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유고상은 AI와 로봇에 대한 소재가 봇물을 이루었다. 제목만으로도 그렇다. 'OObot'이 제목에 들어가는 봇 소재 SF가 장편을 제외하고, 중편, 중단편, 단편 모두에서 후보작에 올랐으며 그 중 두 편은 수상작이다. 


마샤 웰스의 <All systems red>는 현재 <The Murderbot Diaries> 시리즈로 3편까지 나와 있으며, 마지막 편인 4편은 10월중 출간 예정이다. 곧 굿리즈와 아마존 등에서 좋은 반응이어서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중편인데다가, 영문판 이북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직접 원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1편만 읽고 멈출 수가 없는 게 문제다. 














1편 <All Systems Red>는 SecUnit이라고 불리는 로봇이 어떤 행성에서 인간을 구하는 게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스토리상으로는 그닥 특별한 점은 없지만, 이 보안유닛의 행동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엽다. 더욱이 로봇의 시선으로 1인칭 화자가 진행하는 스토리이기에 인간이 만든 봇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매력이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보안유닛은 알고 보면 유기적 부분과 기계적 부분이 섞여 있는 반로봇반인간 상태로, 의식이 있다는 설정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설정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리뷰를 통해). 2편에 가서는 더욱 진지해지는데, 기계적으로 지워진 기억을 찾기 위해 안전한 '주인'을 떠나 뇌의 유기적 티슈에 얽혀져 남겨진 기억을 단서로 과거를 찾아 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으로,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기계와 교감한다. 2편은 아직 1/5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1편에서 축적된 배경과 캐릭터와 쌓은 친분으로 더욱 사랑스러워진 murderbot의 행동이 더욱 흥미롭다. 



편이 Novella와 Novellete로 나뉘는데, Novella는 헐렁헐렁하게 편집하면 책 한권으로도 엮을 수 있을만한 분량이고, Novellete는 도저히 그거 하나로 책 한 권 냈다가는 욕만 디지게 먹을만큼 짧은 중편, 즉 단편과 중편의 중간정도 분량이다. 수잔 팔머의 <Secretes life of bots>는 Clarkesworld Magazine September 호에 실린 작품으로 해당 매가진의 온라인 판을 통해 인터넷에서 바로 읽을 수 있고, 팟캐스트로 오디오북까지 제공된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다용도 로봇은 자기가 비활성화된 동안 엄청난 시간이 흘렀으며, 그 엄청난 시간 속에서 봇들의 세계 역시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봇들은 전문화되었고, 자신에게는 보도 듣도 못한 봇넷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봇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수세대만에 깨어나서 겨우 해충 퇴치 역할을 부여받은 봇9은 다른 봇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탄 우주선과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 우주선과 충돌해 모두 파괴될 위험에 있음을 알게 되고 독자적 행동을 하는 내용이다. 


단편 부분에서 AI와 로봇 분야의 후보에 오른 작품은 Vina Jie-Min Prasad의 <Fandom for robot>이다. Uncanny Magazine Sep/Oct 2017에 실렸고, 역시 온라인 판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이 잡지도 팟 캐스트를 통해 오디오북을 제공하는데, 이 작품은 오디오북으로는 제공되지 않는 듯하다. 내용은 50년대 제작된 지능형 로봇 로봇트론이 투박하고 오래된 지능형 로봇이라는 이유로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아 로봇 박물관에서 지각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쇼를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떤 소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일본 애니를 조사하다가 그 애니에 빠져 팬픽도 쓰고, 인간과 교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챕터에서, 과학소설들이 지능과 의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로봇에게 지능은 있지만 의식은 없다는 것이다. AI와 관련된 모든 영화와 과학 소설의 기본 플롯이 의식을 갖게 되는 마법적인 순간을 갖게 되고, 이후 인간과 로봇은 사랑(혹은 우정)에 빠지거나 로봇이 인간을 모두 죽이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틀을 휴고상의 세 후보작 및 수상작들은 극복했을까? 우선 <murderbot>을 보면, 이 SecUnit은 분명 의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굉장히 민감한 상태의 감정에 처하고, 그것을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을 숨기지도 못한다. 이 소설에서의 '매직'이라면 2편에서 밝혀지는 것인데 단순 기계가 아니라 construct라 불리는 유기체와 기계의 합성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 생체적 신호를 처리하는 두뇌를 모방해 의식과 감정과 관련된 처리를 맡긴다는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이 murderbot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단순 기계들로서, 네트웍을 통해 지식을 교환하는데, 거대한 선체를 가진 우주선 자체가 마스터 로봇이고, 그 마스터 로봇이 모든 로봇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설정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대하는 모든 기계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인공지능 모듈을 심고 네트웍 연결을 통해 빅데이터와 연결하기에,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유사한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의식의 측면과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하라리의 일반화에 반은 들어맞지만 반은 그렇지 않다. 봇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데, 만일 우주선과 승무원을 구하는 일이 승무원들의 명령을 위반하는 일과 상호 모순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알고리즘이 처리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의식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팬덤 오브더 로봇은 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과학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짧은 소설 속에 인간과 기계에 대한 교감을 담았다는 면에서 하라리의 귀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로봇이 팬픽을 쓰는 이유는 의식의 결과라기 보다는 머신 러닝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오타쿠적 행위를 통해 기계와 인간이 교감하는 것은 시사하는 게 크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졌다는 그 '대단한' 의식이란 게 결국 무엇이냐라는 문제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Best Novel

