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인포그래픽 - 당신이 알아야할 맥주의 모든 것!
Michael Larson 지음, 박혜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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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양의 정보를 습득할 때는 글자만으로 채워진 텍스트 북을 읽는 것보다 정보를 잘 정리해서 그래프와 각종 시각적 효과를 일으키는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인포그래픽을 보는 훨씬 효율적이다. 텍스트는 감정이 들어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좋은 도구이지만 두툼하게 쌓여있는 사실들을 나열하기에는 따분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인포그래픽스라고 하면 유엔이나 한국 통계청 같은 곳에서 조사한 온갖 통계 정보를 온갖 색상과 그림으로 표현하여 한 눈에 세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맥주 인포그래픽스다. 맥주에 대한 인포그래픽스라니, 마시는 술의 일종으로 생각해볼 때 맥주라면, 제조과정과 브랜드에 필요한 몇몇가지 사실 말고는 대개 술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텍스트로 짜여진 스토리텔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맥주와 인포그래픽스라니,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있기에 인포그래픽스로 책 한권을 완성할 수 있는 걸까 ?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가 아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리만큼 획일적으로 맛없는 맛을 내는 소수의 브랜드 맥주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최악을 자랑하는 아이템들이 종종 있는데 영국의 국격은 맛없는 음식이 결정하는 것처럼, 한국이라면 맛없는 맥주, 저 서구권의 관광객들이 마셔보고는 '말오줌 맛'나는 맥주라고 평하는 맹탕 맥주가 한국임을 말해준다. 오죽하면 북한 대동각 맥주보다도 맛없다고 할까. 그래도 요즘은 홈플이나 이마트 가면 세계 각국의 맥주가 아주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고, 간혹 직접 만든 생맥주를 판매하는 맥주집들도 볼 수가 있어서 조금 맥주맛의 안목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폭탄주 재료로서는 크게 손색이 없는 듯 아직까지는, 딱히 무슨 맥주라고 지칭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맛없는 맥주들이 주류를 이룬다.


술 중에서는 맥주를 좋아해서 이것 저것 사서 마셔보곤 하지만, 슈퍼마켓 매대에 놓인 해외 수입 맥주에 기재된 세계 각국의 글자들은 도통 읽을 수가 없으니 알고 있는 브랜드의 맥주 몇몇 개를 제외하고는 주사위 던지듯 무작위로 골라, 집에와서 하나씩 마셔보며 담에 이거 사자, 저거 사자 말만 해놓고, 그 다음번엔 또다시 무엇이 맛있었는지 잊어버리기가 보통인 내게, 맥주 주기율표라는 아이디어는 놀라왔다.



 어떤 종류의 화학책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을 펼치면 맨 앞장에 주기율표가 나와있는 것처럼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표지 다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장면은 이 주기율표다. 전세계 맥주를 유래에 따라 90개로 분류했으며, 이 분류에 쓰인 약자의 원이름은 실제르 해당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우리나라는 제외) 그 이름에 걸맞는 레서피가 통용되거나 혹은 법적인 규제를 받는 맥주의 이름이다. 가령 Ss는 스위트 스타우트로, 주기율표의 번호 대신 해당 맥주에 대한 인포그래픽스와 설명이 있는 페이지가 함께 기재된다. 색상은 유래 지역으로, 하늘색은 영국 아일랜드에서 유래한 에일,  주황색은 유럽대륙에서 유래한 에일, 연두색은 유럽대륙에서 유래한 라거, 붉은색은 미국에서 유래한 맥주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야 유통되는 대부분의 맥주가 라거 계통이라 에일이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지지만, 영국과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예일 계통의 맥주가 유통된다. 라거와 에일의 근본적인 차이는 호모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에일에 쓰이는 세레비지에 효모는 알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에스테르를 부산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맥주에서 여러가지 과일향이 난다. 높은 온도에서 발효되며 거품이 많아 향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 반면 1400년대에 독일에서는 직설적이고 단순한 맛을 내는 라거 효모를 발견했는데, 에일을 만드는 곡물 효모와는 달리 낮은 온도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하면 발효하고, 더 낮은 온도에서 2차 발효해야 탄산의 톡 쏘는 맛을 만볼 수 있다. 이 라거를 만드는 효모는 최근 유전자 연구를 통해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효모와 에일효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서구가 '아메리카 발견'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침략 시기가 시기상으로 조금 잘 안맞는 면이 있어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참조 : 브런치 비어스토리 https://brunch.co.kr/@beerstory/6)



