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나온 곤충극장은 희곡 모음집이다. 애석하게도 카렐 차페크(체코,1890~1938) 의 대표작 R.U.R(로썸의 만능 로봇, 국내에 로봇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음)는 없다.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발원지이다. 노벨상 후보로도 올랐으나 정치적인 색채 때문에 보류되었고 정치적 색채가 없는 두루뭉실한 단 한 건의 글을 쓰면 그 책을 지명하여 노벨상을 주겠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제안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역자는 진짜인지 확실치 않은 소문을 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극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소설 동화 등 다양한 세계에 몸담았던 한 작가의 이상과 작품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곤충극장은 의인화한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가의 눈을 통해 곤충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본질을 노출한다. 상징은 모호하지 않으며 직접적이다. 무대에서 본다면 연출의 변주로 더욱 재미있고 유머있게 텍스트보다 훨씬 재미있게 올릴수 있을 것같다. 정치적 목적을 갖는다면 현학적이거나 심오한 대사로 졸려 빠진 극이 될 수 있었겠지만 해학적이어서 실제 무대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여러 곤충들의 서식 환경과 외형을 무대장치와 의상 등으로 다채롭게 연출할 수 있어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연극이 되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 아마추어 무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극이라고도 하고 현대까지 많은 나라에서 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1막에는 매혹적인 나비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프롤로그에는 짝짓기의 계절에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조심스레 채집하여 손상 없이 박제하며 생명을 영원히 보존한다고 말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죽여아 영원해지는 아이러니라니. 여행자는 나비들의 세계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짝짓기 철에 나비들이 서로를 유혹하고 구애하고 옭아매고 배신하고 도망간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는 교미를 위한 서곡이다. 암컷은 체취로 수컷을 유혹하고 수컷은 암컷을 쫓고 다시 암컷은 도망가고 구애하는 수컷을 옭아매고 수컷이 쓰러지면 새롭고 더 튼실한 짝을 찾아 다시 체취로 수컷을 희롱하고 사랑의 행각은 이렇게 현란하게 짝을 바꿔가며 계속된다. 

영혼을 다해 이리스에게 시를 지어 바치던 펠리스는 이리스가 곧 자신의 시에 싫증을 내고 빅토르와 함께 날아가 버리자 이번에는 오타카르와 함께 날아온 클리티에에게로 열정의 대상을 바꾸고 그들 셋은 팰리스의 시를 조롱이라도 하듯 운율 맞추기 놀이를 하는데 그러다가 클리티에는 함께 온 오타카르를 쫓아버리고는 아직 굼벵이에서 변신한지 얼마 안 돼 사랑을 잘 모르는 펠리스와 놀아난다. 조금 후 깔깔거리며 돌아온 이리스는 빅토르가 순식간에 새에게 잡아먹힌 놀러운 소식을 재밌어하며 전하면서 동시에 클라리스를 놀리듯 너의 오타카르가 자신과 짝짓기를 했다고 요란을 떤다. 하지만 이내 이리스의 웃음은 울음으로 바뀐다. 짝짓기를 한 이리스는 알을 품게 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의 몸매는 엉망이 될 것이며 이 짜릿한 유혹의 파티는 이제 끝났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행자는 이렇게 나비들의 세계에서 살롱에 모여 얄팍하게 시를 논하며 달콤한 전율과 불화와 욕구 불만에 가득찬 청춘의 유혹을 보며 지옥으로 향한 그들의 세계를 저주하며 인간은 나비들의 찰라적 즐거움보다는 훨씬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자가 보는 다른곤충들의 모습에서 역시 인간의 본질이 없지 않다. 2막에서는 쇠똥을 굴리며 등장하는 쇠똥구리 부부와 그 똥뭉치를 훔치는 제3자 쇠똥구리를 통해 물질 만능의 인간의 모습을 희화화한다.

