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제닝스는 꼴찌가 아니야>(앤터니 버커리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출판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 아냐. 그걸로는 안 돼. 우표 상인한테 우표를 보낼 순 없어. 그건 마치... 마치... 뉴캐슬에다 석탄을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뉴캐슬에도 석탄을 보내는 걸. 바로 요전 날 신문에서 읽었으니까 확실해."

-본문 p.120

뉴캐슬은 석탄산지로 유명한 영국의 항구도시다. 아마 본문 인용에서 굵은 표시를 해둔 부분은 숙어적으로 사용되는 carry[take] coals to Newcastle 을 한국으로 직역한 듯 하다. 석탄 산지에 석탄을 보내는 거니, 받는 사람에게는 별도움이 안되는 것을 의미해, '헛수고를 하다'라는 뜻을 쓰인다.

어느 정도 영어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이 대목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독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원문은 '우표 상인에게 우표를 보내는 것'(A)과 '뉴캐슬에 석탄을 보내는 것'(B)이 동일한 뜻으로, A를 B로 설명해주는 구조다. 그렇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영어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A=B라는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에, B의 뜻이 우표집에 우표를 보내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럭저럭 이해는 할 수 없지만, B의 뜻을 잘 모르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제닝스의 이야기가 별 재미가 없어진다. 뉴캐슬이 무엇인지 몰라서 빚어지는 것이다. 뉴캐슬에다 석탄산지라는 설명만 있었어도 훨씬 뜻이 명확해졌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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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큼직하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적혀있다. 나오키상은 이른바 '대중소설'에게 주는 신인상이다. 이 상은 좋은 작품은 정말 좋은데, 안좋은 작품은 정말 신인의 풋풋한 가능성만 보여주고 끝나는 경우도 있어서 읽기 전에 좀 긴장한다.

열네살 소년 네 명의 1년동안 만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일종의 성장소설인데, 소년들은 이미 다 성장해 있었고, 다만 어른들의 세계에 적응하고 변해가야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조로증을 앓고 있어,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넘긴 나오토, 겉은 얌전한 우등생의 모습이지만 가슴이 큰 금발 포르노물을 좋아하고, 이미 유부녀와의 불륜(물론 깊은 A까지)까지 경험한 준, 그리고 대식가 다이, 그리고 이야기의 화자가 그 네 명이다.

이들의 생활은 좀 엽기스럽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자기밖에 웃지 않는 개그를 하면서 하늘을 한 번 날아보겠다고 4층에서 뛰어내리는 놈이 없나, 몸무게가 49플러스마이너스 19인 거식증 환자인 여학생이 있질 않나, 자기가 고백한 남자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여자가 있지 않나... 아무튼 우리 정서에는 좀 충격적이다. 이런 것이 일본적인 걸까?

재미? 물론 있다.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잘 만든 드라마를 보는 느낌. 하지만 소설이 좀더 치밀하게 짜여진 언어 예술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당히 자극적인 소재,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적당한 인생에 대한 관조. 그런 것이 버무려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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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좋거나 혹은 굉장히 나쁘거나..다. 나도 이 책을 압도적인 찬사로  처음 추천받았다. 소설 좀 읽는 사람, 책 좀 읽는 사람은 다 이 책이 괜찮다고 아우성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어이없는, 그리고 끔찍한(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모든 것들이 모두 나온다.).. 소설이 있어 그랬는데, 한 2년 전부터 이 책이 무척 읽고 싶었다.

