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21세기 지금 시점을 15, 16세기 대항해시대와 비교한다. 그러면서 1995년 이후 출생한 소위 Z세대를 두고 디지털 현실이 고향이며 이들이 마치 과거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한 'Z세대'에 빗댄다.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비교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대항해시대 때 원주민 학살이 일어나고, 유럽 각국의 아메리카 대륙 점령이 뒤따랐고, 그 뒤에는 대서양을 잇는 노예 삼각 무역이 전개된 것처럼 많은 역사적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더 많은 역사적 변화들이 있지만, 아무튼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일어난 변화는 지금 현재에도 대서양에 인접한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각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에 비해 메타버스는 내 편협한 관점에서 볼 때 '4차 산업혁명'과 유사한 마케팅 용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시류에 뒤처진 구세대 취급을 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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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울선언 시리즈 중 세 번째. 이 책에서 저자는 길(도로, 철도, 지하철, 항공)을 중심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하는 대서울 곳곳을 누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방문하는 지역은 크게 대서울의 서부지역(김포, 신촌, 양천, 통진, 강화도, 시흥, 광명, 군포, 안산, 고양, 파주), 대서울의 동부지역(철원, 구리, 남양주, 양평, 춘천, 원주, 하남) 그리고 대서울 너머의 지역들(수원과 경기도 남부, 천안, 아산, 안성 등 충청지역과의 경계까지)으로 나뉜다.


서울선언 시리즈를 읽다보면 느끼는 바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행정구역상 구분과 현지 주민들이 실제 생활하는 생활권역 사이의 괴리 혹은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에 강원도 원주 출신이지만 자신은 수도권 주민이라 주장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럴때면 주변에서는 강원도 주민이라고 반박하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두 번째는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 중 하나다. 한국인들이 과거 역사로부터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만을 찾아 대외적으로 내세우려 하다보니 정작 매일 살아가는 장소, 매일 지나쳐가는 공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서울선언인지 갈등도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민간신앙과 관련해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거에는 매우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실전되고 현재의 언어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역사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돌이켜볼 때, 지금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이 미래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필사적으로 복원하려는 역사가 실제와 동떨어진 신화일수도 있다. 현재 우리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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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을 시작한 것이 올해 4월 4일부터고, 매달 평균적으로 10여권이 넘는 책(많으면 30권 근처까지 갔다)을 읽었다. 여러 책을 읽다보면 나만의 독서법이 싫어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 처음에는 '문학은 2번 읽는다.'에서 시작했다. 또한 책을 사서 읽기 보다는 빌려 읽다 보니 이어서는 '중요하다 싶은 구절이 보이면 북플의 밑줄 긋기 기능으로 남겨둔다.'(그 전에는 일일히 타이핑했다)에 이르렀다. 점차 독서법도 변화해서, 지금은 '이해가 안 가는 책이 있다면 반복해 읽는다.' 비교적 최근에는 '정말 중요하다 싶은 책은 포스트잇으로 메모해두고 읽을 동안 벽에 붙여두고 한 번씩 저자의 주장과 책의 내용을 정리해둔다'에 이르게 되었다. 


그만큼 시행착오를 반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잇에 메모하며 읽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12월 들어서였다. 그전까지는 눈에 띄는 문장이 있으면 북플이나 메모앱에 발췌해두고 넘어갔다. 책을 읽고 독후감이나 서평을 쓰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어도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나면 모래는 손틈새로 모조리 새어나가고 손을 펼치면 남는 거라곤 한줌의 모래를 쥐는 상황이었다. 책의 내용은 순전히 기억력에 의존해 기억했고, 조금만 지나면 휘발되기 마련이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처음 서재에 남긴 게 11월 19일이다. 거의 반 년만에 겨우 도달한 경지(?)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전환점이 된 책이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산 지는 꽤 된 책이다. 책이 출간된 시점이 2015년이니 아마 그 시점에 혹해서 샀을 것이다. 북플에서 스탬프가 발간되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알라딘에서 구매했을테고. 읽기는 몇 번 읽었는데 실질적으로 '읽고 나서 뭐든 남기자'는 생각할 하게 된 것은 올해 11월달에 이르러서였다.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고 폰트도 크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주 쉽게 쉽게 읽힌다. 한 번은 하루만에 다 읽은 정도니 더 설명이 필요할까.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자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써야 하는 이유와 서평 쓰기의 장점, 서평을 쓰기에 앞서 독서를 하면서 명심해야 할 점, 서평은 어떻게 쓰는지 그 실제 사례 분석, 다른 서평가들이 왜 서평을 쓰는 가에 관한 인터뷰 등을 수록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 책이 책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서평 글쓰기 특강은 책을 읽고 난 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서로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할까.