  • The Stone Sky, by N.K. Jemisin (Orbit)
  • The Collapsing Empire, by John Scalzi (Tor)
  • Provenance, by Ann Leckie (Orbit)
  • Six Wakes, by Mur Lafferty (Orbit)
  • Raven Stratagem, by Yoon Ha Lee (Solaris)
  • New York 2140, by Kim Stanley Robinson (Orbit)

Best Novella

  • All Systems Red, by Martha Wells (Tor.com Publishing)
  • “And Then There Were (N-One),” by Sarah Pinsker (Uncanny, March/April 2017)
  • Down Among the Sticks and Bones, by Seanan McGuire (Tor.Com Publishing)
  • Binti: Home, by Nnedi Okorafor (Tor.com Publishing)
  • The Black Tides of Heaven, by JY Yang (Tor.com Publishing)
  • River of Teeth, by Sarah Gailey (Tor.com Publishing)

Best Novelette

  • “The Secret Life of Bots,” by Suzanne Palmer (Clarkesworld, September 2017)
  • “Wind Will Rove,” by Sarah Pinsker (Asimov’s, September/October 2017)
  • “A Series of Steaks,” by Vina Jie-Min Prasad (Clarkesworld, January 2017)
  • “Extracurricular Activities,” by Yoon Ha Lee (Tor.com, February 15, 2017)
  • “Children of Thorns, Children of Water,” by Aliette de Bodard (Uncanny, July-August 2017)
  • “Small Changes Over Long Periods of Time,” by K.M. Szpara (Uncanny, May/June 2017)

Best Short Story

  • “Welcome to your Authentic Indian Experience™,” by Rebecca Roanhorse (Apex, August 2017)
  • Fandom for Robots,” by Vina Jie-Min Prasad (Uncanny, September/October 2017)
  • “The Martian Obelisk,” by Linda Nagata (Tor.com, July 19, 2017)
  • “Sun, Moon, Dust” by Ursula Vernon, (Uncanny, May/June 2017)
  • “Carnival Nine,” by Caroline M. Yoachim (Beneath Ceaseless Skies, May 2017)
  • “Clearly Lettered in a Mostly Steady Hand,” by Fran Wilde (Uncanny, September 2017)

출처(http://www.thehugoawards.org/hugo-history/2018-hugo-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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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9-13 15:58   좋아요 0 | URL
대적하는건 한 물 간 SF 적 공상인 거 같고요(하라리 선생도 동의) 보다는 인공지능을 독점하는 자의 윤리에 좌지우지할 위험성이 있겠죠 ^^
 












애초 두 권 따로 출간되었는데, 종이책은 품절이고, 이북은 알라딘에서는 두권 세트(2만2천원)와 2편(1만1천원)만 팔고 있다. 이북은 PDF 파일이라 폰이나 리더기로는 읽기 불편하고 창문짝 만한 PC 스크린으로 즐겁게 읽었다. 가족이 차를 몰고 유라시아와 남미 여행을 1년간 하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적은 여행기이다. 1편은 유라시아, 2편은 남미다.