인간에게는 한낮 더럽고 냄새나고 쓸모없는 똥덩어리. 쇠똥구리에게는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최고의 가치다. 이렇게 소중하게 굴려온 소똥덩어리 하나로 금슬 좋아보이던 쇠똥구리 부부 사이는 깨어지고 여행자는 도둑놈에 살인자 누명까지 쓴다. 이 때 번데기 한마리가 극중 내내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우주적 사건으로 예고하고 동시에 귀뚜라미 부부가 임신한 귀뚜라미 부인과 함께 등장하여 찌르레기가 살던 곳에 안식처를 삼고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등과 함께 행복하게 살 날을 기대하며 행복해한다. 먼저 살던 찌르레기는 등에 창이 꽂힌채 살해되었는데 결국 찌르레기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며 기뻐하는 모습, 커튼을 사다 달고 태어날 아기들에게 흔들어줄 딸랑이를 흔드는 부부의 행복한 모습은 소시민의 모습으로 비친다.  

그들의 아늑한 저택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곳인가. 하지만 곧 이 매정한 생태계에서는 찌르레기건 귀뚜라미건 자신의 적을 노리는 적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귀뚜라미 부부의 짧은 행복은 그 행복을 안겨다 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최후를 맞는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맵시벌로, 그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자신의 딸인 유충을 위해 곤충들에게 침을 꽂아 죽이고는 유충의 먹이로 갖다 준다. 쌓이고 쌓인 먹이를 두고도 계속 다른 곤충을 사냥중인 맵시벌의 유충은 다시 또 배고픈 기생충에게 희생당하고. 하루 살이는 영원을 찬양하며 빙굴빙굴 돌고 그토록 2박 내내 자신의 탈피를 예고했던 번데기는 드디어 하루살이로 새탄생을 맞아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날자 마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3막은 직접적인 전체주의에 대한 비유와 풍자로 개미들의 전투를 묘사한다. 장님 개미는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부루고 모든 일개미들은 구령에 맞춰 일을 한다. 그러다가 두 개의 나뭇잎 사이에 난 길, 인간이 보기에 한 뼘이나 될까 하는 길을 두고 영토 분쟁이 일어나 흰개미들과 전투가 벌어진다. 처절한 전투 장면과 계속되는 병사 모집, 패배와 퇴각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는 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며,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음을 강조하며 전투는 계속된다. 카렐 차페크가 반 나치 정치색을 강하게 비판했던 부분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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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파이크는 터키의 작가로 서구의 어느 영향도 받지 않은 독보적인 자신의 스타일로 많은 단편을 썼고 현대 터키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한다. 처음 두 단편은 상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계속해서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 이후의 소설들은 재미있어서 한개씩 야금 야금 읽다가 한 20여개의 단편을 읽었다. 도시 빈민들의 일상을 소재로한 짦막한 스토리들로, 20세기 초중반의 터키라는 생소한 환경에서 하찮고 보잘것 것 없고 가난한 민초들의 순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읽은 곳까지 20여개 단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다수의 소설이 매우 짧은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충분한 이야기 삶의 변곡점들이 담겨있고, 짐꾼이나 농부 공장노동자 웨이터에서 실업자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 사건이 발생하고 서사가 만들어지는 와중에도 딱히 악인은 등장하지도 맡은 역할도 없으며 대개 좀도둑마저도 선량하고 어리숙하게 다루어지는 점을 떠올릴 수 있다. 

첫 소설 <해변의 거울>은 읽은 소설 중 조금 예외적이다. 가난하고 위악적인 소년과 아들 앞에서 매춘을 하며 돈울 뜯어내던 소년의 엄마가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달리 읽기에 불편했던 건 어쩔 수 없었든 싶다. 알고 보면 소설이 불편 그러한 삶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불편한 거겠지만. 이 첫 소설 <해변의 거울>은 중기에 해당하는 소설이어서 실험적인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나머지는 초기작이어서 보다 이야기거리가 풍성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짦막한 소설 두 개만 소개해 본다.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이고 조금 더 따뜻한 것도 조금 더 슬픈 것도 있다. 그 분윅기와 정서라는 것이 흔히 읽을 수 있는 서구의 것이 아니라 터키 고유의 것이라 할 수 있을 정겹고 푸근하다. 20세기 초중반이라 전쟁과 세계 대공항의 여파로 모두들 힘겹게 살아가고 있르므로 지금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

