연에서 금속을 채집하고 제련까지(물속에서?) 하는 듯하고 어떻게든 우주선을 수선해서 귀환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두번째는 스트리크호가 키스럽 행성이 불시착하기 전 은하에서 엄청난 규모의 고대 우주 선단을 발견했는데 여기에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은하계의 모든 호전적인 종족들이 이들이 선단에서 발견한 정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이 지구 생명체들을 차지하기 위해 불꽃을 튀기며 대기권 밖에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주선 내의 반란이다. 이 일은 둘째 문제와도 관계가 있는데 선장이 내린 결정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선장과 일부 돌고래들이 고대 선단에서 가져온 정보를 외계인들에게 주어버리고 대신 안전 귀환을 약속받겠다는 생각으로 선장을 해치고 우주선의 지휘권을 강탈하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선장의 계획은 무엇이기에 이런 어려운 시기에 반란까지 생기는 걸까. 우주선을 수리하는 와중에 탐험대는 외계동족들 중 지구인에 우호적인 종족의 거대한 우주선이 침몰해 있는 걸 발견했는데 이 우주선에 스트리커호를 숨기고 위장을 해서 빠져나가자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인간 선원의 자발적 희생적 유인작전이 관여하고 우주에서 여러 종족들이 전투를 벌이는 급박한 사정을 틈틈이 보여준다. 

발달된 문명을 가진 은하인들에게 지구인은 미개인이나 다름없다.  지능을 가진 다른 모든 은하 종족인들은 문명을 이룰 그 지능을 스스로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시조 종족으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의 사피엔스적 지능은 자연발생적으로 진화에 의해 생겨나는 게 아니라 문명 종족이 생물체를 선택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그들을 지능화 문명화 시켜 노예처럼 이용하고 계약이 끝난 하위 종족은 덕립하여 문명을 이루고 자신도 다른 생물체를 문명화시키는 방식으로 우주 종족들의 문명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최초의 문명을 이룬, 인간으로 축소하면 아담과 이브 같은 시조 종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오래 전에 멸종했지만 종교적으로 전 은하계 종족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대상이다. 그런데 시조 종족과는 상관없이 나홀로 진화해서 보호종족까지 거느리고 있는 ‘미개한’ 지구인들이 고대 유령 선단에서 가져한 유물이 이 시조 종족과 관련이 있기에 모든 은하인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되어 있던 것이다.

(이후 주요 반전 스포)
책을 읽는 재미는 고유한 모양과 특성을 가진 다채로운 생물체들이 주인 종족의 필요에 의해 유전적으로 개량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돌이켜보게 한 점, 이들이 불시착한 키스럽이라는 행성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적 생명체와 이들을 다루는 인간적 시점과 외계의 시점 돌고래와 인간의 교류에서 착안한 지적 진화에서 생기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성적 끌림 등 아주 많은 자잘한 요소들이다. 물 속에서 발견한 이상한 식물들과 금속섬이라고 불리우는 지표의 이상한 특성이 알고 보니 광물 채집에 이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유전자 조작되어 고통받는 한 지적 생명체의 후손이더라는 것과 같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 역시 곳곳에 숨어 있다.

#스타타이드라이징 #데이비드브린


"키스럽의 생물체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칼슘이 아니라 다른 금속들이었다. 생물체가 모든 금속을 빨아들이는 생체 필터 역할을 해 바닷물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사방에 금속과 금속 산화물이 온갖 다채로운 색으로 빛났다. 등뼈가 번쩍이는 물고기며 은빛 씨주머니가 달린 해초 따위의 모든 생물체가 다른 행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엽상체의 녹색과는 너무도 다른 색을 띠었다.

토시오는 계기판을 통해 순수한 주석 덩어리와 크롬 성분의 물고기 알 한 무더기, 여러 가지 순도의 청동으로 된 산호군을 발견했지만."

"5백년에 불과한 유전자 개량 작업으로 인류가 1백만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모든 것을 돌고래에게 줄 수는 없었다. 신돌고래들은 여전히 소리와 몸짓으로 감정 대부분을 표현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돌고래를 보며 늘 뭔가 재미있어 싱글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지만(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이제 돌고래들은 다른 표정도 지을 수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까지도. 토시오가 볼 때, 지금 히카히의 표정은 돌고래가 근심을 나타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표정 같았다."