민망하긴 하지만 고백을 하자면, 나도 '수제 맥주'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글 '수제 맥주'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한국에서도 수제맥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카페도 많고, 재료를 파는 곳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은 술을 잘 마실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술에 관심이 많아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필요한 장비들이 너무 많아 뜸을 들이고 있던 중, 어떤 이벤트의 2등 상품이 툴키트가 걸린 행사가 있었다. 나는 조선호텔 숙박권인 1등이 되지 않게 공을 들여서 응모를 했고 2등을 해서 그걸 받았는데, 2차 발효를 너무 짧게 한 탓에 맹숭맹숭한 맥주를 마시며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버리나 걱정하다가, 게으른 덕에 1달 후에 다시 마셔보고 나서 그제서야 탄산이 충분히 발효되어 제대로 된 수제 맥주를 마셨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라거였다. 물론 거품이 풍부하고 쌉싸금한 스타우트나 복잡한 향이 들어있는 에일을 더 좋아하지만, 이 툴키트의 원액이 취한 호프의 배합 비율과 맥아의 변주가 이제껏 마시던 술 맛과는 다른 맛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원액 말고 직접 맥아즙과 호프를 섞어 진짜 수제로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 잊고 지내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는 무엇이 그 다양함을 결정할까.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 이렇게 네 가지다. 최종 목적지인 술은 살아있는 미생물인 효모가 당을 먹고 싸는 똥이다. 우리가 똥을 싸면 미생물이 분해하여 이렇게 저렇게 토양에 흡수되고 식물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미생물의 똥은 우리가 먹어 이성을 억제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 당이 보리에서 나오는데 보리를 효모가 먹을만한 당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몰트를 제조하는 공정으로, 뭐 물에 불려 싹을 튀워 다시 건조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과 온도 습도 같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역시 맥주의 맛을 결정한다. 호프는 맥아즙의 단 맛을 중화시킬 목적으로 추가되는데, 쓴맛과 보존기간 등을 결정한다. 홉은 맥아를 끓이는 단계에서 들어가지만, 맥주에 따라 이후에 넣는 것도 있다. 역시 종류만도 수십만 가지이고 다양한 홉을 통해 각종 과일 향, 꽃향, 나무향 또는 향신료의 향을 낸다. 물은 하이트가 천연 암반수니 어쩌니 하고 광고하고 있지만 물에 대해서는 내 생각인데, 오염되지만 않은 물이라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다. 기본적으로는 이 네가지의 변주를 통해 종류만으로도 90가지로 분류가 가능한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효모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므로, 나머지 맥아는 맥주를 만드는 보리를 말하며, 이것 역시 원산지와 품종에 따라서 맥주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잔 종류만도 이렇게나 많고 이 많은 종류의 잔들은 각 어떤 맥주를 담을지 그 용도가 각기 다르다. 풀루트 같은 잔은 어쩌다 맘먹고 사봐도 깨먹기만 할 뿐 집에 남아나는 것이 없으니, 이런 것들이 있구나 이런것들을 담는구나 하고 끄덕끄덕.


90 종류의 맥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위 사진처럼 2쪽에 걸쳐져 매우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다. 유래와, 색, 도수, 쓴맛의 정도, 어울리는 잔, 그리고 그 맥주를 잔에 담은 사진이 간략하게 첫페이지에 나와있고, 해당 맥주의 대표적 브랜드 세 개가 사진 옆에 나와있다.  대표적으로 '코를 찌르는 허브 향이 나는' 페일 에일의 대표 브랜드는 런던 프라이드, 올드 브루어리 페일에일, 더블 배럴 에일 이렇게 세 가지이다. 영국에서는 생맥주로 서빙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병으로만 판매되는 술들이 많다. 