1편 유라시아



넓디 넓은 유라시아 동쪽 끝 우리나라는 반도에 자리잡고 있지만 남북으로 갈라져 통행이 금지된 덕에 섬 아닌 섬나라다.  육로 이동은 좁은 남쪽 땅덩어리에서 동서로 300km 남북으로 400km가 최대 범위다. 유럽에서 캠핑카와 차로 자유롭게 타국을 여행하는 게 보편화된 것처럼 통일이 되면 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이 일도 아닐텐데 내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내 아들이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제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세대도 끝나가고 다음 세대에는 더욱 절실함은 사라질테고 남북 대치 국면을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므로 통일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지척에 있으니 서로 자유롭게 왕래라도 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렇게 섬 아닌 섬에 살지만 잘 살펴보면 차로 대륙 횡단을 하는 방법이 있다. 동해시에서 배를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차를 싣고 간 다음 거기에서 유럽까지 러시아와 몽골,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방법이다. 저자 이름이 가수 조용필과 같은데, 조용필은 랜드로버에 본인 포함 가족 3인과 캠핑장바들을 배에 싣고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건너가 시베리아 ㅡ 몽고 ㅡ 중앙 아시아 ㅡ 러시아 ㅡ 발트 3국 ㅡ 동유럽 북유럽 ㅡ 서유럽 대충 이런 순으로 여행했다. 4월말에 시작한 여행이 70일동안 2만1천 km를 달려 모스크바에 도착했고 이후 영국을 끝으로 유럽을 돌았을 때가 7,8월. 그동안 타이어는 최소 6차례 이상 교환 서스펜션이니 뭐니 하는 부품들도 차례로 고장나고 중앙 아시아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깡패 경찰들에게 부당하게 돈을 뜯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주차한 동안 차 내의 소지품을 거의 다 도난 당해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했다. 



가장 아슬아슬했던 건 키르기스탄인가 하는 곳에서 가족들이 먼저 도보로 국경을 통과한 후 운전자에게 자동차용 서류를 요구해서 생이별을 해야 했던 순간이다. 뭐 휴대폰 같은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연락이야 되었겠지만 한 사람은 차와 함께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나갔기 때문에 다시 들어오지 못해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아찔한 순간인가. 2015년 4월 19일에 출발할 때 그의 블로그 회원은 손에 꼽혔으나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고 다음권에 계속되는 남미 북미 여행을 끝냈던 같은 해 10월 19일에는 4천명으로 늘어 있었다. 블로그 독자들은 저자가 한국인으로서는 거의 처음 시도하는 자기 차로 직접 운전하는 여정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을 것이므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을 것이리라. 


사진 위주라 비슷한 여행을 꿈꾸거나 대리만족이라도 얻으려는 독자에게는 종이책을 추천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2016년 출간인데도 품절중이시다. 여행서는 정보 업데이트가 안되면 정보가 무가치해지니 다시 찍을 때는 신중해야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여흥 정보책이라기 보다는 여정을 따라 사진과 경험을 쓴 글이기에 그럴 염려는 안해도 될거 같은데 말이다. 차로 하는 다른 여행 책자가 더 많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내용상으로 보면 사실 유럽 부분은 널리고 널린 다른 여행서들과 크게 차별화된 점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동해에서 중앙 아시아 몽골 여정은 다르다.  고화질 짱짱 티브이에서 많은 준비와 현지 도우미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찍어 내보내는 정제된 여행 프로그램은 많이 접하지만 이 책에서 주는 것은 개인이 직접 부딛치고 얻은 값진 개인 자동차 여행이라는 경험과 정보다. 50차선에 몽골 초원을 달리거나 고원 터널이라는 곳이 포장도 안되어 있고 경사로 웅덩이에 구불구불하고 조명도 없는 곳을 지날 때의 아짤함을 그리고 해발 4천미터에서 차가 고장나고 고산증에 걸리고 하는 경험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동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극오지의 경험이다. 




2편 남미


4개월의 유라시아 여행을 마치고 10월 런던 틸베리 항에서 브라질로 차를 선적, 운임, 관세, 수수료, 벌금, 컨테이너 사용료, 등을 합해 예상의 서너배가 넘는 천만원 넘는 비용을 지불(중고로 차를 하나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음..) 후, 모로코와 쿠바 여행후 브라질 리우에 차를 찾으러 갔는데, 통관문제로 3주나 발이 묶인다. 차를 몰고 리우를 떠난 날은 12월 22일. 이 때부터 남미 중미의 도시와 유적지 및 자연풍광을 거쳐 1년여를 총 9만킬로미터를 차를 몰고 여행을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까지는 다른 남미 나라들에 비하면 그나마 치안이라던가, 공무원의 부패나, 도로 사정 같은 게 그나마 덜 나쁜 듯했다. 자연 풍광도 아름답고.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내용이 여기저기 들른 곳에 대한 자연에 대한 감상과 이 주를 이룬다.


