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작품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몇달 전에 접하고 설레며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본토에서도 5월 7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집인데, 테드 창의 국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속도의 빠른 번역이다. 번역은 이전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김상훈이며, 출판사 역시 엘리로 동일하다. 작품집이 최근 십여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것이어서 , 빠르게 번역출간될 수 있지 않았나 시파.  미발표작은 두 개에 불과하고, 그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같은 역자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스 시리즈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의 테드 창 팬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엔솔로지나 발표지를 통해 거의 다 읽었을 테고, 새 작품 두 개를 읽기 위해, 그리고 테드 창의 작품만 모아져 있는 책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사게 될 터인데, 미국 사이트에서는 목차(작품 목록)을 보기가 어려웠고, 알라딘 홈에도 목차가 빠져있고, 미리보기도 없다. 다행이도 국내 다른 서점에서 작품 목록(목차)가 올라와 있어서 긁어온다. 옮긴이의 말이 511쪽에서 시작되니, 꽤 두꺼운 책인데, 가격은 14000원 대로 합리적이지만, 이미 출간되어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개 소유하고 있을 가장 긴 150쪽짜리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를 빼면 대략 350쪽 정도니,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십여년 간 주기에 한 번씩 출간되는 테드 창의 작품집을 안살 이유가 없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에서 한 직물상인이 사업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주인은 그를 워크샵으로 데려가 연금술을 사용하여 만든 검은 돌 아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미래로로 통하는 게이트이다. 상인이 흥미를 보이고, 가게 주인은 그에게 미래의 자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은 카이로에  과거로 통하는 또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위키 영문판 참조함).  2007년에  subterranean에서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Fantasy & Science 9월판에 실렸다. 구글링하면 전체 텍스트가 PDF로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가 맨 앞에 뜨는데, 중국의 한 유명 대학 사이트여서, 합법판적지는 잘 모르겠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2008년 앤솔로지인 Eclipse 2에 실렸고,  단편 부분 로커스와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저자의 허락 하에, 전체 텍스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nightshadebooks.com 에서 찾으면 된다. 위키 영문판에도 링크가 있다. 짧은데도, 위키에 나온 플롯은 뭔가 길고 복잡해서 뭔소린지 모르겠고, 아마존 리뷰어의 말을 빌리면, 로봇들만 사는 한 대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기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하는데, 한 로봇이 해부학을 탐구하며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 리뷰어 Bradley Bervers 리뷰 참조)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는 흥미롭게도 네이처 지에 실린 짧은 단편인데, (네이처에 단편소설도 실린다는 건 처음 알았음), 이 스토리를 Year's Best SF(2006)에 실은 편집인인 David Hartwell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또다른 소설적 탐험'이라고 한다. 10여 페이지 되는데 한 다섯장 정도 넘기면 다 읽을 것 같고, 워낙 짧아서인지 이 이상의 스토리 소개는 찾을 수 없지만, 기계로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소설로, 삶의 구석구석 침투한 소프트웨어의 주기적 변화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이야기가 주는 감성적 울림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작년인가 몇달 전쯤인가 시간 개념이 좀 없어졌는데, 아무튼 이 중편을 읽고 써서, 알라딘에게서 2만원을 받아 리뷰 쓰는 자신감까지 준 작품이다. 2010년 로커스, 휴고상 수상. 지난번 리뷰에 상세한 내용을 적어놓았으므로 플롯 소개는 생략.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Dacey's Patent Automatic Nanny)는 2011년 The Thackery T. Lambshead - Cabinet of Curiosities 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소설로, 찾아보니 이 앤솔러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테드창의 이 소설은 Holy Devices and Infernal Duds: The Broadmore Exhibits 라는 파트에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앤솔로지에 흥미가 생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은 2013년 subterranean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4년 휴고상 중단편 후보에 올랐고, 넷플렉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 하면 주로 기억 장치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주요 테마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이야기 도중 누구 말이 맞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화면에 재생하여 같이 돌려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재생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각 영상이 펼쳐지고, 대화와 소음까지 모두 그대로 재생된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불러내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의 섬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이 소설 역시 같은 모티브를 사용하는 것 같다. 블랙미러 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지만, 기억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테드 창의 시점에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는 2015년 e-flux라는 인터넷 저널에 발표된 작품으로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2016에 실렸고, 나머지 두 작품은 유일하게 미공개 작품이다. 따지고 보니, 거의 1년에 겨우 단편 하나씩 발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작품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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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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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단에서 빼기>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시하는 남성의 심리를 통쾌하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나 안전 장치가 부족했던 시대에, 남녀의 섹스라는 행위가 남성에게는 정복, 여성에게는 굴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일 이 소설을 100년 쯤 후에 읽는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맥락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물리적으로 보나 행위적으로 보나 두 사람이 서로 같이 몸을 만지고 뒹굴고 그러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레 욕정을 해소하는 행위를 남성은 갖는 것으로, 여성은 주는 것으로 느끼고 표현하던 이상한 관습적 사고를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쉽게 섹스하는 여성을 헤프다며 질타하던 시기에 쓰여졌다는 걸 감안할 때 다욱 파격적이다.