‘나의 침대는 전차를 기다렸던 순간들의 그 익숙한 상태를 이제는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침대였다. 그 안에 잠잘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를 강제로 닫기 전에 밤을 보낼 수 있는 몇 개의 집이 간절하게 필요한 이스탄불의 겨울이 때로 얼마나 길고, 끝없는 재앙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마지막 문장은 흠..해당 단편을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찰떡같이 입에 붙는 번역이 아니라서 아쉽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려면 내용을 조금 알아야 한다. 소설은 자정이 지난 얼음장같은 한파 속에서 시간 전차를 기다리는 풍경으로 시작된다.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너무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각자를 기다리고 있는 따스한 집과 아늑한 침대 생각이 간절하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 무리가 지나가는 걸 혹시 못봤느냐고 묻는다. 그같은 사람들이란 무엇일까? 잠시 의아하지만, 그것이 행색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전차 속에서 밖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비슷한 사람을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그와 비슷한 사람은 추운 겨울 외투도 모자도 부츠도 없이 허름한 옷을 걸친 궁핍해 보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짐꾼이나 하인 같은 일을 하는 값싼 일용직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로, 숙소 비용을 절약하려고 여러 카페 구석에서 약간의 돈을 내고 잠을 자는데 경찰이 불법이라며 쫓아냈다는 것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연합을 해서 주지사라도 만나 딱한 사정을 얘기하려고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딴전을 팔다가 그 일행을 놓쳤다는 것이다. 말을 마치고 그는 사라졌고 전철을 탄 화자는 전차 밖으로 걸어가는 그들을 묵도한다. 

방금 만난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의 무리들 말이다. 추운 겨울 돌아갈 침대가 있지 않은 사람들. 하찮은 일을 하며 겨우 먹고 살만큼의 푼돈만 손에 쥐지만 어렵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힘겼게 일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변변한 외투도 없이 부츠도 방한 모자도 장갑도 없이 문닫은 카페의 한쪽 구석에서 쪽잠을 자다가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부드럽고 달콤한 아나톨리아 말투를 쓰던 사람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주지사를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면 다시 푼돈을 내고 카페 한구석에서 한파 속위 하루밤를 지낼 수 있을 걸 기대하는 순박하고 헐벗은 한무리가 주지사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투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 소설은 한편의 긴 시다. '닭장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골의 한 가난한 선생은 이웃 사람들에게 떠밀려 마을의 또 다른 가난한 여인인 파디메와 결혼을 한다. 아내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그는 아내가 동반자로 여겨지지 않고 자신에게는 아내 대신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내에게는 아내의 염소를 먹이는 목동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스름 무렵 그림 같은 목가적 풍경 속 나뭇잎 사이로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아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잎사귀들을 헤치며 다가갔다. 휘스레브는 파디메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철학자처럼 ‘열일곱 살의 남자아이가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의 손을 손을 잡는다면 서른다섯 살 먹은, 여자아이의 남편이라도 놀랄 일은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

아내의 나이가 남편 나이의 거의 두 배라는 사실은 이 대목에서야 알려준다. 그가 아내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입맞춤도 하는 사이임에도 뭐 아이를 가져야될 이유가 굳이 있느냐는 둥 동반자로 생각되지 않았다는 하는 말을 전하는 화자의 심리가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자신이 너무 늙은 거다. 열일곱의 소녀에게 서른 일곱살의 남자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손을 잡고 있음에도 화자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철학자처럼 놀랄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더욱이 목동과 아내에게 잘 있었냐고 말을 걸고 숫양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하지만 ‘웬일인지 가슴에 멍이 든 느낌’이고 ‘속도 거북’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파람을 불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아내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방 안으로 들어와 헤나로 물들인 손을 비비며 “저녁밥 준비되었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소심한 질투는 자신은 입맛이 전혀 없으니 너 먼저 먹으라고 하는 말이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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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러시아어 문법 - 입문부터 중급까지 문법 완전 정복! GO! 독학 시리즈
최수진 지음, Kaplan Tamara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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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쯤 러시아에 여행가려고 듀오링고로 러시아어를 몇 달 공부한 적이 있다. 문법은 전혀 손도 대지 않고, 단어 맞추기 게임식으로 조금씩 간단한 문장에서 조금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앱 덕분에 암기가 저절로 되니 즐겁게 몇마디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때 공부해둔 러시아어 알파벳을 그동안 모두 잊어버렸다. 사실 러시아어를 공부한 이유는 문자 자체가 너무 달라서 휴대폰에 입력하는 방법조차도 없으므로, 여행시 말도 못하는데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면 완전 장님 신세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러시아 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불어 러시아 언어도 몇년 동안 고스란히 까먹었다. 얼마전 부산에 갔다가 러시아 거리에 있는 간판을 읽으려니 도통 더듬더듬 거려도 발음할 수가 없어서 전에 공부했던 것만이라도 다시 떠올려볼 생각으로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러시아어는 영어와 참으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찌보면 입문이 쉬워보이기까지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격변화가 엄청 많고 성도 많고 해서 같은 단어가 요리조리 굉장히 많이 변한다.  영어에 있는 여러가지 보조동사들이 모두 하나의 단어 내에서 격변화로 뜻을 완성시키는 듯하다.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러시아어를 조금 공부하다 보면 결국 문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진전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러시아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 책은 간단한 문법 책으로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나에게는 잘 안맞는 것 같다. 