칠레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는데 출국사무소가 없어서 되돌아간다. 차도 슬슬 고장나기 시작이다. 페루의 해발 3,800 티티카카 호숫가 언덕 고산 도시 푸노에서는 차가 고산병에 걸려 ,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에콰도르 지붕열차를 타려고 먼 길을 돌아갔는데 매일 출발한다는 블로그 및 여행 서적 정보와 달리 매주 수요일 한차례로 축소되었다. 여행가려면 블로그나 서적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나도 전에 말레이지아에서 몰라카 가는 차를 타려고 새로 산 여행서를 참조해서 찾아간 곳이 엉뚱한 곳이어서 반나절을 낭비한 적이 있는데,  여행와서 반나절이면 호텔과 여정을 생각할 때 무지무지하게 비싸게 지불한 그곳에서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타이어 교환시 막내 아들이 크게 다칠뻔 하게 할 뻔 했던 차가 드디어 콜롬비아 첩첩산중에서 멈춘다. 겨우 마을까지와서 정비소 찾았으나, 안된다고 해서, 수십km 떨어진 큰 마을에서 견인해갔으나 거기서도 불가능, 하루종일 정비소를 뒤졌으나 실패하고 몇일만에 다른 견인차로 세번째로 큰 도시 칼리까지 가서 수리를 알아본다. 문제는 이 메이커 차가 이 나라에 귀하다는 것이다. 여행포기해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그 와중에 국내의 많은 분들에게서 연락을 받고 힘을 얻어  5일만에 보고타로 가서 가까스로 수리에 성공한다. 실시간 블로그와 익명의 이웃의 힘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렇게 천신만고끝에 하는 여행이지만, 천만다행인 건 에콰도르 지진을 피했다는 것이다. 후에 묵었던 호텔 인근 산이 다 무너져 내렸다. 다치거나 갇히지 않아 다행이다. 이제까지도 중남미에서 개고생을 했지만 진짜로 개고생 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없는 구간, 다리엔 갭을 통과해야 콜롬비아에서 육로로 파나마로 이동할 수 있다. 더 위험한 이유는 게릴라 반군의 주된 활동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결국 컨테이너에 싣고 파나마로 보낸다. 선박회사는 개인과 거래 하지 않아 많은 비용, 복잡한 절차, 검색 등이 필요한 에이전시를 이용하게 된다. 차를 파나마로 보내고 났더니 이번엔 파나마로 입국하기 위해 공항 발권에서부터 말썽이다. 파나마에서 출국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엔 쓰지 않을 티켓을 사람 수대로(4인 가족) 구입하는 일도 생겼다. 



앉을 곳도 없는 파나마 세관에서 차량 임시 반입 허가서 한장을 받기 위해 75분 벌서고 있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몇일 있을 나라에서 6개월짜리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야 했고, 이틀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13개의 스탬프와 서류를 받고 엄청난 수수료 지불 후 겨우 세관에서 에서 차를 인수하게 된다. 개고생길을 포기한 것에 대한 대가다. 



중남미가 전체적으로 다 치안이 나쁘지만 멕시코는 경찰 마저도 위험하며, 산적 떼강도 권총강도가 온갖군데서 출몰하니 조심하라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얘기를 듣는걸 보니, 멕시코 여행도 아웃이다. 세관원들은 외국인이 봉이다. 20일후 출국하는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180일 입국 필증을 찍고는 180일어치의 출국세 요구하는 센스. 듣던 중 반가운 소식 하나. 지나가다가 우연히 랜드로버 서비스 센터에 들렀다가 대접 받고 광고까지 찍는다. 한국서 올만큼 차가 튼튼하다는 것과, 서비스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는 광고 내용까지 보태서. 그래서 광고비는 받았는지 모르겠다. 선물은 받았다고 하던데.


과테말라에서는 담당자 퇴근해서 입국 통관이 안돼 보세 구역(? 면세구역 말하는 듯)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도 생긴다. 이런 남미에 있다가 미국으로 간 일행은 쾌적함에 한 숨 돌리지만, 워싱턴에서 무장 경찰에게 포위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일대 교통은 마비되고 건물 위의 총들이 차량을 겨누는 상황까지 마주친다. 차는 견인되고 워싱턴 시내 진입은 금지되었다는 딱지와 함께 되찾는다. 주차장 찾는 모습에 수상한 차량으로 몰려 생긴 일이다. 그러고보니 그 위험한 나라들에서도 총을 겨눈 사람은 없었는데, 미국이란 나라가 가장 무섭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 450일 만에 집으로. 인천세관은 15개월동안 거친 세관중 가장 친절한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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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9-11 10:28   좋아요 2 | URL
저도 가족 1인이랑 블라디보스톡 출발 바이칼 호수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는데, 차량 고장 얘기에 찌글어져있어요