요즘도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들의 지나친 노출로 몰고가는 몰상식한 여론을 접할 때가 가끔 있다.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입는게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리는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워 아예 여성의 실존 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슬람 세계의 논리와 오십보백보다.  <옥상 위에 여자>는 어떤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집요하고도 끈덕지게 여성에게 집중되게 덧씌워지고 강요되는 성윤리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극으로 읽힌다. 무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작업하는 세 노동자들은 반대편 건물에서 반나로 일광욕 중인 여성에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는데, 한 명(스탠리)은 휘파람을 불고 조롱하고, 한 명은 그런 그녀를 동료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망상과 그녀와 다정한 관계가 되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남자들이 도달한 감정은 그녀를 향한 분노다. 조롱과 욕설 혐오 등 그녀를 향한 온갖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 더더욱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이 가엾은 남성들은 길거리의 모든 여성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잘보이려고, 섹스하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일베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를 지켜보는 새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발가벗은)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났다 68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에 대해 도리스 레싱은,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어떻게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좋아한 이유를 독자인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서사에만 관심을 두고 읽다보니 여성의 심리에 대한 문제 의식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서사는 고골의 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이 몸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손에 달라붙어 다니는 모습은 코가 달린 부분이 평평하게 변한 우스꽝스런 모습에 비해 다소 괴기스럽다. 레싱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했던 <다섯번째 아이>부터 일관되게 레싱의 작품 속에는 이런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순수하게 심리적인 소설 속에서도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괴기한 심리와 미친듯한 행동이 드러난다. 하지만 코보다는 심장이 의미하는 게 보다 명확해 보인다. 


일생을 통해 두 번의 ‘진지한’ 사랑 A, B를 했지만 두 번 다 뼈아픈 실패로 끝났고, 그 진지한 사랑 A와 B 사이에 셀수없는 십 수번의 진지하지 않은 교제가 있었지만 부푼 기대를 품고 다시 진지한 사랑의 후보 C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여자는 그 두 번의 진지한 사랑이 끝났을 때마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심장을 기억하며, 다시 핑크빛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으로 꺼내 버렸으면 하고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말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C의 만남을 앞두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손에 걸려져 있는 거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그 선홍색 심장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 있다.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있던 심장을 알미늄에 감싸고 외출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허름한 차림을 한 미친듯한 여자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미친여자는 자신의 드라마에 빠져서 비난, 사랑의 배신, 혹은 부정 같은 개인적 비극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영혼없이 계속 혼자서 떠들고 있다. 모두에게 당혹감과 수치를 느끼게 하던 미친 여자를 보던 주인공은 손가락에서 자신의 그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심장을 그녀 앞에 갖다 놓고, 문제의 미친 여성은 그것을 품에 안고 좋아한다.


지하철의 미친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집에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미치거나 조금 정상이 아니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에서 도로시 브래드퍼드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남편의 외도 그 자체보다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자신의 상관않는 심리에 대해 더 의아해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시는 자신의 부부를 방문한 스텔라에게 자고 가라 권하면서 자기 남편과 관계를 맺을 것을 은근히 암시하여 실제로 그렇게 될 뻔하게 만든다.