당연히 책은 절판이 되었고, 여기저기 헌책방에 가서 물어보니, 이 책은 이른바 '인기 아이템'이라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단다. 좀전에 어떤 페이퍼에서 이사하다가 이 책을 읽어버려서 죽고 싶을만큼 화가 났다는 글을 읽었는데 정말 100% 동감한다. 나라면 울어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몇년 안에 이 책은 또 절판이 될 것이고, 이 책의 명성을 뒤늦게 알게된 사람은 그제서야 이 책을 찾느라 헌책방을 전전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 취향에 안맞는다고 생각해도 일단 구매해서 쟁여 둬라. 절판되고 찾느라 울지 말고. 어느 시점이 되면 이 책이 꼭 읽고 싶어지는, 정말 훔쳐서라도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사족 한가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가. 작년부터 애타게 보고싶었던 책들이 속속 나와주고 있다. <소유>가 그랬고, 스티브 킹 전집이 그랬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그렇다. 이제는 옛날 고려원에서 내다가 절판시킨, 오에 겐자부로 책만 어디서 예쁘게 전집으로 내주었으면 좋겠다.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책도 꼭 읽어야 할 책은 이렇게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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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4-10-04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전집이 조만간 절판될꺼 같아서 미리 사놨어요. 오에겐자부로 전집이 절판되리라곤 미처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에 '개인적 체험'만 사놨었는데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구요. 특히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도 절판됐기 때문에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존재의 세가지거짓말은 지난주에 주문해놨으니까 조만간 받을수 있을거 같아요. 이 책 기대가 많이 되네요.
 

사실 에쿠니 가오리가 쓴 이야기들은 참 사소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것이다. 개똥벌레의 불빛같다고 할까? 희미하게 밝혔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밝게 빛나지만 만져보면 서늘한, 먼데서 보이는 불빛같은...

일본에 있는 동생이 원서로 읽어본 후, 재미있다는 촌평을 날려왔다. 문학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동생이 '재미있다'고 해서 더 기대가 된다. 여전히 슬픈의 언저리를 더듬거리는 이야기들. 그녀는 항상 잔치는 끝나고 끝없는 고독이 펼쳐질 그 문앞에서 머뭇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지독하리만큼,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쓸쓸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의 상상력의 근본이 '동화'에 있기 때문인 듯 하다. ever after라는 동화의 너그러움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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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지박약 2004-05-2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지나다가반가워서요.저여기서신간뜨자마자충동구매했거든요.원래에쿠니팬이라^-^;;
담담한게좋드라구요~에쿠니.원츄!!
 

프랑수아 플라스는 <마지막 거인>을 그린 작가다. 그 책은 책은 이 책에 비하면 정말 상상력의 발가락 끝만 살짝 보여준 정도다.  <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 <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비취 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 제목 외우기도 힘들고, 뭐라고 설명하기도 참 힘들지만, 참 멋진 책이다. 전세계의 신화를 자기 나름대로 녹여서 가상의 민속지를 만든 깊이와 넓이가 참 대단하다 싶다. 아마도, 마르코폴로가 감옥에서 자신이 본 동양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의 가슴이 이렇게 두근거렸을 것이다.

대인지뢰의 피해를 알리는 그림책. 일종의 캠페인성 그림책이지만, 요 쇼메이의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 아마 평화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요 쇼메이가 그린 푸른 초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 역시 대인 지뢰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인간은 끝났다고 믿었지만,  땅속에 파묻힌 지뢰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원서나 한국어 번역본이나 참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책 뒤에 꼼꼼하게 붙은 해설은 어른들이 읽고 아이들에게 꼭 설명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다. 참 가슴 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창비 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창작부분에 당선된 작품이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이야기 자체는 무척 무겁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읽기에는 버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해해야할 역사적 사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 중학교 이상을 위한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청년들이 총을 드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죽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 목사, 젊은 혈기로 세상의 불의에 부딪친 야학 교사들, 그 사이에서 커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우리 아동문학작품은 '1980년 광주'를 이 정도로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케다 아키코의 와치필드 시리즈가 번역되었다. 다얀(이스라엘의 다얀 장군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눈이 다얀 장군처럼 생겼다나) 이라는 고양이가 와치필드라는 판타지 공간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다얀이 꼭 주인공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그림책보다 캐릭터 상품이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 따뜻하고 귀엽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보다는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있는 시리즈. 사실, 아이들보다는 20~30대 여성들에게 더 호응을 받고 있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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