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 문학동네 / 1918년 7월


이안 매큐언 소설을 몇 권 읽은 독자로서,  그의 소설에 대한 인상은 대체적으로, 심각한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블랙 유머가 지적으로 세련되게 잘 배합한다는 것이다. 태아의 입장에서 햄릿을 재해석한 <넛셀>이 어두운 인간의 이면을 매우 영국스러운 유머로 풍자했다면, <솔라>는 작품은 조금은 더 소리내서 웃을 수 있는 코믹스러운 요소가 구석구석 배어있다.


피부가 노출되면 바로 얼어버리는 북극의 살인적 한파 속에서 스노우 모빌로 신속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의 한 복판에서도 신체는 그 환경과는 무관하게 한결같이 자신의 순환 사이클을 멈추지 못해서 생기는 비극이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그 잠시의 빙벽 배설 행위로 인해 저온에 노출된 신체의 중요한 일부가 스노우 모빌에 돌아와 달릴 때, 똑 떨어져 겹겹으로 입은 바지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마비된 감각으로 느끼는 장면이 그 중 압권이다. 


작품이 주는 웃김이 순수한 웃음이 아닌 씁쓸한 웃음을 주는 이유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 지구를 구한다면서 자기 집 관리나 자기 자신 조차 건사하지 못해, 사랑하지도 않고 결혼 생각도 없는 여자 집으로 향하는 남자.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호자들이 당연히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지원하는 행사인 북극의 환경 파괴 현장 체험에 가서 목격하는 탈의실의 카오스. 신체적 약점(뚱보에 늙고, 키작고 등등)과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꼬이는 온갖 타입의 여자들.


다섯번의 이혼과 그로 인한 노벨상에 걸맞지 않은 빈털털이 신세의 이 남자에게 여자가 꼬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화자가 굳이 독자에게 드러내지 않은 숨은 매력이 있을 수는 있겠다. 재치있는 말주변이라든가 혹은 (겉으로 보이는) 세심한 심적 배려라든가. 가장 설득력있는 추측은 끊임없이 여성을 쫓고 평가하고 작업거는 평소 한결같은 태도에 20년 전에 성취한 노벨상의 권위가 합쳐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외모지상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권위가 상쇄시키는 이성적 인간적 불호감은 철통같다. 노벨상은 말할 것도 없고, 돈과 권력, 스타적 유명세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이안 매큐언이 워낙 유명해서 노벨상 수상자인가 했더니 부커상을 몇 번 받았지만, 노벨상은 아닌 듯하다(어쩐지 읽는 재미가 있다 했더니ㅋ).  하지만, <솔라>에 등장하는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 수상자이고, 젊은 시절 넝쿨째 굴러들어온 이 노벨상이라는 세계적 권위의 수상이력은 그의 나머지 삶의 대부분의 부분을 떠받치고 부양하는 토양이 된다. 


20년동안 아무 연구도 진척된 것 없이, 이런 저런 위원회의 장과 같은 한직을 쫓아다니고 대중강연과 연설로 먹고 사는 동안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차원적 탐욕이다. 돈, 여자, 술, 음식, 권력.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외도로 인해 이미 관계가 끝난 네번째 부인의 외도를 질투해, 그를 살인자로 조작하고, (자신 때문에) 죽은 연구원이 남긴 연구 내용을 가로채, 지구를 구한다는 명분과 유명세, 돈을 탐닉하는 모습은 악한자의 전형이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다보면, 그런 그가 그렇게 악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만연된 사회의 부조리에 익숙해지면, 그런 일은 특히 큰 권위를 등에 업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럽게) 살아가는 방식은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분명 윤리적으로 아주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데도, 마이클 비어드에게는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 자신이 훔친 아이디어를 제안한 연구원이 살아있을 때는 포스트닥인 위치에서는 구현 가능성이 없는 그 아이디어를,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의 이름으로  구현하고자 설득하고 애쓰는 모습이 악의 이면을  드러내고, 외면했던 그 태양광 합성 에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연설을 하던 와중에 남성우월주의로 오해받아 분노한 대중에게 조소와 모멸을 받는 장면은 악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한다.