<영국 대 영국>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인 찰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을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하고 있는 광산촌의 집을 방문하고, 정신 분열적인 증상을 경험하고, <두 도공>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서, 꿈을 통해 타인의 현실을 제어하며, <목격자>에서 부룩은 외로운 알콜중독자이고, <20년>은 20년 전 어긋난 사랑 때문에 헤어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으며, <19호실을 가다> 역시 우울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20년>은 서로 만나기로 한 곳에서 서로가 기다리다가 어긋난 지나간 사랑을 20년만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상황을 묘사한다. 안타까운 영화같은 설정이지만, 독자도 화자도 두 사람의 기억 중 어느 기억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서로는 약속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서로를 애타게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서로에게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평행우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날짜를 헷갈렸을 수도 있고, 같은 장소가 두군데 있었을 수도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반드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헤어졌어야만 했을까. 오늘날처럼 휴대폰과 인터넷 이런 게 불가능하니 서로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안타까운 뜻하지 않은 어긋남과 이별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휴대폰 시대에서 우연과 착각에 의한 비극적 요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같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최종면단에서 빼기>만큼 유머러스하게 읽힌다. 새삼 시대적으로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따져볼 기회이기도 했다. 남자의 정부로서 이남자 저남자 등에 빨대를 꽂아 몸을 가꾸고 먹고 사는 꽃뱀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말 나온 김에 여담 하나, 친구가 목욕탕에 갔다가 거기 출퇴근하는 유한마담들과 안면을 텄는데, 그 중 꽃뱀으로 알려진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뭐 예를 들어 배찌(?)를 한다든지 하며 티를 낸다고 한다. 그 여성과 나름 진솔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건 일단 한 남자랑 친해지면 초기에 가방이며 보석이며 마구 선물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선물이 왜소해진단다. 그러면 그게 이별의 징조이므로 꽃뱀은 새로운 물주를 물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한다고. 길게 가봐야 몇년 안가므로 끊임없이 정부를 탐색해야 하고, 그래서 몸치장에도 돈이 많이 든다고. 정확하지도 않고 뭐 막 섞이기도 했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목욕탕 뱃찌녀가 자신의 삶의 패턴을 서비스 노동의 가치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속 여성들이 크게 다름없다.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대가의 손에 의해 과장적으로 설정되었음을 주목한다. 잭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꽃뱀 이 붙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정식 부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부가 되었다. 정식부인이 되면 계약 상태가 되어, 이혼후에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남편과의 정사는 주로 정부와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결혼했던 여성이 이혼했던걸 바로 알아차리는데, 그 이유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혼을 했으니 다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대화(인지 술주정인지)를 하면서 둘이서 남자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다. 만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회라면, 정부이든 정식부인이든 꽃뱀이든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남자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구석구석 층층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특히 성적으로 여성을 취약하게 하는 이유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외로움과 자유 그 둘은 붙어다녀야 하는 건지, 성공한 가정이라는 따뜻하고 푸근한 울타리의 허위와 그것을 위해 포기된 자유와 속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전체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가정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그토록 심장을 찔렸으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성(<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처럼, 우리 모두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꾸준히 사랑을 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깨질까 다칠까 조심조심 보살피고 가꾸어온 완벽한 가정 속에서 허위와 불안을 느끼고(<19호실로 가다>, <한남자와 두 여자>), 애정과 결혼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정사를 갈망한다 (<최종명단에서 빼기>, <남자와 남자 사이>). 하지만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은 그녀의 정신 분열적 최종 선택과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녹여내었다.