두번째 페이지는 원자구조처럼 생긴 그림인데, 맨 가장자리 동심원은 맛과 향에 대해, 두번째 동심원에는 제조회사와 지역이, 맨 안쪽에는 해당 맥주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타낸다. 백과사전식의 인포그래픽스를 한 번에 다 읽어버리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충 읽고, 홈플에서 1만원에 3개짜리 맥주를 골라와서 하나씩 찾아 보면서 알아가는 재미를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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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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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의 감정을 만져주는 것일까? 소설이 만들어 놓은 서사 속에서 인물이 겪는 감정은 나의 감정과 경계가 흐려지면서, 내가 그동안 해명해내지 못했던 온갖 감정들 심지어 감정들이라고조차 느끼지 못했던 무형의 마음에 들어와 살살 만지고 다독이고 주물러 형태와 질감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아무것도 아닌 상념과 어두운 바다 속 같이 알 수 없고, 떠다니는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한 마음의 본질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고독함이나 그런 두리 뭉실한 단어, 혹은 그 조차도 아니어서 형체없이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어 초미세먼지 입자처럼 멀리는 가지 않은채 맑은 날조차도 풍경을 흐릿게 만들던 그 마음의 진정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슬퍼했어야 할 기억에 작은 눈시울의 애도를 보내고, 탄식했어야 할 사건의 실체를 바라보게 하고, 온당하게 화냈어야 했을 기억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이 때로 좀비처럼 느껴질 때, 어떤 힘에 의해 점령 당해 그저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미드 <웨스트필드>의 AI 호스트들처럼 각본대로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똑같은 인생을, 예정되고 계획된 일을 그 예정대로 계획대로 감정을 흉태내고 있을 지 모른다는 막연하고 허망하지만, 어쩌면 그로써, 이 무위의 날들을 설명함으로써 흩어지고 멀어지는 정체없는 마음 부스러기들을 판타지의 저편 먼 곳으로 자유롭게 날려보내며, 무위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그리고 이 문장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처럼 쉽게 자신을 붙들고 떠나지 못했던 또 다른 한 조각의 마음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이 책은 나에게 마음에 형체를 부여하였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의 미소 p24)