제목에 입문에서 중급까지라고 되어 있지만, 입문은 어디까지나, 문법 입문을 말하는 것이지, 러시아어 입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알파벳은 다 알고 있어야 하고, 간단한 회화 정도도 공부해서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준이 되어야 문법 책을 읽을 수 있다. 영어도 그렇지 않은가, 뜻을 모두 풀이해놓고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러는 문법책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문장 읽는 것도 버벅거리고, 뜻도 거의 다 찾아봐야 되는 상태다 보니, 이 책으로 문법을 습득하는 데는 여러모로 고충이 있다. 


예로 든 문장들은 간단하고, 해석문이 다 나와있지만, 나의 작은 바람은 그걸 제대로 읽는 mp3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mp3와 동영상을 제공한다고 책표지에는 나와 있지만,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제공되는 5분짜리이고, 시원스쿨 홈피에서는 강의를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을 뿐 이 책이랑은 크게 관계가 없다. EBS를 비롯해 많은 어문 책들이 본문 내용 중 원어 예제들을 mp3로 공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법인 경우는 그게 해당되지 않는 건지 이 책만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전에 공부하다가 부딪힌 부분 중 가장 문법적 지식이 필요해진 게 격의 개념이었는데, 가령 (듀오링고에서) 한글로 제시하는 문장을 러시아어로 바꾸면 틀렸다는 답이 나왔을 때 왜 틀렸는지 알아보면 대부분 격이 틀렸다는 거였는데, 거기서 막혀서 진도가 안나갔다. 격이라는 건 명사 형용사 대명사 등이 문장 내 쓰임에 따라 바뀌는 형태로 우리가 조사를 사용해서 문장 성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단어의 어미가 자유자재로 바뀌면서 문장의 구조를 완성한다. 이런 격이 러시아어에서 6개가 있는데, 주격, 소유격 까지는 영어에서 봐 와서 익숙하지만 나머지는 용어마저도 생소하다. 특히 여격이 어려운데 한글ㄹ는 ~에게로 번역된다. 그 밖에도 대격(을/를) 조격(~로서), 전치격 등 다 합해서 6개가 있고, 대개의 단어들은 이 6개의 형태변화와 성구분, 복수/단수형 등이 있고 함께 사용하는 전치사도 단어에 따라 다르다. 내가 이런 골치아픈 언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애초에는 글자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문법에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러시아는 북한 때문에 사방 그 어느 나라도 땅으로 닿지 못하는 우리나가와 가까이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부산 가면 러시아 사람들이 엄청 많고, 식당도 많다. 지리적 위치를 생각해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러시아와의 문화적 교류나 영향 같은 것을 서로 안받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과 가까운 곳은 러시아로서는 아주 굉장히 변방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정리하면, 이 책은 어느 정도 글자를 읽을 줄 알고 기초적 단어도 뜻을 웬만큼은 알고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완전 초보 입문을 원한다면 알파벳과 회화 및 왕초보 탈출 같은 책으로 먼저 공부해야 할 듯하다. 나는 듀오링고로 컴백해서 좀 더 복습하고 다시 공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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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CC 2019 무작정 따라하기 무작정 따라하기 컴퓨터
문수민 외 지음 / 길벗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두 유형일 것이다. 하나는 기존 일러스트레이터 사용자로 개념과 용어, 사용법에 익숙하지만 CC 2019 버전의 새로운 기능에 관심이 있는 경우고, 또 하나는 일러스트의 CC 2019 버전이든 아니면 그 이전의 오래된 버전이든 관계없이 기초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능을 습득해서 사용할 줄 알게 되고 싶은 경우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일러스트레이터를 직접 다루지 못하면  .ai로 받은 파일을 아주 하찮은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디자이너에게 수정 요청을 해야 한다. 번거롭고, 지루한 작업이다. 