그의 악은 마블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절대적 악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사회의 저변에 만연했지만 전체가 한꺼번에 모두 드러나기 전에는 그 깊이와 밀도를 알 길이 없는, 그저 원래 사회라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그렇다는 듯 조금 못마땅하게 인정하고 모두들 조금씩 그 사회의 작동 원리에 동조하는 어떤 거대한 힘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탐욕을 방해한 타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런 대가를 치를만한 인간임을 꾸준히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모습, 죽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쳐 대규모 사업을 벌리고 다니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노력에 밥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사기꾼 집단 취급하는 심리. 이렇게 그가 악을 행하는 상대들은 마이클 비어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속물이고 탐욕스럽게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나누자고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한 인간이 또다른 악한 인간들을 볼 때의 시선. 그것 때문에, 마이클 비어드의 행위가, 결코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악의 행위로 읽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영화 <어톤먼트>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진 작가지만, 영화적 비주얼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바꾸고 싶지 않아, 가장 재미있다는 대표작 <속죄>를 책으로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책표지가 바래가고 있는 중.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칠드런 액트>를 꼽고 싶다. <검은 개>는 1992년 작인 것 같은데, 첫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 두 마리 검은 개를 서로 다르게 의미 부여하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검은 개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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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5-28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칠드런 액트> 재미나게 읽었더랬습니다. 이언 매큐언은, 책이 나오면 어쨌든 사두게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인 듯.

CREBBP 2019-05-29 07:59   좋아요 0 | URL
현존 영국 작가 중에서는 줄리안 반스와 이언 매큐언을 좋게 읽은 것 같은데, 이 분이 좀 더 웃긴 거 같아요
 

르귄의 초기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은 굉장히 오래된 책이지만 시공사에서 재출간되면서, 표지가 사람 마음을 홀랑 앗아간다. 2004버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영문판 표지도 오래돼서 별로 읽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이 책 실물로 보면 더욱 예쁘다. 단편집으로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여년 동안 출간된 단편을 작가 스스로 선택한 선집이다. 각 단편마다 해당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첨부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젊었을 때 쓴 초창기 단편집이라 작은 이야기 속에 담긴 거대한 메시지와 대담한 이야기 구성이 매력적이다. 


사실 르귄의 작품이 그렇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 비하면 몇달 전 나온 에세이 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심심하리만큼 평이한 문장에 속한다. 첫 작품 <샘레이의 목걸이>를 읽었을 때 가슴에 뭔가 쿵 하는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헤인 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할 거였다는 걸 이 소설을 쓸 때 작가가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이 단편이 남긴 아쉽고 마음아픈 여운이 다소 풀리기를 기대하며 헤인 시리즈 첫 편인 <로캐넌의 세계>를 읽었는데, 결론은 더욱 아쉬웠다. 얘기를 만들자면,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아 돌아온 그 충격적인 순간부터 얼마든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로캐넌의 세계>에서 샘레이는 이미 그 목걸이를 자신의 시누이인지, 딸인지에게 맡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마음을 온통 흐트러놓고, 자꾸 그 작은 단편 속의 이야기 속으로 향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겨울의 왕>을 읽고는 책을 잠시 덮고 여운을 즐기기로 했다. 르 귄의 작품을 읽으면 판타지 SF라는 쟝르에 가두기엔 너무 아쉬운 다채로운 색깔의 문학적 세계를 발견한다. 단편들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채롭고 역동적인 서사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산문을 통해 전달되고, 섬세한 배경 묘사는 독자를 책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지만, 매번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그 중 첫번째로 원고료를 지급받은 소설이라는 설명도 있고, 소설의 결말에 등장한 인물이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주요 인물이 되기도 했다는 각 단편의 앞에 들어있는 여러 설명은 더없이 소중하다. 특히 <겨울의 왕>에 대한 르 귄의 설명이 특별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남자와 여자를 he와 she로 구분해야 하는 영어권 문학의 애로 사항을 실감하게 된다. 르귄님 왈, <겨울의 왕>의 초기 집필 당시 양성인의 대명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he로 썼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she로 바꾸었다고. 그러고 보면 르귄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모든 인물들이 she 로 지칭된다. 시리즈의 후반에서 더욱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르귄이 집필 당시 남녀구분이라는 단단하게 굳어진 세상의 틀을 깨고 구분을 모호하게 한 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의 사람이 봤을 때 겨우 아이로 느껴지는 데뷰 초창기 나이의 르귄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당시 SF 문단의 생태계도 그렇고, 당연히 남성위주의 세계관에 익숙해져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구인의 언어에서 남과 여를 극도로 구분하는 문화 자체가 그와 그녀를 동시에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인칭대명사를 찾을 수 없는 언어 문화적 빈곤함(?)이 양성인을 지칭할 때 He를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 양성인 주인공이 왕이라는 사실인데,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칭 역시 나뉘어져 있고, 최고 권력자는 남성적 명칭이 더 어울렸을 테니 왕에는 그녀보다는 그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양성인의 체계가 뭔가 복잡해서 왕은 아이를 낳고, 왕의 행동 역시 어떤 섬세함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명칭의 문제는 페미니즘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이 소설의 초기 버전을 읽으면서 He와 매치되는 번역인 그 혹은 그남자로 아르가벤을 접했다면 이 소설에 대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말했다시피 소설에 등장하는 행성에 사는 게센인들은 양성인이고, 이들은 <어둠의 왼손>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눈쌓인 왕국의 동화같은 풍경과,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광속 여행에서 발생하는 시간차, 통치와 반역, 출생의 비밀 같은 서로 잘 매치되지 않을 것 같은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납치되어 세뇌된 젊은 왕 아르가벤은 자신이 왕국을 멸망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음을 알고, 아직 아이인 자기 자식 암렌에게 선양하고 대신에게 섭정을 맡긴 후, 자신은 올룰이라고 불리는 24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간다. 가는동안 우주선 안에서는 겨우 몇 시간의 시간만 흐를 뿐이지만, 각각의 행성에서는 24년이 흐른다. 아르가벤은 올룰에 12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왕국을 슬기롭게 잘 통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다시 겨울 행성으로 돌아갔을 때 자식은 늙고 폭군이 되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패기넘치고 젊은, 왕국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아르가벤을 알아보고 다시 반역을 꾀하여 아르가벤을 옹립하고자 한다. 늙은 왕이자 자신의 딸(아들)의 목을 베는 젊은 왕. 얼마나 아름답고 비극적인가. 