카알벨루치 2018-09-1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대단한 분들이네요! 제 지인중에도 이탈리아 관광갔다가 지갑이랑 폰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구요 맥도날드에서~치안과 위생수준이 엉망이라고 하던데~ㅎ

CREBBP 2018-09-11 10:29   좋아요 1 | URL
유럽의 주요 관광지들에서 개인 여행중 돈 안잊어버린 사람을 거의 못본 것 같아요 ㅋㅋ
 


이기호 -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문학동네 2015년 봄호에 처음 발표한 소설인데, K 시리즈의 단행본으로 영역본과 함께 나온 이후, 한승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상작품인 <한정희와 나>와 함께 실렸고, 이후 이기호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비로소 이기호의 단편들이 한꺼번에 묶여 나왔다. 나는 한승원문학상수상작품집 <한정희와 나>에 실린 작품을 읽었고, 이기호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지만, 이 단편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기록을 남긴다. 


집 바로 앞에서 허름한 텐트를 치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1인 시위를 하는 권순찬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여름에 시작한 일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도 해결될 기미가 없고, 춥고 불편한 권순찬을 걱정하는 ‘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일을 해결해주기 위해 십시일반한다. 알고 보니 권순찬의 사연은 이렇다. 얼마전 죽은 양어머니가 사채를 갚아달라며 주고 간 계좌로 뒤늦게 700만원을 넣고 나니, 이미 어머니가 입금을 한 상태여서 중복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채업자는 연락 두절이고, 수소문한 끝에 주민등록상의 주소로 찾아온 곳이 사채업자 대신 그 사람의 어머니가 살고있는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로, 화자 역시 이곳에 살고 있다.


사채업자의 행방을 모르는 권순찬은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사는 그 아파트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잘못입금된 돈 700만원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시작한다. 7월에 시작하여 8월이 지나고 찬바람에 보일러를 때야 하는 계절이 되도록 권순찬이 찾고 있는 사채업자는 나타나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근근히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채업자의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오며 가며 딱한 사정을 듣고 전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스티로폼이랑 박스 같이 도시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주워다 주고, 혼자 사는 분의 빈 방에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또 파트타임 청소 일자리까지 주선해주는 등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지만, 사채업자는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권순찬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은 올해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대신 돈을 걷어 그에게 건네며,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주는 돈이라 생각하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남의 돈을 두번이나 받고 연락 두절된 사채업자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큰 잘못은 없어보인다. 사채업자로서는 통장에 돈이 두 번 들어왔으니까, 이게 웬 떡이냐 했을 텐데,  권순찬의 어머니가 이미 죽은 마당에 연락처를 찾기 어려워 되돌려 주기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또 그건 그쪽 사정이고 확인도 않고 송금한 권순찬 잘못 역시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이중 입금된 돈을 되돌려 받으려고 몇달간 노숙을 하는 신세는 처량하다. 


건강 때문에 사채를 쓰고, 그걸 못갚아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양아들을 찾아가 부탁했다가 결국 자기 손으로 갚고 자신은 자살한 권순찬의 양어머니도 참으로 시대가 감추고 싶은, 암울한 뒷골목 풍경아닌가. 사채업자 어머니의 이름으로 건네는 마을 사람들의 돈을 눈물 겨운 친절로 받아들이고 감사를 드리고 떠났다면 모두에게 행복한, 오래도록 기억될 훈훈한 일화가 되었을 사건이다. 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권순찬이, 착한 마을 사람들의 호의로 잃어버린 돈을 쥐어주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그런 훈훈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들의 그 착한 모금 운동의 모티브가, 사채업자를 만나 직접 해결하고자 했던 권순찬의 목적과는 달랐었다는 걸, 그 글이 안써져서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고, 애꿎은 술에게 화풀이를 했던 (화자인) 교수 양반도, 권순찬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했던 착한 마을 사람들도 알지 못했다. 