이성간의 나의 우정은 대부분 연애 같은 양상의 조짐이 보였을 때, 끝이 함께 보였다. 그래서 이성에게는 연애 같은 우정도 우정같은 연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연애가 되고 싶었지만 우정이라도 가지고 싶어 거리를 두었으나 연애는 커녕 우정 마저 품을 수 없었던 스무살 짝사랑이 아니었더라도, 이성은 우정이라고 말할 만큼 충분히 가까울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일상 속에서 만나 가까이 지냈던 많은 아는 이성 사람들에게 섭섭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우정은, 적어도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벽을 허물고 나를 보여주고, 허물어진 틈 새로 새어나오는 것들을 안아준 우정이라면 언제나 동성과의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팀 플레이를 잘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단짝이 있었고, 연애같은 우정을 나눴다. 싸우고 삐지고, 누가 먼너 말 거나를 지켜보다 서로를 잃을 두려움에 서로에게 해명도 없이 사과도 없이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어색하게 다시 시작했던 관계들은, 떼거리 속의 하나라는 팀플레이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계기 그게 뭔지도 모를 이상한 힘에 의해 금이 가거나 멀어지게 되면 그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고 거리를 메꿀 완충장치가 전무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 씬짜오 p91)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떠난 사람 같다. 매몰찬 인간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남겨진 쪽이었다. 외로운 인간이다. 멀어지는 계기는 아주 작은 말과 행동들을 단서로 오래된 층위의 가느다란 매듭을 따라 끝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길을 잃는 일이다. 지치는 일이다. 어쨌든 멀어지게 되어 있고, 어쨌든 헤어지게 되어 있고, 어쨌든 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누가 먼저 떠났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둘은 서로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추축해볼 수는 있다. <한지와 영주>는 어차피 서로를 떠나게 되어 있는 관계였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건 서로가 한 번도 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 처음으로 대한 이질적이면서도 경외스러운 생소한 인종이라는 다름이다. 이 다름 때문에 영주는 한지에게,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옮길 수 없는 한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한지지만 넓은 아량의 이면에 누구나 갖고 있을 어둠을 숨긴 한지 역시 영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둘이 가까와진 건, 둘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둘이 헤어진 것도 둘이 살아온 환경과 인종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탈에서의 소중한 만남과 추억 그 이상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없는 둘은, 아직 그렇게 사이가 틀어지기 이전까지 2주간의 여유가 있었다. 관계가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려 서로가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던 또다른 어느 날 귀국을 앞둔 몇일 전에도 기회가 있었다. 영주는 한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걸 알았고, 그가 울고 있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 때에도 기회가 있었다. 까닭과 이유를 캐묻고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이 꾸던 둘이 함께 하는 그 아름다운 백일몽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하는 동안, 무슨 말이든 그렇게 끝내지는 않을 수도 있을 단 한마디로도 할 수도 있었을 한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랬다면 그들은 어쩌면 훗날 계속 편지를, 이메일과 SNS를 주고받으며 평생 친구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조금 편지를 보내다가 서로의 삶에서의 위상이 점점 줄어들고 희미해져 잊혀졌을 수도 있다. 매우 희박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둘 중 하나가 자신의 나라와 다른 모든 관계와 위치를 포기하고 그 둘 중 하나의 나라에 와서 사랑하고 살고 싸우며 지지고 볶다가 혹은 싸워 헤어지거나 혹은 무덤덤히 가족이 되어 그 완성(?)적 형태의 속된 사랑을 이루고 살다가 훗날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선택지들의 끝은 둘이 함께 걸으며 우정과 사랑사이의 어떤 감정 속에서 느끼던 그 다름을 기반으로 다져진 관계와는 다른 양상으로 돌아갔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여기 살린 모든 이야기는 소중한 관계의 과정과 그 끝을 다룬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만남과 그 속에서 생긴 소중한 관계와 그 관계의 끝으로 생명력이 더해진다. 엄마가 순애 언니를 먼저 떠났을까? 순애 엄마가 언니를 먼저 떠났을까. 한 때 순애 언니도 부모가 다 살아있었을 때가,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사랑해줄 부모는 떠났고, 혼자 남겨져 있던 순애에게, 동생이 생겼다. 예전에 식모라고 부르던 그저 밥한술이라도 덜고자 남의 집에 가정부로 어린 소녀들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다. 식모는 아니지만 남들이 학교 다닐 나이에 옷 수선집을 하는 친척집에 맡겨져, 재봉을 돌리던 순애, 열한살 엄마보다 더 체구가 작은 열여섯 소녀가 주인집 열한 살 딸이 즉 화자의 엄마와의 관계는 어떤 연애 장면 보다도 아름답다. 인간의 본성이 관계에 바탕을 둘 때 이토록 맑고 투명할 수 있음을 생각케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순수한 시선을 나누면서 관계의 애틋함을 느낀다. 엄마에겐 언니가 생겼고, 순애에겐 동생이 생겼다. 엄마는 순애를, 개의 시선으로 본다. 이 장면을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함부로 새개씨니 개놈이니 하면서 개를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순애가 어릴 때 키우던 개가, 버림받고 외톨이인 순애를 세상 누구보다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누구보다 귀하게 보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밥을 먹는 척 하던 개가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간 듯 사라진 이야기를 듣고, 회상하는 장면이다. 


곰 (개 이름)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엄마는 곰이 되어서 곰에게 이야기하는 이모(화자의 이모 = 순애)의 모습을 봤다. 곰아. 밥 먹어. 그 말을 하고 엉엉 우는 이모의 모습을 바라봤다. 곰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면 이모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 후로도 죽은 개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곤 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읽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100)


누군가를 향한 나의 마음은 반향되어 나를 향한 그의 마음으로 되돌아오고, 연애처럼 애틋한 우정은 영원할 것처럼 빛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언젠가는 뜨거운 태양도 언젠가 수십억년 후에는 초신성과 적색거성이 되고 백색왜성으로 스러질 것인데, 매일매일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것처럼 삼일을 견뎌내지 못하는 의지력을 가진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떠나고 떠나 보내고, 마음에 담았다고 퍼내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덜 상처받고 무뎌지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동반 여행을 하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씬짜오 씬짜오 - p116)