옛 지구에는 몇 세기 전 〈무서운 아이들〉 소동이 일어났던 곳을 구경하기 위해 은하 여행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인류가 주인 종족의 보호 없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공공연하게 내기를 걸곤 했다.

물론 모든 종족에게는 주인 종족이 있었다. 우주를 여행하는 다른 종족의 도움 없이 우주여행 기술을 습득한 종족은 전무했다. 침팬지와 돌고래도 인간으로부터 우주여행 기술을 배웠다. 신비에 싸인 최초의 종족인 시조들 이래, 말을 하고 우주선을 조종하는 종족이라면 모두 다른 선배 종족의 도움으로 그 정도의 문명에 도달했다. 또한 그 오랜 기간 동안 계속 존속해 온 종족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시조들이 꽃피운 문명은 모두 도서관에 담겨 계속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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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는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인데, 즉 그동안 벌려놓은 수많은 갈등 해결과 결말이 개연성을 가지고 주인공들에 의해 직접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난데없이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이 해결한다는 냉소적 의미로 해석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가장 먼저 쓰였는데, 여전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십여년 전 쯤 진중권이 심형래의 디워를 까다 까다 언급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대 액션물들 대다수는 위기를 모면하는 효과로 부분적으로라도 데우스엑스 마키나를 활용하지 않고는 존재 기반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싶다.) 무슨 영화 평에 수천년 전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언급하나 싶어 원본을 찾아보니 이렇다.

“사건의 해결은 플롯(이야기) 그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나, 또는 일리아스에서 (희랍군의) 출항에 관련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장치에 의존해서는 안됨이 명백하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454b[1]). “


또한, 희극시인 안티파네스 역시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작품을 총체적으로 구성할 능력이 없는 시인들의 궁여지책에 불과하다.[2]고 했다.

브레히트도 냉소적인 면에 있어서는 진중권 삘이 나는 당대의 예술가가 아니였을 듯 싶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비교불가능한 큰 차이가 있다. 진중권은 말(비평)만 하고 예술을 하지는 않지만, 브레히트는 직접 창작활동 자체로서 시대와 예술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직접 사용하므로서 그것의 사용 의도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지목되어 그의 모든 저술의 출판이 금지당했었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망명해야 했던 다수의 좌파 작가 중 하나였을 뿐인데 말이다.

원래는 영국의 극작가 존 게이John Gay의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를 개작한 것인데, 몇 번의 개작을 통해 탄생한 「서푼짜리 오페라」는 인물 간의 관계와 극의 진행의 세부 사항은 거지 오페라와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오페라가 아닌 〈음악과 노래가 있는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창작되었다. 즉, 이야기의 전체 스토리는 존 게이, 극 중 음악의 가사는 자작시와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비용(Francois Villon)의 시, 그리고 음악은 클래식 오페라 작곡가가 아닌 실용 음악가 쿠르트 바일의 음악 이런 것들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소설도 아니고, 일반 연극 대본도 아니고, 더욱이 음악이 있는 연극의 대본인데, 이 책의 독자는 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본을 읽는다. 연출과 연극 배우와 무대와 조명과 그리고 음악 이 모든 것의 효과가 내는 극적인 분위기를 전적으로 상상력에만 의지해야 하므로, 실제 극이 올랐을 때 느끼는 감동을 비슷하게 느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특히 시에 붙인 음악이 주는 효과는 텍스트에만 익숙한 독자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다.

다행히도, 독일에서 상영된 듯 보이는 제법 큰 규모의 연극 녹화 동영상과 1930년대 만들어진 영화 동영상을 찾아서, 그토록 궁금했던 가사의 음들과 노래 실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음악과 연결되니 작품을 이해하고 느끼는 폭이 훨씬 풍부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오페라와도 형식이 조금 다르고, 연극과도 조금 다른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에서도 브레히트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습과 전통을 깨고 낯선 것들을 시도한다. 작가 해설에 의하면 그 중 하나가 노래의 역할이다. 기존 연극에서 노래는 인물의 개성을 강화하고, 심리적 정황을 묘사하고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기여한다면,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새로운 극의 형태를 서사극이라고 했던 모양)의 기능은 극적 사건을 중단하고 정황을 설명하거나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후렴구와 민중시 같은 사실적이고도 풍자적 묘사의 가사는 짧은 극중 대사들이 담을 수 없는 당대의 상황과 모순, 갈등을 설명한다.