선함, 착함 이런 것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불편함을 씻어버리고픈 행위일 수 있다. 교수가 권순찬의 멱살을 움켜쥔 이유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아파트 근처에서 노숙하는 일을 겨울이 될 때까지 봐야 하며, 이렇게 훈훈(하다고 생각했던)한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겨우 술을 끊고 글을 쓸만한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그 막막했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이, 이 먼지같은 남자가 내 인생 내 삶의 언저리에서 눈에 보이게 알짱거리는 채로 추운 겨울을 맞게 될 것에 대한 불편함인 것이다.  그는 애초에 청소 안한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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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이 묶여져 있는 세트를 샀는데 그 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먼저 읽었다.  첫번째 평은 짧다는 것. 아주 짧다. 텍스트의 양은 세 권 묶인 것 다 합해서 일반 서적 한 권 분량. 그림은 판화로 정선껏 제작했다지만 조금 정적이고, 그닥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하루키의 사생활이나 평소 하는 생각들을 엿볼 수 있고, 그런 그의 특성이 소설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고적한 시간, 평소에 말이 없고, 특히 소설가와 문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들도 딱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글들을 쓰려면 힘들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자 마자 내막이 나온다. 이런 글의 소재가 한 50가지 정도 쌓여 있다고 한다. 거기서 골라 쓰면 된다고. 


에세이건 소설이건 하루키는 제목을 참 잘 뽑는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빤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살짝 쿨한듯 하면서, 한마디로 그답다.  세트 상품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 3부작이라는 뻣뻣한 제목으로 상품이 포장되어 있는데,  세트 내의 세 권은 다 따로따로 나온 책으로 각자의 제목이 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대충 에세이에 나온 내용이다. 하루키의 이런 유쾌한 에세이들이 잘나가면서, 김중혁 작가 같은 국내 작가들도 가볍고 재치있는 에세이 모음들을 자주 묶어 낸다. 좋은 현상이다. 


섹스를 한 다음날 티셔츠와 헐렁한 사각 팬티를 차림으로 오믈렛을 만들고 큼직한 남자, 면셔츠를 잠옷 대신 입고 침대에서 눈비비며 나온 여자가 함께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 광고에서 본 듯한 장면은 그의 상상 속에서 오믈렛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다. 영어권 나라의 레스토랑에서 soup or salad? 라고 묻는 웨이터의 질문을 슈퍼 샐러드? 라고 이해하고는 그거 좋겠네요 슈퍼 샐러드주세요 하는 장면을 실은 핀란드 영화 애기. 또는 헬스클럽의 바이크에서 생산되는 노동력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고 그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성욕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있다. 


어떤 책에도 다른 책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터프한 아프리카 대륙 종단기인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 ,과학자들의 실화를 모은 《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를 카트에 담아둔다.  카포티 책이 하도 많아, <마지막 문을 닫아라>가 실린 단편을 찾느라 손가락 품 좀 팔았다.












《아프리카 방랑》 속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폴은 동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참으로 살벌한 지역이어서 오락거리도 없고 볼거리도 없고, 마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진절머리가 나던 참에 한 일본인을 만났다. 일본 기업에서 파견 나온 기술자로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폴은 기뻐하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내 상대가 말도 안 되게 지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얘기가 틀에 박혀 있다고 할까, 조금도 깊이가 없다. 그는 이러느니 혼자 벽 보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다.


투루먼 카포티의 단편집은 꼭 읽고 싶다. 그의 소설 제목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카포티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한 줄, 옛날부터 왠지 이 문장에 몹시 끌렸다.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 내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이 문장을 염두에 두고 붙인 제목이었다. nothing things라는 어감이 정말 좋다.












토르 고타스의 <러닝>을 읽고 커다란 귓밥을 파낸 듯이 개운하게 풀린 오래 묵은 의문 하나가 풀리는 대목.

고타스 씨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전령은 온전히 직접 달리는 걸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 그냥 달리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말을 타고는 가지 못할 좁은 길이나 험한 길도 거침없이 갈 수 있다. (..)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필리피데스라는 전령은 마라톤 전쟁 전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서한을 들고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이틀에 걸쳐 약 466킬로미터를 달렸다. (...) 그러나 스파르타 왕의 대답은 “노”였다. 지원군은 보낼 수 없다. 필리피데스 씨는 실망하면서 같은 길을 또다시 달려서 돌아왔다. 그리고 일설에 따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그 길로 마라톤까지 40킬로미터 넘는 길을 달려 전쟁의 결과를 지켜본 다음 다시 달려서 아테네로 돌아가, “이겼다!” 하고 시민에게 알리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럼 죽을 만도 하지, 


