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때까지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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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읽을 때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그들의 정서에 머릿속에 <?>가 나타날 때가 있다.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주인이 우리라면, 쿨한 듯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끈질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일본의 정서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 특히 연애소설을 읽을 때면 담백하면서 간결한 문체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정말 연애인 건지, 아니면 단순한 순간의 감정인 건지 매우 혼란스럽다. 

 첫사랑. 첫사랑이 있든 없든,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달콤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보면 영화 <러브레터>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나카야마 미호 주연,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  고2때 본 이 영화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얀 눈 밭에서 꼬옥 숨을 참고 있던 그녀와 아련한 첫사랑의 비밀을 알아버린 또 다른 그녀. 숨을 헉 하고 몰아쉬게 만든 마지막 그 장면. 그렇다. 첫사랑은 아련하고 달콤하면서도 마음 아픈,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그리움과도 같다. 

 [다시 만날 때까지] 는 이러한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 수학여행 마지막 밤, 장난삼아 한 심리테스트의 정답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한 같은 반 학생 나루미를 유마는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 6년 후 유마는 휴가를 내 동경에서 일하고 있는 나루미를 찾아간다. 하지만 나루미와 시간을 보내기는 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나루미를 스토킹하는 소녀 나기코와 동경을 여행하게 되고, 어느 덧 유마가 다시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데..

 
<?> .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나에게 남은 것은 첫사랑의 안타까움과 아련한 느낌이 아니라 이 물음표였다.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고, 설레임에 가득차게 했던 문구 [첫사랑, 그 순수함과 안타까운 엇갈림을 노래한 동화같은 소설] 은 좀 과대포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러브레터>의 아련함과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은 온데간데 없다.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를 스토킹하는 소녀와 함께 동경을 여행하는 매우 쿨한(?) 여주인공과,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집에 들이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첫사랑과,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루미를 스토킹하는 소녀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스토킹소녀가 이야기하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다.  내 정서가 그들과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한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딱 하나 이해되는 것이 있다면 유마의 감정이다.


 말로 표현해버리면 줄곧 품어왔던 느낌은 그저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저 고교시절의 수많은 추억 중의 하나로 남고 말 것이다.
아마도 나루미에 대한 감정이 그만큼 소중했기에 유마는 말로써 그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부족했을 테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것만이 이 책에서 나타내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나, 주변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은 내가 실제로 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일본의 연애소설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쿨한 그녀들의 마음에 내 마음은 절대 공감할 수 없었으니까. 

 p.s

일본의 단어의 유래를 알게 되어 기뻤다!


에도시대는 무사와 상인이 각자의 마을(町)에 나누어 살았는데, 지명에서 이 한자를 '쵸'라고 읽는 곳은 상인 등이 사는 지역이고, 오카치마치(御徒町)와 같이 '마치'라고 읽는 곳은 무사가 사는 마을입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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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존 번햄 슈워츠 지음, 김원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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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느낌은 어떨까. 중학교 때 이후로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나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죽음 또한 들어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슬픈 이별은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하게 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의한 것. 멀쩡히 걷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 

 뺑소니 사고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간적인 죽음>이다. 그 곳에는 마치 칼로 자른듯한 생과 사가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뺑소니 사고를 둘러싼 두 가족의 이야기다. 에단의 가족은 어느 일요일 오후 피크닉을 즐기고 돌아오다 한 주유소에 차를 세운다. 길가에 홀로 서 있던 아들 조시가 사고를 당해 즉사하지만, 사고를 낸 차량은 그 자리에서 도주하고 만다. 그 후로 에단과 그의 아내 그레이스, 딸 엠마의 남겨진 삶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고를 낸 드와이트. 함께 타고 있던 아들 샘 때문에 얼떨결에 사고현장을 떠나게 되지만, 이후 완전하다고 할 수 없었던 그의 삶 또한 점점 번민과 고민의 나락으로 떨어져만 간다. 

 이 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줄곧 서술하다가 나중에 범인이 잡혀 응징하는 여느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피해자인 에단과 그레이스, 가해자인 드와이트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낱낱이 파헤친다. 같은 나이였던 아들을 둔 두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 못해준 것이 가슴에 사무치고, 하루하루를 유령처럼 살게 되는 삶 속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에단과 자신의 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드와이트의 두 마음이 모두 아프도록 이해되어 버린다. 그 안에서 엄마의 입장인 그레이스의 시점은 책의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몰고간다. 그레이스의 절규, 그레이스의 슬픔.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나는 에단이기보다는 오히려 그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한 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죽는 것이 더 슬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더 슬픈 것인지, 생각한 적이 있다. 양쪽 모두 정말 뼈에 사무치도록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역시 남겨진 사람들 쪽이 더 가여운 삶이 아닐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기억, 느낌, 몸에 닿던 느낌들.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진실. 남은 사람들은 모든 아픔들을 감내해야만 한다. 