나는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에 마른 흐느낌이 나왔다. 아이들이 소리 내 울다가 들숨이 부족해 쉬는 숨 같은 거 말이다.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나...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나... 이 대목에서. 그 몰랐던 시절의 열린 빗장과, 빗장 바깥에서 만든 관계들, 빗장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이제는 빗장 바깥에 있는 관계들, 빗장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을만큼 먼지 쌓인 빗장 안에서 정말로 정말로 누구를 곰처럼 소중히 여겼던 시간들. 그리고 할머니도 생각났다. 길고 한많은 생을 살았지만 한 번도 빗장을 걸어 닫지 았았던 분, 하지만 쇠약한 몸과 늙음, 그 축복받은 장수가, 할머니가 주신 분에 차고도 넘치게 받았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느 새 겨우 자신의 빗장 밖에서밖에 그분을 만나지 못하던 나날들을 한탄한다. 나는 왜 그랬을까. 한 때는 '전화도 편지도 불통인 중국 기간제 교사로 간 미진이처럼 할머니를 그토록 소중하게 아꼈었는데, 나는 빗장을 걸 필요가 전혀 없는 내 할머니에게 애기처럼 매달리지도 젖을 주물거리지도 언 손과 발을 따뜻하고 물컹물컹한 배속에 올려놓거나 품속으로 기어들지도 않게 되었다. 내 할머니가 쇠약해지는 동안 점점 그렇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이별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줌마가 준 마음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히 돌보았을까 (씬짜오 씬짜오 p92). 


소중하게 붙잡고는 있지만, 그것은 기억일 뿐 더는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관계. 어차피 틀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까닭들. 그래서 아마도 쇼코의 미소는 서늘했을 것이다. 둘은 다시 만났지만, 그리하여 그간 쌓인 오해를 풀고,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읽고 다소간은 소중하게 붙잡았던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다시 채우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의 시간은 그 때 서로 몰랐던 그 우울한 비밀들과 할아버지와 공유했던 관계 속에서 생성된 특별한 것이기에 다시 만난 관계에서 생기는 새로운 관계는 고교시절에 간직한 것들과는 다른 양상을 띤 소중한 것들은 빗장 속에 걸어둔 채, 그 바깥에서 잃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것들로만 윤을 내는 서늘한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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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함께 하는 나의 삶?  정도로 번역해야 할까. 얼마전 아주 짧으면서 인상적인 단편 하나를 만났다. 영어로 읽었고, 모르는 단어도 꽤 있었지만, 그 단어들의 여울이 주는 파도가 강렬하면서도 스산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100년의 고독 같은 중남미 작가의 작품은 고독의 심연이 주는 여운을 일평생 흔적처럼 지니게 된다. 시적인 작품이어서 찾아보니 원래 옥타비오 파즈 이 양반이 외교관이기도 했는데, 작가로서 주로 몰두한 것은 시였던 것 같다. 시인이 소설을 쓰면 긴 시처럼 읽힌다. 국내에 나온 번역서에는 이 작품이 포함된 작품들은 없는 것 같고, 주로 시론집 평론집 비평집 등인 것 같다. 


그 중, <우리집에 온 파도>는 바로 이 작품을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각색한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책이 없어 미리보기로 살짝 앞부분만 읽어봤는데, 그림도 내용도 원작을 아주 잘 살렸는데, 이 책을 읽어본 친구가 그러는데 원래 작품과는 결론은 다르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파도가 내 집에 온다. 그 파도가 집에 와서 얼마나 집을 환하고 생기있게 해 주었는지, 온갖 형태로 모양을 바꾸면서 애무하고 속삭이고 노래하며 마음에 파고들던 파도는 햇빛마저도 더 오랫동안 집에 머물게 만든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 새로운 취미,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랑과 애정, 애착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리우고, 결국은 파멸로 향해가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영문 번역은 누가 했는지 떠도는 글이라 잘 모르겠는데, 어떤 라틴 아메리카 작가는 자신의 글을 영어로 번역된 걸 읽을 때 감명을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구글에 영어로 번역된 pdf 스캔본이 돌아다닌다.


Her presence changed my life. The house of dark corridors and dusty furniture was filled with air with sun, with green and blue reflections, a numerous and happy populace of reverberations and echoes. How many waves one wave is, and how it create a beach or rock or jetty out of wall , a chest, a forehead that it crowns with foam! Even the abandoned corners, the abject corners  of  dust  and  debris  were  touched  by  her  light hands. Everything began to laugh and everywhere white teeth shone. The sun entered the old rooms with pleasure and stayed for hours when it should have left the other houses, the district, the city, the country. And some nights, very late, the scandalized stars would watch it sneak out of my house.