존 어빙의 <곰 풀어주기>(직접 번역한 소설)은 못찾았고(국내 번역본이 없는 것 같아), 책보다 영화와 음악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기야마 쇼헤이의 <가을> 라는 짧은 시가 좋아서 옮겨본다.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미국의 작가 도로시 파커가 자신의 묘비에 써지기를 희망한 말 ‘이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이 얘기에서 나아가 자신의 묘지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라고 적으면 어떨까를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이 문장이 제일 좋았다. <노르웨이의 숲>의 분위기를 이 평범한 문장 하나에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


스무 살 전후였던 나는 사귀던 여자친구하고도 잘 안 되고, 학교에도 흥미를 잃고, 좀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오후의 양지에 고양이와 둘이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은 나름대로 부드럽고 따스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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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진화하게 만들고, 지능이라는 저주를 내린 건 바로 우리야.



젤라즈니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지만 맨 처음 실린 작품은 ≪12월의 열쇠≫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딱 첫장을 펼치자마자 작품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첫 장만 읽으면 작품이 내 취향과 맞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과연 작품은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로와진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잉태되었지만 GMI 계약 옵션에 의거 한랭 행성종(얄료날 거주를 위해 개조된) Y7 고양이 형태로 개조된 쟈리 다크는 그에게 거처를 보증해주었던 이 우주 어느곴에서도 살아가기에 적합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축복으로 볼지 저주로 볼지는 당신을 자유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얄료냘 거주를 위한 한랭 행성종이니 고양이 형태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의 남발에 뭐야. 컬트적이고. 이 재치있고 천재적인 작가의 소설은 몇 쪽 읽기도 전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런 신선한(SF에 일천한 내 기준에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작가의 작품들은 속속 카트를 채운다. 이렇게 알쏭달쏭한 첫 문장은 실제로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의 프리퀄에 해당되고 마지막 문장은 쟈리 자크의 선택에 대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느 미래의 혹은 먼 과거의 사회. 우주 곳곳에 문명이 침투한 어느날 아이를 낳기로 한 쟈리의 부모는 출산 관리국의 조언에 따라 얄료날이라는 몹시 춥고 기압이 높은 행성에 알맞는 조건을 가진 고양이 형태로 아이의 형태를 차세대 후계자 DNA의 조합으로 결정한다. 유전자 조작이니 그런 말운 일언 방구도 없다.  뱃속에 털복숭이 고양이를  잉태하고 분만하거나 하는 자세한 설정들은 처음부터 빠져있다. 


행성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만큼, 은하계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할만큼 과학 문명이 발달된 사회인데, 설마 뱃속으로 아이를 낳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 모양의 아들을 낳지 않고 고양이 모양의 아들을 낳은 이유는 이렇다. 제너럴 광업 주식회사가 알료날이라는 행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행성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자, 아예 행성에 적합한 모양으로 개조한 인간(DNA겠지만)을 만들어냈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50~60년대 시기로 사기꾼 멜서스 인구론이 잡아먹을 듯  활개를 치던 시대니까, 인구 통제국이라는 기관이 자연스레 등장하고,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는 인구 통제국과 딜을 한 모양이어서, 그런 고양이 아기를 낳으면 교육과 의료 직업 연금 그 모든 걸 책임져주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도 자세히는 안나온다.  


영하 50도의 한냉 행성에서 거주할 변형 유전자 고양이 인간들을 대대적으로 뽑아 세계를 만들어놨는데, 그 알료날이라는 행성이 '신성폭발'로 사라져 버렸다.  졸지에 갈 데가 없어졌다. 직업과 교육 의료 등등 여러가지를 보증하는 계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쟈크와 모든 고양이 형태들은 연금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다시 정리하면, 자원 굴착을 위해 행성을 하나 개척했는데, 너무 척박해서 살 생물이 없어 그 행성에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고양이 인간)로 개조시켜놨더니 행성이 폭발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고양이 형태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행성이 어느 곳에도 없음을 안다.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와의 계약 조건에 따라 쟈리를 비롯한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답답한 기온 기압 조절 장치속에서 약물에 의존해 삶을 유지시킨다. 그들의 삶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온도는 영하 50도다. 그들은 외부로 나오지 못하고 감옥 같은 제어 장치 속에서 수당을 받으며 생활한다. 쟈리는 돈버는 재주를 가진 덕에 큰 돈을 벌어 자신들과 같은 종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행성을 구입하여 환경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12월클럽>이라는 공동체를 결성하고 이미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어떤 행성을 사들인다. 이 행성을 행성 개조 유닛을 통해 제2의 얄뇨날처럼 추운 곳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행성 개조 유닛이 풀 가동해도 행성이 영하 50도의 기온을 갖는 최적의 장소로 바뀌려면 3천년이 걸린다. 고양이 인간들은 사들인 행성 곳곳에 그 행성 개조 유닛을 세워두고 동굴에 들어가 냉동 수면 침대에서 잠을 잔다. 250년마다 3개월씩 당직을 서기 때문에 각자가 천 년당 1년씩의 개인적 시간을 투자한다. 