여러 이유로 CC 버전 대신 CS 버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CC는 매달 몇만원씩 구독하는 형태로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고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는 몇년 전부터 이렇게 요금제 형태로 바뀌었다. 몇만원 수준이어서, 필요할 때면 한달 이용료를 내고 사용할 수 있다. CS버전은 일시불로 제품을 영구 소유하는 형태로 알고 있는데, CS6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기존 버전을 깔고 CC2019 책을 참조하고자 할 때는 새로 추가된 기능과 원래 있던 기능의 차이 때문에 아 이거 왜 안돼 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각 기능별로 지원되는 버전을 표시해주고 있다. 무슨 암보험 약관도 아니고 지면을 너무 아끼느라 한구석에 아주 코딱지만한 글씨로 쓰여있어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아무튼 있다. 먼저 확인해보고, CS 버전이 깔려있는 경우 과감히 포기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이드 북에 해당하는 책들을 일부러 하나씩 찾아가면서 읽어보게 되지 않는데, 내 오랜 경험으로는 대개 책의 설명이 알아먹기 어려워서였고, 대부분의 경우 아주 기초적인 사항은 대략 이런 저런 경로로 익힐 수 있고 어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하는 경우에 맘먹고 장만한 책들 먼지 털고 뒤져보면  찾기 어렵고 오히려 인터넷 질문 게시판 같은 곳에서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이 경험이 진짜 오래된 경험인데, 오랜 만에 이 책을 펼쳐보고는 와 요즘 정말 이런 IT 가이드 책 잘 만든다 라는 감탄이었다. 우선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제공되는 CD(가 아니라 다운로드) 만으로도 1시간 내로 헬로 일러스트레이터~ 하고 안면을 틀 수 있다. 


 챕터별 에제를 도와주는 템플렛 형태의 파일은 물론 책을 보며 따라해야 하지만, 연습문제 해답으로 제시되는 동영상 파일들이 각 챕터별로 두 개씩 제공되는데, 천천히 실행하는 화면과 설명 말풍선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냥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대략 기초적인 걸 알 수가 있다. 그림판만 가지고 주물럭 거리다가, 이거 복잡한 걸 붙들고 이거 저거 해보려니 막막했었는데, 잠시 동영상만 쭈루룩 돌려보고 나니까 자신감이 붙어, 처음부터 진도를 나갔는데, 워낙 툴이 좋아 나름 근사한 그림들을 마구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가 홈페이지 디자인까지 하겠는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두고 조금씩만 해볼 생각이었는데, 워낙에 이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이란 거가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쉽게 쓰라고 만들어진 상업용 소프트웨어의 사용방법이란 게 사실 예전처럼 어떤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기능들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에, 실례가 가장 중요하다. 백날 어떤 메뉴가 무엇이고 어떤 기능은 종류가 어떤 게 있고 이런 걸 잘 안다고 해도 결국에는 이 디지털 일러스트를 가장 멋지게 빠르고 쉽게 그려내는 사람이 승자다. 당연히 예술적 감각이 첫번째 요구사항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특정 작업을 위해 가장 적절한 기능을 불러 쓸 수 있는 숙련도가 좌우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으로 많은 종류의 예제를 가지고 다양한 기능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측면에서 쓸모가 많다. 가령 몇 개의 예를 가지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는 것과 매 기능마다 다른 종류의 샘플을 다른 종류의 기능을 다른 방법으로 호출하여 만들어 보는 것이 초보자들에게도 그대로 경험으로 녹아나게 되는 것이다.