이렇게 쓰니 스토리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풍성한 은유와 아름다운 시적 판타지 사이를 넘실거린다. 소설의 구조는 몇몇 개의 스냅 사진을 설명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시간을 점프하고, 그 빈 시간의 공백들은 더욱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젊은 엄마(아빠)와 늙은 딸(아들)이라는 반전된 구조. 아르가벤->암렌->아르가벤->암렌으로 순환되는 통치자의 이름이 암시하는 영원한 부모-자식 간의 반역과 선양 구조는 더욱 깊은 사색과 추리 속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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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작품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몇달 전에 접하고 설레며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본토에서도 5월 7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집인데, 테드 창의 국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속도의 빠른 번역이다. 번역은 이전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김상훈이며, 출판사 역시 엘리로 동일하다. 작품집이 최근 십여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것이어서 , 빠르게 번역출간될 수 있지 않았나 시파.  미발표작은 두 개에 불과하고, 그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같은 역자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스 시리즈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의 테드 창 팬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엔솔로지나 발표지를 통해 거의 다 읽었을 테고, 새 작품 두 개를 읽기 위해, 그리고 테드 창의 작품만 모아져 있는 책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사게 될 터인데, 미국 사이트에서는 목차(작품 목록)을 보기가 어려웠고, 알라딘 홈에도 목차가 빠져있고, 미리보기도 없다. 다행이도 국내 다른 서점에서 작품 목록(목차)가 올라와 있어서 긁어온다. 옮긴이의 말이 511쪽에서 시작되니, 꽤 두꺼운 책인데, 가격은 14000원 대로 합리적이지만, 이미 출간되어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개 소유하고 있을 가장 긴 150쪽짜리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를 빼면 대략 350쪽 정도니,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십여년 간 주기에 한 번씩 출간되는 테드 창의 작품집을 안살 이유가 없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에서 한 직물상인이 사업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주인은 그를 워크샵으로 데려가 연금술을 사용하여 만든 검은 돌 아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미래로로 통하는 게이트이다. 상인이 흥미를 보이고, 가게 주인은 그에게 미래의 자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은 카이로에  과거로 통하는 또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위키 영문판 참조함).  2007년에  subterranean에서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Fantasy & Science 9월판에 실렸다. 구글링하면 전체 텍스트가 PDF로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가 맨 앞에 뜨는데, 중국의 한 유명 대학 사이트여서, 합법판적지는 잘 모르겠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2008년 앤솔로지인 Eclipse 2에 실렸고,  단편 부분 로커스와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저자의 허락 하에, 전체 텍스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nightshadebooks.com 에서 찾으면 된다. 위키 영문판에도 링크가 있다. 짧은데도, 위키에 나온 플롯은 뭔가 길고 복잡해서 뭔소린지 모르겠고, 아마존 리뷰어의 말을 빌리면, 로봇들만 사는 한 대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기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하는데, 한 로봇이 해부학을 탐구하며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 리뷰어 Bradley Bervers 리뷰 참조)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는 흥미롭게도 네이처 지에 실린 짧은 단편인데, (네이처에 단편소설도 실린다는 건 처음 알았음), 이 스토리를 Year's Best SF(2006)에 실은 편집인인 David Hartwell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또다른 소설적 탐험'이라고 한다. 10여 페이지 되는데 한 다섯장 정도 넘기면 다 읽을 것 같고, 워낙 짧아서인지 이 이상의 스토리 소개는 찾을 수 없지만, 기계로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소설로, 삶의 구석구석 침투한 소프트웨어의 주기적 변화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이야기가 주는 감성적 울림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작년인가 몇달 전쯤인가 시간 개념이 좀 없어졌는데, 아무튼 이 중편을 읽고 써서, 알라딘에게서 2만원을 받아 리뷰 쓰는 자신감까지 준 작품이다. 2010년 로커스, 휴고상 수상. 지난번 리뷰에 상세한 내용을 적어놓았으므로 플롯 소개는 생략.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Dacey's Patent Automatic Nanny)는 2011년 The Thackery T. Lambshead - Cabinet of Curiosities 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소설로, 찾아보니 이 앤솔러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테드창의 이 소설은 Holy Devices and Infernal Duds: The Broadmore Exhibits 라는 파트에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앤솔로지에 흥미가 생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은 2013년 subterranean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4년 휴고상 중단편 후보에 올랐고, 넷플렉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 하면 주로 기억 장치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주요 테마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이야기 도중 누구 말이 맞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화면에 재생하여 같이 돌려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재생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각 영상이 펼쳐지고, 대화와 소음까지 모두 그대로 재생된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불러내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의 섬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이 소설 역시 같은 모티브를 사용하는 것 같다. 블랙미러 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지만, 기억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테드 창의 시점에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는 2015년 e-flux라는 인터넷 저널에 발표된 작품으로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2016에 실렸고, 나머지 두 작품은 유일하게 미공개 작품이다. 따지고 보니, 거의 1년에 겨우 단편 하나씩 발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작품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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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 1서〉 4장 16절