 책은 더디게만 읽혔다. 어쩌면 뒤에 나올 내용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고, 묘사된 사람들의 아픔들이 내 마음에 모두 들어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내가 에단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드와이트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했다고는 하지만, 뺑소니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가장 비겁한 행동이다. 앞으로는 길가에 걸린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예전처럼 건조한 눈으로는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두 가족의 마음 아픈 이야기가 내 가족과 평범한 일상울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 주었다.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해도, 그 후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나를 사랑해 준 가족에게 몇 초라도, 다만 1초라도 이별의 말을 건네고 떠날 수 있다면, 나는 그 죽음 또한 축복받은 것이라 여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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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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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지도에서 찾아야 겨우 위치를 알 수 있는, 저 지구편 어디에서 오늘도 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을 그들에 대해 감히 내가 한 마디 한다는 것은 너무나 주제넘는 일이다. 지금 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한 줌의 슬픔일까, 혹은 그 보다도 더 작은 희망일까. 아니면 그들의 삶에서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대한 절망일까. 지금 내 가슴에는 슬픔과 어찌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복잡한 감정들만이 뒤섞여 있다. 

 이 이야기는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자의 이야기다. 아니, 운명이 허락했다면 다른 모든 여자들이 빠짐없이 겪었을지도 모르는 삶의 이야기다.


 나는 타지크 족, 너는 파쉬툰 족, 저 남자는 하자라 족, 저 여자는 우즈베크 족, 이러한 것들이 난센스지. 우리는 모두 아프간이야.
아프간. 이 하나의 말로 모든 사람을 설명할 수 있었던 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그 다음에는 적군이 물러간 자리에서 한 나라의 국민들끼리. 마리암.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자식이었고, 그 때문에 고향에서 먼 카불로 강제 시집을 보내졌다. 나이도 많고, 폭력적이고, 예의라고는 없는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라일라. 사랑하는 연인 타리크와 가족들이 있었지만, 결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뱃속에 타리크의 아이를 임신한 채 홀로 남았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라시드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마리암의 거칠고 이기적인 남편 라시드의.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두 여인의 삶에 참혹한 그림자를 드리운 건 전쟁이었지만, 그 고통을 더 심화시킨 것은 그녀들의 남편 라시드였다. 때때로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라시드에게 마리암과 라일라는 아들을 낳는 도구, 식사를 챙겨주는 식모,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고, 화가 날 때 때려도 괜찮은 하찮은 존재다. 우리의 보수적인 사상에도 아직 남아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부수물이라는 생각의 처음은 대체 어디였을까. 전쟁 속에 홀로 남겨진 여인들의 삶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어도 따뜻하고 다정한 남편이 있었다면 마리암의 삶은 어린시절의 아픔을 떨치고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라일라 또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 앞에 운명을 내려놓는 것은 신의 뜻이지만, 결국 그 운명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이다. 그 결정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일 때 인생의 비극은 시작된다. 가끔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이슬람 국가에서의 여자들의 삶을 나는 단순한 기삿거리로 넘겨버렸다. 그 기사 속에서 가련한 여인들은 다른 사람 (남편, 부모, 형제)에 의해 결정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니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나에게도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건이었다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내가 좋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을 일이라고. 어쩌면 내가 그 곳에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마리암과 라일라에게 있어 결국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겨운 삶을 견뎌낼 힘을 주는 <찬란한 태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이제 그 빛을 오래도록 아프간에 비춰 줄 수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아무도 그네들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는 없지만 마리암과 라일라, 결코 하찮은 인생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억을 간직하고 끝없이 인내하며 결국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승화시킨 아름다운 삶.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성실했던 삶. 지도자가 되지 못해도, 신문에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는 유명인사는 되지 못해도 우리 모두의 인생은 충분히 찬란하게 빛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쉽사리 책장에 책을 꽂을 수 없다. 여간해서는 별 다섯개를 주지 않는 내가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100개라도 주고 싶은 근래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이다.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책은 쓸 말을 많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 더 이상 내 생각을 모두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책을 통해 배우는 세상은 허구의 아무 쓸모없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고, 책과 관계된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는 인터넷을 뒤져 아프간에 대해 조사하게 만드는 것. 진정한 문학의 힘은 여기에 있다. 오늘 나는 또 조금 성장한 느낌이 든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작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셀 수도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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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살인 방정식
기예르모 마르티네스 지음, 김주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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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 최대 적은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바로 수학이었다. 이 수학이란 생물(나에게는 마치 나를 약올리기 위해 태어난 별종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에) 은 언제나는 아니었지만, 나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답을 내놓기 일쑤였고, 좀 쉽게 풀었다 싶으면 실수 때문에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항상 수학문제를 풀 때 머리를 쥐어뜯곤 했는데, 이 표지의 남자는 그 때의 내 모습과 어쩐지 비슷하다. 나는 수학 때문에 머리를 감싸안았지만, 이 남자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그에게 맡겨진 숙제는 바로 살인방정식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온 '나'는 암호해독가로 유명한 어느 노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하숙비를 지불하려고 찾아갔다가, 저명한 수학자 아서 셀덤과 함께 노부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아서 셀덤은 누군가로부터 원이 그려진 이상한 메시지를 받고 찾아온 것. 그 후 범인의 연쇄살인은 계속된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던 환자가 사체로 발견되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공연 도중 갑자기 질식사하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던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의 스쿨버스가 전복되어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날 때마다 아서 셀덤에게 원, 물고기, 트라이앵글, 테트라크티스의 기호가 그려진 이상한 쪽지가 전달되고, '나'는 이 유명한 수학자와 함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수학과 거의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책 표지에 쓰인 '수학으로 풀어낸 치밀한 살인의 미학'이라는 글귀에 혹시라도 책을 읽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책으로 인해 수학의 길에 다시 한 번 뛰어들어볼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동생이 읽고 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반가웠고, 역시 이해하는 데에 어렵기는 했지만 논리적 추론에 관계된 설명이 나올 때는 왠지 모르게 내가 지적인 사람이 된 듯 하여 뿌듯함까지 느꼈다. 역시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한 가지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다. 살인이 일어나고, 이상한 쪽지가 배달되었음에도 책 속의 사람들은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동안 내가 읽었던 추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사건의 중심이 되어 마치 자기가 아니면 사건을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 작품속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사건에 무관심하다. 그저 쪽지가 배달되고, 사건이 일어나면 그제서야 '아, 또 누가 죽었어?'라는 느낌일까. 오히려 논리적으로 주변 상황을 설명하고, 테니스를 치며 일상생활을 즐긴다. 그러다, 한 가지 계기를 통해 그제서야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 사건의 전모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건의 결말을 알게 되면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대신 작가는 독자에게 배려심을 발휘한다. 기호들에 대한 설명이며, 힌트를 요기조기 숨겨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발견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논리적 설명이라는 것이 읽다보면 빠져들지만, 나중에는 역시나 희미해지기 때문에. 다만,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책을 읽게 되니 읽는 맛이 좋다. 밝혀진 범인에 대해서는 안쓰러움보다 비열함을 느꼈다. 결국 어떤 말로 포장을 해도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일을 벌인 것이니,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당장 응징을 가했을 거다. 