아무튼 책을 읽고 실천해보자는 입장에서, 이 책으로 시험 삼아 서평인지 리뷰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글을 한 번 작성해보았는데 느낀 바가 많았다. 가장 크게 느낀 바가 있다면 뭐든 간에 기억에 의존해서는 쓰기 힘들다는 것이다. 메모는 필수. 그렇긴 하지만 소유권이 내게 있는 책이라면 필기든 포스트잇을 붙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그러지 못하니 조금 난처하긴 하다. 따로 포스트잇이나 공책을 활용해야 한다. 밑줄도 좀 더 체계적으로 그어둬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거나 중요해보인다고 마구 그었다간 막상 글 쓸 때 봐야할 게 늘어나 곤란해진다. 지금 읽고 다른 책도 빌린 책이라 책에 따로 메모는 못하고 북플로 밑줄을 남기고 있으나, 밑줄이 마구 늘어나고 있으니 고민이 많다. 되도록 올해가 가기 전에 서평이든 리뷰든 그냥 잡문이든 그 책에 관해 글을 남기고 싶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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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딩의 작품은 파리대왕에 이어 두 번째이다. 파리대왕도 읽기 힘들었지만 상속자들도 참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과거 한 철학자가 '문학은 2번 읽어야 한다'고 말한 바에 감명받아, 문학은 두꺼운 책이라도 되도록 2번 읽으려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 파리대왕도 처음 읽을 때 지금의 독자 입장에서는 어색한 단어들을 맞닥뜨리다보니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간 부분이 많았다. 전체적인 플롯과 스토리의 전개는 이해가 갔지만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2번째 재독할 때는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까지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속자들은 재독할 때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리대왕처럼 플롯과 스토리는 얼추 감을 잡으면서 읽어갔는데, 로크 무리의 대화도, 로크 무리의 시선에서 묘사하는 세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한국어를 읽고 있음에도, 한국어를 읽는 것인지, 외국어를 읽는 것인지, 그동안 나의 읽기 능력이 허상이었던 것인지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 뒤로 갈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책 뒷부분에 마련된 해설에 따르면 로크를 비롯한 주인공 무리는 네안데르탈인 무리이고 네안데르탈인스럽게 의사소통하며, 네안데르탈인스럽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들의 대화와 묘사는 호모 사피엔스 스러워서 잘 이해가 갔던 건가? 


읽기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의 작품답게 생각할 거리는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2022년이 마무리되어가는 요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한 것인가? 세상이 변한 것인가? 아마 정답은 둘 다 변했다일 것이다. 유튜브로 옛날 예능이나 보면서 낄낄 거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미 유행이 끝난 추억거리를 되새김질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시간의 흐름에서 저 멀리 흘러가고 만 셈이다. 같은 인간, 같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나보다 어린 세대가 즐기는 문화가 이상해 보이고 뭐 저런걸 즐기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알게 모르게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이미 멸종해버린 네안데르탈인, 상속자들에서 호모 사피엔스 앞에 몰락이 예정된 주인공 로크 무리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번 달에 같이 읽은 달과 6펜스에도 초반부에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알렉산더 포프 휘하에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썼으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터져 시대에 뒤처지고 만 조지 크랩 이야기다. 


때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를 넘어서 전혀 낯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는 수가 있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인간 희극 가운데에서 가장 기이한 광경 하나를 목격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오늘날 누가 조지 크랩을 기억하겠는가? 그는 자기 시대에 유명한 시인이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었다. 현대인의 삶이 훨씬 복잡다단해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은 이제 아주 드물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는 앨릭잔더 포프의 문하(門下)에서 시 작법을 배워 2행씩 압운(押韻)시키는 형식으로 교훈시를 썼다. 그러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터졌고 시인들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크랩 씨는 계속해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썼다. - P18

달과 6펜스의 화자의 말을 빌려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쓰겠다.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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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뒤에 수록된 해설에도 오듯이 제목의 달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을, 6펜스는 인간이 마주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6펜스를 손에 달을 바라보고 있을 스트릭랜드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6펜스 따위는 내팽개치고 몸으로라도 하늘을 기어올라 기어이 달에 올라설 인간이다. 아마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는 부인과 자녀들을 어느날 돌연 내팽개치고, 나중에는 스트로브 부부에게 제멋대로 굴다가 떠나버린다. '' 스트릭랜드가 무언가에게 매혹되었다고 추측한다.

 

276페이지에서 브뤼노 선장의 말은 스트릭랜드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鄕愁)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고, 꿈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처럼 현실은 내팽개치고 무작정 꿈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 스트릭랜드는 마흔에서야 그림을 그리겠다고 훌쩍 떠나버린다.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그 누구보다 없어 보인다. 보통 그런 경우, 골칫거리 취급을 당하거나 조롱당하기 마련이다. 이런 조롱이나 비난은 '현실적 조언'으로 둔갑한다. '너의 현실을 봐라,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같은 식으로 말이다. 스트릭랜드는 그런 '현실적 조언'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버리며 아무리 곤궁해도 그저 자기 길로만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길의 끝까지 갔다. 그가 꿈을 이루자 주변의 태도가 돌변한다

 

스트릭랜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독자들에게 꿈과 현실이라는 이중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는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 호감이 가기 힘든 인물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는 손에 쥔 6펜스를 던져 버리고 달에 올라간 인물이다. 스트릭랜드가 주는 묘한 여운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가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 같다는 인상을 이번에는 더 강하게 받았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은 자기 그림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꿈속에서 살고 있었고, 현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직 마음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붙잡으려는 일념에 다른 것은 다 잊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격렬한 개성을 캔버스에 쏟아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09

스트릭랜드에게는 색채와 형태들이 어떤 특유한 의미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자기가 느낀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오직 그것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림들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事實)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 P212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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