꿈도 없는 잠을 자고 깨어나면 3천년간의 시간의 변화는 3년으로로 압축된다. 하지만 자는 동안 행성은 행성 개조 유닛의 작동으로 끊임없이 변해간다. 쟈리는 약혼녀와 함께 2세기 반마다 깨어나 우주의 변화를 실감한다. 점점 추워지고 생명들은 멸종되거나 적응하기 위해 두터운 껍질을 두른다. 


당직을 서던 중 그들은 직립 보행하는 짐승들 중 하나가 자신들이 대들랜드라고 부르는 그 춥고 황량한 곳에까지 죽은 짐승을 가지고 오는 걸 목격한다. 쟈리는 수 세기마다 한번씩 당직을 위해 깨어날 때마다 그 생명체들이 점점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몸집이 커져 털을 진화시켰는 줄 알았는데 짐승의 털을 두르고 다닌 거였고, 이마가 생기더니 손바닥을 마주보는 엄지가 생긴다. 그리고 알게되는 사실 하나 이 고양이 형태들을 신으로 알고 제물을 바치고 숭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차피 3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인위적으로 환경을 그토록 바꾼다면 그곳에 서식하던 대다수의 생명체들은 예고된 멸종에 직면할 것이다. 적응에 성공한 소수의 돌연변이의 조합이 탄생시킨 새로운 종류의 소수의 생명만이 남게 된다. 그래도 상관 없다. 적응하는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윤기나는 털을 다듬으며, 그르렁거리던 답답한 공간 속에서 나와 마음껏 뛰어오를 제 2의 얄료날 행성을 가질 수만 있다면 다른 생명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딜레마는 그 생명체들이 지적 종족이라는 데 있다. 지적 종족이라면 무엇이 다를까. 그와 약혼녀는 한갓 짐승에 불과했던 두발 다리의 그들이 빠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목격하고는 혼란스러워한다. 자신들의 행성 개조로 인해 이 지적 종족은 결국 멸종할 것이다. 


종의 멸종을 막으려면? 방법은 있다. 변화의 속도를 늦추어 종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7천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냉동인간처럼 쭉 내리 자는 게 아나라 1천년당 1년씩의 개인 시간을 당직에 써야 하기 때문에 7년을 더 소비해야 하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투표도 해야 한다. 그 적색형태라 이름붙인 지적 종족을 보호하고 싶은 사람은 쟈리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확고하다. 그는 그 지적 생명체들에게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이 분의 최고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 아니라는 게 더 놀랍다. 작품집의 모든 소설이 가장 창작의욕이 왕성했던 초기작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도 아껴 아껴 읽어야겠다. 테드 창의 소설들이 생각났는데 테드창 읽을 때는 먼가 유식하고 철학적인 소리들을 해대서 못알아먹는 게 많았는데(못알아먹어도 재밌게 못알아먹게 만드는 이상한 테드창) 이 책은 보다 유머러스하다. 



너무 감동스럽게 재밌어서 뒤에 가서 작품설명 읽었는데 더 모르겠더라는 뭐 신화적 원형에 뿌리를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은 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엄청 어렵게 설명되어 있다.  암튼 과학 소설이란게 장르적 구분 같은 걸로 쓸모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듯한 느낌. 그냥 읽으면 인간과 신의 그 태초의 관계적 탄생을 우화적으로 재탄생시키는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고양이 토템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나무니 곰이니 하는 토템의 뿌리를 이런 식으로 상상할수 있는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새로운 소재 정말 좋다. 



지적 생명으로 나가는 진화의 시작점에 빙하기라는 극단의 추위가 압력으로 작용하고,  생물(유전)학적 메카니즘을 통해 그 극단적 추위에 적응하는 동안 , 진화된 인간의 정신은 신을 창조하고 숭배함으로써 결국 그 환경의 극적 변화에 제동을 거는 제법 개연성이 있는 상상을 신화의 탄생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SF 명예의전당 2편에 맨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토록 많은 책이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 파는 책보다 안파는 책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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