전에 읽은 중장편들(다섯번째 아이, 그랜드마더스)에 비해 압축적이라, 맥락 파악이 잘 안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 읽는 데 시간도 걸렸고 다시 읽어야 한 것도 많았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대가의 작품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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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의 모험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들로의 여행
로라 밀러 엮음, 박중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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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100'이라는 광고 카피가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목차를 보면 이 카피가 실은 이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임에 동감하게 된다. 100개의 이야기는 커다란 컬러 도판에 실린 관련 명화와 함께 다섯 개의 챕터로 시대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가 환상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가 속해있는 익숙하고 따분한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현실에서는 물리학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독자를 아득한 꿈과 환상 속으로 안내한다. 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들은 다시 현실을 비춘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를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삶만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고대의 신화와 전설 편에서는 고대부터 1700년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약 20개의 책 중 실제 첨부터 끝까지 단기간 내에 끈기있게 완독을 한 책은 오디세이아와 산문 에다, 돈키호테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읽은 책이 나왔을 때는 반가왔고, 안읽은 책들의 개요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빠져들었다. 사실 이런 신화들은 오며가며 제목들은 대개 들어서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게 언제 어느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와 전설들을 인류라는 전체적 시각에서 그 맥락을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오디세이아(호메로스), 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 베오울프, 천일야화, 마비노기온, 산문 에다(스노리 스툴루손), 신곡(단테), 알리기에리(아서 왕의 죽음), 토머스 맬러리(광란의 오를란도),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선녀 여왕(에드먼드 스펜서), 서유기(오승은), 태양의 도시(토마소 캄파넬라), 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폭풍우(윌리엄 셰익스피어), 달나라 여행(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광휘세계’라는 신세계에 관한 보고,(마거릿 캐번디시) 여기까지가 편집부가 뽑은 17세기라는 긴 기간동안 쓰여지고 전승된 위대한 전설과 신화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한권 한권 모두 방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이를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 이야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용 축약본이 과연 필요할까, 축약본은 흥미 위주로 쓰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 읽은 축약본을 읽고 그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성인이 된 후에도 실제 스토리를 읽지 않게 되고, 그 때문에 원전의 깊이를 세상에서 감추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현상이 우려되기도 한다. <돈키호테>와 <걸리버여행기>가 대표적이다. 


이후 챕터는 과학과 낭만주의(1701~1900), 환상소설의 황금기(1901~1945), 새로운 세계질서(1946~1980), 컴퓨터시대(1981~현재)로 나뉘고 각 시대에 해당되는 신화, 전설, 서사시, SF, 판타지 모험서들이 빼곡하게 책장을 메운다.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고 팀이 작업을 하여서 각 작품에 대한 해설과 총평은 딱히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지면이지만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 자체를 요약 전달하는 것도 있고, 비평에 가까운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최근 읽은 소설이 나타날 때면 그 작품을 읽을 때 그걸 골랐던 나의 안목에 자랑스러움이 생기면서 막 흐뭇해지는데, 그 중에서는 순전히 우연히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아무거나 집어 들었는데 얻어걸렸던 작품도 많다. 지극히 일부 중에서도 아주 조각만 읽었지만 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신비한 이야기란 건 알았지만 해당 단편은 듣도 보도 못했던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어쩌다 손에 들어온 토베 얀손의 <무민 가족과 대홍수>(무민 버전이 하도 많아 이건 이게 그건지 그게 그건지 확실치 않음)이 그런 것들이다. 


까마득 오래 전에 읽어서 다시 봐야 할 소설들 마이클 쉐이본의 <유대인 경찰연합>가 있고, 어릴 때 읽어서 아마도 축약본이었을 테고 기억도 나지 않는,  <보물섬>, <나니아연대기>, <오즈의 마법사>, <해저2만리> 등등, 최근 5년 내에 다시 읽었던 것 같기도 한 <어린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반쯤 읽고 여전히 읽고 있는 중이라고 우기고 있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게르 멘 브란텐베르크의 <이갈리아의 딸들>, 해리포터 시리즈(원서로 사서 그런거니 스스로에게 이해를 구함), 관심 있어서 사두고 아직 펼쳐도 보지 못한 책들이 널렸고, 무엇보다도 최근에 읽었고 예스블로그에서 리뷰까지 찾아볼 수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스노리 스툴루손의 <산문 에다>, 미겔 데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여행기>,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커트보니것<제5도살장>,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하루키 <1Q84>,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올 수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필자들이 설명하고 논평하고 이야기해주는 것들 사이의 갭들을 글자로 채워가는 즐거움이 아직 잘 모르는 이야기들의 겉을 핥는 것보다 더 크다. 