대사집 만으로도 전체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고, 딱딱하다는 독일인에 대한 편견이 불식될 수 있을 만큼 풍자적인 내용이다.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거지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 피첨 부부와 그의 딸 폴리, 런던에서 가장 잔인한 갱스터의 두목 맥, 런던에서 가장 엄격하고 무섭다는 경시청장 브라운, 그의 딸 루시, 피첨 부부에게 고용된 거지들, 맥에게 고용된 갱스터들, 창녀들이 등장하는 액션 코미디,  로맨스를 두루 갖춘 극이다. 맥과 폴리 루시의 삼각관계, 피첨과 거지 사이의 약탈관계, 범죄자 맥과 경시청장 브라운의 결탁 관계에 창녀와 기둥서방 사이의 약탈과 폭력과 순애보까지 깨알같이 표현하는 이 새로운 (실용)음악 연극이 당대에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노래에 의하면 강도, 강간, 살인을 서슴지 않은 맥은 창녀들은 물론이고 지체높은 ‘아가씨’로 묘사되는 폴리와 루시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본인이 감옥에 갇혀도 그를 두고 경쟁할만큼 경쟁력있는 남성일 뿐만 아니라, 브라운 경장 역시 그의 투옥을 마음아파 하고 헌신적(?)으로 그를 돕는다. 하지만 창녀들의 배신으로 두 번째 감옥에 들어가게 되자, 더는 사형 집행을 미룰 수 없게 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가 얼마나 악인인지 알기에 뭐 주인공이긴 하지만 공개 처형되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브레히트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연극은 현실과 다르기에 연극이지 않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 때 등장하는 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난데 없이 개입한 신은 다름아닌 여왕이다. 여왕의 메신저는 맥의 처형을 중단시키고 뜻하지 않은 귀족 작위까지 받게 된다.  얼마나 기교적이고 날카로운 조롱인가.

현실에서 사회적인 불공정함이나 부당함을 해결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러니 현실과 같은 극을 만들다 보면, 불공정함과 부당함에 무게를 실어 스토리를 진행시켜 봤자, 결국 우리가 사는 삶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를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는 건 현실에 없다. 마술적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가능한 그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극과 소설 속일 때 뿐이란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브레히트는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현실의 삶에서 말을 타고 오는 구원자는 없다. 가난한 이가 구원되는 일도 없다.

지 않겠어!


[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1998.  [2]에서 재인용

[2] 필록테테스 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준석, 서양고전학연구 26, 2006.12, 41-55 (15 pages)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것을 나누는 것, 왜 아니겠어?    
모두들 선하면 하느님 나라가 멀지 않으리.    
누군들 하느님의 광명 속에 살고 싶지 않겠어?    
선한 인간이 되는 것?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별에서    
식량은 빠듯하고 인간은 야비하지.    
누군들 평화 속에 조화롭게 살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 그렇질 않아.    

폴리와 피첨 부인  유감이지만 그 말이 맞아요.    
세상은 가난하고, 사람들은 악해요.    
피첨  유감스럽게도 내 말이 맞지.    
세상은 가난하고, 사람들은 악해.    
누군들 지상에서 파라다이스를 꿈꾸지 않겠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 그걸 허락하나?    
아니, 상황은 그걸 허락하지 않아.    
너를 몹시 걱정하던 네 형제.    
고기가 부족해지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성실하게 사는 것,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너를 걱정하던 네 부인    
네 사랑이 충분하지 않으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감사하며 사는 것.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너를 걱정하던 네 아이    
노년에 빵이 부족해지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인간적인 것.
누가 그러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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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장면이 머리속에 맴돈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해서 찾아서 대충 봤는데, 오래된 영화인데도 소설에서 풍기는 황폐한 분위기를 나름 잘 표현했고, 연기도 괜찮았다.