(그녀의 존재는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어두운 복도와 먼지 쌓인 가구들의 집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녹색과 파란색의 반사, 수많은 행복한 반향과 메아리로 가득차 있었다. 하나의 파도는 얼마나 많은 파도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벽, 가슴, 이마를 거품이 일게 만드는가! 버려진 구석, 먼지와 파편의 처량한 구석까지도 그녀의 가벼운 손에 닿았다. 모든 것이 웃기 시작했고 모든 곳에서 하얀 치아가 빛났다. 태양은 기쁨으로 옛 방에 들어가, 다른 집, 지구, 도시, 나라로 가야 했을 때 몇 시간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아주 늦은 밤, 그 스캔들로 얼룩진 별들은 그것이 우리 집에서 몰래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 번역 파파고)


 If I embraced her, she would swell with pride, incredibly tall like the liquid stalk of a poplar, and soon thinness would flower into fountains of white feathers, into a plume of laughs that fell over my head and back and covered me with whiteness. Or she would stretch out in front of me, infinite as the horizon, until I too became horizon and silence. Full and sinuous, she would envelop me like music or some giant lips. Her presence was a going and coming of caresses, of murmurs, of kisses. Pluming into her waters, I would be drenched to the socks and then, in the wink of an eye, find myself high above, at a dizzying height, mysteriously suspended, to fall like a stone, and feel myself gently deposited on dry land  like a feather. 


내가 그녀를 안을 때 그녀는 자랑스럽게 부풀어 오르고, 포플러의 액체 줄기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커지다가 곧 가늘어져서는 하얀 깃털의 샘으로 꽃을 피우고, 내 머리와 등을 넘어져 나를 하얗게 덮는 웃음의 기세로 변할 것이다. 아니면 그녀는 내 앞에서 무한히 뻗어서, 내가 수평선이 되어 침묵할 때까지. 그녀는 음악이나 거대한 입술처럼 나를 감싸주곤 했다. 그녀의 참석은 애무와 속삭임, 입맞춤의 오락가락했다. 그녀의 물에 몸을 담그면, 나는 양말에 흠뻑 젖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현기증날 정도로 높은 곳에서, 불가사의하게 멈춰진 채, 돌처럼 떨어져, 그리고 깃털처럼 마른 땅에 부드럽게 내 자신을 느낀다.


모든 것의 양면성의 진실은 시간이 말해주던가. 이랬던 파도가...


At unexpected hours she roared, moaned, twisted. Her groans woke the neighbors. Upon hearing her, the sea wind would scratch at the door of the house or rave in a loud voice on the roof. Cloudy days irritated her; she broke furniture, said foul words, covered me with insults and gray and greenish foam. She spat, cried, swore, prophesied. Subject to the moon, the stars, the influence of the light of other worlds, she changed her moods and appearance in a way that I thought fantastic, but was as fatal as the tide.


이렇게 된다. 파파고는 이렇게 번역했다. 이번엔 고칠 것도 없네


(예상치 못한 시간에 그녀는 울부짖고, 신음하고, 뒤틀렸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이웃들을 깨웠다. 그녀의 말을 듣고, 바닷바람은 집 문을 긁거나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흐린 날들이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그녀는 가구를 부수고 욕설을 했고, 나를 모욕하고 회색과 녹색의 거품으로 덮었다. 그녀는 침을 뱉고, 울고, 욕을 하고, 예언을 했다. 달과 별, 다른 세상의 빛에 영향을 받아, 그녀는 내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류만큼이나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기분과 외모를 바꾸었다. 번역- 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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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소설에 관심을 가져볼까 해서 찾다가 (썰렁한) SF 협회 홈피에 들어가니 2018년 SF 어워드를 진행중이었다. 작품이 많이 않아서인지, 2017년과 2018년에 출간된 작품중 최고작을 고르는데, 단편, 중편, 장편, 코믹 등 네 분야의 후보작, 본심진출작, 최종 후보작 별로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지난 2년동안 출간된 SF 작품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장편 부문 최종 후보작은 아래 세권이다. 이 중에서 대상과 우수상이 모두 나온다는 소리다. 모두 생소하다. 짦막한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에셔의 손>은 이미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자 두뇌가 일상화된 시대에 기억삭제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는 듯하다. 넷플릭스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프로그램인 블랙 미러의 에피소드들을 연상시킨다. <이방인의 성>은 소재면에서 보다 흥미로와 보이는데 17세기 명나라 패망 이후 중원을 접수한 조선이 2010년 건국 619년째 되는 해에 세계적 연회를 주최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체역사소설에 과학소설의 온갖 현란한 기술들이 등장하는 이 책에 마음이 꽂혔다. 늦기 전에 격쿠 기간 중에 이북으로 구매해야겠다. 무한의 책은 메이저 출판사인 현대문학의 안목으로 출간한 SF인 만큼 작품성이 신뢰가는 면도 없지 않지만, 표지 역시 멋지지 않은가. 소재는 진부할 수도 있는, 시간여행과 평행우주인 듯 한데, 알라디너 평균 별점이 (많지는 않지만) 아주 좋다.