고골의 단편 <외투>를 읽다 보면 19세기 러시아에서 가난한 서민에게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맞설 외투 하나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고골보다 약 반세기 후대 문인이었던 톨스토이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두 수선공 부부에게는 헤진 낡은 외투 조차 둘이서 하나를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옷이다. 모든 생활비가 먹는 데 다 들어간다면 어떻게 외투를 장만할 수 있겠는가. 요즘도 값비싼 브랜드의  최고급 재질 거위털 패딩이나 캐시미어 코트 같은 것들은 서민적 월급으로는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렴하고 따뜻한 대안도 시장에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둘이 같이 번갈아 입던 코트 마저 더는 입을 수가 없게 될만큼 다 헤어져 버렸다. 벼르고 별러 2년을  모으고 또 모아 부인은 드디어  2 루블이라는 약간의 돈을 모았고 외상으로 받을 돈을 3루블을 받아 합치면 외투를 만들 수 있는 가죽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남편에게 외상값 3루불을 받아 코트 만들 가죽을 사 오라고 내보낸다. 추운 겨울 구두공 세몬은 아내의 낡은 외투 속에는 아내의 누비옷을 끼어 입고 외상값을 받으러 다닌다.


생활고는 그에게 구두를 맞춘 농부들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가는 곳마다 구두값은 받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한다. 반면 외투 가죽상은 그에게 외상은 절대 안된단다. 겨우 수선비의 푼돈을 받아 술을 진땅 마시고 수선할 털신 한켤레를 덜렁덜렁 들고 돌아오다가 혹독한 추위에 발가벗은채 웅크리고 앉은 한 청년을 발견한다. 그냥갈까 도와줄까 고민하던 구두수선공은 외면하던 발길을 돌려 자신의 헤진 외투를 벗어 입히고 신발을 신겨 집으로 돌아온다. 당장 가족의 끼니인 빵조차 부족해 걱정을 하던 마트료냐는 새 외투를 만들 가죽은 커녕 헤진 외투까지 남에게 주고, 군입까지 달고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잔뜩 화가나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칠줄 모르던 잔소리는 청년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는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잦아들고, 이어서  가족이 먹을 빵과 차를 나누어주고 집에 머물게 한다. 