숏컷을 많이 소개하는데, 당연히 숏컷은 연관된 메뉴 커맨드의 철자와 밀접하게 관련되지 않은 경우 아마추어들이 기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메뉴 찾아, 툴 키 찾아 화면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보다는 해당 작업에 자주 쓰게 되는 숏컷은 그 때 그 때 빠르게 찾을 수 있으면 좋은데, 아래 그림처럼 보기 좋게 키보드 모양으로 프린트 해서 제공한다. 이정도의 정성이라면 다른 부분도 신뢰할 수 있다.



내 경우 CS6 그것도 한글판이 깔려 있어서, 사실 본문에서 소개하는 내용과 다이얼로그 화면이라든가 메뉴의 위치라든가 꽤 여러 부분이 달랐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공되지 않는 기능은 바로 스킵할 수 있었지만 뭘 찾아 누르라는데 그게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CC2019라고 책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CS 한글 버전이랑 호환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는 없는 일이라, 인터넷에서 찾아가보며 해당 내용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또 번역판에서 쓰는 용어와 영어 메뉴 사이의 차이 때문에 헷갈리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 역시 어림짐작하거나 인터넷 신세를 지어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CC2019가 한글화가 아직 안된 상태에서 책이 먼저 나왔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책의 구성은 전 메뉴를 하나씩 따라해가며 제시된 그림을 완성된 그림의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과, 해당 기능에서 제공하는 모든 옵션에 대한 설명 두 파트로 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기능 설명을 일일히 읽어볼 필요 없이 따라하기로 먼저 이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기능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간 다음, 상세한 옵션 설명을 통해 응용해갈 수 있다.

정리하면, CC2019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를 생전 처음 써보는 사람은 제공하는 컴퓨터 파일 중 동영상 파일을 먼저 보며 따라한다. 매우 쉽고 단순하고 보면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따라하기를 처음부터 해나가면 전체 기능에 대한 조감을 완성할 수 있다. 몇번 기초적인 기능을 써봤다고 할 지라도, 처음부터 제공되는 파일로 연습을 하면 다양한 기능을 습득할 수 있다. 프로페셔널한 유저라 할지라도 오래된 버전에 익숙하여ㅠ 자신이 쓰는 기능만 주로 쓰는 경우 이 책이 유용하다. 기능별로 개념적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세부적 옵션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Reference book으로도 손색이 없다.





(메모)

패턴 브러쉬의 정의와 사용

1.오브젝트를 선택한 후, 견본 패널에 먼저 등록한다. 

2.샘플 아이콘이 작으므로 이름을 잘 매치시켜 등록한다. 

3.샘플 창을 띄워 놓은 후 오브젝트를 드래그 해서 등록한다. 

4.이름은 더블 클릭해서 저장한다. 

5.패턴 브러쉬 창을 띄워놓고, 패턴을 등록한다. 

6.패턴 브러쉬 옵션 대화상자에서 시작 타일과 끝 타일을 견본에서 등록한 오브젝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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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물레 환상문학전집 33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심연의 해파리가 되어 바닷속을 떠다니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실제로 남자가 약에 취해 해롱거리며 보는 환상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전체 내용인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구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 어슐러 르 귄은 장자의 사상에 심취하여 번역을 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지는데, 아이러닉하게도 환타지를 연상시키는 하늘의 물레 라는 이 제목 역시 르 귄이 장자의  ‘경상초편에서 언급된 천균(天均)’을 오역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장자가 언급한 천균이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울러 한 가지로 본다는 뜻으로 만물이 고른 상태를 말하고 또한 이 말이 쓰였을 당시 물레라는 것은 있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이 사실은 영국의 한 과학사학자 조셉 니던이 르귄에게 편지로 알려주었으며, 심각한 오역이었다고 르귄 스스로 밝혔다. 편지에는 ‘멋진 번역이지만, 틀렸소’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 멋진 오류는 이렇게 쓰여졌다. 전체가 소제목 없이 1장부터  11장까지 나뉘어져 있는데 매 장 시작에는 장자가 인용된다. 3장 서두에 인용된 내용은 이렇다.