읽으려고 사둔 책도 몇권 있었고 보도 듣도 못한 생전 처음 제목과 저자를 들어보는 책들도 많았다. 특히 맨 마지막에 소개되는 동시대 작품들의 경우 제목은 익숙한데 읽을 생각도 못한 책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미국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아서다. 장르 문학으로의 입지가 굳건한 유명 작가의 작품 중 딱히 1개만 꼽기도 어려웠을 거 같다. 모든 작품이 골고루 다 주옥같은, 내가 좋아하는, 르귄 여사의 작품은 <어스시의 마법사>를 꼽았다. 얼마전 <로캐넌의 세계>와 <어둠의 왼손> 등 헤안시리즈의 몇 편을 읽고 어스시 보다는 헤안 시리즈에 더 관심이 갔기에 , 어스시를 1편만 먼저 읽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훨씬 앞서 출간된 책이지만, 해리포터에서 등장하는 주요 핵심 요소를 어스시에서 많이 차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마법사 학교라든가, 마법사의 돌, 그리고 볼더모트를 지칭하는 "you know who"가 사물의 이름에 진정한 힘이 들어있다는 사상적 기반등을 찾아볼 수 있고, 조지 마틴 RR의 하늘을 나는 용은 로캐넌의 세계에서 주요 통신수단이고, 'The winter is comming'이라는 유명한 말 역시, 다가오는 재앙, 혹은 긴 겨울에 대한 암시와 긴 공전 주기를 갖는 특별한 행성이 배경인 로캐넌의 세계와 어둠의 왼손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물론 르귄 여사 역시 소설의 여러 요소를 신화와 전설에서 많이 차용하였으므로 단적으로 오리지낼러티를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한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가 다른 소설의 매우 주요한 모티브로 동작한다는 것은 그 오리지널 소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마치 반 고흐의 그림이 우리가 만나는 일상적 사물의 곳곳에 색상과 그림의 요소들이 침투해있는 것처럼 르귄의 책들에서는 현재 상업적으로 드라마와 영화 등의 매체에서 유래없는 성공을 거둔 작품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영감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도 기승전르귄예찬으로 빠졌다.  보고 싶은 책도 많고, 그 이유도 끝이 없는데,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삼박 사일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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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 1서〉 4장 16절


고골의 단편 <외투>를 읽다 보면 19세기 러시아에서 가난한 서민에게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맞설 외투 하나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고골보다 약 반세기 후대 문인이었던 톨스토이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두 수선공 부부에게는 헤진 낡은 외투 조차 둘이서 하나를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옷이다. 모든 생활비가 먹는 데 다 들어간다면 어떻게 외투를 장만할 수 있겠는가. 요즘도 값비싼 브랜드의  최고급 재질 거위털 패딩이나 캐시미어 코트 같은 것들은 서민적 월급으로는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렴하고 따뜻한 대안도 시장에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둘이 같이 번갈아 입던 코트 마저 더는 입을 수가 없게 될만큼 다 헤어져 버렸다. 벼르고 별러 2년을  모으고 또 모아 부인은 드디어  2 루블이라는 약간의 돈을 모았고 외상으로 받을 돈을 3루블을 받아 합치면 외투를 만들 수 있는 가죽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남편에게 외상값 3루불을 받아 코트 만들 가죽을 사 오라고 내보낸다. 추운 겨울 구두공 세몬은 아내의 낡은 외투 속에는 아내의 누비옷을 끼어 입고 외상값을 받으러 다닌다.


생활고는 그에게 구두를 맞춘 농부들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가는 곳마다 구두값은 받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한다. 반면 외투 가죽상은 그에게 외상은 절대 안된단다. 겨우 수선비의 푼돈을 받아 술을 진땅 마시고 수선할 털신 한켤레를 덜렁덜렁 들고 돌아오다가 혹독한 추위에 발가벗은채 웅크리고 앉은 한 청년을 발견한다. 그냥갈까 도와줄까 고민하던 구두수선공은 외면하던 발길을 돌려 자신의 헤진 외투를 벗어 입히고 신발을 신겨 집으로 돌아온다. 당장 가족의 끼니인 빵조차 부족해 걱정을 하던 마트료냐는 새 외투를 만들 가죽은 커녕 헤진 외투까지 남에게 주고, 군입까지 달고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잔뜩 화가나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칠줄 모르던 잔소리는 청년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는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잦아들고, 이어서  가족이 먹을 빵과 차를 나누어주고 집에 머물게 한다. 