이 세 작품 이전에 최종후보작에 올린 장편은  다음과 같다.(출처 한국SF 협회 koreasf.org). 이 중에서 이보영의 <저 이승의 선지자>를 쫌 읽다 말았는데, 내용이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심오해서, 자꾸 졸리고, 계속 읽게 될 것 같지가 않다.

장편소설

작품명작가출판사
러브비츠 평전김상원소울파트
무한의 책김희선현대문학
알렙이 알렙에게최영희해와나무
이방인의 성홍준영멘토프레스
에셔의 손김백상허블
저 이승의 선지자김보영아작
창백한 말최민호황금가지















나머지 부분의 본심 진출작도 모두 나열해본다.

중·단편소설

작품명작가출판사/플랫폼수록된 곳
어째서고호관크로스로드
만날 수 있을까곽재식그래비티북스행성대관람차
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한겨레출판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라만차의 기사김성일브릿G
로드킬아밀(김지현)온우주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원통 안의 소녀김초엽이음과학잡지 에피
단발리체르카브릿G
온도계의 수은박부용브릿G
꿈의 중첩박성환크로스로드
토요일박애진온우주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원본증명배명훈동아사이언스과학동아
증명된 사실이산화황금가지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센서티브이서영동아사이언스과학동아
궤도의 끝에서전삼혜온우주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위대한 침묵해도연크로스로드
나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니Nosmos브릿G

만화/웹툰

작품명작가출판사/플랫폼
꿈의 기업문지현네이버
신도림오세영네이버
드림사이드홍정훈/신월카카오페이지
부딪치다지완카카오페이지
브릿지강풀다음
언더그라운드 블러드팩OZI다음
그리고 인간이 되었다레진
무당석정현투믹스
심해수이경탁/노미영투믹스
엑스트라데이즈아니영케이툰
다리 위 차차윤필/재수저스툰
에이디키티콘/김종환저스툰/카카오

영상

작품명감독유통
낙진권혁준센트럴파크
서바이벌 가이드정철민카라멜이엔티
옥자봉준호루이스 픽쳐스 외
오제이티: On the Job Training최수진센트럴파크
종말의 주행자조현민센트럴파크
후보작들의 대다수는 같은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이 많다. 특히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와 세 개의 시간, 관내 분실,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등에서 많이 나왔다. 나머지는 대부분 브릿 G, 이북은 잘 보지만 온라인으로 소설을 쬘끔쬘끔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 브릿G에 가입은 해 놓고도 아직 입문은 하지 못한 상태인데, 온라인 후보작의 대다수가 브릿G임을 보면 그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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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와 비견될만큼 당대의 문학적 위상을 갖는다고는 하지만 중단편 소설을 주로 썼기 때문인지 그들만큼 인지도가 많지 않은듯하다. 어느 정도 독자들의 뇌리에 남을만한 드라마틱한 서사를 담으려면 단편으로는 무리다. 한 권이라도 묵직한 베스트셀러로 크게 이름을 떨쳐야 알려져야 작가의 명성도 함께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는데, <가든파티>에서 내가 읽은 두 개의 작품은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들과 느낌이 비슷하며 다른 면에서도 제임스 조이스와 유사점이 많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내내 애증의 아일랜드에 천착했듯 맨스필드 역시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뉴질랜드의 애증을 담았다. 그 애증의 고향이 섬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여성작가라면 더욱이 그가 다룬 주제가 소소한 일상에 머무를 때 여성작가의 한계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안다. 다루는 내용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 그 자체여서 기억할만한 서사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문학이 현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고 한다. 《만에서 at the bay》는 작가가 엮은 이 작품집의 첫번째 소설로 중단편 분량이다. 이 작품을 내가 두 번 읽었는데 끝까지 읽은 이유는 얼마나 더 읽어야 이 재미없음이 끝이 나나 보려는 마음에서였고 두 번째 읽은 것은 하도 아무 내용이 없어서 다시 읽으면 뭔 내용이 들어오려나 보려고였다. 