하늘이 돕는 자를 우리는 천자(天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한다.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려 한다. 사리를 따질 수 없는 것을 따지려 한다. 이해될 수 없는 것에서 이해를 멈추는 것이 지극한 앎이다.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의 물레 위에서 파괴될 것이다.      — 「장자」, 23편


오래전부터 꿈의 신비함을 믿어 온 인간은 간밤에 꾼 꿈으로 어떤 일의 징조를 찾곤 했다. 어릴 때 할머니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차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또한 안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어쩐지 어제 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라고도 했다. 이렇게, 꿈이 현실을 반영하는 이유는 무의식 속에 내재된 현실 속의 불안이 꿈으로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 설명은 거기까지다. 꿈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들을 추측하거나 꿰어 맞춰 꿈을 해몽할 뿐이다. 이 소설은 여기서 출발하지만 크게 더 나아간다.


불길한 꿈을 꾸어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상태란 과거를 통해 만들어지므로 다시 말하면 과거 자체를 바꾼다.


오르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이모가 가슴을 드러낸 잠옷을 입고 자신을 유혹하는 느낌을 받고 분개하는데, 이후에도 이모가 자신의 침실에서 어슬렁거려 어렵게 쫓아 내고 잠든 후 이모가 차사고로 죽는 꿈을 꾼다. 꿈에서 이모가 죽은 후 일어나 보니 이모가 6년 전에 차사고로 죽은 걸 알게 된다. 이후 자신의 꿈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꿈을 꾸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료 카드를 이용하여 마약을 복용하게 되고, 당국에 적발되어 강제 상담 치료를 받게 된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하버 박사는, 그의 꿈이 현실을 바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꿈을 조정하여 세계를 바꾸려고 한다. 오르가 꿈을 거부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꿈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바라는 것과 달리 하버 박사는 그의 꿈을 조정하면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이상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실행한다. 그의 꿈을 통해 세계는 바뀌어가고 하버 박사는 점점 더 과학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하지만, 오르는 자신이 하버의 치료를 거부하면 범죄자 신세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버 박사의 치료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르는 변호사 르라샤에게 치료 과정 상의 개인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를 참관할 것을 요청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비밀을 세 사람이 공유하게 되고 세계는 겉으로는 더 나아지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상상도 못할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높은 인구밀도로 도시 빈민으로 득실거렸던 도시는 한 번의 꿈으로 백만의 회색빛 방사능 도시에서 십만의 전원적 도시로 바뀐다. 꿈 이전의 세계와 꿈 이후의 세계가 중첩되며 눈녹듯 스르륵 변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다. 도시 인구가 쾌적한 상태로 바뀐 이면에는 대부분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거대한 역병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르에게 이제 더는 부모마저 없다. 치료가 계속될 수록 점점 더 세계는 변화해간다. 아랍과 아프리카의 학살과 전쟁은 끝이났지만, 그 이유는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더 큰 공공의 적들이 내려와 있기 때문이었고,  인종 문제가 사라진 이유는 모든 사람의 살색이 회색으로 변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의 조작은 세계와 개인을 어디까지 변화시킬까, 오래 전에 부모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던 오르는 변호사 일을 통해 사랑하게 된 르라쉬의 갈색 피부가 회색이 되었음을 슬퍼하는데, 후에 그녀의 존재 혹은 그 자신의 존재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말할 수 없이 지적인 방식으로 환상적인 문학으로 승화되었다는 생각이다. 매 번 세계가 변화될 때마다 분명 고질적이고 몰락적 문제들은 점점 사라져가는데, 뭔가 아주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것들을 잃어간다. 하버 박사의 욕망과 오르의 거부 사이에는 어딘가 중간지점이 없다. 변화는 과거의 부정을 뜻하고, 자아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새로운 '나'에게 변화한 세계의 새로운 기억이 생겼다면 그것 역시 또다른 자아가 아닌가. 이렇게 여러 경로를 거쳐온 멀티 자아가 이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오르이고, 그것을 새로운 세상의 창조로 여기는 사람은 하버 박사이다. 결국 하버 박사는 노력 끝에 오르의 꿈이 더이상 효력을 내지 않는 대신, 오르의 꿈이 작동하는 원리를 밝혀, 스스로 자신의 꿈과 바람으로 세계를 바꾸는 기술을 발견하는데, 그 때문에 오르는 또 어떻게 바뀔까. 



[1] 상품 페이지 출판사 소개글

[2] 어슐러 K 르 귄, 하늘의 물레, 황금가지,  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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