한 밤중에 벌거벗겨진 채 추운 거리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 청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구두수선공도, 그의 아내도 사정을 물어보지만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고,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고 말할 뿐이다. 이름은 미하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집에 묵으며 구두 수선일을 배워 돕기 시작하는데, 구두 만드는 솜씨가 빼어나 가게는 날로 번창하고 멀리서까지 믿고 맡기려고 이 곳을 찾아오는지라, 살림은 나날이 


한 거만한 신사가 독일산 고급 가죽을 들고 나타나, 1년이 지나도 헤어지지 않도록 부츠를 지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고소미를 시전하여 감옥에 넣을 것이라 협박하며 돌아간다. 세몬은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썰미도 정확하고 빠른 미하일에게 일을 시켰는데, 헐, 부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놓지 않는가. 놀라 자빠지려고 하는데, 그 부츠를 부탁했던 신사의 하인이 나타나서는 자신들의 나리가 마차에서 갑자기 죽었다며 부츠는 필요없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미하일을 더없이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게 된 이들에게,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구두를 맞추는데 그 중 한 아이는 발을 절고, 미하일은 아이들을 마치 오래동안 알던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렇다. 6년 전 남편이 나무를 베다 깔려 죽은 후, 만삭으로 홀로된 아이들의 엄마가 홀로 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  그 아기 중 하나가 죽은 엄마에게 깔려 장애를 입었고, 자신도 8개월된 아이가 있었던 이웃이었던 이 여인이 젖을 셋에게 나누어 키우다가 자신의 아이는 2살때 죽고, 이 아이들을 입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천장을 향해 미소짓던 미하일은 이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알고 보니 미하일은 대천사 미카일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죄를 지어 인간의 땅에 떨어졌고, 세 가지 진리를 깨달은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어서 가서 그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와라. 그러면 세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벌거벗은 채로 인간의 땅에 떨어진 대천사 미카엘은 쌍둥이들을 만난 후에야 하느님이 말씀하신 세 가지 진리 중 마지막까지 물음표 상태였던 남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고 이제 세 개의 해답지를 들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구두수선공과 아내를 만나면서 첫날 알게 되었고,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거만한 신사의 일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 쌍둥이들을 길러온 여인에게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진리는 무엇일까요? …. 는 아이들 독서토론 주제일 듯. 


농민의 교육에 힘써왔던 톨스토이는 농민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로 알려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누구나 복음서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러시아 민화를 각색한 것들이라고 작가해설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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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4-2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혜심 <소비의 역사> 보니 옷도 중요한 유산 품목이더군요. 옷을 차등 분배하는 것에서 고인과 얼마나 각별했던가를 살펴 볼 수 있던^^; 패스트 패션 시대지만 이런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이야기가 그저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요즘의 계급 차도 그에 버금가는 거 같아서겠죠.

CREBBP 2019-04-29 10:12   좋아요 0 | URL
한국에선 고인이 입던 옷은 약간 좀 뭔가 거림칙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나아졌지만 그래서 중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인이 무슨 병에 걸렸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밍크 코트 같은 고가품은 또 사정이 달라지겠지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안톤 체호프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얄타라는 지명은 얄타 회담으로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관계로 친숙하다.  이 소설에서 안나와 구로프 두 남녀가 만나게 되는 일탈의 공간이다. 우크라이나 아래 크림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톨스토이는 여기에 여름 별장을 가졌으며 체호프는 몇년간 이곳에 체류했었다고 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불륜의 원조격인 안나 카레리나와 첫이름이 같다.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길고도 상세한 불멸의 서사 속에 담긴 안나 카레리나의 이야기와 달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얄타의 나른하고 지루한 휴양지에서 만남과 그 이후 계속되는 불륜이 아주 짧은 단편 속에 간략하게 담겨있다.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정사를 벌이고 파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리나와 유사하다.  안나의 일거수일투족과 그녀의 변덕,  그녀의 불륜으로 인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심리 상태까지 톨스토이의 붓끝으로 속속들이 시대 속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안나 카레리나와 달리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감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구로프가 느끼는 방식과 구로프에게 던지는 몇 마디 말에 의지한다. 