아랫동네 윗동네라는 말이 계속 나와서 업타운 다운타운 같은 걸 그렇게 번역한 건가 했다. 핵전쟁 같은 걸로 황폐화된 도시에 남자들이 사람이랑 텔레파시 형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개랑 어울려 살고 있고, 일부는 지하에 세계를 만들어 살고 있다. 소년은 글도 못읽고 역사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쟁이인데 반대로 개는 소년에게 글도 가르쳐줄 만큼  똑똑하고 지혜롭다.  소년은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활동을 개에게 의지하고, 소년은 개를 먹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윗동네에서는 전쟁때 여자들을 다 죽여버려서 여자가 거의 없고, 여자와 섹스하고 싶은 욕구는 간혹 눈에 띄는 여성을 강간하여 채운다.

종말론적 세계 속의 허구 속에서 여성은 성적 욕망의 분출구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한 존재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게 다루기에 읽으면서 굉장히 읽을 때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포스트아포칼립스라고 하더라도, 생존자들은 나름대로 먹고살 궁리를 하기에 폐허 위에 남겨진 것들을 사고 팔며 상업적 이익을 받는 무리들이 있는데 주인공 소년은 혼자서 개랑 같이 지낸다. 어느 교활한 패거리들이 남아있는 포르노 필름들을 접수하고 이어 붙여 영화 상영을 하는데, 생존자들은 개랑 같이 와서 영화를 보며 자위를 하는게 일상이다. 어휴. 어두 컴컴한 곳에서 개와 남자들이 한꺼번에 그러고 있는 장면이란걸 상상하다니 그렇게 필름 속의 여성을 상대로 단체 자위를 하던 어느날 그 영화관에서 소년의 개가 ‘여자 냄새‘를 맡는다. 그들(개와 소년)은 아랫동네에서 올라온 호기심 많은 여자가 남장을 하고 성욕을 달래러 영화관에 온것으로 추측한다.

남자들만 있는 세계에서 여자가 한 명 나타나면 모두가 다같이 달려들기 때문에, 여자의 안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쟁탈전 때문에 나머지들을 경계하며 개의 코를 이용하여 여자를 추적하는데, 여자가 예전에 학교였던 건물의 체육관의 일부 남아있는 건물에서 남장옷을 벗고 원래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소년은 이제껏 강간할 때 경험했던 종류의 느낌과는 다른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여성이라면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대상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소년의 눈에 이 여성의 여성스러움이 이제껏 살아남기 위해 가지고 있던 폭력성과 방어성을 허무는 순간이다. 이 때 느끼는 낯선 감정에서 독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러브 스토리로 발전하길 기대하지만, 그리고 조금은 그렇게 흘러가지만, 문명이 파괴된 현장에 사랑이 남아있을 리 있을까. 없을까. 여자 냄새를 자기 개만 맡으라는 법은 없고, 성욕에 환장한 짐승같은 무리들에게 포위되어 두 사람과 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에 처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간하려던 소녀와 강간이 아닌 섹스를 하는데, 알고 보니 소녀는 다른 목적이 있다.

개와의 교감, 소녀와의 사랑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소년, 지역사회의 역할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소녀. 자신의 주인의 잘못된(?) 선택을 주시하며 항상 살아남을 수 있도록 리드하며 충성을 바치는 개.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둘 사이를 가르는 게 있다. 소녀는 아랫동네에서 남자 사냥을 하러 올라온 미끼였고, 소녀를 따라 아랫동네로 내려간 그는 이제껏 자신이 저질렀던 성적 쾌락을 남자 자손을 생산하기 의무로서 봉사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 아기를 낳지 못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섹스 맘껏 하고 여자랑 같이 자고 하면 안되나? 노예로 싫컷 섹스하느니, 섹스없는 자유를 선택할까.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마지막 장면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너무나도 끔찍하고 섬뜩한 결론을 암시한다. 폭력적이고 섬뜩한 장면을 연출하는 소년이 소년이기에 짠하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제프리는 다섯살>은 늙지 않고 계속 다섯살 상태로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고 <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는 짧고 인상적인 소설이긴 했는데, 규칙적인 세상을 사는 인간에 대한 비약이 너무 심해 재미가 덜했는데, 영어로 가장 많이 읽히는 컨텐츠 10개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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