10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장마다 인물의 시점이 제각각이다. 이 짧은 단편에 억수로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바닷가 마을의 방갈로에서 여름을 보내는 가족의 어떤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가족 구성원 각각의 시점에서 묘사한다. 1장은 바닷가 근처 미개발 구역의 양떼와 목가적 풍경을 소개하는데 별 기억은 없다. 2장은 조금 더 흥미로와서, 이 대가족의 가장인 스탠리 버넬이 아침 수영을 호젓이 즐기려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조나선이 먼저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잡치는 걸로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조나선 트라우트는 아내와 사돈간이지만 스탠리보다 직장에서 위치도 낮고 자유분방하고 예술적 기질을 가졌기에 스탠리가 대 놓고 무시한다. 하지만 조나선은 오히려 직장밖에 모르는 성실한 스탠리를 딱하다고 생각하며 쓸데 없는 이야기를 건네며 은근히 그를 조롱하고 그의 아내인 처제 린다에게도 친덜을 가장하여 아슬아슬하게 욕망을 드러낸다. 

성실하지만 가부장적인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스탠리는 온갖 요란을 떨며 식구들 모두를 자신의 출근 준비에 동원시키며 요란스럽게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 번잡한 밥상머리는 버넬가에서 스탠리의 가부장적 위치와 그 권위 밑에서 뭐든 복종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내 린다는 방에서 신생아를 돌보고 있으므로 빠졌지만 식탁 앞에는 처제 베릴과 장모가 함께 더부살이를 하는 중인 것 같고 아이들은 간난 아이를 제하고도 셋이나 더 되고 하녀 앨리스도 있다. 어른만 다섯에 아이들 셋 거기에 신생아가 있는데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 모두 조금씩 다른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게다가 바닷가에서 여름을 보내는 가족은 이들 뿐이 아니다. 바닷가의 잡화점 주인이 앨리스를 초대하여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실이 안좋다고 소문난 이웃이 베릴과 어울리고 조나선은 스탠리가의 안주인이자 처제에게 와서 집접거린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관계와 질서가 있다.

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아침식사 테이불에서 베릴이 그에게 차를 준비해 주는데 스탠리가 한모금 마셔보니 설탕이 빠져있다. 설탕을 안넣었군 하니 설탕을 떠서 타주는 대신 통을 그에게 밀어준다. 신기한 건 설탕을 알아서 타 마시라는 뜻으로 설탕을 통째로 주는 행위에 스탠리는 크게 당황하고 모욕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 지팡이가 없어졌다고 온 식구들을 달달 볶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아내에게는 자기 물건을 제대로 관리 못했다는 벌로 항상 하던 굿바이 키스를 생략하고 비쁘다며 빠져나간다. 제 딴에는 복수라고 요란을 떨고 키스도 않고 나가지만, 식구들은 그가 떠나자마자 야 갔냐? 갔어!!  와 신난다 이제 우리 세상이다 이런 모드가 되어 하녀 앨리스 마저도 집안이 경쾌하고 집에 남겨진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를 향해 다정하고 친밀한 분위기로 바뀌며 안도하는 장면이다. 

21세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텅빈 가부장적 권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나고 9장에서 남편이 헐레벌떡 가죽장갑 한켤레를 사들고 퇴근하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여보 나를 용서해 주겠어? 그는 식구들이 그가 키스하지 않고 갔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바닷가 여름을 즐겁게 지내는 동안 자책과 후회로 하루를 다 보냈고 아내를 보자마자 용서를 구하는데, 아내는 이 사람이 뭔소리를 하는 건지 왜 그러는 건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용서라뇨 무얼 말이죠? 

하루 중 짧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본 각기 다른 인물들의 속내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인간 관계를 엿보게 한다. 태어난 지 채 몇달 되지 않은 아기조차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짊어진 자신만의 존재가치를 짧은 토막극 속에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에서>와 <가든파티> 두 편을 읽으니 이 소설집의 약 1/3 정도를 읽은 것 같다. 만에서보다는 가든파티가 크게 마음에 와 닿았는데, 쓰다 보니 <만에서>에 에너지를 다 썼다.  펭귄클래식의 이북 버전을 읽었지만, 번역본은 몇 개 더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표지는 펭귄이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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