한 밤중에 벌거벗겨진 채 추운 거리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 청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구두수선공도, 그의 아내도 사정을 물어보지만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고,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고 말할 뿐이다. 이름은 미하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집에 묵으며 구두 수선일을 배워 돕기 시작하는데, 구두 만드는 솜씨가 빼어나 가게는 날로 번창하고 멀리서까지 믿고 맡기려고 이 곳을 찾아오는지라, 살림은 나날이 


한 거만한 신사가 독일산 고급 가죽을 들고 나타나, 1년이 지나도 헤어지지 않도록 부츠를 지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고소미를 시전하여 감옥에 넣을 것이라 협박하며 돌아간다. 세몬은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썰미도 정확하고 빠른 미하일에게 일을 시켰는데, 헐, 부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놓지 않는가. 놀라 자빠지려고 하는데, 그 부츠를 부탁했던 신사의 하인이 나타나서는 자신들의 나리가 마차에서 갑자기 죽었다며 부츠는 필요없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미하일을 더없이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게 된 이들에게,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구두를 맞추는데 그 중 한 아이는 발을 절고, 미하일은 아이들을 마치 오래동안 알던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렇다. 6년 전 남편이 나무를 베다 깔려 죽은 후, 만삭으로 홀로된 아이들의 엄마가 홀로 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  그 아기 중 하나가 죽은 엄마에게 깔려 장애를 입었고, 자신도 8개월된 아이가 있었던 이웃이었던 이 여인이 젖을 셋에게 나누어 키우다가 자신의 아이는 2살때 죽고, 이 아이들을 입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천장을 향해 미소짓던 미하일은 이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알고 보니 미하일은 대천사 미카일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죄를 지어 인간의 땅에 떨어졌고, 세 가지 진리를 깨달은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어서 가서 그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와라. 그러면 세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벌거벗은 채로 인간의 땅에 떨어진 대천사 미카엘은 쌍둥이들을 만난 후에야 하느님이 말씀하신 세 가지 진리 중 마지막까지 물음표 상태였던 남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고 이제 세 개의 해답지를 들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구두수선공과 아내를 만나면서 첫날 알게 되었고,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거만한 신사의 일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 쌍둥이들을 길러온 여인에게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진리는 무엇일까요? …. 는 아이들 독서토론 주제일 듯. 


농민의 교육에 힘써왔던 톨스토이는 농민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로 알려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누구나 복음서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러시아 민화를 각색한 것들이라고 작가해설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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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4-2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혜심 <소비의 역사> 보니 옷도 중요한 유산 품목이더군요. 옷을 차등 분배하는 것에서 고인과 얼마나 각별했던가를 살펴 볼 수 있던^^; 패스트 패션 시대지만 이런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이야기가 그저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요즘의 계급 차도 그에 버금가는 거 같아서겠죠.

CREBBP 2019-04-29 10:12   좋아요 0 | URL
한국에선 고인이 입던 옷은 약간 좀 뭔가 거림칙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나아졌지만 그래서 중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인이 무슨 병에 걸렸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밍크 코트 같은 고가품은 또 사정이 달라지겠지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안톤 체호프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얄타라는 지명은 얄타 회담으로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관계로 친숙하다.  이 소설에서 안나와 구로프 두 남녀가 만나게 되는 일탈의 공간이다. 우크라이나 아래 크림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톨스토이는 여기에 여름 별장을 가졌으며 체호프는 몇년간 이곳에 체류했었다고 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불륜의 원조격인 안나 카레리나와 첫이름이 같다.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길고도 상세한 불멸의 서사 속에 담긴 안나 카레리나의 이야기와 달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얄타의 나른하고 지루한 휴양지에서 만남과 그 이후 계속되는 불륜이 아주 짧은 단편 속에 간략하게 담겨있다.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정사를 벌이고 파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리나와 유사하다.  안나의 일거수일투족과 그녀의 변덕,  그녀의 불륜으로 인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심리 상태까지 톨스토이의 붓끝으로 속속들이 시대 속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안나 카레리나와 달리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감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구로프가 느끼는 방식과 구로프에게 던지는 몇 마디 말에 의지한다. 