휴양지에 혼자 온 구로프는 이미 또래의 아내에게서는 싫증을 낸 지 오래로 외도를 밥먹듯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일종의 우월적이거나 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어서 여성을 '저급한 인종이'라 지칭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갈아치우며 여성 편력을 드러내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에게 여성은 즉각적인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 설령 뛰어난 미모와 정신을 소유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오래 가는 경우가 없고, 그 일탈로 인해 오히려 늘 곤경을 겪게 하는 존재이다. 같은 기간 얄타에 혼자 온 안나가 스피츠 한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쉽게 접근해서 쉽게 정사를 벌이고 때가 되어 헤어지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얄타에서 헤어지며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서로에게 인정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잊혀지리라 생각했던 안나를, 모스크바로 돌아온 구로프는 한 달이 넘어도 잊지 못하고 더욱 더 절절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온통 마음 속에 안나 뿐인 구로프는 그 이야기를 주위에 하고 싶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죽하면 아내에게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동료에게 얘기를 꺼내지만 주위를 끌지도 못한다. 결국 그를 둘러싼 모든 일상의 사교는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진다. 단지 안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한 구로프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사는 도시로 찾아간다. 하루를 종일 집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체념하지만 곧 (그녀가 관람할 게 뻔한) 오페라 공연 소식을 듣고 극장에 나타나 안나의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막간에 키스를 퍼붓고 애정을 고백한다. 깜짝 놀란 안나. 구로프 못지 않게 그를 그리워했던 듯 보여지는 안나는 당황해하지만, 자신이 모스크바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제 둘은 매달 대학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모스크바에 하루씩 와서 호텔에 묵으며 구로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안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에게 자상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위선을 알고 탄식한다.   자신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진실된 세계가 아니며 가식의 세계이며 오로지 안나와의 짧은 만남만이 진실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거짓의 세계에 살아가야 함을 막막해하고 슬퍼한다. 안나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진실만의 세계일까. 


이미 얄타에서 개에게 뼈를 주겠다며 접근해서 정사를 벌이고 나서 안나는 자신이 타락한 여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자신을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될 거라며 울먹이며 죄책감에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구로프는 짜증이 났으며, 이미 죄많은 여인의 모습을 느낀다. 타락은 여성 혼자서만 했단 말인가. 함께 한 타락에, 한 사람은 타락했다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자책하고 애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타락을 경멸한다. 여성의 타락했다는 호들갑에 속으로는 멸시와 조소를 보내며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구로프의 이 '진실된' 사랑이야말로 애초에 거짓으로 가득했다. 


안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나가 얄타에 온 이유는, 부족함 없는 상류 사회에서 성실하고 착한 남편에게 지루함을 느끼고는 뭔가 새로운 걸 찾아 서다.  호기심에 가득한 채 다른 삶을 기대하며 얄타라는 도시에 찾아온 배경에는 남편에게 한 아프다는 거짓말이 있다. 안나의 일탈에 대한 환상과 구로프의 여성 편력이 만난 것인데, 남자의 처신과 여성의 갈망은 뭔가 허위와 가식 속에서 뭔가 균형을 찾은 듯하다.


'다른 삶이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어요! 제대로, 제대로…. 호기심이 저를 괴롭혔어요..(안나 세르게예브나)'


이제 둘은 도둑처럼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함께하는 의미없는 모든 공적 사교가 끝난 시간 오로지 안나의 눈물과 함께 하는 짧은 만남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안나를 만나러 가는 날 머리가 세어버린 자신을 보며 여성들이 다 늙어빠진 자신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구로프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갖지 못한 어떤 환상을 구로프에 덧씌워 놀고 그 환상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 짧은 깨달음.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일상과 진정한 사랑 중 무엇이 진실이냐는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독자가 되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와 달리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한 구로프가 이제 와서야 진실된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도둑 사랑이라는 이 굴레를 어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아직도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의 나이의 두 배인 늙어가는 구로프를 안으며 안타까움과 이룰 수 없는 연모에 눈물 흘리고 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사내의 가벼운 조소와 거친 오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늘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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