 수학과 논리적 추론이라는 색다른 소재로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준 작가의 다음 작품을 하루 빨리 만나보고 싶다. 수학이 어려웠던 이들이여, 수학에 공포심을 가졌던 이들이여,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집어들라~당신들도 수학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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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보는 서양미술사
장 라쿠튀르.질 플라지 지음, 이봉순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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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간접적인 경험>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직접 가 볼 수 없고, 직접 느껴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단순히 펼치기만 하면 내 눈 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  집어들기만 하면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 주는 것. 나에게 있어 책 이외의 경이로운 발명품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미술품 관련 서적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 동안 미술에 관해 적당한 양의 책을 봐왔지만, 일관성 없이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만 보게 되어 한편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 번은 전체적으로 개괄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면서 주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 헬레니즘 미술, 고딕, 르네상스, 그리고 추상화와 현대의 여러 작품들..그림들이 크고 깔끔해서 책을 휙휙 넘기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림 안에는 현재의 우리가 발견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있어 문외한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림에 관심이 가고, 매달리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숨어있는 매력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미술책은 글자를 따라가는 것이 주된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일반 책들보다 사람을 더 자유롭게 한다. 가령 책에 나온 스톤헨지를 보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점이 매력이다. 옛날의 일은 옛날의 일일 뿐, 지금을 사는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알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멋지다. 물론 학술적인 내용을 알고 그림을 본다면 더 좋겠지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미술 책들은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믿음이 간다. 미술관 기행 시리즈를 비롯하여, [이미지로 보는 서양 미술사]이 책까지 나에게는 미술감상을 하는 데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원래 목적이 미술사의 개괄이었으므로, 나에게는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 전체적인 시대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의 미술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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