휴양지에 혼자 온 구로프는 이미 또래의 아내에게서는 싫증을 낸 지 오래로 외도를 밥먹듯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일종의 우월적이거나 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어서 여성을 '저급한 인종이'라 지칭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갈아치우며 여성 편력을 드러내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에게 여성은 즉각적인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 설령 뛰어난 미모와 정신을 소유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오래 가는 경우가 없고, 그 일탈로 인해 오히려 늘 곤경을 겪게 하는 존재이다. 같은 기간 얄타에 혼자 온 안나가 스피츠 한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쉽게 접근해서 쉽게 정사를 벌이고 때가 되어 헤어지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얄타에서 헤어지며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서로에게 인정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잊혀지리라 생각했던 안나를, 모스크바로 돌아온 구로프는 한 달이 넘어도 잊지 못하고 더욱 더 절절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온통 마음 속에 안나 뿐인 구로프는 그 이야기를 주위에 하고 싶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죽하면 아내에게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동료에게 얘기를 꺼내지만 주위를 끌지도 못한다. 결국 그를 둘러싼 모든 일상의 사교는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진다. 단지 안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한 구로프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사는 도시로 찾아간다. 하루를 종일 집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체념하지만 곧 (그녀가 관람할 게 뻔한) 오페라 공연 소식을 듣고 극장에 나타나 안나의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막간에 키스를 퍼붓고 애정을 고백한다. 깜짝 놀란 안나. 구로프 못지 않게 그를 그리워했던 듯 보여지는 안나는 당황해하지만, 자신이 모스크바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제 둘은 매달 대학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모스크바에 하루씩 와서 호텔에 묵으며 구로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안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에게 자상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위선을 알고 탄식한다.   자신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진실된 세계가 아니며 가식의 세계이며 오로지 안나와의 짧은 만남만이 진실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거짓의 세계에 살아가야 함을 막막해하고 슬퍼한다. 안나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진실만의 세계일까. 


이미 얄타에서 개에게 뼈를 주겠다며 접근해서 정사를 벌이고 나서 안나는 자신이 타락한 여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자신을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될 거라며 울먹이며 죄책감에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구로프는 짜증이 났으며, 이미 죄많은 여인의 모습을 느낀다. 타락은 여성 혼자서만 했단 말인가. 함께 한 타락에, 한 사람은 타락했다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자책하고 애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타락을 경멸한다. 여성의 타락했다는 호들갑에 속으로는 멸시와 조소를 보내며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구로프의 이 '진실된' 사랑이야말로 애초에 거짓으로 가득했다. 


안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나가 얄타에 온 이유는, 부족함 없는 상류 사회에서 성실하고 착한 남편에게 지루함을 느끼고는 뭔가 새로운 걸 찾아 서다.  호기심에 가득한 채 다른 삶을 기대하며 얄타라는 도시에 찾아온 배경에는 남편에게 한 아프다는 거짓말이 있다. 안나의 일탈에 대한 환상과 구로프의 여성 편력이 만난 것인데, 남자의 처신과 여성의 갈망은 뭔가 허위와 가식 속에서 뭔가 균형을 찾은 듯하다.


'다른 삶이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어요! 제대로, 제대로…. 호기심이 저를 괴롭혔어요..(안나 세르게예브나)'


이제 둘은 도둑처럼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함께하는 의미없는 모든 공적 사교가 끝난 시간 오로지 안나의 눈물과 함께 하는 짧은 만남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안나를 만나러 가는 날 머리가 세어버린 자신을 보며 여성들이 다 늙어빠진 자신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구로프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갖지 못한 어떤 환상을 구로프에 덧씌워 놀고 그 환상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 짧은 깨달음.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일상과 진정한 사랑 중 무엇이 진실이냐는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독자가 되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와 달리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한 구로프가 이제 와서야 진실된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도둑 사랑이라는 이 굴레를 어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아직도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의 나이의 두 배인 늙어가는 구로프를 안으며 안타까움과 이룰 수 없는 연모에 눈물 흘리고 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사내의 가벼운 조소와 거친 오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늘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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